【성경공부】요나01장-이 재앙이 누구를 위하여 우리에게 임하였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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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재난의 근원
a. 사람에게 재난이 일어나는 데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재난의 근원은 인간의 악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b. 앗수르 사람들은 매우 악한 민족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시고 죄를 회개하게 하시려고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요나는 앗수르 사람들을 미워했고, 하나님께서 앗수르 사람들을 벌해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아시리아 제국은 매우 잔인하고 오만하여 재앙을 자초했습니다.
c. 뜻하지 않게 하나님은 요나에게 앗수르 제국에 가서 재앙을 선포하여 그들이 죄를 회개하도록 하셨다. 요나는 앗수르 사람들이 회개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에서 도망쳤습니다. 그 결과 선지자들도 재난을 당하였습니다.
d.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이고,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실 것이다.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불행을 기뻐하지 마십시오. 일단 불행을 기뻐하면 재앙이 닥칠 것입니다.
2.재난이 닥쳤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을 부를 줄 안다
a. 재난이 닥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에만 사람은 하나님을 부를 줄을 알게 됩니다.
b. 사람이 하나님께 재앙을 내리도록 강요한다면, 하나님을 올바로 부르면 왜 재앙을 받아야 합니까?
c.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면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나고,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 일어나게 된다.
d. 재앙이 닥치면 반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3.사람들은 적에게 재난이 일어나는 것을 좋아한다
a. 사람은 원수에게 재앙을 내리기를 좋아하지만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게 하십니다.
b.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시므로 재앙을 만나면 속히 회개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c. 하나님을 더 알아가십시오. 하나님은 사람들이 불행을 기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4.나는 죽어도 하나님이 내 원수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a. 이것이 요나의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원수인 앗수르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를 사용하시기를 바라느니 차라리 바다에 던져져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기를 원했습니다.
b.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키도록 마련하셨고, 그 물고기의 배가 사흘 밤낮 동안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이것이 요나에게 회개할 수 있는 하나님의 기회였습니다.
5.선지자가 되려면 하나님의 마음을 마음으로 가져야 합니다.
a. 하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자신의 의견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자신의 입장을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을 마음에 두십시오.
b. 그리스도인은 운명을 잃을 수 없습니다.
c. 원수를 사랑하라 이는 원수가 은혜를 얻기 위함이 아니요 너희도 은혜를 얻게 하려 함이라
안녕하세요 여러분, 요나서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 책은 짧지만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성품을 부각시키는 데 매우 중요하다. 요나서 1장은 “이 재앙이 누구를 위하여 우리에게 임하느뇨”라고 말합니다. 사실 사람에게 임하는 재앙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를 주의 깊게 관찰해 보면 패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악해지면 자연재해와 인재가 증가한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악에 빠지면 하늘에는 재앙이, 땅에는 인적 재앙이 따르게 마련이다. 인재가 자연재해를 촉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눈치채셨나요? 인간이 만든 재난은 자연재해를 가져옵니다.
우리 하나님은 재앙도 내리시고 축복도 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재난은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재난과 불행한 순간이 없다면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인생을 보고 나면 인생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재난이 없다면 인생은 평온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어떤 사람들은 허들 조끼, 슬리퍼, 허리에 열쇠 묶음을 걸치고 여가 시간에 집세를 받으며 여유롭게 하루를 보내지만, 본의 아니게 지옥으로 미끄러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난은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1. 재난의 근원
재난을 연구해보면 그 근원이 인간 본성의 악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앗수르 제국에 의한 이스라엘의 멸망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아시리아 제국의 수도인 니네베는 이 역사적 사건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앗수르 제국이 이스라엘을 정복하도록 허락하셨고, 요나는 그 기간 동안 선지자였습니다.
요나는 앗수르 제국을 몹시 미워했습니다. 아시리아인들은 잔혹한 형벌과 도구로 유명했으며 극도로 사악한 사람들의 집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 숭배를 벌하기 위해 앗수르를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은 하나님께 그들을 구원하시고 앗수르 제국을 징벌하시기를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
그 결과, 어느 날 하나님은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셨고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그곳 사람들에게 그들의 악이 하나님 앞에 이르렀으므로 부르짖으라고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선지자 요나가 앗수르 제국으로 가는 것인데 왜 앗수르 제국으로 갑니까? 그들의 죄를 회개하게 하십시오. 아, 요나는 이렇게 느꼈습니다. 하나님, 마침내 우리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니느웨에 재앙을 내리기 위해 요나를 보내셨지만 그 결과 요나는 기뻐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모르고 이생에서 재난의 원인을 파악할 수 없다면 그것은 그의 인생에서 비극이 될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야 합니다! 아시리아 제국의 영토는 매우 거대했습니다. 당시 앗수르 제국은 도시와 영토를 정복해 누구도 앗수르 제국 앞에 설 수 없었습니다. 이집트도 아니고 앗시리아 제국 앞에서 그 위신을 잃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교만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실 것이고, 하나님은 요나를 보내실 것입니다.
재난의 근원은 인간의 악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사람은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모르면 하늘을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말하건데, 넌 이길 수 없어! 작은 성취를 이뤘다고 해서 자신이 훌륭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결과는 어땠나요? 선지자들에게도 재난이 닥쳤습니다. 사람들은 어떤 재난을 만나지 않는 한 떠돌게 될 것입니다. 그냥 생각해보니 그 곳 사람들은 다 미쳤고, 머리에는 뿔이 나고, 얼굴에는 털이 나고, 등에 날개가 나고 있으니 거의 재앙을 상징하는 도깨비로 변해가는구나. 곧 출시될 예정입니다.
나는 내가 한 말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나는 정말로 하나님께서 나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를 원했습니다. 전염병은 이제 막 지나갔고, 우리는 아직 전염병의 기원과 진정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이 재앙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풀기 위해 요나를 니느웨로 보내신 적이 있습니까? 당신이 원하지 않을 까봐 두렵습니다.
아편전쟁을 시작으로 지난 100년간 중화민족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불공평한 조약과 괴롭힘의 고통이 안타깝습니다. 난징대학살의 아픈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휴대폰을 통해 역사적 적들의 재난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재난이 당신의 역사적 적에게 닥친다면 당신은 기뻐할 것입니까? 아니면 그들을 저장하기로 선택하시겠습니까?
사실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재난이 닥쳤을 때 우리는 경계심을 늦추지 말고 다른 사람의 불행을 기뻐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다른 사람의 불행을 기뻐하면 당신에게 재앙이 닥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적들을 구원하기 위해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이것은 선지자에게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앗수르 제국의 철벽 아래서 끝없는 고통을 겪었고, 선지자들은 밤낮 하나님께 앗수르 제국에 재앙을 내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정말로 재앙을 내리기를 원하셨을 때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요나를 보내셨습니다. 이런 내면의 갈등과 모순이 정말 감동적이에요. 선지자의 마음속에 있는 저항은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느끼는 감정을 실제로 반영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2. 재난이 닥쳤을 때 사람들은 하나님을 부를 줄 안다
재난의 역할은 매우 좋습니다. 즉 사람들이 하나님을 부르게 하는 것입니다. 재난의 근원은 인간의 악에서 비롯됩니다. 재난이 오면 사람들은 하나님을 부르러 옵니다. 내가 위대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나는 전혀 위대하지 않습니다. 재난이 닥치면 사람들은 매우 불행해질 것입니다! 도대체 운이 좋지 않으면 이를 막지 않고서는 찬물도 마실 수 없다는 사실을 아시죠? 정말 힘들고 순조롭게 되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을 찾을 수 있을 뿐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한동안 실직했지만 모기지 지불이 거의 끝났고 돈이 거의 바닥났습니다. 재난이 닥치면 사람들은 돈을 쓸 수 없고 돈이 당신을 도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당신은 파티가 매우 긍정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묻습니다. 선생님, 제가 언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까? 그러다 보니 일이 잘 풀리거나 바빠지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섬길 시간을 가질 수 있지?”라고 말할 것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자유시간을 가질 수 있나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어떤 사람은 “선생님, 당신도 그러하시네요. 응, 나도 마찬가지야. 그러므로 재난이 닥치면 좋으련만 기뻐하지 말라.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부르면 왜 이런 재난을 겪어야 합니까? 사람이 하나님을 잘 경외하고 긍휼을 더 많이 받아야 하는데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합니까? 독일의 파시스트들은 비인도적이었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전범들도 비인도적이고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광란의 전쟁 속에서 그들은 정신을 잃었고, 그 결과 그들은 그들을 멸망시킬 수 있는 하나님과 경쟁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재난이 닥치면 사람들은 하느님을 불러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됩니다. 신이 무엇이든 사람들은 그들의 신을 부를 것입니다. 요나는 배를 타고 욥바로 향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반대 방향을 택하여 최대한 멀리 도망치려 했습니다. 내 말을 많은 사람들이 들었을 것이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생각이 아닌 나 자신의 생각이다. 때때로 나는 그와 같은 사람들에게 무력함을 느끼며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만약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아니었다면 저는 가능한 한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있었을 것입니다. 신이 자비를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내 마음 속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면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저는 목사가 되고 싶지도 않았고, 목사가 되어 먹고살고 싶은 마음도 없었습니다. 단지 교인의 얼굴을 보지 않고 평범한 직업을 찾아서 돈을 벌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교만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직업을 빼앗아 가실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일어날 일들은 반드시 일어날 것이다.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면 일이 예측할 수 없게 되고,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때 사람들은 “하나님, 당신은 어디에 계시나요?”라고 물을 것입니다.
나중에 저는 사람들이 너무 사악해서 다시 돌아와서 하나님께 봉사해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실 때, 하나님은 우리를 직접 멸하기를 원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패괴시키는 요소들을 멸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저항과 완고함은 인간 본성의 일부입니다. 우리의 고집 때문에 가족이나 친구들과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문제가 너무 커질 때 우리는 영적인 위로와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의지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용히 기도하며 우리의 마음을 성찰하는 것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완고함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은 그들이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회개를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환난에서 벗어나는 중요한 단계입니다.
3. 사람들은 적 때문에 재난을 당하는 것을 좋아한다
더욱이, 인간은 좌절에 직면했을 때 불안을 느끼는 자연스러운 경향이 있으며, 이러한 불안은 종종 더 많은 문제를 야기합니다. 우리는 평범한 사람이든 특별한 지위에 있는 사람이든 모두 개인적인 입장과 편견에 영향을 받기 쉽습니다. 이러한 입장은 우리의 판단과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열린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특히 중요합니다. 묵상과 기도를 통해 우리는 삶의 어려움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는 내면의 평화와 힘을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뭐라고 말씀하시나요?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아 나의 적. 하나님, 저를 용서해주세요. 우리는 원수들이 받는 보복을 보면서 하나님은 참으로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라는 마음에 한숨을 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적들이 벌을 받는 것을 볼 때 속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 참 편하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정말 의로우십니다. 의로운가? 이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요나는 왜 하나님을 피해 숨었나요? 그 사람은 자기가 숨길 수 없다는 걸 모르나요? 그는 알지 못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바다와 육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말했습니다. 요나는 이것을 알면서도 마음속에 있는 이 장애물을 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앗수르 제국에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마음의 장애물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하나님과 충돌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이런 일은 안 하겠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용서해달라"고 말했다. 하나님이 당신을 용서하실 수 있습니까? 그 자신도 이 난관을 넘지 못했다.
결과는? 안 가? 하나님이 당신을 놓아주실 것 같나요? 하나님은 당신을 놓아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선택하셨다면 그것은 운명입니다! 그건 용접과 마찬가지로 철판의 문제이므로 빼낼 수도 없고 빠져나갈 수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어느 교회 출신이든, 얼마나 목회에 열심이든,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에게 재난이 닥치게 되면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운명신학은 운명에 관한 신학입니다.
그렇게 되어 결국 요나는 배에 올랐습니다. 자, 하나님은 보좌에 앉아 이 모든 것을 지켜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어디로 가는가? 동쪽으로 가라고 했는데 서쪽으로 가니 개를 잡으라고 했는데 닭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폭풍을 보내셔서 배에 있는 사람들에게 재앙을 내리게 하셨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겁에 질려 각자의 신에게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요나는 어떻습니까? 대신 그는 배 바닥에 있는 선실에서 잠을 잤습니다. 그는 이 모든 일의 원인을 마음속으로 이해하고 있었고, 다른 사람들이 당황하는 것을 보고, 차라리 배가 가라앉는 것이 더 낫다고 느꼈습니다. 바다 밑바닥에 도달해도 순종할 생각이 전혀 없고, 여유롭고 경멸적인 태도를 갖고 있으며, 삶과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선지자로서 삶과 죽음을 전혀 개의치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원수를 사랑하라”는 도전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통과할 수 없었습니다. 요나는 여전히 니느웨와 앗수르 제국이 보복을 받는 것을 보고 싶었고, 이렇게 느꼈습니다. 하나님, 나는 당신이 어떤 하나님이신지 압니다. 당신께서 저를 그곳으로 보내신 것을 이해합니다. 제가 거리에서 소리를 지르자 황제부터 백성까지 모두가 베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회개했습니다. 결과는? 당신은 나를 속였습니다.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했지만 결국 그렇지 않았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마음으로 알았으나 마음이 복잡한 심정으로 굴복할 수 없었습니다. 차라리 바다 밑으로 가세요.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재앙을 내리라고 강요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한 자매는 직장을 잃었고 오랫동안 직업이 없었습니다. 과학자들도 실업자가 될 것입니다. 청소부들은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적지만, 과학자들은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나는 방금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좋은 일을 예비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왜 실업자가 되는가? 사람이 악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회개하기를 얼마나 원하시지만 사람들은 자신의 능력에 의지하기를 좋아하는지 악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나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스스로 부족하다는 것을 알기를 정말로 원하십니다. 이 업계에 실업자가 없더라도 실업자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분임을 모든 사람이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요나는 흥미로운 사람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을 너무나 잘 알았기 때문에 “나는 가지 않겠습니다. 다른 사람을 찾으면 됩니다. 나는 앗수르 제국을 죽도록 미워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적에게 재난이 일어나는 것을 보고 싶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은 천천히 적응하여 하나님을 더 알아가야 합니다.
사람들은 적들이 겪는 불행에 직면할 때 종종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를 느낀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이야기를 되돌아보면, 아브라함이 죄악된 소돔과 고모라를 직면했을 때, 그 장소로 인해 손실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이 도시들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도시에 의인 오십 명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기를 바랐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원수의 재난을 기뻐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4. 나는 죽어도 하나님께서 내 원수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요나의 이야기는 또한 하나님께서 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것보다 죽음을 택하는 인간의 깊은 내적 모순을 드러냅니다. 이는 국가의 적과 마주했을 때 사람들의 복잡한 감정을 반영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얻기 위해 적과 맞서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기도 합니다. 요나의 태도는 앗수르 제국에 대한 깊은 증오심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의 적들을 용서하시는 것을 보느니 차라리 바다에 던져지는 편을 택했습니다.
재난이 닥치면 사람들은 종종 하나님께 부르짖지만 동시에 적들에게 불행을 기원하기도 쉽습니다. 요나가 배에서 자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요나는 무관심해 보였습니다. 이런 반응은 그의 태도에 놀라움을 자아낸다. 하나님 보시기에 인간은 개인의 원한을 넘어서 미움의 수렁에 빠지지 말고 용서와 자비를 배워야 합니다.
요나가 말했습니다. “내가 주 하나님을 피해 숨어 있기 때문에 이 재앙의 근원이 나인 줄 압니다. 그러면 왜 주님을 피해 숨어야 합니까? 요나는 이렇게 느꼈습니다. 나는 우리 민족의 원수인 앗수르 제국이 하나님의 자비를 받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나는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이고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입니다.
아, 지금은 사람들의 마음이 어려운 시기입니다. 요나가 말했다: 나를 바다에 던져라!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요나가 흥미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뒷장을 읽으면 요나는 특히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죽어라! 한번은 어떤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차에서 내려도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조금 완고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왜 즉시 죽지 않았습니까? 이 말을 듣는다면 정말 누구에게나 뭔가가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바다에 몸을 던질 것을 제안했습니다. 이는 요나의 인생관과 하나님에 대한 관점이 여전히 다소 모호하다는 뜻입니다. 그는 말했다: 나를 바다에 던져라! 왜? 왜냐하면 그는 사는 것이 그다지 흥미롭지 않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려면 이것이 정말 전제 조건입니다. 사람이 꿈과 삶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는 참으로 여호와 하느님의 예언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요나의 견해는 참으로 흥미롭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죽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살리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나를 바다에 던져라. 요나의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죽게 두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요나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요나는 바다에 던져지기 전에 계속 말을 하고 있었습니다.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나1:14)
이 사람들이 어떤 부처, 도, 신을 숭배하든지 간에 그들은 실제로 여전히 도덕적인 제약을 갖고 있습니다. 즉, 요나가 자신을 바다에 던진 죄를 지었다고 비난하지 마십시오. 그 결과, 사람들이 요나를 던지자 파도와 바람이 잠잠해졌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보내어 요나를 삼키셨으나 언제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요나가 한동안 바다에서 수영을 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는 물에 질식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 결과 큰 물고기가 요나를 삼켰을 때, 요나는 그 물고기 뱃속에서 조금 더 깨어 있었습니다. 그가 물고기 뱃속에서 어떻게 숨을 쉬는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공기가 없습니다. 사실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 그는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때 그의 정신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 물고기 뱃속에 산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물고기 뱃속의 위산은 마치 변기 구덩이에 빠진 것처럼 냄비를 마실 만큼 충분했다. 다행스럽게도 그것은 엉덩이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내 입에서 나왔다.
요나가 엉덩이에서 그것을 빼낸다면 그것은 나쁠 것입니다. 입부터 엉덩이까지 모든 과정이 얼마나 냄새나는지. 어쨌든 물고기의 뱃속에서는 냄새가 너무 좋아서 지금쯤 숨이 막혔나 봐요. 숨을 쉴 수 있다면, 들이마시는 것은 물고기 배의 내용물뿐입니다. 이때 요나는 영으로 기도하고 음부에 내려갔으나 그것은 후일의 이야기이다.
5. 선지자가 되려면 하나님의 마음을 마음으로 가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뜻대로 행동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사랑하고 미워하는 것이 분명하더라도 하나님의 마음을 마음으로 삼아야 합니다. 목회자는 자기 자신이 되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마음을 마음으로 삼아야 합니다. 나는 오래 전에 이 계좌를 정산했습니다. 나는 아직도 회개하고 있습니다! 아, 내 뼈 속에 악한 영이 있나이다. 특히 봉사할 때에는 몸을 굽혀 봉사해야 한다. 왜? 교회에 나오면 어떤 재난을 만나 비참한 삶을 사는 완고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고 나면 내가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봉사가 끝났다고 해도 운명이 없을 수도 있다. 사실 저는 이것이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일이라 마음이 아팠습니다.
나중에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징계하시는 것이 매우 엄격하면서도 여전히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물고기 뱃속으로 삼켜지는 과정을 겪고 싶지 않다. 그 과정의 절반만 뱉어도 역겹다. 그러므로 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마음을 내 마음으로 삼아야 합니다. 내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으며,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수년 동안 어떤 훈련을 받았는지 아시나요? 나는 배은망덕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이제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나는 그들을 다 극복했습니다. 나는 봉사할 때에도 여전히 믿음으로 봉사합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든 그리스도인이든 자신의 입장을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 말고 하나님의 마음을 마음으로 삼아야 합니다. 때로는 비판을 받는 것이 불편할 때도 있지만 더 이상 신경쓰지 않습니다. 왜? 사람의 마음이 단단하기 때문입니다.
재난을 덜 겪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지금까지 물고기 뱃속에 삼켜졌다가 다시 뱉어내는 끔찍한 경험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그 상황은 정말 역겹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숨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이 내가 동쪽으로 가기를 원하시면 나는 동쪽으로 가겠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아직도 마음속에 갈등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요나를 닮고 싶지 않고, 예수님을 닮고 싶고, 천천히 적응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왜 이 재난이 우리에게 닥치는지 항상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운명을 잃었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이 행동하려면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이어야 합니다. 내가 말하건데, 당신은 원수를 사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그들이 은혜를 받기 때문이 아니라 너희도 은혜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