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어린 아이와 같이 !

필기를 참고

1. 서론.

a. 하나님의 논리체계와 세상의 논리체계는 반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논리 체계를 깨뜨리고 하나님의 논리 체계를 다시 세워야 합니다.
b.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려면 어린아이처럼 다시 배워야 합니다. 이 자체가 일종의 파괴입니다.
c. 완고한 사람들은 무너뜨리고 많은 고통을 받기를 꺼려합니다.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려면 부드러워지고, 종종 뭔가가 옳지 않다고 느끼고, 자신을 깨뜨리고, 재건하고,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끊임없이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d. 추측하고 논쟁하는 것은 나쁜 습관입니다. 교회를 세우려면 어린아이의 길로 돌아가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해야 합니다.

2.성경의 말씀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그러므로 누구들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태복음18:1-4).

3.기도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 안에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고 우리 안에 있는 복잡한 세상의 논리 체계를 무너뜨리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당신께로 돌아가서 어린아이가 되기를 시작합시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단순해지도록 합시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의 논리 체계로 당신 안에서 새롭게 형성되게 해주세요.

하나님, 우리는 당신을 우리 안으로 초대합니다.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자들이 되어 천국의 어린아이들과 같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돌이켜 도와주고자 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은혜를 베푸소서. 당신의 얼굴을 볼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4.성경말씀의 배경

a. 교회를 세우려면 누가 크냐 하는 세상 관념을 깨뜨려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누가 크느냐 하는 싸움이 벌어졌는데, 예수님께서 어린아이를 데려오시며 이 사람이 크다고 하셨습니다.
b. 비전신학론은 내가 선하지도, 옳지도 않다는 뜻이다.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길을 달려가십시오.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겸손하십시오.
c.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은 완전히 무너지고 어린아이의 모양으로 돌아가서 다시 세우는 것입니다.
d. 포로된 자를 석방하고 눌린 자를 해방시키는 것이 교회를 세우는 가장 중요한 사명이요 기본 사역이다.

5.누가 가장 큰가 하는 세상 관념을 깨뜨림

a. 관직은 대인(大人)을 위하고 서민은 소인(少人)을 위하는 것이 세속적인 관념이다.
b. 하나님의 논리 체계는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6.자신의 손과 발을 잘라내는 결단력을 발휘하여 자신을 부수십시오.

a. 우리 자신을 꺾으려면 우리의 손과 발을 자르고,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모든 것을 꺾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b. 어린아이가 되는 것은 자신을 깨뜨리는 출발점입니다. 자신에게 정직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깨어짐을 깨뜨리십시오.

7.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이 교회의 임무

a. 교회는 잃어버린 양을 찾고 복음을 전하기를 갈망합니다.
b. 잃어버린 양을 찾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꺼이 찾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어린양을 찾는 것입니다.

8.범죄에 대한 태도

거룩한 교회를 세우는 것은 깨어진 교회입니다. 죄에 대해 확고한 태도를 갖고 죄를 용납할 수 없습니다.

9.하나로 뭉쳐 구속과 해방의 사명을 감당하라

a. 마귀의 원수를 결박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해방시키며 하나님의 백성을 자유케 하라.
b. 묶고 푸는 방법은 한 마음으로 연합하는 것입니다.

10.불쾌한 태도 다루기

우리는 괴롭힘을 당할 때 집에 가서 부모(그리고 하나님)를 찾는 아이들과 같아야 합니다. 비록 기분이 상하더라도 괜찮고 감당할 수 있습니다.

1.서론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세우는 일 시리즈의 여섯 번째 강의인 “어린 아이와 같이!”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왔습니다. 인간의 논리대로 교회를 세우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울 길이 없습니다. 당신은 어린아이가 되어 지난 몇 년간 쌓인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선생님은 "선생님, 제가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는데 어떻게 어린이가 될 수 있나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우리는 이 세상에 내재된 많은 개념을 축적해왔기 때문에, 지식이 많을수록 문제가 더 많아지는 것들은 모두 세상의 논리 체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교회를 세우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교훈은 자기 자신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데 우리가 필요하지 않으시지만, 우리는 그분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을 깨뜨리고, 그동안 쌓아온 세상의 논리를 깨뜨려 어린아이처럼 되고, 겸손해질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처럼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논리체계를 다시 배울 수 있습니다. 마음속에 세상의 논리체계를 잔뜩 품고 있으면 하나님의 논리체계와 동일시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우리 중에 문제가 많은 자매가 있는데, 그 자매는 설교를 들으면 마치 자기 자신을 깨닫기가 어렵습니다. 왜? 왜냐하면 그녀의 마음에는 세상적인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교회에 머물면서 나는 아주 이상한 것들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원래 받아들였던 세상의 논리체계와 반대되는 하나님의 논리체계를 배워야 합니다. 기회가 되시면 저의 마태복음 강의를 다시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두 왕국과 두 논리 체계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본문은 마태복음 18장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에서 교회에 대해 두 번 언급하셨습니다. 하나는 16장이고 다른 하나는 18장입니다. 16장은 교회의 정의에 관한 것이고, 18장은 교회를 어떻게 건축하는가에 관한 것이다.

어린아이가 되어 다시 배운다는 것은 일종의 회개이고 일종의 깨짐이며, 지난 몇 년 동안 쌓인 쓰레기를 모두 허물고 어린아이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기초 위에 다시 배우고 다시 세우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기꺼이 무너뜨려야 하고, 당신이 그것을 고집하고 그것을 무너뜨리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매우 치명적일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나답과 아비후는 너무나 고집이 세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는 항상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들으면서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문제가 있을 수 있지? 그들은 또한 내가 이집트에서 늘 다른 불을 바쳤으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당신을 용납할 수 없는 걸까요?

하나님께 익숙하지 않다면 이 말을 들어보세요. 내가 당신을 너무 많은 문제에 빠뜨렸으니 괜찮습니다. 집에 향을 가져다가 흡연용 라이터를 꺼내서 향단에 놓고 불을 붙입니다. 이것은 죽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탐닉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당신을 탐닉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당신을 용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조심해야 합니다. 조심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죽을 것입니다. "출애굽기"를 읽으면 정말 죽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도 죽는 일이고, 하나님의 영광의 교회를 세우는 것도 죽는 일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지금도 많은 목회자들이 암에 걸렸습니다. 이것은 필멸의 불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기쁘게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까? 세상에는 두 가지 유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 번째 유형은 완고한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 다른 유형은 적응하기 가장 쉬운 부드러운 성격을 가진 사람입니다.

예를 들어, 아빠가 벨트로 나를 채찍질할 때 내 마음은 매우 부드러워서 딱딱하지도 않고 아빠와 경쟁하지도 않는다. 아버지의 벨트를 한 번만 비틀면 충분했습니다. 그러면 열심히 공부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얻어맞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공부하면 결국 명문 대학에 들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저는 제가 부드러워지기를 원하는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제가 부드러워지도록 허락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단지 부드러운 범주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뿐입니다. 완고한 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도 나와 똑같습니다. 그는 세상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그는 얼마나 어리석을 수 있는가? 그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자기만큼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우리 교회의 가장 중요한 법칙은 내가 아직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있고, 아직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많다는 것입니다. 비록 많은 것이 고쳐지고 많은 것이 깨졌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부드럽고 겸손해야 합니다.

누군가 나에게 질문을 했는데, 그들은 한 마디 말이 나를 질식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5년 전에 말씀하셨는데, 지금 또 말씀하시는 것이 5년 전에는 틀렸습니까, 아니면 지금 틀렸습니까? 그 결과 그는 장문의 편지를 써서 나를 고소했다. 나는 그에게 이것이 아마도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5년 지나면 또 안 맞을 수도 있어요. 그러고 보니 나는 15년 전 일어난 일 때문에 변호하지 않는 사람인 것 같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나를 바라보며 '어느 쪽이 틀렸는지 물었더니 다 틀렸을지도 모른다'고 말해 목이 메었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은 고집을 부릴 수 없습니다. 제가 말하는 것은 소프트웨어 업그레이드와 같습니다. 지금도 iPhone 4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날 나는 아이폰4를 발견했다. 작은 화면이 정말 못생겼다. 그런데 아이폰 4를 받았을 때 정말 멋있었어요. 길을 걸을 때 손에 쥐고 휘두르기도 했는데요. 지금은 정말 못생겼어요. 그렇다면 왜? 휴대폰이 업그레이드되었기 때문입니다.

강인한 사람만이 iPhone4를 계속 사용할 것입니다. 이제 누구든지 iPhone4를 사용하는 것은 정말 당혹스러울 것입니다. Apple 휴대폰은 과거에 수정을 거쳐 왔으며 업그레이드가 꽤 좋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머스크에 따르면 지금은 좀 힘든 것 같다. 업그레이드는 없고 여전히 똑같다. 이 견고함은 이제 끝나가고 노키아는 다이아몬드가 되었습니다. 저는 스마트폰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작은 전화기에 버튼 몇 개만 만들면 됩니다. 결과적으로 작동이 중단되었고 이제는 아무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8장에서 가르쳤던 성경공부를 살펴보니 당시에는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별로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부드러워지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들은 종종 자신이 옳지 않다고 느낍니다. 제대로 구현했다고 해도 아직 업그레이드해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중국 운명신학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하나님에 대한 지속적인 지식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끝이 없으며 끊임없이 향상되어야 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꽤 높이 올라갔다고 느꼈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올라왔던 높이를 되돌아보면 당시에는 꽤 좋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때 나는 꽤 위로를 받았고, 이 좋은 느낌과 함께 존재감도 얻었습니다.

이제 다시 마태복음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완고한 사람은 변화하기를 싫어합니다. 어린아이가 되어 겸손해질 수 없다면 더 많은 고통을 겪어야 할 것입니다. 이 사람들에게 더 많은 고통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강인함의 상징인 바로와 같은 사람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바로를 완악하게 한 것이 하나님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합니까? 실제로 추론 할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해 완악한 바로를 창조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하셨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농담이 하나 있는데, 한 젊은 남녀가 거리에서 그들에게 다가왔고, 누군가가 마이크를 들고 그들에게 달려와 물었다. "젊은이, 한 달에 얼마를 벌어요?" 소년은 말했다: 2천 개가 넘습니다. 그런 다음 나는 그 소녀에게 왜 그를 좋아하는지 물었습니다. 그 결과 소녀는 기자에게 '내가 도덕경을 쓴 이유를 아십니까? 그는 말했다: 나는 모른다. 그 소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나는 기꺼이 그럴 의향이 있다고 말씀드립니다.

하나님도 이런 일을 하려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강퍅한 바로를 만들 자격이 있지 않습니까? 바로도 기꺼이 강인한 사람이 되려고 애굽의 장자들을 다 죽였으니 모세와 그 남은 자들이 더 이상 머물지 못할 것 같았더라. 가족. 파라오는 유다인들이 홍해 끝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더 이상 나아갈 길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들을 따라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그는 그를 따라잡아 홍해 밑바닥에 직접 묻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뇌를 갖고 있고, 돌아오지 못할 때까지 고통을 겪는다.

우리는 수년에 걸쳐 그렇게 완고한 많은 사람들에게 성역을 베풀어 왔습니다. 우리 중에 목가적인 지역에 온 새로운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많은 질병을 앓고 있었고, 나중에 많은 한의사를 만났고, 많은 사찰을 다녔습니다. 한의사를 만났을 때, 한의사가 그의 병을 보자마자 침과 약을 주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그에게 이 약을 먼저 복용하고, 효과가 없으면 가서 귀신을 쫓아내라는 제안을 했습니다.

한의사가 귀신을 쫓아낸다는 말을 듣고 인터넷으로 검색하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귀신이 다 쫓겨나고 병이 나았으나 마음속의 것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것은 아주 악합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회개하도록 은혜를 주셨기 때문에 변화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가 우리에게 와서 고침을 받을 때, 우리는 그를 성장시키고 그의 안에 있는 것들을 무너뜨리도록 밀어붙입니다. 예전에는 이런 모습을 만들기 위해 우상을 숭배하고 성전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데 공부하기가 너무 힘들어서 선생님, 제 병이 나았는데 자리가 안 좋은 것 같은데 도대체 뭐하시는 겁니까? 우리는 무엇을하고 있습니까? 병을 낫게 해줬는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고 하더라고요. 여기는 일이 너무 느리고 아직은 배워야 해요. 잘할 수 있는 곳을 찾아야 해요.

그는 몇 주 전에 완전히 회복되어 더 이상 의사를 만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일주일 후, 나는 집에 가서 풍수를 고치고 수정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나중에 그의 어머니는 목사님에게 전화를 걸어 그가 죽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생각했다. 이것은 파라오가 아닌가? 이 파라오는 이제 겨우 30대인데, 그 아이는 아직도 우유를 마시고 있습니다. 맙소사, 이게 무슨 뇌라고 생각하시나요? 나는 힘든 사람들을 너무 많이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온유해야 합니다. 몇 년 전에 우리는 열여덟 살, 열아홉 살 된 어린 소녀가 어린 나이에 동관으로 달려가 병에 걸렸습니다. 여자들 사이에는 질에서 배까지 커다란 콜리플라워가 자라는 병이 있었습니다. 콜리플라워에는 벌레들이 기어나오고, 거기에서 흘러나오는 액체가 닿는 곳마다 썩어버릴 것 같아 무섭다.

누가 사진 찍어서 보내줬는데 맙소사, 그걸 보고 밥도 못 먹고 너무 역겨웠어요. 고기는 녹색과 보라색을 띠고 있었고, 살은 콜리플라워만큼 컸습니다. 우리는 그녀를 섬기기 시작했고, 나는 조금 더 봉사했고, 다른 형제자매들도 교대로 봉사했습니다. 매일 밤 그녀를 인도하여 3~6시간 동안 기도하는 데에는 많은 비용이 들었습니다. 이것 저것을 버리는 모든 과정에서 그녀 안에는 많은 더러운 것이 있습니다. 밤에는 몸이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지르며 금식하며 기도해야 했습니다.

방금 여기서 봉사했는데 비용이 얼마죠? 암은 더 작고 건조해졌습니다. 적어도 3분의 1은 줄어든 것 같아요. 지금은 좀 나아지지 않을까요? 암이 나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복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시 예전 직장으로 돌아가면 곤란합니다. 나는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주는 법을 배우십시오. 그녀는 말했다: 나는 교회를 떠난다. 이것은 어떤 종류의 두뇌입니까? 내 온라인 팬은 우리의 추론을 듣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는 내가 봉사하고 있는 아이에 대해 듣고 그 아이에게 8천 위안을 기부했습니다.

나는 그녀에게 800위안을 기부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800위안이면 그녀를 죽일 수 있습니다. 당신은 이것이 꽤 흥미롭다고 생각하지만, 내가 교회를 떠난 날 밤에 그녀와 함께 기도하기로 약속한 사람은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8시에 그 사람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더니 그 사람 어머니가 "새벽 5시에 그 사람이 돌아가셨어요. "라고 하더군요. 이것은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습니다. 단지 800위안 때문에 이 사람이 얼마나 힘든지.

이 이야기를 할 때 우리 모두가 기꺼이 부수고, 이를 위해 살아가게 한 것들을 부수고, 다시 부수고, 그것을 하나님의 논리체계로 대체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아이는 물로 수십만 위안을 키워 병원에 줬는데, 결국 큰 콜리플라워처럼 대우를 받아서 기뻐했습니다. 800달러를 하나님께 바치고 복된 삶을 산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는 홍해 밑바닥에 장사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 나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진노를 표현하기 위해 많은 그릇을 창조하셨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므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어린아이가 되어 다시 배우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낡은 집을 손질하면 결코 좋은 장식을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원래대로 수리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방법은 사실 원래의 길을 깨고 자녀가 되어 다시 건축하는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길은 영적인 정점에 오르고, 자기 자신을 깨뜨리고, 육신을 고행하는 길입니다. 세상의 논리를 완전히 무너뜨리고, 하나님을 이해하는 길, 그 터 위에서 자라가는 길입니다. .과거에는 올해 우리가 많은 일을 망쳤습니다.

한때 기업 임원이었던 한 목사님과 토론을 한 적이 있는데, 그는 교회에 교회 통치 시스템을 확립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에게 그것을 나와 공유해달라고 요청했고 나도 탐색 중입니다. 그는 KPI나 OKR과 같은 비즈니스 관리 관련 사항을 교회로 가져오고 싶어합니다. 그 당시 저는 이 일에 대해 잘 몰랐고, 단지 옳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상응하는 선례를 찾을 수 없는 한, 이 일에는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나중에 이 방향으로 지었을 때 고칠 수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그의 KPI는 무엇입니까? 헌신과 숫자입니다. 그래서 한 사람이 한 목회 지역에서 다른 목회 지역으로 바뀔 때, 두 목회 지도자는 결국 다툼을 벌이게 됩니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일련의 KPI를 확립한 후 우리는 이제 이 시스템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상한 불을 드리는 일이 있는데, 이상한 불을 드리는 교회도 많고, 철거해야 할 것도 너무 많습니다. 그는 회사의 고위 간부인데, 그가 고위 경영진에서 교회에 가져오는 것은 효과가 없을 것입니다. 사업은 돈을 버는 것이고, 교회는 사람을 얻는 것입니다. 일부 교회에서는 아직도 전통이 아주 좋다고 생각하며 감리교회와 성공회 전통을 이어받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전통을 깨셨습니다. 이제 그분은 어린아이가 되시면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이 단순해질 것입니다.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완고합니까? 그들은 설교를 듣자마자 내 주장을 따르고 나와 논쟁을 벌입니다. 당신은 증명하고 증명하고, 이것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고, 당신만이 옳은 사람이므로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전신질환이겠죠? 선악을 분별하고 추측하는 것은 성경의 말씀이 아닙니다.

비전신학에 대한 우리 신앙은 매우 단순한 신앙이다. 이 모든 과정에서 우리의 추측은 완전히 근절되어야 합니다. 추측이 없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다. 세상의 논리체계가 있으면 누가 더 위대하다고 논쟁을 벌이게 됩니다. 당신은 누가 가장 큰가를 놓고 논쟁을 벌이지만 예수님은 어린이들이 가장 크다고 말씀하십니다.

생각해 보세요, 제자들이 예수님께 와서 천국에서는 누가 더 크냐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왼쪽과 오른쪽이 더 크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아이들이 더 많았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사람이 단순해지면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원칙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는 나의 원칙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통일될 수 있습니까? 오직 교회 형제자매들이 하나되어 동역할 때에만 묶고 풀 수 있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갇힌 자를 놓아줄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왜 용과 호랑이의 싸움이 일어나는지 아시나요? 교회를 세우는 목사님이 있었는데, 용과 호랑이 사이에 싸움이 자주 일어나곤 했는데, 교회는 사랑이 가득해야 하는데 왜 여기서는 항상 싸움이 일어나는 걸까? 세상의 논리체계로는 교회를 잘 세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한 사람은 기분이 상하고, 다른 사람은 기분이 상합니다. 아, 당신이 나를 넘어뜨렸습니다. 내가 당신을 넘어뜨렸습니다. 제가 이런 문제로 하루종일 논쟁을 벌이는 이유는 마태복음 18장을 잘 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깨끗해지고 삶이 깨질 수 있도록 이러한 것들을 정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어제 나는 한 자매를 섬기고 있었는데, 그 자매는 공부를 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불안해했습니다. 이런 것들을 없애지 않으면 항상 한꺼번에 배우고 싶어하지만 한꺼번에 패배하게 될 것입니다. 필기시험도 한 번에 합격하고 싶었고, 운전면허 시험도 한 번에 합격하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계속 시험을 보면 바베큐, 케밥이 됩니다. 그 불안한 표정, 그런 걸 무너뜨리지 않으면 결국 BBQ가 아니잖아요.

어린이가 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어린이가 될 의향이 있나요? 아이가 되면 많은 것들이 단순해진다. 왜냐하면 자녀들은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 외에 하나님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아이가 자신이 아이임을 알게 되면 간단하다.

2.성경의 말씀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그러므로 누구들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마태복음18:1-4).

3.기도

우리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 안에서 놀라운 일을 행하시고 우리 안에 있는 복잡한 세상의 논리 체계를 무너뜨리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가 당신께로 돌아가서 어린아이가 되기를 시작합시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단순해지도록 합시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하나님의 논리 체계로 당신 안에서 새롭게 형성되게 해주세요.

하나님, 우리는 당신을 우리 안으로 초대합니다.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자들이 되어 천국의 어린아이들과 같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돌이켜 도와주고자 합니다. 하나님,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은혜를 베푸소서. 당신의 얼굴을 볼 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4.성경말씀의 배경

네 번째 요점은 이 구절의 배경이다. 이때 제자들이 많은 귀신을 쫓아내고 한동안 예수님을 따랐지만 그들의 머릿속에 있는 것은 여전히 ​​매우 이상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 제자들은 누가 예수님의 왼쪽에 앉고 누가 예수님의 오른쪽에 앉을 수 있는지 논쟁을 벌였습니다. 그들은 마치 예수께서 황제가 되신 것처럼 공직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가 황제가 되면 혼란이 뒤따릅니다.

황제는 결정됐고, 다음 단계는 문무장관에게 직위를 배정하는 일이다. 원수는 장군보다 낫고, 장군은 중장보다 낫고, 중장은 하급 장군보다 낫고, 하급 장군은 일부 "장군"보다 더 낫습니다. 여기서 장수들은 실제로 많이 먹는 장수들을 가리킨다. 이 과정은 매우 복잡한 시스템 엔지니어링으로, 모든 국가가 설립 과정에서 이러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이자성이 베이징을 침공했을 때 일자리 할당 문제가 제대로 처리되지 않아 정권이 붕괴되었기 때문에 그는 18일 동안만 황제를 섬겼습니다.

그래서 이 제자들은 '누가 가장 큰가?'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앞에 있어야 하고 누가 뒤에 있어야 하는지. 그들이 계속 싸우다가 마침내 예수께 나아와 묻되 우리 중에 누가 크니이까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너희 중에 가장 큰 사람이 없는 것 같으니 이에 어린 아이 하나를 데리고 오시니라 말했다: "이것이 가장 크다."

사람들은 항상 거물이 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거물이 된다는 것은 지배할 수 있고 그들을 섬길 사람들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모두가 거물이 되고, 최종 결정권을 갖고, 권력을 갖고, 총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진정한 “크음”이 그들이 상상했던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 주시기 위해 어린 아이를 사용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돌이켜 이 어린 아이와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제자들이 어리둥절하여 이르되 이 어린 아이가 어찌 크겠느냐 제자들이 믿지 아니하니 이것이 복음에 기록되었느니라 마태복음 18장에 보면 20장도 넘게 제자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아주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정말로 이해합니까? 그들이 말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이해하느냐?” "아직도 이해가 안 돼요.

아이가 더 컸는데 왜요? 아이들은 겸손하기 때문이다. 비전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내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겸손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네가 아니야, 그건 안 돼"라고 했더니 "나는 이미 구원받았다"고 한참을 봐도 구원받은 게 보이지 않아서 어느 쪽이냐고 물었습니다. 부분은 저장되었지만 명확하게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비전신학의 개념은 내가 부족하면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럼 네가 다 이해하지 못했다면 우리가 따라가겠다”고 말하곤 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으로 보면 우리는 아직 한참 뒤쳐져 있지만 비교해 보면 그래도 내가 여러분보다 더 잘 이해합니다. 이 길을 함께 달릴 때 누가 더 겸손한지 비교해야 합니다.

이 아이는 큰 아이인데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그러나 나를 믿는 이 작은 아이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이 큰 맷돌을 그 목에 걸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이 나을 것입니다. 제가 말씀드리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문장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당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불구자나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한 눈으로 영셍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마태복음 18:6-9)

예전에는 아이들이 나이가 많다고 했지만 지금은 아이들이 더 이상 크지 않아서 누군가가 그들을 넘어뜨릴 수 있습니다. 사실, 다음 구절들은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 화가 있습니다. 넘어지는 일은 불가피하지만, 넘어지는 사람들에게는 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 의해 넘어졌다고 생각했지만 당신은 이 문장을 끝까지 읽지 않았습니다.

손이나 발이 너를 실족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한 손이나 한 발 없이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더 나으니라. 당신의 손과 발이 넘어진 것은 당신의 손이 여전히 세상을 붙잡고 있고, 당신의 발이 여전히 세상의 길을 걷고 있기 때문임이 드러납니다. 이 어린아이가 되면 그 사람도 작은 아이가 되어 천국에서 큰 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이때 갈 곳을 선택해야 한다. 세상의 길을 택한다면 손과 발을 잘라야 한다.

이는 세상의 발, 세상의 손, 세상의 머리, 세상의 마음, 세상의 간, 세상의 폐를 잘라 하나님의 것으로 바꾸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일종의 깨우침에 대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많은 사람들은 손과 발을 자르는 것은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깨뜨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들이 나에게 와서 말했습니다. 선생님, 보세요, 그 사람이 나를 넘어뜨렸습니다.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말했다 : 당신은 전에 일어 선 적이 없는데 왜 붓는가? 아, 이 말을 하고 나니 그 사람이 나를 보는 기분이 안 좋았고, 나도 그 사람을 보는 게 꽤 불편했다. 계속 누워 계시다가 오늘 누가 걸려서 넘어졌다고 하시고, 일어나지도 않고 넘어지셨어요. 엎드리거나 누워 있어도 매우 안전하며 기껏해야 뒤집을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은 어린 아이처럼 완전히 무너진 뒤 다시 세워지는 것입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은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양들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모하지만 아직 중국의 운명론을 알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전통신학사상에서 많은 죄를 겪었고, 한 번도 깨어진 적이 없습니다. 마침내 우리는 중국의 운명신학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우리 가운데 오실 때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은 꺾이는 것, 즉 그의 세상적인 발과 세상적인 심장과 폐를 모두 제거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입니다. 그 결과 어떤 사람들은 족제비와 여우를 교회 안으로 들여보내고 나면 교회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당신의 형제가 당신을 기분 나쁘게 하면, 여기서는 그를 형제라고 부릅니다. 당분간은 그가 당신과 함께 있을 때 가서 그의 잘못을 지적해야 합니다. 그가 네 말을 듣고 온화하고 괜찮다면, 너는 네 형제를 얻은 것이다. 만일 그가 듣기를 거부하거든 너는 한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세 사람의 입으로 증거하여 말마다 정확하라. 너희 말을 듣지 않으면 교회에 고할 것이요, 교회의 말을 듣지 않으면 이방인과 세리들처럼 회유를 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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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가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만일 듣지 않거든 한 두 사람을 데리고 가서 두 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증참케 하라.만일 그들의 말도 듣지 않거든 교회에 말하고 교회의 말도 듣지 않고든 이방인과 세시와 같이 여기라.(마태복음18:15-17)

어떤 사람들은 기꺼이 어린이가 되기를 원하지만 우리는 부서지고 재건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길 잃은 양이고 Shenhua는 그들을 되찾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어떤 사람은 몰래 들어와 범죄를 저지르고 쫓겨나는 것을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교회를 세우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파괴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데 왜 그들을 지키십니까? 우리는 사람들이 떠날 때 그들을 붙잡아 두는 어떤 교회와 같지 않습니다. 그러면 교회는 하나가 될 것이며 땅에서 매인 것은 하늘에서도 매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 두세 사람이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이루어 주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간단하지 않은가? 교회는 이렇게 세워집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이루어 주십니다. 쇠사슬에 묶이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교회를 세우는 가장 중요한 사명이자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사역입니다.

이때 베드로가 예수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 아주 재미있는 질문을 했습니다. “주님, 형제가 나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왜? 그 소수의 사람들은 누가 가장 큰가를 놓고 싸우고 있었기 때문에 즉시 베드로를 밀어냈습니다. 그들은 John을 앞으로 밀어냈고 Peter는 매우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한 마디도 듣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생각해 보십시오. 형제들이 나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합니까? 왼쪽과 오른쪽의 총리 중 한 명은 요한이 차지하고 있고, 다른 한 명은 야고보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나 베드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이나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마음이 상했을 때 용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천국은 자기 종들과 결산하고자 하는 왕과 같으니 계산할 시간이 되자 어떤 사람이 천만 은 빚진 사람을 데리고 왔습니다. 그에게는 갚을 것이 없었기 때문에 그의 주인은 그와 그의 아내와 자녀들과 그가 소유한 모든 것을 팔아서 갚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 종이 엎드려 절하며 '주님, 저에게 참아 주십시오. 다 갚아 드리겠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 그러자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그를 놓아 주고 그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은 열 달란트 빚진 동료 하나를 만나서 그를 붙잡고 목을 잡고 이르되 나에게 빚진 것을 갚으라 하매 그 동료가 엎드려 애원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으십시오. 그러면 갚겠습니다.' 그러나 그는 거절하고 가서 빚을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그것을 처리하러 갔다가 주인에게 말했다.

이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회계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회계한 때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옴.그 종이 엎드리어 절하며 가로되 ㄴ게 참으소서 다 갚으리이다 하거늘.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하여 주었더니.그 종이 나가서 제게 데나리온 빚진 동관 하나를 만나 불들어 목을 잡고 가로되 빚을 갚으라 하매.그 동관이 엎드리러 간구하여 가로되 나를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저가 밪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그 동관들이 그것을 보고 심히 민망하여 주인에게 가서 그 일을 다 고하니.이에 주인이 저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당감하여 주었거늘.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하고.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저를 옥졸들에게 붙이니라.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태복음 18:23-35)

예수님은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지으면 베드로는 자기가 자기 형제에게 죄를 지었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베드로는 전혀 주제에서 벗어났지만 예수님은 어쨌든 우리에게 답을 주셨습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려면 하늘의 논리 체계를 가져와야 합니다. 하늘의 논리 체계란 무엇입니까?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이 말하는 것을 용서하지 않고, 남이 하는 말을 고집하며 세상의 논리체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죄는 다시 그 사람에게 지워지고, 그 사람은 그 죄를 다시 갚아야 합니다. 결코 갚을 수 없으면 끝난 것이고, 최종 결과는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의 교회를 짓는다는 것은 사람들이 나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는 것이고, 우리는 상처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 누가 당신을 모욕하고 속이면 속이고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행하였는가? 실제로 마태복음 18장에서는 교회를 세우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려면 누가 크냐는 세상적인 관념을 깨뜨려야 합니다.

5. 깨진 세상 개념

누가 가장 위대한가라는 개념을 깨뜨려 보세요.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위대한지 아십니까? 관리는 크다고 여겨지고, 보통 사람들은 작다고 여겨진다. 관리가 서민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서민이 관료를 섬기는 것이 세속적인 생각입니다. 사람들은 왜 공무원이 되기를 좋아하는가? 공무원이 되면 자원이 많고 최종 결정권도 있기 때문에 여전히 돈을 자기 손에 쥐고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다는 욕심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누가 큰 자입니까? 가장 작은 자가 가장 큰 자입니다. 왜냐하면 섬김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섬기는 사람은 어린 사람이고, 섬기는 사람은 나중이고, 섬김을 받는 사람은 첫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돌이켜 어린아이와 같이 되면 겸손해지고, 어린아이와 같이 되면 어른이 되는 것이 천국의 논리입니다. 그러므로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기꺼이 뒤쪽에 앉아 모든 사람에게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깨어지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다섯 번째 요점은 깨어진 세상 관념이라고 불립니다.

6. 자신의 손과 발을 자르겠다는 각오로 자신을 깨뜨려라

우리 손이 세상에 속한 것인데 잘려졌다면 이것을 상함이라 합니다. 이 결심은 훌륭합니다. 즉, 나는 그것을 갖고 싶지 않습니다. 사실 그것은 우리의 손, 발, 심장, 간, 폐, 그리고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세상적인 것들을 모두 부수십시오. 이렇게 꺾이지 않고 살면 손과 발이 함께 영원한 불에 떨어져 영생의 소망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교회를 세우는 길은 사실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한 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교회를 세우기 시작하면, 외치는 슬로건은 건축이지만, 의제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논리체계로 보면 반드시 용과 호랑이의 싸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그런 것이 실제로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을 잘라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은 하나되기 위해 자기 자신을 깨뜨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럽고 부정한 것입니다. 부정하다면 부서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고통을 받을 것입니다. 당신 안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아직 갈 길이 멀고도 멀다. 그러므로 병에 걸리고 직장을 잃거나 빚을지게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내면의 것들이 완전히 부서지지 않았고, 사람 속에는 여전히 부서져야 할 더러운 것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목사님 중 한 분이 우리에게 와서 목사님이 너무 친절하신 것을 보고 목사님에게 합당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가짜인 척을 하고, 자신의 생활을 매우 불편하게 만들고, 그의 서비스도 매우 불편하게 만듭니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당신이 누구인지, 진정한 취향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깨뜨리시고,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으로 다시 세우시는 것이 출발점입니다.

우리 안에는 수년에 걸쳐 배운 많은 것들이 있고, 세상의 더러운 것과 더러움이 많이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것들이 아주 좋다고 느낍니다. 더러움이 많아 가장 아름다운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돌아서서 내 앞에 나타날 수 있고, 새로운 모습의 자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석 달 동안 자신을 숨겼습니다.

알고 보니 석 달이 지나도 나는 여전히 그대로였고,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오면 우리의 누더기, 더러운 옷, 오물은 모두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세상의 똥 한 줌만 집어도 냄새가 납니다. 이제 두려워하지 말고 겸손하라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다.

7.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이 교회의 임무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은 이리도, 족제비도, 신랑도 찾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잃어버린 양이란 무엇입니까? 그 안에는 하나님께로 향하려는 마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느니라. 주의 깊게 살펴보면 많은 필요 사항을 볼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다만 우리의 현재 규모로는 이런 사람들을 목양할 수 있지만 너무 많이 오면 감당할 수 없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계속해서 우리 자신을 부수고 틀을 잡을 작은 목자들을 일으키시기를 바랍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양떼를 돌보는 일에 더 많은 책임을 져야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에 관심을 갖고 계시는지 알아내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시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양들을 관심하시는 방식과 다릅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에 있고 매일 우리에게 문제가 있을 때 우리를 목양할 목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양을 목양할 자가 없다는 것은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래서 우리는 전도라는 소망, 즉 양들을 되찾고자 하는 소망을 갖기 시작했고, 실수해도 상관없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죄 많은 태도를 가지고 와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여기에 있지 않다면, 그들이 제거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실수를 해도 상관없습니다.

8. 범죄에 대한 태도

교회를 세우려면 거룩한 교회, 인간의 세상적인 논리체계를 깨뜨리는 교회를 세워야 하며, 범죄에 대해 확고한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해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까? 당신이 어떤 은혜를 받아들이고 싶다면 그냥 받아들이십시오. 계속해서 죄 가운데 살고 싶다면 우리가 당신에게 자리를 주고 사막의 샘으로 가십시오. 거룩한 교회가 세워져야 하는데, 그것은 한 사람, 두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죄악된 태도에 있습니다. 그 교회 목사님을 찾아보시고 정말 이런 분이신지 판단해 보세요.

고칠 수 없다면 걱정하지 말고 목사님을 찾으세요. 당신의 목사님은 당신의 목사님에게 문제를 가져올 수 없고, 당신의 목사님도 나에게 문제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정말로 섬길 수 없다면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우리가 실수를 했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 양을 잃어버린 양으로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양을 진심으로 돌보시고 반드시 찾아주실 것이지만 죄를 용납하실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교회를 세우겠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교회를 세우면 연합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9. 한 마음으로 뭉친 자들은 결속하고 해방시키는 사명을 감당합니다.

교회의 일은 이 잃어버린 양들을 마귀의 손에서 빼앗아내는 것, 즉 그들을 결박하고 풀어주는 것이어야 합니다. 마귀의 원수를 결박하고, 억압받는 자를 해방시키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유를 얻게 하는 것은 교회의 가장 기본적인 임무입니다. 어떻게? 한마음 한뜻으로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하든, 그것이 어떤 종류의 귀신이든, 우리가 한 마음을 갖고 있는 한, 귀신은 우리 발 아래 짓밟힐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일치를 위해 부르심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교회가 세워지는 방식이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대답입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마태복음 18장입니다. 18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미 이 문제를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나중에 누가 예수의 명령을 이행하였습니까? 사도 바울입니다. 교회에서 마음이 상할 수밖에 없으면 베드로가 됩니다. “주님, 내 동생이 나에게 죄를 지었습니다.” 이 문장은 성경에 전혀 없습니다.

10. 불쾌한 태도 다루기

이것은 또한 기분을 상하게 하는 태도를 다룰 때의 깨어짐의 한 형태이기도 합니다. 만일 당신이 “그 사람이 나를 넘어지게 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이 기분이 상했다면 기분이 상한 것에 대한 당신의 태도는 당신의 현재 영적 높이를 말해 줄 것입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처럼 망가질 것입니다. 기분이 상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누군가가 그를 괴롭히면 집에 가서 부모님을 찾으러 가는데, 부모님은 그를 꾸짖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어떤 가족은 엄격하기 때문에 아버지는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 자녀를 데리고 나가고, 어떤 가족은 자녀에게 범죄에 대처하는 방법을 배우게 합니다. 화를 낼 수 있는 능력이 그 사람의 강함의 표시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시스템입니다. 때때로 나는 당신의 반응을 보기 위해 의도적으로 당신을 화나게 할 것입니다.

때때로 당신은 사역을 하도록 임명받았는데, 그 사역에 공격이 계획되어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미성숙한 목자를 세우는 것은 그가 당신을 화나게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 채 쉽게 당신을 화나게 할 수 있습니다. 화를 낼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은 하나님 왕국의 본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이 상처를 받고, 부서지고, 성장할 수 있는 그러한 좋은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제 이해가 되셨나요? 우리가 계획하는 모든 것은 여러분을 하나님의 왕국으로 인도하고 하나님의 왕국에서 가장 큰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아멘!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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