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고린도전서15장-죽은 자의 부활하고 영광스러운 소망의 복음입니다!
필기를 참고
서론
a. 사람이 사는 한 희망이 없으면 죽는다.
b. 우리 안에 부활의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늙고 충만한 삶을 산다.
1.우리가 전하는 것은 부활의 복음입니다
a. 죽은 자를 살리는 복음을 전하는데 이 복음으로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다.
b. 구원은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c. 우리가 전하는 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전하고 믿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증거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영광스러운 희망입니다.
2.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며
a. 교회를 지을 때, 사람들을 가려내지 마십시오.
b. 사람이 이기심 때문에 죄를 짓는다. 이생에 희망이 있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불쌍한 사람이다.
c. 마음속에 부활의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으면 생명을 걸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쉬지 않고 봉사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는 권능이 우리에게 있으면 아무 것도 우리를 해칠 수 없느니라.
d. 아무리 많은 은혜를 경험했다 하더라도 바쁘더라도 부활의 소망을 결코 잊지 말고, 이 영광스러운 소망을 결코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요 천국에 있으니 영광 중에 주님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3.죽음은 아담에게서 오고, 죽은 자의 부활은 그리스도에게서 옵니다.
a.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을 택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누리게 하시는 영원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b. 승리의 가장 중요한 문턱은 죽음을 멸하고 죽음의 영을 멸하는 것입니다.
c.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이기셨으며, 죽음의 권세는 우리에게 역사할 수 없습니다.
d. 아담으로 인해 죽음이 왔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죽은 자의 부활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될 것입니다.
4.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 몸은 썩지 아니한다
a. 나사로의 부활은 병자와 죽은 자의 부활이요, 육신의 부활이니라.
b.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영광스러운 부활이다.
5.주 예수님을 통한 승리
돌아올 때 하나님께 갈 수 있도록 이 세상에서 더 많은 일을 하십시오.
6.소망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더 많이 하도록 최선을 다하라
a. 천국소망이 없다는 것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간파되어야 합니다.
b. 지식을 배워야 하거든 배우라. 그러나 너희 소망은 하나님께 있느니라.
다시 채우다:
아담은 땅에 속하였고 땅이 먼저 왔고 영이 나중에 왔어요.
예수님은 영적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이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영이십니다.
성령을 빼앗으면 아무것도 지킬 수 없고, 죄를 해결할 수 없고, 율법도 지킬 수 없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는 그것을 지킬 수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으로 난 것이요, 먼저 영으로 난 것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지 않고는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자신만이 오실 것입니다. 오직 성령으로 난 자만이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서론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고린도전서 15장을 보겠습니다. 이 장은 사랑이 가장 놀라운 길, 은사 등 앞에서 언급한 모든 것을 설명하는 매우 중요합니다.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 피곤해 보이지만, 비전신학에 오면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매일 필기하고 성경을 공부하세요. 타이핑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쓰는 법을 배우고, 병음을 모르는 사람은 병음 쓰는 것을 도와줍니다. 당신은 여전히 사랑, 영적인 은사,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 등에 대해 배워야 합니다. 피곤함을 느끼십니까? 어떤 사람들은 혼란스러워 할 것입니다. 그들은 무엇을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미 매우 바쁘고, 중국에 오면 더욱 바빠질 운명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것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소망과 영광스러운 소망의 복음이 있기 때문에 장차 큰 은혜를 받기 위해 쉬지 않고 섬기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큰 슬픔은 살아 있는 동안 소망이 없이 죽는 것입니다. 몇몇 형제자매들을 유심히 관찰해 보면, IQ가 가장 높은 때는 대학 입시 때이고, 두 번째로 높은 IQ는 대학원 입시 때인데, 그다음부터 지금까지 매일 같이 놀고 있습니다. 985개 대학을 졸업한 사람도 있지만 결국엔 개자식에 불과했습니다. 희망을 갖기 어려워서 계속 먹고 마시고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먹고 마시고 죽기를 기다리는 것이 너무 무섭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건 먹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요. 그러므로 우리가 멸망하게 된 자들을 볼 때에 그에게 주시는 것은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영광의 소망이니라 사람이 사는 동안 소망 가운데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 이 소망이 참인지 거짓인지는 그 순간은 중요하지 않지만 이 영광스러운 소망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오늘의 주제는 “죽은 자의 부활, 영광스러운 소망의 복음”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수고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헛되지 않으며 이 수고의 결과가 따를 것을 알기 때문에 오늘날 주님의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우리를 영원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비참한 일입니다. 제가 대학에 다닐 때 제 삶은 기숙사, 교실, 식당의 삼중 단선 생활이었습니다. 이런 삶은 정말 절망적이며 마치 살고 죽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나는 주 예수님을 알게 되었고, 아직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영광의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살아 있을 때 죽기를 기다리지 않고 그때부터 매우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나 같은 사람은 여러 해를 쉬지 아니하여도 피곤하지 아니함을 알아야 할 것은 그 속에 영광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니라. 희망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게 살지만, 희망이 없는 사람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1. 우리가 전하는 것은 죽은 자의 부활의 복음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전하는 것은 진로 계획이 아니며, 매일 어리석게 살라고 가르치는 것도 아니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복음을 전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얻으리라.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사.(고린도전서 15:1-4)
우리 가운데 많은 사람이 치료를 받은 이유는 우리가 죽은 사람을 살리는 복음을 전하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동안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 우리 손에 있는 마법의 무기입니다. 우리에게 소망이 없으면 이 세상의 온갖 일로 인해 우리는 괴로움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녀는 말할 때 다른 아무것도 몰랐지만 시어머니와 시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고 그녀의 말은 냉소적이었고 심지어 어머니와 아이의 관계조차도 긴장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모든 문제는 우리가 이 세상의 일을 너무 심각하게 여기고 영광에 대한 소망을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것입니다. 이 영광스러운 소망을 가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믿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는 것이 천국 가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사람이나 혈루증이 있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져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뜻입니다. 한 무리의 병사들이 심하게 포위되어 전멸할 위기에 처하면 갑자기 외부에서 증원군이 몰려온다. 원래 죽으려고 하던 것이 이제 살아나고, 문제가 해결된 것, 이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개념은 4복음서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믿음이 당신을 구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인들은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날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문제가 우리 가운데서 해결된다면 그것은 사람들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할 것이라고 믿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믿기 때문에 이 복음으로 구원을 받고, 이 복음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합니다. 여러분은 넘어질 뻔했으나 이제는 이 복음으로 굳게 서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다시 강건해지기 시작합니다. 성경 공부 직전에 한 자매님을 섬겼는데 최근에 제가 그 자매님에게 공부하라고 밀어붙였습니다. 그 자매님은 어제 뭔가를 배울 생각에 매우 신이 났지만 오늘 아침에는 온몸이 불편하고 눈꺼풀이 굳어 있으며 온몸이 차가워졌습니다. 사람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먹고 마시며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귀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살아 있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이 없다면 죽은 후에도 영광의 소망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제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가 다시 강해지고 일어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우리 자매 중 한 분이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매우 감동받았습니다. 많은 귀신을 쫓아낸 우리에게는 영광의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속에 영광의 소망이 없어서 쫓겨날 정도로 서두르고 비참한 상태에 있습니다.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이는 잠들었으며.(고린도전서 15:5-6)
바울은 여기서는 베드로를 비꼬는 말을 하고 야고보도 가끔 언급하지만 바울이 반드시 그 말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일은 모든 사도가 인정하고 전파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에 대한 간증이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본 사람이 500명이 넘고, 그들 중 대부분이 아직 살아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께서 왜 그것을 그들에게 보여 주지 않으셨느냐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제자들에게만 보여졌습니다. 제자가 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는 것을 반드시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전파하는 방식이고, 이것이 우리가 믿는 방식이며,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방식입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본 적이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는 권능을 날마다 목격하고 있으므로 영광의 소망이 내 속에 있습니다. 헛된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는 복음을 진심으로 믿으면 반드시 힘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희생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2.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우리의 믿음은 헛것이며
그러므로 내나 저희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사신 것이 없었을 터이요.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고린도전서 15:11-18)
고린도인들은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즉 그들은 복음 전파를 좋아하여 한 무리의 사람들을 교회로 데려온 것입니다. 고린도인들은 이것을 베드로에게서 배웠을 것이다. 베드로가 고린도에 와서 한 번의 설교 후에 오천 명이 주님을 믿게 되었고, 그가 기도하자마자 삼천 명이 주님을 믿게 되었다. 부흥, 많이 베푸는 것,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고린도 교인들은 바울이 인색하고 늘 까탈스러운 사람이라 생각하고, 남들이 부족하면 자기가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중에 제가 성경을 공부하고 설교하는 것을 자주 듣는 설교자들이 있습니다. 나는 여러분에게 돌아가서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 주의 깊게 성경을 연구하라는 좋은 제안을 드립니다. 베드로는 그것이 좋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한 반면, 예수님은 그것이 나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으나 예수님은 매우 당황한 표정을 지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생명의 떡이니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듣고 이단인 줄 알았습니다. 만약 당신이 오늘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당신의 살을 먹고 당신의 피를 마시러 왔다고 말했는데, 사람들이 이 말을 듣고 당신을 이단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완전히 망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자 사람들은 혼란스러워졌고 많은 사람들이 돌아섰습니다. 교회를 세우려면 사람을 가려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이 논리를 모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베드로의 논리를 설교하지만 실제로는 부흥이 아닙니다. 1904년에 교회가 부흥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과 같고, 크게 부흥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과 같습니다. 고린도교회 어떤 사람들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는데 갑자기 큰 무리가 와서 그들을 교회로 데려간다고 했습니다. 이 길은 베드로가 열어야 했지만 예수님은 열어 놓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물을 열어서 그것을 잡은 후에 좋은 것은 골라서 그릇에 담고 나쁜 것은 내어버리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누구를 버릴까를 매일 생각합니다. 나에게는 희망을 주시는 하나님만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교회를 건축할 때에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가 세워진 후에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편지를 써서 친구들과 문란하게 지내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문란한 생활을 하는 것이 성적인 문란한 생활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문란한 친구를 두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교회에 오는 사람들은 신중하게 선택하여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은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자들을 버리라. 너희가 그들과 헤어지기 싫어하면 화를 당하리라. 예를 들어, 모두가 교회에서 설교를 듣고 나가서 근처에 있는 작은 냄비 식당을 발견했고 몇몇 사람들은 앉아서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 질문하면서 양고기를 요리했습니다. 죽은 사람이 부활하는 것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이 질문을 듣고 그들은 혼란스러워했습니다. 이 말이 특히 타락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종종 우리 목회자들에게 누군가가 이런 말을 하면 아무도 본 적이 없다고 대답하면 상대방이 자신의 마음을 말해 줄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이런 일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 사이에서 이런 일을 자주 한다면 나는 이해하고 먼저 당신에게 알려주어야 합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빨리 먹고 마시고 죽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누구나 알아야 합니다. 양고기를 먹고 포도주 한 잔을 마시고 나면 모두가 술잔을 치켜들고 매우 행복해집니다. 그러나 희망이 없다면 어떻게 참된 행복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유령은 다음 날 당신을 괴롭히러 올 것입니다. 먼저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고 나면 끝이니까요.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린도전서 15:19)
이생에서 희망을 가진 사람은 다른 사람보다 더 불쌍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모든 희망은 이생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컵을 교환할 때 이생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예를 들어 좋은 기회가 있으면 그 사람에게 100만 달러를 투자하면 그 사람이 연말에 300만 달러를 줄 것이라고 묻지도 못합니다. 목자의 이름으로 그것을 여러분에게 주게 하십시오. 연말이 되자 십만 달러는 커녕 한 푼도 남지 않았습니다. 이때 목사에게 속아도 놀라지 마십시오. 이런 사람은 목사가 아니라 교회에 몰래 들어온 마귀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이 세상에서 하루 종일 교회에서 이런 일을 한다면 내가 경고하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다루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죄를 짓지 마십시오. 사람에게는 영광의 소망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속으로는 이기적이고 오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범죄를 저지르지만 실제로는 몇십 년밖에 살지 못합니다. 던지고 던지고 게임이 끝나면 이것들은 누구에게로 갈까요? 그러므로 우리가 이생에서 소망을 갖고 있으면 다른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바로 부활의 소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세상적인 소망을 갖는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우리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복음의 진리를 가지고 장차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썩지 아니할 몸이 되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는 지금 쉼 없이 섬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말하는 내용을 보십시오. 열 개의 문장 중 얼마나 많은 문장에 세상적인 희망이 들어 있습니까? 사람들이 일단 세상적인 희망을 갖게 되면 많은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믿는 바를 증명하기 위해 날마다 목숨을 걸었습니다.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면 왜 먹고 마시고 즐기지 않고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고 다른 사람을 섬기겠습니까?
또 어찌하여 우리가 때마다 위험을 무릅쓰리요.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내가 범인처럼 에베소에서 맹수로 더불어 싸웠으며 내게 무슨 유익이 있느냐 죽은 자가 다시 살지 못할 것이면 내일 죽을 터이니 목고 마시자 하리라.(고린도전서 15:30-32)
우리 형제자매들이 과학 연구실에 있든, 학교에 있든, 작은 가게를 운영하든, 농부든, 제가 가장 걱정하는 것은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 영광의 소망을 잊어버릴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치명적인 일입니다. . 사람이 영광의 소망을 잃으면 눈앞의 일만 하느라 바쁘거나 죽거나 기도하러 나에게 올 것입니다. 바쁘고 몸이 아프면 귀신이 들끓기 때문이니 다들 조심하셔야 합니다. 아무리 은혜를 체험했다 하더라도 바빠서 잊어버리고 잊어버리고 나면 눈앞의 일만 보일 뿐인데 정말 의미가 없습니다. 아직도 이 일을 희망으로만 여긴다면 그것은 무지이므로 훈련을 잘 해야 합니다.
바울처럼 영원에 대한 영광의 소망을 결코 포기하지 맙시다. 바울이 에베소 콜로세움에 갇혔는데 어떻게 살아서 나올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확실히 당신에게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해하지 못하시겠지만 저는 주님을 믿던 날 이 영광스러운 소망으로 이해합니다. 나는 신에게 감사한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일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하는 일은 모두 하나님을 위한 것이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 어떤 것도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실망하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의 희망은 이 세상에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이생에서 희망만 갖고 있다면 그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불쌍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 이 세상에서 잠시라도 벗어나면 영광의 소망을 갖기 시작할 것입니다. 당신은 가정에서의 관계도 개선되었고, 많은 것들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영광의 소망을 가지면 많은 것을 멸시하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확립 시험을 치르고 싶다면 시험을 준비할 때 긴장하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면 됩니다. 우리에게는 영광의 소망이 있기 때문에 잘만 하면 눕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뼈저리게 믿음을 갖고 행합니다.
우리가 설교하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우리가 믿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우리의 삶을 사용할 때, 우리는 당신이 믿는 것이 큰 은혜와 영광을 가져올 것임을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이 너희 안에 거하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능력이 너희 안에 거하는 것을 너희가 알게 되리라. 바울이 콜로세움에서 걸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권능이 콜로세움 안에서도 그를 해할 수 있는 짐승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한때 두 명의 거물을 섬겼는데, 한 명은 100kg 태권도 사범 겸 무술 코치였고, 다른 한 명은 150kg 스모 선수였습니다.
이 스모 선수의 손가락은 당근만큼 두꺼워서 무섭습니다. 그가 왔을 때 그는 손을 통제하지 못하고 항상 사람들을 때리고 싶다고 말하면서 빨리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손을 내밀면 사람이 죽을지도 모르니까 그때 제가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학교 학생에게 회의실을 찾아달라고 해서 데리고 가서 기도하고 귀신을 쫓았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귀신이 큰 두 손을 뻗쳐 나를 잡으려고 했으나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땅바닥에 쓰러지더니 2분 뒤에 깨어났더니 귀신이 쫓겨나서 자제할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는 기도할 때 자기 속에 있는 귀신이 나를 손으로 목을 졸라 죽이려고 했지만 아무리 목을 졸라도 목을 졸라 죽일 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믿음이 커졌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 참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몸무게 100kg이 넘는 그 덩치 큰 남자와 키 1m9의 태권도 사범이 손을 뻗어 나를 때리려 했다. 그가 주먹을 들기도 전에 강한 힘이 그를 몇 미터 떨어진 곳으로 밀어냈고, 그는 큰 소리를 내며 땅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그가 그것을 깨뜨렸는지 확인하기 위해 서둘러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내 사무실에서 그것이 부러지면 누구에게 말해야 합니까?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콜로세움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는 권능이 우리 안에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는 또한 매우 빠른 사람을 섬겼고 우리 모두는 그를 위해 기도하기 위해 거기 앉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먼저 도망가라고 해서 나는 한두 미터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그 사람이 내 앞으로 달려와 나를 할퀴려고 했다. 나는 겁이 나서 그의 두 손을 잡았다. 하나님을 섬기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정말 흥미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무엇도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섬길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바치고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매우 흥미롭고, 이런 경험이 없다는 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소망은 이 세상에 있지 않고 천국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기억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푸사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마귀의 원수들을 짓밟도록 허락하실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 마귀의 원수를 짓밟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당신은 분명히 이런 놀라운 일들을 할 수 있습니다. 비록 가까이서 사역할 수는 없지만 멀리서 마귀의 원수들을 짓밟을 수는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은 영광 가운데 주님과 하나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그분의 영광스러운 찬양을 받고 신실하고 선한 종이 될 것입니다.
3. 죽음은 아담에게서 오고, 죽은 자의 부활은 그리스도에게서 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잡 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사망이 사람을 ㅗ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그린도전서 15:20-22)
우리는 종종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사실 아담이 죽으면 당신은 더 이상 아담이 아니지만, 아담이 죽으면 당신도 그와 함께 죽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 죽으면 모두가 죽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한 사람도 부활하고 모든 사람도 부활한다는 것은 영적인 논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을 택하여 창세로부터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영광을 누리게 하시는 영원한 계획을 갖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아래 두겠다는 뜻을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짓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모든 것을 우리 발 아래 짓밟습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장애물은 사망의 권세를 잡은 자를 멸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죽음과 부활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이해를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죽음은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우리 영혼의 죽음입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소망이 있지만 죽은 뒤에는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왜냐하면 죽음이 그들을 주관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통치하시면 우리 몸은 죽어도 우리는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는 것은 영이고, 우리의 육신도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는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종말에 멸망될 원수는 사망이요, 종말에 멸망될 원수는 사망이니라. 그 죽음은 우리가 말하는 죽음이 아니라 죽음의 영, 곧 죽음의 영을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셨는데, 아직도 죽음이 두렵습니까? 그분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 사흘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우리에게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이 전쟁이었다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이 싸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승리하셨으므로 사망의 권세가 우리를 주관하지 못하느니라. 오늘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여러분이 그분을 의지함으로써 죽음을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담대히 말씀드립니다. 이제부터는 모든 의료비가 무료입니다. 왜냐하면 의료비는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지만, 경미한 질병은 치료할 수 있지만 심각한 질병은 무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소망을 영원토록 품고 있는 우리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추구하는 것입니다. 사업이든 일이든 우리가 주님을 잘 믿는 것을 막을 수 없고, 우리의 시간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일하지 않고는 돈을 벌지 않고는 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어떤 생각입니까? 가장 강력한 것은 죽음입니다. 죽음을 이길 수 있다면, 이길 수 없는 것이 또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생존을 위해 일, 사업, 돈에 의존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돈은 죽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돈을 벌게 될 것입니다. 돈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해서 왜 그렇게 열심히 돈을 벌려고 하는 걸까요? 60세 이전에는 목숨을 돈으로 바꿀 수 있지만, 60세 이후에는 인생을 돈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이것이 무지입니다. 그리고 봉사로 생계를 유지하는 우리는 그것을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입증했습니다. 내가 말하노니, 사망은 아담으로 말미암았으나 죽은 자의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르고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ㅣ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사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시리니.맨 나중에 멸망 받은 원수는 사망이니라.만물을 저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저의 아래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만물을 저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신 이에게 복종케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고린도전서 15:23-28)
4.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한 몸은 썩지 아니한다
어떤 사람은 "죽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나며, 어떤 몸으로 오나요?"라고 묻습니다. 당신이 뿌리는 것은 죽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뿌리는 것은 미래의 형태가 아니라 밀이나 다른 곡물과 같은 곡물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뜻에 따라 그것에 형태를 주셨고, 각 입자에게 고유한 형태를 주셨습니다. 모든 육체는 다릅니다. 사람도 같고, 짐승도 같고, 새도 같고, 물고기도 같습니다. 하늘에도 형체가 있고 땅에도 형체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있는 몸의 영광이 같고 땅에 있는 몸의 영광도 같으니라. 해는 해의 영광을 갖고, 달은 달의 영광을 갖고, 별은 별의 영광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 별과 저 별의 영광도 다릅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능력으로 다시 살며 영적인 몸이 부활합니다. 육신의 몸이 있으면 반드시 영적인 몸도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도 “첫 사람 아담은 영(“영” 또는 “육”)이 있는 생령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고,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것이 먼저가 아니고 자연적인 것이 먼저이고 그 다음이 영적인 것입니다. 첫 사람은 땅에서 났고 땅에서 났고,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왔습니다. 땅에 속한 자들은 다 그와 같고 하늘에 속한 자들도 다 그러하니라. 우리는 땅의 형체를 갖고 있으므로 장래에도 하늘의 형체를 갖게 될 것입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썩어질 것도 없고 썩지 않을 것도 없느니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비밀스러운 것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나면 순식간에 눈 깜짝할 사이에 다 변화되리라.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로다. 이 썩을 것은 반드시 불멸을 입어야 하고('변형된'의 원문은 '입다'입니다. 아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죽을 사람은 불멸을 입어야 합니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면 성경에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느니라” 한 말씀이 응하리라. (고린도전서 15:35-54)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는 말이 얼마나 좋은지요. 나사로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무덤에서 걸어 나오셨다. 그러나 그 부활은 육체의 부활일 뿐이었습니다. 나중에 나사로도 죽었습니다. 우리는 나사로의 부활과 예수 그리스도의 무덤에서의 부활이 동일한 부활이 아니라는 점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고, 나사로는 병으로 죽다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 당신은 그분이 벽을 허무실 수 있고, 문 자물쇠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을 잠글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을 때에도 여전히 몸을 갖고 계셨지만 그것은 썩지 않는 영광스러운 몸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지적인 이해를 넘어서는 것이지만, 오늘날 우리가 믿는 복음은 나사로의 부활이 아니라 이런 복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아프면 기도를 통해 그가 살아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그를 살려달라고 기도한다는 것은 계속해서 고통을 겪는다는 뜻이다. 나 자신도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된다면, 살 가치가 없습니다. 나사로는 실제로 아주 운이 좋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은 마지막 숨을 두 번 쉬었고, 어떤 사람은 심지어 몇 번이나 마지막 숨을 쉬기도 했습니다. 죽음의 과정은 영혼이 껍질을 벗기는 것과 마찬가지로 매우 고통스럽기 때문에 형제자매들은 생존을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우리는 살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 자신을 희생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받아들이시기를 갈망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영원한 영광의 소망을 갖게 될 것입니다. 때때로 나는 사람들이 죽기를 원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그곳에서의 투쟁은 너무 고통스럽고, 살과 피의 육신은 영원한 왕국을 견딜 수 없습니다. 더 이상 이 세상에서 희망을 갖지 말고 영원에 대한 희망을 가지십시오. 이런 영광스러운 소망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현실적으로 살아낸다면 얼마나 멋진 일이겠는가. 남의 물건을 훔치려고 벽을 뚫고 들어갈 생각만 했던 고린도인처럼 되지 마십시오. 결국 도둑이 되는 것이 더 편리합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썩지 아니하나 나사로의 몸은 썩지 아니하므로 더 이상 육신으로 살 것을 기대하지 말라. 언제라도 사람은 영원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는 우리의 치유와 구원이 마귀가 붙잡고 있는 것보다 1분 더 오래 지속될 수 있고 사람들을 며칠 더 살릴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육신적인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것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꿰뚫어 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 왔습니다. 죽을 사람을 볼 때 먼저 생각을 잘 해야 하고, 죽어가는 사람이 꿰뚫어 볼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의 살아 있는 사람들도 이를 꿰뚫어 보게 하십시오.
이곳은 요한계시록의 일곱째 나팔이 울리는 마지막 나팔을 말하는 곳이다. 일곱째 나팔이 울릴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그 후에 우리 살아 있는 자들도 공중으로 끌어 올려져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물론 일어서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도중에 다시 넘어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사람도 있습니다. 즉, 형제자매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부활의 복음과 영광스러운 소망을 열심히 추구하고 사모해야 합니다. 마지막 나팔 소리가 나면 몇 가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전 세계는 두 명의 설교자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보았고 며칠 후 거리에 누워 있던 시체가 갑자기 살아나 구름을 타고 주님을 만나러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이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모든 사람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고, 산 자들은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기 위해 끌어 올려질 것입니다.
그 때에는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변하여 썩을 몸이 썩지 아니할 몸이 됩니다. 그때쯤 되면 다들 열여덟 살로 돌아가게 될 거라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래도 신경 쓰이는 건 얼굴인 것 같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광스러운 몸을 주셨을 때 그 때 여러분은 벽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도둑이 되기 위해 벽을 뚫고 중간에 줍지 않으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한 가지 증거가 되는 것은 바로 주 예수를 통한 승리입니다.
5. 주 예수님을 통한 승리
사망아 너희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희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린도전서 15:55-57)
주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든지 우리는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주 예수님이 이 길을 걸으신 것처럼 우리도 이 길을 걸어야 합니다. 주 예수님은 율법의 길을 행하지 않으시고 자기희생의 길을 행하셨습니다. 자기 자신을 산 제사로 드리면 율법은 완전히 율법을 초월하였기 때문에 율법은 어린 장난입니다. 주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우리가 이 영광의 소망을 가지고 우리 자신을 산 제사로 드리며 이생에서 우리가 사는 이기심을 벗어버리면 사망을 이기느니라.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쏘는 것은 율법입니다. 주 예수로 말미암아 이기는 것은 주 예수처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할 영광스러운 소망을 가지고 자신을 드리는 것입니다. 죽을 자신이 있으면 결코 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최고의 소망이지만, 우리는 여전히 이 세상에서 주님의 일을 더 많이 해야 합니다.
6. 희망을 가지고 주님의 일을 더 많이 수행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도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앓이니라.(고린도전서 15:58)
만일 우리에게 이 영광스러운 소망이 없고 장래에 주 예수께 직고하지 아니하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고 즐거워할 뿐입니다. 하지만 나에게는 많은 곳을 여행해 봤지만 전 세계의 시골 지역과 도시는 거의 똑같습니다. 나는 단지 일하는 것을 좋아할 뿐이고 여러분을 속이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이 영광스러운 소망이 있고 장래에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아가서 그분께 가장 좋은 답안지를 제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에게 내가 간다고 전해주세요. 하나님께서는 충성되고 선한 종인 너는 들어와서 네 주인의 영광을 누리라고 하신다.
지상에 있는 동안 주님의 사업을 가능한 한 많이 수행하도록 노력하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너무 관여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내가 관여해서가 아니다. 나 같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참여할 시간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루 종일 상사의 감독을 받으며 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동료의 PPT가 자신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보고 불편함을 느끼며, 다른 사람의 성과가 계속 향상되는 것을 보고 프로젝트를 하나 하게 됩니다. 그들의 프로젝트가 연달아 진행되는 동안, 생각만 해도 불안하다면 참여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에게만 관심을 갖고 관여할 시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는 열심히 일하고 모든 일을 마치 하나님을 위한 것처럼 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실수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의 일을 더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광의 소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참여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먹고, 마시고, 즐기고, 즐기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취미가 있습니다. 즉 우리는 일을 잘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앞에 결산하고 싶은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일을 잘하지 못하면 부끄러워진다고 말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잘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예수님을 두고 가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고 예수님을 제쳐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지혜의 원천이십니다. 육신을 배려하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이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입니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는 권능을 갖고, 우리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실 소망을 품고 이 영광스러운 소망을 가지고 이 땅을 달릴 때, 참으로 좋습니다.
큐피드 너무 좋아요!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입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능력입니다. 이 능력으로 여러분은 종종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앞에 영광스러운 길을 열어 주셨고, 당신을 총명하고 지혜로우며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는 권능이 너희에게 임하리니 이는 우리가 사망까지도 우리 발 아래 짓밟힐 소망을 가졌음이니라.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은 수만 명의 사기를 쳤고 어떤 사람은 수십만 명의 사기를 당했습니다. 모두 이생의 소망을 품고 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앞장들에 기록된 내용은 조작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고 있는 이 장의 근본은 우리가 죽은 자의 부활의 소망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소망을 주시고 모든 사람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