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아모스03장-당신을 향한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필기를 참고
1. 축복과 저주는 모두 하나님의 백성에게 말씀을 하셨음니다.
a.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b. 하나님의 마음과 마음이 다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기가 어렵습니다.
c. 우리 앞에 놓인 축복과 저주, 당신의 선택은?
2.하나님은 항상 자기 백성에게 미리 경고하신다.
a. 하나님은 항상 자기 백성에게 미리 경고하시기를 너희가 순종하지 아니하고 순종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b. 소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하기 위해 공격적인 말을 했으며 사람들이 회개하기를 원했습니다.
c. 믿음과 불신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백성을 공격하는 말씀을 사람이 들을 수 없고 듣지 않는 것이 본질적으로 불신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는 그것을 되돌릴 수 있는 힘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d. 저주는 붉은 실이다. 그리스도인이 이 붉은 실을 밟으면 반드시 죽는다.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정말로 순종한다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3.두 사람이 같은 마음이 아니면 어떻게 함께 걸을 수 있겠습니까?
a. 두 사람이 마음이 같지 않으면 부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마음을 같이하여 하나님과 동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b. 사람 속에 세상의 논리가 있으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c. 하나님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에게 참으로 아름다운 은혜를 예비하셨습니다. 사람이 마음에 영생의 개념을 갖고 하나님과 한마음이 되어야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복된 길입니다.
d. 하나님 외에는 아무 것도 없이도 살 수 있으며 약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4.하나님은 돌을 거치는 반석이시다
a1. 일어나는 사람도 많고 넘어지는 사람도 많지만, 넘어지게 하는 반석이 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세상의 논리체계인 척 하면 반드시 넘어집니다.
b.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인도하여 하나님의 왕국으로 돌려보내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거치는 반석이 되십니다.
c. 하나님은 재앙을 내리는 하나님인데 왜 고압선을 만져야 합니까?
5.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의 모든 죄를 벌하실 것이다
a.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거룩함을 추구하도록 하나님의 백성의 모든 죄를 벌하실 것입니다.
b. 하나님을 가지고 확률이나 내기를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모든 죄를 벌하실 것입니다.
c. 형벌이 이르면 기도하여도 소용없으니 이는 다 포악과 강포임이니라 네가 정직을 행할 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너를 형벌하실 것임이니라
d. 세상의 논리는 사람을 죽입니다. 저주를 받는 것은 장점인 것 같고, 축복을 받는 것은 단점과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모든 것을 보아야 의로운 일을 행하고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습니다.
6.구원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a.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 안에 있는 세상의 논리체계를 극복해야 합니다.
b. 우리의 가치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c. 오직 우리의 육신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자라도록 허용함으로써만 가능합니다.
서론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아모스서 3장을 살펴보겠습니다. 구약의 소선지자들은 말투가 강하고 재치도 없었으나 곧장 입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구약의 소선지서들의 말씀은 오늘날 일부 목회자들에 의해 무시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눌 때, 하나님은 사람을 축복하는 하나님이고 사람을 저주하는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저주가 없다고 했는데, 어디서 그런 큰 믿음이 있고, 어디서 읽었습니까? 갈라디아서, 로마서, 고린도전서를 펴십시오. 이것들은 모두 신약입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은 구약이 아니라 신약에 있습니다. 뜻밖에도 그는 성경을 잘 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나에게 화를 내면서 자신은 이미 구원을 받았는데 그렇게 구원을 받을 수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한 남자가 암에 걸렸는데, 10년 뒤에 그 사람의 아내도 암에 걸렸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는 저만 저주를 받았다고 반박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교회로부터 매우 이상한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가장 읽어야 할 것은 소선지서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아모스서 3장의 주제는 “너희를 치시는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입니다. 사실 여러분을 공격하는 것은 마귀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귀의 공격을 받는다고 말하는데 마귀는 당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으며, 그들이 이세벨이나 라멕이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자신을 높이는 것입니다. 중국의 운명신학은 이 세대에서는 결코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은 당신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당신을 공격하는 하나님이 아니라고 설교하는 사람들만이 일반 대중들에게 널리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한 자매가 암에 걸렸는데 나는 그 자매가 저주를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녀의 목사님은 즉시 이를 부인하며 그녀가 주님을 매우 사랑하며 매주 일요일 일찍 의자를 차리겠다고 말했습니다. 의자를 세운다는 것은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이 아니라 목사님을 더 사랑한다는 표현이 더 정확한 것 같습니다.
이 세대에 우리는 큰 소리로 외쳐야 하며, 여러분을 향한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목사님이 암에 걸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한다니 정말 놀랍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면 암도 치료될 수 있을까요? 나도 놀랐을 뿐만 아니라 목사님의 성도들도 매우 놀랐습니다. 자매 중 한 분이 매우 당황하여 나에게 와서 이것이 여호와께서 당신을 공격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목사님은 평생 동안 여호와께서 당신을 공격하신다는 말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주님이 반석이 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1. 축복과 저주는 모두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어진다
사실 하나님의 백성은 매우 혼란스러운 무리입니다. 불신자들은 죄를 짓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데, 하나님의 백성은 조금이라도 죄를 짓고 징계를 받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께서 너희를 쳐서 이르시는 이 말씀을 들으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리신 온 족속을 쳐서 이르시기를.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아모스3:1-2)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소멸하시는 불이십니다. 하나님과 놀고 싶지 않다면 성전에 가서 예배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것과 같으며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것과 같으니 이는 완전히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아모스 3:3)
여기서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마음이 하나님 아닌 척하고 마음이 하나님과 다르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려고 해도 실천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조금만, 당신은 매우 잘못 느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유익이 되고 축복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은 어려울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고, 범죄를 흔한 일로 여기며, 범죄를 저지른 후에 어떻게 두려워해야 할지 모릅니다. 주님을 믿는 여러분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모든 죄에 대해 벌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앞에 축복과 저주가 놓여 있는데 당신은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자만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은 당신에게 있어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은 마른 대변을 보는 것만큼 어렵고 지켜보기도 어렵습니다. 지난 몇 년간 이런 사람을 너무 많이 섬겨서 익숙해졌으니, 떠나야 한다면 떠나고, 함께 하나님과 동행하자.
2. 하나님은 항상 자기 백성에게 미리 경고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28장 1절부터 14절까지에서 축복을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이라고 미리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복을 받기가 너무 어려운데 그 이유는 불신앙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수요일과 금요일에 성경을 공부하고, 화요일에 기도하고, 일요일에 주일을 지키러 오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없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것 같지만 그렇게 그릇되게 지키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키지 않는다면 지키지 않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미리 경고하실 것이며 신명기의 나머지 부분인 15절부터 68절까지는 모두 저주에 관한 내용입니다. 암은 저주입니다. 그러나 암이 치료되었다면 하나님께로 돌이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시작한 것을 축하합니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저주는 반드시 임할 것입니다. 신명기에는 이 내용이 매우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으므로 모든 사람이 주의 깊게 읽어야 합니다. 그 안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축복과 저주가 주어진다는 것이 너무나 분명하므로, 주님을 믿는 사람이 우상을 숭배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아모스 3:7)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실 때에는 반드시 선지자를 통해 선포하실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아모스서 3장을 읽도록 인도하여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면, 그것을 선포하실 것입니다. 귀가 닭털로 가득 차 있다는 뜻이에요.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아모스 3:8)
소선지자들이 하는 예언은 듣기에 좋지 않습니다. 오늘 목사님이 하는 말은 하나도 여러분을 공격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소선지자들이 하는 말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을 공격하는 말입니다. 축복의 말씀을 다 한 뒤에 듣는 사람은 듣고, 듣지 않는 사람은 여전히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을 비난할 때마다 하나님은 잠시 기다리시고 그들이 회개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또 다른 경고의 물결을 보내셨습니다. 결국 나는 여러 번 말했지만 여전히 바꾸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왜 하나님께서 아직 행하지 않으셨느냐고 묻습니다. 물론 할 수는 없습니다. 한번 하면 망하고 완전히 끝날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습니다.
주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듣고 야곱의 족속에게 증거하라.(아모스 3:13)
이 그리스도인들에게 경고했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아스돗의 궁들과 애굽 땅 궁들에 광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사마리아 산들에 모여 그 성 중에서 얼마나 큰 요란함과 학대함이 있나 보라 하라.(아모스 3:9)
하나님은 너무 진노하셔서 예루살렘에서 말씀하시려고 하신 말씀을 아스돗과 애굽의 궁궐로 옮겨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불신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점차 이해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양쪽 귀에 벽이 있어서 전혀 들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그것은 불신입니다. 왜냐하면 나는 마음속으로 믿는 바를 정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듣기를 거부하고 완전히 죽음을 추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에게 그들이 회개하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지만, 회개하지 않으면 그런 일이 일어날 것임을 알도록 경고하셨습니다. 오늘 갑자기 선악을 분별하여 마음이 불편해지는 죄를 범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경고입니다. 만약 네가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집스럽게 이 길을 간다면, 결국 너를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일 것이고, 그때의 상황은 거의 되돌릴 수 없을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사람은 포함되지 않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더라도 저주는 계속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특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실수해도 내일은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것입니다. 오늘 죄를 범하면 며칠이 지체될 수도 있고, 몇 년이 지체될 수도 있습니다. 저주를 심으면 기본적으로 발효되면 되돌릴 방법이 없습니다. 시어머니의 집을 탐내는 남자가 있었는데, 그 당시 그녀는 탐심이 저주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늘 나는 모든 사람에게 욕심을 내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주님을 믿는 사람뿐만 아니라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반드시 저주가 임할 것입니다. 시어머니의 집을 탐내던 여인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 병들어 죽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사람은 그것이 발효되는 저주이고 죽음이 멀지 않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빨리 회개하라고 충고했지만, 회개하려면 숙제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적어야 했습니다. 그녀는 열심히 글을 썼고, 그녀가 쓴 모든 문장은 그녀의 내면의 인식과 모순되었습니다. 네가 읽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하나가 너의 내적 관념과 상충된다면 그것은 분명 매우 피곤할 것이다. 그곳에서 그녀는 하나님의 말씀 한 마디를 배웠고, 마귀는 그녀에게 열 단어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온갖 수고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떠나지 못하고 여러 해 동안 교회를 떠났다가 돌아왔지만, 오래 머물지 못하고 다시 교회를 떠났습니다.
우리 형제의 삼촌 중 한 사람은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인데, 그가 주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그 사람을 돌보지 않을 것이고, 그가 주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아직도 그를 통제하고 있어요. 이 형제의 이모는 도시에 집을 사서 할머니를 데리고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집이 철거되자 그는 새 집을 잃었고 그의 삼촌은 그 집을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새 집이 이모 명의로 되어 있든 없든, 집이 나뉘자마자 삼촌은 그 집이 자기 소유라는 것을 말하지 않고 달려들어 집을 꾸몄다. 그 결과 집이 리모델링되기 전 폐암에 걸려 3개월 만에 사망했다. 누구의 집에 욕심이 있든 그것은 매우 치명적이며 그 집이 그의 부모의 것이 아니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관찰해 보면,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저주의 붉은 선을 밟지 않는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저주는 붉은 실입니다. 당신은 정말로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빨간색 선은 고압선으로, 만지면 누구든지 사망할 수 있습니다. 돈을 사랑하면 속고 속이는 것은 단지 경고에 불과합니다. 누가 그런 세상적인 논리를 가지고 있으라고 했습니까? 오늘 손실을 입었다면 바꿔야 합니다. 그래도 바꿀 수 없다면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세상에 저주받지 않는 논리적 체계는 없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면, 그것을 다시 가져가서 예수님의 피로 그들에게 기름을 바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이것을 피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이 세대의 선지자로서 주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향하여 하신 말씀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면 교회가 부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우리 교회는 아직 부패하지 않았으므로 계속해서 설교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보장할 수 있는데, 그것은 목에 칼이 찔려도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로 지키게 된다는 것입니다. 목에 칼을 들이댄다고 해서 특별한 것도 없고, 두려워할 것도 없고, 남편이나 아내, 자녀를 두려워하거나 하나님의 말씀보다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 마십시오. 올바른 길이 아닙니다.
3. 두 사람이 같은 마음이 아니면 어떻게 함께 걸을 수 있겠습니까?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고야 어찌 동행하겠으며?(아모스 3:3)
많은 목회자들이 이 말씀을 인용했는데, 부부가 한마음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함께 저주를 받고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는 것입니까? 여기서 부부가 같은 마음이라는 설명은 전혀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즉, 네가 하나님과 동의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고, 하나님의 가르침과 말씀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다면 남편과 마음이 같아도, 같이 행하더라도 여전히 귀신과 함께 행하는 것입니다.
이런 혼란스러운 가르침을 듣고 문맥을 잘 읽어보면 두 사람이 같은 마음이 아니면 어찌 함께 동행할 수 있겠습니까? 창세기에는 땅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던 에녹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습니다. 문맥과 연결하지 않고 부부가 함께 걷는다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이는 결국 부부가 함께 저주를 받았다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닙니다. 부부가 함께 살 수 있는 한, 함께 살 수 없다면 스스로 결정하면 됩니다. 내 조언을 들을 필요도 없고, 나는 이것을 조언하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과 동행하느냐는 당신의 속에 무엇이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내면에 세상적인 논리가 있으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람들은 눈 덮인 산을 오를 수도 있고, 초원을 건널 수도 있지만, 이 장애물을 넘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고 따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는다는 것은 마치 쌀 50킬로그램을 짊어지고 있는 것과 같아서 보기만 해도 피곤해집니다. 성전에 가서 우상을 숭배하고 다른 것을 얻는 것이 더 낫습니다. 네가 여기에서 하나님의 백성의 이름을 내세우면서 여전히 저주 아래 살면서 너를 공격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조금 받을 뿐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속에 세속적인 논리체계를 갖고 있는데도 여전히 이곳에 가서 인기와 축복을 얻으려고 하고, 자기가 승리하는 교회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승리하는 교회에서도 우상을 숭배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들은 단지 자신의 유익을 구하고 그로부터 유익을 얻으려고 할 뿐입니다. 저는 떠나는 것에 대해 매우 갈등했고, 떠나지 않고 하루 종일 하나님의 공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서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공격 얘기를 하면 핸드폰을 무음으로 해두는 편이겠죠?
두 사람이 같은 마음이 아니면 함께 걸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들을 위해 참으로 아름다운 은혜를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영생의 개념이 있어야 합니다. 영생의 개념이 없으면 함께 걷는다는 것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제품 출시로 바쁘지만, 출시 후에도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상장회사 사장으로서는 쉽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과 나는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지만,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매우 어렵다고 들었습니다. 다양한 규제가 있고, 투자자의 돈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기 위해서는 현명해야 합니다. 이 게임은 언제 발견될지조차 알 수 없는 평범한 게임이 아닙니다.
이 논리를 이해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안에 넣어야 합니다. 저주와 축복 사이의 선택은 앞면과 뒷면을 보기 위해 동전을 던져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두뇌와 마음이 조금만 있으면 반드시 축복의 길을 선택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마음에 진심이 있으면 아무것도 없어도 살 수 있지만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약하거나 두렵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갖고 있는 한 어떻게 인생을 살 수 있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홍수로 휩쓸려갔지만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여 한없이 나아졌습니다.
4. 하나님은 거치는 반석이시다
한번은 “하나님은 우리가 부딪히는 반석이시다”라는 주제로 설교를 한 적이 있는데, 그것이 큰 인기를 끌 정도로 인터넷 클릭 수가 날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나는 사람을 거스르는 반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일어나고 많은 사람이 넘어지는데, 넘어지는 사람은 누구나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사자가 움킨 것이 없고야 어찌 수풀에서 부르짖겠으며 젊은 사자가 잡은 것이 없고야 어찌 굴에서 소리를 내겠느냐.창애를 땅에 베풀지 아니하고야 새가 어찌 거기 치이겠으며 아무잡힌 것이 없고야 창애가 어찌 땅에서 뛰겠느냐?(아모스 3:4-5)
모든 사람이 이 구절을 읽고 나면 하나님께서 무엇에 관해 말씀하시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구덩이와 바위와 기회를 설계하셨습니다. 잡히면 그것은 당신 안에 세상적인 논리 체계가 있고 돈 벌 생각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은 10만 위안을 사기당했고, 어떤 사람은 60만 위안, 또 어떤 사람은 100만 위안을 사기당했습니다. 이런 일이 교회 안에서 끝없이 일어납니다. 누가 당신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많은 문턱을 마련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비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단지 그분의 백성을 걸러내고 그분의 왕국으로 데려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당신이 결정을 내렸고 세례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다고 외치는 것처럼 간단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하게 전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단지 추악한 말들은 다 전에 했을 뿐이고, 동물덫을 밟아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마치 들개가 문턱을 밟고 갑자기 다리가 끼이는 것과 같았습니다. 기계창의 원리는 쥐덫과 동일합니다. 밟자마자 고정되는데요, 영상에서는 덫에 걸린 개가 고통스럽게 울부짖습니다. 하나님은 밟지 말라고 일러주는데 사람들이 믿지 않고 밟으면 다리가 부러지면 누가 탓하겠습니까?
성읍에서 나팔을 불게 되고야 백성이 어찌 두려워하지 아니하겠으며 여호와의 시키심이 아니고야 재앙이 어찌 성읍에 임하겠느냐?(아모스 3:6)
우리 하나님은 재앙을 가져오는 하나님이시요, 사람을 거스르는 반석이시며, 재앙을 가져오는 하나님이심을 누구나 알아야 합니다. 전에도 경고했지만, 믿거나 말거나는 여러분의 몫입니다. 믿지는 않지만 해보고 싶은 당신에게 이 재앙이 20년 뒤에 일어날지, 30년 후에 일어날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재앙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는 아무도 말할 수 없습니다. 이 신이 나쁘다고 생각한다면 나도 당신과 같은 생각이지만, 고압선을 건드리지 말라고 미리 말해두었는데, 믿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 바베큐로 변해 검게 타버릴 것이다. . 어떤 사람들은 뇌물을 주고 받으면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믿지 않아서 만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또한 자신이 수학을 잘하고 확률을 상당히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에는 빠지게 됩니다. 잡힌 10%.
하나님은 사람을 화나게 하고 재앙을 내리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지 마십시오. 만약 그 자리에서 이루어진다면 세계 인구는 90% 감소할 것이다. 하나님은 오래 참으시고 관용하시며 경고하시고 경고하시되 이스라엘 왕국은 이백년 동안 지속되었고 유다 왕국은 삼백년 동안 지속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매일 그들에게 경고하셨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이 그들의 세대에 일어나지 않는 한 꽤 흥미로웠습니다. 사실 200년, 300년은 몇 세대가 걸린 시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참으시고 계속해서 경고를 하셨습니다. 이 기간은 나라의 멸망이 아니라 가정의 멸망이었을 것입니다. 예전에 마을의 불량배가 누군가를 때려 죽였고, 피해자의 아들이 자라서 불량배의 가족을 모두 죽였다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신사의 복수는 10년 안에 늦지 않고, 신의 복수는 200년, 300년 안에 너무 늦지 않습니다.
5.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의 모든 죄를 벌하실 것이다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하셨나니.(아모스 3:2)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우리가 거룩함을 추구하고, 결코 위험을 무릅쓰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가지고 장난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온 힘과 힘을 다하여 거룩함을 추구하십시오. 『히브리서』는 거룩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내기하지 말며 하나님과 다투지 말라. 왜냐하면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모든 죄를 벌하시고 결코 용서하지 아니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속히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하여 주 예수님의 보배로운 피를 바르면 그것이 주 예수님께로 귀속됩니다. 그러나 회개하기만 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죄는 그대로 너희에게 있을 것이다. 만약 누군가가 갑자기 직장을 잃었다면, 그는 자신이 어떻게 주님을 믿었는지 반성해야 합니다. 10년 넘게 성경을 읽지 않은 실직한 자매가 있습니다. 그녀는 Douyin을 스크롤하는 데 모든 시간을 보냈고 오늘까지 계속 그렇게 하다가 직장을 잃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의 죄를 벌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벌하실 때, 당신은 그것을 되돌릴 수 없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희생 제물은 옛 엘리 가족의 죄를 속죄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늙은 엘리에게 세 번 네 번 경고하셨으나 그가 듣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죄를 뿌리다가 멸망하였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는 사람들로 하여금 남의 땅, 집, 포도원을 빼앗고, 남의 땅 경계선을 옮기고, 남의 돈, 사업, 지분을 빼앗음으로써 이득을 취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기 때문입니다.
아스돗의 궁들과 애굽 땅 궁들에 광포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사마리아 산들에 모여 그 성 중에서 얼마나 큰 요란합과 학대함이 있나 보라 하라.(아모스 3:9)
그는 강간과 억압이 단지 이익을 취하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반드시 그의 빚을 추궁하실 것입니다.
자기 궁궐에서 포학과 겁탈을 쌓는 자들이 바른 일 행할 줄 모르느니라 이는 여허와의 말씀이니라.(아모스 3:10)
그리스도인들은 여호와 보시기에 옳은 일을 행하려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분명히 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선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선하지 않다면 하나님과 동행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애굽 사람들은 이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행한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이기 때문에 핵심 관심은 여전히 살아 있다. 우리 삶의 목적이 이 작은 일을 위해 사는 것이라면, 한 잔만 마셔도 충분할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죄입니다.
이 세상의 논리는 사람을 죽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논리는 저주받은 것을 유익으로 여기고, 축복받은 것을 불리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것을 바꿀 수 없었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러자 그는 돌아서서 나에게 소설에 대해 물었지만 나는 그 소설을 전혀 읽지 못했습니다. 나는 축복과 저주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습니다. "Water Margin"이나 8 개국 연합군이 베이징에 진출하는 것을 복사하는 것은 쓸모가 없을 것입니다. 나는 거기에 없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축복과 저주만 말할 것입니다.
내가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보응하는 날에 벧엘의 단들을 벌하여 그 단의 뿔들을 꺾어 땅에 떨어뜨리고.(아모스 3:14)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땅 사면에 대적이 있어 네 힘을 쇠하게 하며 네 궁궐을 약탈하리라.(아모스 3:1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를 벌하실 때, 어떤 죄도 용서받지 못할 것입니다. 주 예수께서는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라 하셨으나 우리의 회개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실 저는 목사가 되어 하나님의 백성을 목양하면서 많은 교훈을 얻은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내가 당신을 섬기기 위해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나는 내 인생에서 너무 많은 봉사를 하여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세상의 핵심 이익이 얼마나 많이 파괴되었습니까? 이제 서서히 해체되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을 감동시키기 위해 진짜 돈과 은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핵심 관심사라면 진짜 돈과 은을 사용하는 것은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은 하나님 아버지를 경배하는 동시에 재물을 경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재물은 돈을 의미합니다.
6. 구원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목자가 사자 입에서 양의 두 다리나 귀 조각을 건져냄과 같이 사마리아에서 참상 모퉁이에나 걸상에 비단 방석에 앉은 이스라엘 자손이 건져냄을 입으리라.(아모스 3:12)
자수 이불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홈박람회에서 보고 5만원에 급하게 샀어요 침대도 합해서 15만원짜리 고급제품인데 누워있기 너무 편해요 아래로. 모두 독일, 이탈리아의 유명한 제품이지만, 일부 독일인도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침대가 아무리 편안해도 불면증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남의 돈을 너무 많이 훔쳐서 편하게 누울 수 있게 고급 가구와 침구를 샀는데, 하나님께서 이 곳을 포위하기 위해 무리를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땅 사면에 대적이 있어 네 힘을 쇠하게 하며 내 궁궐을 약탈하리라.(아모스 3:11)
남의 물건을 훔치고 남의 집에서 노예가 되는 것은 전혀 재미가 없습니다.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감옥에 가서 천천히 노는 것입니다. 묘사된 장면을 생각하면 참으로 절망적입니다. 그때는 너무 늦어서 하나님께 구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양 다리 두 개밖에 구하지 못했는데, 온 몸을 다 먹고 다리만 남은 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바베큐? 귀가 반개 남았는데, 돼지귀 하나는 간식으로 먹기엔 부족해요. 결국 그것은 시간 낭비입니다. 구원받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또한 자신들이 아브라함과 그리스도인의 후손이며 중국인이 예정한 이기는 교회에 속해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들은 다 쓸모가 없고, 다리 두 개와 귀 반 개만 남아 있어 어디에도 붙일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라서 다시 붙였으나 귀의 절반은 돼지 엉덩이에만 붙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구원을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신뢰할 수 없는 일이 아닙니까?
사람의 마음이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마음과 같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승리하지 못하면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세상의 논리를 이겨내야 합니다. 얼굴에 신경 쓰지 마세요. 사실 우리는 얼굴이 전혀 없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선악을 분별하는 여로보암의 체계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하는 말이 어떤 말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살펴볼까요? 항상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이 좋다고 생각하면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항상 내가 행한 좋은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열하고, 매일 성전에 가서 기도하고, 이것저것을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내면에 있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에 속한 논리적 체계라면, 일단 펼쳐 보면 제가 자주 말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꽉 끼는 바지와 하이힐을 신으면 멋져 보이고 패셔너블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똥투성이여서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자신의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음식, 의복, 집 또는 자동차를 사용한다면 이는 가치가 없으며 이러한 것들에 의존하여 자신을 지탱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지금 우리의 가치를 뒷받침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피상적인 일을 할 수 없으며, 이제 어떻게 해서든 세상의 가치관보다 나은 사람이 되어야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무너뜨리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가장 큰 두려움은 사람들이 그런 것들에 동화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는 자신이 일을 잘했다고 느꼈고, 자신이 라멕보다 더 승리할 수도 있고, 젊은이는 물론 장성한 남자까지 죽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겉으로는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여전히 라멕이다. 그가 가인보다 더 승리할 수도 있지만 가인의 승리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속에 있는 악한 정욕과 욕심을 다스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굳게 세워지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고수합니다. 마치 요셉이 13년을, 다윗도 13년을, 야곱도 90년 이상을 고집한 것처럼, 그들은 모두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지금 내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을 아는 것도 소용없고,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꼬리표를 이마에 붙이는 것도 더 이상 소용이 없습니다. 주일에 참여한다 해도 내가 해체해야 소용이 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세상의 논리 체계. 오늘도 여러분을 공격하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이 말씀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축복이 우리에게 임하게 하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