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해답】고린도전서08장-오직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고린도전서 8장 “오직 사랑만이 사람을 세우느니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 문장을 놓친 것 같아서 오늘은 조금 변명하겠습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들어야 할 것이지 여러분이 나에게 이 문장을 요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사랑으로 사람들을 교화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와서 나를 사랑해 주세요. 나는 말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알겠습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여기에 있으며 많은 요령을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당신의 몸을 다루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말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이것을 오해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다른 사람에게 요구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요구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이해가 되셨나요?
즉, 이 사람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도 그것을 아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시고 나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실 것을 아시고 이 논리가 맞습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모르실 것입니다. 우리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나에게 오세요. 나는 싱가포르에서 옆으로 걸을 수 있습니다. 왜 옆으로 걸을 수 있습니까? 왜냐하면 나는 그들의 총리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제가 총리를 안다는 사실을 그냥 무시해도 될까요? 총리는 나를 알아야 합니다. 이해하셨나요? 나는 총리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총리님, 저는 당신을 압니다. 총리는 말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당신을 모른다. 그 사람이 어떻게 나를 알 수 있지?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그 관계를 천천히 이해해야 합니다.
중국의 모든 사람은 주석을 알고, 중국의 모든 사람은 총리를 알고, 중국의 모든 사람은 총서기를 알고 있습니다. 해방 이전에는 중국 전체가 장개석 주석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많은 사람들을 알고 있습니다 당신은 그를 알지만 그는 당신을 모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이 당신을 모르시며, 하나님이 당신을 모르시면서 당신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슨 일을 한다면 그것은 말도 안되는 일입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귀신을 쫓아내러 가서 말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나오라!” 그러자 귀신이 그것을 보고 말했습니다. “야 너희들, 나는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지만 너희는 누구냐?” 유령은 그 사람에게 뛰어들어 옷을 벗기고 거리를 뛰어다녔습니다. 맙소사, 경찰이 와서 저를 체포했는데, 벌금을 내야 했어요. 옷을 벗고 뛰어다니면 벌금이 나올 테니까요. 당신은 말했다 : 나는 그것을 벗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누가 그것을 제거했는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당신을 아시는지 아닌지를 말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지지하실 것인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돈을 지불하실까요? 하나님이 당신을 지원해 주실까요? 그것은 모두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는지에 달려 있습니까? 나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질문] 1: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심판하실 때 베드로가 세 번 주님을 부인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부활은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는 저주를 깨뜨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게 그 모습인가요?
A: 이 두 가지가 연관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알고 있습니다. 가정해 보겠습니다. 제가 우리 중에 있는 형제나 자매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나를 사랑합니까? 이건 이상해. 질문하겠습니다. 언제 이 질문을 하시겠습니까? 다만 이 말을 한 사람은 나를 사랑하지 않는 듯 조금 혼란스러울 뿐입니다. 예수님은 왜 베드로에게 물으셨나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나를 별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고 느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물었습니다. 피터, 나를 사랑합니까?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예수께서 마음속으로 이르시되 빨리 당겨라. 그것은 우리 자신의 추론이므로 확인합시다. 잠시 후 다시 의문이 생겼습니다. 말하세요: 피터, 나를 사랑해요?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주님, 저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전히 뭔가가 옳지 않다고 느끼시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이 이 말을 듣고도 주 예수님은 다시 묻습니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이번에는 피터가 긴급하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말하세요: 주님, 제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당신께서 아십니다. 당신이 주님을 안다면 묻지 마십시오! 바보 같은 소년. 아직도 아냐고 물어보시나요? 그러나 나중에 역사는 한 가지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피터는 그것을 좋아했습니까?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고린도 교회에 와서 문제를 일으킨 사람이 바로 이 베드로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했다면 이런 글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누구든지 자기가 무엇을 안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도 자기가 무엇을 알아야 할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예 혹은 아니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이 하나님의 알려지느니라 그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의 목회적 돌봄은 최고 수준일 것입니다! 그의 사역은 망가졌습니다. 말해 보겠습니다. 내가 왜 그런 말을 하는 걸까요? 마가복음을 쓴 마가는 어디로 갔나요? 그는 줄곧 베드로를 따르다가 나중에 마가복음을 썼는데, 실제로 베드로가 말한 것을 썼습니다.
나중에 마가는 한동안 바울을 따라다녔다가 그것을 보고 의심을 품게 되었습니다. 왜? 나는 더 이상 바울을 따르지 않고 베드로에게로 돌아가야 했고, 그는 다시 베드로에게로 돌아갔습니다. 베드로의 집으로 돌아갈 때 베드로를 따라가면 이 사람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중에는 바울의 집으로 옵니다. 내가 당신에게 묻겠습니다. 만약 그의 동생이 그를 따르지 않는다면 그가 누구를 목양할 것입니까? 주변의 말들은 잘 길러지지 않았는데, 그는 누구를 몰고 있었던 걸까요? 그래서 자세히 살펴보면 바울은 이렇게 하지 않고, 바울을 따르는 사람들을 세심하게 목양하고 있습니다.
[질문] 2 목사님, 약한 양심이 무엇입니까?
A: 양심이 약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실 모든 사람에게는 양심이 있는데, 이 양심이 바로 그의 양심입니다. 양심이 상하면 어떤 느낌이 들겠습니까?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폭리를 취하면 당연히 일반 사업가들은 상관없다고 할 것이고, 일반 사업가가 되어 돈을 잘 벌어도 상관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폭리를 취하는 사람으로서 그의 양심은 상했습니다. 그는 “나는 사업가이고 돈을 벌지 않는 것은 부도덕한 일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아? 윤리적이 되기 위해 부도덕한 돈을 벌 수 있는가? 이해했나요? 부도덕한 돈을 벌지 않는다면 그것은 부도덕한 일이 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약한 양심, 나쁜 양심이라고 합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가 하는 목양 사역은 사실 사람 속에 있는 양심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양심이 꺾이지 않으면 기회가 있고, 양심이 꺾이면 완전히 깨집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람을 피우고 있는데 거짓말하는 사람이 어떻게 양심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양심이 약하다는 것은 양심이 완전히 나쁜 것이 아니라 약간 나쁘다는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심이 약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한다고 생각합니까? 성전에서 음식을 먹지 않으면 해를 입지 않겠습니까? 이 양심이 상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고장난. 그러므로 이 약한 양심은 바울의 편지들에서 자주 언급됩니다. 이 양심은 어디에서 오는가? 양심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 사람의 코에 불어넣으신 호흡 곧 하나님의 영이시다. 즉, 사람의 마음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영, 곧 양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나쁜 짓을 해도 자책할 것이고 여전히 양심이 있습니다.
그 양심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불어넣으신 호흡입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 사람 안에 있는 육신적인 것이 그의 신성한 형상을 완전히 부패시켰고, 사람은 완전히 육신적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주님을 믿는 과정에서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본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이 불어넣으신 호흡 곧 그 속에 선한 성품이 있고 육신에 속한 사람은 악한 성품을 가진 것이니라. 그 안에는 육신과 영의 두 위격이 거하시니 한 인격 안에 두 위격이 있으니 하나는 신성이요 하나는 육신이니라. 그러면 이 둘이 서로 싸우는데, 이 양심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선한 성품을 가리킨다.
[질문] 3: 목사님, 이 장에서 말하는 양심은 좋은 말입니까? 여기서 양심은 도덕적 개념을 의미하는가?
A: 아니요. 여기서 말하는 양심은 내가 방금 말한 양심이란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의 형상, 곧 양심을 가리킨다. 이 형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을 통한 것이며,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구원은 이것을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나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목회합니까? 목회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영광스러운 형상으로 사람들을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그 안에 있는 양심이 그의 육욕적인 혐오감을 극복하게 하십시오. 그것이 바로 논리입니다.
[질문] 4: 목사님 사찰에서 대리석 가공 주문이 오셔서 사장님과 제가 설치를 했는데, 거리가 멀어 정오에 설치가 끝나지 않아서 그 사찰에서 저녁을 먹었어요. 그런데 그때 제가 생각한 것은 '하나님이여,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내가 먹는 식물도 창조하셨으니 내가 먹어도 두렵지 아니하도다' 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양식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자신있게 식사하고 있는가?
A: 실제로 성전 공사를 계약한 사람도 있는데, 사실 먹어도 상관없고, 안 먹어도 상관없다고 제안합니다. 사람이 배고파서 참을 수 없으면 무엇이든지 먹을 수 있고, 먹지 않을 수 있으면 먹지 않을 것이다. 왜? 왜냐하면 유령이 정말로 당신을 괴롭히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의 양심을 타락시키거나 당신을 혼란스럽게 하려고 이 말을 할 때, 이 두 가지를 합치지 마십시오. 그거 들었어? 이 두 가지를 합치지 말고 합친 후에는 '야, 목사님 말씀이 틀렸어, 정말 나쁜 일이 일어났구나'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정말 그런 일이 일어나도 상관하지 말고,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지가 중요한가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먹지 않으면 불운이 따르는데, 이 논리를 아십니까?
[질문] 5: 목사님, 시아버지 댁이 우상당 맞은편에 있는데, 우상당이 아주 성대하게 열리더니 저와 시아버지 댁을 위해 집을 마련해 주신 여러 가족들이 여러 가지 재난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모두 모든 가정에서 일어나는 자동차 사고와 관련이 있습니다. 누군가에 의해 살해되거나 다른 사람을 죽입니다. 결혼하고 나서 이런 문제를 발견하고 거기 살고 싶지 않아서 나중에 이사를 하게 됐어요. 그런데 시부모님이 늘 계셔서 걱정이 됐어요. 선생님, 제 믿음이 약해서 그런 건가요, 아니면 그 곳은 정말 머물기에 적합하지 않은 곳인가요?
A: 주님을 믿지 않는 중국인들은 뭐라고 말합니까? 성전 앞이나 뒤에 살지 마십시오. 즉, 이러한 성전에 살지 마십시오. 혹시 그 곳에서 이런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나요? 가지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도 아직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지 아니하셨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느니라. 그냥 뭐라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읽을 때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입니까? 그런 곳을 극복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양심이 약한 사람이라면 그런 곳에서는 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믿음이 약하고 영이 강하지 못하고 영향을 받기 쉽다면 그런 곳에 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왜? 하느님에 대한 당신의 믿음과 사랑이 문제의 발전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합니다. 하지만 인근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기회가 없습니다. 그들은 어떻게 이 순간을 가질 수 있는가? 갑자기 이런 일을 겪지 않았을까요?
오늘 저는 여러분에게 아주 중요한 개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조상이 아무리 많은 저주를 받았더라도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면 말입니다. 이제부터 네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면 옛적에 네 조상들의 저주가 너와 아무 상관이 없고 네가 앞에 있든 없든 상관이 없으리니 성전 안이든 뒤든, 성전에 살아도 상관없습니다. .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자주 삶에 욕심을 내고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이 단지 살아 있다는 사소한 문제뿐인데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예 혹은 아니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기꺼이 자신을 하나님께 완전히 드리겠습니까?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리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질문] 6: 어떤 상황에서 약한 사람들의 실수를 참아야 합니까? 어떤 상황에서 비난이 주어지나요?
A: 와! 좋은 질문을 하셨습니다. 목회할 때 사람들의 나쁜 습관을 다스려야 하는데, 아시겠습니까? 그렇다면 그 사람이 견딜 수 있는 수준에 따라 사람들의 나쁜 습관을 다루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이해가 되시나요? 그 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합니다. 그의 자신감을 키우고 나면 당신이 말하는 모든 것이 맞춤화되어야 합니다. 당신이 그것을 맞춤화하지 않고, 당신이 그것을 엉망으로 만들면, 사람들은 당신의 엉망진창 때문에 결국 그것을 망치게 될 것입니다.
목양에 있어서는 내가 제일 잘해야 하고, 언제 힘들고, 언제 자신감을 키워야 하는지 압니다. 그러나 나는 분명히 기초 위에 세울 것입니다. 즉, 내가 목회하는 사람을 아무리 고치더라도 그는 내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유익을 위해 하고 있다는 것을 깊이 알고 그러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그 사람이 뼛속까지 느낀다면: 야, 그 사람처럼 나를 때리고, 다루고, 상처 주는 것 외에는 아무 소용이 없다면, 그것은 부서진다. 그래서 제가 지금까지 성공적으로 목회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랑이 사람을 세워준다는 아주 중요한 개념을 처음으로 세웠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형제자매를 사랑함을 바탕으로 했기 때문입니다.
[질문] 7 목사님이여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을 먹지도 못하며 귀신의 잔치를 먹지도 못하느니라 귀신의 잔치는 여기에 언급된 제사와 무엇이 다릅니까 문장?
A: 그냥 사찰에 가서 식사를 하면 됩니다. 공짜로 사찰에서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그들은 실제로 단지 먹기 위해, 단지 이익을 얻기 위해 먹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는 목적은 하나님이 아니고 먹는 것이 사람 사는 목적이므로 결국 사람은 완전히 패괴될 것입니다.
[질문] 8: 목사님 저는 어렸을 때부터 이모가 우상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을 때마다 즉시 온갖 액운을 겪게 되었는데 무슨 일입니까? 나는 어렸을 때 주님을 믿지 않았지만 할아버지는 믿었고, 어렸을 때 할아버지에게 성경에서 모르는 단어를 읽어달라고 자주 가르쳤습니다.
A: 이런 이야기도 있는데 꽤 좋습니다. 물론, 우상에게 바친 이런 것들을 먹으면 반드시 액운을 겪게 될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음식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영적인 세계는 현실입니다. 주님의 잔을 마시면 주님의 것이요, 마귀의 잔을 마시고 마귀와 함께 잔치를 먹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까? 예 혹은 아니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발생합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허락해주셔서 어떤 사람들은 성전에 가서 많이 먹지만 괜찮습니다.왜일까요? 그 사람은 그 유령에 속해 있고, 그 유령이 될 운명이기 때문이다. 운명이 없어서 이렇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어려서부터 체험하게 하셔서 성결하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게 된 자들은 주의 잔치나 마귀의 잔치에서나 날마다 먹을 목적으로 먹지 말아야 합니다.
[질문] 9: 목사님, 저 사람들은 역경과 중국학이라는 미명 아래 사람들을 속이고, 풍수를 배우고 인생을 바꾸려고 생방송실에서 물건을 팔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돈을 빌려 물건을 사고 있는데 모두 인생을 바꾸고 돈을 벌고 싶어 매일 200건의 주문을 팔고 있는데 이것이 사탄의 간계입니까? 소위 앵커 마스터라는 사람이 여우처럼 눈과 눈썹을 치켜 올리고 표정이 매우 이상한 것을 보니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합니까?
A: 이 문제는 그대로 두겠습니다. 내 말 들리나요? 제가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며칠 전에 같이 차 한잔 하러 찾아온 학교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한 문장을 말해줬는데, 제가 그걸 배워서 모두와 나눠줬어요.물론 이 사람은 세상 사람입니다. 그는 “사람의 돈 버는 방식을 막는 것은 부모를 죽이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이해하셨나요? 사람들이 당신 때문에 문제를 일으킬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가능하면 숨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우리가 관심을 두는 것은 오직 한 가지, 곧 하나님을 잘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그런 지저분한 것들에 관심을 갖는다면 우리는 이러한 것들로 인해 쉽게 방해를 받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일뿐인데, 그 분이 이 돈을 벌었는지 안 벌었는지? 그 사람이 거짓말을 했나, 안 했나? 한 사람은 싸우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은 고난을 당하고자 한다면 이 문제는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질문] 10: 목사님, 사람들이 제게 성묘 풍수에 대해 자주 이야기하는데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저는 기독교인이지만 이것을 믿지 않습니다. 선생님,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이런 것들이 있든 없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잘 믿기만 하면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A: 물론입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이 일도 처리하지 못하더라도 여전히 하나님이라고 불리는지 알아야 합니다. 옛날에는 세상 사람들이 그런 것들로 살았으나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산다. 그렇다면 문제가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생명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는다는 뜻인데, 그 자체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모든 것은 사람이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것인데, 이런 것들은 이생을 위한 것이며 사람을 패괴시킨다. 생각해보면 사람이 암에 걸리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잘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잘 살려면 이렇게 해야 하고, 저렇게 해야 하고, 많이 해야 하고, 결국 자살을 해야 한다. 왜? 왜냐하면 그는 너무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이것에 대해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면 그것이 암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에게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이 지나치게 관심을 갖는 것은 매우 치명적인 일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내일 졸업반을 대표하여 연설을 하기 위해 무대에 올라가라는 요청을 받는 것에 대해 매우 걱정하고 있습니다. 앗, 진심이에요. 밤새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강의하러 올라갈 때 말을 더듬었어요.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생의 모든 것이 헛되고 오직 영원 속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이 열쇠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질문]11: 목사님, 제가 오래 전에 복음을 전하고 도왔던 자매들이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숭배한 것처럼 지금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있는데, 제가 그들에게 복음의 빚을 지고 있습니까? 우리는 그들에게 진짜 복음을 전해야 합니까?
A: 이런, 사람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많이 말하세요. 내 말이 들리나요? 사람들이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그들을 괴롭히지 마세요.
[질문] 12: 안녕하세요 목사님, 지식은 사람을 오만하게 만드는데, 다시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A: 어떤 사람은 나에게 이런 지식이 있고 저 지식이 있다고 하는데 이것은 능력에 기초한 논리 체계입니다. 바울이 전달한 개념은 실제로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 기초한 것이었습니다. 사랑에 기초한 논리 체계와 능력과 지식에 기초한 논리 체계 사이에는 뚜렷한 대조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지식이 있다고 생각하다가, 지식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훌륭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교만하거나 교만하지만 부족하다면 지식이 얼마나 있습니까? 그러면 능력에 따라 가르치는 것이니 하나님이 그 사람을 징벌하시리니 하나님이 그 사람을 징벌한 후에 그가 회개하였느냐? 따라서 지식 기반은 능력 기반입니다. 능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손과 검에 의존하여 살아남는 자들은 저주를 받습니다. 저주는 무슨 뜻인가요? 귀신이 함께 있으니 네가 무엇을 하든지 귀신이 와서 장난하리라는 뜻인데, 귀신이 와서 너를 장난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귀신을 보내 너를 장난하게 하면 어찌할 바를 모르지 아니하느뇨 목숨이 걸릴까요?
[질문]13: 목사님, 불신자의 집에 가서 먹으면 부지중에 우상의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 성경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죄입니까? 무엇을 해야 할까요?
A: 이 질문은 고린도교회의 질문과 매우 유사한 것 같습니다. 제가 방금 말하지 않았습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먹고 다음날 배설했어요. 왜 우리 안에 이런 혼란이 있습니까? 그 이유도 아주 간단합니다. 저는 먹고 마시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살아가는 이 작은 일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고 느끼면 먹고 마시는 것도 덜 중요해질 것입니다.
이것으로 오늘의 Q&A를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