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해답】호세아08장-하나님은 그 죄를 벌하리니 저희가 애굽으로 다시 가리라!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살펴본 호세아서 8장은 아마도 나에게 해당되는 내용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장에서 나는 몇 가지 새로운 단어를 생각해 냈습니다. 나는 세 가지 유형의 그리스도인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오늘날에는 네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그럼 왜 4가지 유형으로 바뀌었나요? 호세아 시대에 네 번째 유형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나왔으니 그들이 애굽에서 나오기 전에는 그리스도인의 한 유형이요, 애굽을 나온 후에는 광야에서 죽은 두 번째 그리스도인의 유형입니다. 그러면 세 번째 그리스도인의 유형은 무엇입니까? 애굽을 떠나 광야에 들어갔다가 약속의 땅에 들어간 것이요, 네 번째 부류는 약속의 땅에 들어갔다가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이는 그야말로 해방 전으로의 회귀였습니다. 이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오늘 8장의 제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죄악을 벌하시리니 그들이 애굽으로 돌아가리라!" 입니다. 》. 이것은 매우 심각한 경고입니다! 잊어버린 것이 있으면 이전 메모를 꺼내서 살펴보세요. 좋습니다. 계속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를 벌하실 것이며 그들은 이집트로 돌아갈 것입니다! 이것이 네 번째 유형의 그리스도인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의 그리스도인들의 상황을 넓게 보면 이런 간증들이 많이 있는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첫 번째 유형, 두 번째 유형, 세 번째 유형, 네 번째 유형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네 번째 유형의 그리스도인이 많다는 것입니다. 왜? 그가 주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 중에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이 없다는 말씀이십니까? 거기 있었어.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저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경험하고 다시 애굽으로 끌려갔습니다. 제가 지금 성경을 공부하고 있을 때, 제가 이야기한 부부에게는 열 살 된 아이가 있었는데, 두 부부 모두 암 진단을 받은 기독교인이었습니다. 아니면 일종의 생활관, 아, 생활관에서요? 사실 병실로 바꿔야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점차적으로 이 문제를 마음에 새기고 호세아 8장을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그들도 기도하고 제사를 드리며 자기들이 하나님을 아는 줄로 생각하는 것이 문제니 이것이 다 자기 생각대로 되되 이루어지지 아니하는 것이니라 이제 첫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질문] 1: 목사님, 아합과 이세벨은 어떻게 죽었나요?
A: 좋은 일인데 아합은 어떻게 죽었나요? 아합은 나봇의 포도원을 탐냈고 선지자는 이 아합에게 경고했습니다. 나중에 하나님은 하늘에서 집회를 열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아합을 꾀어 전쟁에서 죽게 할 것인가? 거짓말의 영(Spirit of Lies)이라는 이름의 위대한 불멸자가 나타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가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가면 어떻게 고칠 건가요? 거짓말하는 영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 결과 이 거짓말하는 영이 내려왔습니다. 이 거짓말하는 영이 내려간 후에 많은 선지자들이 좋은 말을 했습니다. “아합아, 네가 가면 반드시 이길 것이다.” 야, 이 아합은 아주 강력한 놈이야, 정말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전쟁에 나섰는데 속은 거지.
그는 마차를 몰고 있었고 군인 복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차 위에 서 있는 군인을 생각하면 다른 마차에 탄 군인들과 비슷해 보이지만, 아합의 탈, 이 차는 일반 차가 아니고, 이 차는 고급차임에 틀림없다. 다들 아시죠? 고급차를 운전하는 농부는 훌륭하지만 고급차를 운전하는 농부는 외모로 사람을 판단할 수 없습니다.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화살을 쏘았습니다. 스냅, 아합은 화살 한 발에 죽었습니다. 아, 이번 아합의 죽음은 좀 비극적이어서 아합이 이렇게 죽었습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죽는지 알고 싶다면 조심하고 우리가 어떻게 죽는지도 아는 것이 좋습니다.
이 이세벨, 아합은 죽은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이 이세벨은 여전히 매우 강력한 여자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아합의 휘하에서 반역한 장군 예후를 일으키셨습니다. 예후가 군대를 이끌고 성을 포위하였더니 나중에 그 성이 멸망하고 예후는 이세벨의 망대 밖에 섰더라. 이 이세벨은 그곳에서 옷을 입고 있었고 세상의 종말이 그녀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생겼나요? 미얀마 북부의 이들 사기조직은 코강연합군에 포위됐다가 한꺼번에 포로로 잡힌 것으로 보인다. 이 이세벨은 아직도 이 방에서 파우더를 아주 두껍게 바르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주름이 더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내가 말한 것입니다.
이때 예후가 그와 대화를 나누니 이세벨의 내시들이 그것을 본즉 아합의 왕조가 끝났느니라 그래서 그는 이세벨을 건물에서 던져 버렸고, 그녀는 그렇게 죽었습니다. 그 결과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으러 와서 그 개를 장사지내라고 불렀습니다. 화장장, 하늘장, 해장, 기타 매장지가 있는데 이세벨은 개장장이라 불리며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으러 온다. 왜 아합과 이세벨이 어떻게 죽었는지 묻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개 매장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질문] 2: 목사님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숭배한 이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 중심으로 독선적인 논리 체계에 들어갔습니까? 우리가 운명을 찾지 못했을 때처럼요?
A: 이 이스라엘 사람은 사실 돈 문제로 혼란이 가득합니다. 이스라엘 왕이 누구이든 그는 이스라엘의 돈이 남쪽 나라로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다왕국이라 칭하고 헌금한 돈을 다 거두어야 함 유다를 위한 성전. 기부금 비율은 어떻게 되나요? 15퍼센트입니다. 그러면 이 15%는 다른 나라에 기부되고, 결과적으로 국민들은 세금을 낼 돈이 없게 됩니다. 오른쪽? 정부가 얼마나 많은 세금을 징수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정부가 징수하는 소득세가 20%, 10% 정도인데, 일반 백성들이 15%를 가지고 예루살렘에 있는 유다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바쳤습니다. 생각해보면 이스라엘 왕이 다섯 손가락이 아니라 두 손가락으로 계산할 수 있다는 것은 좋지 않은 일이다.
우리 중에는 이 두 손가락으로 세고 돈이 없으면 살 수 없는 형제자매들이 많이 있을 것 같습니다. 돈이 적을수록 사기를 당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이것이 불운하다고 생각하시나요? 행운을 빕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하면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을 화나게 했습니까? 이스라엘 왕은 내가 이 헌금을 돌려받아야 한다고 계산했습니다. 여로보암은 금송아지라는 것을 발명했습니다. 그래서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들어서 하나는 단에 두고 하나는 잊어버렸습니다. 너희가 이 금송아지를 경배하러 오면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니라.
왜 금송아지를 사용하나요? 이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모든 사람은 소가 여전히 매우 영적인 존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인도에서는 소가 신성한 동물이어서 만질 수 없고, 소가 길을 가면 양보해야 합니다. 나중에 우리는 주식 시장과 강세장을 다루었습니다. 이것이 흥미롭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소는 매우 영적인 존재입니다. 왜? 소의 인상은 여전히 매우 좋습니다. 그 결과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두 개를 만들어 하나는 벧엘에, 다른 하나는 단에 두었으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숭배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나중에 언급한 헛소리도 여기서 나온 것 같은데, 왜일까요? 단지 돈을 모으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을 노엽게 했다고 생각하는가? 하나님은 어떻게 금송아지가 되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금송아지가 아니시므로 그곳에서는 금송아지 전체를 숭배하고 그 사람은 '이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시다'라고 말합니다. 이 사람은 똑똑하면서도 동시에 멍청한 것 같아요 영리함은 어디에 있습니까? 기부금은 모아야 하고, 국민의 기부금의 15%는 나라의 경제 발전을 위해 모아야 합니다. 그런데 다른 각도에서 보면 너무 멍청한데 왜 이렇게 멍청한 걸까요? 거스르지 말아야 할 하나님을 네가 거슬리게 하였으니 누가 감히 하나님을 거스리리이까? 이 논리가 비극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나는 15퍼센트의 돈을 보류하느니 차라리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고 싶습니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하러 유다나 예루살렘에 간다면 그들이 드리는 예물은 세관을 통과할 수 없고 전혀 통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세관검사때 양고기를 어떻게 하시나요? 나는 희생하고 싶다. 아니, 벧엘로 가서 그것을 금송아지에게 바쳐라. 그 금송아지는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 하나님이니라. 이렇게 하면 세관 검사가 매우 엄격해집니다. 만일 당신이 듣지 않고 내가 예루살렘으로 끌려가기를 고집하면 내가 당신을 감옥에 가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러한 부의 길을 막고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습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을 불쾌하게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 사람을 거스르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는데, 하나님을 거스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개미처럼 으깨어 죽게 하신다. 그러면 문제가 생긴다. 그럼 오늘 제가 이야기한 논리를 이해하셨나요? 이 논리 시스템은 세계와 라오마의 것입니다.
[질문] 3: 목사님,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사람에게 나타내셨기 때문이고, 사람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은 연구하고 생각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사실입니까?
A: 사람은 그것을 통해 구해야 하는데, 하나님의 계시를 구하지 않으면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오른쪽! 그냥 거기 앉아서 기다리고 계시나요? 당신은 하나님의 계시를 기다리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것을 당신에게 계시해 주실 것입니까? 아니요, 그것은 인간의 추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구하는 자가 있는지, 깨닫는 자가 있는지 보시려고 보좌에 앉으신 것입니다. 당신은 그것을 찾고 있습니까? 아니, 아주 조금, 너무 조금! 그렇다면 하나님을 아는 것은 구함을 통해서인데, 구함을 통해서는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끊임없이 묵상하고 생각하고 기도함으로써 가능합니다. 성령 충만을 통해 묵상하고 생각하고 기도하지 않고는 깨닫기 어렵기 때문에 구해야 한다고 말씀드립니다.
왜 그것을 추구합니까? 많은 문제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설명할 수 없는 문제가 너무 많아서 보면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게 되고, 구하면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01강, 성경공부, 방금 끝난 요한일서가 모두 나를 힘들게 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는 요한1서의 각 장을 수백 번이나 들었습니다.왜요? 당신은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나타내지도 않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주의 깊게 읽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주의 깊게 읽어보시면 확실히 아실 겁니다.
[질문] 4: 목사님, 구체적으로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요한계시록의 백마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까, 아니면 늙은 말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A: 백마는 확실히 늙은 말을 말하는 것인데 백마는 힘이 아주 세서 백마는 이기고 나면 이기는 것입니다. 어느 날 라오마가 나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는데, 라오마가 나에게 뭐라고 말했는가? 그것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지난 수천 년 동안 우리는 한 번도 전투에서 패한 적이 없으며, 우리는 당신들의 운명 신학에 의해 패배했습니다. 왜 그런 겁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백마를 타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가 본 것은 네 마리의 말이 아니고 나중에 백마를 타신 분은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러므로 백마는 예수님의 산이요, 육신을 이기면 백마를 탈 수 있는 것입니다.
[질문] 5: 목사님 마태복음 10장을 읽었는데,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너희가 예수를 사람 앞에서 알아보느냐가 아니라 사람이 너희를 알아보든지 예수를 알아보든지 그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그를 알아보시리라 아주 분명히 밝히셨는데 성경에는 왜 이렇게 함정이 많습니까?
A: 성경은 한 가지를 창조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누가복음을 보면 이 아이가 많은 사람을 넘어뜨리고 많은 사람을 일으키도록 임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시므온이라는 선지자가 있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시므온은 마리아가 아기를 안고 성전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늙은 선지자는 아기 예수님을 보자마자 메시야가 오실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아이를 안고 “아!”라고 말했습니다. 드디어 눈을 감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는 많은 사람을 멸망시키고 많은 사람이 흥하도록 운명지어졌습니다. 이제 알다시피 그것은 사람을 넘어지게 하고 많은 사람을 일으키려는 것입니다.
[질문] 6 목사님, 약속의 땅에 들어갔다가 호송을 받아 애굽으로 돌아온 사람들이 광야에서 승리했습니까?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 다시 어리석은 행동을 하기 시작했습니까, 아니면 내면의 논리가 변하지 않았습니까?
A: 모두가 알아야 할 사실입니다.광야에서 죽은 사람들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이 남았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들어오게 하셨습니다. 이전 세대의 사람들은 다 죽었고, 다음 세대의 사람들은 행실이 더 좋아졌습니다. 그러나 그 내부의 논리체계는 변하지 않았으며, 세상의 논리체계의 뿌리는 매우 깊습니다. 사람 속에 있는 육신과 세속적인 논리 체계의 뿌리가 아주 깊고, 선악을 구별하는 습관이 아주 깊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쉽게 제거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 결과적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께 큰 문제를 안겨 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문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문제는 자기 백성이 형통하기를 원하시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형통하자마자 하나님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신이 되기는 너무 어렵다고 말하지만 잘 살아달라는 순간 바보가 된다. 그러다가 그들이 어리석게 행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실 것이요, 이방인들이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강탈하고 약탈하고 공격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으매 하나님이 그들을 다시 구원하실 것이라 하나님이 그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 선하게 살다가 또 선하게 살다가 또 하나님을 버리고 또 하나님을 부르고,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또 선하게 살다가 또 다시 하나님을 버리는 이런 순환이 계속되는 것도 잘못된 것이 아닌가. 그것?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사람 안에 있는 금송아지이다. 어쩌면 당신은 내면의 금송아지조차 아닐 수도 있고, 어쩌면 작은 녀석일 수도 있고, 어쩌면 당신은 황금쥐일 수도 있습니다. 내 말은 무슨 뜻인가요? 내가 말하는 것은 사람 속에 있는 일련의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다면 조만간 비극이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몇 년부터 나왔느냐? 모세 때부터 주신 것이요, 호세아 때까지 그들 앞에는 믿음의 큰 사람들이 많이 있었더라.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셀 수 있고 그 다음은 모세, 다음은 사무엘, 그 다음은 다윗이며, 모세와 사무엘 사이에는 여호수아 외에 더 많은 사람이 있었고, 다윗이 온 후에 그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호세아 당시에는 엘리야와 엘리사가 실제로 그 당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문제는 이 사람은 왜 변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남들이 사는 큰 집을 보면 불편하고, 나만의 작은 집을 보면 불편하다. 그러다가 사람들은 비교하고 경쟁하고 질투하기만 하면 세상의 이런 것들을 향해 달려가다가 장래에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단지 항아리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거스릅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영원한 영광의 소망이 없고 이 세상에 소망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고 마침내 애굽에서 종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는 우스꽝스럽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선택하셨으나 그들은 하나님께 엄한 징벌을 받았습니다. 안 그래? 그렇다면 내가 말하는 주제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이며,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로 인해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개인적인 경험으로 볼 때 조금 실망스럽습니다. 정말 조금 실망스럽습니다.
오늘의 Q&A는 여기까지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바람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