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호세아06장-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엄위하심
필기를 참고
1.호세아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
하나님은 자기를 사랑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서는 자에게는 인자하시지만, 자기를 미워하고 완고한 자에게는 엄히 대하십니다.
2.하나님께로 향하는 자 하나님은 인자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이시라
부드러운 마음을 갖는 습관을 기르십시오. 굳은 마음은 하나님께로 돌이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방식을 결정합니다.우리는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선지자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맞춰야 합니다.
인생의 한 가지 문제,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신은 실수할 수 없고, 귀신도 실수할 수 없습니다.
3.하나님은 하나님을 버린 자에게 엄위하시느니라
사람이 인생에서 해야 할 일은 오직 한 가지, 곧 하나님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제사를 사랑하지 아니하시며 하나님 아는 것을 번제보다 더 좋아하시느니라
사람들은 단지 돈 때문에 악한 일을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엄하게 대하실 것입니다.
4.반드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바다를 채우는 물과 같으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끝이 없느니라
하나님을 알기 위해 부지런히 노력하십시오. 즉, 무슨 일이 있어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찢어지심과 상하심을 경험하자마자 나는 내가 추구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즉시 깨닫게 됩니다.
잘못된 복음을 믿는 자도 저주를 받고, 잘못된 복음을 전하는 자도 저주를 받을 것이다.
5. 주님께로 돌아오라
우리가 심판을 받은 후에도 여전히 주님께로 향하는 이유는 과거에 우리가 우리의 길을 선택하고 우리의 뜻대로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마귀에게 사로잡혀 가는 것을 허락하시고,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포로 생활에서 돌아올 때 하나님의 풍성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것을 사랑하시며, 선한 일을 추구하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6.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세요
많은 사람들이 환난을 겪어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데,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호세아서 6장을 보겠습니다. 호세아서 6장을 읽고 나면 혼란스러울 것인데, 혼란스러운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그 안에는 두 가지 형태의 하나님이 묘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기도 하고 저러기도 하고, 하나님은 이러기도 하고 저렇기도 하는 동일한 하나님이십니까? 하나님은 종종 혼란스러워하시나요? 선거에서 엄한 신이 자주 뽑혀 왕조가 바뀌었기 때문일까? 사실 청나라가 한나라로 바뀌고 황제가 바뀌어서가 아니라 우리 하나님들 덕분이다. 당신은 그분을 알아야 합니다!
이 하나님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사실 구약, 신약, 성경에는 모두 상응하는 논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알라! 이번 장에는 그런 문장이 없어서 여기에 올렸습니다. 왜 이 문장을 포함시켰는가?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이런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호세아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사도 바울의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비슷합니다. 사실 하나님의 원래 모습은 이러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까? 그분은 그분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가혹함을 보이시나요? 하나님은 자신을 미워하는 자들에게 엄하게 대하십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실수하지 마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산타클로스가 아닙니다! 사실 우리 하나님은 한편으로는 인자가 넘치는 하나님이시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 이러한 이해를 갖고 계속해서 읽으면 혼란이 전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십니까? 하나님은 그분께로 돌이키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께로 돌아오는 사람들에게 자비가 가득하십니다! 그렇다면 엄숙함이 가득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만약 당신이 완고하고, 불순종하고, 결국 완고한 사람이 된다면, 하나님은 매우 엄격하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 형제자매들은 여러분이 고집을 부리기 전까지는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너무 늦습니다! 나는 많은 암 환자들을 섬겼는데, 암 환자들이 하나님의 자비를 몇 번이나 경험했더라도 그것을 경험한 후에도 여전히 똑같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런 일을 겪어보면 그들이 계속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들은 다시 하나님의 준엄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와서 기도하고, 제사를 드리고, 이런저런 일을 하는데, 이때쯤이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됩니다! 실제로 영상 속 내 눈앞에서 암환자 몇 명이 사망했다.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묻습니다. 목사님! 모두가 나았다서 다 치유받아 하지 않았습니까? 사실 그들 모두가 치유를 받았으니 그 사람도 이미 치유를 받은 것입니다! 그의 병은 어디서 왔는가?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닌가?
지난 장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심판 후에 하나님이 더 이상 긍휼을 베풀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실,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당신은 반드시 하나님의 자비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호세아가 하나님을 이해한 것이니, 호세아가 혼란스럽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도 혼란스럽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은 이러하고 저러하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이실까? 사실, 하나님은 결코 변하지 않으십니다!
구약과 신약에서 하나님은 은혜로우시며 엄위하시다는 동일한 속성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신약의 '은혜시대'에 그쳐서는 안 되며, 은혜시대에도 암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암에 걸리지 말고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말하세요, 그것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 향하는 자와 하나님을 배반하는 자, 마음이 여린 자와 강퍅한 자의 결말은 전혀 다릅니다!
1. 호세아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르 ㄹ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호세아 6:1-3)
사실,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사람이 희망을 잃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그러므로 이 장에서 호세아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매우 분명하다. 호세아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십시오: 오라,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가자! 그가 우리를 찢으시고 상하게 하시며 싸매어 주시리니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우리는 주님을 알고 그분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분의 모습은 참으로 아침 햇살 같고 단비처럼, 밭을 적시는 봄비처럼 우리에게 오실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을 경험하고 싶나요? 그러한 하나님을 경험하고 싶다면 하나님께로 돌아갑시다! 왜 하나님께로 돌아가지 않습니까? 사람 속에는 아주 사악한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음식이나 약으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소비를 위한 화폐로 사용될 수 있나요? 나는 생각했다: 그것은 당신이 정확히 무엇을 경험했는가에 달려 있다?
2. 하나님께로 향하는 자 하나님은 인자하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이시라
오라 우리가 여호와꼐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호세아 6:1)
오늘날 모든 사람은 인간의 경험이 하나님에 대한 이해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면 망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고치심을 경험하고 나면 하나님이 우리를 찢으신 것처럼 마음에 근심하고 끝난 것 같아요. 이런 생각을 하면 큰일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의 시련을 겪을 때 그의 내면의 이해는 하나님이 우리를 찢어 놓는 하나님이라고 잘못 생각할 것입니다!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다섯 달란트 받은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한 달란트를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마태복음 25:15-18)
성경에 은 다섯 달란트과 은 두 달란트과 은 다섯 달란트의 비유가 있는데 은 한 달란트을 가진 자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알지 못하느니라! 두 달란트을 얻음으로 잘 관리하면 두 달란트을 얻을 것이요, 다섯을 잘 관리하면 다섯 달란트을 얻으리라.
오늘날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있는 우리들을 하나님께서는 너희를 찢으시고 다루시며 너희가 죽기를 원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원하시느니라! 왜 당신을 상대합니까? 당신에게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나쁜 습관과 나쁜 습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이런 문제가 있는데, 하나님이 당신을 다루지 않으면 당신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을 처리하실 때 그는 그것이 눈물이나 상처라고 잘못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실수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질병은 어디서 오는가? 당신이 그리스도인이든 목사이든 당신의 질병은 하나님의 징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두려위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마태복음 25:24-28)
그래서 오늘은 모두가 마음이 부드러워지는 습관을 기르도록 권장합니다! 마음이 강퍅하고 상하면 어리석은 자여 일단 마음이 강퍅하면 하나님께로 돌이킬 줄을 알지 못하리라! 하나님이 당신이 죽기를 바라실 것 같나요? 하나님은 당신이 죽는 것을 원하지 않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가난하게 살기를 원하신다고 생각하시나요? 하나님은 당신이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하는 방식을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이 심지 않은 한 달란트의 은을 거두고, 흩어지지 않은 부분을 모으는 것이 마치 저승의 우두머리가 된 것처럼 느꼈습니다! 알다시피, 이 뇌는 완전히 망가졌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언제부터 그렇게 생각하셨나요?
사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의 번영을 경험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일으키고 빛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이것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만일 당신이 하나님에 대해 터무니없고 그릇된 견해를 갖고 있거나 하나님이 당신을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것만 마셔도 충분하고 고통을 받기에 충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오늘날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선지자의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유한 후 모두가 아이디어를 얻었나요? 다시 읽어 보면 선지자들의 말에도 혼란이 없으시며 우리 하나님께는 혼란이 없으시니 우리 하나님은 그러한 하나님이신 줄을 아노라
신약성경을 보면 많은 바보들이 신약성경에는 저주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는 인터넷에서 저주라는 단어를 클릭하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 저주가 언급되어 있다는 사실을 모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는 구약성경뿐만 아니라 신약성경 전체에도 흐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은 구약성경뿐만 아니라 신약성경 전체에 걸쳐 공존하고 계시며, 우리 하나님은 결코 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은 귀신이 아니라,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우리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의 삶을 통제하는 것은 마귀가 아니라, 당신의 삶을 통제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내 인생의 한 가지 문제만 해결하면 충분합니다. 그것은 바로 평생 동안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평생 그분을 경외한다면 많은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 누군가 물었습니다. 목사님! 당신도 아프면 어쩌지? 회개하라. 나도 거룩함의 전형이 아니니라!
이 사건은 항상 하나님에 대한 나의 이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아시다시피,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나쁜 일을 경험하면 먼저 불평하고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 착각하고 계시나요 사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테스트를 통과했다면 먼저 실수를 했는지 반성해보세요! 사실 내 생각으로는 신은 실수할 수 없고, 귀신도 실수할 수 없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될 것이다. 실수하는 사람은 우리뿐이다. 이것이 나의 논리이다! 이런 논리가 자주 깨질까요? 희귀한! 어떤 사람들은 종종 분열되는데 누가 당신에게 가혹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께 등을 돌리는 자에게 엄하게 대하십니다! 사실 이 논리는 고대부터 변하지 않았습니다!
3. 하나님을 버리시는 하나님은 엄하시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꼐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호세아 6:1-3)
이 장에서 하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셨다고 생각하는가? 앞서 호세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서!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우리를 찢으시고 상하게 하시며 결박하실 것이나 너희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이틀 후에 그분이 우리를 살리실 것이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실 것이며, 그 후에 우리가 그분 앞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알고 그분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분의 모습은 참으로 아침 햇살 같고 단비처럼, 밭을 적시는 봄비처럼 우리에게 오실 것입니다.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호세아 6:4)
하나님은 방금 말씀을 마치셨고, 이 장의 4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무엇을 하겠는가? 주의 선하심은 아침 안개 같고 빨리 사라지는 이슬 같으니이다.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선은 잠깐이요 너희의 악은 오래 지속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내 선지자들로 저희를 멸하며 내 입의 말로 죽이니 내 심판은 빛 같이 나타나느니라 하나님의 심판은 빛의 속도로 임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능력이 있고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을 살게만 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사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죽게도 합니다! 바울의 편지들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 이것이 바울의 논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을 죽게도 하고 살게도 하고, 하나님은 사람을 축복하게도 하고 저주하게도 하며, 사람에게 좋은 일과 나쁜 일을 경험하게 할 수도 있고, 축복과 재앙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지 알아보기 위해 성경을 주의 깊게 읽어 보십시오. 재난도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에서 한 가지 옳은 일을 하는 한 그것은 하나님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내 말대로 네 팔이 넓적다리를 꺾지 못하며 네 팔이 하나님의 새끼손가락을 꺾지 못하겠거든 하나님과 경쟁하지 말라 비록 경쟁하여도 경쟁할 수 없느니라 하지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 경쟁하지 마세요! 그러므로 내 마음은 어렸을 때부터 비교적 부드러워서 딱딱함이 거의 없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저를 때리려고 하자마자 저는 즉시 굴복하고 제가 틀렸다고 말했습니다! 아직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나요? 잘못을 인정했어요 아버지는 손을 드셨지만 제가 이렇게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고 다시 거두셨습니다! 그러다 어느 부분이 잘못된 건지 천천히 생각해 봤습니다. 이것은 속임수가 아닙니다. 부모님이 손을 모으고 고개를 돌릴 때까지 기다리지 마세요. 이건 힘든 일이 아닌가?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치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니 내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으니라.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세아 6:5-6)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를 사용하여 그들을 멸하셨고, 호세아는 이제 끝났으며 하나님의 심판이 이스라엘에게 임할 것이라고 선언했습니다. 선지자가 선포한 심판은 이스라엘에게만 임할 것이 아니요 유다와 땅에 있는 모든 백성에게 임할 것이라 당신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그렇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알아야 합니까? 하나님은 제사를 좋아하지 아니하시고 인을 사랑하시며 번제보다 하나님 아는 것을 더 좋아하시느니라
암환자가 있었는데 목사님, 저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번제물이라고 하나요? 그것은 번제물도 아닙니다! 번제란 무엇입니까? 몸을 바쳐라! 그것을 번제물이라고 합니다! 번제물보다 하나님을 더 알기를 원하십시오. 이거 모르면 빨리 기도해 주면 죽겠다! 나는 물었다: 최근에 당신의 회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그는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단지 "최근에 배변할 때 아직도 약간의 통증을 느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인을 사랑하시고 제사를 사랑하시지 아니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을 번제보다 더 사랑하시느니라! 기도가 만병통치약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만병통치약임을 아십시오!
사람이 하나님을 모른다면 그것은 인생의 비극입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완고합니까? 나는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고, 단지 내 일에만 관심을 갖고 싶었습니다. 예전에는 자기 똥만 신경쓰느라 똥도 못싸고, 똥 싸면 아프던데, 생각해보세요 똥 조절도 못하는데 뭘 더 할 수 있겠습니까? 아직 하나님을 모르신다면 빨리 돌아와서 알아가세요! 너희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알고 하나님의 준엄하심을 안다면 오늘 나는 하나님의 준엄함을 체험하였으니 바꾸리라! 그러면 이스라엘이 무엇을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호세아 6:7)
기만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나는 변하는데, 하나님이 돌아서시면 무엇을 바꿔야 할까요? 당신은 너무 작아서 내가 당신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이것은 배신 행위입니다. 정말 이해가 안 가네요. 하나님은 다 아시고, 귀신도 다 아시는데도 당신은 여전히 속임수를 쓰는데, 당신은 어떤 속임수를 쓸 수 있나요? 결국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속이고 말았다!
길르앗은 행악자의 고을이라 핏발자취가 편만하도다.강도떼가 사람을 기다림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저희가 사악을 행하였느니라.내가 이스라엘 집에서 가증한 일을 보았나니 거기서 에브라임은 행음하였고 이스라엘은 더럽혔느니라.(호세아 6:8-10)
왜 이런 것들이 있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말합니다: 그것은 단지 돈을 위한 것입니다! 그 사람이 돈이 그를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면 왜 아직도 돈을 위해 일을 하겠습니까? 사람의 눈이 그 사람의 살아 있는 몇 년, 몇십년에만 쏠려 있으니, 사람의 눈이 몇 년, 몇십년에만 쏠린다면 너는 당연히 하나님의 원수이다! 당신이 하나님과 땅의 정부의 원수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단지 냄비의 물만 마시면 충분합니다! 당신에게는 충분합니다. 마약 밀매와 사기에 연루된 사람들을 보십시오. 누가 잘 살겠습니까? 아니요! 그들이 그것을 시작했을 때, 그것은 10년 이상 번창했고, 이 10년 동안 그들은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나 10여년이 지난 지금 당신은 동방의 대국을 도발했는데, 그것만으로도 한 잔 마실 수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을 욕하면 어쩌지? 한 잔이면 충분해요!
사람들이 왜 악을 행하는지 알아야 합니까? 그것은 모두 돈에 관한 것입니다! 돈이 전부가 아니고 돈을 종이처럼 여긴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돈에 관한 모든 것, 돈에 관한 것이 아닌 것은 무엇입니까?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을 모른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너에게 엄하게 대하실 것이다! 당신은 스스로에게 매우 주의 깊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알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이 통제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우리 하나님은 매우 엄격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나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께로 향하는 사람들에게 친절과 선하심을 가득히 베푸신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그러니까 사람이 먼저 마음을 누그러뜨려야 하는데, 왜 고집하는 겁니까? 원칙을 고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무 의미 없다. 여기서 선지자는 무엇을 말합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호세아 6:3)
저는 호세아 선지자가 썼다고 믿습니다. 당시 녹음이나 영상, 영상이 있었다면 선지자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목소리가 쉬어졌을 것입니다. 그 교차점에 서서 그는 매우 과장된 표현과 동작을 사용하여 다음과 같이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여호와를 알아야 하고 그분을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아는 것입니다! 그분을 알기 위해 최선을 다하십시오. 그러므로 오늘날 중국 운명신학에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그분을 알기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의 자녀는 1 더하기 1은 2, 2 더하기 3은 8에서만 멈출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1 더하기 1은 2이고 나머지는 다 엉망이라는 것만 알면 불안해 죽겠느냐?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내가 주님을 믿고 은혜로 구원받았으며 죽은 후에 천국에 갈 수 있다고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 내가 당신을 지옥에서 살게 만드는 것은 어떻습니까? 치명적이지 않겠습니까?
4. 반드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라
비전신학은 그러한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바다를 채우는 물과 같으니라! 컴퓨터에 대한 지식은 태호에 물을 채우는 것과 같고,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바다에 물을 채우는 것과 같습니다. 바다를 본 적이 있나요? 해변에 서서 끝없는 바다를 바라보면 깊고 끝없는 느낌이 사람들을 무섭게 만듭니다. 바다를 보면 기분이 좋아지네요 바다가 너무 넓어요! 내가 예수님을 믿었다는 사실에만 그친다면 나는 말문이 막혔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는 끝이 없음을 알라! 오늘 말씀드리게 되어 유감입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서는 무엇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습니까? 첨단 기술이지만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여전히 저기술 수준입니다. 교육 시스템과 도구는 최첨단이지만 교육 방법은 수백 년 동안 변하지 않았습니다. 확신하시나요? 확신합니다. 기독교 신학 체계는 초기에 바울이 전파한 순수한 복음을 버린 이후 거의 2천년 동안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이상한 일을 좋아해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당신이 믿는 예수가 옳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그는 말했습니다: 나는 니케아 신조와 사도신경을 암송할 수 있습니다! 나중에 우리는 이것들을 버렸는데, 가지고 다녀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것은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경에서 끝나나요? 이것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도신경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곧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천지의 창조주를 내가 믿사오며, 하나님의 독생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내가 믿사오니,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셨고 음부에 내려가셨다가 삼일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고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저리로서 산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나는 성령을 믿사오며 성령과 공교회를 믿사오며 성도의 교통을 믿노라 죄사함을 믿노라 몸의 부활을 믿노라 영원한 생명. 아멘! 당신이 이 말을 외우면 귀신들은 당신에게 관심을 두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당신에게 힘을 가져다 주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알기만을 추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대에서 우리는 한 가지 일을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끝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이것을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데는 끝이 없으니 온 힘을 다하여 하나님 알기를 추구하라. 니케아 신조만 외우면 온 힘을 다해 추구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노력할 필요도 없고, 운전면허 1과목을 보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는데, 사람들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얼마나 단순화되었다고 생각합니까?이 사람이 어떻게 선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비극이 아닌가? 어쨌든 하나님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아십시오. 온 힘을 다해 추구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나는 지난 6개월 동안 꽤 많이 성장했지만, 충분하지 않습니다. 지난 6년 동안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지만 아직은 부족합니다. 지난 60년 동안 엄청난 성장이 있었지만, 그분을 알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친절을 인식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아십니까? 아이가 1학년, 2학년, 3학년 때 반에서 1등을 하면 자존심 때문에 꼴찌가 됩니다. 그는 더 이상 6학년도, 중학교 1학년도 공부하지 않는데, 그의 부모는 어떻게 될까요? 만약 우리 부모님이라면 분명 나를 때렸을 것이다. 항상 이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반에서 1등이었어요! 좋은 사람은 자신의 용기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즉, 우리가 선한 사람이라면 과거의 위대함을 핑계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항상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미래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앞으로는 더 높은 영적 정상에 오를 수 있을까요?
오늘 나는 당신에게 작은 부탁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걷어차실 때까지 기다리지 마십시오. 그 큰 발차기면 충분합니다. 당신은 너무 작아서 신의 발차기를 견딜 수 없습니다! 빨리 전진하세요, 신이 당신을 걷어차기 전에 빨리 전진하세요. 하나님의 표현에 뭔가 문제가 있음을 발견했을 때, 그분께 “왜 문제가 있습니까? 당신의 표정이 바뀌었나요?”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이 말을 잘못된 방식으로 사용했고 하나님은 가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얼굴이 바뀌었습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이렇게 말할 자격이 있고, 우리는 하나님, 당신의 얼굴이 변하셨습니까?라고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이것은 문제를 찾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준엄하심을 알려는 노력에는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성산에는 셀 수 없이 많은 동굴이 있고, 각 동굴에는 마법의 무기와 진리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의 발전이 끝이 없다면 신학은 더욱 끝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학을 정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끝이 없고, 하나님을 아는 것은 너무 어렵고 할 일은 너무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험할 때, 하나님의 찢김과 상처를 경험한 후에는 속히 하나님께로 돌아오십시오. 내가 추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내가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는 기꺼이 변화하고 최선을 다해 여러분을 알아가겠습니다. 사람이 해결해야 할 문제는 하나님을 아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난 몇 년 동안 많이 성장했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몇 년 동안 오늘 한 사람을 목회했는데, 그 사람 뒤에 있는 마귀가 너무나 강력하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공부하다 보니 지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목양하는 사람 뒤에 있는 귀신이 끌어죽이려고 하는데 내가 끌고 살려고 하다가 귀신과 경쟁을 하게 되었는데 끌려가는데도 제압당하는 게 너무 힘드네요. 하지만 온 힘을 다해 하나님 알기를 추구했기 때문에 결과는 괜찮았습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실제로 영의 세계를 아는 것이고, 영적인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결과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이해하고, 영계를 이해하고, 영적 진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다 보니 목회적인 문제도 많았고, 그 이유도 한눈에 알 수 있었습니다. 해봤기 때문에 확실히 이해합니다. 당신이라면 나처럼 이런 기회가 없었을 수도 있으니 전력을 다해 추진해야 한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20대 아이를 데리고 나를 찾아왔습니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2+3=얼마나? 그는 돌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2+3=8. 나는 다시 물었다. 정말 8과 같은가? 그는 마음을 바꾸고 말했습니다: 7과 같습니다. 나는 다시 물었다. 정말 7과 같습니까? 그는 또한 3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내가 다시 그를 쳐다봤을 때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완전히 혼란스러워했습니다. 무슨 일이야? 봉사하는 방법? 귀신을 쫓아내는 것 외에는 잘 안되는 것 같아요! 유령이 어떻게 그를 이렇게 만들었지? 학교 선생님이 그에게 학습 장애가 있는 아이라는 뿌리 깊은 거짓말을 심어주어 학습 장애 아동이라는 낙인을 찍었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라는 낙인이 찍힌 이후, 그 아이는 매우 갈등을 겪게 되었고 자신에게 학습 장애가 있다고 느낍니다.
전염병이 돌기 전, 나는 이 아이에게 숫자를 배우는 방법을 가르쳤습니다. 왜? 왜냐하면 교사가 그에게 학습 장애라는 딱지를 붙인 후에도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알았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고, 지금이 몇 시인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나는 그에게 하나의 개념을 이해하도록 가르쳤고, 둘은 둘이고, 셋은 셋이고, 넷은 넷이고, 둘과 셋을 합치면 다섯이 된다고 말했고, 마침내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이 해결되었습니다. 나. 그러나 얼마 후 그는 더 이상 암산을 할 수 없었고 2+3이 무엇인지도 몰랐지만 계산기 사용법을 배웠습니다. 나중에 나는 그가 왜 다시 이런 행동을 하기 시작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오! 그것은 그림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사실 그림이란 자신의 기질에 따라 그리는 것일 뿐 옳고 그름은 없습니다. 옳고 그름이 없기 때문에 그는 2+3의 정확한 숫자를 또 틀렸습니다. 여러분, 조심하세요! 사람의 본성을 따르는 것은 무엇이든 사람을 패괴시킬 것입니다. 정말로 그에게 미켈란젤로 같은 작품을 만들어 달라고 하면 그는 반드시 미켈란젤로처럼 보이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유를 아시나요? 혼란스럽거든요. 오늘날 우리가 아이들을 가르칠 때, 우리는 아이들이 특정한 규칙을 찾아 깔끔하고 명확한 작품을 만들기 시작하기를 원합니다. 특히 오늘날 미술에서는 자발성을 추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가혹하고 어떤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시는지 알아야 합니다. 신약에 이런 말씀이 나온다면 놀라지 말고, 잘못된 복음을 전하고 잘못된 복음을 믿으면 저주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듣지 못하고 자신만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 저처럼 온 힘을 다해 추구하는 사람들은 좋은 커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온 힘을 다해 추구하지 않는다면 신학 몇 편만 읽어도 기분이 좋아질 것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그냥 무작정 하게 되는데 어떻게 하면 더 좋을까요? 잘못된 복음을 믿는 것과 잘못된 복음을 전하는 것은 모두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한번은 제가 호텔에 묵고 있는데 한 자매가 저를 만나러 왔습니다. 그녀는 그날 교회 모임에 참석했는데 목사님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치료하지 않으시면 당신은 계속 믿겠습니까? 당신은 매우 자신감 있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당신이 틀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만약의 여지가 없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성경도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과 다르고, 그가 전하는 것도 다릅니다. 잘못된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게 될까요? 확실히 그럴 거예요.
이 자매님은 그 교회를 10년 넘게 다니다가 요도염에 걸리게 되었는데, 요도염으로 인해 소변이 자주 마려워지는 증상이 있어서 10분에 한 번씩 화장실을 가야 하는 게 너무 귀찮습니다. 고속도로를 운전할 때 화장실 가기가 불편하다면 기저귀의 두께는 얼마나 필요할까요? 그 결과 그녀가 나에게 왔을 때 나는 모든 사람이 치유될 것이라는 믿음을 전했고, 그녀는 그날 치유되었다. 2주 후 다시 전화했더니 요도염이 완전히 나았고 재발도 없었다고 하더군요. 사실 그녀는 이전에 요도염을 앓은 적이 없었고, 그 교회에 다니고 나서야 병에 걸렸으며, 게다가 매일 목사님의 설교를 들었습니다. 그녀는 치료될 수 있습니까?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을 알려면 사람의 체험에 따라 말해야 하지 않고 하나님의 원래 뜻에 따라 말해야 한다.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호세아 6:1-2)
이것은 아주 분명한데, 당신은 그런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심판하시자마자 당신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 왜 나를 이렇게 대하는 걸까요? 하나님께서 당신을 불쌍히 여기시는 것처럼 행동한다면, 당신은 망할 것입니다!
5. 주님께로 돌아오라
우리는 심판을 받을지라도 여전히 그분께로 향합니다. 왜? 과거에는 우리는 우리 자신의 길을 가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했기 때문입니다. '판관들'의 마지막 문장을 아시나요?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누구나 포로와 귀환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누가 당신을 포로로 가도록 허락했습니까? 마귀들이 너희를 사로잡도록 허락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여러분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귀신의 손에서 구원하실 것이며 여러분은 하나님의 풍성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유다여 내가 내 백성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네게도 추수할 일을 정하였느니라.(호세아 6:11)
오늘날 우리가 포로 생활에서 돌아올 때 하나님의 풍성함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형통케 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사실 때로는 형제자매들이 마음이 굳어지는 모습을 볼 수 밖에 없어서 마음이 힘들 때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견디지 못할까 봐 감히 깊은 말을 하지 못합니다. 오늘 나는 감히 다시 한 번 말하겠다. 네가 겪은 일 중 어느 것이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로 인한 것이 아니냐?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선을 좋아하지 않고 제사, 즉 제사, 닭 한마리, 오리, 생선 등만을 좋아할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하나님은 번제를 좋아하지 않으시며,사람이 하나님을 알고 선을 구하는 것을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기도하는 사람일 뿐이고 하나님을 모른다면 기도만 하거나 십분의 일을 드려도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로 돌아가려면 먼저 마음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하며,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 지금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알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결심하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다시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형제자매들은 눈에 문제가 있든, 머리에 문제가 있든, 엉덩이에 문제가 있든, 경직된 자세를 멈추고 몸을 이완하고 부드럽게 해야 합니다. 얼굴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겪는 고통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회개하기 시작하고 이 죄로 인한 고통을 멈추십시오. 내가 당신을 알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나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 Douyin에 모든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비디오를 보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여러분은 나의 창세기와 전도서를 모방할 수 있습니다. 무작위로 한 장을 골라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면 당신은 정말 대단합니다. 포로 생활에서 돌아올 때, 당신은 하나님의 충만함, 즉 하나님께서 정하신 추수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길을 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찢어버리고 상하게 하실 것이고, 돌아오면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풍성한 은혜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6.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세요
호세아 시대에는 이스라엘 나라와 유다 나라가 멸망하지 아니하였더니 백년 후에 유다 나라가 멸망하였더라. 유다가 멸망한 후 페르시아 제국이 일어섰고,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당시 말라기, 학개, 에스라, 느헤미야는 모두 그 시대의 선지자요 지도자들이었는데, 그들도 동시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다들 돌아왔나요? 반환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돌아온 후에는 모두가 제멋대로로 돌아갔고, 모두가 자기 집 일에 분주했으며, 하나님의 성전은 황폐해지기 시작했고, 그들은 괴롭힘을 당하고 성벽이 무너졌습니다.
성벽을 쌓는 데 며칠이 걸리나요? 왜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낭비되었습니까? 실제로 느헤미야가 귀환한 후 성벽을 재건하는 데는 52일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인들이 자신들의 소소한 삶을 살아가느라 바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말라기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비난했습니다. 왜 그들이 계속해서 저주 아래 살고 있습니까?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여러분의 마음은 아직도 뜨겁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돌아온 후, 작은 날들에 완전히 망했고, 그들의 자비는 아침 구름과 빠르게 퍼지는 이슬처럼 잠시만 지속되었습니다. 인간의 친절은 너무 짧습니다. 사람들은 교훈을 얻어야하지 않습니까? 마침내 하나님께 회개했지만 그것도 잠시뿐이었고, 다음날 잊어버리고 또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 결말은 정말 너무 비극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저희를 치고 내 입의 말로 저희를 죽였노니 내 심판은 발하는 빛과 같으니라.(호세아 6:4-5)
사람이 어떻게 완전히 회개할 수 있습니까? 호세아 시대에는 유다와 이스라엘이 모두 정복되지 않았으나, 말라기 시대와 다니엘과 느헤미야 시대에는 모두 포로 생활을 했습니다. 사람이 소소한 삶을 살다 보면 사명을 잃고 하나님의 말씀까지 파괴하게 되므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은 칼과 같아서 사람을 죽이게 됩니다. 왜 사람들은 기꺼이 회개하기 전에 고난을 겪어야 합니까? 이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호세아』 6장을 통해 우리는 교훈을 얻고 소소한 삶을 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