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요한 1서 제03장-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라

필기를 참고

1.당시 교회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논리 체계가 잘못되어 성경을 믿을 수도 읽을 수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죽어도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해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에 어떻게 순종할 것인가가 혼란스럽다.
귀신은 교회에 가기를 좋아합니다 귀신은 주님을 믿는 사람, 귀신처럼 생긴 사람을 붙잡기를 좋아합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그것을 종교의 모습으로 포장하고 피상적으로 만드십시오.
하나님의 표준은 매우 높으므로 우리는 그 표준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2.사랑의 혼란

육신적인 사랑은 매우 사악하고 무익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형제를 위해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비용 효율적입니다.하나님을 사랑하면 모든 저주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사랑 하나님은 형제 사랑으로 시험을 받으십니다.

3.죄의 혼란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였으니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육신의 정욕은 옛 말의 제도니라.
사람이 믿지 않으면 죄이며,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열심히 일합니다.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기꺼이 죄를 버리려면 얼마나 오랫동안 어리석어야 합니까?

4.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과 같아야 합니다.

주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나타나십니다.
사람은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계명대로 서로 사랑합니다.

5.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께는 다 받으리라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므로 이를 전하면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는 복을 받습니다.
자기 자신만을 사랑한다면 이 길은 따라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서론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요한1서 3장을 공부하겠습니다. 이 요한1서는 읽기가 너무 어려워서 주님을 믿은 이후로 한 번도 이해하지 못했고, 내가 읽은 관련 성경공부에서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내가 이해하지 못한 것인지, 모두가 이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나와 비슷한 것 같다. 여기에는 매우 치명적인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즉, 왜 모두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은 죄를 짓지 아니하는데 어떻게 사람이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날마다 죄를 짓는데,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기준을 낮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9)

하나님의 기준이 낮아진 적이 없는데,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세상의 논리체계에 따라 하루 종일 세상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남들은 관직생활을 하는데 당신은 관절염, 여기저기 통증, 온갖 이상한 질병, 심지어 암까지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도가 다른 사람에게는 잘 먹히지만 우리에게는 안 먹히는데 무엇이 문제입니까? 단지 우리 내면의 논리 체계가 잘못된 것일 뿐,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때 우리의 자연스러운 반응은 이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다 읽으면 읽을 방법이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장로 요한이 쓴 『요한일서』 제3장,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여러분, 이 문장을 적어서 우리 마음속에 깊이 새겨두시기 바랍니다. 내 마음 깊은 곳에 큰 혼란이 있는데 당신도 그런 혼란을 겪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즉, 이 세상에서 주님을 위해 대가를 지불할 가치가 있습니까? 나는 그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우리는 죽기까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해야 합니다. 그건 명령이야 군사 명령은 산과도 같으니 농담으로 생각하지 마라.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명령이 효과가 있어서 음식으로 먹을 수 있고 돈으로 쓸 수 있고 약으로 먹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내 머리 속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나의 혼란이 아닙니다 나의 혼란은 하나님의 명령에 어떻게 순종하는가?

1. 교회가 직면한 문제와 고민

아마도 당시 교회도 이 장로 요한이 쓴 이 편지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도 많은 문제와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이 문장을 쓴 것은 매우 의미가 깊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의 논리체계가 계속해서 교회 안으로 침투하고 있고, 귀신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기를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너희가 주님을 믿으면 조심하라 귀신들은 믿는 자들을 사로잡기를 좋아하느니라 이 말을 듣고 두렵느냐? 그렇지 않다면 겁을 먹어야 합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오늘은 괴담 하나를 전해드리겠습니다. 사탄은 마귀에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만일 그가 교회를 타락시키면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귀신은 교회를 타락시키기는 어렵지만 나이트클럽에는 전혀 타락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교회 문 앞에서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교회의 형제자매들이 드나들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마귀에게 사로잡히게 됩니다.당신 안에 설치된 시스템이 같은 것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악마.

지난 몇 년간 봉사하면서 많은 교훈을 얻었는데, 예전에 섬겼던 분은 싱가폴에서 10년 동안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는데, 자신의 재정 상황을 보고 불편해하셔서 우리는 불안해졌습니다. 가끔은 빨리 키 크고 잘생기고 돈 많은 사람 찾아서 결혼하고 싶은데, 키도 작고 잘생기지도 않고 심지어 부자도 아닌 사람을 만난다면 더 나쁘지 않을까요? 어느 날 몸에 귀신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원래 노래를 못했는데, 그날 귀신이 쫓겨나자마자 노래를 부르기 시작해서 프로 수준까지 노래를 부르게 됐다. 우리가 처음 만난 것도 이때였고, 대화 끝에 그녀를 사로잡은 마귀의 이름은 샤오칭(Xiaoqing)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몇 년 전, 나의 조상은 부유한 집에 살았는데, 샤오칭이라는 첩이 있었는데, 평생 슬픈 노래를 자주 부르다가 나중에 목을 매어 자살했습니다. 그녀 세대까지 Xiaoqing의 마귀은 그녀 내부의 시스템이 세상에 속했기 때문에 그녀 안에 살았습니다.

그녀는 교회에 와서 우리의 가르침을 통해 서서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고 더 이상 이 미귀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귀신이 쫓겨나면 귀신이 드러날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밖으로 내보냈고 마귀은 갈 곳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교회에 가야 한다며 뒤에서 나이트클럽에 가는 것을 거부했다. 사탄이 교회를 타락시키려고 특별히 보낸 것이라고 했고, 나이트클럽에 가면 장사를 할 수 없고, 돌아가서도 장사를 못 하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매우 잔혹한 전자사기조직처럼 마귀도 사실상 무기력하게 그 일을 하고 있다. 내 친구가 그 교회의 목사였기 때문에 나는 그에게 다른 교회로 가라고 제안했습니다. 마귀은 교회가 농민들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하면서 여전히 떠나기를 거부합니다. 이것도 선택이라고 했는데요, 농부라면 누구나 세상을 사랑한다고 해서 특별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교회를 찾는다고 합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사도 요한 말씀때 마귀들이 똑같은 일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을 보여주신 하나님께도 감사드립니다.일부 교회는 이미 부패했고, 계속해서 부패하면 보상을 받지 못할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교회는 종교적인 겉치레에 싸여 있는데, 무대 위의 목사님은 성도들에게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님도 너희를 사랑하시고 나도 너희를 사랑한다!”라고 말하라고 요구합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안아주고,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같은 표면적인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나는 그런 일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교회가 당면하는 많은 문제와 어려움은 영의 세계에서 비롯되는데, 사람들은 죄를 짓고 세상을 사랑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믿습니다. 당신은 교회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주장하지만 진정으로 믿지 않는 피상적인 곳을 좋아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피상적이고 위선적입니다. 그들은 행함이 없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데, 바울은 자신이 행위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믿음에 근거한다고 이미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들은 죄를 지었을 때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예수께서 그들의 누더기가 되셨다고 믿었습니다. 아주 유용한 걸레 오늘은 이것으로 닦으세요 죄를 지어도 상관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담겨있습니다 이런 소리 익숙하신가요?

우리가 서로 사랑할지니 이는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소식이라.(요일 3:11)

사실 문제 해결의 열쇠는 서로 사랑하는 것인데, 그것은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요, 하나님의 계명이기도 합니다. 사도 요한은 당신이 더 이상 옛 계명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가 말하는 것이 새 계명인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예수님은 오랫동안 서로 사랑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고, 이 기준은 결코 낮아진 적이 없습니다. 율법은 본질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서로 사랑하는 것이 이미 율법을 능가하므로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세상을 사랑하는 것인데, 예를 들어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교회 안에 도처에 널려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히 거기 서서 서로 사랑한다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습니까?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세요. 끝없이 사랑하세요.

그러면 사랑의 문제가 옵니다. 바울이건 요한이건 그 기준을 하나님의 수준으로 되돌리는데 왜 안 될까요? 왜 그렇게 혼란스러워요? 이제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보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자녀입니까, 아니면 마귀의 자녀입니까? 마귀의 자녀는 죄악된 본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절반만 태어났고 출산이 어렵다고 하는데 왜 머리를 애호박처럼 꼬집어야 합니까? 그래서 오늘날 우리 형제자매들은 더 이상 이런 문제를 겪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준이며, 더 이상 자신을 변호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여전히 이런 문제가 있고 체면을 잃을까요? 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날 무시하고 이렇게까지 싸우고 있는 건 너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언제 나를 사랑했니? 어떤 사람들은 나를 매우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이전 교회의 사람들과 별로 다르지 않은데, 그렇지 않다면 왜 아직도 나와 싸우겠습니까? 내가 기준이 되는 건 아니고, 서로의 이익을 위해 노력했다면 우리 사이에는 문제가 없을 텐데. 그러나 지금의 문제는 내가 너희 육신을 처리하고 너희가 너희 육신을 따르려 하면 반드시 우리 사이에 갈등이 생긴다는 것이다. 비전신학은 많은 혼란을 해결했는데,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기준의 문제이다. 비록 오늘은 하나님의 기준에 도달할 수 없지만, 나는 하나님의 기준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서로 사랑하는 것도 하나이고, 치유받는 것도 하나입니다. 성경을 잘 읽어보면 예수님 당시나 사도행전 때나 사람들이 병 고침을 받았으나 믿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을 이루어 주는 것은 어렵지 않으며,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는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 이렇게 많은 간증이 있음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나 너희는 만족하나 나는 만족하지 아니하노라. 아직도 응답되지 않는 기도가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그 이유는 간단합니다.우리가 하나님과 같지 않은 방식이 여전히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장 큰 혼란은 사랑의 혼란입니다.. 저희 Q&A에 나오는 질문들은 모두 혼란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저는 그게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에게는 하나님의 기준인 관념이 있고 그것이 나의 모든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주기 때문입니다.

2. 사랑 대해의 혼란

사랑이라는 단어가 가장 헷갈리는데요, 지난 몇 년 동안 제가 가장 많이 경험한 것은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서도 나를 통제하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하는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지 궁금합니다. 나중에 보니 많은 부부의 사랑이 이렇고, 죽을 만큼 사랑하고, 너무나 고통스럽습니다. 사랑에 빠지고 사랑 때문에 서로 죽이는 것은 사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일이고,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전부라면 이런 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단지 그를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를 고의적으로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며 서로 사랑하지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이러한 사랑의 혼란은 모두 세상의 논리 체계를 끌어들이기 위해 육신적인 사랑을 사용한 데서 비롯됩니다. 자녀가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도, 어머니가 자녀를 사랑하는 것도 하나님의 사랑은 아닙니다. 이 세속적이고 육신적인 사랑은 비록 호랑이의 독과 같을지라도 여전히 육신적인 사랑이므로 이런 사랑은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교회 안에 들어가면 이 사랑은 더욱 혼란스러워집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고 나도 당신을 사랑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사람이 사랑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네가 1만 번 외치고, 내가 2만 번 외치고, 모두가 차를 끓여서 서로 목이 마를 때까지 외치고, 차를 한 모금 마시고 계속 외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어떤 사람들은 고통받는 형제자매들을 보면 예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나도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면 당신이 나를 어떻게 사랑할지 정말 알고 싶습니다. 당신도 대답할 수 없습니다. 입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2센트짜리 찻주전자일 뿐입니다. 어쩌면 지금은 2센트로도 입을 살 수 없을지도 모르고, 그러면 이 입은 죽은 오리의 입, 즉 강인한 입이 될지도 모릅니다. 왜 그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사랑의 찬송을 부르고, 노래를 부르고 나서 하나님과 사랑에 빠지는 걸까요? 그렇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잘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늙은 요한이 이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는 주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모범을 보이셨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히니라.(요일 3:16)

진심으로 형제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마음이 있어야 참사랑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이 형제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상황을 가르쳐 주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수년 동안 교회를 청소해 왔습니다. 교회에 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의 이름을 사용하여 영을 정의했습니다. 어느 날 그 사람이 제가 설교하는 것을 듣고 내가 그 사람을 언급했다고 비난할까봐 여기서는 그 사람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다시. 발바닥에 종기가 나고, 동성애로 인해 생식기, 무좀에 많은 질병이 생겼는데,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고혈압이셨고 할머니는 뇌출혈로 고생하셨는데 저도 기도했는데 얼마나 은혜를 받았나요?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박해의 망상으로 고통받고 죽어가고 있거나 정신질환을 앓고 있을 때 내가 그를 섬겼다는 것입니다. 그때는 회사 일이 너무 바빠서 얼마 지나지 않아 실업자가 되었어요. 하지만 그분이 나에게 오시는 한, 나는 그분을 섬기기 위해 내 일을 내려놓을 것입니다. 그 결과 그 사람은 출근했고 나는 그를 밀어내서 봉사하게 됐습니다. 나처럼 밤 2시까지 예배를 못드리면 우리 교회에 남을 수 없겠느냐고 하더군요. 언제까지 복무할 수 있는지 물었더니 10시 30분에 자러 가야 한다고 하더군요. 내가 그 사람을 섬길 때 10시 30분에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면 그 사람은 오늘도 거기에 있나요?

나중에는 귀신도 가기 싫은 교회에 갔는데 왜 귀신도 가기 싫은 교회를 선택했을까요? 떠나기 전 저를 너무 사랑한다고 하셔서 역겹게 들렸습니다. 그런 말은 듣기 싫습니다. 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는 잠시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에 가서 시찰을 하고 싶다며, 시찰에 실패하면 다시 오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자리를 스페어 타이어로 취급하는 것이므로 검사 후에는 돌아 오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와서 교회를 찾았다고 하는데, 역시 육신적인 목사가 육신적인 신자를 목회하는 것이 딱 들어맞았습니다. 이것을 두꺼비 대 녹두라고 합니다. 이런 말로 하는 사랑은 소용없다고 생각하는데, 요한 일세 시대에도 그런 사람이 많았고, 오늘날의 교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사랑이 혼란스러운 예를 보여 주셨습니다. 문제는,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예수님처럼 하는 것이 더 비용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자신의 기준에 따라 하는 것이 더 비용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어떤 분들은 얼굴만 보면 똑똑해 보인다고도 하세요. 물론, 비용 효율적이지 않은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쓸데없는 일이라면 나는 절대 하지 않겠다. 십일조가 비용 효율적이지 않다면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처음 주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을 때 십일조로 저축한 금액이 연간 2천 위안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적은 월급으로 돈을 모아도 소용이 없었고, 하나님께 투자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었습니다. 기부금이 세전 10%인지 세후 10%인지 묻는 사람도 있었는데, 집을 판 돈은 벌어들인 돈으로 계산해야 합니까, 아니면 판매 가격 전액을 기준으로 계산해야 합니까? 그것은 모두 당신이 비용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바보만이 이런 질문을 할 것입니다. 그들은 단지 그것이 비용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지 묻습니다. 나는 나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생명은 그분께 속해 있는데, 그래도 돈이 문제입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를 축복해 주셨고, 하늘의 떡이 제 머리 위로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게을러지면 케이크 중앙에 입이 있어서 한 번에 목에 걸 수 있고, 속이 빠지지 않고 먹을 수 있어요.

사람들은 가치관 문제 때문에 혼란스러워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 유익하니 어리석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들은 매우 똑똑해 보이지만 하나님을 대할 때 언뜻 보면 그들이 어리석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그 사람의 내면적 가치체계의 표현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랑에 대해 갖는 혼란은 사실 그 사람 안에 일련의 논리와 가치관이 있고 거기에 하나님의 체계가 있다는 사실에 지나지 않습니다. 논리와 가치. 하나님이 정한 것은 하나님의 기준인데, 당신이 세운 기준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것이 이루어질지 안 될지는 당신 자신도 모릅니다. 육신을 생각하고 세상을 사랑하고 선악을 분별하는 것이 다 무익한데 왜 하나님의 기준을 지키지 않고 비표준을 지켜야 합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본을 보이시고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이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또한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도다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는 것이 무섭게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은 형제를 구원하겠다는 뜻이 아니라, 영원 속에 살면서 영생을 믿지 않는다면 이 길을 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영생을 믿지 않는다면 왜 하나님을 믿습니까? 그냥 돈을 믿고 돈을 사랑하세요.

한 직원이 돈에 관심이 없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렇다면 다음 달에 급여를 중단하고 헛된 일을 하게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 사람이 기분이 좋지 않아 아직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 말은 무슨 뜻이었습니까? 그래서 제가 버릇이 있는 편이고, 특히 거짓된 말을 하는 사람을 싫어하는데, 진짜 말을 해주실 수 있나요? 내가 정말로 그에게 돈을 지불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까? 문제는, 정말 돈에 관심이 없는 우리 동료처럼 그 사람은 밖에서 일을 하고 내가 월급을 주는데 그 사람은 월급을 다 바친다는 사실을 그 사람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주 좋은 거래입니다.

좋은 형제는 형제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다. 그러나 내가 네게 목숨을 내놓으라고 하기 전에는 네가 꺼려했다. 내가 정말로 당신이 목숨을 걸기를 바랐을 때 당신은 발에 기름을 바르고 미끄러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정말 형제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지 살펴보고, 마음 깊은 곳에 있는 것을 실제적으로 다루자. 죄 많은 척, 순진한 척하지 말고, 거룩한 척하지 말고, 하나님의 기준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얼마나 더러운지 살펴보세요. 당신이 당신의 죄를 인정한다면, 예수님은 여전히 당신을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죄를 인정하지 않고 거룩하다고 생각하면 팔짱을 끼고 길을 다닐 수 있고, 머리에서 연기가 피어오를지라도 예수님께서 구원하실 수 없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본을 보이셨으니 우리는 진실로 죄를 처리하고 형제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목숨을 바친다는 것은 일반적인 기준이 아니라 삶과 죽음을 간파해야 하고, 인생의 허무함을 간파해야 하며, 형제를 위해 목숨을 버리기 전에 이 모든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아직도 소망을 품고 있다면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없을 것입니다.여기에 사랑의 혼란이 있습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 3:14)

한밤중에 기도하면 병이 나은 줄 압니다. 대가를 치르는 것은 정상이지만 생명을 희생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정말로 당신의 핵심 이익을 위태롭게 한다면 어떻게 선택하시겠습니까? 실제로 할 필요는 없고 훈련을 통과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죄를 해결하는 열쇠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저주, 저 저주를 끊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모든 저주를 없앨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열쇠인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단지 예수님을 아무렇게나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시험해 보면 정말 형제를 사랑하는지 알게 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을 참을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노여움을 받으셨을 때 우리를 쳐서 죽게 하신 것도 아니고, 예수님께서 자기 주장을 하신 것도 아니었는데, 이 기준으로 따지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거의 남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수만 남더라도 이것이 하나님의 기준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누가 당신이 할 수 있다고 말했나요? 나도 노력 중이에요. 그렇다면 그 척도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지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나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3. 죄 대해의 혼란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나나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요일 3:4-10)

이것은 간단해 보이지만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왜 그 시대의 기독교인들이 오늘날의 기독교인들처럼 혼란스러웠는지 질문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은 죄를 짓지 아니하나, 죄를 짓는 사람은 마귀에게 속합니다. 사람이 왜 죄를 짓는지 곰곰이 생각해 봅시다. 왜냐하면 사람에게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속한 논리 시스템을 설치하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 없고 늙어가게 됩니다. 그러다가 내가 죄를 짓고 다른 사람들이 너보다 나은 것을 보고 마음속에 시기와 질투와 미움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너 같은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나도 이런 모습을 보일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내 죄가 있는데 왜 내가 먼저 달려가야 합니까? 그러나 이것보다 아무 소용이 없고 하나님의 빛을 사용해야 합니다.죄를 지으면 마귀에게 속한 것이므로 마귀가 당신 안에 사는 것이 합법입니다. 선악을 분별할 일이 없고 육신을 염려하며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에 대한 대가를 많이 치르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것에도 측정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기준은 어느 쪽이 크고 작은지, 어느 쪽이 비용 효율적이고 어느 쪽이 아닌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사람이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죄이며, 그 죄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입니다. 마귀가 당신에게 오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혼란스럽게 할 사람들을 보내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혼란과 죄의 혼란을 모두 해결하시고, 이 기준에 이르지 못하면 눕힐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이루지 못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이루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수고를 기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내면의 태도는 조정되어야 하며 우리의 능력이 부족하면 하나님께서 더해 주실 것이지만 우리의 태도는 당신의 선택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태도가 너무 나빠서, 우리가 다른 교회 출신이든, 우리 교회가 자급자족하든, 우리는 가장하는 것을 아주 잘합니다. 우리는 이 거짓된 모습을 벗고 영과 진리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비용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마귀도 거스릴 수 있고 사람도 거스릴 수 있지만 하나님을 거스릴 수는 없습니다. 죄를 짓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고, 육적이고 세상에 속한 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사람이 돈을 사랑하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을 수 없는데 왜 돈을 사랑하는 사람을 몇 명 찾을 수 없습니까? 집 베개 밑에 지옥불 종이더미를 넣어두고 그가 죽으면 태워주겠다고요? 이런 건 없습니다. 녹색은 미국 달러이고, 빨간색은 인민폐인 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10,000위안 묶음이 100위안 묶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것을 바로잡고 싶다면 가인에게서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가인같이 하지 말라 저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찐 연고로 죽였느뇨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니라.(요일 3:12)

사람은 범죄를 저지르면 안 된다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이것 하나는 알아야 한다 몸의 질병은 범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사람들은 이미 죄의 대가를 치렀는데 왜 계속해서 이런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 걸까요? 왜 우리는 계속 그렇게 어리석어야 합니까, 사람들이 기꺼이 죄를 버리려면 얼마나 오랫동안 어리석어야 합니까?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을 위해 내 목숨을 바쳤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나를 위해 목숨을 내놓으라고 요청할 자격이 없지만, 당신에게는 형제를 사랑하기 위해 목숨을 내놓으라고 요청할 자격이 있습니다. 목숨을 버리면 더 이상 돈이 문제가 되지 않고, 세상도, 체면도, 육신의 정욕도, 안목의 정욕도, 이생의 자랑도 다 해결될 것입니다.

4.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과 같아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과 같아야 한다는 필요성은 비전신학에서 중요한 핵심입니다. 이것은 올해에 생긴 것이 아니고 수년 전부터 예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어떻게 예수님처럼 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매일 이 생각을 하며 30대 때부터 예수님을 닮고 싶었습니다. 아직도 예수님처럼 되고 싶은 사람이 나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요? 한 마디가 저를 거부했지만, 성경에는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과 같아야 하고, 주님이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분과 같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주를 향한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뜻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뜻하게 하느니라. (요일 3:2-3)

말세에 예수님이 나타나실 때 우리도 그분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 예수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 나타나시나니 우리 주 예수님도 유머가 많으시니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 자기를 죽인 유대 대제사장들 앞에 나타나지 아니하셨느니라. 만일 주 예수께서 담을 통과하여 지나가시며 유대 대제사장들의 뺨을 치시며 자신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시면 그들을 겁 주어 죽게 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당신을 사랑하고 매일 우리 가운데 나타나기를 갈망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보여줍니까? 그분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를 덮게 하십시오. 그러면 우리도 그분과 같이 될 것입니다.

우리 마음은 하나님처럼 되기를 원하며,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하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믿은 것을 믿고,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믿으십시오. 그러면 우리의 논리 체계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부족함이 없는데 세상을 사랑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요, 큰 왕자라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을 사랑한다면 이상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세상을 너무 사랑해서 늘 나에겐 이것저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우리가 위엄 있는 왕자인 것도 모르고,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도 모르고, 하나님의 자녀인 것도 모르고,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 것도 모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권세를 우리가 갖고 있다는 것이 비극이 아니겠습니까?

인간의 논리 체계가 왜 가인의 논리 체계와 같아야 합니까? 가인은 정신병자로서 몹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었는데, 제물을 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자기 동생을 죽인 것인데, 왜 그와 같겠습니까? 이미 하나님의 자녀라면 그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명령이 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명령에 따라 서로 사랑하게 된다면, 이렇게 비용 효율적인 일을 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하나님은 그러하시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느니라.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잘못된 점을 보면 화를 냅니다. 우리 속에 있는 것을 정말 정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처럼 되고 싶고, 하나님의 형상을 갖고 싶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면 창의력이 넘치고, 내면의 축복이 넘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사람이라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아직도 질문을 많이 해야 합니까?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요일 3:17)

어떤 사람들은 형제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음을 알면서도 그들의 동정심을 막습니다. 물론 마약 중독자에게 마약 빚을 갚고 싶지 않고, 도박꾼에게 도박 빚을 갚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가 식사를 거르더라도 그에게 식사비를 주는 것은 여전히 매우 간단합니다. 시내에서는 뜨거운 건면 한 그릇이 15위안인데 시내에서 먹으면 7위안 밖에 안 나가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QR 코드를 스캔하면 그를 찾을 수 있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가 죄를 완전히 없애고 죄를 이기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은 가인이 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을 행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너에게 하나님의 모습이 있는데도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느냐? 선악을 분별한다 해도 여전히 선악을 분별할 자격이 없다고 느낄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것들을 보십시오. 어떤 이유가 있더라도 그것이 예수님과 같지 않다면 잊어버리십시오. 당신은 당신의 진실을 말하고 있고 나는 하나님의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5. 무엇을 구하든지 하나님께는 다 받으리라

하나님께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받는 것이 매우 비용 효율적입니다. 믿습니까, 안 믿습니까? 오늘날 세상 일과 육신의 위험을 알지 못하면 참으로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구한 것을 다 받았다면 또 무엇이 부족합니까? 우리 주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를 이렇게 기도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마태복음 6:9-11)

내일 일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늘과 내일은 반드시 먹을 것이 있고, 모레 일도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가하시는줄을 우리가 아느니라.(요일 3:22-24)

우리에게 주신 성령 때문에 우리가 구하는 것을 받을 수 없습니까?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의 안팎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는 것과 주는 것이 반드시 복이 된다는 것을 오늘 우리 모두는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그분의 계명에 순종한다면, 우리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구하는 것을 얻지 못했다면 그분의 계명에 순종했습니까? 논리는 실제로 매우 간단합니다.

나는 주님 안에 살고 주님도 내 안에 사신다.라는 노래인데 정말 그럴까요? 오랫동안 노래해도 소용없어요 영혼을 위해 닭고기 수프도 드릴 수 있어요 내일은 더 나아질 거예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면 내일은 더 나빠질 뿐입니다. 만약 당신이 자신만을 사랑하고 관심만 갖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다면, 이 길은 좋은 길이 아닐 것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가치관을 세우기 시작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계명인지 알게 됩니다. 우리는 이 상급의 영광이 얼마나 풍성한지 알게 될 것이며, 이 세상에서 모든 좋은 것이 부족함이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 천국으로 돌아가라 장래에 주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 우리가 함께 이 땅을 다스리며 만왕의 왕 이하의 왕이 되리라. 도시 한두 개를 돌보자 란저우, 우한, 항저우 중 어느 도시를 돌보고 싶나요? 앞으로 이 도시들이 어떤 이름으로 불리게 될지는 알 수 없습니다. 비유를 하자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싱가포르를 주셨는데 여러분은 그것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으니 때가 되면 잘 관리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안의 가치 체계가 다시 확립되었습니까? 사실 사실대로 말씀드리지만, 제 갈 길을 가는 형제자매들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이런 슬픔은 때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잃게 만들고 속으로 소란을 피우고 죄를 짓기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선악을 분별한 후에는 자기의 기준에 따라 볼 것이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믿음은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집을 팔고 십일조를 합니까? 왜냐하면 그는 그것이 옳고 복된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집을 팔고 나서도 그 돈을 간직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여 십일조를 내지 않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비용 효율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해해야 하며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그것을 믿느냐 안 믿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일을 하는 방식을 이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은 모두 우리 내부의 논리에 기초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는 돈이 꼭 필요하고 앞으로는 아들을 위해 집을 사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거스르고 마귀가 와서 당신을 괴롭히면, 마귀가 당신을 괴롭히지 않고 하나님이 귀신을 보내 당신을 괴롭힌다고 해도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겁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가치관을 하나님의 기준으로 재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돈을 그렇게 중요하게 여긴다면 형제를 사랑하여 그들을 위해 사망에서 생명으로 들어갈 수도 없고, 어찌 영원한 영광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돈 문제도 통과할 수 없다면 다음 문제는 어떻게 통과할 수 있을까요? 오늘 우리에게 요한일서 3장을 다시 읽어보도록 도전해 보십시오. 그러면 우리 안에 있는 거짓된 것, 즉 우리 안에 있는 가치 체계가 실제로 하나님께 속한 것인지 여부가 신속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일단 이해하고 나면 더 이상 한 순간에 혼란스러워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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