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요한 1서 제02장-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필기를 참고

1.죄를 짓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오해하고 변명하며, 죄를 지을 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지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는 복을 받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습니다.
죄의 뿌리는 세상과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은 사람들을 죄에 빠지게 하신 것이 아니라 죄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2.주님의 도를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사랑을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가의 여부는 주님의 도를 순종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좋은 일만 합니다.
정말 하나님을 알면 가장 유익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짓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3.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주님 안에서 행하라

비전신학은 단순화되었습니다. 즉, 예수님이 하신 일은 우리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것,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하신 일을 하십시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있어서 우리의 모델이십니다.

4.세상의 제도와 하나님의 제도

주 안에 있으면 빛 가운데 있는 것이요, 주 안에 있지 않으면 어둠 속에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논리이기 때문에 형제를 미워하고 연합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시스템과 하나님의 시스템은 전혀 다른 시스템입니다.
바울이 이것을 쓴 것은 너희의 믿음을 영원히 세우려 함이니 너희 모든 일이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세워지기를 원하노라

5. 처음에 은혜받는 법을 잊지 마세요

처음에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행위를 사용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시스템입니다.
사람은 처음에 은혜를 어떻게 받았는지 잊어버리므로 믿음이 혼란스러워지고 하나님과 대화를 하게 됩니다.
우리는 태초에 어떻게 은혜를 받았는지를 늘 기억해야 하며,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은혜 가운데 긍휼과 능력과 경외가 충만하신 하나님임을 기억하고 저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6.기름부음과 사명을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하라

사람에게 사명이 있으면 가르칠 사람이 필요하지 않고 하나님의 기름부음이 그를 가르칠 것입니다.
사명이 있으면 하나님의 뜻을 주의 깊게 순종하는 것이 더 이상 불편하지 않습니다. 사명이 없다면 예수님을 믿는 길은 나아갈 수 없습니다.

서론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요한1서 2장을 보겠습니다. "요한일서"는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나는 이 장들을 이해하는 것 같지만 동시에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단어는 다 알지만, 합쳐보면 무슨 말인지 모른다는 점이다. 여기에는 많은 개념들이 소개되어 있고, 기름부음, 영원한 존재, 죄를 짓느냐 마느냐 등의 큰 개념들이 많이 사용됩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사람들이 하는 말 중 가장 흔하게 들었던 말은 사람들이 어떻게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살 수 있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죄 없이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오늘은 요한일서, 마태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을 이해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 즉 주제를 파악하는 방법을 가르쳐드리고 싶습니다. 주제를 파악할 수 없다면 동쪽이 깜박이고 서쪽이 획으로 되어 매우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핵심을 잡아야 잘 배울 수 있고, 핵심을 파악하고 맥락과 연결시키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이번 장의 주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만이 영원히 살리라”이다. 반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지속될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를 쓴 사도 요한은 백세 이상을 살았다고 하는데, 그러한 장수노인은 교회의 흥망성쇠를 목격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를 체험하였다. 아주, 아주 중요해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 시대에는 살아남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저에게 이렇게 질문하는 것을 자주 듣습니다. 그렇게까지 주님을 믿으면서 살아남을 수 없다면 아직도 가족이 있습니까? 나를 따르고 주님을 그렇게 많이 믿으면 돈으로 쓸 수 있겠습니까? 밥 먹을 살아 되나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돈에 욕심이 있거나 패자가 되는 사람이다. 오늘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만이 영원히 살 것이라 오늘의 양식은 물론이고 영원한 양식으로도 배부르리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 죄를 짓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

사람들은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해 변명하기를 좋아하고, 세상 사람들도 모두 자기와 같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에게 가장 끔찍한 일은 자신의 어리석음과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변명을 찾는 것입니다.어쨌든 자신이 저지른 어리석은 일에 대해 변명할 뿐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벌을 받고 나중에 후회한다는 엄청나게 어리석은 주장도 들었고, 죄도 은혜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죄가 은혜인가? 사실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얼마 후 저는 다시 죄를 지어 하나님께 징계를 받았는데, 죄를 짓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겠습니까? 놀랐어요.이게 무슨 논리인가요? 하나님의 뜻은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일 2:1)

이것을 얼마나 명확하게 작성합니까? 그러나 세상 교회에는 중보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는 말이 있는데, 예수의 보혈이 모든 죄를 없이 할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예수님의 피가 그들에게 기름부어지기를 기다리면서 계속해서 죄를 짓습니다. 여러분이 죄를 지을 때마다 예수님은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뜻이 여러분이 죄를 짓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계속해서 도말해 주실 것이라면, 예수님은 예수라 부를 필요가 없고 예수라 부를 필요가 있습니다. 똑같을까?

사람들이 자기 말을 오해하려고 하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니 우리가 죄를 지어도 상관없습니다.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에게 기름을 부을 수 있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기독교인은 어리석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또 죄를 지으면 회개해야 한다고 하는 비기독교인을 만난 적이 있는데, 이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그가 모든 죄를 없애준다고? 사실 문제를 바로잡은 것은 바로 이 사람들입니다.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이 그리스도인들을 치유 수 있는지 모르실 뿐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사람을 치유하는지 알고 싶으면 아직도 죄를 짓고 있습니까? 아이가 학교를 빼먹고 집에 오면 매를 맞고, 사람이 죄를 지으면 매를 맞는다. 하나님께서 징계하지 않으실 수는 없다. 땅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너희를 징계하시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어찌 너희를 기쁘게 하실 수 있겠느냐?

또 어떤 사람은 죄를 범하고도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관심을 두시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합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께 복을 받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으리라 내가 죄를 범하고 회개하면 생각하지 말라 내 회개의 말이 헛됨이라 , 나는 저주를 받아야합니다. 저주는 죄와 관련되고, 죄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습니다.사람이 죄를 짓는 것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미얀마 북부의 각종 사기조직들이 그들의 기지까지 급습하고 있는데, 조심한다면 반드시 제거될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께서 해결하시려는 것은 사람의 죄 문제이지, 사람이 죄를 짓고 도말하는 문제는 해결하지 않으시며, 사람이 죄를 짓도록 허락하지도 않으십니다. 오늘날 우리가 겪는 죄는 모두 우리의 죄로 인한 것이며,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해결하시고자 하시는 가장 큰 문제는 사람들이 죄를 짓도록 허락하지 않는 것인데, 사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죄를 당연하게 여기기 때문에 사람들이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상을 사랑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랑하면 죄를 짓고 고난을 받게 되며, 고난을 받은 후에는 주님께 나아오게 될 것입니다.

어젯밤에 한 아이가 열이 나더군요. 실제로 2주 연속 열이 났는데, 너무 고집이 세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뜻을 고의로 행할 수 없다면 너는 자신의 뜻만 따를 뿐이며, 자신의 뜻을 따른 결과는 모두 자신의 잘못이다. 내가 그에게 뭔가 말을 했더니 그의 고집이 세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내가 그들의 노예라고 생각하고 항상 그를 위해 옆에 있었습니다. 그는 단지 바보였습니다. 당신이 힘을 억제하지 않는다면, 어떤 결과도 겪지 않고 어떻게 그분의 뜻을 따를 수 있겠습니까? 2주는 말할 것도 없고 어쩌면 2개월 정도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어른들은 30대, 40대, 50대, 60대에 자기 뜻대로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자기 뜻대로 행하다가 죄를 짓는 경우가 있습니다. 결과. 누군가가 고통받고 있을 때 나에게 찾아와서 나나 목사님께 기도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은 정말 짜증나는 일이다. 예수님도 예수님을 누더기 취급하는 것 때문에 짜증이 나실 텐데요, 우리의 논리 체계가 바뀌지 않으면 언제 끝날까요?

죄의 근본은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데 있다 돈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돈 때문에 죄를 지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고 세상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범죄. 사람이 남에게 축복만 하고 베풀기만 하려 한다면 무슨 죄를 지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이기심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모두가 이기적이지 않다면 공산주의의 이상은 반드시 실현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두가 이기적이라는 점인데, 공산주의가 계속될 수 있을까? 그들은 모두 그것을 자신의 집으로 가져가며 덜 하고 더 많이 얻으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지속가능하지 않으며 지속가능한 발전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개인 소유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갖는 이유, 즉 사람들의 이기심을 이용하여 경제를 발전시키는 이유를 설명하며 이는 매우 강력합니다. 공산주의는 전설처럼 게으른 사람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사람의 이기심은 고칠 수 없습니다. 형제자매들은 부패의 근본 원인이 사람의 이기심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적 소유는 자기가 하는 일을 한다는 뜻이고, 일을 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것을 얻게 되는데, 이런 사악한 자본이 나타나는 것은 자본이 매우 강력하게 약탈하기 때문입니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이기심이나 죄의 문제를 누구도 해결하지 못하여 결국 죄가 가득할 때까지 죄를 범하면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스템은 전혀 다른 시스템으로,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사람들의 허물을 도말하여 은혜를 받게 하심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시고자 하십니다.

2. 주님의 도를 따르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온전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는 것입니다. 이는 세상을 사랑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주님의 도를 순종해야 하며, 사람이 주님의 도를 순종하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그 속에 온전해집니다. 궁금하신 점은 적어서 Q&A 시간에 질문해주세요. 이 장은 읽기 어렵고 거의 이해할 수 없으므로 최선을 다해 모든 사람에게 명확하게 설명하고 싶습니다. 주님의 길을 걷는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사랑을 갖고 있습니다. 즉, 당신이 주님의 도를 따르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50% 사랑하고 세상을 50% 사랑한다면 세상을 50% 사랑하는 것은 분명 범죄입니다. 왜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지지할 핑계와 여러 가지 이유를 찾습니까?그 이유는 주님의 길을 따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주님의 길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순종하는 것이고,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 이것이 논리입니다. 어떤 사람은 순종하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십일조를 내지 않으면서도 하나님을 매우 사랑한다고 말합니다. 나는 십일조를 내는 것을 꺼리고 모든 달러를 굳게 붙잡고 있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당신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알면 순종하고 순종해야 하고, 순종하고 순종하면 하나님을 알게 되고,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됩니다. 반만 지키면 반만 알게 되고, 십분의 일을 지키면 십분의 일을 알게 됩니다. 문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안다고 말하면서도 순종하지 않고, 내 말대로 살 수 없다고 말하면서도 사실은 여전히 하나님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은 자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지 않고, 자신이 하는 일이 모두 옳은 일이라고 생각하며, 자신이 하는 일이 자신에게 이롭다고 생각하는데, 오직 평가의 기준이 무엇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세상의 기준에 따라 사물을 평가하지만, 어떤 사람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물을 평가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만이 영원히 살 것이요, 영원히 살기 싫으면 영원히 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살아 있는 동안 항아리를 섞어 묘지를 마련하면 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묘지가 누구의 것인지는 아무도 알 수 없고, 현재 묘지는 영구 소유권도 없고 영원히 점유할 수도 없으며 언제 철거될지 알 수 없습니다.

당신 안에 있는 논리적 시스템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자신에게 유익한 일만 하며, 사실 이것도 이기심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의 도에 순종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실제로 유익과 은혜를 얻게 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길을 따르는 사람은 그 안에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사랑을 갖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큰 계명이니, 모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질문은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세상을 사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온몸이 병들게 되고, 세상을 사랑하면 장과 장을 다스리지 못하게 됩니다. 아니면 세상을 너무 사랑해서 대변을 볼 수도, 소변을 볼 수도, 먹거나 물을 마실 수도 없습니다. 신장이 부러지면 소변을 볼 수 있나요? 신장 투석이 필요합니다. 이 세상의 어떤 것이 당신에게 좋은지 알아야 하며, 정말로 하나님을 안다면 이 모든 것이 당신에게 좋은 것임을 알아야 하며 과장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유익한 것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짓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입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하신 일을 할 것입니다.

3. 주님 안에 거하여 주님께서 행하신 일을 행하십시오.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요일 2:6)

『요한1서』를 읽어보면 비전신학의 논리체계도 이와 같은 맥락임을 알 수 있다. 오늘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주님 안에,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주님 안에 있을 때 주님이 행하신 일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행하신 일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본보기이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예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면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는 것은 쉽습니다. 신학교에 한 번 다녔는데 신학교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이 신학교수님이 해야 할 말이 아니어서 그만뒀어요. 한번은 과감하게 손을 들고 질문을 하다가 그 자리에서 밀려날 뻔한 적이 있습니다. 제 질문은 방금 교수님이 말씀하신 주제에 관한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교수는 자기가 예수가 아닌데 어떻게 알 수 있냐고 하더군요. 그 교수는 예수님의 뜻도 모르고, 예수님을 읽을 줄도 모르는데 내가 왜 공부해야 합니까? 돈도 더 필요 없고 시간도 절약되는데 이렇게 배우는 게 좋을까요? 그곳에서는 하나님의 뜻도, 예수님의 생각도 모르는 무리가 맹목적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실, 비전신학은 이러한 것들을 단순화하여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도 하고,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도 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은 종종 나에게 찬물을 끼얹는다.예수님은 몇 분이나 계십니까? 소변에 흠뻑 젖은 뒤 자신의 모습을 확인하기 위해 사진도 찍지 않고 여전히 백조 고기를 먹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백조의 살이 아니라 예수님의 살이었습니다. 이 세대에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누구를 따라야 할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요한일서가 너무 잘 말해준다. 사람이 주 안에 거한다고 하면 주님이 행하신 일을 행해야 한다는 말이 참으로 간단하지 않은가?

주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셨는데, 당신도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냈습니까? 질병을 고치지 않고 귀신을 쫓아내지 않으면 어떻게 영의 세계를 알 수 있겠습니까? 영계도 모르면서 예수님이 하신 일을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믿으면 하늘과 땅과 땅 아래의 모든 권세가 우리 주 예수께 속한 줄을 믿게 됩니다. 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 권세를 주셨는데 왜 우리는 주님이 하신 일을 할 수 없습니까? 나는 바울이 말한 대로 해야 하고, 바울이 하는 일은 무엇이든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빨리 가져오라고 하는데, 세상에 바울이 몇이나 있습니까? 사실 예전에는 바울이 한 명 있었는데 지금은 한 명 더 있잖아요?

사실 하나님의 뜻은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가지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의 장자가 되셔서 우리 모두가 작은 그리스도가 되고, 작은 예수가 되고, 예수님을 닮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비전신학이 말하는 이런 것들은 정말 강력하고 한꺼번에 단순화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예수님이 어떻게 보시는지 생각해보면 문제가 간단해진다고 하셨는데, 우리도 이렇게 보도록 합시다. 당신이 겪고 있는 일을 예수님께서 겪으셨다면 그분이 불평하겠습니까? 아니, 그럼 그만 불평하자. 예수께서 이 모든 일을 겪으신 후에 괴로워하고 불편하실 것입니까? 아니, 그럼 이제 그만 싸우고 불편해지자.

우리 중에 이런 사람이 몇이나 있습니까? 심지어 어떤 분들은 저에게 전화를 해서 자기 목사님과 정말 소통할 길이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저와 소통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당신과 소통하길 원하시나요? 찔러만 안 주면 좋은데 이게 무슨 논리야? 즉, 우리 모두는 터무니없이 선과 악을 인식하고 있습니다.우리는 여러 날 동안 싸워왔는데 마치 냄새나는 방귀를 참거나 냄새나는 숨을 참는 것과 같습니다. 풀어놓으면 정말 사람을 숨막힐 수 있습니다. 죽음에. 우리는 단지 이 재료를 스스로 끓이는 것을 좋아하지만, 주 예수님께서도 그렇게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가끔 내가 어떤 사람을 비난하면 그 사람들도 나를 비난한 뒤 얼굴을 쳐다보곤 합니다. 주 예수님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지 않으셨는데 그때 왜 얼굴을 바꾸셨을까요? 우리 목사님은 확실히 무자비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다지 똑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나라면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은 주님께서 하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너무나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우리가 예수님을 본받거나 본받아도 예수님을 닮지 않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 있어서 우리의 모델이십니다.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마가복음 14:36)

오늘날 우리는 얼마나 예수님을 닮았습니까?

4. 세상의 제도와 하나님의 제도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재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속에 거리낌이 없으나.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요일 2:9-11)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빛이 우리에게 비취는 것입니다.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어둠 속에 거하고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 속에 거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형제를 사랑하지도 않고, 목회자도 사랑하지 않습니다. 육욕적인 방식으로 사랑하기를 원한다면 그 시스템은 모두 잘못된 것입니다. 시스템이 잘못된 경우, 또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시스템은 영원히 지속되는 반면 인간 시스템의 최종 결과는 기껏해야 70~80년 동안 보관할 수 있는 항아리이기 때문입니다. 1970년대나 1980년대에 만들어진 시스템의 관점에서 보면 그런 능력이 없지 않나 싶다. 만약 그렇다면 아마도 전체 사기 공원이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난 70년이나 80년 동안 그것은 이 세상의 시스템이었으며 결코 나아질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이유는 세상 제도에 따라 형제들이 자기 안에 있는 더러운 것을 표현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교회에서 하나되지 못하는 이유는 육신의 것과 세상 제도가 너무 강하기 때문인데 어떻게 하나될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단지 쇼일 뿐입니다.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가인이 되는 것이 아닌가? 가인이 동생 아벨을 미워하자 하나님은 가인에게 왜 표정이 변했는지 물으셨고, 가인은 담대히 하나님께 답을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잘하면 받아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가인의 태도는 원하면 받아들이고, 원치 않으면 잊어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도 마찬가지인데, 내가 문제를 지적하면 얼굴이 나빠집니다. 왜 얼굴이 변했냐고 물으니 나도 얼굴이 못생겼다고 하더군요. 이를 통해 가인의 이야기가 추론되는데, 내가 하나님이라고 말씀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장면은 상상할 수 있다.

이 세상 제도와 하나님의 제도는 전혀 다른 제도이므로 가인이 먹은 음식은 먹고 나면 다음날 배설물이 되니 결코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사실이 아니며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물질 불멸의 법칙이라고 부르기 때문입니다. 물질 불멸의 법칙이 실제로 여기에 적용되는데 물질은 불멸이고 변형될 수 있지만 문제는 사람이 멸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형제를 미워합니까? 세상의 논리체계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 형제와 목사님을 미워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빛이 어둠 속에 비치기를 원하지만 사람들이 하나님을 비취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경쟁, 질투, 질투, 비교 등 내면의 더러운 것들을 이야기하는 것은 너무 부끄럽습니다.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낮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불편합니다. 이야기하는 것은 부끄럽습니다. 그러면 서로 얽혀서 경쟁하게 되고, 결국에는 세상적인 체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 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것하느니라.(요일 2:15-17)

오늘날 모든 사람은 시스템을 선택합니다. 선택한 후 어떤 것이 비용 효율적이고 어떤 것이 그렇지 않은지 확인하십시오. 너희가 하나님의 시스템에 있으면 많은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겠지만, 너희가 세상 시스템에 있거나 그 절반이라도 있다면 마귀가 반드시 너희를 시험할 것이니 시험하면 너희도 끝나리라 . 파리는 알을 깨지 않고 남기지 않고 결국 알은 사생아가 된다는 옛말이 있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요일 2:12-13)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 곧 영원에 대한 여러분의 믿음을 다시 세워 여러분이 추구하는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반석 위에 세워지도록 하기 위해 이 편지를 썼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많은 적그리스도가 나왔고, 이 적그리스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완전한 사람이든지 죄인이든지 속죄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죄인을 정상인으로 생각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부인합니다.

5. 처음에 은혜받는 법을 잊지 마세요

처음에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는지 잊지 마십시오.이 망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요일 2:24)

처음에 은혜 받는 방법을 잊지 말라고 말씀드리고자 이 문장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처음에 너는 아무것도 몰랐고,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은혜를 받았다. 오늘 우리 중에 하나님을 위해 어떤 일을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신 사람이 누구입니까?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나처럼 건물에서 뛰어내려 죽고 싶거나, 아니면 치료할 수 없는 이런 저런 질병을 앓고 있거나. 네가 방금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고, 하나님이 너를 구원하셨는데, 어떤 느낌이 드느냐? 그렇다면 처음부터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면 왜 나중에 하나님과 교환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생깁니다. 행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애초에 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까? 이전에는 세상 제도를 따라가다가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처음으로 돌아가서 살펴보아야 하는데, 예를 들어 성령 충만은 오순절에 시작되었습니다. 성령이 임한 후에는 모든 사람이 능력을 받고 방언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이러했으나 마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하여 혼란스러워 합니다. 기억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 많은데, 기억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은혜를 받았는지 메모해 두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네가 하나님을 위해 행한 일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너의 허물을 도말하시고 네 죄를 사하시고 네 병을 고쳐주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도 범죄를 저지르고 또다시 고통을 받고 있습니까? 그냥 원하지 마세요.

사람들이 항상 시작을 잊어버린다면 정말 끔찍한 일이 될 것입니다.우리 중에 처음에 받는 방법을 자주 잊어버리고 나중에는 모든 일이 잘못되는 자매가 있습니다. 오래전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자면, 싱가포르 공항에서 설거지를 하던 자매님이 매일 눈물로 세수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그녀의 부모님이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에 이전에는 이런 고통을 겪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녀의 여동생이 우리 중에 있어서 우리는 그녀를 데리고 왔습니다. 우리가 함께 기도한 결과, 그녀는 하루에 13, 14시간씩 일해야 하는 설거지와는 달리 유치원 교사로 좋은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나중에 그 분이 초기 은혜를 잊어버렸는데 어떻게 받아야 하는지 잊지 말라고 일깨워 주었더니 “그냥 200위안 아닌가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나에게 그것을 주었다. 그 당시 나는 그녀에게 전혀 기여할 자격이 없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은혜를 어떻게 받았는지 잊어버리는 것은 참으로 악한 일인데 오늘은 잊어버리겠습니까? 아직도 잊어버린다면, 당신은 정말 매를 맞을 자격이 있습니다. 나중에 위에서 언급한 자매님이 다시 교회로 오셔서 온라인으로 저와 함께 기도해 주셨습니다. 당시에는 왜 그녀가 기도했는지 몰랐지만, 함께 기도한 지 몇 달이 지나서 그녀는 간증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물어보니 실제로 그녀는 몇 달 전에 치명적인 질병을 앓고 있었고 병원에서도 치료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돌아왔지만 2주 전에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의사가 그가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회복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은혜 받는 방법을 잊어버리고 다시 장난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은혜 받는 방법을 잊어버릴까 두렵다면, 노트를 하나 구해 적어두고, 할 일이 없을 때 다시 읽어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사람이 은혜를 받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행한 일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로 인해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그런 종류의 출현을 얻습니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셨는데, 우리가 아직도 죄를 지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이 실생활의 압박에 직면하면 머지않아 그것을 잊어버리게 되는데, 다시 고통을 겪게 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때로는 사슬이 떨어져 버려 버림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사람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버리면 광야에서 죽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광야에서 죽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약속의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약속을 계속해서 주장하는 그리스도인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처음에 어떻게 은혜를 받았는지 기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하나님은 은혜와 긍휼의 하나님이심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이렇게 은혜를 받았다면 우리는 오늘 다시는 하나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결단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광야에서 하나님께 죽임을 당하고 하나님께 미움을 받는 세대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처음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행하신 일을 빨리 잊어버리기 때문에 하나님을 짜증나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권능의 팔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고, 홍해를 건너 마른 땅을 걷듯 인도하신 것을 기억한다면, 그들이 과연 하나님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이 사람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 세상의 논리대로 행하기로 선택한다면 얼마나 어리석겠습니까? 우리의 죄는 처음부터 예수님의 보혈로 씻겨졌는데 왜 아직도 죄를 짓고 있습니까? 내가 처음에 예수님께 나아온 것은 이 세상 제도에서 충분히 고난을 받았기 때문인데, 나는 왜 아직도 이 세상 제도에 있는 걸까요? 나중에 왜 거짓말을 따라갔나요? 오늘날 우리 형제자매들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강하고 위대하고 두려우신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당신은 평생을 견뎌야합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아직도 하나님을 버리는 걸까요? 오늘도 처음에 들은 말씀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6. 기름부음을 사명으로 마음속에 영원히 간직하라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기름부음은 거대한 망씀이며, 많은 사람들은 이 기름부음에 대해 형이상학으로 이야기합니다. 성경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기름부음이 가르치고 성령이 가르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비전신학에서는 기름부음이 매우 명확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섬기러 나가실 때 성령께서 예수님께 기름을 부으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찾아보면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성령을 기름부으셨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예수님께 기름을 부으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왜 예수께서는 이전에 기름부음을 받지 않으셨나요? 하나님은 예수님이 섬기러 나가실 때 예수님에게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목적을 위해 살고 죽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신 약속, 사명, 사명을 그분에게 맡기는 것을 기름부음이라고 합니다. 당신은 왜 살아 있습니까?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하면 사명은 기름부음이고 기름부음은 사명인데,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분명히 하면 다른 모든 혼란이 해결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문제 해결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사명을 붙잡는 것은 이것을 위해 살고, 이것을 위해 죽고, 이것을 위해 이 세상에 왔다는 뜻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 여전히 문제가 될까요? 돈을 위해 살면 돈을 위해 죽을 것이며, 당연히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사람에게 사명이 있으면 누구에게도 가르칠 필요가 없고, 모든 일에 주님의 기름부음이 있습니다. 사명이 인생의 주축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혼란은 즉시 해결될 것입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계급투쟁이 핵심이라는 말이 있었지만 핵심은 피상적일 뿐이다. 강주무장이란 어망에 크고 작은 밧줄이 많이 달려 있고, 갱이 아주 굵은 밧줄이라는 뜻이다. 츠나가 끌어올리자마자 네트 전체가 곧게 펴지고 매끄러워졌습니다. 저 작은 그물을 잡으면 점점 더 지저분해집니다.장주무는 그물을 잡아당긴다는 뜻입니다. 우리의 운명이 단단해지면 모든 문제와 혼란이 해결됩니다. 이것을 위해 태어났고, 이것을 위해 살고, 이것을 위해 죽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더 이상 혼란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명의 가르침대로 주님 안에 거하고, 이것을 위해 살고, 이것을 위해 죽어야 합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며, 봉사하다 지쳐도 불평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처음 받은 은혜를 붙잡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붙잡으면 우리가 받는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계속 전진하며 사명을 향해 걸어가면 이 기름 부음의 가르침에 따라 항상 마음에 남아 있고, 이 운명에 따라 항상 마음에 존재하며, 혼란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사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이 세상에서 소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소망과 나라는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이 경우 우리는 여전히 혼란스럽습니다. 살기 위해 여전히 범죄에 의존해야 합니까? 필요 없음.

사람이 왜 사는가라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모든 것이 엉망이 된다. 세상 일을 위해 살면 일곱 번째 이모와 여덟 번째 이모가 집안에서 서로 싸우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 쳐다보거나, 저 사람이 누군가를 노려보았지만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헛소리를 위해 살고 있는데, 머지않아 사람을 때리는 자와 맞는 사람이 혼돈에 빠지는 탕산 불고기집 사건처럼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지키고 순종하는 데는 문제가 없고, 이를 위해 이 세상에 왔으니 어렵지 않습니다.

오래전 어떤 사람이 섬김으로 인해 기적이 일어났고, 어떤 사람이 큰 교회 목사님을 신나게 데려왔습니다. 목사님은 뇌종양이 있었는데 어떻게 뇌종양이 생겼는지 묻자 교회 봉사가 너무 힘들고 일주일에 하루밖에 쉬지 못한다고 하더군요. 하루도 안 쉬고, 하루 쉬어도 마음속으로 불평만 하는데, 종양 사제가 되지 않으면 또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다가 자기가 50개가 넘는 소그룹을 인도했는데, 임기 중 매주 일요일에 오니까 그룹 리더들이 3년마다 교체되어야 했고, 3년 만에 다 소진됐다고 하더군요. 말도 안 되는 소리네요. 우리 교인들은 어느 주일에 안 오나요? 왜 그는 여전히 그룹을 이끌어야 하고, 지치기 전에 때때로 그룹 리더에게 훈련을 제공해야 합니까? 우리 교인 한 사람 한 사람이 지불하는 대가는 셀 리더가 지불하는 대가보다 더 크다고 말씀드립니다. 물론 제가 이런 말을 하면 다른 사람들도 개입하게 되기 때문에 상당히 부끄럽습니다.

이것이 나의 운명이라면, 이것을 위해 태어나고, 이것을 위해 이 세상에 오고, 이것을 위해 살고, 이것을 위해 죽는다면 그것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중에 기도하게 했더니 정말 효과가 있어서 많이 좋아졌는데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나는 단지 봉사하는 것을 좋아하며 그것은 전혀 과장이 아닙니다. 이것이 내 운명이고, 이 세상에 오면 잘해야 한다. 내가 추구하는 것은 영생이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자만이 영원히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영생입니다. 나는 이 삶의 사소한 일들을 모두 꿰뚫어 봤고, 사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느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사는 것은 지루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생활방식과 사명은 무엇입니까? 이 길이 당신을 위한 운명이 아니라면, 당신은 그 길을 갈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에 사명과 기름 부음이 없다면 당신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실 놀라운 삶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실 영광이 얼마나 광대한지, 인간의 생각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광대하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도를 받아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돈 버는 데 별 관심이 없습니다. 이 말이 비꼬는 말이 아니라는 점을 여러분도 아셔야 합니다. 돈 버는 일은 정말 재미가 없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도록 돕고, 함께 하나님의 뜻 가운데 행하며, 우리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의 교회를 세워 영원히 지속될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우리가 함께 주 예수 앞에 나아와 충성되고 선한 일꾼이 되라 장로 요한이 쓴 글은 이렇습니다.

또 이 장 중간에 요한이 자신이 쓴 편지가 자신이 이전에 쓴 요한복음이라고 말하는 부분도 있는데, 이 책 역시 찾아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데 다행히 확인해 봤다. 이번에 다시 『요한1서』를 썼는데 태초의 말씀이 곧 말씀이니라 이 말씀은 영원한 말씀이요, 본연의 생명의 길이니 우리의 생명이 멸망치 않고 얻으리라. 영원한 생명을 위해. 형제자매 여러분, 소망을 갖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소망으로 인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내려다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이들은 공부하고 대학에 가고, 아이들은 일하고 결혼하고, 아이들은 아이를 낳고 손자를 키우고 있습니다. 손자가 없는 게 아니라 이런 일들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을까요? 누군가가 아직도 이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는다면, 내 대답은 '그렇게 살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도와주실 수 없습니까? 그건 확실합니다! 오늘 말씀드린 내용이 여러분께 많은 혼란을 안겨드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또한 제가 접하지 못한 부분도 있습니다. 말씀드리자면 내용이 너무 많습니다. 여기서 멈추고 Q&A 세션으로 넘어가겠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모두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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