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해답】사무엘하24장-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시며 하나님의 진노를 가라앉히시려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성경공부에서 사무엘하 24장을 찾았는데 이 장이 너무 좋아요! 이것은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과 모든 이스라엘인이 배워야 할 교훈입니다. 이 교훈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를 격발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봅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의 진노를 누그러뜨리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의심스러운 점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확인해 보니 제가 한 말이 꽤 맞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그러나 의심이나 질문이 있는 경우 신속하게 입력하여 알려주십시오. 그러면 귀하의 질문에 답변해 드리겠습니다.

[질문] 1: 목사님, 이 구절에서 하나님은 후회한다고 말씀하셨는데, 하나님도 자신이 한 일을 후회하시나요?

A: 하나님은 자주 후회하시는데 왜 하나님은 자주 후회하시나요? 하나님께서 재앙을 예비하셨기 때문에 원래는 20만 명을 죽이려 했으나 7만 명을 죽이시고 중단하셨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사람이 죽는 것을 정말 원하지 않으시는데, 이 7만 명에게 눈이 없다는 뜻입니까? 그 신의 눈은 확실히 매우 정확해서 살아남지 못할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예수님 시대에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많은 사람이 죽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죄가 당신의 죄보다 덜 심각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그들을 선택한 것은 단지 불운일 뿐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실 모든 죄는 비슷하고 모든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후회하신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는 징계와 재앙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셔야 할 것보다 훨씬 적습니다. 원래는 우리에게 이런 큰 재앙이 닥칠 예정이었으나 하나님은 이를 후회하시고 징벌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왜냐하면 하나님은 은혜가 풍성하시고 긍휼이 풍성하시기 때문입니다. 왜 후회라고 부르나요? 하나님께서 이미 그토록 많은 것을 보내실 것을 준비하셨으나 결국 하나님께서 멈추셨기 때문입니다. 이해하셨나요?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7만 명이 죽는 것을 보시고 멈추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님들은 우리는 죽어 마땅한 인간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금까지 지켜주셨고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에 대해 좋게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거 역겹지 않나요? 하나님은 은혜를 주시고 후회하지 않으시며, 재앙을 내리실 때에는 반드시 후회하십니다.

[질문] 2: 목사님,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과 운명을 향한 우리의 단계별 접근 사이의 관계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우리가 운명에 들어서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겠죠?

A: 실제로는 무엇입니까? 이건 운명의 문제가 아니라 약속의 문제인 것 같아요. 일단 운명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맙시다. 무슨 얘기를 먼저 해야 할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을 떠날 때 어디로 가고 있었나요? 약속의 땅으로 가십시오. 그런데 누가 들어왔나요?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들어갔습니다. 그 시대 인구는 60만 명 정도였는데, 60만 명 중에 2명밖에 안 되는 비율이 좀 적었어요. 왜 이 사람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까? 너무 두려워서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은 매우 치명적인 결점입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왜 늙어도 변하지 못하는가? 왜냐하면 당신은 그것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재난이 닥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재난이 닥쳐도 협상의 여지가 많지 않을 것입니다.

7만명이 죽은 것처럼 끝났습니다. 아마도 트림을 하고 방귀를 뀌다가 기절해서인지 트림을 하고 방귀를 뀌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주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키다가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백성이 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애굽을 떠나 40년 동안 광야를 방황하던 세대는 하나님의 행사를 보기는 했으나 하나님의 행사를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건 과한거 아냐? 그들은 종종 하나님의 행사가 다른 세대보다 훨씬 뛰어난 것을 보지만,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세대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저는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수없이 경험했습니다! 결과는 무엇입니까?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 나는 그것을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종종 그들의 불신으로 하나님을 노엽게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운명에 들어갑니다.물론 일단 선택하면 이것이 우리가 태어나고 사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이것 저것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전체 가치 체계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로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운명을 갖는 것은 손실이 아니라 이득이자 은혜입니다!

[질문] 3: 목사님, 설교 중에 똥 얘기만 한다고 하신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선생님이 너무 겸손하다고 생각했나요? 어느 날 나도 그런 줄 알았지 너와 나는 이미 한참 뒤처져 있었고 나는 똥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런 불편한 것들이 불편하고, 여전히 돈에 대한 욕심이 많다. 나는 왜 당신 말대로 되지 못하는 똥에 젖어 있고 모든 것이 정상인데 왜 여전히 불편해야 합니까?

A: 사실 아주 간단한데 왜 불편함을 느끼시나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나도 당신처럼 불편함을 느꼈는데, 어떻게 하면 그 불편함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제가 나온 방법은 이러합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요나 호수 옆에 있는 『아마겟돈』을 읽으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그것을 읽었다고 말했다. 하나님께서는 다시 읽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 번 읽었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찾을 수 없나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싶어서 인쇄해서 전자원고로 인쇄하러 갔습니다. 그래서 그 안에 '높이 오르는 길'이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갑자기 내 눈에 들어오더군요.

나는 왜 불편함을 느끼는 걸까? 왜냐면 그때 제 눈물이 생수병 물처럼 흘러서 눈물이 터졌거든요.. 너무 절실했어요! 길이 어디인지 모르시나요? 내가 직면한 문제는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보다 항상 더 크다. 심지어 내가 섬기고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다가 결국에는 나를 대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건 내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고, 내 논리에는 이런 논리가 없다. 결과는 무엇입니까? 나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한 길을 걷기 시작했다. 어디로 올라가? 이 책에 기록된 내용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라디아서 2:20)

갑자기 마음이 밝아졌습니다. 어떤 느낌일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을 바꾸기 시작했고, 어려움을 겪고, 설명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나는 더 높이 오르기 시작했다. 오르는 길은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의 진리에 대해 더 깊은 깨달음을 갖는 것을 의미하는데, 직설적으로 말하면 나는 더 이상 선악을 분별하는 방식으로 선악을 분별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나는 계속해서 올라가기 시작했고, 그럴 자격이 있으면 죽고, 그럴 자격이 있으면 살기 시작했고, 신경 쓰지 않으면 더 쉬울 것입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고, 반년쯤 지나서 갑자기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나는 내부가 매우 개방적이고 편안함을 느낍니다. 이 수준은 갈라디아서 2장 20절이라고 합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아! 똥 같다고 해서 꼭 괜찮은 건 아니고,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님이 사시는 것 같아요. 이것은 확실히 작동합니다! 때로는 이런 것들을 설명하는 것이 어려운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불편하다면 온 힘을 다해 하나님 말씀 알기를 추구하시면 됩니다. 너희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깨닫다 보면, 너희가 마땅히 추구할 것이 있기 때문에 아무 이유 없이 나의 설교나 성경 공부를 들으러 온 것이 아닐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걷는 동안 당신은 갑자기 운명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이제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감이고, 그 느낌이 바로 자신감이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자신감은 느낌을 만들 수 있지만 느낌은 자신감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 논리입니다.

[질문] 4: 안녕하세요, 목사님! 오늘 제가 말하는 것은 나의 영적인 상황인데 바꾸고 싶은데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A: 전염병이 당신에게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할 수 있습니까? 오늘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경외심은 매우 강력한 것입니다. 기업경영론과 군사경영론에는 두려움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두려움은 아주 좋은 것입니다. 예를 들어 9.18사변 이전으로 돌아가면, 일본이 중국 동북부를 점령하고 당신은 포로로 잡혀 일본 강제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아무 문제도 없어졌습니다. 오른쪽? 뭐든지 할 수 있고, 하라는 대로 하면 되는 거잖아요, 그렇죠? 일본인 악마인지 일본 악마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했다면, 일을 하지 않으면 매를 맞아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은 매우 좋은 관리 도구이지만 사람들에게는 경외심이 부족합니다! 이것이 훌륭하다고 생각하지 않나요? 그래서 가끔은 신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어요! 앗 좀 더 무거워지니까 이놈 좀 치명적이네요. 군대에 들어간 소년이 있었는데, 그의 모든 잘못이 바로잡혀졌습니다. 얼마 전 어떤 사람이 나에게 군대에서 복무한 사람들이 모든 행동에서 규칙을 준수하는 것을 관찰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왜 모든 일에서 규칙을 따르나요? 원래는 다 무질서한 사람들이었는데, 군대에서는 규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정말 매를 맞았기 때문입니다. 두렵지 않나요? 너무 무서워요 농담이 아니에요 군법에 따라 처리해야 해요! 뭔가를 얻었는데 그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전적으로. 사람들이 그것을 할 결심이 있는지 여부에 관한 것입니다. 전염병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생각해보세요 오늘 조금 더 경외심, 심지어 조금 더 두려움이 있다면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 낫습니다.

[질문] 5: 안녕하세요, 목사님! 프레임워크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실 수 있나요?

A: 프레임워크는 어렵지 않은데, 이 프레임워크는 무엇인가요? 예를 들어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가 쓴 "마케팅"이라는 책을 읽어보자. 필립 코틀러가 쓴 『마케팅』은 20판 이상 인쇄됐을 텐데, 수년 전, 거의 20년 전인 14판부터 읽기 시작했다. 필립 코틀러(Philip Kotler)는 아주 좋은 책을 썼습니다. 그가 쓴 책은 "마케팅"입니다.

"마케팅"을 어떻게 읽나요? 프레임워크를 어떻게 잡는지 묻지 않았나요?이 "마케팅"을 배우자. 보세요. 첫 번째 장은 무엇에 관한 것인가요? 2장은 무슨 내용인가요? 3장은 무슨 내용인가요? 4, 5, 6장은 이렇게 읽습니다. 전문 작가가 한 권의 책을 수십 권 집필했다면 첫 번째 장에서 전체적인 개요를 소개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틀입니다.

그렇다면 마케팅은 실제로 네 가지 P에 지나지 않습니다. 4P를 아시나요? 우리 중에는 마케팅 인재가 많이 있습니다. 네 가지 P는 무엇입니까? 이를 Product, Place, Price, Promotion이라고 하며 4개의 P가 프레임워크입니다. 그러므로 책을 쓰는 사람들은 다 그 틀을 따라가며 한 장씩 토론하면 배우게 되고, 배우면 대단한 것이 되고, 배우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틀이 생긴다.

예를 들어, 장식은 장식이 꽤 좋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이것은 먼저 수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의 필요에 따라 학교를 짓고 싶습니다. 병원을 짓고 싶고 병원은 병원의 수요가 있으며 B&B를 짓고 싶고 B&B를 만들고 싶습니다. 민박 수요가 있어서 레지던스를 짓고 싶고, 혼자 살고 있어요. 당신에게는 당신의 생활 습관이 있고 그에게도 그의 생활 습관이 있으며 당신의 생활 습관을 설명하는 것이 필요해집니다. 둘째: 이를 디자인이라고 하며 디자인은 사용자의 필요에 따라 이루어집니다. 보이시나요? 이것이 내 프레임워크입니다. 셋째 : 건설, 건설은 약간 복잡합니다. 건축에는 금속, 나무, 물, 불, 흙을 사용하는데, 금속, 나무, 물, 불, 흙은 무엇일까요? 사실 물, 전기, 점토, 목공, 화가 등이 전부입니다.

여러 가지를 종합해 보면 이것을 수평 분할 방식, 혹은 수직 분할 방식이라고 합니다. 수평적 구분: 재료, 도구, 장인정신, 그리고 기술. 이 시점에서 내 마음 속에는 어떤 것이 어디에 속하는지에 대한 틀이 형성되기 시작합니다. 자신을 틀에 가두지 마세요. 틀, 틀, 틀, 틀, 틀에 자신을 틀 넣으면 곤란합니다. 알겠습니까? 모든 지식은 일련의 틀로 요약될 수 있고, 이 틀 안에서 당신의 지식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구축될 수 있으며, 그러면 인간의 두뇌는 그것을 흡수하고, 생각하고, 논리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질문]6: 목사님, 운명이 있다면 아직 길 위에 있는 것이지 아직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뜻이겠죠? 계속 나아가야 해, 응?

A: 사실 그에게는 운명이 있고 길을 가고 있지 않습니다. 버스 정류장에 있는지 궁금합니다. 아니면 기차역에서? 또는 공항, 공중, 기차나 고속철도에서도 가능합니다. 그는 이렇습니다.. 삶과 관련된 한 한꺼번에 기억할 수는 없습니다. 나에겐 운명이 있고, 그리고 "팝" 나에게는 운명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렇지 않습니다. 운명이 있는데 나한테는 1%도 있는데, 있는 걸까, 없는 걸까? 그게 다야. 나중에 2%로 오른다면 어떨까요? 그럼 5%까지 올랐나요?

마치 어린아이의 생명의 성장, 믿음의 성장, 운명의 성장과 같이 너무나 통합되어 있어서 모두 유기적인 것, 즉 생명에 속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생명체가 화석화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나에게는 운명이 있는데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아직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종류의 것은 모두에게 적합한 크기입니다. 그러면 문제를 발전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우리 자신을 역동적으로 바라보게 되는데, 이는 우리의 운명 추구가 끝이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우리 중 얼마나 하나님께 속한 부분, 운명이라 불리는 부분, 하나님을 위해 사는 부분이 얼마나 많은지요. 아직도 자신에게 속한 것, 세상에 속한 것이 많다면 아직 약속의 땅을 얻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우리 존재 전체가 하나님의 것이라면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를 닮을 것 같나요? 당신도 사도 바울과 같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사도 바울 같을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 같을 것입니다, 운명이 있다고 생각합니까, 없습니까? 운명이 있다면 물어보겠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많이 이행합니까? 정말 많죠, 그렇죠! 하지만 충분합니까? 충분하지 않습니다. 즉, 그는 끝없는 추구입니다.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 그것은 약속의 땅이 끝나기 전에 계속 나아가서 우리 몸 전체가 하나님께로 완전히 회심할 때까지 더 많은 약속을 이행하고 더 많은 약속을 이행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화입니다.

[질문] 7: 목사님 가끔 일을 할 때나 생각을 할 때 뇌 뒤에 프로그램이 너무 많이 돌아가서 뇌가 둔해져서 아무것도 잘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

A: 간단합니다! 오른쪽! 왜 사람들은 마음속에 생각이 너무 많기 때문일까요? 너무 지저분하거든요. 사실 당신은 생각을 많이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아마 당신도 나만큼 생각을 많이 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면 습관적으로 생각을 많이 하고, 그러면 내가 아무것도 잘 못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데, 나는 무엇을 느끼는가? 야 이건 좀 좋아지면 돼 야 저것도 좀 좋아지면 좋겠다고 바라는 게 아니다. 꿈을 꾸고 나면 사람들은 내가 아무것도 잘 할 수 없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왜일까요? 나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다가 정신을 잃고 혼란스러워졌죠?

그래서 아무것도 이해가 안 되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신은 매우 절망감을 느끼고 아무것도 잘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 말은 당신이 정말 아무 것도 잘할 수 없다는 뜻인가요? 사실 그것은 단지 느낌일 뿐입니다. 사람이 자신이 아무것도 잘 할 수 없다고 느끼면 내일 또 다시 낭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밤에는 아무것도 잘 안 되고, 내일은 잘 해야 하는데, 내일이 오면 아무것도 잘 안 되거든요. 내가 당신에게 교훈을 가르치고 계획하는 습관을 기르도록하겠습니다. 물론, 당신은 계획을 잘 세우지 못해요. 평소에 계획을 잘 세우지 않아서 매우 지저분하거든요? 내 머리가 엉망이야.

누군가가 나에게 계획을 작성한 적이 있는데, 그것은 지저분하고 혼란스러운 계정이었습니다. 빨래 더러워서 혼났는데 나중에도 변하지 않고 해를 거듭하면서 계속 떠돌았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한 해가 가고 눈 깜짝할 사이에 한 해가 되었어요 1년만 더 지나면 그는 작은 노인이 될 것이다! 관자놀이에 흰머리가 난 젊은 노인이 참 의기양양해서 그렇지, 그게 인생의 전부가 아닐까?

그래서 사람들이 계획을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계획을 쓰지 않는 것은 참으로 가증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나 같은 사람은 계획을 세우면 아직도 머릿속이 엉망인데, 계획을 안 적으면 머릿속이 엉망이 된다. 어떤 혼란을 겪게 될까? 오른쪽! 저처럼 계획서를 작성하시고, 기회가 된다면 프로젝트 관리에 대해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계획을 세우는 것은 나에게 쉽습니다. 펜, 종이 또는 태블릿, 펜을 들고 클릭하고 클릭하기만 하면 됩니다. 다 쓴 뒤에는 이 글 저 글을 조정하고 이 글 저 글을 정리하라.

내 계획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계획해야 하나요? 계획하는 방법? 이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면 그 다음에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오른쪽! 이를 수행하는 방법에는 달성하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사용하는 전략, 방법, 도구 및 기술이 포함됩니까?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그런 다음 완료하세요.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에게는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는데, 바로 엔지니어와 같은 훈련입니다. 글쎄요, 정말 자랑하려는 게 아닙니다. 오늘 이 훈련을 시작한 이후로 나보다 나은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나는 근시안적일지도 모르고 근시로 볼 수도 있습니다.10 미터 이내에 나보다 나은 사람은 확실히 없습니다. 백 미터 안에는 몇 명도 못 찾을 수도 있고 아는 사람도 많지 않아요. 그러니 내가 가르쳐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래서 계획을 세우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차근차근 일을 해나가고, 매우 엄격하고 실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눈으로 직접 보고, 내가 꾸미는 걸 지켜보고, 아침에 일어나면 석고보드 한 장을 꺼내서 거기에 놓기도 하고, 화이트보드나 흰 종이 한 뭉치를 들고, 아니면 마커. 첫째: 다다다, 둘째: 다다다, 셋째: 다다다, 그리고 중간에 오늘은 이 열 가지를 해야 하는데, 중간에서 이 열 가지를 누가 할 것인가? 다음에 무엇을할지? 분명히 하기 위해 저는 항상 이 점을 분명히 합니다. 아침에 일어났을 때 왜 명확하게 말할 수 있나요? 왜냐하면 전날 밤에 숙제를 했고, 전날 밤이나 지난달이나 지난달에 숙제를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일을 최우선으로 생각합니다. 나는 당신처럼 불안해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는 단지 일을 제대로 하고 싶고,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내야 합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어떻게 해야할지, 지저분하게 하는지도 모르고 지저분하게 일을 말리는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습니다. 저는 한걸음, 한걸음, 한걸음을 좋아합니다. 제가 하는 방식은 모두 계획에서 시작됩니다. 그거 들었어? 플래닝을 추가하면 5P, plan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PDCA, 계획, 계획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입니다. 내가 말한 바에 따르면, 지금까지 그 계획을 따르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아주 극소수이고, 동료들조차도 좋은 습관을 키우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뇌가 지저분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

할 일이 너무 많다고 느낄 수 있나요? 분명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는 걸 느끼게 될 것이고, 그러다 보면 멍하고 멍해지는 느낌을 받게 될 것이고, 그러면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하루가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면 문제는 계속해서 찾아오고,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늘 거기에 쌓여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엉망이겠죠? 어떻게 혼란스럽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어떻게 계획을 세울 것인가? 천천히 배워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방금 질문하실 때 제 상황을 말씀하실 때 정말 저를 쳐다보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정말 선지자이시라고 생각하는데, 정말 말씀이 맞습니다.” 당신이 너무 옳다는 것이 아니라, 당신 같은 사람은 태어났을 때부터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니 자연스럽게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타고난 것을 믿지 않습니다. 나는 배움을 믿습니다. 내 인생에서 타고난 것은 거의 없습니다. 내 성격은 타고난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모든 지식이 학습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를 들어, 나는 PDCA, 마케팅, 교회 건축을 공부했습니다.

나는 교회를 개척하는 방법을 배웠고 점차 모든 사람들이 배움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은 프로젝트 관리를 통해 배웁니다. 당신이 입력한 단어 중 당신이 만든 단어는 무엇입니까? 나는 아마도 당신이 무엇을 발명했는지 인식하지 못할 것이고, 컴퓨터는 오타를 입력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 이것을 보세요. 당신이 어떤 단어를 만들어냈나요? 단어 하나도 없고, 우리가 어떤 문장을 만들어냈나요? 업무 분야나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중 우리가 발명한 것은 무엇입니까? 어느 것도 아니다. 이것이 생명을 위협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당신은 항상 뭔가를 발명하고 싶어하지만, 그것을 발명하자마자 실수를 하게 됩니다.

[질문] 8: 제가 이해한 것은 운명을 맡는다는 것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며, 그 땅은 계속해서 발전한다는 것입니다.

A: 아니요,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과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 사이에는 아직 어느 정도 거리가 있습니다. 갈렙처럼 여호수아와 모세도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할 때 운명이 있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나서 운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점차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운명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말한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운명이 없다면 진을 치라! 다들 천막을 철거했는데, 어머, 철거하려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네요, 캠프를 차리세요! 앗, 또 오랜만에 냄비를 지원하느라 바빴어요! 밥을 지어라! 너무 피곤해요. 냄비 세팅과 요리를 막 끝냈는데 아기가 아직 먹이를 안 주네요. 캠프를 시작해 볼까요! 던지는 일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던져 올림.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통을 참을 수 없습니다. 왜일까요? 나는 내 인생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는 이쪽으로 갈 수 없습니다. 운명이 있는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이 일을 하기 위해 여기에 있으며 이생에서 캠프를 세울 것입니다! 캠프를 준비하세요! 나는 이것을 좋아한다. 그러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요? 그러니 운명은 선택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약속의 땅에 들어갔습니다. 몇 년 뒤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땅에 들어갔습니까? 이해하셨나요? 그러므로 서로 관련이 없는 두 가지를 함께 두지 마십시오.

[질문] 9: 목사님, 저는 매일 밤 계획을 세웠지만, 그것을 끝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A: 계획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선생님, 제가 매번 너무 빨리 변하고 계획이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서 더 이상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모두에게 이해가 됩니까? 점은 무엇인가? 이것은 오류입니다. 나는 나중에 그에게 한 마디를 주었고, "바보야, 계획을 세울 수 없기 때문에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예를 들어, 회사의 소프트웨어를 작성한다면 나는 소프트웨어를 작성할 때 매우 철저한 계획을 가지고 있으며, 일을 엄격하게 수행하기 때문에 변화가 없습니다. 필요한 모든 것을 계획했습니다. 계획을 세울 줄 모르기 때문에 남이 원하는 것은 자신의 계획에 없고, 남이 원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계획에 들어 있다. 나는 것을 원하는." 그럼 왜 계속 변하는 거죠? 당신은 이것을 계획할 수 없습니다. 계획할 수 있는 사람은 계획을 세우기 위해서는 이러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질문] 10: 목사님: 방금 제 질문에 대답하실 때 제 상황이 정말 저를 보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정말 선지자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감동받았습니다! 그냥 어떻게 올라왔는지 알고 싶은 것뿐인데 자세히 설명하면 좀 헷갈리죠?

A: 첫째, 나는 교회를 건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 어려움은 매우 고통스러웠습니다. 나중에 나는 깨달았습니다: 그분은 결코 죽어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은혜로우십니다. 내 안에 있는 믿음은 죽어가는 등불과 같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럽나요? 고통이 너무 심해서 요즘 사람들이 절박함을 느끼고 많이 힘들다고 느끼지만, 하루하루 힘내며 희망과 작은 믿음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갑니다. 왜? 내 접근 방식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그 방법은 요나 호수의 말대로 즉 평지에서 마귀와 싸워 이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인데 왜? 그 당시 나의 마귀와 싸우는 영적 수준은 너무나 낮았습니다. 영적 수준은 가장 낮고 가장 낮은 수준이며 여전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과 악을 식별하는 방법을 사용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을까요? 제가 창세기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말씀드리지만, 올라가기 전에는 창세기를 수없이 읽고, 성경도 여러 번 공부했지만, 아직도 이 문제를 잘 이해하지 못했고, 그다지 개인적인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이해합니다. 우리가 처음 교회에 올라갔을 때 먼저 교회 안에서 험담을 처리했고, 그 험담도 처리되었습니다. 나중에는 교회 안에는 실제로 험담이 없었습니다. 그건 어디로 갔나요? 내가 하루 종일 계속 이야기하고 조명을 켜면 그들은 떠날 것입니다. 그들이 떠난 후 나는 매우 흥미로웠고, 나는 사무실에서 하나님께 감사와 환호를 드리며 기쁨으로 펄쩍펄쩍 뛰었다.

말로 표현도 못하는데 또 한 명 남고, 빼앗아야 할 신들도 다 빼앗겨 가는데, 이게 교회가 낡아지게 되는 것 아닌가. 교회가 부패할까 봐 걱정되시나요? 화내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다른 길을 열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상대하고 대하는 일에 있어서는 요나 호수 책을 읽어보면 아시겠지만, 수군거리고 험담하고 체면을 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중에 형제들이 하나가 되었는데, 교회 안에는 하나된 사람만 남았고, 하나되지 않은 사람은 다 남았습니다. 이번에는 좋습니다. 이번에는 절대적으로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을까요? 영적인 수준이 계속 향상되면서 사물에 대한 이해와 느낌이 전혀 달라지게 되었는데, 교회를 세우는 방법에 대해 성경이 말하는 대로 읽고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은 그물을 던져서 잡고, 좋은 것은 골라서 그릇에 담고, 나쁜 것은 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문장을 읽었지만 많은 교회가 이를 따르지 않는다는 점을 묻고 싶습니다. 이것은 제가 승천하는 길을 얻는 데 매우 중요한 계시입니다. 그 선악에 대한 이해는 또 하나의 계시이고, 나는 그 계시들로부터 끊임없이 지식을 하나씩 얻으며, 끊임없이 나의 지식을 전복시키고 있다.2년 전까지만 해도 꺼내서 '베드로 이야기를 정말 철저하게 공부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나는 여전히 더 높이 올라가며 끝없이 하나님을 알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럼 어디로 갔나요? 형제로 하나되는 지점에 이르면 아, 너무 좋아요. 그래도 너무 힘들어서 방언 기도도 많이 하고, 성경도 많이 읽고, 성경도 찾아보고, 방언 기도도 하고, 귀신도 많이 쫓아내고, 치료하고 풀어주고, 운전을 시작했어요. 악마를 쫓아내고 말하고, 말하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 제 생각에는 꽤 좋은 것 같아요.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영적 세계의 운영 규칙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제공합니다.

그러다가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욱 흥미로워지며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이르게 됩니다. 그 당시 무슨 일이 일어났나요? 그때 나는 용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용의 영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용의 영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다는 것이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저는 이게 꽤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더 많은 귀신을 쫓아내기 시작했어요. 나중에는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영적 진리에 대한 우리의 지식에 정비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곳마다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 우리가 하는 방법입니다. 당황하지 말고 자신감을 갖고 시작하세요 혼란스러운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만 죽어가는 자신감을 가지고 걷기 시작하세요.

[질문] 11: 목사님 제가 묻고 싶은 것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생각을 어떻게 읽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설명을 들을 때마다 그 이면의 생각을 읽을 수 있지만, 제가 직접 읽어 볼 때도 있습니다. 발음도 잘 안되고, 뜻도 추출이 안되는 경우가 있으니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하세요.

A: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일단 우리가 목회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면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너무 많아서 결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가 성경을 읽었을 때, 아쉽게도 이것이 바로 제가 원했던 것이었습니다. 아, 그렇게 된 것입니다. 사무엘하 23장에서 문제가 있었고, 24장에서도 같은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저는 항상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를 찾아보고, 그 다음에는 지금 발생하고 있는 문제, 목회적 돌봄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를 찾아 읽어보면 '아 그래, 그게 그거다'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다야.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계시하시는가? 하나님은 자신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많은 것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가지고 놀 수 있도록 계시가 계시되지 않았는데, 그렇다면 어떤 은사가 먼저 옵니까? 아니면 서비스가 먼저인가요? 나는 봉사가 먼저이고 선물이 마지막이라고 믿습니다. 사람에게는 봉사하려는 욕구가 있기 때문에 이 사람의 문제, 저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모든 문제를 과학적으로 조사해야 합니다. 그러면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에 계시를 받아 성경 공부와 기도를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봉사는 계시를 가져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무엇을 믿지 않습니까? 내가 이 은사와 이 계시를 받을 때까지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행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일하시는 것입니다. 모두가 점차 이 논리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은사를 사모하고 사모하는 것은 점을 치거나 헛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며, 신령한 은사를 얻으면 남을 섬기고 만인에게 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자, 오늘 Q&A가 좀 길네요. 질문이 너무 좋고 훌륭하네요. 질문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모두에게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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