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사도행전25장-바울은 황제 앞에서 증하기를 원했습니다.

필기를 참고

1.신임 총독는 바울의 간증을 들어야 한다

바울이 이 세상에 왔을 때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 바울의 사명이자 사명이었습니다.
간증은 당신이 행한 일, 경험한 일,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행하신 일입니다.

2.아그립바 왕은 바울의 간증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새로 임명된 총독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바울의 간증을 들어야 합니다.
바울은 증거하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증거할 것을 고집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의 운명이고 바울은 운명의 사도였기 때문입니다.

3.황제도 바울의 간증을 들어야 합니다

아그립바 왕은 바울의 증언을 들었는데, 바울은 자신을 위해 정의를 세워 준 사람이 아그립바 왕이라고 말했는데, 사실은 자기의 증언을 듣게 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바울은 증거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막론하고 어떤 대가도 서슴지 않았으며, 그가 치른 모든 것은 운명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4.대제사장들은 바울을 살려 두지 않았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이 바울을 살려 두지 아니하니 바울도 증거하기가 심히 어려웠고 그도 유대인이었는데 유대인들이 바울을 살려 주지 아니하더라
그들은 예수께서 아직 살아 계시다는 바울의 증언을 두려워했습니다. 이것을 종교의 정신이라고 합니다.
종교의 영은 참도를 혼동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종교적인 복음, 곧 거짓 복음과 종교의 영이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정신은 매우 완고한 신앙이다.

5.바울은 죽음에 신경쓰지 않은다.

바울은 죽음을 염려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으니 죽음을 두려워하면 하나님이 보호하고 싶어도 하실 수 없느니라.
바울에게는 운명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이 세상에 온 목적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영원한 소망을 가진 사람은 죽음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6.결론

바울이 황제 앞에서 증언하고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세대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운명을 맡아야 합니다. 완전한 목회 시스템을 구축하십시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장 관심을 두시는 것은 목회적 돌봄이기 때문입니다.

서론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사도행전 25장을 보겠습니다. 일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 구절은 찾기가 어렵습니다. 나는 이 장의 주제를 "황제 앞에서 바울이 증언한 것"이라고 불렀습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에게 매우 엄숙한 말씀을 하신 일이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의 빛이 그에게 비쳐 모든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증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고난도 겪게 될 것이 바울에게 주어진 운명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간직하여 모든 사람에게 증거하려고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의 간증을 들을 기회가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간증해야 하는 것이 바울의 사명이자 운명입니다.

사실, 실수하지 마십시오 신학에 대해 너무 많이 이야기하지 말고 간증에 대해 이야기하십시오. 얼마 전 사도행전을 말할 때 간증, 즉 자신이 행한 일, 체험한 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말하는 방법을 알려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이런 간증은 그런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원자핵에 관한 이론을 이야기하면 누구도 보거나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양자역학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정말 사물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간증을 통해 하나님을 이야기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할 이야기가 너무 많아요. 며칠 전, 저는 반 친구들과 저녁 식사를 하면서 제 간증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나는 병원에서 죽어가고 있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한 남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안 좋은 상황에 처했을 때 최후의 수단으로 나를 생각하는 거죠. 병원에 가보니 정말 죽어가는 것 같았고, 머리를 다듬기 위해 손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그와 함께 한 시간 동안 기도했고, 그는 살아서 발로 차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증언을 한 후에 그가 무엇을 반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는 완고할 수 없었고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납작한 복숭아를 먹었고 그 맛이 어땠다고 말한다면, 다른 사람들은 당신이 먹은 납작한 복숭아가 당신이 정말로 먹었기 때문에 이 맛이 아니었다고 말할 권리가 없습니다. 그게 바로 간증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설교하지 말고 간증만 하십시오.

바울이 그러한 사명을 받아들여 황제 앞에 나아가 증거하겠다는 야심을 품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만약 당신이 황제 앞에 가서 그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요청을 받는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아마 쫓아낼 텐데, 안 자르면 좋을 텐데, 황제께 어떤 증언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어떻게 증언해야 할까요? 바울은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될 예정이었고, 자신의 경험담과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야기,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해 어떻게 알았는가를 황제에게 듣고 싶었습니다. 어쩌면 황제 집안에 필요한 것이 있을 수도 있으니 바울이 와서 황제 집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보도록 하세요. 그러므로 하나님은 전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시고 증거하기를 좋아하시되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는 권능을 증언하는 것을 좋아하시느니라 이 분이 우리 하나님이시니라

간증을 들은 사람들은 이것이 틀렸다고, 그런 것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도 그 사람을 알고 나도 그 사람을 압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일어난 일을 여러분에게 말하겠습니다. 그게 제가 한 전부입니다. 어떤 사람이 나에게 주님을 믿으면 십자가를 질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내 컴퓨터 가방은 이미 충분히 무겁고 압박감도 크다고 했는데, 왜 십자가를 지고 다녀야 합니까? 며칠 뒤 또 다른 사람이 와서 복음을 전했는데, 지금 예수를 믿으면 죽은 뒤에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나는 논쟁하고 그가 천국에 가본 적이 있는지 나에게 증명해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잊어 버리십시오. 그러므로 오늘날의 기독교에는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 면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전도란 무엇입니까? 그냥 증언해주세요! 하지만 직접 경험하지 못했다면 누구에게 말해줄 수 있나요? 본인이 직접 경험했다면 다른 사람에게 솔직하게 말해주세요. 누군가 당신에게 그 사람들을 따르면서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냐고 묻는다면, 당신은 이 문제가 매우 명확하지 않다고 말하며, 성경에는 실제로 그렇게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이 오늘 바울의 간증의 주제입니다. 황제와 임금은 모두 바울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새로 부임한 총독도 들어야 합니다. 한번 들으면 바울의 이야기가 매우 흥미로워집니다.

1. 새로 부임한 총독은 바울의 간증을 들어야 합니다

베스도가 도임한지 삼이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사도행전 25:1)

새로 부임한 총독은 바울에 대해 전혀 몰랐고, 감옥에는 죄수들이 너무 많아 모두를 아는 것이 불가능했습니다. 새로 부임한 총독은 부임한 지 사흘 만에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정치인이 문제를 일으킬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아야 합니다. 그들이 관리하는 도시가 갑자기 문제에 빠지면 일자리를 잃게 됩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대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은 정치적 세력이 매우 막강하여 총독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므로 사흘 만에 대제사장들을 만나러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과소평가하지 마세요. 새로 임명된 주지사가 이 유대인들을 통제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로마제국은 일련의 이론을 갖고 있었는데, 규모가 크고 작은 나라들을 차례로 정복했습니다. 그러나 이 작은 나라들을 해결하기 위해 서로 정면으로 맞서 싸울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정치가 아닙니다. 정치는 나라를 다스리는 이론의 집합체인데, 로마 제국의 나라 다스리는 이론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 중 하나일 정도로 위대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과 마찬가지로 로마제국 역시 훌륭한 경영철학을 갖고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보내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러라.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미구에 떠나갈 것을 말하고.(사도행전 25:2-4)

베스도가 도착했을 때 그는 일을 처리하고 대제사장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바울이 방문하자마자 대제사장들과 유력한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 베스도는 더 이상 논의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바울을 언급했는데, 이 바울은 누구입니까? 베스도는 바울을 불러 심문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다는 증언을 오랫동안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베스도가 아직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파헤쳐 보기 시작할 수 있고, 바울은 그 내용을 하나씩 명확하게 설명할 것입니다. 내 생각에 바울에게 일어난 일은 참으로 기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예루살렘에 갔을 때 성령께서 그를 막으셨을 때에도 그는 계속해서 갈 것을 고집했습니다.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어떻게 호랑이 새끼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이 길을 가지 않으면 어떻게 황제에게 와서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은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체포되어 2년 동안 감옥에 갇혔습니다. 지난 2년 동안 그는 감옥에서 잘 지내왔고, 많은 편지를 쓰고, 정리하고, 요약했습니다. 예전에는 일이 너무 바빠서 요약하고 요약하고 정리할 시간이 없었는데, 이제는 감옥에서 조용히 정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면회도 허용됩니다.

새로 부임한 총독도 바울의 간증을 들어야 했는데, 알고 보니 그는 이 일을 하기 위해 먼 길을 갔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너무 유머러스하신 분이신 것 같아요.. 성령께서 바울이 정말 죽음을 무릅쓰려고 하는지 일부러 방해하신 것 같아요. 그 결과 바울은 막을 수는 없더라도 간절히 증거하고 싶었습니다. 성령이 발람을 막으려 하되 막지 못하였고, 성령이 바울을 막으려 하되 역시 막지 못하였더라. 다만 발람은 무식한 선지자였으나 바울은 매우 운명적인 사도였을 뿐입니다. 그는 증언의 문제를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새 총독이 처음으로 맡은 사건은 바울의 증언을 듣는 것이었고, 이는 베스도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일 혹 십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오라 명하니.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 서서 여러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송사하되 능히 증명하지 못한지라.바울이 변명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사도행전 25:6-8).

만일 어떤 사람이 바울이 감옥에 갇히는 것이 좋지 않다고 의심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이런 식으로 벌하실 수는 없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그냥 처리하셨고, 요셉은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보내어 요셉의 형들을 미혹하게 하시고, 그 결과 요셉이 산 채로 애굽에 팔렸습니다. 그건 정말 노예 제도이고, 정말 육체를 배려하지 않는 행동이에요. 우리 하나님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지만 요셉은 나중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네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꿰뚫어 볼 수 없다면 하나님과 협력하기가 정말 어려울 것이다. 바울은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체포되어 2년 동안 감옥에 갇혔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두주기가 있는데 겨울에는 감옥 안이 매우 춥기 때문에 호텔에 머무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호텔에 머무르는 것에 만족하지 않지만 Paul은 감옥에 있지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 기간 동안 전 총독은 그의 간증을 충분히 듣지 못했고, 신임 총독은 계속해서 귀를 기울였습니다. 폴은 그게 중요하지 않다고, 죽어도 상관없다고, 그게 그의 운명이고 운명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활동했으며 최고의 죄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의 죽음을 주장했기 때문에 갑자기 역사상 가장 유명한 사도 바울을 탄생시켰습니다. 유명해지고 싶다면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2. 아그립바 왕은 바울의 간증을 듣고 싶었습니다

아그립바가 베스도더러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가로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이튿날 아드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의를 베풀고 와서 천부장들과 성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신문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사도행전 25:22)

로마 제국은 우리 중국의 진나라와 조금 비슷합니다. 진나라는 한때 봉건 왕과 변경 관리가 모두 포함 된 주 왕조의 역사를 요약했습니다. 행정권은 도지사나 봉건 관료에게 주어졌고, 지방에는 봉건 왕도 있었는데 이것이 바로 정치 체제였습니다. 바울은 황제에게 상소하여 자신을 위하여 정의를 구해 달라고 청하고 싶은데, 사실 그것은 황제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는 뜻인데 그 대가가 너무 높습니다. 그런데 베스도 총독이 취임하고 첫 번째 사건은 사도 바울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고 증언한 일인데, 알고 보니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은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빌라도는 그 곳의 이전 총독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께서 살아 계시다고 말했습니다. 내 생각에 하나님은 참 유머러스하신 분이어서 밤에 베스도에게 나타나시면 겁을 주어 죽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일을 하지 않으시고, 예수님은 그를 믿는 사람들에게만 나타나십니다. 간증을 듣고 믿을 때만 나타나실 것입니다. 믿지 않는다면 나타나지 마십시오. 사람들을 놀라게하고 싶지 않습니다. 베스도 총독은 군 행정관에서 승진한 인물이어서 이 사건을 해결하기가 쉽지 않았다. 유대인 대제사장들은 바울이 죽기를 원했지만 바울은 황제인 가이사에게 상소하고 싶었습니다.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사죄를 범하였으면 죽기를 사양치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의 나를 송사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누구든지 나를 그들에게 내어 줄수 없삽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호소하노라 한대.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가로되 네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사도행전 25:11-12)

이 일은 다루기 쉬우니 아그립바 왕에게 전화하라 여기 어떤 사람이 가이사를 고소하려 하나 그 이유를 알 수 없느니라. 그래서 아그립바 왕은 죽은 자들이 살아났다는 소식을 듣고 간증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원고들이 서서 나의 짐작하던 것 같은 악행의 사건은 하나도 제출치 아니하고.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의 죽은 것을 살았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송사하는 것뿐이라.(사도행전 25:18-19)

꽤 흥미롭다고 했는데요, 사도 바울은 아그립바 왕은커녕 베스도를 만날 기회도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아그립바 왕이 당신에게 간증을 전하러 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반드시 막대기로 회당에서 패할 것입니다. 아직도 설교하고 간증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피곤한 삶입니다. 이제 아그립바 왕이 듣고자 하노라 하니 바울의 생명이 헛되지 아니하였고 그의 증거가 총독과 유대 대제사장들과 아그립바 왕과 로마 황제에게까지 갔더라. 바울은 분명한 목표뿐만 아니라 분명한 전략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지자가 예루살렘에서 잡히더라도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을 수 없습니다. 그 결과 징역형을 받고 고소를 당하게 되어 항소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항소와 청원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아그립바 왕이 바울의 간증을 듣고 싶어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유대의 아그립바 왕은 사실 예수님 통치 당시 헤롯 왕의 후손인데, 아들인지 손자인지는 모르겠습니다. 헤롯 가문의 성전 건축은 다소 영적인 것이었고, 이는 아그립바 왕이 귀신과 신들을 믿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세대에는 귀신과 신을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불행히도 그들은 귀신과 신을 믿으면서도 참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3. 황제도 바울의 간증을 듣고 싶어 했습니다

황제도 바울의 증언을 들어야 했는데, 이것이 로마의 법칙이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총독은 바울의 간증을 듣는 것이 그의 일이었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바울의 증언을 듣고 그것이 그의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죄수였지만 이 사람들은 자기 일을 해야 했습니다. 황제가 바울의 증언을 들었다고 해도 그것은 황제의 일이었습니다. 로마제국에는 각방의 봉건 관료들이 해결하지 못한 사건을 황제에게 가져가 재판을 받는 제도가 있었습니다. 로마제국은 광대했고, 대로마제국의 황제는 바울 자신을 심문하는 것까지 할 일이 많았습니다. 바울의 간증을 듣는 것은 황제의 할 일이요, 바울의 간증을 듣는 것은 아그립바 왕의 할 일이요, 바울의 간증을 듣는 것은 총독의 할 일이니라 하나님은 참 웃기시도다! 이것이 로마제국의 관례였고, 그렇게 마련되었습니다. 총독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하면 사건을 명확하게 적어 황제에게 보고했다.

사도행전은 누가가 당시 로마에서 매우 유명한 변호사였던 데오빌로에게 쓴 것이라고 합니다. 사도행전은 성경에 모아져 있으며 사도 바울의 경험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때 누가는 바울의 이야기를 명확하게 적어서 변호사에게 넘겨주어 변호사가 황제 앞에서 사도 바울을 변호할 수 있도록 하려고 했습니다. 원래는 간증만 하면 되는 문제였는데 너무 어려워서 황제가 간증을 듣는 게 정말 쉽지 않았는데, 바울의 간증을 듣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건을 들어야 했을까요? 그래서 바울은 로마에서 2년 동안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로마 황제가 매일 재판만 할 수는 없었고, 국가의 중요한 일들이 너무 많아서 처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산노미야와 제6병동이 있으며 사냥, 전체 올림픽 게임 및 기타 많은 일을 관리합니다. 황제가 바울의 간증을 듣고자 하면 우여곡절을 많이 겪어야 했지만 하나님은 개의치 않으셨고, 바울도 자신이 황제에게 간증할 차례가 되기까지 2년을 기다린 것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 2년을 감옥에서 지내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평생 사명이 있고 운명이 있고 후광이 있으면 이 세상에서 무가치한 사람입니다. 감옥에 들어가자마자 하나님께 왜냐고 묻는 일부 사람들과 달리 그들은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프로그램과 같은 채널에 있지 않습니다.

4. 대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이 바울을 살려 두지 아니함

둘 다 유대인이요 바울도 바리새인이었는데 왜 바울을 살려주지 않았습니까? 나중에 생각해보니 실제로도 그렇다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해외에서 중국인을 속이는 사람들 중 상당수는 중국인이다. 이 대제사장은 바울이 살아 있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심지어 증언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예수께서 살아 계시다는 바울의 증언을 그토록 두려워했을까요? 이것을 종교의 정신이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보내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러라.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미구에 떠나갈 것을 말하고.또 가로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아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민일 옮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송사하라 하니라.(사도행전 25:2-5)

여기에 아주 분명한 문장이 기록되어 있는데, 베스도가 유다 예루살렘의 유력자들에게 자기와 함께 가이사랴로 가서 바울을 심문하고 고소인과 피고인에 대하여 증언하라고 요청했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로마인들과 아무 관련이 없었으며 그들은 그 일에 관여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종교의 영을 대할 때 조심해야 하는데, 종교의 영은 특히 강력하여 참도를 혼란시키는 일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들에게도 복음이 있지만 그것은 거짓 복음, 즉 종교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제국은 바울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지만, 유대교 대제사장들은 바울을 심각하게 여겼습니다. 그 배후에는 종교심과 권세 있는 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편지들을 쓸 때 권력과 지위를 가진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지혜를 참으로 알 길이 없다고 썼습니다. 이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거짓 복음을 전파한다고 확신했으며, 바울에 대한 그들의 비난은 입증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거짓의 영이니라 사람이 거짓에 속으면 자기도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많이 믿게 되느니라. 사실, 이 종교의 정신에는 또 다른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매우 완고한 믿음입니다. 나중에 보니 운명신학에 가장 저항하는 사람들이 바로 기독교인들이요, 종교의 영에 지배를 받는 사람들이요, 아주 사악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의 대제사장들과 권세자들이 바울을 살려 두지 않았습니다.

5. 바울은 죽음에 관심이 없습니다.

바울은 정말 죽음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를 처벌하려는 사람들은 항상 사는 것이 너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죽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여 죽이려고 하였으므로 그냥 놓아주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고 모의하는 것을 막은 것은 바로 이방인의 율법이었습니다. 로마 제국에는 일정한 규범이 있어서 로마 시민을 고문하여 죽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정말로 법치주의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으며, 심문 없이는 이 사람들이 장난을 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당시 로마 시민들은 재판을 받고 싶으면 황제에게 상소할 수 있는 큰 권리를 갖고 있었는데, 그가 유대인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보호하고 싶어도 보호해 주실 수 없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는 운명이 있었고 자신이 왜 살아야 하는지 알았습니다. 오늘은 약하게 물어보겠습니다. 당신은 인생에서 무엇을 하고 싶나요? 혼란 속에 살다가 그런 죄를 당하면 죽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그리고 사도 바울은 자신의 운명을 위해 살았습니다. 사실 살아갈 의미도 없고 눈 깜짝할 사이에 노인이 되어버릴 것이다. 그렇게 의기양양하던 내가 눈 깜짝할 사이에 40대가 아닌 사진 속 노인들로 변해 있었던 기억이 난다. 우리 할아버지 사진에도 할머니처럼 생긴 사람이 있는데, 사람들이 사진을 보면 누구 엄마냐고 묻는다. 사람이 그렇게 자라는 건 사실이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잘생긴 소년이었죠. 어떤 사람들은 곧은 수염과 긴 눈썹을 갖고 있는데, 언뜻 보면 생일 소녀를 연상케 하고 이마에 윤기가 난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10년 전 우리가 함께 있을 때는 이렇지 않았다. 20년 전 우리가 함께 있을 때는 모두 기분이 좋았지만 지금은 그런 기운이 사라졌습니다.

나에게 인생의 운명이 있다는 사실에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내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알고 있고, 내가 아는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바울이 여러 곳을 다니며 간증하고 돌아왔을 때 했던 일인데, 사람들이 영원한 소망을 갖고 있는데도 여전히 죽음을 걱정합니까? 말하지 마세요. 나를 구한 것은 단지 죽음을 걱정하지 않는 에너지였습니다. 마흔 살이 되었을 때 비인두암 증상을 모두 가지고 있었는데, 인터넷으로 비인두암 증상을 검색하다가 나와 일치하는 한 쌍의 증상을 발견하여 모두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운전을 10분 정도 했더니 눈이 거의 감겨질 정도로 피곤해서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일하면서 하루도 쉬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휴식을 취하고 의사를 만나라고 조언했습니다. 그냥 괜찮다고 했어요. 죽으면 죽일 거에요! 잘 생각해보면 죽으면 끌어내려도 괜찮으니 보험이라도 준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보험에 가입하기 직전에 실제로 병원에 가서 검진을 받아도 보험에 가입할 수 없습니다. 확인해보지도 않았고, 알고 싶지도 않았지만, 반년이 지나도 그 사람이 아직 살아 있다는 걸 몰랐다. 9개월이 더 지나자 모든 것이 괜찮아졌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꽤 강한 사람이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운이 좋은 사람이다.

제가 비인두암 의심 진단을 받은 때는 마침 사스(SARS) 시기였는데, 사스(SARS) 파동을 따라잡지는 못했지만 얼마 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됐어요. 침대에 누워서 천장의 전구가 점점 커지는 것을 보았고, 그것이 커지면 농구공처럼 보였습니다. 이 전구가 얼마나 큰지 알아야 하는데 어떻게 농구공만큼 클 수 있나요? 갑자기 그것이 환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으니 기도하면 됩니다. 그는 인공호흡기 같은 것도 없이 살아 남았고, 이는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나중에 나는 병원에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사망했으며, 그들이 질병으로 사망했는지 치료로 사망했는지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 사람들 중 절반은 독살되어 죽었고 나머지 절반은 질병으로 인해 겁에 질려 죽었습니다. 삼중독이 되는 약이니라 믿고 있으면 가서 치료를 잘 받으라. 물론 내 얘기니까 헛소리는 하지 마세요. 나같은 능력이 없으면 뽐내지 말고 제대로 대접해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우리 중에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영생에 살고, 운명이 있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는 능력이 우리에게 나타나는 것을 자주 본다면, 아직도 죽음이 두렵습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잘 경험해보세요! 이 바울은 감옥에 가더라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는 감옥에 있는 동안 감기에 걸렸는지, 감기에 걸렸는지, 관절염에 걸렸는지에 대해 하나님의 백성이 그렇게 강하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권능이 자주 우리를 덮었기 때문에 바울은 죽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권능을 자주 경험했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런 운명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운명신학입니다. 당신은 여기에서 무엇을 하려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당승과 손오공에게는 운명이 있었고, 그들은 서양에서 불경을 구하는 데 99번과 81번의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불꽃산과 판시동굴을 통과하고 백골악마와 세 번의 싸움을 벌이는 것은 그야말로 쟁탈전이었다. 그들은 또한 신앙과 운명의 예입니다. 경전을 얻기 위해 서쪽으로 가거나,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가거나, 메카로 가거나, 항상 목표가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고, 그 부활의 능력이 우리 안에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생명을 탐하고 죽음을 두려워하면 그리스도인도 될 수 없고 증거할 수도 없다.

6.결론

바울은 황제 앞에서 증언하고 싶었고 그렇게 했습니다. 로마 황제가 현명한 사람이어서 바울을 풀어 주었으니 유대 대제사장들이 고발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로마에 도착하여 심문을 받은 후에는 그의 교회 건축 편지가 많이 수집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 일이 우리에게 맡겨진 건지 궁금해요. 바울은 그 단계에서 가장 큰 사명을 완수했고, 오늘날 우리는 이 세대를 향한 하나님의 운명을 책임지고 온전한 목회체제를 세워야 합니다. 조금 어렵지만 지금도 열심히 노력하고 있고, 성경에 맞는 목회제도를 꼭 정리하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관심을 두셨던 것은 목회였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목회 지식을 바울에게 계시해 주셨나요? 전혀 없거나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계시를 사모하고 추구한다면 어떨까요? 이 시대 하나님께서 온전한 목회체제를 우리에게 보여주시고자 하신다는 사실에 감동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쁘게 맞이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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