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사도행전21장-하나님을 위해 유대인들을 얻은다!

필기를 참고

1.사도 바울에 대한 더 깊은 이해

바울이 쓴 편지는 감동적입니다.바울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다른 사람들이 복음의 유익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2.바울은 이미 하나님을 위해 이방인들을 구원했습니다

울이 로마에 도착하여 황제에게 예수님에 대해 말하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방해가 되는 모든 장애물이 제거되었습니다.

3.유대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려는 바울의 열망

유대인들은 하나님에 대해 매우 열정적이지만 참된 지식에 기초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러한 결단은 우리가 본받을 만한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복음의 혜택을 누리기를 원했습니다.
우리는 야고보를 목표로 삼지 말고 바울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본받아야 할 모범입니다.
이 복음은 경제적으로 부유할 뿐만 아니라 문제가 닥쳤을 때 해결해 주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영원한 영광의 소망입니다.

4.어떤 위험도 당신을 막을 수 없습니다

인생의 목표는 복음의 유익을 받는 것인데, 이것이 목표와 운명을 가지고 사는 방식입니다.
바울은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고, 위험도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기 때문에 형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성령이 바울을 막았으나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막지 못하였으니 하나님의 뜻이 이미 바울에게 계시된지라
목표는 성령님보다 더 정확합니다. 명확한 목표를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마귀가 분명한 목표를 가진 사람을 미혹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바울이 행한 일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과 똑같습니다. 그것은 생명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복음으로 다른 사람들도 유익을 얻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본받았으며 어떤 위험도 그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5.결론

사도 바울은 사람들이 이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려고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도행전 21장을 보겠습니다. 우리는 이전에도 이 장을 찾아 설교에 사용했지만, 당시 우리는 전적으로 야곱에게 집중했습니다. James를 분석하는데 많은 공간이 소비되었지만 이는 실제로 잘못된 것입니다. 연극을 볼 때는 조연이 아닌 주인공을 본다. 조연을 주인공으로 본다면 극은 틀리고 감독도 헛수고가 될 것이다. 사실 이 장의 주인공은 사도 바울인데, 이 장의 내용만으로는 주제와 초점을 찾기가 꽤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사도 바울을 알아야 하며 그가 쓴 내용과 행한 일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장에서는 사도 바울이 많은 일을 하고 여러 곳을 다녔다고 하는데, 표면적으로는 매우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소란의 결과 온 도시가 충격에 빠졌고, 사도 바울은 체포되어 사슬에 갇혔습니다. 이 문제는 좀 이해하기 어려운데, 성령께서는 이전에 바울을 막으시고 그에게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권고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바울의 다른 편지들에서 볼 수 있으며, 이 장의 주제는 “유대인들을 하나님을 위하여 구원함”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였으며 그와 베드로, 야고보는 이미 분업을 확립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에게로 갔고, 베드로와 야고보는 유대인에게로 갔다. 오랫동안 분업이 분명했지만, 사도 바울은 이미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을 마치고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갈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Paul은 빨리 일했기 때문에 많은 일을 했습니다. 나처럼 사람들도 내가 일하는 걸 보면 놀라는데 이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빨리만 한 게 아니라 거칠지도 않고 꽤 섬세했어요. 우리 각자에게는 하루 24시간이 있지만, 누구도 하루 28시간을 갖지 못합니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시간을 갖고 있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일을 하는 걸까요? 정신이 맑고 효율적으로 일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자주 하는 말 몇 개만 익히면 당신은 분명 유능한 사람이 될 것이다. 즉, 목표가 명확하고, 전략이 명확하며, 방법이 옳다는 것이다. 명확한 목표가 없고, 불분명한 전략이 없고, 일을 처리하는 잘못된 방법이 없다면 당신은 머리 없는 파리와 같을 것입니다. 너무 바빠서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네요.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신속하게 이루어졌고, 이 일이 이루어지자 자신도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할 수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자기가 이방인의 사도도 아니면서 왜 떡을 먹으려고 유대인들에게 왔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실 그는 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이 복음의 유익을 나누고 유대인들을 하나님을 위해 얻기를 바랐습니다. 이 문제는 우리가 사도 바울의 편지를 여러 번 읽고 명확하게 이해하면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1. 사도 바울을 더 깊이 알아가세요

우리는 어떻게 사도 바울을 더 깊이 알 수 있습니까? 당신은 그의 편지를 읽어야 하는데, 그 내용은 매우 감동적입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어나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을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고린도전서 9:19-23)

사도 바울은 유대인이었으며 유대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를 원했습니다. 내가 중국인인 것처럼 나도 중국인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싶습니다. 바울의 마음을 알아야 하는데 왜 그가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는가? 모두가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결코 이방인과 유대인으로 나누어지지 않은 최후의 수단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자기가 계시를 받아 예루살렘에 갔다고 말했는데, 이는 그 전에나 지금이나 그 달음질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해고될까 봐 걱정되었기 때문에 당분간은 마음을 편하게 하려고 했다. 베드로나 야고보와 같은 사람들과 싸우지 말고 오직 이방인의 사도가 되십시오. 베드로와 야고보도 매우 기뻐하며 항상 자신들이 부정하다고 생각하여 이방인들을 얻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고린도전서』와 『갈라디아서』를 읽어보면 사도 바울의 논리적 체계에서는 이방인 그리스도인과 유대인 그리스도인 사이에 차별이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키십시오. 사실 이렇게 나눌 수는 없습니다. 바울은 이 사람들이 함께 복음의 유익을 받기를 원할 뿐입니다. 이 일이 거짓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그가 가짜라면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총탄을 맞을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사도 바울의 말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이것이 매우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사도행전을 읽을 때 우리는 사도 바울이 여전히 유대인들을 구원하기를 원했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2. 바울은 하나님을 위해 이방인들을 구원했습니다

이때까지 바울은 마케도니아와 다른 곳에 많은 교회를 세웠고, 빌립보, 에베소, 고린도, 데살로니가 등에도 교회가 곳곳에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가 사업을 시작한다면, 그는 매우 강력할 것이고 단번에 이 영토를 장악할 것입니다. 바울은 먼저 예루살렘으로 가고 그 다음에는 로마로 가고 싶었습니다. 꽤 흥미로운 이야기인데, 그는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체포되어 로마로 이송되었습니다. 원래는 로마에 가고 싶어서 배표를 구했거든요. 물론 농담이었어요.

그러면 그가 로마로 가고 싶어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그는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에 장래에 로마에 갈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내용의 로마인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고 실제로 그곳으로 갔다. 그는 갔을 뿐만 아니라 황제 앞에서도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바울은 로마에 도착하여 황제에게 예수님에 대해 말했지만, 그들이 믿든 안 믿든, 제자가 될 수 있든 상관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황제 앞에서 예수님에 대해 말할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은 참으로 인상적인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황제들은 할 일이 많은데 어떻게 당신의 말을 들을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까?

당시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 장애물이 되는 것들을 점차적으로 제거해 나갔고, 매우 분명한 전략을 구사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의 허락을 얻었는데, 이는 사도행전 15장과 갈라디아서에 모두 나와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유럽과 아시아에 복음을 전파하며 공격적으로 전진하기 시작했습니다. 투르키예가 유럽 국가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실제로는 아시아 국가입니다. 하지만 터키는 언제나 유럽과 힘을 합치고 싶어하는데 이는 인지적 문제다. 늘 유럽이 위대하다고 느껴지지만 지금은 아시아의 시대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마케도니아, 스페인, 키프로스 등은 모두 유럽에 속해 있는데, 사도 바울은 그 당시 이미 이방인을 하나님께 얻었습니다. 그리고 야고보의 입장은 아주 분명했습니다.그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분명히 구별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인데,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이렇게 나누어질 수 있겠습니까? 반은 할례를 받아야 하고 반은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되나니 이것이 무엇인가? 주 예수님은 이런 분이 아니시니 얼굴은 반은 이러하고 반은 저러하므로 바울은 마음에 심히 염려하고 유대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기를 사모하였더라.

3. 유대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려는 바울의 열망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의 개념, 곧 하나님의 교회의 개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몸이므로 나누어질 수 없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선택을 받았는데, 우리 주 예수님도 유대인이셨다는 사실이 항상 안타깝다고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은 실제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데, 그들은 복음의 혜택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저주를 받았습니다. 유대인으로서 마음이 너무 아프고 유대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고 싶습니다.

그가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및 기타 편지를 쓸 때 그는 항상 유대인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모두 유대인이요 이스라엘인이었습니다. 로마서에서 바울은 참 유대인이 무엇인지, 거짓 유대인이 무엇인지, 왜 하나님의 약속이 유대인들에게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설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합니다. 바울의 논의는 유대인 가운데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을 하나님의 왕국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유대인들은 하나님에 대해 열심은 있었지만 참된 지식에 기초한 것이 아니었습니다.바울이 그의 서신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바울 자신도 마찬가지로 열심이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싶었습니다. 왜 우리는 유대인을 얻고자 합니까? 사실 그 목적은 유대인들이 이 복음의 혜택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인해 유대인들은 많은 저주를 받고 고난도 많이 받았습니다. 바울은 자기 민족이 많은 저주를 받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할 기회를 얻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크게 종용히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여 가로되.(사도행전 21:40)

유대인들이 복음의 혜택을 받기를 바랐고, 야고보나 베드로 같은 사람들도 깨어나기를 바랐기 때문에 이러한 결단은 우리가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야고보의 태도를 알고 갈라디아서에서 야고보와 베드로에게 심한 손상을 입혔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목적은 그들을 손상시키고 쓸모없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야고보와 베드로가 복음의 진리로 돌아오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야고보와 베드로가 누구인지 마음으로 알면서도 이렇게 한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목회하는 이방인 교회들로부터 손예물과 많은 돈을 포함하여 많은 헌금을 예루살렘으로 가져왔습니다. 돈을 위해서라도 야고보와 베드로는 바울과 얼굴을 맞대고 복음의 진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사실 이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야고보와 베드로는 둘 다 예루살렘에 있었습니다. 바울의 설교를 듣고 그들의 마음은 부엌에서 기름, 소금, 소스, 식초, 설탕이 모두 섞인 것 같았습니다. 맛이 뒤섞인 봉지였습니다. . 표면적으로는 야고보와 베드로가 바울과 사이가 좋았고, 바울도 자신이 서원을 하러 성전에 들어가면 유대인들에게 반드시 잡힐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Paul은 매우 똑똑해서 James가 그에게 말한 아이디어가 좋은 생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희가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로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사도행전 21:20)

당신은 이것을 보고 당신의 태도를 분명히 보여 주었고, 율법에 대한 열심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또 규모를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저희가 들었도다.그러면 어찌할꼬 저희가 필연 그대의 온 것을 들으리니.우리의 말하는 이때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저희를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저희를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게 대하여 들은 것이 헛된 것이고 그대로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사도행전 21:21-25)

예전에 이 구절을 찾아보니 바울이 속은 줄 알았습니다. 사실 아니, Paul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보고 우여곡절을 겪은 사람이고, 사슬에 묶일 것이라는 말을 오랫동안 들어왔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어려움을 겪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유대인들에게 복음의 유익을 주기 위해 가야만 했던 것은 참으로 감동적인 일이었습니다! 마치 몸으로 총구를 막고 벙커를 폭파해 목숨을 걸고 목숨을 걸었던 황지광과 동춘예와 같다. 그것이 속임수인지 함정인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유대인을 얻는 것입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을 이기고 싶었고 야고보나 베드로와 같은 사람들도 이기기를 원했습니다. 사실 야고보와 베드로도 갈라디아서를 읽었고 확신을 가져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이 세운 이방인 교회가 매우 번영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갈라디아서를 읽고 나서 썼다.사실 한 점 한 점 일치시켜 보면 맞을 수 있다.야고보는 갈라디아서에 대한 바울의 서신을 한 점 한 점 반박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 겉으로는 좋은 친구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적으로 만난다. 야고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형제였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말 그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반으로 나누어 반은 유대인 예수가 되었고, 나머지 반은 이방인 예수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소심해서 어떻게 복음의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 교회는 이미 극도로 가난했고, 나중에는 점점 더 악화되어 돈을 모두 태워 버렸습니다. 바울은 이방인들의 성금을 예루살렘으로 가지고 가면서 이 사람들이 자신의 진심에 감동받기를 바랐으나 결과는 실망스러웠습니다.

물론 우리는 야고보 같은 사람에게 초점을 맞춰서는 안 되고,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말한 것처럼 바울에게 배움의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고린도전서 9:22-23)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가 복음의 유익을 받지 못하는 것을 무기력하게 지켜보았고, 복음 진리의 순수성을 위해 갈라디아서를 기록하면서 야고보와 베드로를 비난했지만, 그래도 그들이 복음의 유익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복음의 유익. 그런 사람들은 너무 강력해서 나였다면 굳이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폴은 그렇지 않아요 폴에 비하면 내 마음은 땅콩 같고 머리는 호두 같아요. 이것이 우리가 따라야 할 본보기이며, 좋다고 생각한다면 사도 바울의 본을 따라 이 복음의 유익을 함께 나누도록 합시다. 돈을 쓰지 않고도 고침을 받을 수 있고, 경제적으로 복을 받을 수 있고, 문제가 닥쳤을 때 하나님께서 도우실 수 있으며, 영원한 영광의 소망이 있으니 얼마나 좋은 복음입니까!

4. 어떤 위험도 당신을 막을 수 없습니다

비전과 꿈, 목표가 있는 사람은 어떠한 위험에도 막을 수 없다는 점은 배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 나는 목표가 매우 중요하다고 모든 사람에게 말했습니다. 오늘은 모두가 스스로에게 묻기 시작합니다. 왜 살아 있나요? 어떤 사람들은 큰 필요가 없고 단지 평범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며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합니다. 이것이 일단 목표라면 그 사람이 살아가는 수준은 매우 낮을 것이다.

이런 삶을 많이 봤는데 몇 달 전에 아주 부유한 70대 남자를 만났는데 그 사람은 정말 힘든 삶을 살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 힘든 부분을 몰랐어요. 그는 저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고, 우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저는 그에게 제가 가장 좋았던 이야기를 들려주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복음의 유익을 전했습니다. 그때 나는 그에게 이렇게 다년간의 경험을 쌓아왔으니 지난 몇 년간 쌓아온 경험을 젊은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거절했다. 그렇다면 하지 마세요, 하지 마세요. 이것은 대화의 시작일 뿐입니다. 대화 중에 그는 골프를 좋아한다고 밝혔는데, 골프는 작은 공일 뿐이라 재미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장대를 잘 휘두르기도 하고, 노래방에서도 노래를 잘 부르죠. 하지만 매일 이렇게 사는 것은 그다지 흥미롭지 않습니다.

몇 달 동안 보지 못했는데, 한번은 호텔에 묵다가 밤에 불도 켜지 않은 채 일어나 바닥에 주저앉다가 소파 팔걸이에 부딪혀 갈비뼈 2개가 부러진 적도 있었습니다. 매우 힘들었습니다. 나는 내가 아는 사람들을 만날 때 내가 행한 기적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나와 함께 복음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사실 그 사람이 팔선이나 각종 우상 등을 얼마나 받아들였는지는 전혀 관심이 없고, 이 복음의 혜택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때 그는 자신도 내가 했던 일을 하고 싶고,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고, 젊은이들을 훈련시키고 싶다고 말했고, 즉시 바꾸었다. 그 사람이 복음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군중 속에 사는 우리의 삶의 목표는 다른 사람들이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는 것인데, 그것이 우리에게 후광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돈 버는 것만 생각하는데 집에서 돈을 찍어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듣고 나면 기분이 다운되겠죠? 나 같은 사람들은 사람들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원합니다. 복음의 유익은 매우 투과성이 높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서 아무것도 얻고 싶지 않지만, 그들이 어떤 사람이든, 위험이 있더라도 그들이 복음의 유익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매우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며,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비전을 받았을 때 너무 좋다고 느꼈기 때문에 사람이 목표를 갖고 자신이 왜 살아 있는지 알면 온몸에 전염되는 기운이 맴돌게 됩니다. 당신을 만나면 모두가 기뻐하고, 다른 사람들과 술을 마시는 것보다 더 기뻐합니다. 복음의 유익이 처음부터 설명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매우 예리합니다.

Paul의 목표는 매우 분명합니다. 그렇게 하는 데 위험이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이방인들을 하나님께로 얻었고 이제는 유대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이 영토는 사도 베드로와 야고보에게 할당되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바울은 자신의 삶을 조미료로 사용했습니다. 이 장에서는 성령이 막으셨다고 하는데, 성령이 옳은가, 바울이 옳은가? 많은 사람들은 바울이 성령의 뜻을 어겼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성령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막을 수 없습니다. 위험하다는 말을 계속 듣는데도 가고 싶나요? 하나님의 뜻은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나타났는데,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있는지 알 수 없습니까? 당연히 알지!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아레를 어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사도행전 21:4)

성령의 감동을 받는 것이 정확한가, 아니면 우리의 목표인가? 물론 우리의 목표는 정확합니다.저에게도 이런 속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목표가 설정되면 지칠 때까지 벤치마크를 향해 직진합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매우 간단하다. 너는 분명 피곤할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아프고, 너도 웃지만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어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허리를 쭉 뻗었다가 잠시 후 피를 흘리며 살아났다. 그것이 내가 사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왜 내가 세운 교회는 순복음이 아닌 예정신학이라고 하는가? 나는 이것을 위해 태어났고, 이것을 위해 살고, 이것을 위해 이 세상에 왔기 때문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이 길을 달리고 싶은데 어떻게 후광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모든 사람은 목표를 명확하게 설정하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해야 합니다. 일단 목표가 생기면 매우 집중하게 됩니다. 목표가 없는 사람은 쉽게 주의가 산만해지며, 바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혼란스러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울의 목표는 매우 분명했고, 제자들의 움직임은 그것을 바꿀 수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 예수께서 그에게 영감을 주시고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합니다. 당신이 주 예수를 소개하면 바울이 그의 영감을 믿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바울처럼 분명한 목표가 있는 사람을 마귀가 속이기란 어렵습니다. 분명한 목표를 갖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임을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을 막을 수 없어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라고만 말했는데, 이 말이 꼭 제자들의 말과 같았습니다.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니라.그에게 딸 네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사도행전 21:8-11)

또한 여기에는 빌립의 네 딸이 모두 처녀였으며 예언을 했다는 것도 구체적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들은 몇 살인지,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하나님을 위해 세워진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어떤 예언을 했는지 우리는 모르지만,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예언하기 위해 여기에 기록된 것이므로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겪을 고난도 미리 예언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나중에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음이 밝혀졌고, 이전에 예언했던 또 다른 아가보가 나타났습니다. 아가보는 허리띠를 가져다가 손을 묶어 바울이 이렇게 결박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바울이 듣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바울은 분명한 목표가 있었고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목표가 돈을 버는 것이라면 돈을 잘 벌어야 하고, 막을 수 없어야 합니다. 우리의 목표가 복음의 유익을 누리게 하는 것이라면 그 무엇도 우리를 막을 수 없습니다. 목표와 운명이 있는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하며 결코 조류에 떠내려가지 않습니다. 제가 언급한 목표에 따라 생각해야 한다는 점을 기억하세요. 목표가 명확하다면 단지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목표를 바꾸지는 않을 것입니다. 내가 돈을 더 벌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을 언제 본 적이 있었나요? 그게 내 목표는 아니지만, 우리가 하는 일로 돈을 벌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주셨기 때문에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당시에는 모두가 이해하지 못하고 바울을 설득하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빌립의 네 딸과 동시대의 유명한 선지자들인 아가보를 포함하여 많은 선지자들이 바울에게 위험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선지자들이 왔을 때 듣지 않았고,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도 마찬가지였으며 오직 하나님의 뜻만 들었으니 하나님의 뜻이 우리에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이며, 누구도 설득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목숨을 바쳐 하나님을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다른 것이 필요 없이 어디를 가든 자연스럽게 나오는 관통력이 있다.

오늘 오후에 한 사업가를 만났는데 그가 사용한 소프트웨어는 우리가 작성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나는 다른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지만 그가 주 예수님을 위해 복음의 유익을 받게 하는 데에는 관심이 많습니다. 그는 경영학을 듣는 것을 좋아해서 경영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고, 이어서 질문을 하더군요. 왜? 우리는 사람들이 복음의 유익을 얻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사도 바울이 행한 일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과 정확히 동일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죽임을 당하러 예루살렘에 가시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막았더니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시니라 나는 그를 막았고 실망감을 느꼈다. 많은 사람들이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는 것을 막았고, 그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이런 사람은 속이기 어렵고, 막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는 그런 것이 없고 오직 하나님의 뜻만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몇 년 전에 나는 항상 자신을 선지자라고 묘사하는 사람을 만났는데, 그 선지자가 말한 것이 사실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어떤 교회에서는 무심코 당신이 사도면 어떤 사람은 사도되고, 선지자이면 선지자 되고, 전도하면 전도자가 된다고 하는데, 이것이 이른바 오중사역입니다. 여기에는 이런 것이 없느니라 선지자가 얼마나 무섭느냐 눈을 감고 손으로 가리키며 마귀의 화살이 어디서 나왔는지 말하다가 눈을 떠서 겨누고 있는 자가 자기인 줄 알았느냐 저는 겁이 나서 빨리 자백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런데 나는 내가 어떻게 궁수가 되었는지도 몰랐다.이게 대체 뭐지? 나는 그동안 꽤 많은 선지자들을 만났는데, 내 기준으로는 그들이 참 선지자라고는 할 수 없으나 거짓 선지자일 가능성이 있다. 좀 더 겸허하게 말씀드리자면,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도 모르는데 어떻게 선지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우리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흥미로운 사례가 몇 가지 있는데, 온몸에 관절통이 있는 분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그가 회복된 후, 그의 집 옆에 있던 선지자가 나와서 그에게 류 선생님을 조심하라고 말했습니다. 그 결과 관절이 나았고 조심하기 시작했다. 그는 관절이 나을 수 없다고 말하는 선지자의 말을 들었습니다. 어떤 종류의 두뇌를 의미합니까? 어쨌든 나는 이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가운데는 누가 예언자라고 말하는 것을 듣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선지자가 선지자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그토록 강력했고, 그 많은 사람들도 그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이 예수님을 따르고 있다는 것을 마음 속으로 알았고, 유대인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에게는 내가 유대인이 되고 법 아래 있는 자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고 약한 자에게는 약해지고 장사하는 자에게는 내가 장사 되고 장사하는 자에게는 내가 되리라 나는 기업가가 될 것이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복음의 유익을 얻게 하고 또한 하나님을 위한 몇 사람을 얻게 하기 위함이다. 목표가 너무 중요하고 삶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은 조금 아쉽네요. 아직 이 정도 수준도 아니고 배우는 중이에요. 나는 이 목사님들을 섬기는 것을 매우 주저합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섬기기가 어렵고 그들 모두가 일하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이 실수했다고 하더군요. 그 사람들은 30년 동안 일해 왔는데, 동의하시나요? 유대인처럼 사람들도 동의할 수 있나요? 사도 바울이 아무리 잘 말해도 그 사람만 맞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틀릴까요?

그러므로 이제 변화해야 합니다.누군가를 막론하고 나는 항상 어떤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 이겨서 그들이 복음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합니다. 비록 힘들고 고집이 세지만 기회가 생기면 변화해서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예전에는 이런 사람들을 보자마자 도망쳤는데, 이제는 그들이 복음의 혜택을 받기를 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계속 비난하는데, 귀신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목사와 싸우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누구든지 이 복음의 혜택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5 결론

이 장에서 내가 읽지 않은 내용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그 내용은 여러분 스스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하니.이는 저희가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성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저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일러라.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사도행전 21:28-30).

그 사람들이 성지를 더럽혔다고 해서 도시 전체가 혼란에 빠졌는데, 그 정도가 심각했습니다. 앞으로는 성스러운 곳에 가지 마세요. 성지를 더럽혔다면 죽을 줄도 모릅니다. 성지에서는 사람들이 짓밟혀 죽는 경우가 많으니, 장난에 동참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저희와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의 만기 된것을 고하니라.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사도행전 21:26-27).

제사장들이 그들을 위해 제사를 드릴 때까지 기다리는 데 7일이 걸렸는데, 사실 바울은 이 일을 전혀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난 7일 동안 사람들은 폭동을 계획하고, 계획하고, 조직했습니다. 바울을 잡기 위해 도시 전체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저가 급히 군사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저희가 천부장과 군사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스로 결박하라 명하고 누구며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무리 가운데서 어떤이는 이 말로 어떤이는 저 말로 부르짖거늘 천부장이 소동을 인하여 그 실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문 안으로 데려 가라 명하니라.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포행을 인하여 군살들에게 들려가니 이는 벡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 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사도행전 21:32-36).

만일 선장이 일찍 와서 그를 구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이 사람들이 바울을 침에 빠져 죽였을 것이며 바울도 이 사람들에게 밟혀 죽었을 것입니다. 누가 이 대가를 기꺼이 지불할 의향이 있는지 묻고 싶습니다. 복음을 전할 기회를 얻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사람들이 이 복음의 유익을 나누기 위해서는 목표가 달성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믿지 마십시오.유대인 중에는 이것이 복음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항상 있습니다. 나중에 바울은 그곳에서 설교를 한 뒤 2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다가 로마로 이송되어 로마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지방 총독, 봉건 관리, 지역 분봉왕은 모두 사람들이 복음의 혜택을 받게 하기 위해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얻을 수 있는지 여부는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말하고 싶은지 말지는 복음의 유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은 당신 자신의 선택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것을 나누겠습니다.바울의 용기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를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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