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사도행전19장-모두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필기를 참고

1.성령을 받는 것은 주님의 말씀의 핵심 요소입니다

당신이 믿을 때 성령을 받았습니까? “이 문장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제 많은 교회가 이 단계를 밟지 못했습니다.
주님의 길은 회개와 세례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요소는 성령을 받고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과 방언을 받는 것은 받는 능력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합니다.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오순절에 성령이 오시기를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방언 기도를 할 수 없고, 성령을 구하면 악령이 오는 줄로 생각하는데, 이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2.기적과 기사는 전파된 말씀을 확증해 줍니다

사도 바울이 누구보다 기도를 많이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손을 통해 많은 능력을 행하셨습니다.
방언 기도는 작은 은사이지만 매우 중요한 은사입니다.
기적은 성령님의 오심과 충만함으로 옵니다. 우리는 방언으로 기도하고,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면에서 사도 바울을 본받습니다.
악귀들은 유대인의 대제사장 몇 사람을 알지 못한다 하더라 그 이유는 능력이 없고 귀신에게 쫓겨났기 때문이라 귀신들은 바울과 예수를 알되 무서워하여 알아보지 못하더라 이는 성령 충만과 방언 기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3.바울은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가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매일 전도했습니다.

바울이 사람들을 설득하되 여전히 그 마음이 완악하고 믿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훼방하므로 더 이상 변론하지 아니하니라.
경기장에서의 경쟁이 아니라, 구약성경에 따라 표적과 기사를 확인하면서 매일 주님의 길에 대해 토론하고 연구하는 것입니다.

4.예루살렘과 로마에도 주의 말씀을 듣게 하라

바울은 자기 백성도 주님의 도를 믿기를 바라며 로마로 갑니다.
땅 끝까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라 오늘날 우리 한국인에게도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5.주님의 길이 크게 번영함

하나님의 순수한 복음을 전하는 자는 반드시 형통합니다.
인간의 문제는 인간이 해결할 수 없지만, 하느님의 방법은 분명히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바울이 실패한 일을 끝내고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한 교회를 세우십시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사도행전 19장을 보겠습니다. 이 장에는 베드로의 흔적이 거의 없고, 보이는 것은 사도 바울뿐이다. 베드로는 자신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몰랐고, 사도 바울은 주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본 장의 주제가 '주의 도는 크게 흥하고 흥하리로다'라고 하면 아직 약간의 편차가 있는 것 같지만, '모든 사람이 주의 도를 듣는다'가 더 적절할 것입니다. 누가가 사도행전의 이 장을 기록했을 때, 그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주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한다는 것을 기록된 여러 내용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제 조금씩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1. 성령을 받는 것은 주님의 길의 핵심 요소입니다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에 바울이 윗지방으로 다녀 에베소에 와서 어떤 제자들을 만나.가로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가로되 아니하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사도행전 19:1-2)

아폴로스는 후대에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가 예수의 이름으로 성령 세례를 받았는지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회개의 세례인 요한의 세례를 자주 이야기하였다. 그에게는 특징이 있었는데, 누가복음에는 아볼로가 고린도에 있을 때 큰 권세가 있었고 말을 잘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또한 성령세례를 받지 않았음에도 말을 잘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성경은 합리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것은 주님의 길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거나 주님의 길의 핵심 요소인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 것이 성령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에 갔을 때 아볼로처럼 요한의 세례만 아는 몇몇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이것은 매우 우연의 일치이며 누가가 왜 그렇게 썼는지 알 수 없습니다. 더욱이 누가는 이 사람들이 아볼로와 관련이 있는지 조사하지 않았지만, 아볼로와 나중에 사도 베드로의 방문으로 인해 고린도 교회는 세 그룹으로 나뉘었습니다. 바울의 무리, 아볼로의 무리, 사도 베드로의 무리입니다. 이 기록은 우리가 이미 이해했기 때문에 지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다만 예전에는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여 매우 혼란스러웠을 뿐이지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이 이 제자들을 만났을 때 그들이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오늘 비전신학을 처음 접하신다면, 우리가 당신이 믿을 때 성령을 받았는지 물은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핵심 구성 요소를 놓치고 있는데 이는 부적절합니다. 성령을 받았느냐 안 받았느냐가 매우 중요한데 그러면 어떻게 성령을 받느냐, 방언 기도 등 많은 것들이 나옵니다. 성경에는 그 내용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사도 바울이 질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이 가로되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대답하되 요한의 세례로라.바울이 가로되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풀며 백성에게 말하되 내뒤에 오시는 이를 믿으라 하였으니 이는 곧 예수라 하거늘.저희가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모두 열 두 사람쯤 되니라.(사도행전 19:3-7)

여기서 우리는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주님의 말씀에는 정확히 무엇이 포함됩니까? 사실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만이 아니라 그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가 성령을 받는 것, 방언하는 것, 즉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애초에 바울의 발명품이 아니라 예수님의 발명품이기 때문입니다.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짔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4-8)

오늘 다시 말씀드리는 이유는 제 성경공부를 갑자기 들으시고 원인과 결과를 모르시는 분들이 계셔서 몇 마디만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형제자매들에게는 이 모든 것을 이미 들어본 것 같은 느낌이 들 수도 있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이 몇 문장은 사실 나중에 이 성경 공부를 듣게 될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왜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다고 말합니까? 왜냐하면 이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고, 매우 중요하며, 주님을 믿는 능력과도 관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능력과 표적과 기사가 따르기를 원한다면 방언 기도와 성령 충만을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만약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회개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다면 그것은 불완전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실제로 이 기준으로 측정해 보면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는 이 핵심 구성 요소를 완전히 제거했습니다. 이것이 제거되면 그것은 바울의 가르침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도 어긋나는 것입니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셔서 방언으로 말하게 하셨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한 후 그 지역의 그리스도인들은 방언으로 기도했습니다. 방언기도에 대한 기록은 없고, 성경 전체를 찾아봐도 방언기도가 어떻게 되는지 명확히 나와 있지 않습니다. 나중에 나는 방언 기도가 믿음의 작용임을 알게 되었는데, 믿음이 없는 사람이 방언 기도를 하는 것은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입을 열면 악한 영들이 와서 하나님께 큰 모욕이 될까봐 두려워서 입을 열 수 없었습니다. 설마 우리 하나님께서 이 일도 통제하실 수 없겠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분명히 이것을 통제하고 계십니다.

아볼로와 바울은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일한 적이 없으므로 우리는 아볼로의 제도를 믿지 아니하고 오직 사도 바울이 전한 복음의 제도를 믿습니다. 방언 기도는 사실 믿음의 작용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 함께 방언 기도를 합시다. 내 기분은 어떤가요? 내 입을 통제하는 뭔가가 있는 걸까? 아니요, 무언가가 입을 통제한다면 조심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서운 것은 하나님의 영은 그렇게 하지 않으시며, 하나님의 영은 사람의 입을 주관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말하는 내용은 사도행전에서 읽은 것이며, 성경의 신학 체계와 매우 일치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 기적과 기사는 전파된 말씀을 확증해 줍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들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사도행전 19:11-12)

사도 바울은 그 누구보다 방언 기도를 많이 했는데, 방언 기도는 작은 은사이지만 아주 중요한 은사입니다. 그러면 왜 표적과 기사가 일어났습니까? 사도 바울은 성령의 복음을 믿었는데 주님의 말씀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주의 증인이 되리라.

이것이 간증이요 표적과 기사도 증거이니 믿는 자에게는 표적과 기사가 따르리라. 이 기적은 어디서 왔는가? 성령의 오심과 충만함에서 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 충만을 믿지 않고 오직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고 죽어 천국 가는 것만 믿습니다. 내 생각엔 그런 방식은 정말 별로 좋지 않고,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능력도 없고 수단도 없다고 생각한다. 아볼로와 같은 것을 믿는 목사가 있었는데,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심을 주장할 때 능변적이고 웅변적이었습니다. 어느 날 우리 목사님들 중 몇몇이 모임을 갖고 있었는데, 모임이 끝난 후 나는 그를 집으로 데려다 주었습니다. 가는 길에 그 사람은 가슴이 아프다고 하면서 나를 위해 기도해 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내가 그를 위해 기도한 후에 그의 가슴이 나았습니다. 이제 모든 일이 끝났으니 그 사람이 교회로 돌아와서 내가 이적과 기사를 따르는 방식은 그리 영적인 것이 아니지만 나는 그의 일도 그다지 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질문은 궁극적으로 어느 것이 성경의 가르침과 더 일치하는가로 귀결됩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비전신학의 전체 체계에서 뗄 수 없는 부분이며, 성령 충만과 방언 기도, 병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우리가 믿는 주님의 도입니다. 이와 같은 도는 너무나 강력해서 그가 가는 곳마다 이적과 기사가 그를 따라다닙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우리는 일어나서 주 예수님이 하신 일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저는 사도 바울이 그런 상황에 직면했다면 어떻게 했을까 자주 묻습니다. 그가 유령을 쫓아낸다면 그렇게 합시다.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귀신을 쫓아내셨고,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비록 그렇게 보이지는 않지만 언젠가는 점점 더 그렇게 될 것입니다.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적으로 악귀 들린 자들에게 대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의 전파하는 예수를 빙자하여 너희를 명하노라 하도라.(사도행전 19:13-14)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이 사람들은 실제로 무능합니다. 얼마나 믿었는지는 모르지만, 믿지 않으면 바울이 전파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악한 영들이 나가라고 명령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직 믿음이 조금 남아있다고 하는데 이는 하나님을 모르는 문제일 뿐 아니라 앞 단락에서 성령 충만을 받지 못한 것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성령충만이라는 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거의 언급되지 않지만, 성령충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만 강림하셨다는 것이 논리이다.

그러므로 귀신들은 바울과 예수님을 알면서도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자매들을 알지 못할까 봐 두려워합니다. 성경에 너희가 예수를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이것은 번거로운 일입니다. 이것이 무엇과 관련이 있나요? 성령 충만과 방언 기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방언 기도를 많이 하시기를 권합니다.나 같은 사람은 어디를 가든 마귀들이 반드시 나를 알 것입니다. 얼마 전 알츠하이머병을 앓고 있는 90세 노인을 섬겼는데 그 노인의 귀신이 나타나 나를 때리려고 했습니다. 나는 이것이 꽤 유능하다고 말했고 그는 나를 때리고 싶어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잠시 복무하고 그 곳을 떠났습니다. 가족들이 별로 믿지 않아서 그랬어요!

그래서 오늘은 귀신이 당신을 알아보느냐 못 알아보느냐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히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다면 귀신은 반드시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면 귀신이 반드시 두려워할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하고, 전파된 말씀을 확증하는 표적과 기사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길이 그러하므로 우리가 믿으면 표적과 기사가 우리가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줄 것입니다. 우리가 전파하는 것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다면 우리가 또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마귀들에게 쫓겨나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느니라. 이것이 사도 바울이 전파한 교리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교리이기도 합니다. 예수는 귀신을 쫓아내는 예수이고, 바울은 귀신을 쫓아내는 바울이라는 것은 어떤 각도에서 보아도 논쟁이 될 수 있는데, 주님의 길은 귀신을 쫓아내는 길이어야 합니다!

3. 바울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고 날마다 전했습니다.

사람이 주님의 길을 듣고 주님의 길을 보려면 주님의 길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고, 그것을 확증하는 표적과 기사가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을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치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여.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사도행전 19:8-10)

이 구절을 읽어보니 토론이 두 번이나 사용된 것을 발견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잘못된 것 같았습니다. 모든 사람을 설득하기 위해 3개월 연속으로 하나님 나라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토론일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마음이 강퍅하고 믿지 아니하므로 바울에게 많은 문제를 안겨 주고 모든 사람 앞에서 말씀을 비방하기까지 했습니다. 이 말씀을 비방하는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성령을 받아 능력을 받는 것, 능력을 행하는 것, 병자를 고치는 것, 귀신을 쫓아내는 것,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 포로된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 갇힌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 옳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사실 다른 사람과 토론하는 것이 아니라 까다롭고 이상한 질문에 답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바울이 말한 것은 매우 합리적이고 사실과 하나님의 말씀이 증명해 주었지만 그 사람들의 마음은 강퍅하여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울과 다투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길을 비방하기 시작하였으므로 바울은 그들을 떠나갔습니다.

후반부에 언급된 논쟁은 유대인들이 믿지 않았기 때문에 약간 논쟁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과 더 이상 논쟁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그들과 헤어지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우리는 바울의 입장을 알아야 하고 이 말에 혼동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투지 말라 다투면 큰 유익이 없음이라 믿으면 믿을 것이요, 믿지 아니하면 패하리라. 마음이 완고하고 어떤 죄를 기꺼이 겪는 사람은 어떤 죄를 겪게 될 것입니다. 믿음은 믿음을 의미하고, 불신은 불신을 의미합니다.토론을 통해서는 사람들의 자신감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이 후자의 문장은 두란노의 학교에서 매일 토론되었습니다. 헬라어, 히브리어는 못 알아듣지만 영어는 조금 알아서 영어 성경을 찾았는데 거기에 나오는 토론이라는 단어는 토론이 아니라 토론입니다.

이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우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사도행전 19:10)

그 목적은 그들에게 주님의 도를 듣게 하려는 것이지, 링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경쟁하게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주님의 말씀을 듣고 날마다 주님의 길을 토론하고 연구했습니다. 그 시대에는 신약성경이 없었고 참고용으로 구약성경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을 어떻게 읽든 상관없이 예수님에 대해 읽을 수 있으며, 설교된 메시지를 확증하기 위해 표적과 기사를 추가할 수 있습니다. 그 때에 이곳 사람들이 주의 말씀을 듣고 바울이 행한 일의 결과를 보고 바울 앞에서 마술과 마술과 점술에 관한 책을 다 불살라 버리니라. 마술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 책들은 모두 5만 위안의 가치가 있었는데, 당시 5만 위안을 물가상승률 3%로 계산하면 2000년이 지난 지금 수억 달러의 가치가 있을 것이다.

유대인과 헬라인 모두가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날마다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바울의 일관된 입장입니다. 사실 그는 유대인들에 대한 기대가 높았고, 자신의 종족과 가문의 유대인들도 주님의 도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티라노스 학원은 당시 학문적 논의가 모이는 장소였어야 하는데, 티라노스가 설립했다고 합니다. 그는 학생을 받아들이고 가르칠 수 있는 아주 유명한 교수나 학자이다. 두란노스 아카데미는 그리스 사람이 운영하는 곳으로 예수 그리스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열려 있었습니다. 그는 두란노 학교에서 2년 동안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토론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주의 말씀을 듣게 하라”는 주제가 이 장을 관통하고 있는데, 바울은 모든 사람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주님의 말씀을 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를 원합니다.

4. 예루살렘과 로마에도 주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그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냐하면 그는 자기 백성인 유대인들도 주 예수의 도를 믿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매우 흥미롭고 눈에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믿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이 일이 다 된 후 바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로 다녀서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여 가로되 내가 거기 갓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사도행전 19:20-21)

바울은 이때 로마서를 썼는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매우 명확한 논의와 요약이 담겨 있습니다. 로마서에서 그는 유대인과 율법, 그리고 아브라함과 하나님 사이의 언약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서 유대인들에게 전파하고, 로마에 가서 로마인들에게 전파하라. 하나님께서는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려는 야망이 있습니까? 오늘 우리가 한 일은 정말 놀랍습니다 우리가 온라인에 기도를 올리면 사람들이 그것을 클릭하고 함께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통해 은혜를 받은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저희 녹음만 들어봐도 공개되신 분들이 참 많아요.

예루살렘과 로마에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말씀을 들려주십시오. 주님의 이 말씀은 능력이 있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포로된 자를 자유롭게 하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포로된 자를 자유롭게 하고 억압받는 자를 자유롭게 할 수 없다면 그것이 여전히 복음입니까? 교회 안에 선지자도 있고 전도자도 있고 교사도 있고 사도도 있지만 포로된 자도 자유케 할 수 없고 눌린 자도 자유케 할 수 없다면 물음표를 그려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바울의 논리적 체계는 그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복음의 빚을 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온 땅, 땅 끝까지 가서 모든 사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듣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 세대는 이 목표를 쉽게 달성할 수 있습니다. 나는 사도 바울이 오늘날 살고 있다면 분명히 우리가 하는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러한 야망이 있습니까? 당신도 그런 빚진 마음을 가지고 있나요? 우리는 많은 사람들에게 복음의 빚을 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실제로 이 복음을 우리에게 나타내셨으니 우리는 그것을 이불이나 냄비, 베개 속에 숨겨서는 안 되고, 땅에 구덩이를 파서 숨겨서도 안 됩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구원과 하나님의 능력을 땅 끝까지 전파하여 모든 사람이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유대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사실 중국인들도 유대인들과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의 실제 전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표적과 기사로 우리와 함께 계시사 우리가 전하는 말씀을 확증하셨으니 오늘부터 우리가 이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기 시작하는도다. 할 일이 너무 많지만, 현실적으로 차근차근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도 많이 듭니다. 우리가 온 세상에 복음의 빚을 지고 있음을 항상 기억하는 것이 바울에게서 물려받은 우리의 사명입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비전신학이 전하는 것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도라고 들어왔습니다.

5. 주님의 길은 크게 번성합니다

순수한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형통하지 않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형통케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보좌에 앉으사 혹시 구하고 깨닫는 자가 있는지 보려 하시고 계시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그를 택하실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이 왕성하게 되도록 그들을 보물로 선택하십시오. 주님의 방법은 번영하고 승리했으며, 바울은 그 세대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아와 같이 주의 말씀이 힘이 있어 흥왕하여 세력을 얻으니라.(사도행전 19:20)

정말 좋은 말이네요, 그게 전부입니다. 어느 정도 번영합니까? 모두 산업 체인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인하여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아데미의 은감실을 만들어 직공들로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그가 그 직공들과 이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유족한 생활이 이 업에 있는데.이 바울이 에베소 뿐아니라 거의 아시아 전부를 통하여 허다한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사도행전 19:23-26)

거기 사는 사람들은 모두 사당을 사는데 가격은 신경 쓰지 않고 결코 돈을 모아서 싼 사당을 사지 않을 것입니다. 데메트리우스는 아르테미스 신을 위해 은으로 된 틈새를 만들었고 그의 사업은 원래 그 시대에 매우 번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의 번영이 이 사업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은 틈새 시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개종했고 아르테미스의 논리를 포함해 마법을 믿는 책들을 불태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지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계에 사로잡힌 자를 구원하실 수 있고, 포로된 자를 해방시키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은 에베소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아르테미스 신에 대해 큰 애정을 갖고 있으며 오랫동안 그를 믿어 왔습니다.

우리의 이 영업만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전각도 경홀히 여김이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저희가 이 말을 듣고 분이 가득하여 외쳐 가로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사도행전 19:27-28)

이것이 아르테미스와 에베소 사람들을 연결하는 것인데, 이 사람들은 실제로 은장색에게 부추를 잘랐으나 아직 아무런 문제도 겪지 않았습니다. 우리 자매의 가족처럼 사람들은 정말 이상합니다. 택시를 타던 중 차가 살짝 긁혔는데, 차 안에서 뼈가 부러졌다. 그녀의 집에는 많은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나는 그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만약 그 우상을 숭배하지 않았다면 자신의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아주 잘 설명하지만 차가 충돌하기 전에 뼈가 부러졌습니다.. 그 논리는 에베소인들의 논리와 같습니다. 은장색이 부추를 썰 때 에베소인들의 아르테미스의 한 마디가 에베소인들의 교만을 하나로 묶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과대광고이고,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무지한 부분이다.

온 성이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댜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잡아가지고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들어 가는지라.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또 아시아 관원 중에 바울의 친구된 어떤이들이 그에게 통치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사도행전 19:29-31)

이는 마치 큰 운동장에서 큰 집회를 열고 바울의 동역자인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끌어 들여 비평회를 여는 것과 같을 것입니다.

서기장이 무리를 안돈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성이 큰 아데미와 및 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전각지기가 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전각의 물건을 도적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훼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잡아 왔으니.만일 데메드리오와 및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송사할 것이 있거든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거든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단할지라.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의 사건으로 책망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가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재료가 없다 하고.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사도행전 19:35-41)

사실 이는 당시 주님의 길이 너무 형통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지 모르지만, 예수님을 통해 은혜와 해방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너무 많습니다. 그리스도. 그러므로 나는 오늘 우리가 주님의 길을 얻었으며 누가 그것에 대해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격려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그것을 확증하는 표적과 기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일어나서 계속해서 귀신을 쫓아내고 마귀의 원수들을 짓밟아야 합니다. 귀신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 바울을 알 뿐 아니라 우리도 알고 싶어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이 세대의 사도 바울임을 알아야 하며, 사도 바울을 본받을 뿐 아니라 사도 바울이 이루지 못한 일을 계속해서 행해야 합니다. 예루살렘과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여 사람들이 주님의 말씀을 듣게 하고, 사람들을 마귀의 손에서 해방시켜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게 하십시오. 하나님이나 다른 사람을 신뢰하십시오. 이것이 우리의 운명이고,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함께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사도 바울이 하지 못한 일을 계속해서 완수합시다.

우리 하나님은 놀라우시며 이 세대에 우리를 위해 몇 가지를 남겨 주셨습니다. 모두가 할 일을 마친다면 우리는 이 세상에 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나는 최근에 하나님께서 우주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창조하시고 그것을 관리하도록 아담과 하와에게 맡기셨다는 매우 강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해야 할 일이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세대에 오게 된 부분도 있고,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미완성된 부분을 맡기셨습니다. 끝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가득 찬 유례없는 교회를 세우십시오. 마귀도 우리를 두려워하는데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사명입니까?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나와 같은 뜻을 품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뜻과 계획을 이루실 형제자매들을 세워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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