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사도행전17장-변론은 믿음을 대신할 수 없다
필기를 참고
서론
바울은 변론의 훈련을 받았다.감마레의 학생, 명사출고도.
바울은 변재이다. 어디를 가든지 변론을 좋아한다. 그의 변론을 듣는 많은 사람들이 주를 믿는다.22-34절
1.바울은 변론의 천재있다
폴은 나중에 요약했다: 변론은 자신감을 대체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임을 증명하지 마라. 변론은 의미가 없다. 믿음은 선택이다.
바울은 변론으로 하나님의 도를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기적과 기사로 증명된 도에 따라 하나님의 대능을 풀어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해내야 그만이지, 해내는 것은 반박할 수 없다.
2.변론은 믿음을 대신할 수 없다
사람은 믿기 시작하면 믿게 되고, 믿지 않으면 믿지 않게 된다.
사람은 처음부터 산을 옮길 자신이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 갓의 씨앗에서 시작된다.
벼슬하는 사람도 신이 필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신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신은 일을 하는 것이 정말 신기하기 때문이다.
3.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음에 이르다
조금이라도 믿음이 있으면 머물지 마라. 하나님은 우리가 한 곳에 머무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예손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권능을 풀어 놓았습니다.
하나님을 걱정하지 마세요.하나님은 절대 잘하십니다.
4.믿음은 하나님의 큰 능력을 풀어할 수 있다
예전에는 세상의 길을 걸으면 반드시 죽는 길이었는데, 오늘은 영생의 길을 걸으면 우리가 하는 것은 좋은 선택이다.
멋지게 살고 싶으면 자신 있는 사람이 되어 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멋지게 살아라!
안녕하세요, 오늘 사도행전의 17장을 살펴보겠습니다.어느덧 사도행전은 절반을 넘었고, 나머지 부분도 점점 더 빨리 나아갈 것이다.여러분은 기차를 세 시간 탔는데, 첫 시간이 가장 느리고, 한 시간 반이 지난 후에 남은 시간이 아주 빨리 지나갈 것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까?사람도 마찬가지이다. 한평생 7, 80세가 되면 앞의 생활은 반나절을 지낼 수 없을 정도로 느리지만 뒤의 절반은 오히려 죽을 지경이다.어렸을 때는 생활이 매우 느려서 모두 설을 쇠기를 바랐지만, 바래, 바래, 그 해는 매우 긴 것 같았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아직 설을 쇠지 못했다.
우리는 ≪ 사도행전 ≫ 의 제17장을 읽었는데 나는 루가가 종래로 그의 관점을 표현하지 않았음을 발견하였다.그는 관점을 써서 이것이 나쁘고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누가 좋다고 생각하는지 이 일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누가는 나중에 존경받는 역사가가 되었다.사마천은 <사기 >를 쓰고 사마광은 <자치통감>을 썼는데 그들은 모두 력사학자에 속한다.루가도 하나야, 아마 사마천과 같은 시대일 거야.역사를 쓰는 사람은 누가 좋고 누가 나쁘다고 말할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논문을 쓰는 것이 된다.역사를 쓰는 사람은 스스로 허튼소리를 해서는 안 되고, 몰래 자신의 관점을 넣을 수밖에 없다.루가도 몰래 그의 관점을 들여놓았다. 력사학자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뚜렷한 특징을 갖고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관점을 직접 표현하지 않았다. 그러나 행간에 모두 그의 관점을 드러냈다. 사마천도 마찬가지였다.
"사도행전" 이 17장에 이르러"변론은 신심을 대체할수 없다."고 말하였는데 나는 무엇을 해도 안되고 학습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오늘 마침내 루가의 관점을 찾아냈다.너는 이런 일인지 아닌지 생각해 보아라.이 점은 너무 중요하다. 사람들이 변론을 하면 변론을 해도 조금도 소용이 없다.나는 변론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너는 나에게 왜 예수를 믿느냐고 물어봐야 한다. 대답은 바로 내가 원한다는 것이다!카레 왜 좋아하냐고요?답도 원해요!이 물건은 왜가 없다. 왜가 있으면 고장이 난다. 단지"내가 원한다면"많은 문제를 해결한다.절대 다른 사람과 한참 동안 변론하지 마라, 변론이 끝나면 자신감이 없어진다.변론이 끝나면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원한다.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너를 불러 그를 섬기게 하셨느냐고 물었다.몰라요.그럼 왜 신을 섬기냐고요?답은 역시 내가 원한다!이 한 마디가 내가 원하면 이런 인기를 망칠 수도 있으니 갑자기 어찌할 도리가 없다.바로 천금을 주고도 살 수 없다는 것을 내가 원하는데, 누가 상관할 수 있겠는가?어떤 사람은 마작을 하고 싶고, 나는 하나님을 섬기고 싶다;누군가가 토로하기를 원한다면, 나는 사람을 만드는 말을 좀 하고 싶다.네가 다 듣고 화가 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같은 전선이라는 것을 설명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편지의 이 길을 선택했기 때문이다.변론을 이리저리 하느라 한참이나 지쳐서 아무 소용이 없으니 다른 사람과 변론하지 마라.
사실 한참 동안 실랑이를 했는데, 네가 변론을 다 끝내면 사람들이 믿지 않으려고 하는데, 아무리 말을 잘해도 소용이 없는데, 너는 어떻게 하니?그러니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네 가족,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도 변론은 소용없어.증명은 이리저리 증명해도 그는 듣지 않는다. 너는 그곳에서 큰 힘을 다해 말한다. 그가 한 마디를 듣고 얼렁뚱땅 말하는 것은 순전히 우연이다. 모두 우연이다. 너는 그에게 무엇을 증명할 수 있니?다른 사람과 변론하지 말고, 사실 자신도 함부로 믿고, 상대방도 함부로 믿지 않으면 끝이라고 말해라.좌우로 모두 마구잡이로 하는 것인데, 다만 내가 이렇게 마구잡이로 하는 것이 좀 나은 것 같다.많은 것을 우리는 모두 모른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너에게 천국과 지옥에 가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네가 모른다고, 가 본 적이 없다니, 이게 얼마나 진실이냐?가면 못 돌아오니까.가끔 사람들에게 자신이 송나라에서 건너왔다고 농담을 한다.타임슬립이라는 단어는 오히려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으니 믿지 않는 것은 그만두어라.
1. 바울은 변재이다
폴은 변론 훈련을 받은 적이 있는데, 만약 중학생 변론회가 있다면, 그는 틀림없이 등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가말레 문하의 문하생들은 모두 인재이다. 마치 오늘 양진녕과 박사를 공부하는 것과 같다.우리 여기서 할 말이 좀 있는데, 사실 양전닝과 박사를 공부할 수 있다면 단번에 관계가 있을 것이다.말하자면 가말레의 문하생은 양진녕이 데리고 나온 박사와 마찬가지로 대단하다!양진녕의 학생은 함부로 선택할 수 없다. 그것은 모두 백중에서 하나를 고른 것이다.사람은 박사를 공부해야 한다. 절대 썩은 스승과 읽지 마라. 따라가려면 대단한 스승과 읽어야 한다.박사를 공부하는 이런 상황은 명사가 높은 제자를 배출하는 것과 같은 일이며, 관건은 명사의 관계망이 매우 대단하다는 것이다.우리처럼 바울이라는 차를 탔다면 이 관계는 매우 확실하다.바울이 가말레나에서 공부한 후에 주를 믿으니 그 말솜씨가 일품이더라.오늘 폴의 편지를 읽는 것은 모두 의기양양하다. 내가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폴이 말하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바울이 아덴에서 저희를 기다리다가 온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분하여.회당에서는 유다인과 경건한 사람들과 또 저자에서는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니.어떤 에비구레오와 스도이고 철학자들도 바울과 쟁론할새 혹은 이르되 이 말장이가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느뇨 하고 혹은 이르되 이방 신들을 전하는 사람인가보다 하니 이는 바울이 예수와 또 몸의 부활 전함을 인함이러라.붙들어 가지고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우리가 너의 말하는 이 새 교가 무엇인지 알수있갰느냐?(사도행전 17:16-19)
그러나 바울은 확실히 변재였다. 그는 신의 도를 전했고 아요 바고인의 집에 가서도 그를 알았다.아리오 바구까지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아리오 바구에 가서 강연할 수 있는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니야.아리오 바구는 오늘날의 TED처럼 TED 무대에 올라가 한 번 강론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 소사람이다.그 강단은 보통 사람이 올라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폴은 아리오 바구의 강단에 올랐다. 송미령이 미국 의회에 서서 영어로 연설한 것처럼 대단하다.오늘 미국 의회에서 연설할 수 있는 사람이 만약 우리 백성들이 서 있기도 전에 쫓겨났다면, 연설하는 사람에게 신발을 들려주는 사람조차도 너를 가지 못하게 했을 것이다.
그들은 그를 아리오 바고로 데려가 이르되 네가 말하는 이 새 길을 우리도 알 수 있느냐 네가 이상한 일이 우리에게 들렸으니 우리는 이 일이 무슨 뜻인지 알고 싶노라 (아테네인과 그곳에 사는 손님들 모두 다른 일은 아랑곳하지 않고 뉴스만 들려 보라) 바울은 아리오 바고 가운데 서서"아테네 사람들이여, 내가 보기에 너희는 모든 일에 귀신을 경외하는구나.
바울은 아주 훌륭한 한 편을 말했지만, 소에게 거문고를 탔다.소에게 거문고를 타더라도 소는 알아들을 수 있고, 뒷발질을 하고, 땅을 파내고, 귀를 흔들 수도 있다.그러나 아리오 바구에서 아테네인들에게 설교한 결과 소에게 거문고를 타는 것보다 더 나빴다.내 말은 바울은 변재라서 어디를 가든지 다른 사람과 변론한다는 것이다.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사도행전 17:2)
바울은 변론을 좋아하지만, 변명하는 것은 그와 함께 변론하는 그 사람들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지만, 그의 변론을 듣는 사람들은 많은 것을 믿었다.믿고 안 믿는 것은 사실 내가 원하는 것이다. 그럼 너희들은 그가 말하는 것을 알아들을 수 있니?다음은 너희들이 아래의 경문을 알아들을 수 있는지 시험해 보자.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의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따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제를 한하셨으니.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겨네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이와 같이 신의 소생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사도행전 17:23-31)
오늘 우리처럼 주님을 믿는 사람들은 바울이 한 이 말을 듣고 모두 좋다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들어보니 여전히 좀 심오하다.그럼 주님을 믿지 않고 듣고 뭘 들었다고요?네가 만약 나에게 묻는다면, 만약 내가 주를 믿지 않는다면, 듣자니 이것은 허튼소리라고 생각하고, 아주 잘 이야기할 것이다. 모두 죽은 사람이 부활할 때까지 이야기했는데, 나도 본 적이 없다.그냥 관둬, 믿을 수가 없어.그래서 폴은 변재였지만 나중에 폴의 편지에서 티모테에게 변론하지 말라고 했고, 자신이 이 일을 변론하지 말라고 증명했다.
폴이 자신을 잘 통제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우리는 잘 모른다.나처럼 사람이 많으면 응애응애 오랫동안 이야기하는 습관이 있는데, 며칠이 지나도 똑같지 않다.이것은 사실 그다지 좋지 않지만, 이미 이 습관을 길렀다.변론은 아요 바구에게나 있는 것이 아니라 가말레에게서 이것을 연습하여 힘이 솟구치면 다른 사람과 변론하였다.후에 폴은 변론이 신심을 대체할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였다. 사실 그는 변론하는 사람과 이야기하는것이 아니다.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은 신심을 근본으로 강조하는것이다.
2. 변론은 신심을 대체할수 없다
하루 종일 가족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말고, 네가 인간답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좋겠다.하루 종일 날개가 돋는 줄 알고 천사처럼 날고 있었다.차라리 집에서 집안일을 좀 하고 집을 깨끗이 정리하는 게 낫겠다.이 일을 변론하는 것도 우리는 안 된다. 우리도 가말레에게서 훈련한 적이 없다.만약 내가 말하게 한다면, 다른 사람이 변론하면 나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그 사람은 무대 위로 올라가서 천 명이 천국에 가는 사람은 하나밖에 없고 구백구십구 명이 지옥에 간다고 큰 소리로 말했다.나는 아래에서 손만 들고 질문할 줄 안다. 선생님은 거기에 가본 적이 있습니까?안 가봤는데 어떻게 알았지?이제 끝났어, 선생님은 얼굴이 빨개지고 하얗게 질렸어.나는 단지 해체할 줄 안다. 왜냐하면 나는 엔지니어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만약 해 본 적이 없다면 그만두어라.그런 말들은 내가 대단하다고 하지만 변론에 이르러서는 정말 안 된다.
어떤 사람은 그가 다른 사람과 주인을 믿은 후에 정말 재수가 없다고 말하는데, 나는 그에게 잘못 믿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남들은 설마 나만 옳은 것이냐고 하는데, 내가 말한 것은 모두 내가 한 것이고, 그가 말한 것은 모두 그가 한 적이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내가 한 이 물건들은 여전히 자신감의 기초로 돌아갔다. 그 사람들은 사람을 반박할 수 있어도 소용없다.그래서 오늘 우리는 더 이상 박도 (반박) 를 하지 않을 것이다. 변론하지 마라. 이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나중에 바울은 언사를 변론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것은 증명할 수 없었다.그럼 폴은 어떻게 증명했죠?바울은 이적과 기사로 좇아 전해진 도를 증명하였다.
나는 오늘도 예수와 별로 닮지 않았고, 일찍이 왜 이 증명이 안 되는지 계속 물었다.예수는 신의 능력과 기적과 기사로 자신이 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였는데, 만약 증명하지 못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겠는가?그래서 가장 먼저 시중을 들었을 때 나는 허리가 아프고 어깨가 아픈 것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특히 좋아했다. 기도만 하면 좋아진다.그러나 이것은 쉽지 않다. 10분이 낫지 않으면 계속한다. 환자가 포기하지 않는 한 나도 포기하지 않는다.때때로 상대방이 나에게 흰자위를 줘도 괜찮다. 나는 그의 자신감을 만들 수 있다."그가 잘 생각한다면 이어서 오너라, 그의 몸에는 아프고 나에게는 없는데, 무슨 흰자위를 치켜세우느냐?"내 체면을 세워주는 것일 수도 있어. 10분이 안 좋아, 그럼 20분 후에 좋아.20분 안 됐어, 30분 후에 됐어.30분 뒤가 안 좋아도 그 한 시간 뒤면 돼.나중에 눈이 뒤집힌 사람은 좋아졌고, 나중에는 모두 눈이 뒤집힌 늑대가 되었다.그러나 우리는 변론으로 우리가 전한 도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신의 능력에 의지하고 있으며, 우리의 믿음은 모두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방출할 수 있다.자신감은 마치 동선이 전원에 연결되는 것과 같아서 정말 전구를 밝게 할 수 있다.고무줄로 전구를 전원에 연결하면 아무리 스위치를 세게 눌러도 내년까지 무릎을 꿇고 기도해도 전구가 켜지지 않는다.고무줄이 전기를 방출하지 못하는것은 마치 신심이 없고 신의 대능을 방출하지 못하는것과 같다.그래서 변론은 자신감을 대신할 수 없다. 사실 폴이 말하는 것은 모두 편지를 전달하고 있다.대작을 거침없이 늘어놓으니 알아듣는 사람도 있고 못 알아듣는 사람도 있다.이렇게 또 몇 사람이 믿었는데, 아주 재미있었고, 게다가 믿은 후에도 아주 좋았다.너는 오늘 중국인의 명정신학에 와서 나의 설교를 들어도 이 녀석이 말하는 것이 촌스럽다고 느낄 수 있다. 왜냐하면 나도 변론을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바울처럼 가말레의 수업을 들은 적이 없고, 박도 (반박) 할 수 없기 때문이다.나는 단지 무대를 허물고 구유를 뱉을 뿐이다.
그러나 한 가지 일은 반박할 수 없다. 내가 한 일은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언사라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데, 내가 한 일을 너는 반박할 수 있니?례를 들면 내가 집을 장식했는데 호텔보다 더 편안하게 살고있는데 당신은 무엇을 반박하는가?인테리어 스타일에 관해서는 네가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아, 내가 좋아하면 ok이고, 네가 좋아할 필요도 별로 없어.또 례를 들면 DJI 무인기가 날수 있고 또 무엇을 반박할수 있는가?화웨이는 운전판 문계 M7을 개발했다. 스마트한 것은 손에 운전대를 붙이기만 하면 열 수 있다.천 킬로미터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사람은 편안하게 안에 앉아 운전한다. 차를 추월하든 추월하지 않든 사람들은 모두 관리한다.내가 화웨이에 광고를 했는데 비용을 받지 않았다. 나의 뜻은 다른 사람이 모두 해냈다는 것이다. 너는 이 일이 불가능하다고 말하지 마라. 모두 해냈는데 또 무슨 불가능이 있겠는가?
이 일을 변론하는 것은 정말 짜증난다. 어떤 사람은 허리가 아프면 내가 데리고 기도하면 된다. 그의 옆에서 허리가 아프지 않은 사람은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한다.세상에 이런 사람이 어딨어?정말 어리석다.다 만들어 놓고도 안 믿는 게 이상해.정상적인 사람으로 바뀌면 반응은 놀랍다. 허리 통증이 기도하면 좋겠다. 이렇게 심해도 다음에 해 볼까?자신감이라는 것은 정말 좋다. 나는 사람이 평생 자신감이 없으면 폐물이라는 것을 총결해 냈다.오늘 자신이 없다고 생각되면 뺨을 몇 대 때리며 자신이 왜 자신이 없느냐고 반문한다.빨리 자신의 신심을 세워라. 신심이 없으면 폐물이다. 우리는 절대 폐물이 될 수 없다.
변론은 자신감을 대신할 수 없다, 이제 다들 알겠니?제발 변론하지 마세요.나는 삼팔이십삼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모두가 들어 본 적이 있다.두 사람이 서로 상대방의 멱살을 잡고 현관 앞에 왔는데, 한 사람은 상대방이 한사코 38이 23이라고 말했는데, 모두 그에게 38이 24라고 말했는데, 그는 여전히 3823을 견지했다.현관은 알아듣자마자 그 꾸준하게 버티는 사람을 놓아주었다.이 사람은 신나게 떠나서 한평생 삼팔이십삼 안에 살았다.현관은 고개를 돌려 3824를 고집하는 그 사람을 땅에 눌러 한 대 때렸는데, 맞은 사람은 매우 억울했다.계산기를 다 계산해 내는데 왜 또 그를 때리려고 하느냐?현관은 그가 뜻밖에도 3823명의 사람과 진실을 비교한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정신병이나 치매인데, 아직도 그와 힘겨루기를 하느냐?한 대 때리고 이제 깨달았지?세상에는 삼팔이십이 혹은 삼팔이십일이 있는데, 이런 사람과 힘겨루기를 하는 것은 바로 얻어맞고 싶은 것이다.이제 공부를 했죠?미치광이와 논쟁하면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까?
그러니 멍청한 짓은 하지 말고, 힘겨루기는 더 하지 마라.어떤 사람이 왜 주를 믿느냐고 물으면 자기 머리가 나쁘다고 한다.그들처럼 이렇게 총명한 사람은 모두 주를 믿을 필요가 없다.나 같은 사람은 마음이 약해서 부탁을 하고 싶어요.그들 같은 사람들은 모두 자신에게 의지하는데, 나는 그럴 자격이 없다.걔네들도 그러고 싶고 다 대단해.엄마 뱃속에서 스스로 기어 나올 수 있고, 심지어 화장장까지 걸어가서 유골함에 자신을 담을 수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가.이 말을 다 하고 빨리 가라, 매를 맞지 않도록.앞에서 얘기했잖아?나는 단지 구설수에 오르는 말만 할 줄 안다.너희들이 얼마나 대단한데, 이런 일을 나는 할 수도 없고, 할 수도 없다.바울은 한 가지 일을 증명했다. 변론은 자신감을 대신할 수 없다. 시간을 낭비하지 마라.만약 다시 시간을 낭비한다면, 너를 현관에게 데리고 가서 한바탕 얻어맞을 것이다.
3. 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음에 이르다
만약 믿는다면, 믿는 것부터 시작하고, 믿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다.처음에는 믿지 않으면 믿지 않는 길로 간다.믿으면 편지의 길로 가는 거야, 이렇게 간단해.내가 너에게 말하노니 사람은 믿기 시작하면 신을 경험하기 시작한다.처음부터 믿지 않으면 신을 경험할 수 없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1:17)
이 말은 바울이 한 것이고, 그것은 그가 훗날 연간에 총결해 낸 것이다.우리 이 신은 너무 좋다. 설령 너의 신념이 조금만 있으면 신을 경험하기 시작하고, 그 다음에 좀 더 자라면 또 신을 경험한다 하더라도, 신념은 겨자 씨앗 한 알이 신을 경험하기 시작하는 것과 같다.어느 사람이 그렇게 자신만만한 사람이 태산 기슭에서 세 걸음 한 걸음 작은 두드리기, 다섯 걸음 한 걸음 큰 두드리기, 태산 꼭대기에 올라가면 머리가 마치 피범벅 같습니까?모두 자신감이 큰 것 같지만 아직 경건하지 못하다. 그렇다면 태산 꼭대기에 올라가면 집에 돌아오는 것은 여전히 불운이다. 바꿀 수 없다.우리가 믿는 이 신의 대단함은 어디에 있습니까?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음에 이르기까지, 믿음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이다.내가 교회에 처음 들어왔을 때의 그 약간의 믿음, 즉 예수의 발을 안아주고 내가 당시 부딪쳤던 어려움을 해결하여 일자리를 찾을수 있는가 없는가를 보아야 한다.내가 예수를 믿었을 때 어떻게 생각했는지 묻는다면, 나는 단지 내가 당시에 신이 매우 필요했고, 아직 반신반의하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그때 내 믿음이 갓 씨앗 믿음이었다면 다 칭찬이야.
그러나 모두 이렇게 정돈되어 있어서 걷다 보면 이 신이 너무 좋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처음에 교회에 들어가면 믿음이 부족하고 신을 겪지 못하는 것은 경건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그게 언제쯤이면 경건하지?어떤 교문들은 이렇게 가르치지만, 우리가 믿는 이 도는 믿음에서 시작하여 믿게 된다.변론하는 것은 너에게 자신감을 줄 수 없다. 이것저것 물어보는 것은 사변의 길을 걷는 것이므로 쓰기 어렵다.오늘 한 자매와 밥을 먹었는데, 그녀는 매우 사변적이다.그녀는 내가 행적이 정말 심하다는 것을 알고, 정말 안 되면 나를 찾아 기도하고, 병이 나았다.한 시간 전에 병원에서 지내다가 기도하고 퇴원해서 집에 왔어요.우리 이 신은 효과가 있다. 이 자매의 신념은 정말 다른 선택이 없다. 우리 신을 마지막 생명의 지푸라기로 삼는 것이다.또 눈이 멀 사람이 있으니 이 지푸라기를 잡고 나에게 왔으면 좋겠다.
하나님이 내 손으로 행하신 표적이 참으로 많으니 어느 것이 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음에 이르지 아니하였느냐?자신감은 결코 산처럼 당신의 자신감을 만두처럼 만들 수 없게 하는 것이 아니다.산은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은 작은 바구니처럼 없다.갓 재배부터 깨녹두 자신감, 샤오롱바오까지 갈 길이 멀어 쉽지 않다.갓 씨앗에 대한 믿음부터 시작하면 아주 좋다.이 자신감의 길은 네가 나에게 물어봐야 한다. 답은 틀림없이 선정되었을 것이다.나는 절대적으로 신을 믿기로 선택했다. 이렇게 많은 기적을 행하니 자신감이 매우 크다.처음부터 하나님을 믿고 오늘에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겪은 것은 정말 셀 수 없이 많기 때문에 오늘 형제자매들은 믿음의 길을 걷기 시작해야 한다.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사도행전17:2)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이르러 말을 마치니 그 중에 믿으려는 자가 있더라.사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안식일을 세 번 보냈는데, 아마도 3주도 안 되었을 것이다.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몇몇 사람들은 믿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를 백성에게 끌어 내려고 찾았으나.발견치 못하매 야손과 및 형제를 끌고 읍장들 잎에 가서 소리질러 가로되 천하를 어지렵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야손이 들였도다 이 사람들이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다 하더이다 하니.무리와 읍장들이 이 말을 듣고 소동하여.야손과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보를 받고 놓으니라.(사도행전 17:5-9)
한 무리의 사람들 중에 예손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편지를 받는 사람들이 그의 집에서 함께 모임을 가져 가정 작은 교회가 되었다.이 사람들은 자신감의 길을 걸었고, 나중에 누군가가 고발하여 관청이 두려워하기 시작했다.사실 관청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정치범이다. 그들이 또 왕을 만들까 봐 예손을 잡았다.사람들은 바울과 실라를 숨겨서 다른 곳으로 보냈어요.예손은 붙잡힌 후 보증금을 냈으니 먼저 보석으로 풀려날 수 있다.바울이 떠난 후에 마음이 어수선하여 예손이 도대체 어떻게 되었는지 마음속으로 줄곧 염려하고 있었다.그가 그곳에 간 지 몇 주 되었는데, 그 사람은 관청에 붙잡혀 벌도 많이 받고 사고도 많이 나서 매우 번거로웠다.이것뿐만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런 일을 겪었다고 해서 더 이상 믿지 않을 것인지를 염려하는 것이다. 즉시 티모테와 실라에게 보여주자.이건 괜찮아 보이길래'데살로니가전서'를 썼어.
사실 예손은 절대적으로 믿지 않는 많은 이유가 있다. 예를 들면 바울이 복음을 전하러 와서야 그가 예손을 따라 믿었는데, 이렇게 많은 일이 일어났으니 얼마나 재수가 없겠는가!그는 잡혔는데, 바울은 오히려 발바닥에 기름을 바르고 미끄러졌으니, 오히려 그의 예손을 대신하여 한 번 떠받쳐라!바울이랑 실라도 너무 못됐어.가서 보지 못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그 예손은 넘어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신을 겪었다.관청도 그를 어떻게 하지 않았고, 아무 일도 없었다.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대단한지, 예손이 이런 작은 일에 부딪히면, 만약 하나님이 절대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다.이것은 싸우지 않으면 서로 알지 못한다. 물론 이 후의 이야기는 내가 멋대로 지어낸 것이니, 모두들 듣고 노는 것으로 간주한다.관청은 예손이 사실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사건의 내막이 없으면 모두 정상이다.이때부터 서로 알게 되었고 관계도 맺었다.아마도 어느 날 예손은 관청 사람들에게 왜 그 유대인들이 데살로니가에 와서 예손을 고소하고 또 현지 사람들도 그를 고소하도록 부추겼는지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왜 이렇게 괜찮을까?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저희가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그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이 바울이 하나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케 하거늘.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어 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유하더라.바울을 인도하는 사람들이 데리고 아덴까지 이르러 바울에게서 실라와 디모데를 자기에게로 속히 오게 하라는 명을 받고 떠나니라.(사도행전 17:10-15).
내가 너희들에게 이야기를 하나 할게, 예손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야.례를 들면 나와 같은 능력이 어느 날 예손처럼 불려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방금 물었을 때 나는 다른 사람과 하나하나 흥미진진하게 이야기했다.예를 들어 예수 그리스도는 어떻게 된 일이고 바울은 또 누구인가. 그는 우리 집에 와서 나의 병든 아이에게 기도를 했는데 결과는 단번에 좋아졌다.마침 관리의 집에도 숨이 턱턱 막힌 아이가 있는 것을 만나, 갑자기 생명의 지푸라기를 잡고 폴을 불러올 수 있는지 물었다.나도 할 수 있어. 걱정하지 마. 내가 아이에게 기도하면 돼.이것이 바로 신심이 강한 곳이니 이번에는 아무도 그를 고소할 수 없다. 왜냐하면 벼슬하는 사람도 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이 세상에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니 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음에 이르게 되었으니 이렇게 하면 하기 쉽다.우리 신은 정말 신이십니다. 그래서 지금 신이라는 글자는 매우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4. 믿음은 신의 큰 능력을 방출할 수 있다
방금 말한 예손은 왜 괜찮지?바울은 티모테와 실라를 데살로니가에 보내어 예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보게 하였는데, 형제자매들의 믿음이 굳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을 들었다.모두들 더 위대한 일을 바라고 있다. 그것은 죽음에서 부활하는 것이다. 언제 예수가 다시 오시기를 바라고 있다. 모두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지겹다.입을 열어 말하는 것은 모두 많은 이야기이고, 많은 것을 목격한다.그러므로 바울이 세운 교회의 증거는 우리의 현재 수준이 대략 좀 비슷하므로 여전히 힘써 추구해야 한다.
오늘 형제자매들은 조금이라도 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음에 이르기까지, 조금만 믿으면 좀 더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곳에서 멈추지 말아야 한다.믿음을 실천하는 어딘가에 멈추면 더 이상 좋지 않다. 왜냐하면 신은 우리가 한 곳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이제 다들 알겠지, 왜 신주가 그렇게 좋을까?예수를 믿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겠는가?하나님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오시는 큰 능력을 놓으실 수 있고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없으시니 우리 하나님이 앞서 우리를 이 영광스러운 길로 인도하셨다.예손 일가의 보름 동안의 자신감은 우후죽순처럼 빠르게 성장했고, 제기된 문제의 영원한 희망에 대해 바울은 정말 헛되이 걱정했다.그래서 정말 예수님을 위해 걱정할 필요는 없어요, 신은 절대 잘하셨어요.
우리는 모두 좋은 선택을 했다. 그것은 절름발이 사람은 걸을 수 있고, 장님은 볼 수 있으며, 대마풍 사람은 청결을 얻을 수 있고, 죽은 사람은 죽음에서 부활할 수 있다.우리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니 사람의 손으로 섬길 필요도 없고 부족한 것도 없으십니다.하나님은 오히려 생명의 숨결, 만물을 우리에게 주시고 땅에 만족을 창조하시고 그들로 하나님을 찾게 하셨다.너와 내가 무슨 은혜와 복이 있는지, 뜻밖에도 지극히 큰 은혜를 찾고 추측할 수 있다.믿음에서 시작하여 믿음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생활, 동작, 보존은 모두 그에게 달려 있다.지금 우리는 이미 활주로를 바꾸었다. 이전에 세계에 속하는 길을 걸으면 그것은 필망의 길이었다.오늘날 우리는 영생의 길을 걷고 있다. 우리는 이미 회개했다. 우리의 논리체계는 이미 더 이상 육체에 속하지 않고 세계의 논리체계에 속한다.우리가 걷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개척하신 영원 안에 신의 영광이 넘치는 길이다. 정말 훌륭하다.
나는 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끊임없이 나타나기를 간절히 바란다.한 자매가 다른 교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몇 년 전에는 나이가 많아도 아이를 낳지 못했다.어쩌다 보니 그녀는 우리 교회에 와서 이 자매가 임신했다고 기도했다.몇 년 후 이 자매가 나를 만나러 왔을 때, 당시 그녀를 섬겼던 바로 우리 중 18선의 어린 목축자였는데, 지금은 아이가 이미 5, 6살이라고 말했다.내 말은 우리 모두가 갈망하여 찾고, 자신감의 길에서 앞으로 달릴 때, 기적과 기사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믿는 자에게는 기적과 기사가 따르리니 하나님은 사람의 믿음을 통하여 이루실 것이요 그 믿음은 그리 클 필요가 없으리라.그러나 한 사람의 자신감이 성장하지 않으면 위축될 수 있다.
나는 신에게 감사하고, 또한 모두를 격려하며, 일생을 신의 영광으로 가득 채우고, 일생을 멋지게 하려면 자신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예전엔 안 되던 게 예전이었는데 이젠 자신 있어.일찍이 한 자매를 섬긴 적이 있는데, 자신은 평생 단지 나쁘지 않고, 나쁘지 않고, 중간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을 뿐, 탁월함을 추구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나는 그녀에게 이전에 중간에 있고 싶어서 오늘 쓰레기로 만들었다고 말했다.사람이 탁월함을 추구하여 한가운데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좋다고 할 수 있다. 오늘 우리는 자신감을 제기한다.자신감을 풀어라. 나는 절대적으로 명수이다. 지금 이 자매는 매우 번창하게 살고 있다. 밖에서"O"하나도 섞이지 않으면 나를 만나러 올 수 없다.
오늘 여러분은 내가 저속한 사람이 아니라 신과 함께 일하여 저속한 사람을 역습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더 이상 저속한 사람이 되지 말고, 너의 자신감을 들어라, 이전에 할 수 없었던 것은 오늘 모두 할 수 있고, 이전에 할 수 없었던 것은 오늘 모두 할 수 있으며, 이전에 두려웠던 오늘은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는다.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니 너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그릇이 되리라, 아멘?바울이 전한 말씀이 이러하니라 그가 아리바고에서 이리저리 변명하였으나 아무 소용이 없더라.
몇 사람이 그를 친하여 믿으니 그 중 아레오바고 관원 디오누시오와 다마리라 하는 여자와 또 다른 사람들도 있었더라.(사도행전 17:34)
하나님은 만민 중에 믿는 자들을 예비하셨도다.하나님은 우리를 통하여 이 사람들을 함께 예수 그리스도 앞에 데리고 가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건축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성전이 되게 하시리라, 아멘?하나님이 우리를 믿음 있는 총명한 자로 만드시길,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