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해답】-사도행전15장-복음의 진리로 너희 가운데 항상 있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조금 고민이 되셨을 텐데요, <사도행전>제5장에서는 복음의 진리가 우리 가운데 남아있게 하라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세대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질문하겠습니다. 오늘날 규칙을 믿는 사람은 몇 명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규칙을 믿지만 실제로는 복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행사를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는 것은 비극이다. 그러므로 지난 몇 년 동안 중국 운명신학이 주장해 온 것은 복음의 진리가 여전히 우리 가운데 존재한다는 하나의 주장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복음의 진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말씀드리자면, 처음에는 우리에게 없었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단지 우리의 성품 때문에 그것을 우리에게 나타내실 것입니다. 비전신학은 많은 계시를 받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구합니다. 하나님은 보좌에 앉아 땅에서 그것을 구하는 자가 있는지 보시느니라. 당신은 그것을 찾고 있습니까? 이해했나요? 누구든지 구하면 하나님께서 찾아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처음부터 옳다고 생각하지 말고 무엇을 배워야 합니까? 아무것도 배우지 마십시오.
오늘은 여러분에게 약간의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말한 것은 기름과 식초를 첨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가 꾸미는 것은 결코 복음의 진리를 꾸미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그런 환경, 그런 상황에 있어서 소설처럼 만들었죠? 더 명확하게 설명하십시오. 나는 오늘 여러분에게 가져온 혼란에 대해 설명할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질문] 1: 목사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모세의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까? 그런데 안식일을 지키는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데, 여러분은 이것을 어떻게 이해합니까?
A: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안식일을 지키므로 예수를 믿는다고 느끼고, 바리새인 그리스도인들도 예수를 믿는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을 믿었습니까, 아니면 모세의 말을 믿었습니까? 이 문제는 엄청납니다. 모세 율법 중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십계명 중 넷째 계명입니다.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까? 아니면 매일 보는 것이 중요합니까? 매일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예 혹은 아니오? 안식일까지 결코 그리스도인이 되지 마십시오. 그 이후에는 안식일이나 깡패가 되십시오. 이해하셨나요? 깡패는 아니지만 바보이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 당신은 나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고 싶습니까?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 아직도 안식일을 지키시나요? 매일이 안식일인 것이 좋지 않느냐?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서신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날보다 한 날이 낫고 오늘보다 그날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이것은 매우 터무니없는 논리이며 규칙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우리 몸을 산 제사로 드려야 하며 그렇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붙잡을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면 그 날을 헛되이 지키느니라.
과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가 망하고, 가족이 멸망당할 때에도 그들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왜? 하나님의 뜻을 모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다윗을 찾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당신을 찾아 그의 마음에 합하시다면 그것은 쉬울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쉽지만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은 어렵습니다! 예 혹은 아니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면서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기를 원합니까? 여기까지 왔는데, 계속 얘기하다 보면 사람들을 혼낼 것 같아요.
[질문] 2: 목사님, 유명한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겸손하지도 않고 오만하지도 않고 현명하지도 않게 되십니까?
A: 아주 간단하지 않나요? 예 혹은 아니오? 그 사람은 평판이 좋은데,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요? 예 혹은 아니오? 한번은 한 사람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류 목사님, 이 사람을 고쳐주시면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은 상대적으로 유명하기 때문에 그 말을 듣고 매우 혐오감을 느꼈습니다. 내가 섬기는 사람이 유명하든 말든, 쓰레기든, 고위 관료든 상관없으니까? 나는 그 사람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죠? 나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단지 그를 축복하고 싶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당신에게 말하노니, 유명한 사람을 대할 때에는 그 사람에게 아무것도 구하지 말고, 아무것도 관심이 없으면 단지 그 사람의 안녕을 기원하면 더 쉬울 것입니다. 그를 축복하기 위해 다음에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를 축복하십시오. 그러므로 너희는 끊임없이 자신을 향상시키고 하나님의 마음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 좋은 것이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더욱이, 유명한 사람들은 여전히 당신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혜택이 부족합니다. 겸손하지도 않고 오만하지도 않고 지혜롭게 될 수 있습니까? 할 수 있는! 예 혹은 아니오? 이번에 바울이 야고보와 베드로를 만나러 갔는데, 그들이 예루살렘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겸손하지도 교만하지도 아니하고 할 말을 분명하고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이해 관계, 모든 사람의 핵심 이익, 모든 사람이 걱정하는 것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생각하십시오.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질문] 3 목사님, 왜 이방인은 할례를 받을 수 없습니까? 아직도 이해가 안 되시나요?
A: 당신이 하고 싶다면 아무도 말리지 않을 것인가요? 그러나 역사는 포경수술이 효과가 없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할례를 받으면 다른 어떤 의식도 효력이 없습니다. 예 혹은 아니오? 환관으로 변신한다 해도 소용없을 것이고 마음은 여전히 더러울 것이다. 사람들이 할례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육체의 악한 정욕과 욕심을 끊어 버리라는 뜻입니다. 오늘 포경수술을 받고 싶다면 괜찮습니다! 생식기를 자르지 말고 다른 곳을 자르지 말고 악한 정욕과 정욕을 버리라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요 육신을 다루는 제자니라. 이제 이해가 되셨나요? 아직 이해하지 못하면 곤란합니다.
[질문] 4: 목사님 최근에 데이빗이 아내와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음행의 정의가 좀 모호한데 선생님께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A: 잘 이해가 안 됐어요. 다윗이 여러 아내와 결혼했다는 뜻인 것 같았어요. 간음한 사람이었죠? 밧세바가 남편이 있을 때 다윗과 관계를 가졌다면 그것은 음행이라고 불리고, 남편이 죽은 후에 다윗이 그녀와 결혼했다면 그것은 음행이라고 불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해하셨나요?
[질문] 5: 목사님, 구약성경도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엄격히 지켜야 하지만 모세의 율법도 엄격히 지킬 수는 없지요?
A: 이런! 나는 감정적이다. 왜 감정을 느끼나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 모세 율법의 말씀보다 더 뛰어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모세의 율법은 소의 제사, 양의 제사, 소의 도살, 양의 도살, 소와 양의 피의 제사를 요구하였습니다.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을 희생하라고 요구하십니다. 물어보겠습니다. 어느 것이 더 키가 크나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요구는 높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율법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율법을 성취하십니까? 그것은 당신에게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확신을 줍니다. 육신을 의지하여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고 오직 믿음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할 힘을 하나님께서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그 힘을 얻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강력합니다. 구약성경도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우리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으로 나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질문] 6: 안녕하세요 목사님 실라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보네요 방금 선생님께서 실라의 성격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실라에 대해 좀 더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A: 실라는 나중에 바울을 따라 교회를 건축하면서 많은 고난을 겪으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폴과 함께 감옥에 가서 맞기도 했지만 괜찮았습니다. 나온 후 임의의 설명이 없었습니다 실라는 유대인이었습니까? 그는 유대인이었지만 실라는 바울의 성품을 갖고 있었고 나중에는 바울의 매우 중요한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 목숨만 아끼면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실라는 자기 목숨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교회에 있었고 이방인과 접촉하게 되면 유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 수도 있었습니다. 만일 그가 복음과 자신의 삶에 관심이 있다면 당신은 유대인이면서 동시에 이방인의 사도가 될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어떻게 예루살렘에서 체포되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질문] 7: 목사님 야고보가 말했습니다. 우상의 더러운 것과 간음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편지를 써서 그들에게 명하라. (사도행전 15:20) 이제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준수하고 우리 가족처럼 피를 만지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이것이 종교 의식입니까? 그럼 우리가 그것을 지켜야 할까요, 말아야 할까요?
A: 이 문장은 야고보가 말한 것입니다. 이 야곱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들어본 적도 없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대해서도 거의 무지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육은 무익하니 오직 영은 살리라 하시니 너희가 알겠느냐? 그러면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나요?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힐 수 없으나,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힐 수 있다. 이해했나요?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믿는 것들은 정확히 무엇입니까? 당신은 야고보가 이방인들에게 준 조언을 믿었습니다. 사도 바울과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를 실제로 읽어보면 이 문장이 매우 이상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관심을 두시는 것은 먹든지 말든지, 먹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이해하셨나요?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갖는 걸까요? 예를 들면: 우리는 밖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했는데,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후에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이런! 그의 가족은 우상을 숭배했는가? 당신은 있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먹고 있는 음식에 걸려 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동생을 데리고 저녁을 먹으러 갔는데 그 동생이 오리 피라든가를 달라고 해서 저는 안 먹긴 했지만 그런 것에도 관심이 없었어요. 이해하셨나요? 먹느냐 안 먹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까?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인식할 수 있습니까?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정말로 알고 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정말로 알고 있습니까? 오늘은 이해 측면에서 모든 사람이 바보가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은 이해의 측면에서 하나님을 완전히 알아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이 그렇게 좋습니까? 특별한 것도 없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 이건 만지면 안 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귀신을 쫓아내고 정결케 해달라고 기도해야 하는데 어떻게 정결케 됩니까? 저는 예수님께서 봉사 후에 정결케 하러 가셨다는 것을 '성경'에서 보지 못했고, 정말 보지 못했습니다. 나는 모두가 넘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복음이 아닙니다. 지키고 싶다면, 지키십시오. 바울은 그것을 어떻게 가르쳤습니까? 그분은 “먹어도 믿음으로 먹고, 먹지 않으면 믿음으로 먹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해하셨나요?
##【질문】8: 목사님, 어떻게 하면 바울의 성품을 지닌 아이로 키울 수 있나요?
A: 이것을 재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자기 자신을 먼저 가꾸어야 할 것 같아요! 당신 자신에게는 이런 성격이 없는데 당신은 누구를 수련하느냐? 예 혹은 아니오?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그를 키운다, 나는 그를 키운다. 스스로 할 수 없다면 먼저 스스로 시작해야 합니다. 사람이 바울의 성품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그 사람이 무엇보다도 삶과 죽음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성품을 살아내는 것이 너무 어렵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대학 입시에 응시하면 시험에 떨어지면 죽고, 학교에서 시험에 떨어지면 다시 돌아와도 죽는 것은 아깝다. 대학에 합격하고 안 되고가 운명을 결정할 수는 없지만, 성격이 운명을 결정한다. 이해하셨나요?
오늘의 Q&A는 여기까지입니다.하나님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빕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