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해답】-어리석은 제사장-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는 나답과 아비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멍청한 성직자 시리즈 '이상한 불을 바치는 아비후 나답'에 대해 이야기해봤습니다. 이 나답 아비후는 나중에 바비 Q가 되었습니다. 바비 Q의 문제는 오늘날의 화장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나답 아비후에게서 나온 것입니다. 나답 아비후(Nadab Abihu)는 바비 Q(Barbie Q)가 되어 딸꾹질을 하다 죽었습니다. 신권에 관해서는 사실 오늘 설교가 좀 깊은 것 같지만, 우리 모두 단단한 음식을 먹어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질문] 1: 목사님, 만약 마음이 가난한데 다른 사람을 축복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빈곤의 사고 방식을 없애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A: 아시다시피 이 사람은 사실 때로는 매우 모순적인 혼합체입니다. 때로 우리는 진심으로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 되고 싶을 때도 있고, 때로는 남을 이용하고 싶기도 하고, 이용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은 결국에는 여전히 이용하지 못합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을 축복하고 싶을 때마다 당신은 아무것도 잃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얻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가난에 대한 사고방식을 없앨 수 있습니까? 가족이기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 폐쇄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우리 가족이 5명이고, 가족이 10,000위안이고, 각 사람이 2,000위안을 받습니다. 이 계좌는 틀린 것이 아니죠? 3000을 얻으려면 둘 중 한 명이 1000을 얻어야겠죠? 이를 폐쇄형 시스템이라고 합니다. 이해했나요? 이것이 폐쇄적인 체계라면 당신이 많이 가져가면 그 사람은 덜 가져가고, 당신이 적게 가져가면 그 사람은 더 많이 가져가게 되므로 사람마다 마음이 좋지 않게 된다. 여기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오늘날 우리가 이런 환경에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제사장이고 개방된 체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가족은 다섯 명인데, 항상 밖에서 돈을 벌러 오는 사람이 한두 명씩 있어요. 처음에는 10,000이었는데 나중에는 100,000이 되었는데, 한 포인트에 한 사람만 20,000을 받게 됩니다. 나중에는 100만 달러를 더 벌었고 1센트에 한 사람이 20만 달러를 나누게 되었고, 나중에는 또 1000만 달러를 벌고 1센트에 한 사람이 200만 달러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질문하겠습니다. 항상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이 있다면 이것은 개방형 시스템입니다. 당신이 더 많이 받고 내가 덜 얻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더 많이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면 어떨까요?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주입하신다는 뜻인데, 어떻게 주입하시나요? 신 주입은 너무 쉽습니다. 하나님이 이런 일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님이 사람에게 축복을 주시는 것은 너무나 쉽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믿으면 가난하다는 마음이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신뢰하면 다른 일로 남을 축복하는 것이 아니고, 가진 것이 없는데 어떻게 남을 축복할 수 있겠습니까?
[질문] 2: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는데, 듣지 않으면 하나님의 규례를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불을 분향하는 것과 같습니까?
A: 이것은 실제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관한 것이 아니라 낮은 수준에 관한 것입니다. 더 낮은 수준에서는 무엇입니까? 만일 우리가 아직도 세상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제자라 불릴 수도 없습니다. 사제는 말할 것도 없고 제자에 대해서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사랑하면 결코 제사장이라 칭할 수 없고, 제사장이 아니면 다른 불을 바치는 일도 말할 수 없느니라.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아주 잘 사랑하며, 불에 타 죽지 않습니다. 왜? 그는 아직 신권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천천히 앞으로 나아갑니다.
만일 당신이 제사장 직분을 받고 이스라엘 300만 명을 생각한다면 나답 아비후는 어디에 있겠습니까? 나답 아비후(Nadab Abihu)는 3위와 4위를 차지했습니다. 첫째는 모세, 둘째는 아론, 셋째는 나답, 넷째는 아비후였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이 이상한 불을 바치는 것만으로도 냄비를 마실 수 있지 않습니까?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되면 욕심을 낼 자격이 있고, 주지사가 되면 탐욕을 가질 자격이 있고, 주지사가 되면 욕심을 가질 자격이 있고, 예 혹은 아니오? 기회도 없고, 욕심을 낼 자격도 없고, 이상한 불을 바칠 자격도 없습니다.
[질문] 3: 목사님, 영계에서 통과된 올림픽 성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올림픽의 삶은 육체적인 삶 그 이상입니다. 사실 올림픽은 몸과 근육을 비교하는 것이기 때문에, 육체에 비유하는 것이기 때문에 영계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육신의 것입니다.
[질문] 4: 목사님, 불을 피우는 것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대표적인 예를 들어주실 수 있나요?
A: 다른 불을 바치는 일이 참 많은데, 표면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이 가정을 잘 관리하라고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가족을 잘 관리하는 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희생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곳에서는 실제로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데, 이를 영어로 Family First라고 하며,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은 결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전에 그렇게 명령하신 게 아니잖아, 방금 얘기한 그 제자에 대해서 알아야지? 이것저것 남겨두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는 부모보다, 형제보다, 아내보다, 자녀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하니, 다른 불을 조심하여 드리십시오.
일부는 어떻습니까? 예를 들어 정부의 입법에 영향을 미치는 등 정치에 참여하는 일을 좋아하도록 가르치고 일부는 심지어 동성애 합법화에 반대하고 많은 것을 반대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성경에는 그러한 가르침이 없습니다.. 제사장으로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저게 뭐에요? 그것은 이 세대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결국 이 세대를 멸하시고자 하시고, 자기 백성을 이 세상에서 인도하여 내시고자 하시면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십니다. 다들 이해할 수 있나요? 문제는 교회 예배가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인간의 논리에 기초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해하셨나요? 사실 바울 시대에는 동성애자가 많았고, 바울은 항의하기 위해 거리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게 당신과 무슨 관련이 있나요? 그래서 이상한 불을 바친다고 하는 것입니다.
[질문] 5: 목사님 질문이 있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지원하기 위해 천막을 엮었습니다. 지금 몇몇 목사님들은 라이브 스트리밍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 사이의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진정한 풍요란 무엇인가?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까?
A: 이 질문은 꽤 어렵습니다. 설명하자면, 바울이 장막을 엮어서 교회를 부양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인데, 바울이 언제 장막을 쳐서 교회를 부양했습니까? 사실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바울은 자기 직업을 갖고 생계를 꾸리고, 봉사하면서 봉사했는데, 그 과정에서 돈을 벌려고 한 걸까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돈을 벌었나요, 돈을 벌었나요. 그런데 과연 그 목사님이 라이브 스트리밍을 하는 목사님들과 공통점이 있을까요? 사실, 여전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바울은 장막을 엮습니다. 제 관점을 말씀드리자면 제가 옳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바울이 장막을 만들어 시장에 팔았다면, 바울이 장막을 만들어 성도들에게 팔았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별로 좋지 않아! 그러자 교인들이 바울에게 얼굴을 주고 바울이 만든 장막을 사서 깨뜨린 줄 아느냐? 목사님이 생필품을 가져오고, 모든 물건을 성도들의 손에 채워 주고, 성도들에게서 돈도 다 빼앗아가니, 별로 말이 안 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정말 인터넷 연예인이라면 라이브 스트리밍이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문제 없어요, 그렇죠? 왜냐하면 그 사람도 자신의 직업이 있고, 그것은 정상적인 일이고, 그 일을 하면서 하나님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은 왜 장막을 엮었나요? 바울은 교회를 먹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심각한 일을 하지 않으면 먹지 못한다는 것이 바울의 논리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왜? 왜냐하면 바울의 논리 체계는 사람이 스스로 생계를 꾸릴 수 있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생계를 꾸릴 수 없고 교회의 지원을 받아 하루 종일 기도하고 설교한다면 그것은 바울의 신학 체계가 아닙니다. 사실 바울에게는 또 다른 특징이 있었는데, 그는 하나님을 가난한 하나님으로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풍성하신 하나님으로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말합니까? 예수님의 가난으로 인해 우리가 부자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돈을 벌어서 교회를 지원한다는 논리는 말이 되지 않습니다.
주의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진정한 풍요란 무엇인가? 진정한 풍요에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비결을 배웠고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비결을 배웠다고 말했습니다. 사람의 진정한 풍요는 사실 마음의 풍요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왔습니까? 하나님은 사람들을 축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아주 간단하지 않습니까? 자기가 짠 천막은 엄청 빨리 팔리고, 남이 짠 천막은 1000에 팔고, 자기가 짠 천막은 2000에 팔더라구요. 예 혹은 아니오? 악령은 사람에게 돈을 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영은 사람에게 돈을 주고 사람의 재정을 뒤흔들 수는 없습니까? 확신하는! 그러므로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번영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사람이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인데, 목회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문]6: 목사님, 형제자매들이 궁핍한 것을 보면 그들에게 돈을 주시고, 그들의 재정이 회복되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십니까? 돈을 바치는 행위도 불을 바치는 행위에 해당하는가?
A: 잊어버리십시오. 먹을 수 없으면 밥 한 그릇을 주면 성경 말씀대로 되고, 가난하면 돈을 주면 더욱 게으르게 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시대의 사람이 열심히 일하면 부족함이 없어야 한다. 왜 부족합니까? 왜냐하면 사람은 뼈가 가난하고 뼈가 게으르기 때문입니다. 게으른 사람과 멍청한 사람, 멍청하고 게으른 사람, 그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돈을 주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고쳐야 하는데, 수리가 끝난 후에는 내면의 나쁜 습관을 없애면 괜찮을 것입니다. 그에게 돈을 주면 오늘까지 결과가 좋지 않았다고 말씀드립니다. 나도 그것을 주었고 실험을 했는데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실험을 해보면 실제로는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질문] 7: 안녕하세요, 목사님!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여호와께서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일에 누구든지 실수를 범하였거나 기름 부음 받은 제사장이 범죄하여 백성으로 범죄하게 하거든 그를 제사로 드릴지니라 흠 없는 수송아지를 속죄제로 여호와께 드렸는데(레위기 4:1-3), 나답과 아비후는 왜 자신들의 속죄제를 속죄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습니까?
A: 당신이 물어본 질문은 아주 좋습니다. 이 문제는 아주 간단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에게 기회를 줄 때도 있고, 기회를 주지 않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하나님께 물어볼 필요가 없는데 왜 하나님께 기회를 주지 않느냐? 사실, 어떤 것들은 기회가 없습니다. 고전압 전기를 만지면 기회가 있습니까? 기회 없음. 하나님의 성전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예배한다면, 당신은 정말로 하나님의 최종 목표에 도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회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때로는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때로는 정상일 가능성이 전혀 없습니다. 매우 정상일 수도 있습니다.
[질문] 8: 목사님, 지금의 주류 교회들은 모두 예배와 찬양에만 관심을 두고 있지만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데는 관심을 두지 않고, 치유와 해방에도 관심을 두지 않는데, 너무 많은 예배와 찬양을 제사로 보는 것이 이상합니까? 불?
A: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이런 말을 해서 많은 교회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았습니까? 기분을 상하게 하면 기분이 상하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고립된 현상이 아니라 공통된 현상이라는 점이다. 다른 불을 드리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행하는 어리석은 일이 아니라 단지 교회가 사람을 치료하는 능력이 그리 좋지는 않지만 사람을 불치병에 걸리게 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전혀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상황이 하나님의 제사장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는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질문] 9: 목사님, 전통적인 교회가 에이즈 환자를 섬기고 과부 노인과 고아를 돌보는 것을 어떻게 보십니까?
A: 내 지혜에 도전하십시오. 왜냐하면 내가 말한 후에 많은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이런 일을 하지 않는 것 같은데, 왜 이런 일을 안 합니까? 그것에 대해 이야기합시다. 왜 이런 일을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건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사람들을 축복하고 치유하는 것이 가장 좋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인간의 능력으로 봉사하지만, 사실은 근본적인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왜 애굽을 떠나 광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성전과 하나님의 성막을 먼저 건축했는지 알아야 합니다. 고아와 과부를 해결하기 위함이 아니냐? 외로운 노인은 어떻습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들어간 후, 하나님의 성막을 건축했는데, 그 성막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습니다. 고아와 과부가 있습니까?물론 있습니다. 누가 처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세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모세는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임재가 없으면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이고, 하나님의 임재가 있으면 다른 문제도 쉽게 해결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교회를 세우는 일은 신약성경이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명령입니다. “신약”의 주제는 자선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우리 가운데 온다면 그것은 완전한 서비스입니다. 이해합니까? 한 사람이 와서 한 사람을 섬기고, 두 사람이 와서 두 사람을 섬기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대접할 음식을 찾기 위해 거리로 나가지 않습니다. 나는 또한 그들이 이것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탄합니다. 목사인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는 먹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도시락을 나눠주기 위해 거리에 나가곤 합니다.
##【질문】10: 목사님, 아론은 왜 자기 아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그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에게 속죄제를 드리지 않았습니까?
A: 죽었으니 무엇을 구속해야 합니까? 불에 타서 시간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있으면 고칠 수 있습니다.
[질문]11: 목사님, 전임 설교자에게 돈을 주면 다른 불도 드리는 것입니까?
A: 나는 이것에 대해 모른다. 전임 설교자에게 있어서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나는 이런 것들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것들이 없습니다.
[질문]12:목사님, 많은 목회자들이 직분을 떠나 다른 일을 하는데 이것이 어리석음에 빠지는 것입니까?
A: 이것은 나답 아비후와는 거의 관련이 없는 또 다른 종류입니다. 그런 일은 목사의 일을 망쳐버리고 그만두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의 소명이 목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저것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것이라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질문] 13: 교회에 사기를 당해 지금 돈이 없는 독신 자매가 있다면 그 사람에게 돈을 드려도 될까요?
A: 먹을 수 없으면 먹을 것을 주고, 입을 수 없으면 입을 것을 주라 비용이 많이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돈 구멍을 막지 마십시오. 그는 돈을 빌릴 자격이 있습니다. 이렇게 속이는 사람들은 나쁜 습관이 많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에게 아직도 속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그것은 돈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돈이 싫다면 무엇을 속이나요? 속일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오늘 Q&A는 여기까지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