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해답】사도행전08장-핍박도 복음을 막을 수 없다!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사도행전 8장은 매우 흥미롭고 기적적인 일, 즉 교회가 박해를 받을 때 많은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질문】1: 목사님,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습니까? 어떻게 아직도 이해할 수 없습니까?
A: 함부로 말할 수 없고 성경을 보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령이 네 마음을 채우면 역사하겠느냐? 그럼 뭐해? 머리에 USB 플래시 드라이브를 삽입하고 복사하여 붙여 넣기 만하면 바로 들어갈 수 있습니까? 우리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닌 것 같습니다. 우리의 신이 그런 신이라면 구하는 즐거움을 하나 잃어버린 셈이다. 내가 당신에게 성경의 다른 장을 설명한다면, 당신은 알게 될 것입니다. 찾으면 찾을 것이고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입니다. 무엇을 찾고 계신가요? 그것이 이해에 대한 탐구입니다. 이런, 하나님이 그런 하나님이신가요? 아니면 그 신인가?
예를 들어 초창기에 교회를 지을 때 소고기 양념으로 교회를 지었는데 왜 그럴까요? 뇌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나는 성령 충만합니까? 가지다! 성령 충만하면 왜 아직도 이러느냐? 무모한! 성령 충만하면 어찌 사람의 명철이 막힐 수 있겠습니까? 성령 충만이 능력의 문제 해결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는다는 논리에 근거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성경을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합니까? 별로 좋지 않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방언으로 기도하고, 이해력이 명확하지 않아 장난을 좋아하는데, 그것이 비극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목사는 집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고 느낌이 올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도 소리가 꽤 크게 들리더니 관리팀이 문을 두드릴 뻔 했으니 다행이겠죠? 왜? 그의 목사가 그렇게 가르쳤기 때문에 그가 올바르게 가르치고 있습니까? 그분은 소경이 보게 하고 귀머거리가 듣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들을 방해하기 위해 나쁜 속임수를 가르쳤습니다. 위층 3 층과 아래층 3 층에서 가족의 외침이 들렸습니다. 내 이해가 명확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깨달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는 데서 나오므로 중국의 운명신학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을 중시한다. 내가 성령 충만함과 방언 기도와 병 고치는 것과 귀신 쫓아내는 것을 보았으나 깨닫지 못하여 그릇된 길을 갔노라.
식사를 맡은 일곱 집사 중에 니골라라는 한 사람이 있었는데 후에 니골라당을 조직하여 삐뚤어진 진리를 많이 가르쳤고 한때는 성령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너희가 성령 충만하면 능력을 얻으리니 성령이 구하는 자를 인도하시리라 게으르지 말라!
[질문] 2: 목사님, 성령 충만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읽어야 합니까?
A: 이 문제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인데, 물론 하나님 말씀을 보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문제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나를 당황하게 했다. 그때 나는 담대히 시도하여 어떤 사람이 주님을 믿게 되면 그를 데리고 기도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성경을 읽지 않고 성령 충만을 받을 수 없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지만 이것들은 서로 다릅니다. 제가 이 실험을 했는데 많은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없습니까? 그가 성경 전체를 읽을 때 한 번, 두 번, 세 번 읽어야 합니까? 아니면 항아리에 들어가 성령 충만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시겠습니까? 왜 꽉 찼습니까? 일찍와! 어쨌든 조만간 발생합니다. 성령 충만을 말할 때 분명하게 말할 수 있습니까? 나는 말할 수 없다. 성경이 분명합니까? 나는 성경 전체를 찾아보았지만, 성경은 그것을 명확하게 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방언으로 기도하는 방법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은 더욱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이런저런 방법입니다. 자동차가 이래저래 움직여야 하듯이 당신도 운전할 수 있습니까? 습관! 수영은 이래 저래야 하는데 수영은 할 수 있니? 습관! 이거 개소리 아님? 나중에 대담한 실험을 했습니다.이것을 명확하게 설명하기 전까지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이해하고 나니 점차 명확해졌습니다.
또 다른 예로, 이 두리안이 맛있나요? 너무 냄새가 나고 노랗고 부드럽기 때문에 생각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먹어보지 않으면 정말 그 맛을 모른다고요? 먹어보면 어떤 맛인지 아실거에요. 당신은 두리안을 먹어본 적이 없는데 두리안의 맛을 나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복숭아를 먹어본 적이 없다면 나에게 복숭아의 맛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설명해줘도 이해가 안가! 그래서 어떤 것들은 명확하게 설명될 때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태어났을 때 먼저 이해하게 하고 우유를 마시면 굶어 죽는다. 그는 상관하지 않고 배가 고플 때 우유를 마신다. 우유에 얼마나 많은 비타민이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단백질이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포도당이 있습니까? 그는 그것에 대해 신경 쓰지 않습니다. 좋은 음료입니다! 우리 인간은 어리석기 때문에 성령 충만을 온전히 이해하고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고 성령 충만을 갈망하게 합니다. 앞으로 이 두 가지를 혼동하지 마세요. "성경"을 읽는 것은 "성경"을 읽는 것이고,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은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도 나만큼 주의 깊게 읽지 못할 수도 있고, "성경"을 다 읽으면 그 안에 아무것도 없습니다.
[질문] 3: 목사님: 성령 충만하면 사람의 몸은 어떤 느낌이 듭니까?
A: 내가 별로 감정적이지 않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저는 2년 이상 교회에서 방언 기도와 성령 충만을 받으며 지냈습니다. 그들이 그곳에서 기도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살라라! 카랄라! 지루하다. 제가 전에 다녔던 교회는 귀신을 쫓아내는 교회였습니다. 모두가 그곳에서 기도하고 있었고 저는 그곳에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읽고 또 읽어도 성령 충만이 무슨 뜻인지 아직도 이해가 안 가나요? 몸에 감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날 목사님께서 누가 성령 충만함을 받고 방언 기도를 하고 싶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급히 달려갔고 목사님은 저와 함께 방언 기도를 하셨고, 제가 너무 이성적이어서 오랫동안 기도했는데도 여전히 방언을 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언어든 흉내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 몇 문장을 흉내 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방언 기도로 성령이 충만한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싶습니까? 기적과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때 동생의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죽게 되었는데 그때 저는 성령 충만함을 받아 방언 기도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동생의 아이를 위해 아침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 간절히 기도했는데, 그 결과 오후 4시 30분에 아이가 갑자기 깼어요.
내가 아주 예민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게 오랫동안 기도한 후에 사람들이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 충만함을 받고 방언으로 기도한 후에는 아무 느낌이 없었습니다. 사실 방언기도는 학문적인 입력입니다 입력이란 무엇입니까? 인풋이라는 책을 읽고, 아웃풋이라는 글을 쓰고, 인풋이라는 것을 배우고, 아웃풋이라는 프로젝트를 만들었다. 방언기도는 입력이고 입력으로 측정하면 아무것도 측정할 수 없지만 결과는 능력이 되고 기적을 행할 수 있습니다. 방언 기도와 능력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방언 기도는 기적을 일으키고 결과가 나타납니다. 나의 이해가 더 분명해지면 나의 행동은 하나님의 뜻에 더 가까워질 것입니다.
[질문] 4: 목사님, 성령 충만하면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기가 더 쉽나요?
A: 성령 충만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기가 더 쉬울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왔기 때문입니다. 성령 충만한 후에도 열심히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알고 싶지 않다면 하나님은 당신에게 알려주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 말씀을 깨닫기 위해 오늘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모릅니다! 당신은 당신의 머리에서 그것을 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두부 두뇌를 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신이 머리를 쓰다듬는 것에 의존할 수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비록 당신이 도시 지도자일지라도 머리를 쓰다듬는 것으로는 당신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특정 연구를 수행하지 않습니다. 머리를 쓰다듬어 집을 지을 수 있습니까? 다리를 건설할 수 있습니까? 집만 짓고 무너뜨리고, 무너뜨리기 위해 다리와 다리를 짓는데, 이것이 고의로 사람을 패괴시키는 것이 아니냐? 아이들이 공부하지 않고 온종일 성령 충만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렇게 좋지 않을 것입니다! 대학에 가면 확실히 시험에 합격하지 못할 테니 생각조차하지 마세요. 그래서 아는 것은 찾는 것이고 찾는 자는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가 너희를 위하여 열 것이라고 하는 것이다!
성령 충만하기가 더 쉬울까요? 성경에는 명확한 가르침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성경에 실제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에서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누가복음 11장 5-13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묻다! 주님을 믿자 삐뚤게 믿지마라 주님을 믿으면 핵심을 잃는다는 말도 안되는 소리 아닙니까?
[질문] 5: 목사님, 성령 충만한 사람이 말하고 행하는 일에 능력과 두려움과 지혜가 있습니까?
A: 지혜는 명철의 영역이고 성령 충만과 방언 기도는 능력 곧 기적을 행하는 능력의 영역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방언으로 기도할 때 내 입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말하는 것이 내 입이니, 확신이 없으면 방언으로 기도할 길이 없습니다. 나는 내가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러므로 느낌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질문] 6: 목사님, 세례를 받고 나면 마음이 맑아지는 등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저번에 세례를 받았을 때는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아직 성령 충만을 못 받은 걸까요?
A: 감정은 육신적인 것이기 때문에 감정을 절대 신뢰하지 마십시오. 나는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입니다 감정이 없는 것이 옳습니다. 저는 주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을 때 아무 느낌이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분명히 저와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실 수 있습니까? 즉, 내가 진지하게 일을 할 때 하나님께서 정말 축복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맑은 마음은 모두 배우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단 한번의 세례로 마음이 맑아진다? 그런 것이 있습니까? 있을 수 있지만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나는 당신이 느낌에 의존하고 소문처럼 머리를 쓰다듬고 장난을 치는 것이 가장 두렵습니다. 부정확한 느낌이 듭니다. 알겠습니까? 귀신의 느낌이 상당히 정확하여 두통의 영이 오면 머리가 아플 것임에 틀림없다. 그게 다야.
[질문] 7: 목사님, 제가 한 방언으로 기도할 때 딸꾹질이 나던데, 이게 성령의 일인가요? 내 속에서 더러운 것이 들어오고 있느냐 성령이 나를 도우시는 것이냐
A: 딸꾹질은 신학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중국의 운명신학은 당신이 딸꾹질을 해야 한다, 당신의 머리카락이 곤두서야 한다, 당신이 온통 뜨거워야 한다, 그런 것은 없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성경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딸꾹질로 반응할까요? 회의! 나중에 나는 이런 것들을 연구하고 이해하고 싶었고 인체에 있는 이 악령이 바로 제나라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떻게 나왔습니까? 딸꾹질하면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어떻게 들어갔나요? 즉, 사람들이 무언가에 대해 생각할 때 그것이 들어옵니다.
어떤 사람이 기도할 때 딸꾹질을 하고, 기도할 때 딸꾹질을 하고, 그 딸꾹질이 10년 이상, 심지어 20년, 30년 동안 지속된다면, 그것은 그의 마음과 생각의 이해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오늘 그리고 내일 다시 들어옵니다. 내가 해독제를 주고 독을 먹게 하라 이게 논리가 아닐까. 그러니 그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관건은 네가 정말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는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는 마음이 있느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딸꾹질이 사라지고 모든 악령이 나가게 됩니다. 최악의 것은 딸꾹질이 있을 때마다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경비원과 건물을 부르는데 딸꾹질이 마치 대포를 쏘는 것 같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질문] 8: 목사님, 제 친구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유는 교회에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고 예수님의 사랑이 없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당신이 예수를 전혀 믿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선생님, 제 대답이 맞습니까?
A: 아니요. 이 일에 왜 답장을 하십니까? 이런 것들에 대해 논쟁하지 마십시오. 뭐라고 해야 할까요? 다쳤어? 그렇다면 당신은 정말로 운동이 필요합니다. 당신은 너무 참을 수 없습니다. 상처받고 싶으면 어디든지 상처받기 쉬우니 교회에서도 상처받고 집에서도 상처받고 직장에서도 상처받고. 그래서 이 사람은 그다지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안정성과 간섭 방지 능력이 좋지 않다고 말하십시오. 외부인이 한마디 하니까 불편하고, 불안정하고, 일주일은 불편하고, 일주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당신은 그에게 말합니다 : 당신은 바보입니까? 뇌가 잘 작동하지 않습니까? 그게 전부입니다.
##【질문】9: 목사님, 성령 충만하면 깨닫는데 효과가 없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여 모든 진리를 깨닫게 하셨지만 성령과 이해의 관계는 여전히 불분명합니까?
A: 명철은 어떻게 오는 것이요 명철은 배우는 것인데 배우면 성령이 인도하시느니라 배우지 않으면 성령께서 인도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찾는 사람은 찾을 것이고 찾지 않는 사람은 찾지 못할 것이다. 두드리는 이가 너희에게 문을 열 것이요, 너희가 두드리지 아니하면 문이 열리지 아니하리라. 찾도록 인도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이게 무슨 문제야? 찾고 있는 것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습니다. 성령 충만하면 머리를 찰싹 때리고 뒤통수를 열고 USB 드라이브를 넣고 모든 것을 복사하여 붙여넣는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너 이해할 수 있니? 당신은 추구해야합니다.
[질문] 10: 목사님, 삶에서, 일과 봉사에서, 이해에 대한 합리적인 이해를 실천하는 것은 이해를 향상시키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렇죠?
A: 물론 모든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해하지 못하고 맹목적으로 하다가 감동에 의지하면 오늘도 감동되고 내일도 감동이 되는 것입니다. 감정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해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질문] 11: 목사님, 가끔 성령의 감동과 사람의 감동을 분별하지 못하십니까?
A: 나는 이런 것들을 가르치지 않는다. 차이점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차이점을 알 수 없습니다. 이 움직임을 어떻게 설명합니까? 나는 가르치는 방법을 모른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말했습니다. 감동받았습니다. 당신은 나와 결혼해야 합니다. 나는 이미 남편이 있습니다. 그는 너무 감동해서 왜곡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감동을 의지하지 말라 감동은 역사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역사한다 사람은 손으로 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해의 관점에서 완전히 이해해야 합니다. 중국의 운명신학은 이 시대에 온전한 복음의 진리를 체계적으로 논할 수 있는 교회이며, 사도 바울의 서신에 따라 복음의 진리를 분명하게 논할 수 있는 교회입니다. 어때? 내 끊임없는 탐구, 이해 및 연습의 세월입니다.
[질문] 12: 목사님, 예전에 우리 교회 목사님들은 교회를 세울 것인지, 어디에 교회를 세울 것인지 등 성령의 감동을 자주 받아 기도로 선택하고 성령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결국 교회가 세워진 사무실 건물은 그 가치가 높아져 여러 번 두 배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증언의 좋은 예가 되었다. 이 논리에 문제가 있습니까?
A: 그거 심각한 문제 아니야? 사무실 건물을 여러 번 두 배로 늘린 후 성령이 움직였습니까? 다음에 성령의 감동을 받아 여러 번 강등되면 누구를 의지하겠습니까? 이것은 무엇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그것을 뒷받침할 성경이 있습니까? 아니요. 이것은 순수한 헛소리입니다. 이런 목회자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기 어렵고 온통 돈에만 눈이 가는 목사입니다. 이 세상의 돈은 불의한 돈이라고 합니다. 불의한 돈을 성령 감동의 증거로 삼을 수 있다고 하면 완전히 망합니다.
[질문] 13: 목사님, 우리가 흔히 쓰는 논리는 세상 논리이고 하나님의 생각은 사람의 생각보다 높으니 우리의 명철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어렵습니까?
A: 사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에 가장 큰 어려움은 우리가 사는 이유를 먼저 해결하는 것입니다. 왜 사는가의 문제를 풀지 못하면 공부도 문제 대학도 문제 그리고 집도 사고 결혼도 하고 결혼도 하고 시집도 다 문제다. 당신이 살아있는 동안 당신의 핵심 관심사. 죽음이 나의 핵심 관심사이고, 사후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하는 것이 내가 가장 원하는 것이라면 사는 것이 참 단순하지 않을까요? 삶이 쉽다면 하나님을 알기도 쉬울 것입니다. 오늘 이 굽이를 돌지 않았다면 그 원 안에서 천천히 돌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돌아오면 머리가 맑아질 것이다. 악순환이 클수록 문제는 더 복잡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사는 일도 모르고, 모든 일에 긴장하고, 긴장하면 불편하고, 불편하면 실수하고, 결정을 내릴 때도 실수하는데, 어리석은 것이 아닙니까? 오늘은 모두가 이것을 정리해야 합니다.
[질문] 14: 목사님, 제가 방언 기도할 때 항상 혀가 돌고 있습니다. 저는 혀가 마르지 않습니다. 제 혀는 매우 유연합니다. 방언 기도에 통일된 기준이 있습니까?
A: 아니요. 천천히 기도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것을 모든 것의 진실로 여기지 마십시오. 그것은 진실의 일부일 뿐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