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사도행전07장-진리를 말하는 자는 박해를 받는다

필기를 참고

1.관리하는 것은 반드시 사람 마음의 진실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진리 듣기를 싫어하나 진리는 좋게 들리지 아니하나 진리는 역사하느니라 진리는 사람을 세우느니라 교회를 세우려면 사람의 마음의 진리를 알아야 한다

2.사람들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은 항상 자신에게 문제가 있음을 느껴야 한다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이 실제로 가장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사람의 모든 문제는 뼈를 긁어내고 독을 풀어 치료해야 한다.

3.사람의 뼛속까지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사람은 뼛속까지 모든 것을 가지고 태어나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뼛속 깊이 생각하는 것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인간의 가장 깊은 인식은 가족과 지리의 제약에서 나오며, 인간은 타고난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너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너의 이해 속에서 끊임없이 조정해야 한다. 목이 곧은 백성이 되지 말라.

4.사울은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을 때도 기뻐했습니다.

사울은 가말리엘 밑에서 신학을 공부했지만 스데반의 설교를 모세의 율법을 어기는 것이라고 선입견 때문에 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5.교회가 또 같은 구덩이에 빠졌는지 항상 교회에 물어보십시오.

사람들이 보는 것은 종종 속고, 그들은 환상 속에서 살 수 없습니다.자신을 속이지 말고 특히 조심하십시오.

6.목이 곧고 사람이 되지 말라

뼈를 긁지 않고 독을 치료해도 소용없다 목이 곧고 사람은 반드시 다스리해야 한다.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사도행전 7장을 봅니다. 이 장은 스데반이 설교를 하고 설교를 마친 후 살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보아야 하며, 다른 사람들이 뭔가 잘못하고 있다고 모두 느낄 수는 없습니다. 사실 누가는 스데반의 설교를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다윗, 그리고 예수까지로 축약할 수 있었습니다. 루크가 스티븐의 살해 현장에 있었는지 여부를 확실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Luke가 만든 것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실제로 이 사건을 주제로 삼아 '진리를 말하는 자에 대한 박해'라는 주제를 표현했다.

오늘날 교회에 있든지 사업에 있든지 정부에 있든지 진리를 말하는 자는 핍박을 받는 것이 마치 일반이 된 것처럼 핍박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 속인의 이해 범위를 넘어선 일이 많다. 지난 장에서 우리는 교회의 경영이 이해의 관점에서 하나님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본성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나의 견해는 매우 부정적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나는 목양을 할 때 자연히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물론 소극적 이해에 따라 섬기거나 섬기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부정적이기 때문에 이 사람을 보면 더 실감이 난다.

사실 사람들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그 이스라엘 사람들과 거의 같습니다. 이리저리 묻고 답하다 보면 이 사람이 얼마나 독선적인지 알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선하다고 느꼈고, 조상 때에 살면 선지자들을 죽이지 않겠다고 예수님께 맹세하고 대신 예수님을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를 말하는 자가 박해를 받는 것이 인간의 본성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 관리하는 사람 마음의 진실을 알아야 한다

다른 것을 보지 않고 오늘날 이스라엘과 교회의 역사에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즉, 사람들이 자신이 틀렸다고 느끼면 그것은 마치 자신을 불쌍히 여기는 것인데, 이는 매우 아이러니합니다. 교회를 다스리는 문제에서 누가는 중요한 점을 강조했는데, 그것은 사람들이 선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바울도 그리 좋지 못하여 사울이라 불리던 그 때 스데반이 죽임을 당했을 때 매우 기뻐했습니다. 기뻐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오셔서 진리를 말씀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스데반은 진리를 말하고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던 무리가 실제로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는가? 교회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저는 인간의 본성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어떤 사람은 정말 나쁜 사람이 있어도 충분히 은혜를 베풀지만 결국 얻는 것은 슬픔입니다. 사실 오늘날 우리 가운데 이 사람들은 할 일이 없습니다. 갈등이 있으면 선과 악을 분별하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잘못된 것이 없는데 진실을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대제사장이 가로되 이것이 사실이냐?(사도행전 7:1)

예수님을 죽인 대제사장이 스데반에게 아직도 그런 일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하시니.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걸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사도행전 7:2-4)

그러나 여기서 발 불일만큼도 유업을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저와 저의 씨에게 소유를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씨가 다른 땅에 나그네 되리니 그 땅 사람이 종을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또 가라사대 종 삼는 나라를 내가 심판하리니 그 후에 저희가 나와서 이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하시고.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야곱이 우리 열 두 조상을 낳으니.(사도행전 7:5-8)

사실 누가는 스데반의 말을 녹음하기 위해 그렇게 긴 공간을 사용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인간 마음의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개념을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은 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는 것은 모두가 문제가 없다고 말했지만, 요셉에 관해서는 요셉이 진실을 말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조상들이 요셉을 애굽에 팔았다고 말했습니다. 마음이 얼마나 악한가,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들입니다. 십이사도든 십이지파든 지파가 그리 좋지 못하여 사람 마음의 진리는 한 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양떼를 칠 때 조심해야 합니다.

여러 조상이 여셉을 시기하여 애굽에 팔았더니 하나님이 저와 함께 계셔.그 모든 환난에서 건져내사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은총과 지혜를 주시매 바로가 저를 애굽과 자기 온 집의 치리자로 세웠느니라.그 땅에 흉년들어 큰 환난이 있을새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또 재차 보내매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알게 되고 또 요셉의 친족이 바로에게 드러나게 되니라.요셉이 보내어 그 부친 야곱과 온 친족 일흔 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자기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사도행전 7:9-15)

여기에 역사상 매우 추악한 사건이 있는데, 요셉은 아버지 야곱에게 다른 지파의 조상들 곧 요셉의 친형들이 행한 악한 일을 자주 고하여 밀고자가 되었더라. 모두가 작은 보고가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작은 보고서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교회 경영에 있어서 우리는 누구든지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진리를 말할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자기를 애굽에 팔아넘긴 것을 시기했지만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 형들은 요셉을 죽이고자 했으나 실패했고, 후에 요셉이 가족의 구원자가 되었습니다.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 부친의 집에서 석 달을 길리우더니.버리운 후에 바로의 딸이 가져다가 자가 아들로 기르매.모세가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워 그 말과 행사가 능하더라.나이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아볼 생각이 나더니.한 사람의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저는 그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빌어 구원하여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저희가 깨닫지 못하였더라.이튿날 이스라에 사람이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목시키려 하여 가로되너희는 형제하 어찌 서로 해하느냐 하니.그 동무를 해하는 사람이 모세를 밀뜨려 가로되 누가 너를 관원과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네가 어쩨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어라느냐 하니.(사도행전 7:20-28)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했고 하나님은 모세를 일으키셨습니다.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 태어난 모세는 40세에 우연히 이스라엘 사람이 애굽 사람에게 패하는 것을 보고 그 애굽 사람을 죽였습니다. 다음날 그는 거리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서로 괴롭히는 것을 보았고 모세는 그것을 돌보고 싶었습니다. 뜻밖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이집트인처럼 자기들을 죽이고 싶은지 모세에게 물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관리하기가 매우 어려웠다고 말해야 합니다. 나중에 모세는 강제로 도망쳤고, 8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나오라고 애굽으로 다시 보내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누가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와 재판관으로 삼았느냐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나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광야로 인도했습니다. 그러나 이 족장들은 듣지 아니하고 그들의 마음이 애굽으로 향하여

사실 스데반은 사람의 마음 속에 있는 진리가 이와 같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여기서 누가는 당시 베드로가 세운 교회의 문제점을 이야기하는데, 오늘날 세워진 교회와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교회를 세울 때 안 되겠다 싶었는데, 우리 교회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모셔오는 것이 특징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은 더 이상 여기서 장난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가십시오.

그 때에 저희가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사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하나님이 돌이키사 저희를 그 하늘의 군대 섬기는 일에 버려 두셨으니 이는 선지자의 책에 기혹된바 이스라엘의 집이여 사십년을 광야에서 너희가 희생과 제물을 내게 드린 일이 있었느냐?(사도행전 7:41-42)

몰록의 장막과 신 레판의 별을 받들었음이여 이것은 너희가 절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이로다 내가 너희를 바벨론 밖에 옮기리라 함과 같이니라.(사도행전 7:43)

그 결과 이스라엘 민족은 참으로 바벨론으로 옮겨갔고 그 후에 그 민족은 멸망했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물과 양식이 없었고 장막이 다윗의 통치에 이를 때까지 자기들의 배설물만 먹고 마셨으니 이는 삶은 가죽 띠보다 더 나빴음이라. 누가는 한 가지를 요약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은 손으로 지은 성전에 계시지 않습니다. 그 결과 이 사람들은 진리를 듣고 몹시 화가 나서 진리를 말하는 것이 달갑지 않았고, 예수님은 진리를 말씀하신 후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그것을 받아 하나님이 저희 앞에서 쫓아내신 이방인의 땅을 점령할 때에 여호수아와 함께 가지고 들어가서 다윗 때까지 이르니라.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도니.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집을 지었느닐하.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바.(사도행전 7:45-48)

주께서 가라사대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등상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짓겠으며 나의 안식할 처소가 어디뇨?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 함과 같으니라.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너희 조상들은 선지자 중에 누구를 핍박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저희가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너희가 천사의 전한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하니라.(사도행전 7:49-52)

사람들은 진리를 들었을 때 몹시 화를 냈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교회는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까? 나는 항상 진실을 말하지만 진실은 정말 좋지 않습니다. 내가 직접 목회하는 사람들에 대해 할 말이 있는데, 내가 무엇을 말하든 행동하든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하지만 내 잘못을 자극할 때가 되면 이 사람들 중 한두 명도 매우 부정적입니다. 내가 그들에게 그들의 문제에 대해 말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육신적이라면 그들은 이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세우려면 사람의 마음의 진실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성경 이외의 다른 경로를 통해 인간의 마음의 진리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예를 들어 상양은 사람의 에너지가 선한 일을 하도록 인도되지 않으면 악한 일과 구부러진 일을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1990년대 초반처럼 사람들은 돈을 벌 시간이 없었지만 싸우고 싸울 시간이 있었고 사람들은 종종 그것을 위해 죽었습니다. 한번은 내 여동생이 저기서 한 명이 더 죽었고 도시의 모든 사람들이 경찰 외에는 그 사실을 안다고 농담을 한 적이 있다.

2. 사람들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그것이 전체 문제의 핵심입니다. 사람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그것을 고칠 것입니다. 한번은 한 자매에게 먼저 이것을 해야 한다고 말하자 그녀는 즉시 물러났습니다. 읽고 나니 춥고 춥고, 나에게 아무리 은혜를 받아도 사실대로 말하면 끝이다. 그래서 제가 교회에서 목회하는 원칙은 매우 간단합니다. 즉,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바울에게서 배우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이 문제가 있다고 느끼지 않을 때, 나는 당신에게 무엇이든 말할 것입니다. 문제가 있다고 느끼면 괜찮습니다. 내가 나 자신에게 한 짓은 무례하지만 모두의 이익을 위해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실제로는 많은 문제가 있으며 그 중 어느 것도 쉽게 고칠 수 없습니다. 누군가 나를 "Liu Youli"라고 불렀고 그가 나에게 오기 전에 그는 매우 공격적이었고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말을 하다보면 자신이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고 사실은 자신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면 자신을 해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너를 해하는 상태에서 너를 구하고 싶고 네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너를 위한 것이다. 사실 나는 당신을 위해 진실을 말하지만 당신을 해치고 싶지 않아서 당신이 부당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내면의 논리를 재조정할 수 있습니까? 몸의 문제가 뼛조각으로 치료되지 않았다면 자신이 정말로 변했다고 믿을 수 없습니다. 무엇을 변경했으며 어떻게 변경했습니까? 그것은 특정한 상황에 직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지면 그 얼굴이 또 나온다. 당신이 그것을 다룰 때 당신은 이스라엘의 조상과 똑같은 "이를 갈"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온 길은 인생의 참된 묘사입니다. 그래서 항상 합리적으로 만들기 위해 평소에는 감히 말하지 않습니다. 모두를 일터로 인도하고 어떤 사람이 일을 잘 못하는 것을 보고 나서야 말하느니라 사실에 입각하여 한 말이니 꾸며낸 것이 아니라 너희가 정말 잘한 것이 아니니라.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일을 잘하고 싶은 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 잘하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무것도 공로가 없지만 열심히 일합니다. 바닥도 화장실도 청소가 안되어있으니 아무말도 하지말고 빨리 처리하세요.

내가 말하는 것들은 교회 건축의 핵심이고 누가가 말한 것은 기초입니다. 베드로가 데려온 사람들이 좋은 그룹이라고 생각합니까?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막 애굽을 떠날 때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을 때나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성전을 재건할 때나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에 따르면 천천히 기다리면 원숭이해까지 기다려야 한다? 사람들이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황금률입니다. 나는 종종 내가 옳지 않다는 것을 느끼고 무엇이 옳은지 생각하게 될 것이며 문제는 간단합니다. 매일 이 말을 하는데 입가 피부가 거의 닳아 없어질 것 같다. 말을 너무 많이 하면 성질이 올라오는데 그래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르쳐줘야 한다. 듣는 사람이 자신이 옳지 않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어떤 권리입니까? 쉽습니다. 사실 그런 결과를 얻고 싶었지만 너무 어려웠습니다. 사람들은 어리석고 일련의 거짓말을 믿습니다.

3. 사람의 뼛속까지 바꾸는 일은 쉽지 않다

"우리를 보려면 돼지를 잡고, 어미를 보려면 말을 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을 살 때는 망아지의 어미가 어떻게 생겼는지, 새끼 돼지를 잡을 때는 늙은 암퇘지의 상태를 봐야 한다. 또 목회자들에게 목양하는 사람들에게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목회자들은 산동, 동북, 북경, 천진이 있다고 대답하는데, 각 지역 사람들은 각자의 특징이 있습니다.

또 물어봐야 할 것은 양치기의 어머니는 어떻습니까? 어머니가 암에 걸렸다는 대답이라면 질문이 무엇인지 압니다. "돼지를 잡아서 펜을 보고, 말을 사서 어미를 본다"는 것이 황금률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의 어머니에게 그런 문제가 있다면 이 사람도 같은 문제를 겪을 것이다. , 그러나 그는 그것을 모른다. 그가 여전히 어머니의 문제를 종종 이해할 수 없다고 불평한다면 사실 그 자신도 어머니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뼛속에 있는 것은 타고난 것이고 모든 것이 당연하게 여겨진다.

얼마 전에 제가 가던 곳에 마작거리라는 거리가 있었는데 거기 있는 사람들이 다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었어요. 그들은 매일 마작을 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당연하고 진실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람들의 습관입니다. 사람의 뼛속에 있는 것은 바꾸기 어렵고 사람마다 방법이 있고 바꾸기도 어렵다. 여기에서 나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가 육적인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한 사람이 가지고 태어나는 것들은 그의 가족, 지리적 위치, 지역 문화에 의해 제한됩니다.

사실 인간은 타고난 것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람의 뼛속에는 "늙은 것을 보는 삼문"이라는 말이 있다. 일곱 살이나 스무 살이 되면 더 뚜렷하게 보이고, 서른 살이 되면 평생 이렇게 될 것이다. 삶. 성장과 자기수양이란? 그것은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사람, 사물, 신에 대한 인식을 지속적으로 조정해 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목이 뻣뻣한 백성인데, 오늘날 당신의 목은 얼마나 뻣뻣합니까? 기도할 때 여기저기 아프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다 목이 뻣뻣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떤 것은 아주 사악하다고 믿으며 자신이 과학을 공부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누가 그들에게 이런 말을 하였습니까? 원래 교양만 공부할 수 있는 사람들은 공부를 마치고 나면 교양을 공부하지 않는 사람들과 잘할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것은 대학에서 시간 낭비가 아닙니까? 마무리 후 한 번 더 얽힘.

오늘 우리는 적응을 시작해야 하고, 자라온 배경도 조심해야 하고, 우리 안에 숨겨진 것들도 조심해야 합니다.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브리서6:6)

뼈에 있는 것들은 쉽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뼈를 긁어내어 독을 치료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지속적으로 학습해 왔으며 사물에 대한 이해도는 새로운 버전으로 지속적으로 향상되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되고 타고난 논리 체계에 살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추측하는 것은 검토가 필요하며, 그렇기 때문에 당신이 믿는 것이 옳은지 목회자에게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목사님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시면 조정 방법을 찾으십시오. 누군가가 당신의 돈을 훔친다면 그들이 정말로 당신에게 연금을 줄까요? 상상해보세요. 그들이 당신에게 연금을 줄 것이라고 정말로 생각한다면 그것을 잊으라고 조언합니다. 사람들에게는 그런 어리석은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중국의 운명신학이 해야 할 한 가지는 끊임없는 조정과 가르침과 관리를 통해 모든 사람이 무지에서 벗어나 현명한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해력으로 하나님을 완전히 알 수 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운명이 없으면 복을 받을 수 없다 복을 받고 싶으면 손에 든 작은 돈을 의지하지 말라 돈을 A에게 주는 사람은 끝이다.

모든 사람이 선천적으로 옳고 타고난 것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이것이 교회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교회를 세우려면 우리 육체의 악한 정욕과 정욕을 죽이는 하나님의 영을 의지해야 합니다.

4. 사울은 진실을 말했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을 때도 기뻐했습니다.

사울 자신도 가말리엘 밑에서 신학을 공부했지만 스데반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스데반이 한 말은 다 이스라엘 백성이 아는 역사인데 왜 듣지 않았습니까? 사울은 이미 그들이 모세 대신에 예수님을 전하기 때문에 모세의 율법을 범하는 것이라고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사울, 나중에는 바울도 이런 종류의 신화 속에서 살았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진실을 말하지만 그들은 스데반이 말한 것이 매우 피비린내 나는 것을 느끼고 모두 스데반에게 돌을 던지고 마침내 돌이 쌓여 스데반의 무덤이됩니다.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성 밖에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앞에 두니라.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부릎을 끓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사도행전 7:51-60)

5. 교회가 또 같은 구덩이에 빠졌는지 항상 교회에 물어보십시오.

지난 2,000년 교회의 역사는 진리를 듣지 못하도록 조작되어 스스로를 속였습니다. 심지어 가말리엘 휘하의 학자였던 사울도 그렇게 했습니다. 자신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도 천사를 숭배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입소문을 타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따라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성령. 그래서 우리는 항상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교회가 다시 같은 구덩이에 빠지고 있습니까? 하루 종일 걱정하고, 언젠가는 내가 너무 좋다고 느끼고, 혼자서 많은 일을 한 후에 독선적으로 시작하여 완전히 망가지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를 경영하려면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나중에 사울이 이름을 바울로 고쳤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유익한 것은 무엇이든지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나 꺼림이 없이 너희에게 전하여 가르치고.(사도행전 20:20)

바울은 뼈를 긁어 독을 치료한 후에 완전히 달라졌는데, 하나님께서 그의 눈에 빛을 비추어 볼 수 없게 하셨습니다. 나중에 누군가 그를 인도하여 기도하게 했고 그의 눈에는 많은 물고기 같은 비늘이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의 눈은 종종 속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목회자들은 더 이상 거짓과 환상 속에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꼭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교회는 다시 같은 구덩이에 빠지게 될까요? 대답은 '예'입니다! 교회의 상황을 보면 사람들이 진리 듣기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때때로 사람들은 매우 흥미롭고 문이 짧고 넓기 때문에 잘 생기지 않는다고 불평하지만 사람이 짧고 넓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까마귀가 검고 더럽고 못생겼다고 하지만 그 옆에 있는 검은 피부의 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까마귀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있는 것들의 독이 매우 깊어서 계속해서 "예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나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어떤 사랑입니까? 그에게 백 위안을 빌려달라고 하면 그것이 진정한 사랑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목자들은 목자들처럼 되어야 하고, 목양을 받는 자들은 굳은 대신에 강하고, 딱딱한 대신에 강하고 용감하여 우리 마음이 땅콩 같고 우리 머리가 호두 같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날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영원한 영광이 가득한 이 하늘 길을 걷는 것은 뼈를 긁어 독을 치료하고 자신을 처리해야 합니다. 당신의 엄마가 까다로운 사람이라면 아마 당신도 거의 같을 것입니다. 자신을 새롭게 인식하고 마음속의 진리를 알고 싶다면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달려야 합니다.

6. 목이 곧고 사람이 되지 말라

시내산에서 말하던 그 천사와 및 우리 조상들과 함께 광야 교회에 있었고 또 생명의 도를 받아 우리에게 주던 자가 이 사람이라.우리 조상들이 모새에게 복종치 아니하고자하여 거절하며 그 마음이 도리어 애굽으로 행하여.아론더러 이르되 우리를 인도할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애굽 땅에서 우리를 인도하던 이 모세는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하고.그 때에 저희가 송아지를 만들어 그 우상 앞에 제자하며 자기 손으로 만든 것을 기뻐하더니.(사도행전 7:38-41)

사람이 송아지를 만들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다고 했습니다. 이름은 같지만 본질은 다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싫증이 나서 광야에서 그들을 죽였습니다. 목이 뻣뻣한 길은 갈 수 없다 사람의 타고난 논리는 뼈를 깎아내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느니라 성령의 불로 태워야 하느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인 자녀만이 왼쪽. . 우리 목이 곧은 사람들은 오늘 적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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