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사도행전04장-행한 기적로 영광과 하나님께

필기를 참고

1.한 편, 한 편의 설교, 5천 명이 주를 믿는다

사도가 한 말씀을 하였더니 오천명이 주를 믿으니 이는 성령이 주신 믿음이라신념은 사람의 선택이다. 신이 주신 신념을 추구하는 것은 신념을 선택하는 것보다 못하다.
우리 안에 견지하는 믿음이 있는가, 이 믿음이야말로 성경의 믿음이다.5천 명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주를 믿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신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2.피터 존의 담력

피터 요한이 성령으로 충만하면 성령이 주신 믿음이 있고 그들은 배짱이 있어 영광과 하나님께 돌아간다.성령이 충만한 것은 효과가 있는 것이니 성령이 충만해야 할 뿐만 아니라 깨달음도 하나님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성령이 충만한 후에 이적과 기사가 있었고 피터 존은 배짱이 생겼지만 교회를 지을 마음이 부족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짓는 것이다.

3.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사람의 구원과 오천명의 믿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도다.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 단계에 머물지 말고 열심히 추구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놓아 드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4..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할 능력이 크다

사도 베드로는 큰 믿음과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산을 팔아 개인에게 나누어 주지만 아직도 깨달음에 있어서 신을 알아야 한다.

5.믿는 많은 사람들이 한마음 한뜻이다

믿는 많은 사람들이 전심전력으로 모두의 밭을 나누어 먹고 마시며 예수가 오시기를 기다렸다가 교회를 망쳤다.
모든 사람은 한마음 한뜻으로 이기적이다.모두 자신을 고려한다.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야만 인간의 육체적 문제에 대처하고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사도행전 4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제가 사도행전을 처음 찾아볼 때부터 사도 베드로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사실 저는 상당히 객관적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 베드로가 옳은 일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는 몇 가지 옳은 일을 했습니다. 이 사람이 헛된 일을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5,000 년 동안 지구상에서 헛된 일을 한 사람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장의 주제는 '당신이 행하신 놀라운 일로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제가 수년 동안 교회에서 가장 자주 들었던 문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입니다. 우리 모두 이 문구에 익숙해졌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이후 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한 목회자가 개인적으로 교회를 개척했을 때에도 그는 기적적인 일들을 해냈고 교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집사들과 전도사들조차도 싸워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 일들이 많이 보였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저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기이한 일을 행하신 하나님께 영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이것은 정말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1.오천 명의 회심에 관한 설교

저는 오래 전에 교회의 번영을 매우 부러워했습니다. 오늘 제 설교를 고양이 두세 마리만 듣고 있다면 그다지 흥미롭지 않을 것입니다. 예전에는 한 번의 설교로 5,000명이 회심하는 것이 제게 큰 영향을 미쳤는데, 설교를 거듭해도 단 한 명도 회심하지 못하니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선한 일을 행하고 제가 행한 모든 기적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부르짖었지만 여전히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그 이유를 찾아보니 하나님과 성령께서 제게 주신 믿음이 없었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저는 성령께서 주신 믿음에 대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러다 그 믿음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에 의지합니다. 설교를 하고 5,000명이 주님을 믿게 할 수 있는 믿음을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적이 없다고 불평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잖아요?

그때 우울증 환자를 받았는데 3일 연속 기도를 했는데도 효과가 없을 뿐 아니라 우울증이 더 심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나는 왜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없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성령의 믿음이 주어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데 얼마나 좋습니까! 제가 함께 일했던 교회 개척자 중 한 사람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성령께서 그에게 임하시고 믿음을 주셨을 때 그의 머리카락이 일어섰습니다. 그의 머리카락이 더 길어지고 일어서면 마치 전기가 충전 된 것처럼 머리카락이 폭발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그가 기도했을 때 치료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문제는 머리카락이 거의 서지 않고 때로는 서고 때로는 서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달과 별을 바라보며 그의 머리카락이 일어서기를 기다렸지만 서서히 흥미를 잃었고, 제가 일어서라고 했을 때 머리카락이 일어서지 않는 것은 제가 완전히 통제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성령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왜 예수님은 믿음이 없거나 믿음이 적다고 우리를 비판하셨을까요? 예수님이 말씀하신 믿음은 우리가 우리 안에 심어주기로 선택한 믿음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베푸시는 믿음은 기적이 일어나고, 병자가 고침을 받는 등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베푸시는 믿음이며, 우리는 그것을 떨쳐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믿음은 선택입니다. 교회를 시작했을 때 찬물 한 바가지를 머리에 부어주곤 했는데, 그때는 정말 마음이 추웠습니다. 하지만 제 안에는 보통 사람들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성품이 있었어요. 저는 저에게 찬물을 부은 사람이 제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전혀 받지 않았고, 순전히 제 열정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말한 것을 믿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시지 않으셨더라도 저는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셨기 때문에 그분을 섬깁니다. 저는 하나님을 섬겨야 하고,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까지 인내해야 합니다.

교회에는 하나님이 주신 그런 믿음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가득하지만, 제가 인내한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에 제가 설교를 해도 아무도 주님을 믿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나중에 제 설교를 듣고 5,000명이 회심하는 것을 보았는데, 실제로 비디오로 보았지만 그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생각해 보세요. 부오니콘은 아프리카에서 설교를 하고 있었는데, 아프리카에 기독교인 비율이 매우 높은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나라에 사기꾼이 가장 많은데도 모두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더군요. 포도를 못 먹는다는 말은 아니지만, 한 번의 설교로 5천 명이 예수를 믿게 된 일은 저에게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오늘날까지 수천 명, 심지어 50만 명, 500만 명이 한 번의 설교로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 결과는 좋지 않았다는 것을 자세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때 하나님께 소리치고 기뻐하며 영광을 돌리겠다고 서원했던 사람들도 그다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 번의 설교로 오천 명이 회심했다는 것은 분명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지만, 뭔가 빠진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을 선택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귀한 사람은 인격이 있는 사람, 저와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자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돌을 던질 것입니다.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저는 여전히 진실을 말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인내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며,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물러서지 않습니까? 이집트로 팔려가거나 감옥에 갇히게 된다면 이집트의 노예와 죄수들을 견뎌낼 수 있을까요? 그리고 최고의 노예가 되고 최고의 죄수가 되어도 여전히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까요? 그런 믿음이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믿음이고,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도착해서 기근이 들었을 때 가졌던 믿음이고,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에서 내게 주신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보시기에 귀한 사람입니다!

저는 아주 어렸을 때 하나님 앞에 보배가 되고 싶다고 기도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설교하는 중국 안수 신학은 5,000명이 회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설교가 아닙니다. 제가 추구하는 것은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모두가 더 이상 신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웹사이트에서 언제 제자훈련을 할 것인지 묻는 댓글을 보았습니다. 그 댓글을 보고 8월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행사를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예수님은 신자를 요구하지 않으셨고 제자를 요구하셨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읽어보고 좋다고 생각하세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거든요. 그것은 마치 금을 캐려고 금이 들어 있는 광석을 집안에 잔뜩 쌓아놓고도 그 안에 가치 있는 금이 몇 조각 밖에 없는 것과 같습니다. 금광석을 원하는 건가요, 아니면 금을 원하는 건가요? 금광석은 쓸모가 없고 금이 쓸모가 있습니다. 5,000명은 광석과 같았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했지만 한 가지를 잊었고,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오늘날까지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5,000명의 회심에 관한 설교를 전했습니다. 하지만 그 5천 명 중에서 제자를 택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비전은 거룩하고, 연합되고, 영광스럽고, 진실하고, 승리하는 용사들로 구성된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엘리트 군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진정으로 구별된 제자입니다. 안타깝게도 요즘은 제쳐둘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저는 여전히 끊임없이 보물을 뽑고 있습니다.

2. 베드로와 요한의 담대함

베드로와 요한에게 용기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체포되었을 때 그들은 감옥에서 밤을 보냈습니다. 다음 날 대제사장들은 한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베드로와 요한을 심문하기 시작했고, 그들이 어떤 권능으로 누구에 의해 이런 일을 했는지 묻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성령으로 충만해진 베드로는 용기를 내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고, 심문 앞에서 솔직하게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렉산더와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참여하여。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묻되 너희가 무슨권세와 뉘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너희와 모든 이스라엘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고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섰느니라!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되었느니라.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6-12)

이때 베드로가 말한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며, 실제로 성령께서 그들을 통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안의 선택, 우리의 성품과 믿음이 여전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보면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사람들은 담대한 사람이 됩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실제로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자주 받기를 바랍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읽을 뿐만 아니라 성령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이해로 기도하는 것을 대신할 수 없으며, 이해로 기도하는 것이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을 대신할 수도 없습니다. 방언 기도가 깨달음을 얻는 데 유익하지 않기 때문에 방언 기도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잘 읽는 것뿐만 아니라 성령으로 충만해야 하고, 방언뿐만 아니라 이해로 기도해야 하며,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하고, 이해가 충만하여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당시 베드로와 요한이 가진 담대함은 사람들이 볼 수 있을 정도로 대단했습니다. 만약 그들이 끝까지 담대함을 지켰다면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을 그토록 필요로 하지 않으셨을 것이고, 사도 베드로를 통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는 사도 바울의 서신이 아니라 사도 베드로의 서신을 읽고 있을 것입니다. 베드로가 성령으로 충만했다는 사실은 분명 담대함을 가져다줍니다.

주여 !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하여주옵시며.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하옵소서' 하더라.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사도행전 4:29-31)

성령 충만은 기적적인 결과를 동반하며, 성령 충만은 시작에 불과하며 표적과 기사에 너무 흥분하지 않는 것이 정상이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저는 사도행전 3장에서 표적과 기사의 역할을 축소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표적과 기사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며,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표적과 기사는 여전히 전파된 말씀의 기초를 증거하지만 매우 원초적인 수준에서 이루어집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담대하게 설교할 수 있었지만 교회를 세우려는 마음은 부족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설교를 통해 5,000명이 회심했다는 인식을 갖게 되면, 설교자는 자신이 모든 일을 제대로 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말하는 모든 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대담함을 갖는 순간, 그 사람은 망가집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기 위함입니다. 마음속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믿음의 선택이라 할지라도 입으로는 하나님께 영광을 외치는 것과 마음으로는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중국에서 기사와 이적을 행하며 마을마다 교회가 많이 생겨났지만, 교회가 황폐해지고 그 결과도 좋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이 역사를 목격하신 분들이 계시리라 확신하며, 그 좋지 않은 결과는 제 말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이 세상에 부족한 것은 하나님을 충만한 마음으로 아는 깨달음, 기독교 진리의 처음에 머물지 못하는 것, 그것이 문제입니다. 엄격한 학문적 훈련을받은 사람들을 "학자"라고 부르며 하나씩 정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엄격한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과는 다릅니다. 저는 단 한 번의 설교로 5,000명이 그리스도께 나아오게 한 적은 없지만, 그런 일이 있었다면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적과 기사가 있었고 모두가 치유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도의 진리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누군가가 치유되거나 첫 번째 기도에서 누군가가 회심했다고 해서 흥분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저는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고 싶습니다. 길거리에서 기도로 결신하는 사람들에 대해 흥분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제가 설교를 하고 5,000명이 그리스도께 나아오더라도 그 5,000명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많은 금을 걸러낼 수 있을까요? 갑자기 머리가 깨지고 회심을 외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저는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나중에 처리해야 할 엄청난 양의 살이 있는데, 사람의 살을 다루지 않으면 문제가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잘못을 저지르도록 일을 주선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예를 들어, 당신이 사역에 참석하고 마지막 반의 작은 반장이 잘 어울리지 않는다면, 그는 말도 안되는 말을 할뿐만 아니라 당신을 고쳐주고 선과 악을 식별합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선생님은 사람들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괜찮아요, 우리는 시험을 견디고 하나님 보시기에 귀한 존재예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잘하지 못하는 반장을 가장 좋아하지만, 그렇지 않은 반장을 제외하고는 여전히 성장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역을 하다가 매를 맞았는데, 매를 맞고 나서야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았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살이 닿기만 해도 이빨을 드러내고 짐승 같은 본성이 순식간에 드러납니다.

3.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사도행전 4:12)

베드로가 구원의 길을 정말로 이해했는지, 아니면 구원의 길에 대한 그의 개념이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논쟁할 방법이 없습니다.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말은 정상적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말은 실제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라는 것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 모든 일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머리카락이 통째로 서고, 기적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치유되고,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나요? 어떤 사람들은 제게 묻습니다."사람들이 치유되는 것이 제 이름 때문입니까?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 지내셨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뿐만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사는 믿음이 우리에게 있느냐가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소경이 보고, 앉은뱅이가 걷고, 문둥병자가 깨끗해지고, 죽은 자가 살아납니다. "그래서 뭐"라는 대답만 듣고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그것은 파멸입니다. 우울증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 손을 통해 치유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장사되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일이 없었다면 저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어떻게 나 자신을 치유하는 능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오늘 병이 낫지 않아도 내일은 낫는다는 것을 압니다. 이번 주에 치유되지 않으면 다음 주에 치유될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믿음입니다. 표적과 기사가 행해지는 것을 보고 내가 결단을 내릴 때, 그것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루어집니다. 소 왓에서 멈추지 않고 온 마음과 힘을 다해 그것을 추구하기로 선택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소중합니다. 이제부터는 주여, 구호를 외치는 흥분 속에 있지 않습니다! 주님을 위해 죽겠습니다. 오히려 나는 하나님을 위해 태어났고, 하나님을 위해 이 땅에 왔으며, 하나님을 위해 살고 있고, 하나님을 위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매일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오늘 내가 그분을 만나기를 원하신다면 내일까지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참으로 영광스러운 이름입니다. 오늘 제가 귀신을 쫓아내고 포로와 억눌린 사람들을 놓아주는 것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고 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제 동료들도 제가 섬기는 하나님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분인지, 정말 멋지다는 매우 중요하고 충격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의 하나님을 가질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을 무슨 일이 있어도 가질 것입니다. 오 하나님! 주께서도 저를 가지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모든 무릎을 꿇고 모든 혀로 찬송하리라. 모든 기적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해집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두려워하지 말고 한두 가지 기적에 흥분하지 말고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 된 것을 기뻐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셔서 일을 하셨다는 것을 마음속 깊이 알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분께 헌신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더욱더 그렇게 하지 않겠습니까? 저와 함께 성경 공부를 하다 보면 저에게는 온 힘을 다해 그것을 추구한다는 개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저는 5,000명의 개종자 수에서 멈추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위대한 일을 해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지도 않고 흥분하지도 않습니다. 대신, 저는 어떻게 하면 이 5천 명 모두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고, 그들 모두의 육체의 악을 치료하기 위해 계속해서 하나님께 의지할 수 있을지 알고 싶습니다.

4. 사도들은 권능이 있어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합니다.

사도들이 큰권능으로 주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은혜를 얻어.(사도행전 4:33)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적이 일어났으며,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강력한 증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증거는 시작에 불과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본받는 것은 십자가에서의 죽음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걷는 길은 우리의 육신이 온전히 십자가에 못 박히는 그날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이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하나님께서 태초에 우리를 창조하신 영광스러운 형상으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 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줄도 알고.또 병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섰는것을 보고 힐난할 말이없는 라.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하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 ? 저희로인 하여 유명한 표적 나타난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저희를 위협하여 이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말게 하자' 하고.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하니.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 가판단하라.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관원들이 백성을 인하여 저희를 어떻게 벌할도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러라.(사도행전 4:13-21)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을 힘 있게 증거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사도 베드로는 믿음이 있는 자에게는 표적과 기사가 따르기 때문에 큰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제 인내하는 믿음, 소망, 사랑이 있으며 사랑은 무엇보다도 가장 큽니다. 믿음이나 소망에서 멈추지 말고 가장 높은 수준 인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수준에 들어가기 시작하십시오. 사도는 힘이 있고 무언가를 하는 것에 대해 기분이 좋습니다. 그가 흥분하자마자 그의 믿음은 상승했습니다. 그러자 성령이 내려오셔서 성령으로 충만해졌고, 나중에 베드로는 용기를 내어 기억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체포되어 더 이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할 수 없도록 강의를 받았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대제사장들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해야 한다고 말했고, 대제사장들을 "싫어"했습니다. 그들이 돌아와서 형제 자매들에게 말했을 때 그들은 베드로가 너무 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 저는 사람들이 흥분하고 모든 일을 제대로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고 완전히 망가진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하면서 자신이 너무 능력이 있어서 위대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때 그는 너무 믿을 수없는 일을해서 오늘날까지 그것을 시도하는 사람은 아무도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즉,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과 집을 팔아 필요에 따라 모든 사람에게 돈을주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현대 소련이 결국 붕괴 된 것처럼 결국 그것은 잘 풀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믿음과 이해가 모두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5. 믿는 많은 사람은 한 마음과 한 뜻입니다.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류에게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고하니.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 대주재여 !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이시요.(사도행전 4:23-24).

주여 !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 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사도행전 4:29-31)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 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있는 자는 팔아 그 판것의 값을 가져다가.사도들을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사도행전 4:32-35)

믿는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과 한 뜻이었고 당시 누가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누가가 살던 당시에도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입을 통해 전해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경험한 역사를 통해 믿는 사람들도 한 마음과 한 뜻으로 믿을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고린도 교회에 갔을 때 3050명, 많아야 100200명밖에 없는 것을 보고는 매우 흥미가 없어 보였습니다. 바울이 설교를 하고 5,000명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믿고 영광을 돌렸으니 바울이 옳은 일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 당시에는 민중 공동체가 있었지만 황폐해지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왜 황폐화되고 반성하지 않았을까요? 그 당시 믿었던 많은 사람들이 한마음인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모두 한마음으로 남의 땅을 사서 거기서 뒤엉켜 있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는 것일까요? 2천 년이 지났지만 예수님은 오시지 않으셨고, 오늘날까지도 그들은 종말이 가까웠다고 홍보하고 가족 재산을 서둘러 팔아 모든 기독교인을 멍청하게 속이면서 여전히 이런 일을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이 저를 찾아와서 자기네 교회는 집과 모든 것을 팔고 모든 돈을 기부하며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기다린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한마음이 아니었다면 교회가 나중에 말라 버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평화와 기쁨, 하나님의 마음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정말 하나님의 마음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한 마음과 한 마음을 갖는 것, 즉 한 마음이라고도하는 것과 모든 사람이 같은 마음을 갖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이기적이고 절대적으로 한마음으로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오셔서 이스라엘 백성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땅을 주시고 대대로 물려주신 것은 정말 옳은 일입니다. 태초 이래로 아무도 이기심의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하지 못했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됨으로써 인간의 육신의 문제가 단번에 해결되었습니다. 즉, 육체를 다루는 것이 핵심이며 교회의 핵심 목회는 육체를 다루는 것입니다. 육을 다스리고 나면 이기적인 마음이 언제 다시 살아날지 모르기 때문에 무섭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온갖 문제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우리가 오늘날에도 여전히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우리는 아직 그것을 다루지 않고 있으며 사람들은 내 것이 당신의 것이기도하고 당신의 것도 내 것이라는 것을 알아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직 아무도 육체를 다루는 데 성공하지 못했지만 개혁과 개방은 사람들의 이기심과 사유 재산의 신성함을 이용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합니다.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당신의 사업이며, 그것이 끝나면 다른 누군가가 돈을 받고 극소수의 사람들이 그것을 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면 이러한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심지어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제자도 있을 수 있으며, 매일 다른 사람에게 나눌 때 내면에서 상처를 받는 제자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몫이 아닌 다른 사람의 몫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돈을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그것은 사회 복지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오늘날 우리는 게으름을 피하고 하루 종일 먹고 마시는 것을 피하고 게으름에 구체적으로 대처하도록 훈련하도록 가르칩니다. 음식을 가지고 즐겁고 정직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를 창출 할 수있는 사람으로서 가치를 창출 할 수있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을 대해야합니다. 구원이나 구원의 개념이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이라면, 그것이 살아있는 우리에게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까요? 한 기독교인은 죽기 전에 회개해야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 그런 기독교인을 본 적이 있지 않나요? 그들은 죄 가운데 살다가 죽기 전에 회개하여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는 중국의 구원의 개념이 우리가 사는 동안 신과 여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사는 것임을 알아야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 수 있을까요? 창세기를 읽고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것을 안다면 창조주 하나님의 형상대로 살 수 있을까요? 제가 가장 게으른 일은 환자가 죽기 전에 세례를 주는 것인데, 죽으면 천국에 간다는 논리적인 체계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제가 너무 잘나서 환자가 죽으면 천국에 가도록 기도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환자가 죽어가는 것을 보고 저에게 기도해 달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렇게 강력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소유물을 잘 관리하고 올바른 일을 제대로하는 법을 배워야하며, 올바른 일을하지 않으면 먹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로마서 14:17)

일하지 않고 옳은 일을 하지 않으면 먹지 못할 것이며, 이는 다음 구절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있는 자는 팔아 그 판것의 값을 가져다가.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줌이러라.(사도행전 4:34-35)

가난한 사람들은 잘 살았지만 부자들은 대가족을 먹여 살리기에는 운이 나빴다고요? 이후의 어떤 시대가 이런 종류의 대가족과 공산주의에 의존하려고하고 사람들의 이기심을 해결하지 못하면 모든 것이 헛된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우리가 앞에서 옳은 일을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우리가 잘못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점차적으로 그들은 설교하면서 사람들을 치유하고 해방시킬 용기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사도는 큰 권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귀가 와서 교회를 느슨하게하기 위해 약간의 계략을 세웠고 많은 문제가있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베드로가하는 일을 보지 못하고 교회를 핍박하기 위해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일으켰습니다. 교회는 찢겨져 안디옥, 로마, 고린도로 도망갔고 바울은 여러 곳에 교회를 개척했고, 그 교회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경험을 통해 배웠습니다. 우리도 예루살렘 교회가 걸어온 길을 통해 교훈을 얻게 된 것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한 가지를 옳았다고 해서 모든 것을 옳았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남편이 한 가지 잘못했다고 말하자 분노로 반응하는 자매가 있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녀는 옳은 일을했지만 한 가지를 옳게하는 것은 다른 일을 잘못하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오늘날까지 이런 상태로 살아가는 많은 형제 자매들이 있는데, 그들은 다른 일을 옳았다고 말할 때 자신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옳은 일을 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베드로는 많은 일을 옳게했는데, 즉 자신의 재산을 팔아 각자에게 필요한만큼 주었고 모든 사람이 아무것도하지 않게했고 결국 교회는"황색"이되었습니다. 육체를 다루지 않고, 목양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문제를 철저히 해결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많은 교훈을 배웠고 중국 안수 신학을 확립했으며 이것이 우리가 이렇게 된 방법입니다. 저는 우리가 점차 우리의 신념 체계에서 이러한 부조리를 제거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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