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사무엘하03장- 이 죄는 나와 내 나라는 여호와 앞에 영원.히 무죄하니

필기를 참고

1.서론

하나님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죄에 대해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시며 땅은 저주를 받습니다. 다윗은 죄의 결과를 이해하고 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습니다. 죄를 짓는 모든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선과 악을 분별하지 못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저주를 받아 강해질 수 없습니다.

1.다윗은 집의 점점 강하여가고

다윗은 헤브론에서 왕이 되어 유다 지파를 이끌었고, 유다 지파는 강성해졌습니다. 핵심은 다윗이 죄에 대해 깊이 알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방법을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요압 원수에게 무력으로 공격하라고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공격하면 많은 사람이 죽고 피를 흘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죄에 대해 매우 분명했고, 왕좌보다 하나님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람이 강해지고 싶다면 무엇보다 하나님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사울의 원수 다니엘은 요압에게 죽임을 당했지만 그 죄는 다윗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바쁜 것은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곳에 시간을 빼앗기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위한 시간을 갖지 못하는 것은 큰 손실입니다.
하나님은 일부다처제에 관심이 없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사랑한 미갈을 되찾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사람이 소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다윗이 한 모든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고, 다윗이 유다의 왕들과 11지파를 평화롭게 연합시켰기 때문에 하나님은 다윗이 행한 일을 축복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보셋은 항상 전쟁 중이었는데, 다윗은 자신의 왕좌보다 하나님을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사람들은 큰 것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참깨와 강낭콩, 닭 깃털을 보고 싶어하지만 강해지기는 어렵습니다. 사람들은 바쁘고 마음이 혼란 스럽기 때문에 우선 순위가 바로 잡히면 바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핵심 이익을 추구하지 말고 다윗의 모범을 따라 하나님을 핵심 이익으로 삼아야 합니다. 돈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조심해야 합니다, 그들은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2.사울의 집은 날로 쇠퇴했습니다.

이스보셋은 군대를 거느린 왕으로서 무능했고, 다니엘의 후궁 르호봇의 눈치만 살피고 국가 건설에는 관심이 없어 나라가 쇠퇴했습니다. 사람이 큰 일을 관리하지 못하고 작은 일에 신경 쓰지 않으면 모든 것이 거꾸로됩니하나님의 큰 진리에는 관심이 없고 작은 진리만 중시하여 바리새인이 된 사람은 인생의 초점을 잡지 못하여 망합니다.
사람이 우선순위를 파악하지 못하면 바쁘고 혼란스러워지며 그것이 멸망의 길입니다. 맹목적으로 일하면 맹목적으로 일하면서도 여전히 자신의 지위를 소중히 여기는 이스보셋처럼 쉽게 약해집니다.
번영의 길을 걷는 방법? 사람의 것을 보지 말고 하나님이 보시는 것을 보십시오.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이 세상에 잘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왕국을 주실 수 있었지만, 다윗이 왕좌에 관심이 있는지 시험하셨고, 끊임없는 시험 끝에 다윗에게 왕국을 주셨습니다.

3.하나님은 다윗에게 왕국을 주실 것입니다.

이스보셋은 첩들 때문에 벧엘과 갈등을 겪었고, 벧엘은 진노하여 다윗을 도왔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확장을 통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다윗을 본받아야 하며, 사소한 일을 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피를 흘리지 않고 다윗에게 왕국을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무력으로 취하지 말고 지혜롭고 총명하며 관대하게 사업을 진행해야 했고, 부하들은 다윗을 두려워했습니다.
요압과 그 뒤에 있던 귀신들은 벧엘이 다윗에게 복종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벧엘은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그 결과 요압에 의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귀신들은 다윗이 이스라엘 민족을 다스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귀신들은 다윗의 명성을 타락시키고 싶어 했습니다. 다윗은 이 죄는 나와 내 왕국에게 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 후 요압의 후손들은 온갖 저주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왕국을 주려고 하셨고 악귀들은 왕국을 멸망시킬 방법을 찾았습니다.
지혜와 마음과 결단력이 없는 사람은 요압처럼 아니엘을 두려워한 이스보셋처럼 될 것입니다.

4.모든 백성이 다윗이 한 모든 일을 기뻐하였다.

죄에 대한 사람의 태도는 매우 중요한데, 다윗과 백성들은 아니엘을 위해 애통했습니다. 목회자도 다윗과 같은 죄에 대한 태도를 가지면 형통할 것입니다.
목자는 다윗의 본을 따라 죄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있어야 하는데, 다윗은 죄에 대해 분명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다윗을 따르고 번영하여 강력한 왕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요압과 그의 후손들은 저주를 받았습니다.
누구도 요압이 한 것처럼 자신의 유익을 위해 행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요압을 죽이고 싶었지만, 자신이 원수이며 왕으로서 여전히 연약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십시오. 불행히도 다윗은 요압의 생명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5.결론

다윗은 그 죄가 자신의 죄가 아니며 하나님의 나라가 계속 강해지기를 원한다는 것을 분명히 했습니다.

서론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사무엘하 3장을 살펴볼 것입니다. 이 장의 주제는 "이 죄는 내 것이 아니요 내 왕국의 것이 아닙니다! . 왜 여기 있을까요? 아직도 기억하시겠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피 흘림을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왔을 때 하나님은 그와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누구든지 사람의 피를 흘리면 하나님은 그 죄를 아비에서 아들로, 삼사 대까지 추적하실 것입니다."

사람의 피를 흘리는 것은 매우 치명적인 일이며, 어떤 장소에서 종종 잘못이 있고 사람의 피를 자주 흘리면 죄는 그 장소에 저주를 가져오고 그 장소는 점점 더 나빠질 것입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하나님께서 무고한 피를 흘리는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다윗 시대에는 다윗이 죄의 영향을 잘 이해하고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였습니다. 죄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곤경에 처해 있으며, 죄는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죄를 지으면 평소와 같이 저주를받습니다. 사람이 선악을 식별하는 열매를 먹으면 같은 방식으로 저주를받습니다.

어제 저는 갑자기 감기에 걸려 온몸이 아픈 한 자매를 돌보았습니다. 그는 저에게 기도하러 왔는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또 콧물이 나고 콧물이 났어요. 사실 그 자매는 전에 새로운 크라운 백신을 맞았을 때 거의 죽을 뻔한 상태였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주사를 맞고도 괜찮았는데, 그녀는 주사를 맞은 후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목회 지도자와 저는 그녀를 돌보며 백신의 부작용에서 벗어나게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요? 그것은 사실 인간의 죄에 대한 태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아담과 이브 시대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죽을 수밖에 없었으므로 오늘날에도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죽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장에서 저는 "이 죄는 나와 내 왕국의 죄가 아닙니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다윗에 대해 공부를 시작해야 합니다.

다윗은 놀랍게도 보통 사람보다 죄를 훨씬 더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은 오늘 강해지고 싶습니까? 썩어지고 싶으신가요? 시간을 내어 여러분 안에 있는 죄에 대한 태도를 이해해 보세요. 우리는 왜 형제자매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라고 종종 격려하나요?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돈과 세상을 사랑하면 한순간에 죄의 지배를 받게 되고 강해지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강하다 해도 저주 가운데서 강할 뿐입니다.

오늘의 제목은 "이 죄는 나와 내 나라의 것이 되지 못하리라!"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죄는 주님 앞에서 나와 내 나라에 오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당신과 당신의 나라에 온다면 그것은 사형선고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비극적 일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며 모든 사람은 거룩해지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어떻게 거룩해질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1. 다윗의 집은 점점 더 강성해졌습니다.

다윗은 유다 지파 출신이었기 때문에 헤브론에서 왕으로 유다 지파를 이끌었습니다. 다윗의 집안이 강성해지고 유다 지파의 힘이 커질 수 있었던 비결은 다윗이 죄에 대해 깊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장에서 사랑과 정직으로 백성을 대했던 다윗 왕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 흥미롭습니다. 다윗이 가장 먼저 고려한 것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열왕기상서 후반부에는 주님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주님 다윗의 본을 따라 행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다윗은 죄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데, 왜 다윗은 원수 요압에게 무력을 사용하여 이스라엘 지파들을 강제로 공격하라고 명령하지 않았을까요? 사실 여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만약 요압이 공격하러 갔다면 다윗 편에서도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것이고, 반대편인 이스라엘 지파에서도 많은 사람이 죽었을 것입니다. 아들이 죽었을 때 안타깝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을까요? 사람들은 사울의 아들 므비보셋 아래서 자신의 왕에게 복종하고 섬기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능할까요?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좋은 일은 아닙니다. 그것은 인간의 피를 흘리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묻습니다 : 당신의 왕좌가 더 중요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뜻이 더 중요합니까? 왕좌가 하나님의 뜻보다 더 중요하다면 왕좌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것입니다. 몇 명 더 죽는 게 무슨 대수인가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만 다윗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고, 다윗은 죄에 대해 매우 분명했습니다.

따라서 개인이든, 회사든, 국가든, 강해지고 번영하려면 자신의 사업, 가족, 개인적인 이익, 개인적인 왕좌보다 하나님을 더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사람들은 왜 바쁜가요?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시간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내가 당신에게 말한다면 : 바쁘다! 시간이 없다고요! 그게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당신이 중요하지 않고 내가 해야 할 더 중요한 일이 많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시간이 없고 더 중요한 일이 많다면 그게 맞는 말인가요? 옳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매일 성경 공부 시간을 하나님께 바친다면 손해 보는 것은 아닌가요? 만약 여러분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느낀다면, 여러분은 확실히 손해를 보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고통받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다면, 당신은 정말로 고통받지 않을 것이고, 당신은 분명히 날마다 더 강해질 것이며, 죄의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이 장을 읽으면 그 안에있는 사람 중 한 명이 다니엘이라는 사울의 원수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요압이 그를 죽였다는 사실은 큰 문제였고, 다윗의 말로 이어졌습니다:

그 후에 다윗이 듣고 이르되 넬의 아들 아브넬의 피에 대하여 나와 내 나라는 여호와 앞에 영원히 무죄하니.(사무엘하 3:28)

인간의 피를 흘리는 것은 농담이 아니며 하나님을 왕좌와 중심 관심사 아래에 두는 것은 위대한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사울의 집과 다윗의 집 사이에 전쟁이 오래매 다윗은 점점 강하여가고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 가니라,(사무엘하 3:1)

다윗은 많은 아내를 두었는데 저는 다윗을 존경합니다. 저는 다윗을 존경합니다. 우리 보통 사람은 한 명도 관리할 수 없으니까요! 다윗은 헤브론에 많은 아내를 두고 많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게 죄인가요? 죄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 땅의 현행법을 다윗에게 적용하면 일부다처제라고 하죠. 오늘날까지도 많은 무슬림 국가는 여전히 일부다처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다윗처럼 일부다처제를 원한다면 그런 나라 중 한 곳으로 이민을 가면 됩니다.

일부일처제든 일부다처제든 하나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하나님은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니 현행법에 관여하지 말자고요. 다윗 시대에도 하나님은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지만 다윗을 점점 더 강하게 만드셨잖아요, 그렇죠?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이 "야! 왜 이러는 거야? 하나님은 그것에 신경 쓰지 않으셨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다윗을 점점 더 강하게 만드셨으니 하나님께서 그것에 신경을 쓰셨을 것 같나요?

우리가 창세기를 공부할 때 아브라함은 여러 아내를 두었고 야곱은 네 명의 아내를 데리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종종 일부일처제에 대해 이야기하곤 합니다. 제가 오늘날의 법을 찾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구약성경을 찾아보고 있는 건가요? 구약 성경을 보고 있다면 일부일처제 얘기는 꺼내지 말자고요. 현행법을 보고 있다면 그 법의 일부일처제를 명확히 해두자고요.

뿐만 아니라 다윗의 첫 번째 배우자는 사울의 딸 미갈이었고, 미갈은 다윗을 매우 사랑했지만 사울은 그녀를 다른 사람과 약혼했습니다. 이번에 다윗은 원래의 아내 미갈을 다시 원했는데, 다윗에게 아내가 부족할까요? 그리고 나중에 결혼한 남편 미갈은 아내를 잃을 위기에 처했을 때 눈물을 흘리며 매우 불쌍해했습니다. 이것이 범죄라고 생각하시나요? 한 사람의 가족을 해체하는 것으로 간주되나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러나 미갈은 참으로 다윗의 아내였고, 다윗은 이 아내를 자신에게로 데려와 잘 대접하려고 했습니다. 이 다윗은 사람이 소중히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하나님이 귀하게 여기시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사람이 귀하게 여기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거기에 사람의 힘이 있고, 그래서 다윗의 집안은 점점 더 강성해졌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다윗이 한 일을 축복하셨습니다.

다윗이 한 일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고, 많은 사람들이 전쟁터에서 죽지 않고 싸우고 싶어하지 않게 했습니다. 유다와 다른 열한 지파를 평화롭게 통합한 다윗과 함께 평화로운 통일이 시작되었습니다. 작은 나라였던 이스라엘에는 두 명의 왕이 있었는데, 한 왕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었고 다른 한 왕은 다윗으로, 다윗은 한 지파를, 이스보셋은 나머지 열한 지파를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이스보셋은 종종 다니엘을 보내 유다를 공격했고, 지난번에는 전투를 벌였으나 다윗에게 패배했습니다. 다윗이 이스보셋과 다른 지파들을 공격하기 위해 병사들을 데리고 오는 경우는 흔치 않지만, 사실 나라를 평화롭게 통합한 것은 다윗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다윗이 자신의 왕좌를 소중히 여기는 것보다, 자신의 업적을 소중히 여기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소중히 여겼다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열한 지파는 왜 내게로 와서 복종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당신에게 복종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와서 싸울까요?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작은 것이 아니라 큰 것을 보라는 작은 규칙을 가지고 계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작고 사소한 것을 보려고 하기 때문에 강해지기가 어렵습니다. 머릿속이 사소하고 사소한 것들로 가득 차 있으면 강해지기가 어렵습니다. 왜 그럴까요? 머릿속이 엉망이기 때문입니다. 이것부터 우선순위를 정하면 어떻게 바쁠 수 있겠습니까?

사실 무력에 의한 통일은 많은 사람들이 죽을 것이기 때문에 좋은 선택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보시는 것을 바라보는 법을 배워야 하며, 그것이 나날이 더 강해지고 강해지는 길입니다. 저는 이 강해지는 길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깊이 이해하고 있으며, 제 자신의 핵심 이익을 추구하지 않고 다윗의 모범을 따를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핵심 이익이 하나님과 함께 있느냐 없느냐는 우리 자신의 핵심 이익입니다.

사람을 판단할 때는 그의 핵심 관심사를 판단하면 됩니다. 그 사람의 핵심 관심사가 돈이라고 판단하면 돈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것이기 때문에 특히 조심해야 하며, 그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의 핵심 관심사보다 하나님을 더 소중히 여기며 모든 핵심 관심사를 하나님께 두었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통일의 기회를 주신다면 나는 통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지 않으시면 천천히 하겠지, 시간은 충분하니까.

2. 사울의 집은 날로 약해졌습니다.

사울의 집은 어떻게 점점 더 약해졌을까요? 국가를 담당하든 사업을 담당하든 가족을 담당하든 상관없이 똑같은 일, 즉이 작은 일을 큰 일로 받아들이면 곤경에 처할 것입니다. 얼마 전 한 형제가 저에게 "여자가 집안을 책임지면 집이 무너진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내가 의미하는 바가 아니라 속담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매우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왜 여자가 집안을 책임지고 집이 무너진다고 할까요? 그것은 여성들이 그런 사소한 문제를보고이 모든 작은 문제를 큰 문제로 취급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집을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작은 것을 소중히 여깁니다.

그는 왕 이었지만 싸울 능력도없고 군대를 이끌 능력도없고 경제를 관리 할 능력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이스보셋에게는 아버지 사울 왕의 후궁인 리즈바가 있었는데, 그녀는 매우 아름답고 젊었습니다. 이스보셋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지만, 백성들의 관심사인 민생과 경제, 국가 건설을 돌보는 대신 다니엘의 개인적인 일에만 신경을 썼어요.

이스보셋은 왕이었지만 땅콩 같은 마음과 호두 같은 머리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큰일을 처리하지 못하면서 작은 일만 계속하면 모든 것이 거꾸로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어떻게 바리새인이 되었을까요? 그들은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는 큰 진리는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시금치, 셀러리, 회향, 식사 시 손 씻기 여부와 같은 작은 것의 10분의 1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런 사소한 것들입니다.

요점을 전달하지 못한다고 해서 망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요점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집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죠. 누군가가 요점을 이해하지 못하는지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묻는다면? 바쁘거나 바쁘지 않은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 왕족의 후손으로 왕족의 가족을 둔 사람을 저녁 식사에 초대한 적이 있습니다. 그 집안에는 '왕이 바쁘고 신하가 게으른 왕은 멸망하지만, 왕이 게으르고 신하가 바쁜 왕은 번영한다'는 말이 조상으로부터 전해져 내려온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저는 제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전에는 제가 바쁜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많은 일을 했는데도 바쁘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요점을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던 중 저는 바쁘지 않고 머리가 매우 명료한 놀라운 목축업자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 다음 저는 그들에게서 배웠고 오늘날까지 저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는 바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내려 놓을 수 있는지, 어떻게 처리 할 수 있는지, 나는 모든 것을 똑바로 세웠고 확실히 털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바쁘다는 것은 멸망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참견이 많은데 사람들이 양치질을 부탁하지 않을 때가 있어서 제가 주도적으로 양치질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선생님, 저 너무 바빠요. 그러면 저는 "왜 그렇게 바쁘세요? 무슨 일로 바쁘신지 보여주세요. 그러자 큰 기사가 하나 쓰여 있었어요. 기사를 보니 수십 개의 항목이 있었어요.

다 읽고 나서 혼자 생각했죠, '망했다. 바쁘고 지저분하고 썩어가고 있지 않다면 이상할 겁니다. 파멸의 길로 가고 있어요. 진흙탕으로 가득 차서 좋을 리가 없죠! 그가 쓴 글은 하나도 제대로 된 것이 없습니다. 전략도 없고 재치도 없고 방법도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 여전히 그런 사람들이 있다면 경고해야합니다. 날마다 약해지고 싶습니까? 약해진 상태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남자와 여자가하는 사소한 일에 신경을 쓰면서 살기는 쉽습니다. 이스보셋이 원수 벧엘과 사이가 나빠지고 호전적이기를 좋아하고 벧엘을 두려워했던 때처럼 말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벧엘은 이스보셋에게 할아버지처럼 아버지보다 더 아버지 같은 존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번영의 길을 걷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번영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요? 저는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님이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당신도 일부다처제를 원하나요?"라고 묻습니다. 저는 바울의 모범을 따라 일부다처제를 하지 않겠다고 말했죠. 저는 할 수 없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나는 한 명의 여성을 위해이 세상에 온 것도 아니고 두세 명의 여성을 위해이 세상에 온 것도 아닙니다.

나는 큰 어려움을 겪고이 세상에 왔고, 하나님을 위해 태어나고 하나님을 위해 죽고 하나님을 위해 살았습니다. 아무도 나를 막을 수 없으며 나를 막는 사람은 누구든지 당신을 떠날 것이며 이것이 번영의 길입니다. 그래서 오늘날까지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번영합니다. 다윗은 서른 살에 유다의 왕이 되었는데, 다윗이 일흔 살까지 살았다면 남은 40년은 어땠을까요? 다윗은 이스라엘의 열한 지파를 자신의 이름으로 통치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에게는 아직 시간이 충분했기 때문에 서두를 필요가 없었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왕국을 넘겨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서 왕국을 빼앗아 다윗에게 주실 수도 있었을까요? 그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은 다윗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그가 왕좌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인지 보고 싶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유다 지파를 주셨어요. 너무 빨리 시도하면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기 때문에 그 열한 지파에 의해 쓰러질 것입니다. 하지만 노력하는 소년은 괜찮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상당히 신경을 썼으며, 왕좌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 행함의 결과로 하나님은 이스라엘 나라 전체를 다윗에게 주셨습니다.

3.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왕국을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나쁜 방식으로 왕국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이스보셋은 너무 인색하고 나라를 잘못 운영해서 아래 백성들이 힘들어하고 있었어요. 그런 혼란스러운 사람을 왕으로 세운 것은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의 원수뿐만 아니라 그 아래 장관들과도 불화했습니다. 사울은 조조나 한선디처럼 이스보셋의 집에 있던 한 여자 때문에 다니엘과 갈등을 겪었습니다.

사울에게 첩이 있었으니 이름은 리스바요 아야의 딸이더라 이스보셋이 아브넬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내 아버지의 첩을 통간하였느냐?(사무엘하 3:7)

이 말을 들은 다니엘은 "죽고 싶다고요? 네 머리는 어디 있느냐?

아브넬이 이스보셋의 말을 매우 분히 여겨 가로되 내가 유다의 개 대강이뇨 내가 오늘날 당신의 아버지 사울의 집과 그 형제와 그 친구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당신을 다윗의 손에 내어주지 아니하였거늘 당신이 오늘날 이 여인에게 관한 허물을 내게 돌리는도다.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맹세하신대로 내가 이루게 아니하면 하나님이 아브넬에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사무엘하 3:8-9 )

그래서 하나님은 한 명의 군인도 없이 다윗에게 왕국을 주셨습니다. 다윗은 다니엘의 마음속에 아주 훌륭한 상관이자 아주 훌륭한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는 세습하면 성공할 수 없고 따르는 사람들도 함께 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목회자인 저를 따라 여러분의 마음, 여러분의 영역, 여러분의 지평을 넓혀서 여러분의 마음으로는 하나님 나라를 담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하나님의 확장을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다윗의 본을 따라 하나님이 귀히 여기는 것을 귀히 여기는 여러분이 되어야 합니다. 참깨와 녹두 같은 작은 것들로 눈을 채우지 마십시오. 어떻게 그런 식으로 사람들을 축복 할 수 있습니까? 먼저 자신을 축복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피를 흘리지 않고 이스라엘 왕국을 주신 것은 다윗이 백성들의 마음에 아주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사업의 감독자 또는 리더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당신은 너그러워야 하고, 절대 비굴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똑똑하고 현명해야 하며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알아야 하고 움켜쥐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야 합니다. 다윗은 정말 훌륭한 사람이었고, 그 밑에 있던 용사들은 목숨을 걸고 물을 길어다 마실 수 있도록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다윗은 본받을 만한 상사로서 정말 훌륭한 일을 해냈습니다. 시간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다윗의 장점에 대해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다윗이 이스라엘 민족을 얻는 과정에서 싫어했던 사람이 한 명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악마가 중요했습니다. 이 사람은 다윗의 원수 요압이었는데, 다윗은 이 사람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에게 찾아온 다니엘은 원수이자 위대한 전사였고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임하는 데 뛰어난 재능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요압에게 칼에 찔려 죽임을 당했습니다. 마귀는 다윗이 이스라엘 민족을 얻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기회를 주셨지만, 마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원수 요압이 다윗의 부하 중 한 명인 요압에게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다윗의 신용을 떨어뜨리고 백성들이 다윗을 미워하도록 만들고 싶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 죄는 나와 내 왕국의 죄가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한 게 아니라 요압이 한 거죠. 그렇게 말했을 뿐만 아니라 요압과 요압의 후손들을 저주했습니다. 요압은 장군이자 원수였지만 그의 후손들에게는 온갖 저주가 내려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왕국을 주려고 하셨고 악귀들은 여전히 왕국을 멸망시키려고 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요압의 피를 흘린 죄가 자신과 그의 왕국에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요압에게 돌아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지혜와 마음과 결단력이 없었다면 곤경에 처했을 것입니다. 벧엘을 두려워한 만큼 요압을 두려워한 이스보셋과 같았을 것입니다. 요압은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나서는 원수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다른 원수를 세우려 하면 요압은 죽음을 무릅쓰고 막았습니다. 우리 중 한 사람이 일하고 있는데 상사가 인재를 데려온다면 여러분도 요압처럼 하겠습니까? 그것은 충분히 넓은 마음이 아닌 문제가 될 것입니다.

이 사건은 다윗에게 도전을 주었고, 그 결과 다윗은 죄에 대한 그의 태도로 또 다른 좋은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4. 다윗이 한 모든 일, 백성들이 기뻐하다

마귀는 요압을 통해 다니엘을 죽임으로써 다윗의 신용을 떨어뜨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브니엘의 장례식 전체를 매우 엄숙하게 치렀습니다. 다윗은 관 뒤에서 울면서 외쳤습니다. 그것이 행위였다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죄에 대한 태도는 매우 중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헤브론에 벧엘을 화려하고 성대하게 묻었습니다.

아브넬을 헤브론에 장사하고 아브넬의 무덤에서 소리를 높여 울고 백성도 다 우니라.왕이 아브넬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가로되 아브넬의 죽음이 어찌하여 미련한 자의 죽음 같은고.네 손이 결박되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착고에 채이지 아니하였거늘 불의한 자식의 앞에 엎드러짐 같이 네가 엎드러졌도다 하매 온 백성이 다시 그를 슬퍼하여 우니라.석양에 뭇 백성이 나아와 다윗에게 음식을 권하니 다윗이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해지기 전에 떡이나 다른 것을 맛보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라 하매.(사무엘하 3:32-35)

다윗이 죄에 대해 가졌던 것과 같은 태도를 가진 목회자를 따른다면 여러분은 형통할 것입니다. 우리 형제자매 중 일부는 작은 목자나 큰 목자 또는 지도자가 되었으므로 다윗의 모범을 따르고 죄에 대해 매우 분명한 이해를 가져야 합니다. 다윗이 한 일을 백성들은 기뻐했고, 백성들은 다윗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다윗은 더 강력한 방법으로 백성들을 이끌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이스라엘 민족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조는 다윗 왕조였습니다. 그래서 죄에 대한 관점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요압을 어떻게 저주했을까요?

그 죄가 요압의 머리와 그 아비의 온 집으로 돌아 갈지어다 또 요압의 집에서 백탁병자나 문둥병자나 지팡이를 의지하는 자나 칼에 죽는 자나 양식이 핍절한 자가 끊어지지 아니할지로다 하니라.(사무엘하 3:29)

지팡이로 걷는 사람, 칼에 죽는 사람, 먹을 것이 부족한 사람, 문둥병에 걸린 사람, 나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도 우리 조상 중에는 무고한 사람들의 피를 자주 흘린 요압과 같은 사람이 있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형제자매들은 요압이 했던 것처럼 자신의 유익을 위해 행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5.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십시오

내가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되었으나 오늘날 약하여서 스루야의 아들인 이 사람들을 제어하기가 너무 어려우니 여호와는 악행한 자에게 그 악한대로 갚으실지로다 하니라.(사무엘하 3:39)

다윗은 요압을 죽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그는 요압이 다니엘의 죽음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었지만 힘이 약했습니다. 다윗이 생각해보니 요압은 여전히 자신의 원수였고 군대를 이끌고 전투에 나서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약함을 인정하는 것은 언제나 좋은 일입니다. 그는 요압을 상대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스루야의 두 아들 중 한 명은 그의 원수인 요압이었습니다. 다윗이 죽을 때까지 요압은 그의 원수였습니다. 자신의 재능을 소중히 여겼던 요압의 목숨을 구하지 못한 것은 다윗의 인생에 큰 빚이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요압이 잔다르크의 뒤를 쫓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요? 어떻게 다윗이 그렇게 현명하면서 몰랐을까요? 그는 알았어야 했어요. 요압이 다윗에게 돌아왔을 때 어떻게 그를 놓아주기로 선택했나요? 결과적으로 요압은 그를 쫓아갔고, 그때 다윗이 그를 막았더라면 전염병을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은 "이 죄가 나와 내 나라에 미치지 아니하리라"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물론 다윗이 한 일은 아니지만, 다윗은 이 죄가 자신과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며 이스라엘 민족이 계속 강해지기를 원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일련의 일을 했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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