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창세기36장-저주받은 에서

필기를 참고

1.이거 저주받은건가요?

에서도 많고 많은 왕을 낳았는데 이것이 저주를 받느냐? 속 세계의 논리는 매우 엄격하고 잘 산다.
사람들은 세상 일을 대할 때 종종 혼란스러워하는데, 이 사람은 선하고 이 사람은 악하며 장수합니다.
사람들이 그것을 믿느냐 이것을 믿느냐는 그들의 선택입니다. 축복을 선택할 것인가, 저주를 선택할 것인가?
사람은 살아 있는 문제만 보고도 혼란스러워하는데, 그 혼란의 원인은 믿느냐 마느냐! 믿음과 불신앙의 결과는 분별할 수 없습니다!

2.돈이 있든 없든, 지위가 높든 낮든, 영적 상태를 볼 수 없습니다.

사람의 생명이 집안의 재물에 달려 있지 아니하니 세상에 속한 자가 반드시 신령한 자보다 형통하리라.
믿음 여부는 선택이며 선택에 따라 선별 여부가 결정됩니다.
사람들이 인생의 논리 체계에 목표를 두면 혼란스러울 것이고, 성장할수록 사물을 더 투명하게 보게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 영생이 있다고 믿기로 선택했다면 세상의 논리 체계를 무너뜨려야 합니다!

3.한 세대가 오고 한 세대가 지나간다

당신이 높은지 아닌지, 부자인지 아닌지, 당신의 자녀가 좋은지 아닌지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은혜롭게 대하시는지를 판단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쓰레기처럼 살고, 가난하고,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여전히 삶이 영적인 것이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지 못하고 죽기 직전입니다.
영적인 일에 있어서는 믿음과 불신앙을 통해 사물의 발전을 바라보고 귀한 그릇이 되어 믿음을 굳게 선택하십시오.
영적 세계에서 발전은 믿음과 불신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믿거 나 말거나는 설득이 아닙니다.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4.하나님은 아말렉의 이름을 도말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말렉과 에서의 자손의 이름을 도말하시리라!
.육신과 영이 서로 원수가 되나니 이 둘의 논리가 지극히 이치적이라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자는 반드시 도말되리라
이 세상은 지나가겠지만 하나님과 그의 백성은 영원히 살 것이다.

5.ruffhs

저주받은 에서는 칼로 살았고 야곱은 하나님으로 살았으니 이것은 전혀 다른 선택입니다.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설득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인간의 선택입니다.

서론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창세기 36장에 이르렀습니다. 이 장은 조금 어려운데 왜 성경 기록이 우리에게 말해주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여기에 아주 흥미로운 현상이 있는데, 에서가 장자권을 잃고 잘 지내고 있는 것 같지 않습니까? 오늘 우리는 이 저주받은 에서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1. 이거 저주받은건가요?
이 장에서 우리는 에서의 후손들에게 유명한 가문이 많았다는 것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을 낳았고, 에서의 후손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왕이 있기 전에 에서의 자손에게는 이미 왕이 있었고 그들은 야곱의 자손보다 더 잘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이 에서만큼 많지 않았던 것처럼 많은 자녀를 낳게 하셨습니다. 에서가 자식을 많이 낳았을 뿐 아니라 왕과 족장도 많이 낳았는데 이것이 저주입니까? 정말 매우 혼란 스럽습니다! 나중에 나는 사람이 에서의 길을 선택하면 논리 체계도 매우 엄격하고 좋은 삶을 살며 나쁜 삶의 징후가 전혀 없음을 발견했습니다. 에서가 400명의 군인을 데리고 야곱을 만나기 전에, 사실 그는 야곱을 죽이려는 살인 의도를 숨기고 있었습니다. 수적으로는 에서가 야곱보다 군사가 많았습니다. 금전적인 면에서도 에서는 야곱보다 더 부유했습니다. 사업적으로는 에서가 야곱보다 컸고, 영토로는 에서가 야곱보다 더 많은 땅을 차지했습니다. 이것은 저주처럼 보이지 않습니다. 약간 혼란스럽습니다!

사실 사람은 이 세상의 일을 대할 때 참으로 많은 혼란을 겪습니다. 이 사람이 아주 좋은데 왜 죽지 못합니까? 이 사람은 못생겼지만 장수하고 저 사람은 악해 보이고 큰 관리입니다. 그런 나쁜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큰 사업을 할 수 있습니까? 내 말을 들어야 하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갑자기 나에게 속았다는 생각이 든다. 저주는 어디에 있습니까? 그는 저주를 전혀 볼 수 없었지만 에서가 이런 저주라면 상당히 좋아할 것 같았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을 텐데 사람들이 믿는 것은 선택이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민주주의와 자유가 좋다고 생각하며 민주주의를 선택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독재 정치도 매우 좋다고 생각합니다. 독재가 나쁘다는 많은 예를 들 수 있고, 민주주의가 좋지 않다는 많은 예를 들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들에 대해 혼란스러워합니다.

돌이켜보면 에서의 후손들은 저주를 받았습니까? 이 장을 아무리 봐도 저주가 보이지 않고, 에서의 삶에서 귀신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영계가 실재한다고 하는데 왜 에서는 영계의 실재를 보지 못하는 것일까요? 오히려 세상에 속한 것을 보면 참 실감나는 것 같습니다! 야곱은 잘 사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큰 사람들은 어린 아이들을 섬겼고, 에서는 야곱을 섬겼지만 저는 정말로 그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남들보다 오래 살기만 하고 이것으로 누가 영적인지를 정의한다면 그것은 곤란할 것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그것은 선택입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든 기분이 좋을 것입니다. 이제 축복을 택할 것인가, 저주를 택할 것인가? 에사우의 가족이 오래 살지 못했다고 하지 마세요 말도 안 되는 소리죠 그들의 후손에 백세 장수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런 식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더 혼란스러워 질 것입니다. 알고 보니 성경의 목적은 사람을 미혹케 하기 위한 것인데, 사람이 사는 문제만 본다면 미혹이 가득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며 혼란의 원인은 믿음과 불신앙에 있습니다.

믿거나 믿지 않는 결과는 육안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콩나물로 만들면 3일에서 일주일이면 싹이 나고 튀겨서 비벼 먹으면 맛있다. 콩나물은 며칠 키우면 효과를 볼 수 있는데 이런 것도 있고 한 종류는 바로 효과가 나타나며 어떤 것은 심은 후에 나오지 않고 어떤 것은 나오기도 전에 죽는다. 전혀 보이지 않지만 나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는 자랄 것입니다. 즉, 믿음은 축복이든 저주이든 발전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살아온 70년, 80년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는 말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야곱의 대단한 점은 그가 그런 선택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의 선택은 실제로 사람들이 보기에 비합리적이었습니다. 인간의 논리대로라면 야곱은 잘 살지 못했지만 에서는 잘 살았습니다.

그러나 속담처럼 시간이 모든 것을 증명할 수 있다 이 문제를 영원부터 보면 그 차이는 크다. 그래서 영원히 보지 않으면 많은 혼란이 있을 것입니다 악한 사람은 장수할 수 있지만 선한 사람은 오래 살 수 없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예수님을 보면 30대에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을 많은 사람들이 좋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삶을 추구한다면 이 세상에서 사는 지난 수십 년 동안 혼란에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 속에서 지극히 무겁고 영원한 영광을 추구한다면 그것 또한 선택이며 보는 것이 전혀 다릅니다. 누군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정말 무겁고 비교할 수없고 영원한 영광을 본 적이 있습니까? 실제로 본적은 없지만 그냥 믿겠습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여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린도후서 4:18)

우리가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고 주장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보는 것만 신경쓰지만, 당신이 우리가 볼 수 없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우리가 볼 수 없는 것만 신경쓰게 될 것입니다. 즉, 관심을 두는 것이 문제를 바라보는 각도를 결정합니다.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며 오고 가는 것이 허무 중의 허무입니다. 사람의 삶에 영원의 소망이 없으면 사는 의미가 없고 살아도 죽습니다. 길가의 개나 돼지우리에서 도살되기를 기다리는 돼지처럼 살아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또한 삶이 매우 흥미롭다고 느끼지만 돼지는 다음날 식탁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진미가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영원한 추구가 없고 '진정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 현실은 아프리카 사바나의 동물과 비슷하다. 모두가 관찰한 후에 그들이 얻는 결론은 그들이 살아 있을 때 좋은지 나쁜지 측정의 기준이 아닙니다.

2. 부자인지, 지위가 높은지, 영적 지위가 어떤지 알 수 없다.

세상 일을 보면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 좋은 직업으로 축복하신다고 하지만 하나님 없는 사람은 하나님보다 더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최근에 승진해서 월급이 올랐다고 하는데,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주님보다 빨리 승진하고 월급이 많이 올랐다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최근에 사업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사업은 이미 좋아졌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은 상당히 치명적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부자인지 아닌지, 지위가 높은지 여부는 영적 지위를 나타내지 않으며, 그 사람의 삶은 그의 가족의 부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사람의 영적 여부를 재산으로 판단한다면 혼란이 가득한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세상은 부자와 빈자, 귀천으로 볼 수 없고 재물에 있어서는 야곱보다 에서가 더 부자입니다. 지위에 있어서는 에서의 지위가 야곱보다 높았는데, 에서의 후손은 오랫동안 왕이었으며, 많은 왕과 족장들이 태어났으니, 이 결과는 사람들을 매우 혼란스럽게 만들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에서와 그의 후손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들었을 때 그들도 에서가 저주받은 것을 보지 못하고 무시하는 표정으로 말하지 않았겠습니까? 모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줄 알았는데, 그래서 고라 일행이 광야에서 모세를 배반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60만 명이 광야에서 죽었는데 사실 여호수아와 갈렙만 가나안 땅에 들어갔고 나머지는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 사람의 지위와 명성에 따라 고라는 반드시 선출될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고, 모세와 고라는 레위인이었습니다. 그들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백성들의 표는 모두 고라에게 있었지만 하나님은 고라를 위해 큰 구덩이를 파서 그를 넘어지게 하셨습니다. 고라가 죽은 후 이스라엘 사람들은 땅이 구덩이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고 말하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을 죽였다고 하면서 큰 덫을 파고 산 채로 장사했을 것입니다. 고라의 권세는 확실히 모세의 권세보다 강하다고 하니 실로 이 세상도 그러하니 세상 사람은 항상 신령한 자를 핍박할 것이요 세상 사람은 반드시 신령한 자보다 더 형통하리로다 당신이 이런 종류의 번영을 원한다면 이러한 종류의 번영으로 발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에서가 되고 싶다면 최대한 열심히 에서가 되십시오. 미래에 당신과 당신의 후손은 명문 가문 출신일지 몰라도 그런 번영을 보지는 못할 것입니다. 물론 영적인 사람도 볼 수 없지만 이런 것들을 영의 세계에서 영적인 눈으로 보면 그 차이가 클 것입니다. 나는 그곳에 가본 적이 없지만 오늘을 믿고 안 믿고는 우리 자신의 선택입니다.

우리 중에 어떤 형제자매가 새신자를 맞이할 때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려고 애를 쓰는데 나는 멀리서 윙크하며 설명할 수 없으니 설명하지 말라고 합니다. 믿느냐 안 믿느냐는 선택이며 논리와 이성으로는 추론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둘은 두 가지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시스템은 세상에 속하며 살아 있으면 죽습니다. 다른 시스템은 영적이며, 또한 살아 있고 죽어 있으며 설명이 전혀 명확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모두 해결합시다. 설득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냐 불신이냐는 하나님이 정하신 규례로서 믿지 않는 자를 걸러내기 위함입니다. 사실, 사람은 영원 속에서 오래 전에 선택받았는데, 그것은 약간 절망적으로 들립니다. 이 사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는지 모른다는 것은 조금 절망적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은 논리적 추리에 따라 주님을 믿기로 결정한 것이나 우리 자신이 주님을 믿기로 결정한 것이 전혀 아닙니다. 사람들이 왜 주님을 믿느냐고 하면 어쨌든 주님을 믿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개인적인 선택.

선택하면 영원한 영광의 압도적인 무게를 선택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자기와 함께 계시고 표적과 기사가 따르는 것을 보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고. 그러나 이러한 기적은 여러분의 가정을 부유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위해 예비하신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동안 믿기로 선택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조심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이러한 혼돈으로 가득 찬 현상을 본다면 우리는 믿지 않고 이생의 영광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이생은 선택이고 영생도 선택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방식을 보면 이생의 논리 체계에 삶의 목표를 두는다면 너무 혼란스러울 것입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성장하고, 성장할수록 많은 것을 보게 된다.

모든 사람은 세상의 논리 체계를 하나씩 해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람들이 영생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너무나 단순한 진리입니다. 우리는 이생에 관심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영생입니다. 그래서 어떤 형제자매들이 여전히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볼 때 그들에게서 나오는 말들은 혼란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자매는 조부모님의 생활 환경이 쓰레기장과 같다는 것을 알고 조부모님을 위해 쓰레기를 치우는 선행을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조부모님은 그들이 청소하는 것을 거부했고, 그 쓰레기들은 그들에게 보물입니다. 혼란스럽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그 논리 체계에 살고 있고 그들을 도우려고 하면 그들을 도울 수 없습니다. 당신은 쓰레기가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그는 쓰레기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나는 당신에게 살고 죽는 것은 인간의 선택이며 당신은 그를 위해 선택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사실 별거 아니고 불편할 필요도 없고 각자의 선택이 있습니다.

이삭은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에서와 야곱은 각자 선택권이 있었고 둘 다 서로를 설득할 수 없었습니다. 에서는 여전히 자신이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저주 아래 살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축복받았다고 생각했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혼란스러워 보였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더 이상 돈이 있느냐, 지위가 있느냐를 이용하여 하나님의 일을 추진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그런 간증을 한 적도 없고, 주님을 믿으면 부자가 된다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3. 한 세대가 지나면 한 세대가 온다

하나님이 당신을 잘 대하신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당신이 부자인지, 높은지, 낮은지, 또는 당신의 자녀가 좋은지 아닌지를 사용하지 마십시오.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더 은혜를 베푸시는 것 같습니다. 성경에는 항상 그런 기록이 있는데, 창세기 5장, 11장, 36장에는 모두 장수하고 죽은 사람들의 기록이 있고, 죽은 뒤에도 계속해서 왕이 된 사람들이 살고 죽습니다. 앞으로는 살다 죽겠다 니가 20대에 불과하고 나보다 몇년만 더 산다면 결국 너도 크게 뒤쳐지지 않을거야 누구나 다 똑같아.

내가 모든 사람을 위한 문제를 하나 만들어 보겠습니다. 당신이 부자이든 아니든, 지위가 높든 낮든 사람의 영적 상태를 판단하는 데 사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부자인지는 알 수 없지만 가난한 사람은 확실히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할 한 가지는 전 우주에 그러한 규칙이 있다는 것입니다. 즉, 부자가 영적인지 어떤 사람은 영적인지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지 알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신분으로 영적인 사람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지위가 높아도 영적인 사람인지 구분하기 어렵고, 영이 아닌 사람도 지위가 높은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쓰레기같이 살고, 가난하고, 모든 일에 귀신이 있고,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먹지도 못한다면, 그는 확실히 영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즉, 이 세상 사람들은 사는 것이 영적인 일임을 분명히 보아야 합니다. 영적인 사람과 세상적인 사람은 나중에 다 죽고 영적인 사람도 부자가 되었지만 세상 사람도 부자인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가난한 사람들이 그것을 볼 수 있습니까? 에서와 같은 사람이 저주를 받는 것은 많은 혼란을 야기합니다. 그러나 우리 중 일부는 저주를 받아 매우 얽히고 불편한 삶을 살고 있으며 그것은 확실히 영적인 것이 아닙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수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명기 28:1-6)

여호와께서 명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실 것이며.(신명기 28:8)

네 곳간과 곳간이 복이 있고 네 은행 계좌가 복이 있도다 그러나 돈이 있으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나갈 때도 복을 받고 들어갈 때도 복을 받을 것이요 네 모든 자손과 네 집짐승의 새끼도 복을 받을 것이니 이것이 그 차이니라 많은 사람들이 논리에 조금 생소합니다.예를 들어 백마도 말이고, 흑마도 말이요, 둘 다 말이지 문제는 백마와 흑마가 둘 다 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은 후에는 경제 상황을 통해 그 사람이 영적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부자인지 아닌지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가난한지 보기 위해서입니다.

한 세대가 가고 한 세대가 오느니라 에서나 야곱이나 같으니 어찌 에서가 야곱을 섬겼느냐 하나님께서 야곱처럼 하나님께 속한 세상 사람들이 대대로 이어지도록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영원 속에 살았지만 에서는 멸망 속에 살았습니다. 즉, 우리가 미래에 영원한 추구와 욕망을 가질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사는 문제에 있어서 육신의 체계로 살 것인가, 영적인 체계로 살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영적 체계를 가지고 살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육체의 체계를 가지고 살면 반드시 귀신의 존재를 볼 수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귀신은 당신에게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귀신은 당신을 속입니다. 사실 귀신이 사람을 죽이기 전까지는 그곳에서 해왔던 것이 분명하다.

나는 이 세계가 매우 흥미롭고 결국 여전히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논리적 추론이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의 입장에서 선택하는 것이다. 영적인 관점에서 보든 세상의 논리 체계에서 보든 모두 타당하지만 전제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관점에서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영의 세계의 관점에서는 믿느냐 안 믿느냐로 판단을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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