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해답】-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나는 매우 어려운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왜냐하면 극도로 무겁고 영원한 영광이 어떤 것인지 아무도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오늘 우리가 영광의 소망을 품고 살다 보면 우리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살아있는 동안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별로. 대신 살아 있는 동안 그분의 임재를 경험합시다.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묻지 마세요. 대답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거기에 가본 적이 없습니다! 당신은 속일 수 없습니다. 갔다가 돌아와서 말해도 증명할 방법이 없다.

영광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위해 영역을 개척하고 남과 경쟁하지 않습니다. 예전에 중국인 사회에서 잘 알려진 목사님이 있었는데 싱가포르에 오셔서 함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는 싱가포르에 교회를 세우고 몇몇 설교자를 초청했습니다. 이 소수의 설교자들은 서로 경쟁하고 싸웠습니다. 싸움의 배후에 있는 악령을 분열의 영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즉, 세 명의 설교자가 그들 자신의 유령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그는 세 명의 설교자를 세 개의 교회로 나누는 아이디어를 내놓았습니다. 문제를 해결했습니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이 세 설교자 중 어느 누구도 영광의 소망이 없었습니다. 비길 데 없고 영원한 영광의 소망이 있다면 이런 하루종일 싸우는 상황에 처하지 않을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싸우려고 한 것이 아니라 이 망상에 빠진 그리스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다시 데려온 것입니다. 나중에 세 교회는 분열의 정신이 여전히 그들 안에 있었고 전체 교회의 상황이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에 잘하지 못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이것은 인간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영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질문] 1: 선생님, 왜 어떤 사람들은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능력을 행하는데, 예수께서는 그들을 모른다고 하십니까?

답: 성경에 분명히 기록되었으니 이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적은 믿음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으로 족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그들의 공로가 아니라 예수님의 공로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이 위대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위대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는 일이 통할 때도 있고 안 통할 때도 있습니다. 이것은 정상입니다. 그래서 무엇이 효과가 있습니까?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즉, 이 사람들이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을 행하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들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면 반드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을 행하게 됩니다.

우리 안의 혼란은 논리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이 사람들이 주릴 때에 먹이지 아니하고 옷이 없을 때에 입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므로 그들을 알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중에 예수님은 이런 일이 예수님의 집에서 막내에게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예수님도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이셨습니다. 논리가 얼마나 명확한지 보세요! 그것은 끔찍한 사랑의 결핍입니다.

【질문】2: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임재를 어떻게 구별합니까?

답: 태양은 선한 자와 악한 자에게 비치는 것, 그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악인과 함께 하실 것인가? 습관. 하나님은 그의 뜻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많은 사람을 섬기고 복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는 없지만 아브라함 시대에는 있습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까? 회의. 어떤 이기적인 사람들이 우리에게 와서 우리가 봉사한 후에 은혜를 받습니다. 그가 어떠해서가 아니라 그를 섬기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임재가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 3: 배움이 두렵습니다. 배움이 두렵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목회를 위해 공부하고, 노트를 쓰고, 여러 가지 과제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저항했다. 결국 짜증을 많이 내면서 순순히 숙제를 내주었다. 몇 번이고, 너무 고통스러워!

A: 왜 이런 일이 발생합니까? 사람들은 게으르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숙제를 내는 것은 가증한 일입니다. 그가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무지는 비극이 아닙니까? 비극을 위한 시간이 있고 지식을 위한 시간은 없습니다. 지식이 없고 배우지 않는 사람은 일단 배우면 불편할 것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무지로 인해 사람들이 멸망하는 방식입니다. 사람들은 배움에 대한 두려움이 있고 배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배움은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매우 피곤하기 때문입니다. 배움에 대한 두려움을 해결하는 좋은 방법은 배움이 고통스럽지 않도록 먼저 배움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질문】3: 은혜 받은 성도들은 그 날에 정하여 진 제자들처럼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만일 신자가 그렇지 않다면 결국 세상과 같을 것입니까?
답: 사실 은혜를 받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많은 가르침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열 처녀가 있었는데 다섯 등잔에 기름이 있었고 다섯 등잔에 기름이 없었으나 나중에 예수님은 문을 닫고 기름 없는 처녀들을 어둠 속으로 던지셨습니다. 어떤 교회는 어두움도 하나님의 영광 안에 있다고 설명합니다. 조금 이상하게 들립니다. 어두운 곳에서는 잘 안 될 것 같아요. 믿는 자가 이기지 못하면 사실상 불신자요 그 끝은 세상의 끝과 같으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 좋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질문] 4: 영계에서 귀신들과 장난치지 말라 하나님께 간구하기는 쉽지만 하나님을 떠나보내기는 어렵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니 영계의 귀신을 다루는 것이 아니냐? 너무 잘 노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답: 내가 영계에서 귀신을 너무 잘 다룬다는 말은 사람이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에 귀신의 소원을 따라 귀신을 불러들인다는 뜻입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영계에서 귀신을 상대하는 것이긴 하지만 귀신을 잘 다루는 것이 아니라 귀신을 쫓아내는 것입니다.

[질문] 5: 선생님, 예수님께서 맹인을 보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까?

답: 예. 보지 못하는 소경은 소경의 저주를 짊어지신 예수님께 받은 은혜입니다. 눈으로 본 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계속 세상의 논리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살면 새로운 저주를 받게 됩니다. 예수님도 그의 새로운 저주를 견디지 ​​않으실 것입니다. 당신이 회개하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당신의 저주를 감당하실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질문을 하시는 분들은 '내가 은혜를 받았으니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구나, 대단하지? 그건 문제야! 왜냐하면 은혜를 받을 때 영의 세계가 참됨을 깨닫고 회개할 수 있도록 구하기를 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한 걸음씩 걷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실만이 사람들을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질문】6: 은혜와 축복의 차이가 있습니까?
답: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소경이 예수를 만지면 눈으로 보았고 혈루병 여자가 예수를 만지면 고침을 받았으니 이것이 은혜니라. 그러나 사람이 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여 순종해야 합니다. 이 두 개념은 완전히 다릅니다. 모든 축복은 믿음의 싸움에서 승리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려면 믿음의 시합을 거쳐야 합니다. 당신은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합니까?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사람들이 말하는 대로만 하면 축복받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축복은 승리와 관련이 있습니다.

오늘의 Q&A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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