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에베소서01장-믿음을 넘어서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의 본질
에베소서 1장에 이름을 붙인다면 저 너머의 믿음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의 기독교 신앙은 결코 일반적인 신앙이 아니라 그 본질이 초월적인 신앙입니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성능을 초월합니까? 책의 서두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에베소서 1:3)
이 기독교 신앙은 하늘에서 온 것입니다. 심은 것이 아니라 땅에서 파낸 것이 아니라 정말 하늘에서 왔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우리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축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즉, 하늘에서 내려오는 이 축복은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중요한 보물입니다. 이 가장 중요한 것을 알고 이해할 때 우리는 변할 것입니다. 슬프게도 사람들은 이 아기에 대해 잘 모릅니다! 사람들이 100달러를 벌기 위해 1000달러를 버릴까요? 하지 않을 것이다. 같은 상황에서 사람들이 1,000위안을 벌기 위해 10,000위안을 투자하겠습니까? 그것도 아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은 우리 삶에서 가장 크고 중요하고 가장 가치 있는 것입니다. 아기야! 그러나 사람들은 그 아기가 얼마나 큰지 모르기 때문에 종종 잘못된 선택을 하고 삶에는 축복이 없습니다.
이 관점은 매우 중요합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에베소서의 독자들, 즉 교회를 세우는 신실한 무리들에게 목사든 지도자든 가리지 않고 설명하고자 했습니다. 이 원리는 하늘의 축복이며 초월적인 믿음입니다. 이 행운은 정확히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우리 삶의 주인으로 선택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근본적인 것은 하나님이 그의 풍성한 은혜에 따라 진정으로 당신을 선택했다는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모든 신자들은 우리가 주님을 믿게 된 과정이 놀랍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때때로 나는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어떻게 주님을 믿었습니까? 그는 주님을 믿었을 뿐만 아니라 그분을 섬기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우리를 선택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이런 경이로움을 전혀 경험하지 못했을 것이고, 들어갈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셨다는 것은 초월적인 믿음이요, 초월적인 축복입니다. 예를 들어, 중국 대통령이 당신에게 더 가까이 가고 싶어하는데, 당신은 운이 좋다고 생각합니까? 그리하여 오늘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주관자이신 하늘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택하여 그 앞에 지극히 존귀하고 지극히 영광스러운 자가 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매우 중요한 칭호를 얻었습니다. 땅에서 우리의 처소가 홀연히 하늘로 들리는도다. 이 얼마나 고상하고 영광스러운 은혜입니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영광스러운 은혜를 몰라 선택을 할 때 참깨를 따다가 수박을 잃기도 하고, 작은 것을 고르다가 큰 것을 잃기도 합니다. 만물이 존재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택하셔서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고자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지위가 매우 존귀하고 존귀한 것임을 여러분이 알아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많은 문제가 있지만 하나님은 기꺼이 당신을 선택하셔서 당신을 거룩하고 흠이 없게 만드십니다. 우리 인간은 오래전부터 자연과 인간의 결점 없는 합일을 꿈꿔왔기에 다양한 방법을 택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합니다. 예를 들어, 저는 고기를 먹지 않고 금식하며 개미와 같은 하찮은 생명체도 죽이지 않습니다. 벌레가 저를 물었는데, 저는 절대 때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런 일을 하면 자신이 거룩해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게 하면 헛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나와 당신을 거룩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수고는 너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 된 것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이 칭호 덕분에 우리는 그의 상속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초월의 믿음입니다. 바울의 "골로새서"는 초월적 개인, 초월적 교회, 초월적 그리스도, 초월적 믿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에베소서"라고 하면 사실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 쓴 편지인데 여전히 초월적인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은 로마인이나 중국인이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살과 피와 관계가 없으며 이런 믿음과 축복은 하늘에서 오는 것입니다. 당신이 이 은혜를 받은 사람임을 안다면 그를 소중히 여길 줄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의 작은 부분만을 봅니다. 하나님께서 앞으로 더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의 위치가 얼마나 존귀한지 알게 해 주실 것입니다.
영적 축복의 근원
다음으로, 이 행운은 어떻게 생겼습니까? 이 축복은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되는 것인데, 처음부터 지금까지 나와 당신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여러분을 택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실 것입니다. 당신과 내가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일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당신이 아닌 그분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나와 여러분이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거룩하게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십자가에서 흘리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신 것은 하나님의 비할 데 없는 지혜입니다. 이 지혜는 날이 차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것이 하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사실 전 세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인간과 자연의 합일을 꿈꿔왔습니다. 우리는 매일 우리 자신의 하찮은 일로 바쁘게 살기를 선택하고 너무 바빠서 현기증이 나고 이 좋은 축복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지금은 정말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의 삶에서 그들의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모든 시간을 보냅니다. 결국 진시황의 높이에 올랐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지위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마귀의 가장 큰 거짓말입니다. 진시황은 무사생활을 수평적으로 질주하며 육국을 멸망시키고 만세에 이름을 남기고 마지막에는 슬픔에 잠겼다. 육국을 정복한 후 마음이 몹시 아팠고, 자리에 앉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귀국 날짜가 다가오고 있었다. 불멸에 대한 그의 내적 갈망은 삶에 대한 무력감에서 비롯됩니다. 그 어리석은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그들은 누군가 필사적으로 진시황의 높이에 올라갔을 때, 사실 사람들에게 그러한 지위와 부는 필요하지 않고 영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영적인 축복에 눈이 멀어 엉뚱한 곳으로 필사적으로 달려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시작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산을 오르기로 선택하지 않습니다. 이 하늘의 영적 축복을 알 때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실 이런 개념이 있을 때 우리는 진황한무, 당종송주를 능가한다. 비록 이 황제들이 큰 공적을 세웠지만 그들이 죽기 직전까지 갔을 때 사람들의 무력감과 슬픔은 여전히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 올라간 후에 앞에 나락이 있음을 깨닫는 형제자매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확실히 운이 아닙니다.
반복합니다. 그 축복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살아 계신 하나님의 자녀이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그의 뜻과 뜻대로 행하시는 이는 우리에게서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시며 우리로 말미암아 그의 이름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다음과 같이 쓰여 있습니다.
너희가 진리의 말씀 곧 너희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그를 믿음으로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이 성령은 우리 기업의 보증입니다.
이것은 큰 축복입니다! 바울은 기독교 신앙에 대해 분명한 진술을 했습니다. 첫째, 복음을 듣습니다. 둘째, 예수를 믿으십시오. 셋째, 성령을 받으십시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비극은 첫 두 걸음을 내디디고도 성령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속임수입니다. 다음으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신도들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우리도 그래야 합니다! 그는 종종 에베소와 다른 교회들에게 물었습니다. 정말 아십니까? 이 영적인 축복을 정말 아십니까?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참으로 알게 해 달라고 자주 기도했습니다.
첫째, 복음의 소망, 그의 부르심의 소망입니다. 둘째, 이 유업에 얼마나 부귀와 영광이 있는지를 성도들이 알게 하십시오. 셋째, 모든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의 역사하심을 받아 능력을 얻게 하는 능력이 얼마나 큰지요. 그 시대에 바울의 편지를 읽는 사람들은 어려움이 없었는데 오늘날 우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 능력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바울의 서신을 엉망으로 읽습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 교회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을 보기 시작하십시오. 그래서 우리 교회의 모든 형제자매들이 하나님께 자주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 얼마나 풍성한 영광입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시는 능력이 얼마나 큰지 알게 하소서.
너희가 그리스도의 몸을 듣고 곧 교회인줄 아나니 고전1:23에 기록된 바와 같이 교회는 그의 몸이요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주제는 한 번에 명확하게 설명되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에베소에 있는 장로들과 목사들과 교사들과 동역자들은 이 복음이 그러한 복음이며 이 능력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는 능력이요 사망을 이기는 능력이요 모든 권세와 권력, 강력한, 지배적, 그리고 명명된 모든 권력.
어떤 유명인이 당신의 우상이 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위는 이 세상에서 보고 만질 수 있는 모든 것, 심지어 세상을 지배하는 흑암 세력을 훨씬 능가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형제자매들은 점차 기독교 신앙이 초월적 신앙이며 이 신앙이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나타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 문장을 실행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전에 세운 교회들은 왜 이런 능력이 없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보이지 않는 동아리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돌이키고 변화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있습니다. 그 능력이 나타납니다.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표적과 기사가 우리 가운데 크게 나타납니다.
내년에는 에베소서 1장의 마음가짐으로 주님을 믿도록 형제자매들을 격려합니다. 이 세상에 믿음의 은혜를 능가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십시오. 진로 계획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싶지만 말보다 수레를 앞세우지 마십시오. 주님을 믿는 것이 당신의 경력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사실 모든 것은 주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을 위한 것입니다. 이 개념이 바뀌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를 통해 나타납니다. 그러므로 일터에서 어려움이 닥쳐도 당황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 땅에 계신 하늘 아버지의 대리자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천국의 대사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을 모르면 소망이 무엇인지, 영광이 무엇인지, 유업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 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어려움에 부딪히면 무너진다.
그러므로 더 많이 기도하는 것은 대가를 치르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꺼이 기도하는 형제자매들이 더 많은 은혜를 받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위기에 처했을 때 기도하기를 선택하고, 어려움이 없을 때 기도하지 않는 것은 끔찍한 선택입니다. 그 어려움이 그의 기도의 대상이 되었고 바울이 바로잡으려 했던 것이 바로 이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의 목적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우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만물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일부가 되고 만물이 그 안에 있게 되었으니 하나님으로부터 유업으로 받을 이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 기업입니까? 우리, 심지어 바울도 이 유업을 설명할 적절한 단어를 찾지 못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풍성한 유업인지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 영광이 우리의 모든 문제의 답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나타날 때 모든 문제가 사라집니다. 우리가 이 장에 어떤 제목을 부여하든 괜찮지만 바울이 이 장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을 기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