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갈라디아서01장-단 하나의 복음

참된 복음을 전하는 방법: 그가 행하시는 것을 보라!

갈라디아서 1장은 바울의 어조로 읽으면 매우 강력한 단어로 된 책입니다. 그는 몇 가지 매우 중요하고 중요한 개념을 언급했습니다. 논쟁의 근원은 무엇이 참된 복음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문장은 오늘날 우리가 가장 물어야 할 것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당신은 어떤 종류의 복음을 받았습니까? 그러면 예를 들어 말씀드리자면 복음을 받은 사람은 여전히 힘들고 힘들고 힘든 삶을 살고 있으며 하루 종일 먹고 입을 것을 구하고 육신의 병도 여전합니다. ? ?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런 복음을 전하며 그것이 십자가를 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그것은 복음을 위한 고난이 아니라 삶을 위한 고난입니다. 불신자와 같이 영광이 전혀 없습니다. 사람이 참된 복음을 영접하면 반드시 하나님께 은혜와 기쁨과 평강과 존귀와 건강을 얻게 됩니다. 그런 다음 복음의 순수함과 불순함을 검토할 때 우리는 바울 서신을 주의 깊게 연구해야 합니다. 문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입맛에 맞는 방식으로 복음을 믿기로 선택할 수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은 그에게 제목을 붙인다면: 그것은 하늘로부터 계시된 복음입니다. 이 구절을 읽으면 바울이 이 계시가 하늘로부터 곧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다고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문장은 실제로 우리에게 매우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영향은 얼마나 깊습니까? 하나님의 계시가 없이는 교회를 세울 수 없고, 두 세 사람이 모여도 교회를 세울 수 없으니 반드시 하나님의 계시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하나님의 계시이고 어떤 것이 아닌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테스트해야 할 것이 많고 많은데 이 테스트의 근본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것으로 돌아가야 하고, 후에 바울은 실제로 다른 서신에서도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사물을 살피면 아주 아주 단순한 진리가 있는데 사람들은 종종 이 진리를 잊어버립니다. 사람의 인정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인지 어떻게 시험할 수 있습니까? 나는 당신에게 말한다: 그가 말한 것을 보지 말고 그가 한 일을 보라! 라고 하겠지만 안 해줄테니 쉽게 믿지 마세요. 바울이 말했을 뿐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할 수 있다! 말은 해도 행함이 없는 복음이 유익합니까? 쓸모 없는! 사람이 마귀의 권세 아래 있다가 눈감아 주고 그곳에서 계속 고통을 당하게 하고 계속 그곳에서 지배를 받으며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복음입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복음은 사람을 해방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사망의 권세를 이기게 하는 것이고,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살아내는 것이고, 복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쁨과 평안과 건강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종종 나 자신에게 한 마디 하고, 모두가 그렇게 하라고 격려한다. 예수님께서 여자나 남자나 아이나 노인을 보셨을 때 그가 귀신 들린 고통스러운 상태로 예수님께 오기만 하면 예수님은 반드시 그를 풀어주실 것입니다! 분명히. 그러면 예수님께서 복음을 전하실 때 뭐라고 하셨습니까? 말씀하시기를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고 눈먼 자를 보게 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라 하셨느니라 (누가복음 4:18).

이 세상에는 너무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하고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수학, 물리학, 화학, 과학 및 다양한 경제학을 공부했습니다. 오늘날에는 또 다른 기독교가 있고 또 다른 것을 배웁니다. 압박감은 이미 압도적입니다 회계사로서 계정이 균형 (balance)에서 벗어 났고 주님을 믿으면 풀릴 수 없지만 여전히 교회에가는 부담을 져야합니다. 그거 정말 어렵다! 오늘 우리가 기독교 신앙에서 벗어나면 즉시 그 일탈의 결과를 보게 될 것이며, 그 일탈의 결과는 더 이상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사람들에게 더 많은 부담이 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이 쉼을 얻으러 내게로 온다는 주 예수님의 약속(마태복음 11:28)이 허무해졌습니다. 사실 우리가 바울이 가르친 대로 주님을 믿으면 반드시 복음이 약속한 모든 좋은 것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들이 예수님 안에서 쉼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성경을 너무 깊이 읽을 필요가 없고, 4복음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읽으면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 심오하지 않습니다. 오래되고 심오한 복음을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모두가 박수를 친다면 속는 것입니다 그런 복음은 듣지 마십시오. 그 사람이 한 일을 보세요, 그렇죠?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하늘에서 온 이 사람의 계시, 하나님의 계시가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의 복음은 아주 단순하고 아주 단순한 복음인데 하나님은 복잡한 일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도 하고 바울이 한 일을 우리도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예수도 안하고 바울도 안하고 복음을 전하는데 무슨 복음을 전하는거야?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분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 다음 당신이 자신을 속이고 한 가지 교리만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행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매우 위험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이 복음, 즉 복음이 무엇인지를 다시 해부하고 싶습니다.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사용하는 말을 통해 바울의 복음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나는 그것을 우리 자신의 경험에 따라 해석하지 말 것을 모든 사람에게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우리의 경험은 제한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울이 체험한 것을 보고 이해한다면 이 말이 모두 신실하고 체험할 수 있음을 보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믿으면 받습니다. 이것은 믿음에 근거합니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말했듯이: 하나님의 의가 이 복음에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의는 믿음으로 말미암고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로마서" 1:17) 믿음으로 시작한 다음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믿으십시오. 그러면 생명력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측면에서 복음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계시의 복음

첫째, 그것은 계시된 복음입니다. 이 계시는 하늘로부터의 계시입니다. 이 복음은 하늘에서 온 것이기 때문에 사람에게서 온 것도 아니고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므로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할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온 복음만이 우리를 도울 수 있습니다! 이것은 다른 종교와 상당히 다릅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늘의 계시와 성령의 감동 없이는 그리스도인이 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령의 감동 없이, 교제 없이, 깨달음 없이 성경을 읽으면 아주 이상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곳에서 함께 성경을 공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매주 수요일 밤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해 옵니다. 이것은 죽은 말이 아니라 우리가 성경을 공부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선한 감동입니다. 사람이 늘고 있어서 저도 놀랐는데, 작년 이맘때에는 12명밖에 안 되었는데 오늘은 다 와주셨어요. 왜? 당신은 알고 있습니까? 모두 이곳에서 듣고 나서 성경의 말씀이 살아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신성한 계시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빛으로 읽습니다.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들어오면 이 말씀이 우리에게 영적인 양식을 공급해 줄 수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좋은 영적 식사를 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감동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영적인 양식을 먹을 때 믿음이 자라나고 우리 속이 힘이 되어 내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양치기입니다. 목자의 가장 큰 효과는 목자의 믿음을 세워주는 것입니다. 사람의 믿음이 세워지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믿음을 통해 역사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시고 그의 어려움을 그의 발 아래 짓밟으시는 것이 복음입니다.

행위가 아닌 믿음의 복음

바울이 갈라디아서에서 우리에게 주장하는 한 가지는 행위로 말미암느냐 믿음으로 말하느냐입니다. 성경에 갈라디아서라는 책이 포함되어 있음을 인해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것도 하나님의 기적적인 일이라고 믿습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돌아오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실을 다듬기 시작하실 것입니다 행실로 하나님 앞에 와서 내가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이것이 3,000년 전에 다윗이 전한 복음입니다.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렇게 자원하여 드리겠습니까? 모든 것이 당신에게서 오므로 우리가 당신에게서 받은 것을 당신에게 드립니다! (대상 29:14) **이것은 믿음의 진술입니다. 우리는 자격이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우리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시려고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좋은 소식! **

창세기부터 오늘날까지 시대를 통틀어 거의 항상 영적 전쟁의 날이었습니다. 무엇을 위해 싸우고 있습니까? 구속의 계획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 구약 시대에 마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방해하기 위해 하나님과 씨름했습니다. 구원을 방해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하십시오. 그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태어날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줄을 붙잡고 구약을 읽으면 하나님의 구속 계획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 마귀라는 것을 즉시 이해할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가 파괴되고 홍수가 난 이유는 무엇입니까? 마귀가 이 사람의 모든 것을 더럽히려 하므로 멸하지 아니하면 온 인류가 성령으로 잉태할 수 있는 여자를 찾지 못하리라.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에 태어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을 때 마귀는 완전히 패배했고 이 구속은 성공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구원을 파괴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단지 속임수를 바꾸는 것, 즉 복음의 본질을 바꾸는 것이므로 마귀는 계속해서 복음을 변질시키고 변질하는데, 정말 받아 들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바울 당시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너희가 이렇게 빨리 복음에서 이탈하고, 다른 복음을 그렇게 빨리 듣고, 다른 복음을 따르는 것이 정말 이상하구나? 여러분, 순결한 복음이 믿을 수 없고 성경이 흑백으로 너무나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는데도 그들은 그것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 정말 이상합니다. 우리 중에 어떤 사람이 있다 하더라도 그릇된 길로 가면 이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마귀는 사람들의 이기적인 욕망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그릇된 복음의 길로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이렇게 간절하게 말하면 얼마나 들어줄까?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행동에 근거한 믿음이 아니라 믿음에 근거한 믿음입니다. 믿음에 근거한 믿음은 우리 문제의 근원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행동에 의존하고 은혜를 얻기 위해 조정하면 사후에 얻지 못하지만 믿음이 있고 행동이 아직 조정되지 않았지만 은혜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히 나아와 은혜를 받으라. 다음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통해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우리의 행동도 변화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새 사람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거룩한 일을 행하실 것이라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행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신뢰하고 우리 자신을 그분께 바칩니다!

은혜와 평강의 복음

첫째는 계시의 복음이고 둘째는 믿음의 복음입니다. **세 번째는 은혜와 평강의 복음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주 우리 주 예수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당신이 우리 사이에 올 때 호의를 얻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곧 호의를 베풀게 될 것입니다. 그의 행동이 바뀌기 직전에 그는 은혜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의 믿음 때문에! 믿으면 받을 것이다. 나는 사람의 믿음을 세우는 것이 매우 간단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내가 말했듯이, 당신이 믿으면 얻을 것입니다. 당신이 그것을 얻은 후에 당신은 하나님이 실재하심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당신의 내적 자아가 변화되기 시작할 것이며, 당신의 내면의 믿음이 변화되기 시작할 것이며, 당신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날 것입니다.

믿음이 기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임하나니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믿기로 하리라 창세기부터 오늘날까지 하나님은 믿음의 복음을 전파하시느니라 야곱이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것은 성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심히 나쁠 때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개념을 배우기 시작해야 합니다. 저 삭개오가 나무 위에 앉아 예수님을 바라보니 예수님께서 그날 네 집에서 잔치를 베풀겠다고 말씀하셨다(눅 19). 삭개오의 행동이 변해서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며 나의 구원자라는 믿음을 갖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기 시작하면 은혜와 평안을 경험하고, 직장을 구할 때나 삶에서 하나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에게 삶과 일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주 예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성령의 능력의 복음

넷째: 이 복음은 성령의 능력의 복음입니다. 마귀는 사람들을 미혹할 때 여러 가지 개념을 혼동하기를 아주 좋아하는데, 첫 번째는 구원, 두 번째는 복음, 세 번째는 믿음, 세 번째는 성령과 자유입니다. 마귀의 흑암 세력의 작용으로 사람들은 잘못된 정보를 받게 되고 은혜와 평강을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는 마귀의 역사가 이러한 개념을 혼동하여 사람을 타락시켜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의 성령 관념을 혼란시키는 사역은 마귀가 사람을 패괴시키는 가장 흔한 수법이다.

나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 가운데 처음 온 사람들은 성령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나 내가 담대히 가로되 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하리라 하였노라. 아무도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사실 고민이 많았는데 그걸 이겨내느라 애를 먹었고, 우리가 이렇게 방언으로 기도하는 걸 보면 두렵지 않느냐고 자주 물어봤다. 그는 두려워하지 않고 익숙하다고 말했고 나는 신이시여, 당신은 정말 신이십니다! 세상에, 그들은 이렇게기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원을 그리며기도하고 모두가 큰 소리로기도하지만 여전히 기분이 좋습니다! 나는 행복하게 떠났고 다음에 다시 교회에 올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얼마나 강력한 분이신지 정말 놀랐습니다. 그것은 모두에게 명백합니다!

마귀의 일은 당신의 삶에서 성령의 능력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믿는 복음이 아무리 순수해도 성령의 능력을 떠나면 당신의 복음은 더 이상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은 완전하고 나눌 수 없습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 개념을 확립해야 합니다!

왜 바울의 복음을 성령의 능력의 복음이라고 합니까? 우리는 "갈라디아서" 3장 2-5절을 참조할 수 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은 율법의 행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복음을 듣고 믿기 때문입니까? 성령을 받는 것은 율법이 아닌 복음을 듣고 믿는 것이니 성령으로 시작하여 아직도 육신으로 온전케 되어 가고 있느냐? 당신은 그렇게 무지합니까? 당신이 그토록 고생한 것이 헛된 일입니까? 정말 헛된 것입니까? 너희가 율법을 지켰으므로 너희에게 성령을 주시고 너희 가운데서 능력을 행하신 자가 아니냐 복음을 듣고 믿었기 때문입니까? "얼마나 분명하구나. 바울은 그것을 복음의 열쇠로 삼고, 믿음으로 의롭게 됨으로 말미암아 성령을 받는 이 성령의 능력을.

나중에 저는 사도행전에서 한 가지 예를 보았습니다. 즉, 베드로와 바울이 전한 복음이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이전에는 어떻게 사람들을 이끌었습니까? 저는 항상 성령충만 받기를 바라고 또 알기 쉽게 설명하고 성령받기를 기도합니다. 결국 말을 하지 않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았다. 한참을 말하다 보니 입이 바싹 말랐고 고린도전서 14장, 로마서 등을 찾아보았는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실 성령 충만에 달려 있고 성령의 능력은 분명하게 말하는 데 달려 있지 않습니까? 아니요! 나중에 나는 사도행전 8장과 19장을 읽고 사도 베드로와 바울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울과 베드로는 결코 이렇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믿고 침례를 받았는지 물어보십시오.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 다음 내가 물었습니다. 성령을 받았습니까? 그 사람이 성령을 받은 일을 들어 본 적이 없다고 하면 베드로와 바울은 “오라 내가 너희에게 성령 충만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두 시간 동안 강의를 주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아니요.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어떻게합니까? 이르되 오라 내가 네게 안수하고 성령을 받으리니 즉시 변경하십시오. 성경은 놀랍습니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는 대로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순수한 믿음을 믿고 싶다면 아주 간단합니다. 그냥 해! 해보시면 이해가 되실거에요! 아무도 나를 데려가지 않아서 우회를 많이 했기 때문에 나처럼 되지 마십시오. 나는 이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명확하게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의 합리성은 사실 매우 제한적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에게 성령을 충만하게 하면 그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변화되고 체험하고 다시 오실 것입니다. 두번째. 우리 중 새로 온 사람들이 다 하는 거 아닙니까? 혼란스러운 것은 없나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마귀의 가장 큰 궤계는 믿음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이해를 구한 후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사실, 사람의 믿음을 타락시키고 사람의 행동을 기반에 더하는 것은 가장 큰 속임수가 아닙니다. 가장 큰 속임수는 성령의 능력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담대히 한마디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잃는 것이 복음인지 모르겠습니다. 복음이 성령의 권능을 잃고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마귀의 속박에서 풀어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그것이 복음인가? 아니요!

계시에는 마음의 이해가 필요하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다는 것은 깨닫기 전에는 성령세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계시는 모두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그 계시는 분명히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 조정해야 할 개념이 많은 것 같아서 지금 한 가지만 언급하고 싶습니다. 즉, 이 계시를 통해 우리는 그것을 마음으로 이해해야 합니까, 필요합니까? 필요해! 우리가 확인한 "골로새서"는 너무 분명해서 모두가 읽었고 내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골로새서" 2:2 이는 저희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서로 연합하여 저희로 넉넉하여 저희 명철에 충분한 확신을 갖게 하여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시고 계시가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의 생각은 무엇을 얻습니까? 우리가 얻는 것은 계시가 아닙니까? 계시는 깨달음인가? 우리가 할 말을 받았습니까? 예!

얼마 동안 방언으로 기도한 후에 이 형제나 자매가 어떤 자제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속으로 감정이 생기고, 그 자제를 깨뜨리기 위해 이해심을 가지고 기도하도록 그를 데려와야 합니다. 받고, 이해하고, 이해합니다. 이러한 계시는 우리에게 명확하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해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습니다.모든 춤이 신에게 점프하는 것과 같다면 문제가 될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음을 그들의 이해 속에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어떤 복음인지 체계적으로 논의합니다. 아니요! 성령 충만하면 방언으로 기도할 수 있지만 바울은 방언으로 기도할 뿐 아니라 이해력으로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고전 14:15). 그래서 오늘 우리의 복음은 성경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복음의 순결을 지킨다는 것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1장에서 바울은 매우 중요한 주제를 언급했습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까?

이것은 매우 중요한 원칙입니다! 복음의 순수함을 주장하다 보면 바울이 직면한 문제, 사람을 기쁘시게 하느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느냐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사실 교회 건축의 가장 큰 걸림돌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받는 것입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느님께서 저와 선생님의 부인이 그런 마음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호감이 가지 않습니다. 호감이 가는 것으로 교회를 세울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계시를 받기 위해 특정한 사람에게 호감을 사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형제자매들이 있는데 잘 들으세요. 앞으로 우리 교회에 아주 부자가 오면 제가 그에게 호감을 줄 것 같나요? 나는 그에게 전혀 호의를 베풀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그가 악마의 손아귀에서 그를 풀어주기 위해 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안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그가 교회를 필요로 하고 교회가 그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실수하지 마십시오.

아주 부자인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지 마십시오: 목사님, 이 사람은 아주 부자입니다. 특별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까? 아니요! 나는 무엇을 좋아합니까! 내가 사람들을 기쁘게 한다면 교회를 짓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에게는 남을 기쁘게 하는 일에 큰 장애가 있습니다. 호감의 문제는 목회자에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형제자매에게도 나타난다.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을 기쁘게 해야 한다고 하면 복음을 전할 수 없고 기쁘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폴이 그렇다!

이 세상에서, 회사에서든, 가족에서든, 인생에서든, 우리는 누구를 기쁘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당신이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것은 쓸모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돈을 좀 빌려줄 수 있느냐 불편하면 빌려주고 빌려주면 갚지 않으면 화를 내서 유혹에 빠진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할 필요가 없다면 이생에서 도움을 요청할 필요가 없습니다.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고, 내 손에는 성령의 능력이 있고, 내 손에는 하나님의 전능한 능력이 있고,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기쁘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이 복음이 바로 복음입니다. 이 복음에서 벗어나 다른 것을 추구한다면 여러분은 많은 것을 잃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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