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고린도후서05장-부수고 짓는다(새롭게 창조된 사람들의 논리를 생각하다)
서론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상처를 받은 후 자기 변론에 최선을 다했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말을 하고자 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을 보면 바울은 허물고 세우는 영적 개념을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내가 왜 이렇게 봉사합니까? 나 자신이 무너지는 방식 때문에. “그러고 나서 그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하나님과 화해하기를 간청합니다. 이것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말입니다.
바울은 헐고 세우는 것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들을 몇 가지 소제목으로 나누었습니다.
육체와 불멸
첫 번째 소제목은 몸과 영생입니다. 바울은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이 장막에서 신음하며 수고하며 이것을 벗으려 하지 아니하고 다른 것을 입나니 이는 이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5:4)
내 육신이 생명에게 삼켜지기를, 육신을 떠나 주님과 함께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을 떠나고 싶고 언젠가는 주님께로 돌아가서 이 세상의 수고를 쉬고 싶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나는 알고 있습니다.
때때로 나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일찍 데리러 이곳을 떠나십시오. 이것이 당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나는 정말로이 세상의 수고에서 쉬고 싶습니다. 정말 너무 어렵습니다! 나는 봉사하는 것이 매우 기쁘지만 육신 안에 있는 것은 그리 좋은 일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이것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그래서 바울은 무엇을 주장하고 있습니까? 바울은 내가 이 세상을 떠나기를 원하노라 내가 이 세상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으리요 이 세상의 모든 육체와 육체를 다 찢고 이 곳을 떠나 주님과 함께 있고 하늘에 하나님이 주신 새 집을 갖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이것을 벗는 것이 아니요 저것을 입는 것이 그의 속에 있는 소망이니라. 이 소망을 품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에 소망을 세우지 않습니다. 당신의 희망이 세상에 세워지지 않는다면 사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종종 그렇게 많은 고통을 당합니까? 세상사를 온 힘을 다해 붙잡고 놓지 않기 때문인데, 실은 무의미할 때가 많다. 바울은 진심 어린 말로 고린도인들에게 말했습니다. 사실 저는 바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그가 이러한 모욕을 당한 후에 그는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을 잡을 수 있습니까?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부수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고린도 교인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말씀을 읽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현장에 있지 않기 때문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 나는 이것을 원한다. 필멸자가 생명에 삼켜진다.
사실 바울의 복음은 한숨의 한숨과 육신의 수고라고 할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내내 바울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러한 수고와 환난을 겪어야 한다는 신학적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예수님의 복음과 비슷합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입니다. 사실 세상의 고난은 주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와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을 믿으면 고난이 있고, 당신도 수고했고, 우리도 수고했고, 우리가 수고하지 않아도 수고했지만, 어쨌든 힘든 일입니다. 그는 이 육신 안에서 한숨을 쉬고 수고하며 떠나기를 갈망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 우리가 주와 따로 있는 줄을 알고 (고린도후서 5:6)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이제 막 주님을 믿게 되었으면 지금은 믿음으로 내 말을 믿으십시오. 이 세상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 이 때문에 나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여섯 번째 구절에서 우리는 종종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죽음이 두렵지 않다면 무엇을 더 두려워하겠는가. 나를 채워줄 수 있는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 나 혼자 죽을 수 없어, 누가 도와줄까? 와서 나를 성취하십시오. 이것이 바로 바울이 의미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하고
우리는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하노라. 우리는 항상 담대하여 몸으로 사는 것이 주님과 분리되는 것임을 압니다. (고린도후서 5:7-8)
바울은 다시 말했습니다. 다른 무엇 때문이 아니라 내가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무엇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바울이 이 세상에 와서 신약성경을 썼는데, 그가 얼마나 썼는지는 우리에게 말할 수 없고, 실제로 증명하기 어렵습니다. 그게 증거야, 정말 믿니? 여전히 믿음에 의존해야지, 보는 것에 의존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님과 함께 살겠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육신으로 살든지 몸을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을 들을 수 있지만 어떤 사람은 못 듣습니다. 인생은 무의미하고 무의미하다는 오늘의 바울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할 수 있다면 이 일은 보는 것으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미래에 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입니까 아니면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입니까?
그래서 사람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까? 바울의 복음주의적 신념 전반에 걸쳐 그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한 가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가? 오늘도 나는 너희에게 도전하고 싶다: 너희는 나를 따라 예수님을 믿고, 함께 교회를 세우고, 개인적으로 많은 은혜를 체험했는데, 너희가 하는 일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느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하면 곤란합니다. 당신이 작은 부모, 그룹 리더 또는 작은 목자이고 양 떼를 치고 사람들을 기쁘게하기만 한다면 사람들을 섬길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마음가짐을 가지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면 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이 우리 행동의 가장 기본적인 기준입니다. 그래서 저는 형제자매들에게 다음 문장을 기억하도록 격려합니다. 우리의 평생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진심으로 말하되 나는 다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할 뿐이요 실은 너희가 나를 상하게 하여도 상관치 아니하노니 너희에게 그리스도와 화목하라 권하노라 왜? 육신으로 사는 것 자체가 수고와 한숨인 줄 알고 이 세상을 떠나 주님과 함께 살고자 하는 것이 제 삶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내 삶의 목적이라면 내가 주 예수님께 나왔을 때 결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주 예수님 앞에 나온다면 당신이 무엇을 설명할 것인지 정말로 생각하십시오.
그래서 나중에 바울은 육체와 영생, 믿음과 보는 것, 사람의 기쁨과 하나님의 기쁨을 확장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보기 위해 마음으로 사람을 보라. “그가 마음의 하나님 경외함과 그 속에 나타난 양심을 의지하였은즉 외모로 자랑하되 마음으로는 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말할 때에 그들로 대답할 것이 있게 하라.
주님을 위해 살다
저는 바울의 전체 믿음의 기초가 영생을 얻고 사람의 영적 생명을 세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위해 죽고 모든 사람이 죽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에게 동기를 부여한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으니 이는 산 자들이 다시는 자기들을 위하여 살지 않고 그들을 위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고린도후서 5:14-15)
당신은 바울이 당신이 주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아니요, 바울은 내가 주님을 위해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많은 서신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 사랑스러운 사람인 것 같아요. 죽고 부활하신 주님을 위해 살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귀한 것으로 얻기 위해 자신을 버리고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런 사람은 당신이 그와 어울리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는 당신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세상 것을 위해 산다고 하면 조심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을 속이고자 한다면 기본적으로 세상 것을 속이는 것입니다. 사실 세상에는 우리가 속이고 싸워서 얻을 수 있는 좋은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주를 위하여 살았으니 자기뿐 아니라 상대방도 가리키며 간절히 권하여 가로되 너희가 주를 위하여 살라 주 예수께서 너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니 이는 너희로 주님을 위해 살 수 있습니다. “조금 지루하게 들리겠지만 사실은 약간 가슴이 찡해지는 것 같아요.
새 마음
그런 다음 바울은 이렇게 요약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이 모든 것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고린도후서" 5:17-18)
사람이 새로운 피조물이 되려면 몇 가지 설명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첫 번째 특성, 당신은 정말 육신의 삶을 즐기십니까? 아직도 영생을 갈망하고 있습니까? 영생을 얻고자 한다면 이 몸을 떠나 영생에 들어가고자 한다면 오늘부터 예수님을 위해 살며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은 사람이 이 세상에서 육신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육신을 위하여 계획하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앞에 나아가 주를 기쁘시게 하려 함이로다.
두 번째 특징은 새로운 피조물은 보는 것으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예수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믿음 대신 보는 것에 의존한다면, 당신은 새로운 피조물이 아니어야 합니다. 당신은 여전히 옛 사람입니다. 사람이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변할 때 처음에는 10%가 새로워야 하고, 90%는 낡아야 하고, 그 다음에는 50%, 50%가 됩니다. 육신의 것은 점차 죽고 보는 것은 하나씩 죽고 믿음의 것은 하나씩 살아나니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은 하나씩 감소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하나씩 증가하느니라 영생에 속한 모든 것이 살아납니다. 이것은 육체의 정욕과 정욕을 죽이는 과정입니다. 새 피조물은 겉으로는 똑같아 보여도 속으로는 새롭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과 다르지 않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한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이 당신에게 역사하고 있다고 생각하십시오.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역사하기를 원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에게 오셔서 당신에게 역사하시도록 기꺼이 하시겠습니까? 사람은 참 재미있다 어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이 마음에 들지 않아 하나하나 예수께 드리고 또 예수께 드린 후에 도로 가져가니 점점 개인 소유지가 적어지니 주라 주 예수께 돌아가서 주 예수께서 그들을 다스리게 하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그들을 다스리실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새로운 창조물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사람이 하면 곤란하고, 사람이 하면 복음은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마음을 열고 예수님이 오셔서 우리의 주님이 되어 우리 삶을 책임지도록 초대한다고 말할 때 의미하는 것입니다. 정말 하고 싶니?
위와 같은 조건으로 사람의 마음과 마음이 하나님과 화목해야 합니다. 반대로 초심만 있으면 화해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안에 내재된 것을 포함하여 우리 내면의 생각과 관념을 포함하여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과감히 허물기 시작합시다! 그래서 저는 또한 많은 형제 자매들이 발전하고 있음을 봅니다. 그의 기초는 상대적으로 열악하기 때문에 진전을 이루었지만 여전히 철거해야 할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더 강한 기질을 가지고 태어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더 약한 성질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결론
우리는 끊임없이 육신에 속한 모든 것, 보는 것에 근거한 모든 것, 우리의 모든 내재된 생각을 무너뜨리고 우리의 마음을 더욱 하나님처럼 만들어야 합니다. 오늘날 나는 감히 내가 하나님과 매우 흡사하다고 자랑할 수 없지만, 내가 바울을 닮기 시작했다는 것과 그의 믿음과 개념에 매우 동의한다고 자랑할 수 있습니다.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오늘부터 식별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할 것입니다. 당신이 분별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할 때, 그는 당신에게 성령의 능력에 대한 증거를 줄 것입니다. 이것이 5절이 여기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를 훈련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 증거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고린도후서 5:5)
그래서 제 목회에서 달라진 것 중 하나는 제가 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 잘못하더라도 나는 당황하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키우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서 행하신 일로 우리가 뭔가 잘못한 것 같았는데 나중에 보니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아주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조금씩 맡기고, 조금씩 주고,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점점 더 하나님처럼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