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열왕기 하25장-저주가 완수되었습니다!

저주가 성취되다

이 장에서 하나님은 신명기에 예언된 저주를 이루셨고 이 저주는 시드기야에게 성취되었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길을 갈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시드기야는 믿음이 부족하여 비참한 길을 걸었습니다. 로마서 2장 4절에 "혹 네가 그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멸시하느냐"고 했습니다. 네 완악하고 회개치 아니한 마음이 네게 진노를 쌓아 두었나니 이는 하나님의 진노의 날과 그의 의로운 심판이 이르게 하려 함이라. 이 장은 실제로 심판의 날이 왔다고 말한다.

근시안적이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종종 하나님의 행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즉각적인 것을 좋아합니다. 예를 들어 어제 범죄를 저지르고 오늘도 심판을 받지 않고 살아있다면 시련이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 계속해서 죄의 길을 택하는 것입니다. 이 유다 무리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행사를 알지 못하여 예속의 재앙을 당하면서도 항상 큰 포용과 인내를 보였고, 자기 죄와 하나님의 사랑을 회개하기는커녕 하나님의 인내를 남용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아킬레스건, 즉 근시안을 드러냅니다.

예레미야서는 이 시대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기록한 책입니다. 그 중 44장 15-18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다 무리가 그달리야를 죽이고 선지자 예레미야와 함께 애굽으로 피신하였다. 가는 길에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레미야는 너희가 유다 땅에 머물러 있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들은 총독을 죽였는데 어떻게 예레미야의 말 때문에 이곳에 머물며 바빌로니아 사람들이 그들을 잡을 때까지 기다렸습니까? 그래서 16-17절에서 그들이 예레미야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우리에게 말하는 것을 우리가 듣지 아니하리라. 우리는 우리가 말한 대로 해야 합니다. 왜? 우상을 섬기던 시절에 재앙을 당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우상숭배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예레미야 44:15-19 참조). 사실, 그들이 기대했던 것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그들은 모두 애굽에서 죽었습니다.

그들은 예레미야가 선지자인 줄 알고 선지자에게 물었지만 선지자의 말대로 행할 담력이 없었고 결국 자기 생각을 좇아 멸망을 당했습니다. 이후 유다인들은 회개하지 않고 그 원인을 우상숭배를 멈춘 탓으로 돌렸는데, 이는 그들의 근시안적인 태도가 완전히 끝났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가 본받을 수 있는 한 가지는 위험에 직면하여도 두려워하지 않는 예레미야의 믿음입니다.

인간의 눈은 매우 중요합니다. 독수리처럼 하늘을 날아 땅을 내려다보는 사람은 독수리의 삶을 살아야 하고, 근시안적인 사람은 쥐와 같은 삶을 살며, 벌레는 근시안이 더 많아 보는 눈이 많 가깝고 작으며 움직이는 것만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근시안적인 사람들이 주님의 많은 은혜를 체험하고도 여전히 하나님을 시험하고 하나님을 저버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즉시 심판하지 않으시고 사람은 자기 생각대로 멸망할 뿐입니다. 근시안적인 사람은 하나님이 시험을 받지 않으신다는 것을 모르고 자기 생각대로 판단할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용서하시며 자비로우시며 항상 우리가 겸손하고 회개하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근시안적이고 즉각적인 결과를 원한다면 우리는 멸망할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은 종종 우리의 질병을 매우 빨리 치유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삶을 구축하는 데는 과정이 필요하며 사물을 보는 방식도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의 구축을 결정합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은 즉각적인 것이 아니라 씨를 뿌리고 자라 열매를 맺는 과정입니다. 죄의 씨를 뿌리면 독초와 쓴뿌리가 자라 저주를 거두고 축복의 씨를 뿌리면 축복을 거둔다. 믿음으로 뿌린 씨는 반드시 천대까지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저주의 원인

너희 중에 남자나 여자나 종족의 우두머리나 지파의 우두머리가 오늘날 그 마음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떠나 그 민족들의 신들을 섬기지 아니하고 저주하는 말이 그 마음에 여전히 자랑하여 말: 내가 고집이 세서 모든 사람을 괴롭힐지라도 나는 안전하다. (신명기 29:18-19)

유다에게 저주가 내려졌을 때 이미 나라는 망했지만 그들이 신경 쓰는 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행하심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이었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율법 때문에 자랑했지만 하나님의 저주는 무시하고 오늘의 일시적인 평화만을 원했습니다.

그것을 보는 자와 모든 민족이 묻기를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이 땅에 이같이 행하셨는고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사람들이 대답할 것은 이 땅 백성이 자기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그들과 언약을 세우신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그들의 알지 못하는 다른 신들을 섬기며 섬기는 연고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안배하지 아니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 땅을 향하여 진노하사 이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가 그 땅에 내리시니 (신명기 29:24-27)

하나님의 관심은 솔로몬이 자신을 위해 지은 성전이 아니라 사람이 그와 맺은 언약이다. 이 저주는 유다 백성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겼을 때 임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면 저주가 임합니다. 저주가 이루어지면 유다 왕국과 같은 멸망의 열매만 먹을 수 있습니다.

초심 잊지마세요

근시안적인 므낫세는 나라를 부흥시키기 위해 경제적인 면에서 개혁을 시도했지만 결국 부흥은커녕 망하고 말았습니다. 왜 이렇게 끝났습니까?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면 그 땅도 사람과 함께 저주를 받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이것에 대해 예언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근시안과 일시적인 쾌락의 탐욕으로 인해 수백년 또는 천년 후에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고 멸망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눈앞의 안락한 삶이 행복이라 생각하지 말고 먹고 마시고 즐기는 안락함을 즐기다 보면 시야가 더욱 근시안적이고 편협해집니다. 일시적인 평안은 평안이 아니라 영생의 축복만이 영원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은 살아 있을 때 일시적인 향락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본장에 언급된 시드기야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그 결과를 거두매 자기의 모든 아들들이 자기 눈으로 죽임을 당하고 자기 눈이 뽑히는 것을 보았더라 그가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물으러 갔을 때에 예레미야가 분명히 그에게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 만군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에 네가 나가서 바벨론 왕의 두목에게 복종하면 네 생명이 살리라 불에 타지 아니하고 너와 네 온 집이 살리라 만일 네가 나가서 바벨론 왕의 방백들에게 복종하지 아니하면 그 성이 갈대아인의 손에 넘어가리니 그들이 불사를 것이요 불이 붙으니 네가 그들의 손에서 놓이지 못하리라 . ("예레미야" 38:17-18) 그러나 그는 그것을 믿지 않았고 이미 항복한 유다인들이 갈대아인들이 ​​그를 놀리고 모욕하고 체면을 잃게 만들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예레미야가 계속 그를 설득하여 갈대아인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그가 항복한 후에 그의 생명을 구원할 수 있다고 확신시켰습니다 바빌론 왕의 손에 이 여인들이 말할 것입니다 당신을 능가하여 당신의 발이 수렁에 빠진 ​​것을 보고 돌이켰습니다. 그들은 당신의 아내와 자녀를 갈대아인에게 데려갈 것입니다. 네가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바벨론 왕에게 잡혀 이 성을 불사르리라 (예레미야 38:21-23)

결국 시드기야는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말라고 협박하여 결국 항복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근시안적인 사람들은 종종 매우 혼란스러워합니다.시드기야는 선지자에게 무엇을 해야할지 물었지만 그는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반역을 선택하는 것은 멸망의 길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동하는 사람은 복된 길을 택한 것입니다.

이 구절들을 함께 보면 분명해진다. 이 말씀은 신명기 28장 47-48절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네가 부요할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쁨과 기쁨으로 섬기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네 원수 중에서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궁핍하리니 당신에게 보냈습니다. 그가 너를 멸하기까지 네 목에 철 멍에를 메울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궁핍할 때 여호와를 찾지만, 부자가 되면 눈앞의 안일한 삶에 속아 자신의 소소한 시절에 취해 하나님을 멀리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우리 삶의 근본이며 우리의 안정된 삶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하므로 우리는 부요할 때에 기쁨과 기쁨으로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섬기기로 결심하고 항상 경계하고 지키며 눈을 크게 뜨고 지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어떤 미혼 형제자매들은 매일 밤 교회에 와서 기도하기로 선택했고, 그들의 삶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또한 결혼 후에도 이런 삶을 유지하고 안일한 삶에 혼란스러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누나 중 한 명이 막 아기를 낳았는데, 온통 아기가 무사히 태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것이 복된 생각일까요? 말하자면, 내가 생각하는 모든 것은 내 평생 동안 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내 삶이기 때문입니다.

비밀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나타난 것만이 영원토록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키게 하려 하심이라 (신명기 29:29) 상식의 99%는 마귀에게서 나오고 육신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상식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치하지 마십시오. 육신의 삶을 멈추고 영의 삶을 시작하십시오.

축복의 길을 선택하다

평생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왜 나라가 망하고 가정이 망하는 상황으로 축소되어야 하는가? 나라가 망하고 가정이 망하는데 자기 체면만 사랑하는 것이 서글프지 않습니까? 시드기야는 참으로 혼란스러워 예레미야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분명히 알고 예레미야를 옥에서 끌어내어 심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숨기지 않고 스스로에게 말하고자 하여 자기가 믿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그것. 이것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남들이 살 길을 가리켜도 받지 아니하고 눈을 뽑고 자식을 죽이는 길을 고집하니 근시안이 안타까운 일이로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생명을 지키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당신의 생명을 버리면 당신의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참조, 마 10:39, 16:25).

생명은 죽은 후에 얻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드기야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면하여 전한다 할지라도 결국 믿느냐 마느냐는 개인의 선택임을 시드기야를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선지자가 당신이 가야 할 길을 알려준다 해도 당신이 그것을 따르지 않는다면 당신의 인생이 잘 끝날 것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네가 이 땅에 있는 동안 나를 네 남편보다, 네 자녀보다, 나를 네 부모보다 더 사랑하면 이생에서 백 배와 내세에서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음 세상 (누가 복음 "18:29-30 참조). 좋은 약속입니다. 율법책의 모든 말씀에 순종하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합시다.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선민과 백성이 마음과 힘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사랑하기로 선택하여 축복의 길을 선택하였을 것입니다. 여호와를 믿은 지 얼마 안 된 형제자매라 할지라도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만 구하면 하나님이 너희 앞에서 너희를 위하여 길을 열어주시리니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자신의 길을 고집하고 자신의 일을 하며 하나님께 죄를 짓는 사람이 된다면 저주받은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므낫세와 여호야김과 시드기야가 다 이러하니 다 작은 날을 중히 여기다가 다 죽고 말더라

저는 모든 사람, 특히 기혼자들이 작은 삶이 아니라 큰 삶을 사는 법을 배우고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하기를 권합니다. 우리는 부자가 되었을 때에도 항상 경계하여 안일한 생활에 속지 말고 여전히 정결한 마음을 유지하고 여호와 하나님만을 섬기는 마음을 유지하며 여전히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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