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열왕기 상22장-아합의 보응!

영적원리: 하나님은 보응의 하나님이시다

이 장을 읽은 후 생각해 봅시다. 이 장에서 말하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답은 아합의 보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보응의 날이 오면 회복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미가야가 아합에게 진실을 분명히 말하여도 마음이 아무리 명료해도 돌이킬 수 없었습니다. 이 장은 로마서 2장의 말씀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 사람아, 네가 그런 일을 행하는 자를 심판하여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네 자신은 남과 같이 행하느냐? 아니면 그분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함을 깨닫지 못하고 그의 인자하심과 관용과 길이 참으심을 멸시하느냐? 네 완악하고 회개치 아니한 마음이 네게 진노를 쌓아 두었나니 이는 하나님의 진노의 날과 그의 의로운 심판이 이르게 하려 함이라.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으시리라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진노와 진노로 하시리라. 악을 행하는 모든 자에게 환난과 곤고를 내리시리로다 (로마서 2:3-8)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 분노를 쌓지 말고, 한 가지 나쁜 짓을 하고 나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분노가 어느 정도 쌓이면 하나님의 보응이 임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보응의 하나님이 아니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보복은 실제로 개인이 한 일에 따라 개인에게 보복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을 알고 있으며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거짓 선지자 아합과 미가야가 하는 일을 다 마음으로 알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영적 결과가 무엇인지 알려주는 양심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라도 아무리 부패해도 양심이 악을 행하고 있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모든 일을 경계해야 합니다. 심판 날이 오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재능 있고 기름 부음 받았다해도 그것은 쓸모가 없습니다.

거짓말하는 영의 역사

인간의 삶과 죽음은 영적인 문제입니다. 여호와께서 누가 아합을 꾀어 죽게 하겠느냐고 물으시는 것을 볼 때 아합이 이스라엘의 왕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의 생사를 특별히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아합뿐 아니라 누구의 심판도 우리 하나님의 주관 아래 있습니다. 죽은 후에 육은 흙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지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느니라(전도서 12:7 참조). 사실 아합이 죽은 후에 그의 영혼은 하나님께로 갈 것이고 하나님은 그를 심판하여 지옥에 던질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영적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중요한 사람에게만 관심을 두신다고 생각하여 앞으로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의 진노를 자신에게 쌓고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 매우 무서운 일입니다. 아합의 심판도 마찬가지입니다.

아합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을 때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즉 거짓말의 영이 그 작전에 가담했다는 것입니다. 이 거짓말의 영은 거짓 선지자에게만 역사한 것이 아니라 아합에게도 역사하여 아합의 마음을 강퍅케 했습니다. 사실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영계에서 작용합니다. "출애굽기"로 돌아가 보자. 이집트의 바로가 기적을 거듭 보았을 때 이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을 몰랐습니까? 그는 분명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하고 싶었고 여전히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추격하고 싶었고 홍해에서 죽었습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완고한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 너무 완고하다는 것을 서비스에서 발견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당신의 친척이라면 사실 너무 슬퍼 할 필요가 없습니다. 마음을 다해 그를 섬기십시오. 최종 경로는 여전히 그가 선택합니다. 저에게 묻는다면 이 사람들에게 미안하다고 느낄까요? 나는 그가 살아 있는 동안 온 마음을 다해 그를 섬기는 한, 할 수 있는 한 하루를 구하고, 할 수 있으면 이틀을 구하면 후회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가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다면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파멸의 길을 택한다면 정말 어쩔 수 없다. 이 경우 나는 그를 유감스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아합의 죽음은 거짓말하는 영의 역사의 결과였습니다. 어떻게 작동합니까? 그것은 인간의 비겁함을 통해서입니다. 거짓말의 영에 지배당할지 여부는 기본적으로 소심한 사람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다음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경향은 특정 ​​환경에서 두려워하고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두렵고, 벌을 받고, 심지어 생명이 위태로워도 진실을 말하기로 선택하는 이 자연스러운 경향을 극복할 수 있다면, 당신은 거짓말을 극복할 것입니다.

사실 이 사백 명의 거짓 예언자들은 모두 자기들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시드기야도 자기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왜 거짓말을 하는가? 그들이 이스라엘 왕을 대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추론에 따르면 이것은 "시사를 아는 사람이 영웅"이라고 불립니다. 즉, Ahab 왕입니다. 그는 내 삶과 죽음을 결정하고 싶어합니다. 내가 그에게 진실을 말하면 왕을 화나게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이 거짓 선지자들은 모두 왕의 봉급을 받고 왕은 이 순종하는 말을 듣도록 그들을 키웠습니다. 아합은 그들을 믿었습니까? 물론 아합도 믿지 않았습니다. 아합은 무엇을 위해 그들을 키웠습니까? 저도 놀랐습니다.

거짓말을 알아차리는 방법

사람이 마음이 두렵고 득실을 걱정하면 그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영웅'이 되고 싶어 하겠지만 이것은 세상의 원칙입니다. 그들은 사람이 거짓말에 익숙해지면 매우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성경은 사람을 두 부류로 나누는데 하나는 사람을 두려워하는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두려워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둘은 공존할 수 없다. 어떤 종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고, 다른 종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노케 하는 자들은 요한계시록에 기록되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유황으로 하는 것이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니라(계 21:8) 여기 있는 첫 번째 사람은 소심하고 마지막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소심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담대하면 사람보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성경은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아합의 심판 때에 백성이 일시에 나뉘니 거짓 선지자 사백 명과 참 선지자 한 사람으로 나뉘었더라 그 거짓 선지자들은 사람을 두려워할 줄만 알면서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도 모르고 매우 난폭합니다. 사실 시드기야는 뿔 두 개로 몸짓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그저 버팀목에 불과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문제를 우리의 삶과 결부시켜 깊이 생각합니다. 교회에 가서 "너희가 죄를 조금 지어도 상관없다, 누가 죄를 짓지 않느냐,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하면 참으로 위로를 받지만 실제로 심판을 받을 때는 그렇지 않습니다.

한번은 동료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형제님, 십일조를 바쳐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난의 저주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 결과 저를 등지고 십일조를 요구하지 않는 교회로 가셨고 그 곳의 목사님은 아주 좋은 분이셨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얼마 전에 그는 WeChat에서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는 실업자이고 여전히 집에 아내와 두 자녀가 있습니다. 피해자는 누구입니까? 좋은 말 듣기 좋아해도 소용없으니 복 받기 좋아해야 합니다. 복 받는 비결은 생명을 창조하는 말씀을 듣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 생명을 주는 말씀이라면 귀가 듣기 싫어하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아침마다 나를 일깨우시며 내 귀를 깨우사 내가 배운 자를 듣는 것 같이 듣게 하셨도다(이사야 50:4) 비록 이 말이 귀에 듣기 좋지는 않지만 이 말이 내 삶을 형성했다는 것을 마음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누가 진실을 말하고 누가 거짓을 말하고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신약을 주의 깊게 읽으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죄를 지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말은 매우 확고합니다. 그러므로 거짓 선지자와 참 선지자의 차이는 하나는 사람을 두려워하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시작하도록 격려합니다. 사람들은 남을 기쁘게 하려고 거짓말을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허영심이 됩니다. 거짓 선지자는 아합에게 아첨했지만 아합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굳세게 서서 참말을 하고자 하면 거짓의 영이 너희를 제어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항상 깨어 있으라

아합을 돌이켜보면 그는 사실 속으로는 미가야가 옳았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을 피할 방법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는 여호사밧에게 왕의 옷을 입히게 하고 자신은 평상복을 입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방법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수 없습니다. 유일한 방법은 회개하는 것이며 회개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은혜입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좋은 말만 하고 회개의 말은 하지 않는다면 조심하십시오. 우리는 영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의 진노가 쌓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로마서" 2장 10절은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지어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적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아합이 죽자 그의 아들이 그를 이어 왕이 되었습니다. 논리적으로 말해서 그의 아들은 아합이 한 일과 그의 죽음에 대해 그리고 미가야가 말한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에 대해 매우 분명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여전히 자신의 길을 갔고, 당신은 그것이 매우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사람은 이렇다. 인생의 소소한 일에 몰두하면 이전 일을 잊기 쉽다. 예를 들어, 사람은 죽은 사람을 보는 순간 큰 충격을 받지만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면 곧 그 충격을 잊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 이런 것을 읽어야 합니다. 다윗과 같은 사람에게는 영광을, 아합과 같은 사람에게는 환난과 환난을 더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후에 우리는 아합과 그의 아들들과 같이 되지 말고 인생의 모든 재앙을 이기는 강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재난은 인간의 방법으로는 막을 수 없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라면, 즉 인내하며 선을 행하고 영광과 존귀와 불멸의 축복을 구하면 하나님께서 영생으로 갚아주시고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더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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