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열왕기 상09장-하나님은 왜 자기 이름을 부르는 이 성전을 버리셨습니까?

우리는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책 전체를 이해할 필요는 없지만 몇 가지 핵심 사항을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내용을 이해하기를 기대한다면 여전히 "창세기"의 첫 번째 장을 읽고 있을 수 있습니다. 10년 후, 당신은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 책이 "성경"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성경"은 경전이며 그 내용이 너무 심오하여 얼마나 광대한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여기에 얼마나 많은 진실이 저장되어 있는지 상상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우리는 매번 30분씩만 성경을 공부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능한 한 많이 얻을 수 있고 모든 것을 얻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습니다. 사실 똑똑한 사람들은 이렇게 책을 읽는다 아이가 책을 읽는 것을 보면, 아이가 책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곳에서 계속 읽고,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면, 공부를 잘 못하는 아이. 그래서 우리는 이 진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거룩한 기도

열왕기상 9장 1~9절 말씀만 하겠습니다. 이전 장에서 우리는 솔로몬의 일곱 가지 기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열왕기"의 저자는 사실 오래 전에 한 가지를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즉, 우리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창세기"부터 읽기 시작하면 누군가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즉시 응답하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곰곰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많은 교회에서 우리는 응답되지 않은 수천 건의 기도를 발견합니다. 문제를 찾으려면 솔로몬의 일곱 기도로 돌아가십시오. 인간의 죄는 하나님을 분리시켰음에 틀림없다.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시니 작은 죄도 용납하지 않으실 정도로 거룩하십니다. 아주 작은 죄도 우리의 기도를 방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비전은 거룩하고 연합되고 영광스러운 군인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이 개념을 지속적으로 강화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첫째, 거룩함이 매우 중요한데, 거룩하지 않으면 주님의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물로 드리는 것을 여호와께 거룩하게 하는 것을 거룩이라 일컫느니라 손에 들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거룩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산 제사를 드려 거룩해질 수 있기 때문에 주 예수님이 오셔서 주님과 왕이 되시도록 영접해야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당신이 실수를 바로잡지 않았어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틀림없이 당신이 그것을 바로잡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거룩하면 하나가 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떨어지는 것을 보리라.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교리가 아닙니다. 이 장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내 눈과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네가 만일 네 조상 다윗을 좇고 네 마음을 내 앞에 바르게 하여 내가 네게 명하는 모든 것을 행하고 내 규례와 법도를 지키면 내가 네 나라를 이스라엘 중에 견고하게 하리라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이르기를 네 자손이 이스라엘 왕위에 앉기를 그치지 아니하리라 한 것과 같이 하리라"(왕상 9:3-5)

왕자 정신

이 문장은 다윗이나 솔로몬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나와 여러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너와 나를 왕으로 삼는 것이지만 하나님은 너와 내가 평민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 어떤 사람은 속인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어서 천국에 가면 속인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하늘은 왕으로 가득 차 있고 평범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다스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고 예수께서 교회의 머리이시기 때문입니다. 왕이 되기 싫어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할 수 없느니라 이 일이 중하도다 그 성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영광의 성이 있고 성령이 등불이 쓸만하고 전기가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성읍의 등불이라 그리로 많은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왕이 되려면 자신을 보물처럼 여기고 왕의 마음가짐을 가져야 합니다. 당신이 왕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이해할 때 당신이 사는 상태는 매우 다를 것입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이 풀뿌리 정신으로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왕이기 때문에 군주의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 말씀을 후대에 읽게 하셨느니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천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니라(마태복음 12장 50절) 그를 좋아하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우리의 마음이 그분께로 향해야 합니다. 내면에 고귀함이 부족하면 많은 나쁜 습관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런 정신력이 없으면 사람들의 가장 심각한 반응은 내일 일에 대해 걱정하고, 자신이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앞으로 어떻게 살지 걱정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가난하게 살기 전에 사람의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이 끔찍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가 고상한 태도를 갖기를 원하십니다. 보통 나는 사람들에게 면접을 보도록 훈련시켜 형제자매들이 재능 있는 사고방식을 가지도록 합니다. 당신이 이 직업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당신을 재능으로 필요로 하고 이 직업은 당신이 손해 보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그 회사. 며칠 전 한 자매가 인터뷰에서 돌아와서 인터뷰가 훌륭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이제 공주이기 때문에 전혀 긴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긴장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마음가짐을 가질 때 문제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고 반드시 최고의 축복을 받게 되는데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거짓된 자존감을 버리고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분별이 있으면 죄를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의도는 선하지만 사람의 의도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정말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우리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고상한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까? 목사님과 사모님에게 몇 마디 욕을 듣다 보면 금세 해를 끼치려는 듯한 부정적인 태도가 나오게 됩니다. 그는 왕자의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지 않을뿐만 아니라 노예의 잘못된 자존감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비판을받을 수 없으며 일단 비판을 받으면 매우 힘들어 할 것입니다. 우리가 왕자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 때, 우리가 비판을 받을 때 우리는 여전히 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그것을 거절할 것입니다.그것은 매우 간단합니다. 마음이 생각하는 대로 사람도 그러하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기 생각과 마음을 다스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육신의 정욕을 좇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모든 재앙을 내리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만일 너와 네 자손이 나를 좇지 아니하고 내가 네게 보여준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다른 신들을 섬기며 절하지 아니하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내게서 제하여 버리리니 .그들에게 준 땅은 끊어지고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성전은 버려지리라.” “열왕기상 9:6-7) 하나님의 뜻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은 건축 후에 죄와 타협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성전을 짓는 데 얼마나 많은 금과 은이 사용되었는지 상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명을 위해 이러한 것들을 포기하실 것이며 우리가 부패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그런 다음 하나님이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모든 민족 중에서 농담과 조롱 거리로 만드십시오. 성전이 심히 높을지라도 지나가는 자가 기이히 여겨 웃으며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이 땅과 이 성전에 이같이 행하셨느냐 하리니 그들이 대답하기를 그 땅 백성이 그 땅을 버렸음이라 그들이 그들의 조상 곧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고 다른 신들에게 가서 그를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그들에게 내리셨느니라”(왕상 9:7-9)

만약 당신이 당신의 부모님이 기찻길에 서 있고 기차가 오는 것을 본다면, 당신은 그저 바라보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주님을 믿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니, 믿음의 자유를 자기 마음대로 하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생각한다면 부모님이 기차 선로에 서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요? 이 무관심은 어느 정도입니까? 그래서 저에게 선택을 허락하신다면 결과와 상관없이 반드시 부모님을 기찻길에서 밀어내겠습니다 부모님이 넘어지면 아프지만 산산조각 나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들이 일어나서 나에 대해 불평해도 상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실제로 우리가 죽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그분은 우리가 죄 가운데 죽는 것을 원하지 않으실 뿐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지옥에 가는 것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이 죄악에서 면하게 하시려고 자기의 모든 소유 곧 자기의 이름인 성전을 버리신 것을 기이히 여기지 말자.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이 말씀을 확증합니다 이스라엘은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이지만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왜 그렇습니까? 그들이 어찌하여 다른 신들에게 가까이 하며 우상을 섬기며 절하며 우리 하나님을 버릴까 저도 종종 이런 질문을 합니다. 기적을 경험한 사람, 삶의 큰 변화를 경험한 사람이 눈 깜짝할 사이에 우상을 숭배한다는 사실에 정말 놀랐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간증하는 자매들은 정말 죽음의 어깨를 스쳤는데, 그들이 우상을 버리기 전에 왜 이 모든 일을 겪어야 합니까? 그녀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우상을 숭배하지 않습니다. 사실, 당신의 직업, 당신의 사업, 당신이 의지하는 것은 당신의 우상입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사람들은 왜 그렇게 우상 숭배를 좋아하고 하나님을 저버리는 걸 좋아할까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람들은 인간적인 사고 방식을 좋아하고 이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매우 편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즉, 사람들은 육욕적인 경향을 가지고 태어나고 육안으로 문제를 보는 것과 인간의 논리적 사고를 좋아합니다.

예를 들어 경제 문제에 대해 사람들은 자신의 경제 이론으로 설명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에 매우 매료됩니다. 저는 사업을 시작하고 싶습니다. 사업을 어떻게, 어떻게 할 계획인지, 얼마나 크게 되고 싶은지. 사람들은 이런 일을 아주 좋아하고, 나도 모르게 빠져든다. 알고 보니 이 세상의 많은 것들이 영적인 것들이라 사람들이 이런 것들을 좋아하고 미혹하는 것은 그 배후에 있는 악령들이 끊임없이 어떤 생각을 내어 여러분을 죽음의 길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몰라. 예를 들어, 돈을 숭배하면 사람들은 돈이 있으면 좋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돈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나중에 나는 인간의 가장 큰 골칫거리가 돈인 재물을 숭배하는 사업가의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재물이나 나를 경배할 수 있으며 둘 중 하나만 선택할 수 있다("마태복음 6:24" 참조). 맘몬으로 하나님을 경배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한 발은 예수 위에, 한 발은 이 세상에 두 배에 올라타 세상의 유익을 얻으려 하나 결국 재앙 밖에 얻지 못하느니라. 어떤 사람은 죽음의 문턱을 그냥 지나쳐 주님께 감사하지만 어떤 사람은 곧장 죽음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소원을 배려하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우상 숭배를 좋아합니다. 사람들은 인간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기를 좋아하지만 하나님을 경배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실, 하나님을 경배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사람의 방법을 사용하는 것보다 천 배, 만 배 더 낫습니다. 왜냐하면 마음과 뜻과 혼과 뜻과 노력을 다하여 주 당신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결코 부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상사는 이번 금요일이 회사의 연례 회의라고 말했고 당신은 어려움을 겪을 것입니다. 연례 회의에 가야합니까? 아니면 교회에 가서 성경을 공부합니까? 그러나 과거를 딛고 하나님만 섬기기로 선택한 사람은 잘 사는 사람이고 남의 뜻을 헤아리고 상사를 기쁘게 하기로 선택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 상사를 인생의 가시로 만드신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자기 자녀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아니하는 자도 나에게 합당하다(마태복음 10:37-38). 여기서 부모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보다 부모님을 더 생각하고, 주님의 뜻을 생각하기보다 육신의 문제가 있을 때 가족의 몸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정말로 죽지 않는 사고방식을 갖기 시작해야 합니다. 어떻게 신이 그들을 죽게 내버려둘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로 사람의 뜻을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구하면 잃을 것이요,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바치면 얻을 것이다.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면 반드시 당신에게도 일어날 것이고 당신의 가족에게도 일어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보다 다른 사람을 더 배려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죽음에서 구원하기 위해 간절히, 성전이 이미 그의 이름으로 되어 있다 할지라도 거기에 금이 얼마든지 상관하지 않으신다. 그가 관심을 두는 것은 당신과 내가 지옥에 떨어져 멸망하고 이 세상에서 내던져지는 고통스러운 삶을 살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사람에게 내리셨으니 너희는 이 말이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라 생각하지 말라 오늘 간증한 자매님을 예로 들면 죽음이 지나가지 않았다면 지옥에 떨어졌을 것입니다. 돌아가서 장사를 하면 그녀가 잘되고 모든 일이 잘된다면 그녀는 하나님과 더욱 멀어질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습니다. 그녀가 바라던 모든 것을 앗아간 주님께 감사합니다. 그것들은 환상이며 돈은 의지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람을 속이려고 이 모든 재난을 허락하시는 줄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람의 문제는 자기도 모르게 죽음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오늘 내가 어떤 사람들과 영생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영생이 뭐냐 사람이 죽지 않느냐고 하더라. 그는 육신을 입고 영원히 사는 것을 영생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관념은 내가 하나님께 돌아가 내 삶이 하나님의 생명과 연결될 때 영생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영생을 얻었는데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당신은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을 걱정합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 장을 읽고 나서 평생 여호와의 뜻을 행하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나의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다짐해야 합니다. 이것이 생명이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기 시작할 것입니다.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재앙을 내리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으로 있는 성전을 버리시겠습니까? 아니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성전을 더욱 존귀하게 하실 것이며 성전에서 기도하는 모든 사람의 기도를 들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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