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사도행전22장-결과로 판단하는 똑똑한 사람이 되자

법정이 시작되자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는데 왜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까? 당신은 어느 편에 설 것인가? Paul이 마침내 소송에서 이길 수 있습니까? 어느 날 당신도 법정에 서게 되면 당신이 소송에서 이길 자신이 있습니까?

문제에 대해 생각

바울의 증언이 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습니까? 왜? 그들이 그러한 증거를 받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22:1-23)

무엇이 바울을 고문하지 않게 했습니까? (사도행전 22:24-30)

우리는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실천해야 할까요?

현상에서 본질을 추상화하다

이 장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이 사람들이 바울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막은 것은 무엇입니까? 이 장을 확인하면서 역사적 사실을 기술했는데, 일어난 모든 사실을 현상이라고 합니다. 이 현상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을 추상화해야 합니다.

이 장에서 바울은 그의 증언을 했지만 이 사람들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이 세상에 살 자격이 없다고 하는데, 이 현상에서 어떤 본질을 볼 수 있습니까? 방법을 알려드리자면 어떤 현상이든 긍정적인 성격과 부정적인 성격이 있는 것을 봅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성격에서 우리가 본받을 가치가 있는 몇 가지 특성을 추상화할 수 있고, 반면에 우리가 흉내내지 말아야 할 측면을 부정적인 성격에서 추상할 수 있습니다.

이 현상의 내부에서 이 유대인들을 보면 그들 중에도 많은 기독교인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소극적인 사람들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 뿐 아니라 바울이 증거하는 것을 보고 죽이기도 했습니다. 바울이 죽지 않았다면 어떤 사람들은 40일 동안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당신은 그렇게 열정이 있는데 왜 진지한 일을하지 않습니까? 이 유대인들이 왜 이런지 정말 궁금합니다. 이 사람들을 살펴보십시오. 이 사람들은 왜 바울의 간증을 받아들이지 못합니까?

주님을 믿은 바울의 기적적인 체험

바울의 간증을 보고 그가 주님을 믿은 기적적인 체험을 이야기해 봅시다. 바울은 가말리엘의 제자였고 가말리엘은 당시에 유명인사였습니다. 유명한 스승이 좋은 제자를 만든다는 말처럼 바울은 그의 제자이자 전형적인 바리새인으로서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보다 더 열심히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주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그가 기적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주님을 믿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을 믿게 된 자신의 체험담을 전했습니다.그는 예수님을 대면하여 만났고, 예수님께서 큰 빛을 비추신 후 눈이 멀게 되었고, 그 후 매우 기적적인 과정을 겪었습니다. 바울이 다메섹에 이르러 금식하며 기도할 때에 그 성에 아나니아라 하는 그리스도인이 하나 있으니 그도 거기서 기도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에게 오매 그가 바울에게 와서 그를 위하여 기도하니 그의 눈이 보게 되어 바울을 따라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던 자들도 이것을 알았더라

바울의 이 이야기는 결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며, 바울은 그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서 분명히 소수자였습니다. 그 결과 그는 주님을 믿고 눈이 치유되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고, 주님을 믿게 된 이 기적적인 과정은 유대인 중에 기독교인과 기독교인이 아닌 유대인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이 알고 있었고,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실 이 유대인들은 바울이 이방인들에게 주님을 믿도록 가르치는 것을 들었을 뿐만 아니라 바울이 행한 많은 기적도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가 이상한데, 이 유대인들이 바울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는 우리 중에 어떤 것에 쉽게 속는 형제자매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바울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

무엇이 유대인들, 심지어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까지도 바울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했습니까? 유대인 기독교인을 포함시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몇몇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에게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썼고, 그 후 바울은 유대인들을 불쾌하게 하는 말을 많이 썼습니다.

사실 "갈라디아서"는 매우 거칠게 쓰여졌고 사용된 언어도 매우 나쁩니다. 내가 나쁜 단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영어 읽기는 전체 조각을 잘라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심각한 모욕이며 그 안에는 베드로의 이름과 그 당시 베드로에게 일어난 일과 야곱에게서 온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를 쓴 바울이 이때에 예루살렘에 왔는데 그 사람들이 그를 살릴 수 있겠느냐?

사람의 생각은 스스로를 묶고 있어서 사실의 진상을 보지 못하게 합니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점입니다.현재의 교육 시스템은 매우 좋습니다.그 당시 우리가 중학교에 있었을 때 싱가포르의 아이들 교육은 지금 싱가포르보다 훨씬 나빴습니다.

제 아들의 교육에는 TOK(Theory of Knowledge)라는 과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론입니다.이 주제는 우리의 주관적인 의식인 지식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관한 것인데, 우리는 종종 우리 자신의 주관적인 의미에 의해 혼동되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한 점은 우리가 종종 속고 여전히 사람들의 세계 이해가 매우 이상한 현상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옛 중국 속담처럼 당신이 물고기가 아니면 물고기의 기쁨을 알 것이고, 당신이 내가 아니라면 당신은 내가 물고기의 기쁨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은 물고기가 아닙니다. 물고기의 행복을 어떻게 압니까? 넌 내가 아니야, 내가 물고기의 행복을 모른다는 걸 어떻게 알아?

이러한 질문을 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눈알이 보통 사람과 색을 다르게 구분한다면 그가 보는 빨간색은 녹색이고 녹색은 빨간색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빨간색이라고 하지만 그가 이해하는 것은 사실 다른 색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모릅니다. 우리는 눈으로 보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지만 실제로 눈으로 보는 것을 잘 모릅니다.

그러니 머리로 생각하는 것을 믿지 말고 정말로 그것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마음이 생각하는 것과 눈이 보는 것을 지각이라고 합니다. 개인적인 지각을 믿지 마십시오. 매우 위험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사적으로 목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목사를 보면 화를 내야 합니다. 당신이 무언가를 볼 때 당신은 무언가를 생각하고 이것이 사실이라고 확실히 믿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옳은지 아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이것에 속고, 자신의 생각에 얽매이고, 자신의 내면의 진실에 걸려 넘어집니다.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하였느니라 그리고 그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순종치 아니하므로 교훈에 거치게 되었나니 이와 같이 거치는 것은 그들이 정하신 것이니라. (베드로전서 2:7-8)

이 유대인들은 한 가지 진리를 믿었다가 그 진리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도 말고 행하지도 말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혜를 얻으리라 자신의 감각으로 받아들이지 말고 만들어낸 결과로 받아들이세요.

주님을 믿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사람이 주님을 믿으면서 한 가지 교리만 믿는다면 문제가 될 것입니다. 같은 성경을 읽는 천주교, 성공회, 감리교, 장로교가 있고, 서로 다른 교파의 목사들이 모이면 다 같은 성경을 두고 다투는 것입니다. 그런 현상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사람들이 믿는 바에 걸려 넘어지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진리를 믿지 말고, 더 이상 말을 믿지 말고, 사람의 손으로 하는 일을 믿으라는 제안입니다. 다시 속고 싶지 않다면 결과를 보는 법을 배우십시오.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친히 세운 교회로 거기서 일 년 반 동안 섬기며 세우매 한 무리가 와서 큰 진리를 많이 전하니라 나는 속였으나 속이지 않은 바울은 그들에게 거짓말쟁이라고 불렸습니다.

미래에 누가 교회에 올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바울은 그들에게서 한 푼도 받지 않았지만 그들의 돈을 받은 사람들은 좋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누가 당신에게 잘해주고 누가 당신을 해치려고 하는지 안다면 당신은 똑똑한 사람입니다.

당신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은 좋은 친구라고 생각하고, 당신을 잘 대해주는 사람은 당신을 해치려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런 사람은 멀리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그가 언제 다시 물어뜯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다투고 정말 세게 물어뜯습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사진을 봤는데 사람의 손가락이 물렸다. 입은 말을 하여 사람을 더럽힐 뿐만 아니라 사람을 물기도 합니다.

마귀의 가장 강력한 간계는 생각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구두로 단어 게임을 하십시오. 그가 말한 것만 보지 말고 그가 한 일을 보라.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지 말고 그들이 하는 일을 지켜보십시오. 나는 내 신념을 고수하고 목사이기 때문에 섬김의 책임을 맡고 싶습니다. 나는 잘 봉사할 것이고, 결코 속임수를 쓰지 않을 것이며, 립서비스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우리 교회의 이 소그룹 지도자들이 결코 말뿐인 서비스가 아니라 진짜가 되기를 격려합니다. 사실이 추론보다 더 의미가 있음을 항상 기억하십시오. 그래서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너무 간단하고 매우 쉽고 사람들은 속기 쉽습니다. 거짓말쟁이는 말을 잘한다. 거짓말쟁이가 어리석으면 거짓말쟁이가 될 수 없다. 거짓말쟁이가 사람을 속이려면 말을 할 수 있어야 하고 산 사람은 죽었다고 할 수 있고 죽은 사람은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혼란을 피하는 방법

같은 유대인, 즉 율법을 가진 유대인 무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뿐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고 바울이 행한 것을 보고 바울의 간증을 듣고 바울을 죽이고자 하였으니 그들은 누구였습니까? 그들은 이성에 따라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치에 따라 살면 남의 말이 공의가 옳고 시어머니가 시어머니가 옳다고 하는 말을 듣고 거기에 재판관으로 앉아 있으면 혼란스러울 것이다. 그렇다면 이 혼란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요?

거짓 선지자를 조심하십시오. 그들은 양의 옷을 입고 여러분에게 오지만 속으로는 굶주린 이리입니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게 될 것입니다. 가시덤불에서 포도를 딸 ​​수 있습니까?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딸까요?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만이 나쁜 열매를 맺느니라.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의 열매로 알아볼 것입니다. (마태복음 7:15-20)

바울과 같은 사람이 놀라운 경험을 하는 것을 본다면 그에게 물어보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연구하십시오. 이렇게 탐구하고 이해하면 인생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조사하고 열매를 보기 위해. 우리 중 일부는 과일을 보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잠시 후 현기증을 느낄 것입니다. 특별히 축복받지 못한 사람과 함께 있고, 나중에 일이 잘못되면 내가 해결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사람의 삶에 입력되는 것들도 있고, 우리도 나름의 논리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면 결과가 있는데 결과가 틀리면 처음 두 가지가 완전히 틀립니다. 마귀가 활동하는 공간은 우리 안에 있는 논리체계인데 여기에 입력하면 눈으로 본 것을 믿으면 논리체계로 분석을 하게 되니 그렇게 된 것입니다. 믿거 나 말거나,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하십시오.

한 자매님이 이야기를 해서 기분이 언짢은 적이 있었는데, 제게는 이상하게 들렸는데, 누군가 그녀 앞에 의자를 던져 다리가 부러졌다는 것이었습니다. 실물과 똑같아서 나중에 다른 언니에게 물어보니 별거 아니라고 하더군요.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거야? 한분은 과대광고라고 하셨고, 한분은 그런거 없다고 하셨습니다. 누군가는 항상 거짓말을하고 있습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이 없을 수도 있지만 여동생이 꿈을 꾸고 잠시 후 그녀는 그것이 진짜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어떤 사람들을 어지럽게 만들고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게 만듭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말에 관한 것이 아니라 능력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가서 자기를 높이는 자들의 말을 알지 못하고 오직 그 능력을 알겠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음이라. 무엇을 원하세요? 내가 막대기를 가지고 당신에게 오기를 원하십니까? 아니면 친절하고 온유해야 할까요? (고전 4:19-21)

보여? 완료된 것이 중요합니다. 모든 사람이 행하는 것을 헤아려 본다면 모든 교파가 한 교파 곧 예수의 한 교파가 될 것입니다. 모두가 말에 의존하면 번거로울 것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으로 취하지 말고 성경을 기록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삼으십시오. 오직 하나님께서 예언하시고 이루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결과만이 중요할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모두가 계속해서 이러한 결과를 이루기를 바라기 때문에 때때로 형제 자매들이 교회에 와서기도하고기도 후에 그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약간의 봉사 경험을 나눕니다. 물론 그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어볼 것입니다. 당신이 그것을하지 않았다면 당신이 머리에서 쏘는 것은 가치가 없으며 그것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내말이 안믿기면 그냥 하세요 암튼 해냈습니다 손해도 많이보고 고생도많이하다가 연습과정에서 정리해봤습니다.

성경에 하나님께서 쓰신 말씀이 만들어질 때 혼동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안의 논리가 아니라 살아온 결과가 당신의 분명한 증거입니다.

결론

듣기만 하지 말고 말씀을 행하십시오. 그러나 당신은 말씀을 행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자신을 속이지 마십시오(“야고보서” 1:22). 당신은 자신을 속이고, 당신은 자신을 속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속았다 고 말하지 말자, 우리 자신도 속았다. 다른 사람이 당신을 속이지 않았다면 이상 할 것입니다! 행하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길을 행할 때 그 결과가 그 일을 옳았는지 그른지를 분명히 말해줄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사람들은 어떤 것이 실행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버전을 작성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잘 압니다. 그것은 분명히 문제를 일으킬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테스터가 있습니다. 이것들을 테스트하십시오. 왜 그렇습니까? 반드시 제대로 할 수는 없고, 한 후에는 지속적으로 조정해야 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조정 중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진정으로 이해할 것입니다.

그래서 제 직위에서 몇몇 직원들은 종종 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사장님, 제가 해냈습니다. 나는 말했다 : 당신은 무엇을 했습니까? 나는 이것, 저것, 등등을 했다. 문제가있다?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전문가의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면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해도 아래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내가 더 강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 업계에서 경험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있는게 틀림없어 문제가 없으면 끝난게 아니다. 그래서 사무실에서 자주 관찰하는데, 최근에 문제는 없나요? 아무 문제 없습니다 상사, 모든 것이 괜찮습니다, 나는 그가 일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일을 하든 모든 사람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부딪히는 문제를 공부하고 요약해야 합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마치 거울로 자기의 본모습을 보고는 가다가는 그 모습을 잊어버리는 사람과 같습니다.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들은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그대로 행하는 자는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 (야고보서 1:23-25)

이 문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하는 일에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는 일에서 어떤 축복도 보지 못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뭔가 잘못했고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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