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사도행전15장-순정 복음의 제일 전쟁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진리를 깨달아야 하는데 순수한 복음은 믿음에 달려 있습니까, 아니면 행위에 달려 있습니까? 우리는 주님을 믿는 여정에서 끊임없이 유혹을 만나지만 굳건한 믿음으로 거절하고 죄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대적하며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간구한다면 반드시 이겨낼 것입니다.

문제에 대해 생각

믿음의 뿌리는 규례에 따른 것인가, 믿음에 따른 것인가? 바울이 강조하는 복음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어떻게 복음의 순수성을 보장할 수 있습니까?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 교회에 돌아왔는데 왜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기적을 행하셨습니까? 바울이 율법이 그들의 죄를 지적하는 지침이라고 말한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는 이 세상에서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을 축복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습니까?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걸고 목숨을 건 사람은 어떻게 됩니까?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은 복음의 순수성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어떻습니까? 그것은 잘못된 자신감입니다. 어떤 행위도 구원의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즉,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것이 없고 모두 은혜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은 바울이 강조한 구원이며, 이로 인해 바울도 많은 원수를 만들었다. 이 적들은 모두 복음에 행동을 가져오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복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며 구원 자체가 은혜이기 때문에 행위가 설 자리가 없습니다. 행위에 근거한다면 아브라함, 야곱, 요셉은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여기 있는 우리 중 누구도 행위로 인해 구원받을 수 없지만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면 믿음이 열쇠입니다! 무지한 갈라디아인들이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졌는데 누가 너희를 속였느냐? ("갈라디아서" 3:1) 여기서 혼동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행동을 가져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여러분은 율법의 행위로 성령을 받았습니까? 아니면 복음을 듣고 믿기 때문입니까? 성령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우리는 결코 부족하지만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사십니다. 성령으로 시작하였으니 육신으로 온전케 되기를 원하느냐? 당신은 그렇게 무지합니까? (갈라디아서 3:2-3)

오늘날 우리는 특히 조심해야 하고 독선적이지 말아야 합니다.이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보십시오. 아니면 행동 기반입니까? 행동 기반이라면 망한 것입니다.

믿음에 근거한 복음

사람들은 왜 판단하기를 좋아합니까? 여기도 좋지 않고 저기도 좋지 않은 목사를 비판하는 것과 같습니다. ? 그는 행동 기반의 판단 방식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자랑할 수 있습니다. 나는 이 믿음의 길을 걸을 것입니다. 나는 참으로 부족하고 여기 서서 모든 사람에게 말할 자격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나에 대한 믿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이 복음은 그 안에 행위의 어떤 요소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행실로 따지면 바울도 이 수준을 넘지 못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그것은 복음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꾸라고 여러분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과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라고 우리가 이미 말하였고 지금도 말하노라. 나는 지금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을 얻고 싶습니까? 나는 남자를 기쁘게합니까? 내가 여전히 사람의 마음에 든다면 나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종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1:6-10)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 이 구절을 읽었으니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 봅시다.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하면 복음의 순수성을 장담할 수 없는데 사람들이 싫어하면 어떻게 합니까?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단 한 가지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도 자기 손에 있는 것이 진리라고 믿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서도 자기들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고 생각했을까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사람 앞에서 천국 문을 닫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허락하지 아니하는도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온 땅과 바다를 두루 다니며 사람을 꾀어 종교에 빠지게 하고 그가 개종하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눈먼 인도자들에게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샐러리의 십일조를 드리면 율법과 의와 인과 신의의 더 중한 바가 무너지느니라 이것은 당신이 해야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며, 그것 또한 피할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23:13,15,23)

바리새인들이 말보다 수레를 앞세우고 비평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일이 좋은지 나쁜지는 우선 순위를 아는 데 달려 있습니다. 항상 말보다 수레를 앞세운다면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체스를 두는 경우 계속 저당 잡힐 경우 반드시 패배합니다. 사실 큰 일도 있고 작은 일도 있고 다 해야 하는데, 작은 일은 할 수 있지만 큰 일은 할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너희에게 화가 있다.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라

여기 있는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이 전문가이고 우리의 주된 일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직장에 있을 때 상사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경우: 당신은 우선순위를 정하는 방법을 모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형편없는 직원임에 틀림없고 올바른 우선순위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런 일을 제대로 한다면 평생 하나님의 영광을 살아내게 될 것입니다.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자 성경은 복음의 진리라 이제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있으니 사랑이 제일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해하지 마세요. 작은 일을 할 수 없다면 큰 일을 할 생각조차 하지 마세요. 작은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지만 기초이며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쉬운 것에서 어려운 것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농담이 있습니다. 족제비는 절벽에 표지판을 세우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독수리라면 뛰어 내리고, 뛰어 내리지 않으면 독수리가 아닙니다." '많은 병아리들이 한 마리씩 뛰어내렸는데, 병아리들이 독수리가 될 것이기 때문이었고, 족제비가 절벽 아래로 따라왔습니다. 독수리의 자신감이 있으면 족제비의 고기가 될 것이라는 농담입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 연습하면 닭도 아주 강한 닭이 되어 족제비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마음이 분명해야합니다. 중요한 것은 중요하고 부차적 인 것은 부차적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느냐 행위로 구원받느냐의 싸움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까? 이 싸움은 지난 2천년 동안 끝나지 않았습니다. 복음의 순수성은 여전히 ​​믿음에 근거한 것인지 행동에 근거한 것인지에 달려 있습니다. 구원받을 수 없고 이삭과 야곱도 구원받을 수 없으며 요셉과 다윗도 구원받을 수 없고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수 없나니 그러면 우리가 믿는 것이 헛것이요 우리가 믿는 것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복음이라

새 가죽부대와 낡은 가죽부대 문제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 형제들을 가르쳐 이르되 너희가 모세의 규례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 (행 15:1) 오경 당시에는 새 가죽부대라 오경의 규례를 따라 만들어야 하되 모세의 낡은 가죽부대를 메고 다녔으니 이는 저희가 아직도 옛 생각을 가지고 , 그리고 결국 그들은 새로운 것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령의 지속적인 갱신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는 헌 부대와 새 부대가 있는 현상이 여전히 존재하지 않습니까? 이 낡은 가죽부대와 새 가죽부대 사이의 논쟁은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새 것을 행하라 낡은 가죽부대에는 한계가 있느니라

바울은 “내가 전하는 복음은 지혜롭고 완곡한 말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능력의 나타남으로 된 것이라”(고전 2:4~5) 누구를 비방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바리새인들이 예수께서 하신 일을 한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하시지 않은 일을 많이 하였으니 이것이 문제인가?

예수님의 생애의 절반은 기적을 행하셨고 나머지 절반은 가르치셨습니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기적을 행하고 가르치지 않는 교회가 아닙니다.우리 교회는 성경 공부 자료 여섯 개와 "에베소서" 한 개를 썼고, 아주 겸손한 하나는 처음부터 끊임없이 새로워지고 변화되며, 그런 다음 성경의 가르침에 점점 더 부합하는 교회로 변모했습니다.

행해진 것은 증거이다

바울과 바나바는 예루살렘에서 열린 수양회에 돌아왔을 때 왜 올라가서 내가 거기서 어떻게 설교하는지 말하지 않았습니까? 저기서 어떻게 가르쳐요? 그는 하나님께서 나와 바나바의 손을 통하여 이 모든 능력과 기사를 행하셨다고 했습니다. 매우 간단합니다. 세 번째 요점은 당신이하는 것이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고린도 전서", 그리고 "행전"을 종합하면 표적과 기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불필요한 확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죽은 사람들에게 갈 필요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왜 예수님의 기적이 사복음서의 많은 페이지에 기록되어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일에 많은 시간을 보내셨기 때문에,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예언된 메시아라는 매우 중요한 확증이기 때문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사도인 이유도 그들이 행한 표적과 기사라는 아주 중요한 증거가 있습니다.

이적과 기사를 행하는 것이 복음의 일부인 것은 오늘날 모두가 알아야 할 것인데, 복음에서 이적과 기사를 제하고 복음이 더 순수하다고 생각한다면 예수님 같지 않은 것이 이상합니다. 순결, 예수님이 이단이 되신 것처럼 이것이 필요한 증거이니 믿음이 있으면 믿음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무리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다 하면 노새나 말이나 너희 믿음을 보이라 하여도 되지 아니하면 거짓 믿음이니라

성령의 기름부으심은 내 안에서 가르치십니다.

(행 15:19-20)에서 그들은 이방인들에게 매우 간단한 요청을 했습니다. 이 간단한 요청이 복음입니까? 아니요. 단순한 부탁인데 왜? 우리가 이 모든 일을 사람의 구함으로 하는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이라.

너희가 여호와께 받은 기름 부음은 너희 마음에 영원히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여호와의 기름 부음이 범사에 너희를 가르치느니라 이 기름 부음은 참되고 거짓이 아니니 이 기름 부음의 가르침에 따라 주 안에 거하라(요일 2:27)

우리가 믿는 복음은 성령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므로 바울의 서신은 성령을 좇아 행하는 것이 생명과 평안이요 하나님의 영은 살아 계시고 죽지 아니하시므로 사람이 많은 규례를 쓸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복음을 얻기 위해 . Simple is better, iPhone이 잘 팔리는 이유, 간단하고 사용하기 쉽고 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가 믿는 복음도 마찬가지라는 개념을 가르쳐 드리고 싶습니다.

이 복음이 행함의 복음에 의지하면 2000개의 행실규범을 주십니다 이것을 행실백과사전이라 합니다 얼마나 복잡하나 믿음으로 하면 우리의 믿음은 아주 단순해집니다 기적과 기사가 따르게 됩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행적을 체험하고 성령 안에서 끊임없이 빚어지고 새로워지는 삶, 외부 세계에 집중하지 말고 오직 우리 하나님께만 집중합시다. 단순한 것이 좋고, 사람은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을 좋아하고, 신은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걸고

바울과 바나바는 복음을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아니한 자들인데, 그런 사람들이 복음의 순수성을 지킬 수 있는데 왜 어떤 사람들은 자기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복음의 순수성을 보증하지 못하는 것입니까? 그는 배를 보장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먹을 만큼 기르고 두려움이 없는 목자들이요 바람에 밀려가는 비 없는 구름이요 죽고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바다의 성난 물결이 자기의 수치를 쏟는 물의 거품이요 신들, 방황하는 별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어두운 어둠이 영원히 예비되어 있습니다. (유다서 1:12-13)

뱃속에 중심을 두는 사람은 이생의 일만 생각하고 복음의 온전함을 지키지 못하고, 자기 생명을 소홀히 하면 자기를 돌아보지 않고 하나님을 참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늘의 축복이다. 나는 모든 사람이 주님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사람이 되라고 격려하며 지금도 그러한 사람이 되기 위해 배우고 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의 삶에 나타난 치명적인 약점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를 위하여 다투었느니라 이 영적 거인들은 다 치명적인 연약함을 가졌으나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었느니라 청년 마르코를 놓아주지 말라 그는 마르코를 놓아주는 법을 배워야 했다.

복음의 순수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는 계속 전진할 것이고, 복음은 계속 전파될 것이며, 교회는 여전히 세워질 것입니다. 마가 같은 청년 때문에 화를 낼 필요는 없습니다.성경에 나오는 다윗, 야곱, 아브라함, 바울, 바나바 모두 연약했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버림받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너와 나는 조금 연약하고 큰 문제는 없으니 복음을 다른 것과 섞지 말고 어느 것이 중요한지 알아야 한다.

결론

행위로 된 것이면 아무도 구원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0.0001%의 행동으로도 아무도 살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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