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열왕기 하01장-어리석의 사람이 반드시 죽어야 한다
바보처럼 굴지 마
어리석은 사람은 반드시 죽게 마련인데, 왜 하나님이 어리석은 사람을 만드셨는지 물을 자격이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한 가지를 보여줍니다. 당신이 왕이라도 어리석으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무지는 세상의 무지가 아니라 정치인만큼 똑똑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영적으로 지혜로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영적 무지는 반드시 죽음을 가져옵니다! 아하시야는 2년 동안 왕이 되었는데, 1년 정도는 왕이 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느꼈어야 했는데, 그러다가 욕심에 빠져 하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우리가 성경의 인물들을 주의 깊게 읽을 때 불가해하게 죽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그들의 마음에서 죄가 자라났습니다. 그러므로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습니다. 장성한 죄는 사망을 낳았습니다(약 1:15). 죄가 장성한 후에 사망의 영이 동원되고 사망의 영이 동원되면 악의 영도 들어갑니다. 마치 아하시야가 난간에 서서 조금 기대고 다른 사람들이 계속 난간을 밀자 아하시야도 기대자마자 넘어졌던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첫 번째 무지, 즉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수명이 유한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시편에서 모세는 외쳤습니다. 모세는 자신의 수명이 길지 않고 실제로 매우 제한적이며 하나님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지만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하나님이 필요한지 모르기 때문에 매우 교만하게 행동합니다. 그래서 미련한 사람은 생각하기 싫어하고 죽으면 수명이 얼마나 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은 어리석게, 어떤 사람은 지혜롭게 만드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아하시야는 사람이 읽으면 이것이 무지함임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비슷한 상황에 부딪히거나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나면 우리 안에 문제가 있음을 알고 대처해야 하고, 우리 안에 교만함이 있다는 것을 알면 대처할 것입니다. 그런 다음 그는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했으며 빨리 회복되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아하시야에게 회개할 기회를 다섯 번 주셨습니다.
회개할 수 있는 아하시야의 첫 번째 기회
아하시야가 난간에서 떨어졌을 때 하나님은 이미 그에게 잘못이 있음을 경고하시고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재난이 닥쳤을 때 역경에 처한 사람들은 여전히 어떤 문제가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 결과 그가 타락한 후에 더욱 무지하여 이스라엘에 천하에서 가장 큰 선지자 엘리야가 있는 줄 알았고 그와 같은 선지자가 없었으니 곧 룬의 바알세붑이라
비록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행하신 일이 엘리야만큼은 못하지만 여전히 많은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 형제의 어머니가 암 투병 중인데 2년 전에 기도해 줬는데 그때도 계속 함께 기도했더라면 2년을 얼마나 잘 살았을까! 그러나 그때에 그녀는 떠나기로 결정했지만, 그녀는 아하시야처럼 어리석지 않고 여전히 우리에게 돌아왔습니다. 무지의 극치였던 아하시야는 이스라엘 최고의 선지자 엘리야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묻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기회: 죽음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
평판은 좋은 향유보다 강합니다. 죽는 날이 사는 날보다 낫다.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낫다.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며, 산 사람은 그것을 마음에 새길 것입니다. (전도서 7:1-2)
성경은 종종 사람들에게 죽음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라고 요청합니다. "전도서"의 말씀이 특히 좋습니다. 산 사람이 죽음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기본적으로 매우 무지한 상태에서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무지를 피하려면 자신의 수명이 길지 않고 풀잎과 같아서 풀이 시들고 우리도 넘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알면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는 하나님과 인생의 모든 좋은 것을 주실 수 있는 방법을 이 세상에서 찾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것을 경험할 수 있으므로 기꺼이 생각하고 죽음을 마음에 품고자 하는 사람들과 이 아름다운 것들을 나눕니다. 우리는 죽음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죽으면 당황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아하시야가 자신의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았더라면 회개할 기회가 있었겠지만 그는 죽기 전에도 회개하지 않았고 이 두 번째 기회를 잡지도 못했습니다.
세 번째 기회: 첫 번째 50대의 죽음
세 번째 기회가 왔을 때, 아하시야는 엘리야를 찾기 위해 오십부장을 보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사람이 죽기를 원하지 않고 살기를 원하십니다. 엘리야가 아하시야에게 자신이 죽을 것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아하시야가 죽음을 마음에 새기고 돌이켜 하나님을 찾을 것임을 알기를 바랐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사건을 겪으니 그가 굵은 베옷을 입고 재 가운데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간구하니 하나님이 이르시되 아합 왕이 이미 스스로 겸비하였으니 그가 살아 있는 동안에 내가 그와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리라(cf. . 열왕기상 21:27-29). 하나님은 사람이 죽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살기를 원하십니다.아하시야에게 자신이 죽어야 깨어나도록 자극을 주겠다고 하셨지만, 그는 여전히 깨어날 줄을 몰랐습니다.
우리는 종종 그런 일을 접하고 그에게 그가 죽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사람은 여전히 상관하지 않습니다. 오십인의 첫째 부대장을 보내니 아하시야가 침상에 누워 오만하게 그들에게 엘리야를 잡으라 명하니라. 그는 엘리야가 죽으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엘리야가 죽으면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을 것입니다.실제로 그를 죽게 한 것은 그의 무지였습니다. 그 결과 처음 50대들은 그들이 떠난 후 매우 오만했고, 그 후에 불이 내려와 그들을 태워 죽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인 줄 알면서도 너무 무례하게 대했고, 오십째는 아하시야의 무지를 그대로 물려받아 무지 가운데 죽었습니다.
네 번째 기회: 두 번째 50인의 죽음
가장 어리석은 자는 아하시야요, 둘째 어리석은 자는 아하시야의 처음 오십인이요, 세 번째 어리석은 자는 둘째 오십인이었더라. 둘째 오십부장은 다시 가서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내려오라 하매 그들이 영광을 얻지 못하였더라 앞의 50대가 불에 타 죽는 줄 알고도 알고도 저질렀으니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우리라면 어떻게 할까요? 오십 대장이 불에 타 죽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신중하게 자문해 보아야 합니다. 두 번째 오십인의 운명은 첫 번째와 비슷하여 불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오십인이 죽었습니다.
이 50명 중에 똑똑한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그 50명을 살릴 수 있다. 똑똑한 사람들은 지도자들에게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이러지 마세요. 그는 신의 사람입니다. 처음 50명이 죽었으니 그들처럼 죽을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그 50명은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고 살아서 집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도 그들에게 우연의 일치가 일어 그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똑똑한 사람은 죽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무지로 죽습니다. 하나님이 아하시야에게 다섯 번의 기회를 주셨으니 처음 오십 명이 죽은 후 아하시야가 이때에 회개할 줄 알았더라면 그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가서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그 앞에서 해결되었습니다. , 당신은 죽을 수 없습니다. 그 결과 아하시야는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다섯 번째 기회: 엘리야를 부르십시오
두 번째 오십 번째의 죽음은 네 번째 기회입니다. 두 번째 오십 번째가 죽을 때 아하시야가 기꺼이 회개한다면 여전히 기회가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아하시야가 깨어나길 바라면서 오십대장 둘째를 불태웠지만 여전히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50인의 세 번째 대장이 엘리야를 초대한 후, 아하시야가 이때 마지막 기회를 잡을 수 있다면 회개하고 엘리야에게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찾으라고 간청하면 그가 살 수 있고 하나님이 아하시야를 살려주실 것입니다.
결론: 마음이 완고한 사람이 되지 말라
하나님께는 긍휼이 풍성하고 은혜와 사랑이 풍성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마음이 그렇게 굳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마음이 완악하여 죽습니다. 아하시야는 단 한 번의 기회도 잡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무지 속에 죽었습니다. 우리 중 어떤 사람들이 성경의 이 구절을 읽고 하나님이 잔인하다고 느낀다면 왜 그분은 이 50명을 불태워 죽였습니까? 사실 이 50명이 불에 타 죽지 않았다면 다른 방법으로 죽었을 것입니다. 10년, 20년 살다 죽는 것은 30년, 50년, 70년, 80년 만에 죽어 지옥에 떨어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모든 사람이 죽음을 염두에 두도록 격려합니다.
내가 이 모든 일을 마음에 새기고 자세히 살펴보니 의인과 지혜자와 그들의 행하는 일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으니 사랑이 있는지 미움이 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줄을 알았습니다. (전도서 9:1)
우리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에 있기를 바랍니다. 현명한 사람이 되려면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죽음이 무엇입니까? 아하시야가 갑자기 난간에서 떨어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남자는 아프다, 암이 무슨 상관이야? 몸이 약하고 집안일을 못하는 게 무슨 상관이야? 자세히 조사해야지 한 사람이 조사할 수 없으면 다 같이 조사해서 모두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관념이 정말 바뀌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영적 양식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과 호흡과 존재가 모두 우리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