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요한복음21장-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서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사실 요한이 표현하고자 하는 중심 사상이다. 요한복음의 끝에서 그는 예수님과 베드로 사이의 대화인 이야기를 강조합니다.

**저희가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말했다: 주님, 그렇습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을 먹이라. 예수께서 다시 그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말했다: 주님, 그렇습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내 양을 치라. 세 번째 이르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께서 세 번째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슬펐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내 양을 먹이라(요 21:15-17). **

이 이야기를 통해 사도 요한은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가 사랑임을 표현하고자 합니다. 사랑은 참으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사람의 삶에 사랑이 없고 남에게 사랑을 줄 수 없다면 비참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내면의 사랑은 실천하면 잘 살게 됩니다. 이 세상의 한 가지 특징은 이기적인 사람들이 매우 비참한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사실 사랑은 주는 것과 주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핵심 가치 체계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은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형제자매들이여, 주의 깊게 관찰하십시오. 이기적인 사람들 중 어느 누구도 좋은 삶을 살지 못합니다. 오늘도 우리는 우리 안에 사랑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사랑할 마음도 없고 사랑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는 기본적으로 이기적인 사람이고 사랑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멋진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 성경구절의 배경

베드로는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따르라고 부르셨고 그들은 즉시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따랐다(참조, 마 4:20).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요한복음 6:68" 참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40일 만에 세 번째로 나타나신 베드로는 예수님이 없는 날에 길을 잃고 고기잡이를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날 밤 아무것도 잡지 못했다(참조, 요 21:3). 사람들은 기분이 좋지 않고 물고기를 잡을 수 없습니다 사실 Peter는 낚시를 아주 잘합니다.

새벽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은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아들아 먹을 것이 있느냐 그들은 대답했다 : 아니오.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그래서 그들이 그물을 던졌으나 고기가 너무 많아 그물을 들 수 없었다.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그 때 시몬 베드로는 벌거벗었으나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 겉옷을 걸치고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요한복음 21:4)

요한이 베드로의 벌거벗은 것에 대해 쓴 이유는 베드로가 속으로 고통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이 없는 날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주님을 사랑해 본 사람은 이것을 압니다. 사랑할 주 예수님이 없으면 매우 고통스럽습니다. 저는 매일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즐겁고 주님 없이 사는 법을 모릅니다. 피터는 낚시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자신 안에 있는 것을 풀어주고 싶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옷을 벗고 그곳에서 미쳤습니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 그들은 겉옷을 입고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요 21:7 참조).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세 번째로 그들에게 나타나신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3년 넘게 그들과 함께 계시는데 갑자기 주 예수님이 그들 가운데 계시지 않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사랑하지만 예수님을 볼 수 없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매우 단단합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속마음을 아주 잘 아십니다. 땀과 눈물과 피를 흘려도 사랑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크나큰 만족임을 우리 형제자매들이 깨닫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분을 사랑하기를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적극적으로 그분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말을 기억하십시오. 이기심에 살지 마십시오. 우리 중에는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 아이들이 몇 명 있는데 그 자매 중 한 명은 최근에 비참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는 백만 달러를 썼고 졸업장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얽매이고 슬퍼하고 맛없는 삶을 살 것이며 베푸는 법을 배우기 시작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좋은 삶을 살 것입니다.

당신은 이것들보다 주님을 더 깊이 사랑합니까?

우리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분보다 더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분만이 우리가 사랑하는 분이며 우리는 더 잘 살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전문 어부였으며 고기잡이를 무척 좋아하여 생계 수단이기도 했습니다.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15)

오늘날 우리는 일을 사랑하지만 그 이상으로 예수님을 사랑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일이 우리의 속박이 될 것입니다. 당신이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무엇이든 당신의 속박이 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부르셨을 때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는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베드로와 같은 사람은 가정을 무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최근 싱가폴에 가족제일주의가 도입되었는데, 성경에는 그런 가르침이 없고 모든 것을 버리는 베드로의 관념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베드로처럼 주 예수님께 반응한다면 예수님은 당신에게 “내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참조, 요 21:15).

저는 심천에 있을 때 K 목회자들이 신부전으로 고통받는 형제를 마주하고 그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대가를 치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성숙하지 못한 어린 양이므로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 중 MW자매의 아이가 밤에 기침을 해서 밤새 쉬지 않고 다음날 일어나 동생을 돌보았고, 나중에 다른 여러 형제자매들이 이 형제를 병원에 데려가 투석을 했습니다. 당직과 월급도 많이 받았고, 목회자 전체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 위해 이 형제를 우리 가운데 데려오셨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우리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우리는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합니까? 우리가 이것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면 하나님의 어린 양들이 우리 가운데 사랑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우리의 필요를 더 사랑한다면 우리의 필요가 문제입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마태복음 10:37)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할 때에만 우리의 부모와 자녀가 하나님을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즉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양을 먹이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말한다면: 나는 목양하는 법을 모릅니다. 그럼 배워보세요! 어떤 사람들은 목양하는 법을 모르고 목양하는 법을 모릅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면 목양하게 됩니다. 릭 요나 목사님의 책은 요한과 같은 신학적 개념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사랑이 최고라고 말했고, 요나 호수의 책에서 모든 사람이 오르는 산꼭대기는 아버지 사랑의 동산입니다. 아버지 사랑의 동산에는 생명나무가 있고 생명나무 열매는 마음대로 먹을 수 있습니다.

알고 보니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어도 치유와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치유와 해방은 믿음으로 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하나님은 당신을 모르실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이 큰 능력과 큰 믿음을 가지고 있어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즉 믿음, 소망, 사랑은 오늘도 항상 존재하고 사랑이 제일입니다. 즉, 사랑을 잃으면 믿음을 가져도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산 꼭대기에는 아버지의 사랑의 동산이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대가를 치르는 것이고,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고 먹이는 것입니다. 앞으로 하늘에서 우리의 섬김의 결과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고, 우리의 섬김의 결과는 하늘나라까지 따라올 것입니다. 당신은 상관없다고 말합니다. 내가 천국에서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하늘에서는 봉사가 없고 지상에서는 봉사만 있다. 그러므로 지상에서 봉사할 시간이 없다면 천국에서도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살게 하시고 그 사랑을 나누어 이 세대를 섬기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양 떼를 치며 하나님의 어린 양을 먹일 수 있게 하려 하심이라 섬기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양을 치는 것에 대해 말씀하신 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인도하리라. 예수님은 베드로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지적하기 위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하고 그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라! (요한복음 21:18-19)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님의 죽음을 본받고 예수님을 본받아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것입니다. 마치 한 알의 밀이 땅에 심겨져 죽어도 많은 열매를 맺듯이 말입니다. 이것이 우리 삶의 원래 의도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오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여러분의 생명을 구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하나님을 섬길 때에만 생명을 얻을 수 있고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본받는 것이 우리 교회의 핵심가치이며, 주님을 본받고자 하는 사람은 주님의 죽으심을 본받아 자신을 온전히 드리고 십자가에 죽임을 당해야 합니다. 사람이 자기 목숨을 구하려면 자기 목숨을 버려야 합니다.

반성해 봐,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고 있니? 내면에 아주 이기적인 마음을 품고 ​​있다면 이생에서 반드시 비참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좋은 삶을 살고 싶습니까 아니면 비참한 삶을 살고 싶습니까? 주님을 따르고, 주님을 본받으십시오. 그러면 그것이 최고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201노정에서 순종은 사망에 이르고 사망은 상관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교회에서 무엇을 설교하고 있습니까? 교회에서 설교하는 것은 선한 삶을 사는 방법과 하나님의 영광을 사는 방법입니다. 자신의 논리 체계에 의존하면 잘 살 수 없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사랑하면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양떼를 섬기는 것이고, 하나님의 양떼를 섬기는 것은 자기 목숨을 드리는 것이며, 자기 목숨을 드리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고 예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내가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만날 때 그들은 말할 때 이렇게 묻습니다. 언제 구원받았습니까? 오, 내가 언제 구원받았는지, 언제 주님을 믿었는지. 그러나 그는 전혀 예수처럼 보이지 않았고 그가 누구를 따르고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는 악마를 따르고 있어야합니다. 그는 그의 몸에 많은 문제가 있었고 그는 말했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문제가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셔야 합니다. 아니, 예수님을 따르거나 본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즉, 오늘날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을 따르십시오. 그것이 생명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주님의 제자가 되려면 주님을 따르고 주님을 본받아야 합니다. 왜? 주 예수 안에는 영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람의 삶이 아무리 좋아도 영생을 얻지 못하고 지옥에 가면 그의 삶은 공허하고 참으로 속수무책입니다. 이것이 주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을 본받는 것은 주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데 집중하라

최후의 만찬을 먹다가 베드로는 돌아서서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제자가 예수님의 품에 가까이 오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 “주여, 누가 주를 팔았나이까?”라고 물었다. 제자, 요한. 베드로는 그를 보고 주 예수께 여쭈었습니다.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나는 그의 속뜻이 다음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왜 나에게 당신을 따르라고 말했고, 왜 그에게 당신을 따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예수께서는 아주 잘 대답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기다리게 하려 할지라도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냐? 당신은 나를 따라! (요한복음 21:22)

경솔한 것을 묻지 말라: 주여,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리이까? 그가 당신을 따르나요? 사실 그가 따르든 말든 당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참견이 별로 없는 습관이 생긴 것입니다. 따르는 사람은 내가 목회하지 않는다면 나와 상관이 없다. 언젠가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싱가포르에 용과 싸우는 다른 교회가 있습니까? 나는 모른다! 내 알 바 아냐. 나는 오직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양만 생각하고 잘 돌보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됩니다. 나는 주님을 잘 따를 뿐입니다. 주님을 잘 따른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나는 헌신적인 사람인데 어릴 때 왜 공부를 잘 했을까? 집중하니까! 나는 나와 상관없는 일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는다. 사람들이 마작을 하고 담배를 피우는 것이 나에게 무슨 상관입니까? 그러므로 형제자매들은 집중해야 합니다! 공부를 잘 못하는 사람들은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나는 열심히 일하는 아이를 좋아하는데 그녀는 매우 귀엽고 항상 말합니다. 목사님, 커피 한 잔 만들어도 될까요? 나는 매우 위로를 느낀다. 내가 아주 열심히 봉사하고 있을 때 누군가가 커피 한 잔을 가져오면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나는 말했다 : 자매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자 한 사람이 그것을 보고 매우 속상해했습니다. 목사님, 왜 이 자매님을 그렇게 좋아합니까? 나는 그것을 좋아한다, 당신의 사업은 무엇입니까? 그들은 그들과 상관없는 쓸모없는 일을 할 것입니다. 모두가 이해하기 시작해야 하고, 우리와 관련된 몇 가지 일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며, 당신과 관련 없는 일을 처리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당신을 위해 주님을 따르십시오! 주님을 닮아라! 주 예수님은 당신이 대가를 치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대가를 치르십시오! 다른 사람들은 당신과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가 양을 치고 있다면 잘 쳐야 하고, 남이 치는 양은 남이 치고 있습니다. 만일 네 포도원이 아름답지 아니하거든 남의 포도원을 보러 가라 자기 포도원의 포도를 따먹지 아니하고 남의 포도원의 것을 따먹고 네 포도는 신것 같고 남의 포도는 더 달다 하는도다 . 이것은 매우 이상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대에는 다른 사람의 가족의 자녀가 많다. 나중에 남의 자식을 일컫는 관용구를 배웠는데 남의 자식을 잘 돌본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형제자매들은 오늘 집중해야 합니다. 나는 헌신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내가 쓰는 책이 가장 좋고, 내가 만드는 웹사이트가 가장 아름답고, 내가 섬기는 봉사가 가장 좋고, 내가 세우는 교회가 가장 하나님 친화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어떻게 아십니까? 그게 내 생각이야! 당신은 나를 내버려두고 나도 당신을 신경 쓰지 않습니다! 이것은 초점입니다.

우리가 쓴 곡이 최고의 곡인 것 같아요 약간의 가십을 말씀드리자면 저희 노래를 듣고 많은 분들이 YX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는 전문 팀이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팀도 프로페셔널하다고 생각하는데 남의 팀이 프로인지 아닌지는 내가 알 바가 아니다. 당신이 헌신된 사람이고 훌륭한 성품을 가진 사람이라면 주님을 따르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집은 7명이 사는 아주 작은 집이었는데, 이웃 사람들이 우리 집에 오면 구석에 있는 작은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나를 자주 보고는 말 없는 이 아이 좀 봐 아이디어! 나는 그들이 말하는 모든 것을 들었다. 나 생각이 많아 너네얘기해도 상관없어 열심히 공부할게 어렸을 때 수학, 물리, 화학을 잘 배워서 세계 곳곳을 여행하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좋아요! 오늘은 주 예수님을 잘 따르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집중 잘, 집중은 그 사람의 성격이다. 예를 들어 FF처럼 집중 연습을 시작했는데 창세기 1장을 다 읽지 않았나요? 그런 다음 두 번째 장, 세 번째 장을 읽으십시오. 뿌리 없이 혼자 떠다니고 떠돌아다니는 것은 성격의 문제다.

어제 한 자매님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뉴질랜드와 호주의 혜택이 매우 좋기 때문에 학위를 취득하고 그들에게 거주 허가를 신청하여 그곳에서 거주하고 싶습니다. 나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자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생각은 모두 이기적입니다! 왜 그 나라에 기여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까? 다른 나라의 복지는 당신이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말하는 질문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여부입니다.

사람이 열쇠가 아닌 곳에 열쇠는 인격을 갖는 것이고, 이 인격이 집중이다. 그녀는 말했다: 목사님, 저에게 이 말씀을 해주시면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고, 정말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의 나라의 복지는 당신이 이용하기 위한 것입니까? 당신은 항상 이용하고 싶어하지만 항상 이용하지 못합니다. 당신은 얼마나 얽혀 있습니까! 절대 남을 이용하고 싶지 않고 딱 한 가지만 바랄 뿐입니다. 어떻게 내 삶을 이 세대에게 축복이 되도록 바칠 수 있겠습니까.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요한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할 것인지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합니다. 왜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데 집중해야 합니까? 형제 자매 여러분, 여러분의 초점은 정확히 무엇입니까? 당신의 초점이 예수님을 따르는 데 있다면, 이 초점은 당신이 멋진 삶을 살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 삶의 전부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열쇠니 너의 온 생명은 염려할 것이 없느니라. 오늘 아침 기도할 때 한 자매님이 최근에 안마를 배우고 주님을 찾은 후 안마 가게를 열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계시가 없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성경에서 말한 적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바울은 아무에게도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사업을 시작해도 됩니까? 성경은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모두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르되 내가 지혜롭게 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릴 수 있기를 원하노라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사 지혜만 주신 것이 아니라 존귀와 부귀와 기타 불필요한 것들을 주셨습니다. 즉, 우리에게는 지혜가 있고, 다른 것들은 자연스럽게 올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삶의 모든 필요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 있다는 관념이 있습니까? 모든 사람이 이 문제를 믿지 않는 것 같은데, 믿습니까? 당신은 정말로 그것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떡 다섯 개를 떼어 오천 명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너희가 주운 조각으로 가득 찬 바구니가 몇 개나 되느냐? 그들은 말했다: 12. 떡 일곱 개를 떼어 사천 명에게 나누어 주니 너희가 주운 부스러기가 몇 바구니나 찼느냐? 그들은 말했다 : 일곱.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느냐? (마가복음 8:19-21)

당신은 오늘 이해합니까? 케이크는 어디에 있습니까? 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빵은 어디에 있습니까? 빵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모두 축복합니다! 우유도 있고, 빵도 있고, 생선도 있고, 빵도 있고,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물가에 서 계셨고 그들이 보려고 올라왔을 때에 예수께서 거기에서 떡과 생선을 굽고 계셨다는 것을 너희가 알거니와 케이크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물고기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그것이 예수님이 생각해 낸 것입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에 빵 한 자루와 생선 한 자루를 들고 다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생각해보면 우리의 일상의 모든 필요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가장 정상적인 것이 아닐까요? 나는 종종 어떤 사람들에게 봉사합니다. 그들은 삶에서 큰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나는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의 삶이 해방되고 문제가 해결됩니다. 해결된 후에 그들은 세상으로 돌아가 그들의 일을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 빵과 생선과 모든 생활에 필요한 것보다 더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나는 이런 일을 금광을 발견한 사람이 작은 금덩어리를 줍고 작은 금덩어리를 붙잡고 도망가는 것에 비유한 적이 있습니다. , 등 톤, 백 톤의 금. 똑똑한 사람이라면 계속 파고 나처럼 금광을 만나면 굴착기를 사고 금광 건설 장비를 사서 계속 파고 1 톤, 2 톤, 3 톤, 5 톤 , 100톤, 계속 파세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많은 보화가 있습니다.1991년 말에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1992년에 침례를 받았기 때문에 저는 보화를 찾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나는 이것이 보물이며 절대 떠나지 않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계속 말합니다. 지금까지 이 집중된 캐릭터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지극히 풍성한 은혜가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의 복에 들어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큰 민족이 되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실 것입니다. 이름이 크면 또 무슨 걱정을 합니까? 유명하지 않은 이름을 가진 작은 인터넷 유명인이 연간 300만 위안을 번데 무엇이 걱정됩니까?

앞으로 우리 교회는 반드시 큰 민족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 이름을 창대하게 하실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높여 만민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도 그들에게 복을 주기를 원하며 하나님은 우리를 땅의 모든 나라와 민족에게 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그런 사람이라면 여전히 삶의 필요가 문제입니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자녀들을 돌보기 위해 MW 자매님은 몇 년 동안 일을 그만두고 일자리를 구하러 나갔고 즉시 지도자 자리를 찾았는데, 이것이 어떻게 합리적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화를 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자는 아무 것도 없이 살리라

건강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형통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형통한 삶을 사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고, 멋진 삶을 사는 것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은 그분 밖에 있지 않습니다. 젊은 사자들도 주리고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느니라 어디에서 찾고 있습니까! 한걸음 세바퀴 돌고 어디를 볼까? 세상에 선한 것이 없으니 공부할 필요도 없고 또 공부하면 헷갈린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입니다. 내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네 마리로 사천 명을 먹였으니 그 실상을 알지 못하느냐? 사실 빵 몇 개와 물고기 몇 마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우리의 모든 필요에 대한 답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것은 훌륭합니다!

결론: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형제들아 네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 안에 은혜와 긍휼이 풍성하고 그 안에는 보화가 무궁하니라 그가 우리에게 천국 열쇠 곧 천국 열쇠를 주셨으니 권위를 나타냅니다. 천국 열쇠를 가지시겠습니까? 이 땅의 모든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천국의 보물을 여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부자가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153이라는 숫자를 말하고 싶습니다. 온라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153은 멋진 숫자입니다. 이 백쉰세 마리의 물고기는 실제로 베드로에게 사람을 잡는 것은 어부와 같아서 한 그물에 너무 많은 물고기가 걸려 그물이 찢어질 뻔했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베드로처럼 올바른 곳에 그물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가 던지는 그물은 베드로의 그물이 아니라 "인터넷"입니다. "인터넷"이 걸리면 끔찍할 것입니다. 앞으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크게 일으켜서 사람을 물고기 잡는 교회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는 먹이는 일이 있고, 목양하는 일이 있고, 온전한 목회 체계가 있는데, 이 목회 체계는 절대 새지 않는 그물이며, 반드시 모든 고기를 잡습니다. 온전한 목회적 돌봄 체계를 확립하기 위해 오늘날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물고기를 잡을 준비를 합니다. 이것은 망가진 그물이 아니라 완전한 그물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이 세대를 섬기는 것이 우리의 운명 하나님의 사랑을 전파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 이기주의가 길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하는 것이 길이라 형제자매들은 오늘부터 슬기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배우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달리기를 시작합시다 물고기처럼 물고기를 잡는 이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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