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이사야21장-피할 수 없는 세계의 멸망
바빌론의 영적 뿌리
"이사야서"의 처음 몇 장으로 돌아가서 처음 몇 장은 심판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하나님은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가혹한 것이 바벨론이었습니다. 이사야서 15장은 모압, 18-19장은 애굽, 14장은 바벨론, 21장은 다시 바벨론의 멸망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왜 바벨론이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그토록 중요한 단어가 되었습니까? 사실 바벨론이 있는 곳은 창세기 11장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바벨론 탑은 바벨론에 있습니다. Babel이라는 단어는 실제로 오늘날의 이라크에서 바빌론과 같은 위치에 있습니다. 이곳의 영적 뿌리는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 이름을 알리면 엄한 심판을 받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바벨탑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언어를 혼란하게 하신 후 12장에서 아브라함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고 기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라. 즉,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전파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작게 만들고 멸망시키기까지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의 이름을 전파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을 크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일입니다. 바벨론에 있는 이곳의 영적 환경은 그 이름을 선포하고 세상을 사랑하며 육신의 마음을 품는 영입니다. 21장은 피할 수 없는 세상의 멸망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살펴보면 어떤 사람들의 추구와 속마음이 바벨론과 완전히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자기 이름을 심판에 이르게 하시는 이
사람이 바벨론의 생각을 좇으면 바벨론의 영의 작용 아래 세상을 사랑하고 자기 이름을 전파할 것이요, 그가 바벨론과 같은 심판을 받는 것을 너희가 보게 되리라.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바벨론 민족에 대해서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을 추구하는 자들에 대한 최후의 심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는 파리와 호랑이 사냥은 바벨론의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육체를 방종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전형적인 바벨론의 영적 상태였습니다.
해변 광야에 관한 경고라 광야에서 적군이 오고 남방에서 회리바람같이 휩쓸려 가는 무서운 땅에서 온다. 비참한 환상이 나에게 드러났습니다. ("이사야" 21:1-2)
선지자는 실제로 매우 슬픈 환상을 보았습니다. 배신자는 속이고 파괴자는 멸망합니다. 사람이 이런 것들을 추구하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명예를 추구하는 간사하고 파괴적인 사람들이며 그들이 행하는 것은 강인한 문화입니다. 이 문화는 어디에서 왔습니까? 사실 그 뿌리는 가인, 그 다음에는 라멕, 그 다음에는 네로 등 이 위대한 사람들의 문화입니다.
다음으로, 간사한 자는 속이고 멸망시키는 자는 멸망할 것입니다("이사야" 21:2). 메디아-페르시아는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는 제국이었고, 이 페르시아 제국은 바벨론을 멸망시켰습니다. 이사야가 이 책을 쓸 당시에는 바벨론 제국이 아직 흥하지 못하였고 그 당시에는 여전히 앗수르 제국이었습니다. 아시리아 제국은 바빌로니아 제국에 의해, 바빌로니아 제국은 페르시아 제국에 의해, 페르시아 제국은 로마 제국에 의해 전복되었습니다. 이들은 네 제국 중 가장 강력한 제국입니다.
그래서 내 허리가 아파 해산하는 여인처럼 고통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나는 아파서 듣지도 못하고 무서워서 보지도 못합니다. 나는 당황했고 두렵고 무서웠다. 부러웠던 저녁은 나의 떨림이 되었다. ("이사야" 21:3-4)
선지자가 이 본문을 기록할 때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영의 지배 아래 그를 심판하셨을 때 일어나는 반응을 그가 실제로 몸소 체험한 것이 그의 반응은 그가 몸에서 받은 느낌이었습니다. 즉, 바빌론을 쫓고 그의 이름을 퍼뜨리는 사람은 등 전체가 아프고 고통이 그를 붙잡을 것입니다. 그는 왜 이런 상황에 처했을까? 그는 자신의 이름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자세히 관찰하면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고 하면 이런 결과를 얻게 되고, 이 결과를 얻은 후에 그는 패닉 상태가 됩니다. 여기서 그것은 바벨론의 영의 속박 아래 있는 인간의 반응을 묘사하고 있으며, 이 반응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사람이 이런 식으로 반응할 때 자신의 이름을 퍼뜨리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최근에 내가 사람들을 인도하여 기도할 때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 무릎 통증, 대퇴골 통증 등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세상에 속한 것은 반드시 무너져야 한다
그들은 잔치를 베풀고 파수꾼을 보내어 먹고 마셨다. 방백들아 일어나 방패에 기름을 부을지어다 여호와께서 나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가서 파수꾼을 세워 그가 보는 것을 말하게 하라 ("이사야" 21:5-6)
이 백성들이 잔치하는 상태이니 바벨론의 영이 매우 강함을 알아야 합니다. 바벨론의 정신은 얼마나 강력합니까? 이 바벨론은 이사야서에서 끊임없이 강조되고 요한계시록에서도 반복적으로 언급되는데 바벨론의 정신은 세상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그가 큰 소리로 외쳤다: 큰 성 바벨론이 무너졌다! 버려!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보금자리와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보금자리가 되었도다 ("계시록" 18:2)
여기서 바벨론은 마귀의 처소요 각종 더러운 영의 소굴이요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소굴이요
모든 민족이 그녀의 음행과 분노의 포도주에 빠졌기 때문입니다. 땅의 왕들이 그녀와 간음하였고 땅의 상인들이 그녀의 사치 때문에 치부하게 되었도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 그의 죄에 참예하지 아니하고 그가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 . 그가 남에게 행한 대로 그에게 행하고 그의 행한 것 같이 두 배로 갚으며 그가 섞은 잔에서 두 배로 그에게 주라 그가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고 사치한 만큼 사치하게 하라 그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왕비의 자리에 앉았고 과부가 아니니 영원히 애통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 ’ 그러므로 하루에 그녀의 재앙들 곧 사망과 애통과 기근이 함께 이르리로다. 그가 다시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주 하나님이 강하심이니라. 그녀와 간음하고 사치한 땅의 왕들이 그녀가 타는 연기를 보고 그녀를 위해 울고 통곡할 것입니다. 그녀의 고통이 두려워 그는 멀리 서서 말했습니다. 아아! 아아! 큰 성, 견고한 성 바벨론이여 일시간에 네 심판이 이르렀도다 (요한계시록 18:3-10)
요한계시록 18장은 바벨론의 멸망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바벨론은 상업, 정부, 왕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 배후에 있는 악령은 심히 악한 영이라 그가 여기에서 이 흥청거리는 자들을 보았으니 사람을 보내어 지켜보게 하여도 소용이 없었더라 그들이 기병의 떼가 오는 것을 보니 그 기병들이 말하되 바벨론 성이 무너졌다 하더라 신들의 조각된 형상은 땅에 박살이 나고 세상의 것들은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이것은 이사야서와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세상을 사랑합니까, 이 세상에서 당신의 이름을 구합니까? 사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교회에 나옵니다. 그 당시에 내가 바벨론의 본을 따라 교회를 건축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신 것은 큰 죄였습니다. 나는 돈, 권력, 나를 지원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인맥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것들을 비유하자면 나는 보통 사람보다 책을 더 많이 읽었고,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고, 아주 실용적으로 배웠지만 그런 것들은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혹자는 “목사님과 계속 있고 싶다. 이력서를 고칠 때 의지할 수 있고, 대인관계가 부족할 때 의지할 수 있고, 면접을 볼 때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은 이것이 세상의 전부이며 바벨론에 있는 흑암의 권세입니다. 그런 흑암 권세를 통해 세워진 교회가 어떻게 세워질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 저를 징계하신 후에 저는 그 자리에서 나왔습니다. 교회를 세우는 어떤 종류의 세상적인 방법도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 감사합니다. 저는 빨리 회개했습니다. 그 당시 하나님을 사랑했지만 내 기반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섬기는 방식이 잘못된 것입니다. 바벨론 성에서 나오라 바벨론의 길에서 벗어나라
더 이상 세상의 논리 체계를 차용하지 않는다
결국 저는 ZH 형제에게 사용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사립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었고 그 당시에는 한 달짜리 흰색 카드만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나는 내 관계를 한 번 사용하고 다시는 감히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바빌로니아 영에서 나올 때 이 우상들을 깨뜨리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더 이상 내 관계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일자리를 찾고 있다면 내가 쉽게 도와줄 수 있어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대인관계나 세상의 논리 체계를 거치지 않고 나아지지 않습니까? 여러분, 걱정하지 마십시오. 조각된 신상은 모두 산산조각이 날 것입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이든, 당신이 어떤 동기를 갖고 있든, 어떤 형태에 있든 세상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면 결국 압도당할 것입니다.
큰 성 바벨론이 반드시 함락되리니 형제자매들이 바벨론에서 나갈 줄을 알기를 바랍니다. 바빌론 도시에 특별한 매력이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세상의 왕이 그와 더불어 간음하려 하므로 간음이 무엇이냐? 그들과 결탁하더라도 세상 왕들이 사용하는 논리 체계는 모두 바벨론의 논리 체계이고 세상 상인들이 사용하는 논리 체계도 바벨론의 논리 체계이다. 그러므로 계시록에 기록하기를 그러므로 하루 안에 그의 재앙들이 함께 임하리라 하였느니라. 그것은 사망과 애통과 기근이라 그가 불에 살라지리니 그를 심판하시는 여호와는 강하심이니라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는 불이 섞인 유리 바다와 같은 것을 보았다.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는 자들이 하나님의 거문고를 잡고 유리 바다에 서서 (계 15:2)
여기에서 늙은 요한이 유리 바다를 보았고 그 위에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긴 사람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세 가지는 무엇일까요? 그 짐승은 실제로 땅에 있는 정부이고, 짐승의 형상은 거짓 종교이며, 그 이름에 있는 사람들의 수는 맘몬의 영입니다. 즉, 바벨론의 몇 가지 특징은 첫째는 정치, 둘째는 경제, 셋째는 종교입니다. 이 세 영은 매우 강력하여 이 세 영을 모두 이기면 유리 바다 위에 서서 모세의 노래와 어린양의 노래를 부르게 될 것입니다. 이 구절은 전복되는 세상 제도인 바벨론에 대해 말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세상의 논리 체계인 척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논리 체계인 척합니까? 세상에 속한 논리체계를 가지면 하루아침에 모든 재난이 한꺼번에 닥치는 상황을 자주 마주하게 되는데 이것이 그 특징이다. 나는 아파서 듣지도 못하고 무서워서 보지도 못합니다. 나는 당황했고 두렵고 무서웠다. 부러웠던 저녁은 나의 떨림이 되었다. 중국의 이 부패한 관리들이 체포될 때, 그 부패한 관리들은 바벨론의 논리체계를 가지고 있었고, 그가 체포되는 순간 모든 것이 함께 무너졌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그 논리 체계에서 멀리 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지만 실제로는 멀리 갈 수 없으며 마지막에 오는 공황은 매우 끔찍합니다.
사명 없는 자는 두려움 속에 산다
11-12절에는 에돔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힐디와 두마는 모두 에돔에 있는 곳으로 에돔을 대표하는 명사들이다.
두마에 관한 경고라 세일에서 내게 소리가 있어 가로되 감시자여 밤이 어떠하냐 감시자, 밤은 어때? 파수꾼이 말했다: 아침이 올 것이고, 밤이 올 것입니다. 물어보고 싶으면 물어보고 나중에 다시 올 수 있습니다. ("이사야" 21:11-12)
이게 무슨 소리야? 즉, 이 에돔 사람들도 세상에 속한 하나의 논리적 체계라는 것입니다. 에돔은 에서의 후손이었고, 에서는 운명과 장자권을 잃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이 장자권과 운명을 잃으면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을 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 안에는 운명이 없으며,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은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그는 두려워하며 살며 파수꾼에게 계속 물을 것입니다. 밤에는 어떻습니까, 밤에는 어떻습니까? 세상의 논리 체계 속에 사는 사람은 두려움 속에 살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있는지는 영적인 문제입니다.
운명이 없는 사람은 두려움 속에 살며 죽음이 언제 올지 모릅니다. 아침이 올 것이고, 밤이 올 것입니다. 물어보고 싶으면 물어봐도 돼, 무슨 뜻이야? 언제라도 죽음이 찾아온다 해도 당황하고 두려워해도 소용없다. 사람이 운명을 잃으면 사실 그 운명이 언제라도 찾아올 것이라는 일종의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볼 수 있습니까? 아무것도 볼 수 없습니다.
다음으로 바벨론에서 에돔으로 건너가서 13절부터 끝까지 아라비아라는 세계에 속한 또 다른 논리 체계가 있습니다.
아라비아의 예언에 대하여 드단과 함께 사는 나그네들아, 너희는 아라비아 숲에서 유숙을 하여라. 데마 땅의 주민들은 목마른 이들에게 물을, 도망하는 이들에게 빵을 가져왔습니다. 이는 그들이 칼과 뽑힌 칼과 활과 뽑힌 칼의 재앙을 피하여 도망함이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품꾼의 수대로 일 년 안에 게달의 영광이 다 멸하리라 남은 활 쏘는 자 곧 게다르 사람의 용사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사야" 21:13-17)
아랍인은 아브라함과 이집트인 하갈의 후손인 이스마엘의 후손입니다. 그러면 하갈의 자손이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즉 그는 육신으로 태어났다. 하나님께서도 그에게 큰 민족이 되리라고 약속하시고 공급해 주셨지만, 그가 육신으로 나서 독립된 자손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받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육신으로 난 이들은 궁수입니다.
믿음으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약속으로 나지 아니한 하갈이나 이스마엘의 그림자를 가진 자는 이런 상태에 있게 됩니다. 세상에 속한 이 논리체계, 육신의 논리체계, 운명을 잃어버린 논리체계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됩니다. 물론 심판의 대상 중에 바벨론이 1순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남은 활 쏘는 자 곧 게다르 사람의 용사 곧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사야" 21:17)
이 게다르 용사는 네가 아무리 강하고 기술이 뛰어나도 하나님이 너를 다루실 것이다 이들은 이스마엘의 자손이다.
세계의 논리 체계 포기
나는 형제자매가 한 가지, 즉 우리 안에 있는 논리 체계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직장에서 상사가 두렵다면 실직이 두려워서 상사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를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왜 직장을 잃을까 두렵습니까? 실직이 두렵기 때문에 살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이것이 세상의 논리입니다.
짐승과 그 형상과 그 이름의 수를 이기는 자들은 경제적 제약 아래 있지 아니하며 정치적 제약 아래 있지 아니하며 종교적 제약 아래 있지 아니하니라 이제 나는 기독교인의 여러 산, 즉 짐승-정치적, 짐승의 형상-종교적, 짐승 이름의 수-경제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왜 짐승의 수가 경제적입니까? 앞서 숫자와 관련이 있다고 했기 때문에 장사 등을 할 수 없다.
우리는 한 가지를 아주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치적, 종교적, 경제적 문제는 실제로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일은 당신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개인적인 일로 살고 있습니까? 아니요, 사실 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시는 한 일을 하든 안 하든 여전히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러한 환경을 이겨내지 못하고, 아주 열심히 일하고, 바빌론과 같은 논리 체계 속에서 살게 될 것이며, 그 다음에는 고통, 공황, 공황, 위협, 떨림, 그러한 상태, 그러한 상태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가인이 겪은 일, 라멕이 겪은 일로 인해 그들은 모두 두려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사야>21장을 읽고 나면 세상에 살면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는 반드시 무너져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논리체계가 버려지면 괜찮은데 사람을 통째로 버리면 곤란하니, 사람을 통째로 버리지 말고 자신만의 논리체계로 작업하고 철저하게 대처하는 것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