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신명기27장-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은 완전한 체계입니다
<신명기>를 주의 깊게 읽으면 매우 중요한 부분이 여기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신명기 27장을 읽고 있습니다. 이 장에는 많은 규정이 있다고 했습니다. 27장에서 모세는 저주와 축복을 요약했습니다.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실행치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명기 27:26)
저주, 저주, 축복을 언급하는 것은 흥미로운 일입니다. 모세는 오늘 내가 명령하는 모든 계명을 지키라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어떤 계명도 지키지 않으면 끝납니다. 당신이 순종하지 않는 것은 저주받을 것입니다 .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 나는 이전에 이 "모든 말씀"에 대해 혼란스러웠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모세 "신명기"에 "이 율법은 더하거나 빼지 아니하리라"(신명기 2:4 참조) 모세가 죽은 후 여호수아 시대에 "여호수아"라는 책이 추가되었습니다. 여호수아 이후에 사사기가 있고 그 다음에는 사무엘서가 있고 그 후에는 모든 선지자가 있으니 내가 의아하여 하나님께 여쭈어 가로되 이것이 증이냐 아니냐
알고 보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말씀"은 완전한 체계이며, 그 완전한 체계는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하고 있으니 주의 깊게 지키지 않으면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대를 통틀어 이 제도에 문제가 있는 것 같고, 많은 사람들이 전하는 내용은 성경에 기록된 내용이 전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암에 걸린 사람이 “이건 신이 주신 선물이고, 화장을 하면 축복이야”라고 말하는데, 그 말을 듣고 저는 참 이상했습니다. 나는 성경을 주의 깊게 읽었는데 그들은 예수를 믿습니까? 예수를 믿으되 예수의 말씀을 믿지 말라. 그렇다면 관찰하는 것이 더 나쁩니다.
예수님의 믿음 체계를 믿으면 반드시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고, 온전한 믿음 체계를 믿어야만 하나님의 말씀에 성실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제도가 없으면 사람은 그것을 지키지 못하고 저주를 받습니다. 나는 이 고통스러운 질병들이 모두 저주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에 이르면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기대, 즉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조심하여 오늘은 바보짓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28장의 이 구절을 살펴봅시다.
네가 만일 이 책에 기록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라 하는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면.여호와께서 너의 재앙과 네 자손의 재앙을 극렬하게 하시리니 그 재앙이 크고 오래고 질병이 중하고 오랠 것이라.여호와께서 네가 두려워하던 애굽의 모든 질병을 네게로 가져다가 네 몸에 들어붓게 하실 것이며.또 이 율법 책에 기록지 아니한 모든 질병과 모든 재앙을 너의 멸망하기까지 여호와께서 네게 내리실 것이니.(신명기28:58-61)
모든 재난과 질병은 저주와 관련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과 관련되어 있음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의도적으로 관찰하지 않거나 부주의해서 관찰하지 않는 것이 치명적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성경은 매우 명확하고 오늘날 우리는 성경의 완전한 체계로 돌아가야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구약이 더 이상 성경이 아니라 신약이 그렇다고 말하는데 왜 우리는 구약을 읽지 않습니까? 그러나 구약과 신약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나중에 마태가 마태복음을, 고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썼는데 성경의 내용이 늘었나요? 하나님의 말씀은 완전한 체계이기 때문에 증가가 없습니다. 나중에 나는 일단 성경에서 그러한 완전한 체계를 파악하면 많은 문제들이 쉽게 풀릴 수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모세가 성경을 기록할 때 그는 모든 것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신명기" 27장 3절 참조) 모든 사람이 성경에서 "약속"이라는 단어에 표시하도록 제안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믿음의 기초이다
이 온전한 제도의 첫 번째는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세우는 것인데, 만일 당신의 약속이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지 않고 다른 것에 근거한다면 곤란할 것입니다. 사람은 믿음과 약속의 체계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것을 지킬 방법이 없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먹을 수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제가 성경공부를 인도하러 오기 전에 영국에서 온 손님이 저에게 "주님을 믿으면서 더 이상 먹고 마시고 놀지 못하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 그러나 그들은 모두 편안하고 생활이 편안하며 주님을 믿지 않았을 때보다 마음이 더 행복합니다. 하나님의 약속 안에는 우리가 원하는 모든 유익이 있습니다.고기를 먹지 못하고 거친 옷만 입는 그리스도인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정말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런 종류의 "복음"은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먼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있습니다. ("신명기" 4장 2절 참조) 이 "젖과 꿀"은 먹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한 대로 이 돌들을 세워 에발 산에 바를지니라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돌로 제단을 쌓고 돌 위에 철을 옮기지 말며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단을 쌓고 그 단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지니라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서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신명기 27:4-7)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풍성한 은혜를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 믿음의 복음이요 이 약속은 다 선한 약속이니 질병과 재앙은 저주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질병을 약속하시지 않고 오래 지속되는 재앙을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땅을 유업으로 얻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고 둘째는 부요하여 행복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건강하고 먹고 마시고 땅과 집이 있지만 이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며 땅에서 장수하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으로 시작하여 예정된 약속으로 들어갔다.
굳이 말씀드리자면 복음은 아주 좋은 것이고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합니다.오늘 한 자매님이 새로 온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데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새신자가 "은혜의 복음을 믿느냐"고 묻자 봉사하는 자매는 "은혜의 복음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묻자 "잘은 모르지만 회개의 복음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 우리 자매들 질문: "회개 후에 어떻게 됩니까?" 답: "회개 후에도 여전히 회개합니다." 결과적으로 나는 이 끝없는 순환에 들어가 평생 회개하며 산다. 그러나 회개가 하나님의 약속을 요구할 수 있습니까? 사실 철회할 수 없고 철회하는 것이 고발이다.
모세가 기록하기를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약속하신 대로 하였느니라 형제자매 여러분, 복음은 사람의 모든 필요를 담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 있는 복음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사람은 어떤 근거로 약속을 받았습니까? 믿음으로 이 길이 네게서 멀지 아니하도다 네가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받으리라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니라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잘해서가 아닙니다 한 가지만 알아야 할 것은 복음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약속이고 약속을 지키는 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 원칙은 매우 간단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비참한 삶을 살고 있을 때 하나님께 무엇을 드려야 합니까? 아니, 하지만 하나님은 저를 축복해 주셨어요. 내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먼저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까? 아니요, 하지만 믿기로 선택하면 진실은 간단합니다. 즉, 하나님의 약속을 취하는 것이 믿음이고, 오직 믿음뿐인데, 이때는 사랑도 아니고, 내가 믿는다고 해서 취할 수 있는 것입니다. 병 고침을 받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오는 사람들은 생각과 행동을 바꾸지 않고도 즉시 고침을 받을 수 있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은 너무 많은 것을 약속하셨고, 우리 하나님은 인색한 하나님이 아닙니다. 당신이 열 명의 문둥병자 중 한 사람이고 예수님께 나아와 예수님이 당신을 치유하신다면 당신의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 중 한 명이 예수님을 따랐고, 아홉은 떠났습니다. 아홉은 왜 떠났을까? 예수님이 그들이 떠날 줄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모든 것을 알고 계셨지만, 예수님께서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아니요.
아홉 명의 문둥병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이전보다 더 나빴을 수도 있습니다. 왜? 전에는 저주 아래 살았기 때문에 문둥병에 걸렸고, 이제는 예수님을 믿고 구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이 은혜를 주셨고, 다시 본래의 길로 돌아가서 예수님을 믿지 않고, 본래의 세상을 믿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저주 아래 살게 됩니다.
다시 묻겠습니다. 이 아홉 명이 나중에 문둥병에 걸렸습니까? 병에 걸렸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그들의 생활은 분명 전보다 좋지 않습니다. 저주 아래서 계속 살기 위해. 오늘 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다가 하나님을 버리고 잘못된 논리 체계 속에서 계속 살면 저주가 더 깊어질 것임을 경고합니다. 왜?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즉, 불신입니다. 불신자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더 깊은 저주를 받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교리를 어디서 생각해냈습니까?"라고 묻습니다. 돌아가서 성경 전체를 읽으면 내가 말하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누구를 위한 저주인가? 저주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을 버린 자를 위한 것입니다. 신명기는 누구에게 쓰여졌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에게 쓴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모르느냐? 이스라엘 민족은 지난 2천년 인류 역사에서 비극이었습니다. 왜 그렇게 똑똑한 국가가 비극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약속의 땅에 들어간 후 여호와의 영화롭고 두려운 이름을 경외하지 아니하고 보잘 것 없는 삶을 살며 다시 이기심을 추구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사람이 살아 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정확히 알아야 합니까? 사람이 잘 살지 못한다면 그것은 자기 자신 때문입니다.
이전에는 잘 살지 못했는데 오늘 우리 가운데 은혜를 입었다면 여전히 과거의 논리로 살고 싶습니까? 우리 중에 아주 멍청한 사업가들이 있습니다. 여기 오기 전에는 심장병을 앓아 심장병으로 약을 먹었는데, 우리 가운데서 은혜를 입었으니 아직도 낡은 논리로 살아야 합니까? 여전히 이전 논리에 있으면 이전 회사가 도산할 수 있고 현재 회사도 도산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주의 깊게 따르지 않으면 곤경에 처할 것입니다. 그가 사업을 위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직원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고 당신이 그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당신은 계속 저주 아래 살게 될 것입니다. 그게 어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기회를 주실지 모르나 여러분이 변치 아니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열방 사이에 내동댕이쳐질 것입니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가 유태인들을 학살했을 때 유태인들은 보호소도 없이 떠돌고 있어 매우 비참했습니다. 왜 그렇게 비참합니까? 주의 깊게 따르지 않기 때문에 저주 아래서 삽니다.
모든 사람은 어떤 것이 저주를 가져올지 알아야 합니다. 저주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예를 들어 땅의 경계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보배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약속을 주장하면서도 사업을 보배로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차적인 것으로 여긴다면 그 사람은 결코 잘 살 수 없을 것입니다. 나는 당신을 놀라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당신이 기꺼이 회개하는 한, 당신은 무엇이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는 때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멸하셨다면 세상은 이미 멸망한 지 오래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은혜와 자비의 하나님이시며 우리 각자를 죄에서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믿음만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모두가 알아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돌로 제단을 쌓고 쇠를 그 돌 위에 옮기지 말라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신명기 27:5-6) 왜 그렇게 말합니까? 즉, 하나님의 약속을 사용하는 데 흠이 없어야 합니다.
당신이 행위 기반이라면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받아들이는 것은 당신의 행위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합니다. "봐, 잘했어." 일단 행동이 들어오면 이 제단은 더 이상 사용할 수 없습니다. 즉, 약속을 이끌어내는 일에 조금이라도 관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과 예수님이 전한 복음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사람들의 행동을 비판하지 않으셨지만 많은 사람들의 믿음이 부족하다고 비난하셨습니다. 당신은 이해 했습니까? 약간의 행동 기반을 혼합할 수 없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 아니냐?" 나는 이 질문에 점점 더 동의하지 않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어찌 죽은 것이겠느냐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취할 때에 행함이 없는 것은 참으로 말이 없느니라
그 때 나의 믿음은 살아 있었습니까, 죽었습니까? 그때 내 믿음이 죽었다면 왜 하나님의 은혜를 주장할 수 있습니까? 나는 은혜를 주장하기 위해 내 행동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내 믿음에 의존하며 하나님은 참으로 그분의 약속을 나에게 주셨습니다. 가난할 때 나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성령으로 시작했으니 이제 육신으로 온전케 되었느냐? 당신은 그렇게 무지합니까? (갈라디아 3:3) 이것은 바울이 도전하는 견해입니다. 행동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생각하지 마십시오. 오늘날까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살기 위해 어떤 행동을 하고 있습니까?
오늘날 모든 사람은 성경이 말하는 바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네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는 성령은 모두 성령의 역사이다. 우리는 수동적으로 받고 있는데 수동적으로 받는 것이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받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할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한 후에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에게 "도와줄 수 있니? 그는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말할 행동이 없습니다. 마음이 완전히 바뀌었나요? 완전히 변경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이 장을 기록할 때 손으로 다듬거나 철 연장으로 만진 돌 제단은 사용할 수 없다고 약속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즉, 다음 길은 계속해서 영적 정점에 오르고 믿음을 기초로 믿음으로 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성산에서는 믿음이 기초라는 것을 결코 잊지 마십시오. 이것은 우리 기독교 신앙 체계의 필수적인 부분입니다. 매우 중요한 부분: 하나님의 약속은 어떤 행동에도 관련될 수 없습니다. 이 기초 위에 세우지 않으면 따라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을 약속하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악한 하나님”이라고 믿는다면 어떻게 계속할 수 있습니까? 당신이 전하는 복음이 "나와 함께 예수를 믿으라"라면 사람들은 "왜 예수를 믿느냐"고 묻고 당신은 "예수를 믿으면 십자가를 함께 짊어질 수 있다"고 말한다. 십자가가 무엇이며 당신이 전하는 복음이 무엇입니까? "나와 함께 열심히 살자", 어떻게 이럴 수 있어? 주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가 이상합니다. 고생하고 병드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 가증한 일이 아닙니까?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의 모든 유익이요 우리의 유익이 하나님 밖에 있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음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와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하지 않습니까? 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암으로 끔찍하게 죽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중에 부자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중에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건강하지 않은 사람은? 모두 매우 건강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들은 행함이 없이 이 약속과 믿음 위에 기초를 쌓기 시작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 길을 걸었다면 오늘 여러분은 주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신명기 27:9 참조)
네 믿음으로 말미암아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느니라 사실 사람의 문제는 불신앙에서 비롯되고 모든 문제는 불신앙에서 비롯됩니다. 불신앙이 핵심이고 불신앙이 본질이며 나머지는 외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40년 동안 광야를 헤매었습니까?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그것은 치명적인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선하신 하나님이라고 믿었다면 광야까지 그렇게 오래 걸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직면하는 많은 문제는 본질적으로 불신앙에서 비롯됩니다.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겉모습만 파악하면 곤란합니다. 며칠 전 한 사람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이 자매에게는 운명이 있고 나중에 우리의 지속적인 적응과 훈련과 목회를 통해 그녀는 연봉 200,000 위안의 일자리를 찾았습니다. 그 결과 한 자매는 그 자매의 월급이 매우 높다는 말을 듣고 자신이 전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그 자매가 20만 원을 받은 것이 아니라 목사님이 했기 때문에 20만 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 자매가 매일 얻는 방법을 물었고 우리가 200,000 위안 이상을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왜 들을 수 없습니까?
사실 육욕적인 사람, 선과 악을 분별하는 사람, 믿음이 없는 사람은 20만 위안을 잡아도 '어렵다'. 오늘날 우리 형제자매들은 불신앙에서 나와야 합니다.
모세와 제사장 레위 사람이 온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아 잠잠하라 너희가 오늘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과 그 명령을 순종하여 내가 오늘날 행하는 규례를 네게 명하였느니라." (신명기 27:9-10) 왜냐하면 여호와의 백성이 무엇입니까?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믿음 때문이 아니냐? 오늘날 우리도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믿음을 본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1년에 20만, 30만, 100만, 1000만을 벌어도 다 허무하고 허무함을 알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삶의 의미가 돈을 버는 것이라면 돈이 당신을 죽일 것입니다. 왜? 돈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운명에 들어가고 싶고 하나님이 주신 운명은 내가 책임지겠다 돈이 가장 작은 것이 되지 않느냐? 하나님이 주시는 돈은 '가시가 아닌'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에게 베푸는 재물은 환난과 재앙을 동반하지 않고 마귀가 주는 재물은 재앙을 동반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이해합니까?
그래서 제게 어리석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매우 불안해하는 것을 봅니다. 영국에서 한 자매님이 오셔서 "남들이 잘 사는 것을 보면 남들도 잘 사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그것을 보았을 때 불안했고 때때로 그녀를 꾸짖었습니다. "좋은 게 뭐야? 당신은 몰라요.
그들이 보는 것은 겉모습이고 내가 보는 것은 본질이기 때문에 오늘날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된다면 무엇을 의지하느냐? 약속을 의지하면 약속만이 아브라함의 후손이 될 수 있는데, 이삭이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여 태어났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칭하는 것입니다.
당신과 나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 안에 살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우리 101코스의 첫 번째 교훈은 '영계는 실재한다'인데, 영계는 실재하고 물질계는 텅 비어 있음을 누구나 알아야 합니다. 영계가 실재하고 우리의 모든 문제가 영계에서 온다면 거기서 열심히 돈을 벌고 결국 재앙을 벌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상한 현상을 보이는 기업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바빴고 너무 바빠서 마치 목표에서 "1마일 떨어진" 것처럼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지만 또 실패했습니다. 얼마 전에 그는 수백만 달러를 벌었지만 그는 "헛되이"였습니다. 돈이 돌아왔다. 사람들이 왜 이렇게 살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가는데, 그는 주님을 믿지 않고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이렇게 바쁘게 살까? 요점이 하나님인지 모르십니까? 영계가 실재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을 믿음 체계로 끌어들임으로써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으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분명히 보는 이유입니다.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알기 시작하며, 하나님이 무엇을 미워하고 좋아하시는지를 알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왜 다윗은 나쁜 짓을 하면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었을까요? 그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회개했고 하나님을 믿고 경외했습니다. 사울은 왕이었지만 저주를 받았습니다. 에서와 야곱도 아브라함의 손자인데 에서가 좋은 사람이었고 부모의 밥을 먹이려고 사냥을 하다가 저주를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에서가 그의 시대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야곱의 믿음은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그의 믿음은 다소 터무니없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불순종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사람들은 왜 명령에 불복종합니까? 사람은 믿지 아니하나 명령에 불순종하는 자는 곧 저주에 들어가므로 바울은 믿지 아니하는 데서 나오는 모든 것이 죄요 가장 큰 죄가 불신앙이라고 했습니다. 것들.
예를 들어 옛날에는 쇠난로를 만지지 말라 어떤 아이는 뜨거우므로 만지지 말라 하면 아이가 만져 손을 데는 일이 있었으나 사람들에게 그런 불신앙과 패역이 있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또 다른 예를 들어, 우리가 길을 걸을 때 (일부 기둥에서) '천둥과 번개' 신호를 보고 여기에 전기가 흐르고 있으니 만지지 마십시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않습니다. 억지로 만지면 그 사람은 어떻게 되는지, 얼마나 비참한 일이 벌어질지 상상이 됩니다.
사람들은 나무 아래로 피신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천둥과 번개를 끌어들일 것이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하라고 주장합니다. 다른 사람이 너희에게 말한다면 너희는 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어리석게 굴지 말고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은 농담이 아니며 불순종의 결과는 매우 엄중할 것임을 너희는 알아야 한다.
아이돌 섭외하지마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에 있는 우상과 외적인 우상을 좋아하지 않으십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사업을 위해 목숨을 걸고자 한다면, 사업은 하나님 보시기에 당신의 우상입니다. 저주를 받은 후에 악령이 돌아와 당신을 타락시킵니다.
많은 가족들이 그들의 자녀를 신으로 여기고 그 자녀들은 함께 저주에 들어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지 말라 하나님의 법은 다 영적인 것이니 어기면 반드시 악한 영이 와서 교란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우상이 있습니까?
누군가가 자신의 사업을 확장해야 한다는 것은 이상합니다! 그에게는 사업이 중심이 되었고, 사업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업은 그의 우상이자 저주가 되었기 때문에, 사업이 없으면 그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이것이 여호와 하느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부모를 경멸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는 부모님을 얕잡아서는 안 됩니다. 부모를 얕보는 것은 부모를 부모처럼 대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부모님을 경멸한다고 생각했지만, 나는 그들을 하나님의 은혜 안으로 인도하고 싶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부모는 권위의 문제이며 당신은 그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부모를 하나님보다 더 공경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가 우상이 될 것입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이고 두 번째는 부모입니다. 세상의 많은 부모들이 “부모님을 사랑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합니까?”라고 묻습니다. 그들은 부모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1 차와 2 차를 뒤집는 것은 매우 번거 롭습니다!
사람은 욕심을 부리면 안 됩니다. 남의 집과 재산에 욕심을 부리면 안 됩니다. 욕심이 많으면 귀신을 유인하고, 저주를 받고, 착하게 살고 싶어도 착하게 살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잘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 받기를 원하는 것이 헛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조심하고 순종해야 복을 받고 유익을 얻습니다.
"짐승과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사람은 아멘 할지니라 누구든지 같은 아버지의 이복 자매나 이부 자매와 간음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사람은 아멘 할지니라 간음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시모와 함께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명기 27:21-23)
이것은 "사랑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저주받은 것입니다. 사람이 이것을하면 악령이 당신을 타락시킬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성 문제에 주의해야 합니다. 성매매 등은 이러한 저주를 완전히 깨뜨리고 철저히 회개하지 않으면 축복받기 어렵습니다. 원래의 논리로 살면 소용없으니 살인자와 해악자는 모두 저주를 받고, 이익을 위해 사람을 죽이는 자는 모두 저주를 받게 됩니다.
모세는 가장 중요한 것을 기록했는데, 그것은 누구든지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26절에 "이 율법의 말씀을 지켜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명기 27:26)고 했습니다.
우리는 깨어나서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 욕먹고 내일 욕먹고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지만 저주가 더디게 자라는 걸 알아야 한다. 땅속에서 7년을 자라다가 7년이 지나면 조금씩 자라는 대나무가 있는데 다 자라면 하루에 15미터씩 자란다. 그런 것들이 책에 기록되면 자연스럽게 진정성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은 심어졌을 때는 눈치채지 못하다가 자라나면 돌이킬 힘이 없는 저주와도 같다. 이것은 사람이 씨를 뿌리고 7년 후에 저주를 거두는 것과 같으니, 그러면 골칫거리가 될 것입니다!
섬긴다는 것은 축복의 씨를 뿌리는 것이고 그 속에 약속과 축복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섬기는 것이 운명이니, 세상을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축복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모두 믿음의 반영입니다. 정말 믿으면 믿음의 길을 가고 복을 받습니다. 믿음이 거짓이면 하나님은 그것을 아십니다.
우리는 불신앙에서 완전히 돌이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불신앙은 모든 문제의 뿌리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저주에서 벗어나야 합니다.예수님께서 반드시 우리의 저주를 담당하십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믿고 받아들이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