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신명기12장-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거처
"신명기" 12장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문장은 **"하나님이 자기 이름이 거하실 처소로 세우셨음이라"**입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아브라함부터 이삭, 야곱, 모세에 이르기까지 이 사람들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든 하나님의 선민에 합한 사람이든, 하나님이 자기 이름으로 정하신 거처를 귀히 여기며 하나님의 임재를 귀히 여깁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렸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제단을 쌓고 제사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증거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성막 건축은 하나님의 임재를 가져온다
나는 전에 "광야의 영광"이라는 설교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영감을 주어 광야에서 성막을 지도록 하셨습니다.광야는 벌거벗은 산들과 불모지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막은 겉으로 보기에 지극히 영화로웠으며 성막의 장부 이음매와 장부와 채는 다 금으로 바르고 광야에는 기구가 없으므로 귀고리, 반지 등을 다 금수로 만든 후에 금을 문질러야 합니다. 이 사람들이 어떻게 했는지 상상이 가나요?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 없이는 결코 그것을 할 수 없었으며 그것은 광야에서의 영광이라고 불립니다. 분명히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셨고, 하나님의 임재를 의지하여 입이 떡 벌어지는 일을 했고, 성막을 짓는 것은 큰 프로젝트였습니다.
"Exodus"를 읽고 놀랐습니다. 조각에 사용되는 도구는 무엇입니까? 그들 중 누구도 도구가 없었고 모두 그 자리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게다가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나무 통째로 꽃, 가지, 잎사귀를 깎아 만든 것으로, 장붓구멍과 장부 솜씨가 매우 정교하여 오늘날의 솜씨도 따라잡지 못할 수도 있다. 광야에서 사람들은 물을 마시는 데 문제가 있지만 금 장신구를 황금 물로 바꾸고 싶을 때 물이 있습니다. 넌 어떻게 그걸 했니? 하나님이 자기 이름으로 정하신 거처를 행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일을 행하는 과정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그들 속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이름으로 거하실 처소를 건축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부터 오늘날의 모세, 다윗과 솔로몬에 이르기까지 이 사람들은 모두 한 가지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없이는 교회 건축에 있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창조력과 우리가 하는 많은 일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이루어지는데, 우리가 이런 일을 할 때 하나님의 감동이 없으면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임재가 교회를 세우는 열쇠이고, 하나님의 임재는 또한 하나님의 선민이 하나님이 계신 곳에서 복을 받을 수 있는지의 열쇠입니다.
교회와 교회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저는 종종 교회를 운영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그들의 마음의 개념을 조정하기 시작하도록 권합니다. 교회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으로 세우신 아주 좋은 거처를 찾거나, 1년 내내 교회에 다니면서 무엇을 하는지 모르고 다니면 오히려 어리석은 사람. 교회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으로 정하신 처소를 만나면 복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이 자신의 이름으로 정하지 않은 처소를 만나면 방금 받은 축복이 제거 ; 전체 원이 끝나면 결국 축복을 받았는지 여부를 알지 못하고 매우 혼란 스럽습니다. 그래서 저는 형제자매들에게 교회를 찾을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으로 세워주신 거처를 찾아보라고 자주 권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이 그 이름을 위하여 정하신 처소”인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인지는 확인할 수 있고 볼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분명히 하나님의 임재"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셨습니다. 너희가 황량한 광야에 있을 때에 금송아지를 섬기며 패역한 무리가 장막을 짓는 것을 보았고 제사장들이 입는 옷은 금 에봇과 은실로 채색하여 단정하고 단정하였느니라
주변에 나무집도 없고 그 곳에 이렇게 아름다운 성막이 있구나 성막을 접었다가 치우면 옮겨져 금빛 햇살이 비치는 곳에 바로 세워진다. 거기에 신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영광? 그럴 필요도 없다 광야에서 이런 장막을 보면 자연히 탄식할 것이다 이곳은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는 곳이요 하나님이 자기의 이름을 거처로 두신 곳이라 영화가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라 이 곳이 너무 커서 당신은 이곳이 부유한 곳, 내가 들어가면 배가 고파질 곳, 내가 가난해도 부자가 될 곳, 가난하면 내가 치유될 곳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내가 그 안에 병이 있나니 그런 곳에 황폐한 곳에 빛나는 장막이 여기 있기 때문이로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으로 세우신 거처가 선명하게 보이고,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한 교회도 선명하게 보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분명한 그런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습니다.
악한 마음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
우리가 오늘날 여기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서는 하지 말지니라.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을ㄴ 이르지 못하였거니와.(신명기 12:8-9)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이 자기 이름으로 정하신 처소에 갈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씀인데 준비되지 않은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정신력입니다. 그들의 정신은 아직 하나님이 그의 이름으로 정하신 거처로 갈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그 곳의 땅을 유업으로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며, 자원하는 마음으로 준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그분의 백성에게 말씀하신 이유를 알고 있습니다.
너희 하나님 여호와에게는 너희가 그처럼 행하지 말고.(신명기 12:4)
하나님께서 "그들이 그들의 신을 섬기듯이 너희는 나를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무엇이 다른가요? 정신력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는 네가 그어ㅏ 같이 행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은 여호와의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그 신들에게 행하여 심지어 그 자녀를 불살라 그 신들에게 드렸느니라.(신명기 12:31)
우상을 섬기는 이 무리의 정신은 광기에 이르렀습니다. 자식보다 아이돌이 줄 수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자식을 희생해서라도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한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돈일 수도, 왕위일 수도, 무언가일 수도 있다. 우상을 숭배하는 정신은 무엇입니까? 우상숭배의 사고방식은 내가 너희에게 준 것을 너희도 나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내게 준 것이 동등한 가치로 교환될 수 없다면, 즉 당신이 나에게 준 것이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나는 더 줄 것입니다. 심각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등가 교환의 정신은 이미 매우 심각합니다.
이게 무슨 등가교환이고, 자식을 바칠 만한 야망이 뭐냐. 너무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세상을 지배하고 싶어할 것입니다. 본질적으로 등가교환의 사고방식인 우상숭배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신다. 그런 사고방식을 가진 한 무리의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이름을 위해 세우신 처소를 건축할 수 없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이러지 말아야 해요 언젠가 내가 데려 갈 때 이런 마음가짐이 있으면 끝내고 죽을 거에요. 그리고 사실은 또한 다윗 솔로몬과 "왕" 시대에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자발적으로 섬길 수 없을 때 하나님이 정말로 이 문장을 확증하신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일렀거니와 너희가 그 때에 너희 보기에 옳은 일을 하였으니 장래에도 그리하지 말라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은 후에도 그대로 행하매 하나님이 심히 벌하시니라 . 그들은 우상숭배의 마음으로 여호와를 경배하였고, 왕들의 시대에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신 적이 없었습니다. 그때도 그랬다면 오늘날의 형제자매들은 어떻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있는 교회가 왜 하나님이 그의 이름으로 세우신 거처가 됩니까? 목회자를 포함하여 우리의 핵심 지도자 그룹을 포함하여 소수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기꺼이 이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드릴 수 있다고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주실 것이라고 결코 기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원하여 섬기므로 이 곳이 하나님이 그 이름을 위하여 세우신 거처가 되어 궁핍한 자들이 이곳에 와서 기도하면 이루어지느니라!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네가 만일 네 아비 다웟의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한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허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너의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열왕기상 9:3-5)
솔로몬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 왕에게 "내 눈과 내 마음이 항상 거기에 있으리라"라는 거룩한 성전을 지으라고 명하셨고, 그곳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을 두신 곳입니다. 후에 솔로몬이 늙었을 때 그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눈과 하나님의 마음이 그 성전에서 멀어져 결국 그 성전은 황무지가 되었습니다. 성전의 폐허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의 폐허가 핵심입니다 오늘 형제자매의 황량한 마음이 다시 불타오르고, 황폐한 마음이 다시 불타오르고, 비뚤어진 마음이 바로잡힐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기꺼이 섬겨야 합니다. 이 곳은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으로 세우신 거처가 될 수 있고 하나님의 눈의 마음은 항상 여기에 있습니다. 이 헌신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실 수 있습니다.
왜 우리는 십일조를 드릴 때 자주 하는 말이 십일조를 드리는 의미를 모르면 드리지 마십시오. 십일조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기꺼이 하는 마음입니다.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사람이 없다면 이곳의 헌신은 황량한 헌신이며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위해 세우신 거처가 아닙니다. 돈은 어디로 갔습니까? 돈을 기부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지금 목회에서 너무 많은 간증을 들었는데, 여러 목회 지역의 형제자매들이 간증이 많은 것 같아요. 우리를 데려간 우리는 모두 우리 하나님께 바쳐졌습니다. 그들의 삶의 목표는 단 하나,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이름을 위해 세우신 거처를 건축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자원하여 섬기기 시작할 때 하나님의 눈과 하나님의 마음은 항상 거기에 있는데, 어찌 그런 일이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당신이 누구든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지은 영광스러운 장막의 장면으로 돌아가는 시간 여행 기계가 있다면 그 안에 서있을 때 "와, 놀랍다. , 놀랍다. 광야에서 어떻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이런 일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곳은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곳이고, 우리 교회를 그 수준으로 계속 밀어붙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위하여 세운 거처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없는 거처, 하나님이 사람을 축복할 길이 없고 기도가 들리지 않는 것은 영적인 분위기가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함으로써:
너희가 쫓아 낼 민족들이 그 신들을 섬기는 곳은 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 아래든지 무론하고 그 모든 곳을 너희가 마땅히 파멸하며.그 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하 신상들을 찍어서 그 이름을 그곳에서 멸하라.(신명기12:2-3)
왜? 그 곳은 어떤 악한 것으로 더럽혀졌기 때문에 영적인 상태가 올바르지 않고 하나님은 그 곳을 당신의 이름이 거할 처소로 세우실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왜 형제자매들이 교회에서 우상숭배를 없애도록 최선을 다해 돕고 있습니까? 우상숭배의 사고방식은 가난의 사고방식입니다. 왜 이러한 것들이 성경에 반복적으로 언급됩니까? 우상을 섬기는 그런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름을 두신 거처가 더 이상 없을 때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의 제안이 여전히 유용합니까? 우리 서비스가 여전히 유용한가요? 다 소용없어, 다 무가치해, 무가치해. 왜 하나님은 그 곳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상을 제하고 이런 일을 하게 하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거처로 이름을 지어 축복하게 하시고 복을 받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그의 이름을 지닌 거처를 통해 인간의 자유를 회복하기 원하신다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르믕ㄹ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멀거든 내가 네게 명한 대로 너는 여호와의 주신 우양을 잡아 너의 각 성에서 네가 무릇 마음에 좋아하는 것을 먹되.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무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음같이 먹을 수 있거니와.(신명기 12:21-22)
우리는 밖에는 자유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하며 참된 자유를 얻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세우신 곳, 즉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한 교회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점점 더 거룩해지고 이 세대는 점점 더 어두워질 것입니다.이 모든 상황은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겪었던 것과 비슷할 것입니다.황량한 곳에 영광스러운 성막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황폐한 시대에도 여전히 영광의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두신 곳이 있으니 그 곳에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축복하시고 하나님의 자유를 회복하실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실수하지 마십시오. 오늘날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과 다릅니다. 그들은 자기 아들을 원하는 것으로 바꾸어야 하는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고 우리의 자유를 회복시키기 위해 기꺼이 그리고 기꺼이 우리를 하나님의 이름이 있는 처소로 인도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생명을 매우 귀하게 여기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가 피를 먹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포함합니다. 하나님은 왜 우상숭배자들을 그토록 미워하십니까? 그들은 생명을 경멸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생명보다 더 귀한 것은 없으며, 하나님은 자신의 형상으로 지으셨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보면 하나님이 매우 혐오하실 것입니다. 우상 숭배자들의 어리석음. 그래서 하나님은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멸하셨고, 이 세상에 머물러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기꺼이 섬기려는 마음을 가질 때,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이름을 위해 세우신 거처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정반대일 때 하나님의 이름으로 제사드릴 곳을 찾지 않아도 자유로울 수 있고 주님께서 약속대로 영역을 넓히신 후에 고기를 먹고 싶습니다. 원하는 만큼 고기를 먹을 수 있습니다. 참된 자유는 어디에서 오는가 참된 자유는 이 하나님을 기꺼이 섬기는 데서 옵니다.
이스라엘 무리가 기꺼이 하나님을 섬겼고 더 이상 자기 생각대로 행하지 않았을 때 그들은 여호와의 뜻대로 행하기를 원했고 기꺼이 행하고 또 행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너는 더 이상 하나님께 시정받을 사람이 아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 있을 때 고기가 먹고 싶을 때 먹지 않고 물을 마시고 싶을 때 원망한 이유를 아십니까? 이때 하나님께서 왜 고기를 먹고 싶으면 내가 고기를 주어 먹게 하고 물을 마시고 싶으면 물을 마시라고 하셨습니까? , 그들이 이곳에서 제사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을 훈련시켜 더 이상 원망하지 않고 더 이상 우상숭배로 하나님과 거래하지 않고 하나님이 그의 성소에 두신 거처에 들어가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완전히 자유롭고 더 이상 자신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는 곳에서 그들은 기꺼이 자유로운 삶을 살고자 합니다.
오늘, 당신은 자유 의지를 기꺼이 얻기를 원하십니까? 우리는 하나님을 기꺼이, 기꺼이 섬기는 데서 시작하여 먹고 마시고 마음대로 예배하고 마음대로 예배하는 완전한 자유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원격으로 만나는 데 문제가 없습니까? 전혀 문제 없습니다. 여러분과 내가 하나님께서 그 이름의 거처로 세우신 백성, 즉 모든 정욕과 모든 우상의 제단을 무너뜨리는 백성이라면 우리는 그 영광의 일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