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요한복음01장-하늘의 문이 열린다!
하늘이 열리느냐 안 열리느냐가 운명을 결정한다
머리 위의 하늘이 열리지 않고 머리 위의 하늘이 어둡기 때문에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많은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네 머리 위의 하늘이 열리면 성령이 네게 임하사 네가 권능을 얻고 능을 행할 것이요 이 모든 일이 사람에게는 기적으로 들리느니라 우리는 자연적인 삶이 아닌 초자연적인 삶을 살며 우리의 삶이 초월적인 삶이 되게 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일반적인 신앙이 아니라 초월적인 신앙입니다.
머리 위의 하늘이 열리는지 아닌지가 당신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당신의 삶이 좋지 않다면 해결해야 할 첫 번째 문제는 하늘이 열려야 하늘의 천사들이 당신의 삶에 들어와 하늘의 모든 좋은 것을 당신의 삶으로 가져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늘이 열리지 않고 마귀의 하늘이 당신 위에 있다면 당신은 매우 힘든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목사님, 왜 당신의 기도가 응답될 수 있습니까? 내 머리 위의 하늘이 열려 있기 때문에 내 기도가 하나님의 보좌에 상달할 수 있고 하나님은 그의 천사들을 위아래로 보내어 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상상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영적인 것은 인간의 마음에 담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영적인 지식은 말할 것도 없고 세상적인 지식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영적 지식은 계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하늘이 열리면 하늘에서 계시가 우리에게 내려옵니다.
왜 우리는 성경을 공부할 때 항상 선지자들의 계시를 사용합니까? 선지자들의 계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경험에 따르면 긴 기도의 처음 30분은 매우 힘들지만 나중에는 시간이 빨리 가는 것을 느끼고 시간이 전혀 길다고 느끼지 않는 것은 우리 머리 위의 하늘이 열려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이 열리는 것은 큰 은혜, 즉 영의 세계가 열리고 인생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모든 질문은 영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당신의 질문에 대한 답도 영계에서 온다는 것을 아십시오.
우리도 날마다 영적인 일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큰 은혜가 있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하늘이 우리 머리 위에 열렸음이라. 머리 위의 하늘이 열리지 않으면 헛되이 사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하늘이 열리는 은총을 얻고 싶은데 어떻게 얻을 수 있겠습니까? 기도에는 대가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큰 은혜입니다
요한이 요한복음을 기록했을 때 그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우주 만물을 최초로 창조하신 말씀은 예수였습니다. 요한복음 1장 1-5절은 우주의 주인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과 행함으로 하나님을 나타내셨다고 말합니다.
태초에 도가 있었고 도는 신과 함께 있었고 도는 신이었다. 말씀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치되 어두움이 이기지 못하더라 (요한복음 1:1-5)
예수님은 회당의 딸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손을 잡아 그 어머니에게 넘겨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생명의 주인이시며 생명이 그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우리는 그의 영광 곧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도 보았습니다. (요한복음 1:14)
즉,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그 행하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이 그 안에 있고 그가 생명이시며 이 생명이 곧 사람의 빛이라는 것을 증명해 주신 것입니다. 생명이 우리 안으로 들어오면 우리는 더 이상 절망적이지 않습니다. 당신의 삶이 희망 없는 삶이라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선택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희망이 없으며 특히 매우 낮은 수준의 사람들은 산 정상에 오르는 것이 어떤 것인지 모릅니다. 권력의 정점에 도달하면 마치 진시황이 비약을 찾는 것과 같습니다 당신은 자신이 무력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당신은 신이 필요합니다.
어둠 속에 사는 사람은 소망이 없고 영적인 눈도 어두워서 소망을 볼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필요로 하는 것은 바로 사람이 흑암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삶이 무저갱 위의 공허, 혼돈, 어둠의 상태라면 당신에게 역사할 하나님의 영과 빛이 필요합니다. 소경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의 원래의 영광스러운 생명을 회복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모든 인간이 어둠에 가려졌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이 되어 세상에 오셔서 어둠 속에 사는 우리에게 생명의 본질을 드러내셨습니다. 우리의 육신의 눈은 매우 제한되어 육신의 것만 볼 수 있고 영의 세계에 대해서도 매우 모호하며 영의 세계에 있는 많은 것들이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지만 실재합니다.
사람은 영적으로 거듭나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런 사람은 육으로나 정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입니다. ("요한복음 1:12-13")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거듭나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거듭남에 대해 말하는 요한복음 3장입니다. 사람이 영에서 거듭난 후에는 머리 위의 하늘이 열린 사람이고 권세와 능력을 손에 쥐고 예수께서 하신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자주 표적과 기사를 행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나님의 자녀 곧 살아계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주셨으니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된 신분을 너희와 바꾸지 아니하리니 이는 천지간의 권세니라.
우리 중에는 월경통 문제가 있는 거의 모든 소녀들이 치유되었습니다. 권위가 사람에 대한 저주를 풀고 여성의 월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는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에 여자가 저주를 받아 해산의 저주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우리 손에 권세가 있기 때문에 이 저주를 깰 수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그것이 간증임을 증명한다.
증언이란 무엇입니까? 목격은 보고 증명하는 것입니다. 간증이 없는 믿음은 치명적인 믿음인데, 어떤 종교적 믿음이 간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 믿음의 진위를 사실로 증명하지 못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 가운데 있는 간증은 모두 참되고 살아 있으며, 모두 성육신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모든 사람은 항상 하나님을 증거해야 합니다.이 장에서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요한의 예를 설명합니다. 요한은 놀라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람이 온 것은 증인이요 빛을 증거하여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 1:7)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고 하나님의 영이 예수 그리스도 위에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전에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신 이가 내게 이르시되 너희가 성령이 내려와 거하시는 것을 보거든 그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이니라 나는 그것을 보고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했습니다. (요한복음 1:33-34)
John은 그것을 보았지만 다른 많은 사람들은 볼 수 없었습니다. 영적으로 소경은 볼 수 없고 영안이 열린 사람만이 영적으로 소경을 보고 간증할 수 있습니다. 눈먼 사람에게 간증에 대해 이야기하면 믿거 나 말거나 두 가지 결과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접하는 자는 그 이름을 믿는 자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영적인 눈이 열립니다.
믿음은 사람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할 수 있지만 사람은 더 경직되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한때 영적으로 눈이 멀고 영의 세계에 무지하여 돈을 벌기 위해 일을 하고 그 결과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자신이 가고 있는 길이 그 길이 아님을 깨닫고 돌이켜 우리가 본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이때 풀려나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 이 장에서는 "증인"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언급합니다.증인은 보는 사람이 보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했다면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간증해야 합니다. 그들이 많이 들으면 그들은 많이 듣고 나서 받아들이기 시작할 MW 자매의 아버지와 같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여 임하시면 하늘이 열린다는 뜻임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기도를 인도할 때 왜 우리 중 많은 사람들에게 와서 성령으로 나를 채우소서, 할렐루야 라고 말합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능력을 받고 영적인 눈이 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영적으로 소경이라면 당신의 믿음과 종교는 쓸모없고 하늘이 열리지 않으면 하늘도 쓸모가 없습니다.
우리의 죄를 속죄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하늘을 여는 열쇠입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사실은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는 것인데 이러한 은혜는 우리를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속죄하신다고 믿지만 여기서 믿음을 멈추고 머리 위의 하늘은 여전히 열리지 않습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시는 것은 필수적인 단계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예수님께 임하셨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도 합니다. 성경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성령세례의 단계가 없으면 근본적으로 기독교 본연의 의미를 상실하게 됩니다. 여러 해 동안 사람들이 이렇게 복음을 전했는데,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고 나면 끝입니다. 성경에는 그렇지 않고 성경에는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는데 성령을 받는 것은 중요한 단계입니다.
요한이 말하되 내가 성령을 보니 하늘로서 비둘기 같이 내려와 그의 위에 거하더니 ("요한복음 1:32" 참조) 우리는 믿음으로만 이 구절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기독교 신앙의 기초는 믿음인데, 믿지 않으면 나아갈 길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한 자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는 최고의 학생이 되고 싶어해. 그런데 이 자매님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믿음으로 말씀하셨습니까? 나는 대답했다: 물론, 내가 봤기 때문에 말해 줄게. 저는 기도할 때 종종 놀라운 계시를 보게 되는데, 이때 어떤 사람들은 “목사님, 정말 본 적이 있습니까? 이때 녹음을 못 하고, 잘못 읽은 건 아닌지 걱정이 많이 됐다. 그래서 저는 기독교 신앙이 믿음에 기초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천국의 대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입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한복음 1:29)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우리의 죄와 슬픔과 모든 고통을 짊어지기 위해 희생양이 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열린 값, 즉 하늘이 열린 은혜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나오며,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머리 위의 하늘이 열린 것 같으면서도 기도의 대가조차 지불할 마음이 없다면, 하늘이 열린 후에는 은혜를 받을 길이 없습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 죽음을 당하면 우리는 자유로울 수 있고 우리 머리 위의 천재가 열릴 것입니다. 이런 은혜를 받을 수 있으면서도 기도의 대가조차 지불할 마음이 없다면 정말 자신에게 빚진 것입니다.
한 형제가 저에게 물었습니다: 목사님, 어떻게 그렇게 오래 기도하실 수 있습니까? 이 형제의 눈에 있는 시신경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눈이 불편하신 모든 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면 그들의 눈이 나을 것입니다. 믿습니까? 당황한 그는 그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그가 그것을 믿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가 그의 눈을 간절히 바라는 한 그는 치유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말했다: 나는 그것을 갈망한다. 나는 그에게 손으로 눈을 가리고 기도하도록 인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흐릿한 것을 보곤 했지만 내가 그를 데려가 5분 동안 기도했을 때 그는 눈에서 손을 떼고 사물을 분명히 보았습니다. 3개월이 지나자 시신경이 완전히 정상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그렇게 오랫동안 기도를 할 수 없다고 말했고 여전히 머리 위로 하늘을 열지 않았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지극히 풍성한 은혜를 예비해 두셨으니, 기도의 대가를 치르고 머리 위의 하늘을 열면 하나님 나라의 모든 좋은 일이 여러분에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기도도 못하고 집회도 못 가면 안타깝지 않나요? 하늘을 여는 열쇠인 하나님의 어린 양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습니다. 많은 종교에서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셨다는 것을 믿지 않으니 천천히 속죄를 합시다. 속죄가 완성되기 전에 우리는 새로운 죄를 짓고 평생을 끝없는 순환 속에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머리 위의 하늘은 결코 열려 있는.
세상의 소망을 끊어버려야 예수를 따를 수 있다
이튿날 요한이 두 제자와 함께 거기 섰다. 그는 예수께서 걸어오시는 것을 보고 “보라, 이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 두 제자는 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물으시되 너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그들은 말했다: 랍비여, 당신은 어디에 사십니까? (랍비는 선생으로 번역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와서 보십시오. 그들은 그가 사는 곳을 보러 갔고 Shen Zheng이 도착하기 직전에 그와 함께 살았습니다.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따랐던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였습니다. (요한복음 1:35-40)
요한의 두 제자는 예수께서 사시는 곳만 보고 내가 메시야(메시아는 그리스도시요 구주이시다)를 보았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무엇을 본 까닭이 아니요 오직 믿었음이니 그의 스승 요한이 말하되 보라 이는 예수 그리스도시라 하므로 그들이 믿었더라
이 두 사람이 그것을 믿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두 사람은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에 자신들이 희망 없이 어둠 속에 살고 있음을 압니다. 만일 당신이 이 두 제자와 같이 어둠 속에 희망 없이 살고 있다면 내가 당신에게 말하겠습니다. 보라, 예수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당신의 죄가 지워지고 당신 머리 위의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기다리고 기다리며 예수님을 따라 간증하기 시작했고, 후에 신약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하신 일을 기록했고, 이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행했으며, 요한도 그가 가는 곳마다 그러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침례를 주십시오. 그러므로 형제자매들은 사람들이 어디를 가든지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어 영의 눈이 열려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도록 격려합니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오는 것을 보시고 가리키시며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마음에 거짓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예수께 말했다: 나를 어떻게 아셨습니까? 예수님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왕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나를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요한복음 1:47-51)
즉, 하늘이 열린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내려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결론
사천 년 전에 야곱이 꿈을 꾸었는데 하늘에 사닥다리가 있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깨서 이르되 참으로 두려운 곳이로다 이런 말을 하는 자들은 다 이 세상에서 소망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살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느끼면 예수님을 따를 길이 없습니다. 당신이 이 세상의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모든 희망을 예수 그리스도께 두지 않는다면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오르내리며 하나님의 기적적인 일을 행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하늘에서 내려오기 때문에 사람들이 풀려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