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마태복음23장-외식하는 자들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독사의 새끼가 되는 것입니다!
서론
여러분, 마태복음 23장을 봅시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는 종종 <성경>을 읽었지만 우리가 읽는 의미는 기본적으로 단편적이고 일관성이 없으며 연결할 수 없는 것은 완전히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는 <마태복음> 1장부터 22장까지 기본적으로 두 가지 논리 체계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하나는 세상의 논리 체계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논리 체계입니다.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는 아주 완벽한 체계,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사람을 배려하는 체계입니다. 그리고 완전한 논리 체계는 세상의 논리 체계와 완전히 양립할 수 없는 체계입니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가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마태복음 13:47-48)
이 문장은 저에게 매우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더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을수록 더 좋다고 생각했고 온 나라와 온 민족이 주님을 믿게 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우리는 전국의 60-70%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었지만 그렇게 많은 기독교인이 보물이 되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기기에서 정말 모두 픽업됩니까?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나는 또한 어떤 목회자들이 말하는 것을 자주 듣습니다. 나는 싱가포르의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사실 기독교인은 말할 것도 없고, 목사라는 직업에 있어서도 우리의 사적인 교류에서 많은 현상들이 저를 혼란에 빠뜨렸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종종 암으로 고통받는 목회자를 봅니다.바로 오늘 아침에 한 목사가 유방암으로 사망했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하나님이 어찌 이런 일을 허락하실 수 있느냐고 한탄하고 있습니다. 사실 암은 매우 고통스러운 소모성 질환인데 암에서 하나님의 선한 뜻이 보인다고 생각하십니까? 어쨌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볼 수 없었습니다. 사실 얼마 전에 암으로 돌아가신 아주 유명한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저는 매우 혼란스럽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목회자들이 암으로 죽어가고 있습니까? 신권은 고위험 직업임이 밝혀졌습니다. 이런 것들을 스스로 생각했을 때 나는 깊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이 세상에는 신의 보물이 그렇게 많지 않아야 합니다.
나라 전체를 변화시키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면 변화가 완료된 후에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보물이 될까요? 정말 말하기 어렵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나쁜 것은 버리십시오. 지금까지 우리는 약 10명의 문둥병자 중 한 명만이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돌아왔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100명의 문둥병자가 있다면 10명이 돌아와 예수님을 따를 것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매우 드문 확률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긴 결과는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사도 바울처럼 되었고 어떤 사람들은 위선적인 바리새인과 서기관이 되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기본적으로 하나님을 전업으로 섬기는 사람들로 날마다 성경을 읽고 모세의 자리에 앉아 서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 읽는 법을 가르치며 장차 지옥의 형벌을 면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어떻게 지옥의 징벌을 받게 될 수 있겠습니까? 저는 마태가 예수님이 이 장을 쓰실 때 말씀하신 것을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은 결국 지옥의 형벌을 면치 못하리라 예수님은 실제로 우리에게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할지 경고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피상적인 일을 하는 위선자들은 말은 할 수 있어도 하지 못한다
사실 이 세상에서 평범한 사람이든 그리스도인이든 기본적으로 두 가지 체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논리 체계이고 다른 하나는 세상에 속한 논리 체계입니다. 당신이 사는 것은 당신이 죽는 것입니다. 세상 것을 위해 살면 세상을 위해 죽고, 하나님을 위해 살면 하나님을 위해 죽으십시오.
내 논리 체계에서 나는 단지 하나님 나라의 논리 체계에 따라 살고 싶을 뿐인데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말하는 것에 따르면 이 삶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 말을 하자마자 인생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저를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다면 인생은 무엇입니까? 사실 사는 문제는 성경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흴ㄹ 권하노니 너희 몸으 ㄹ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로마서 12:1)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섬긴 후에 칭찬을 받아야 할 것 같지만 사실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아주 흥미로운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목사가 되면 그 사람에 대해 말할 수 없습니다. 얼굴을 많이 보여줘야 합니다. 그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면 곤란합니다. 나는 심한 우울증을 앓는 목사님을 알고 있었는데, 그의 동료들은 그 목사님이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우울증에 대한 나의 봉사가 매우 효과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내 서비스가 필요하면 나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정말로 그를 우울증에서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 결과 동료의 반응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괜찮지 않다, 너무 예민하다, 혼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그것은 그가 당신을 섬길 수 있고 당신이 우울증에서 벗어나도록 도울 수 있는 목사가 있는 것이 어떻게 골칫거리가 될 수 있는지 말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좋은 일이 아닙니까? 그의 이해에 따르면 우울증과 암으로 고통받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이며 지옥의 형벌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왜 안 돼? 얼굴이 중요한데 얼굴이 얼마나 중요한가요? 불편한 것보다 얼굴이 더 중요합니까? 충분히 고통받지 않았다면 고통을 원하면 계속 고통받을 수 있습니다.
이에 예구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너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잔치의 상석과 회당의 상좌와.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사람에게 랍비라 칭함을 받는 것을 좋아하느니라.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이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또한 지도자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지도자는 하나이니 곧 그리스도니라.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태복음 23:1-12)
이 경전은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모세의 자리에 앉아 있고 월급이 적지 않고 권력이 적지 않지만 우리의 태도가 사물의 발전 방향과 추세를 결정한다고 말합니다.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핮 아니하며.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마태복음 23:4-5)
모세의 입장에 서서 못한다고 하면 얄팍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일단 사람이 아주 영적인 모습을 보여서 누가 틀렸다고 하면 반드시 이를 드러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30~50년 동안 목회를 했다면 그가 과거에 설교한 모든 설교가 틀렸다가 갑자기 중국의 운명신학 이론이 나오는데 자기가 설명한 것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연습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체면을 구해야 합니다.
사실 머리를 깎고 9시를 세고 큰 회색 가운을 입고 탁발을 들고 거리를 걷는 것과 같이 체면을 세우는 것은 매우 쉽습니다. 스님, 안에 스님인지 아닌지는 얼굴은 알지만 마음은 모르기 때문에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큰 옷을 입고 막대기를 손에 들고 웅장하고 큰 모자를 쓰고 천천히 걷고 리더처럼 보이면 사실 이 모든 것을 연기할 수 있다. 배우들의 연기는 모두 단련되어있어 재단사에게 겉 모습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있는지 말하기 어렵다.
예를 들면 잔치에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을 좋아하고 누가 어느 자리에 앉느냐를 매우 신경 쓰며 스승, 랍비, 스승과 같은 호칭도 매우 좋아한다. , 그것은 그에게 큰 무례입니다. 그리고 세상에는 아버지라고 불리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명성을 좋아하는 사람은 곤경에 처합니다. 당신이 이것을 정말로 좋아한다면, 당신 안에 정말 신적인 논리 체계가 있는 것입니까?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큰 자는 그의 종이 되어야 한다.
저희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여 하나니 곧 그 차는 경문을 넓게 하며 옷술을 크게 하고.(마태복음 23:5)
오늘날 우리는 중국의 운명신학이 매우 값비싼 신학이며, 사람들을 섬기고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는 신학 체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저와 우리 팀의 특징은 섬기기 위해 대가를 치르는 것이지 설교나 성경 공부는 절대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설교하고 성경을 공부하는 것은 쉽다 모세의 자리에 앉는 것은 모세와 같고 승려와 같은 큰 옷을 입고 경전을 쓰고 의사의 모자를 쓰는 것은 모두 외적인 것이다.
섬기는 마음이 있습니까? 전에 내가 말을 할 때에 사람을 앉게 하려는 것 같아서 곤란한 일이 있었나니 곧 내가 일렀으되 네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였나니 내가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함을 말할 때에 하나님을 목양하는 것을 말하였노니 하나님의 양 떼를 치라 함은 우는 자와 함께 울고 기뻐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니라 그 결과 한 목사님이 제 자리가 맞아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저에게 직접 오시면 한 분 한 분 섬길 시간이 없을지 몰라도 제 목적은 저와 같은 많은 목회자를 양성하는 것입니다. 처음 교회를 시작할 때 형제자매들이 정말 축복을 많이 받았고, 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섬겼습니다. 내가 젊었을 때 나처럼 대가를 치르고 나를 섬기는 목사님이 있어서 내가 훨씬 덜 고통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 나라의 제도는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태복음 23:11-12)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 교회는 사람의 이름을 전하지 않고 이름도 없고 얼굴도 없다는 것입니다. 내 외모로 판단하면 나는 그저 보잘것없는 사람일 뿐이지만 뼈속으로는 쓸모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좋다. 솔직히 말해서 예수님은 12제자를 데려갔고 나는 몇몇 제자만 데려갔다.
우리는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 외모나 외모나 영적으로나 남의 존경하는 말을 좋아하고 남이 존경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하고 곤란해집니다. 그런 사람이 서기관과 바리새인 사이에 속히 빠져들어 마침내 독사의 종으로 변했는데 그들이 어떻게 지옥의 형벌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남을 위함이 아니요 나를 위함이요 위선자와 바리새인을 좇지 말라 나는 체하는 것이 내 성품이 아니니라 형제자매 여러분, 겉치레로 섬기면 장차 당할 죄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속임수에 능하고 위선으로 하나님을 섬기면 누구를 속일 수 있겠습니까? 법을 요약하자면, 귀신은 사람을 잘못 찾지 않고, 신은 사람을 잘못 찾지 않는다.
목사의 아들이 매춘부로 잡혀 감옥에 갇힌 후 그의 부모는 그를 위해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해 주었다. 나는 그들이 이 에너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데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좋은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전도사지만 결국 집안에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고, 며느리를 설득해 남편이 밖에서 장난치는 것을 받아들인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인데 곤경에 처해 있다는 말씀을 듣고 저도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을 종교로 끌어들이는 위선자들은 그들을 지옥 자식으로 만듭니다
(마태복음 23:13)
오늘날 얼마나 많은 설교자들이 경직된 삶을 살고 있는지,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이 이 세대에 없어졌다고 생각하고, 누군가가 이 기적을 행하여 마귀의 나라와 흑암의 권세를 흔들면 이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종류의 복음은 능력도 없고 사람의 문제를 해결할 능력도 없는데 이것이 복음인가? 확실히! 어떤 사람이 위선으로 섬기고 계속 이같이 하면 천국 문을 사람 앞에서 닫고 들어가지 못하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인용하고 싶은 많은 예가 있습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을 섬긴 적이 있는데 대가를 치르고 석 달 동안 기도했더니 완전히 풀려났습니다. 그는 전통적인 교회 배경을 가지고 있었고, 그의 목사님이 그를 부르셨을 때 그는 그의 우울증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그가 이단 교회에 다니는지 여부에 대해서만 걱정했습니다. 우울증을 해소할 수 있는 사람은 이단이 되고, 우울증을 해소할 수 없는 사람은 정통이 된다.
유학을 가 우울증을 앓다가 저에게 연락을 주신 전통교회 자매님도 계셨습니다. 그녀가 고향에 돌아왔을 때, 그녀의 할아버지도 침대에서 중풍병자였다. 마을에서 선교사가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그 자매님이 나를 불렀고 나는 그녀의 할아버지를 데리고 기도했다. 기도하는 동안 나는 그녀의 할아버지 소리를 들었다. 그녀의 할아버지는 고통에 비명을 질렀고, 기도를 드린 후에 그녀의 할아버지는 땅 위를 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설교자들은 나에 대해 대단한 의견을 갖고 있는데 할아버지를 땅바닥에 걷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이단자라고 생각한다.
예수님과 같지 않은 사람이 정통이 되고 예수님과 같은 사람이 이단이 된 것이 이상합니다. 어떤 목사가 어떤 제자를 인도하고, 천국 문을 닫고,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다른 사람이 들어가고,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 가운데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여러분 속에 있는 위선을 내어 버리십시오. 위선은 무거운 형벌을 내리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장난을 치는 데 익숙하고 가족은 귀신의 지배를 받지만 체면을 구하고 갈등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이런 분이셨습니까? 예수님께서 성전 안에 있는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그들을 쫓아내실 때 얼마나 많은 갈등을 일으키셨습니까? 그들이 기도하는 집을 도둑의 소굴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는데도 여전히 하나님과 장난을 치고 있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제가 여러분에게 경고해야 할 것은 체면을 구하지 않고 위선이라고 말하겠습니다. 얼마나 자주 하나님의 말씀대로 섬겼습니까? 당신은 얼마나 자주 위선적인 방식으로 봉사했습니까? 사람이 위선자가 되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그는 오랫동안 위선자였기 때문에 항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태복음 23:15)
최근에 들은 이야기. 한 사람은 신학을 조금 공부하고 나중에 전임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전임 설교자였을 때 그의 아버지는 비교적 잘 알려진 지역 기업가였고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모두 지역 교회에 다니며 베푸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의 공장에서 일하던 한 노동자가 사고를 당했는데 누군가가 차에 치여 큰 철근이 그의 머리를 꿰뚫고 일부는 공장에서 떨어져 사망했는데 이는 매우 비극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런 일이 발생하면 돈을 잃어야하고 사업이 급격히 쇠퇴했습니다 정말 비참합니다!
사실 그의 어머니도 매우 흥미롭고 그의 어머니도 교회에서 봉사하고 많은 돈을 기부합니다. 그녀가 "성경"을 읽고 어린아이 같다고 했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유치한 아이처럼 말하고 행동했고 그 결과 그녀의 어머니는 정신병에 걸렸습니다. 사실 "성경"을 잘못 읽은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으로는 어린아이 같지만 영적으로는 어른과 같아야 합니다. 선과 악을 분별하는 것은 어른이 아니라 점점 더 아이와 같아져야 합니다. 선과 악을 분별하는 데는 물론 어른들이 아이들보다 더 진지하지만 영적으로 성장하고 성숙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이 오랫동안 착한 척하면 항상 그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고, 장난을 치러 나올 때 반드시 갚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길에 위선자들이 더 심하게 벌을 받지 않습니까? 사람을 교회로 끌어들이지만 그를 지옥 자식으로 만드십시오. 어떤 사람이 사람을 전업 동역자로 끌어들여 지옥자식으로 만드는 것은 지극히 이상한 현상입니다.
목회자나 기독교인, 전도사, 교회 지도자들은 자신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 성경의 마지막 장으로 돌아가 보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지만 예수님은 말씀이 없으셨다. 그들은 예수님의 반박을 받았지만 여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의 논리를 담고 있기 때문에 돈과 세금과 부부를 중히 여기지만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지마.
정말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양 떼를 목양하기 위해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얼마 전에 한 자매님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녀는 “저는 실제로 하나님을 매우 사랑합니다. 나는 말하고 싶다, 당신은 무엇을 사랑합니까? 오늘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양 떼를 치라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사람들을 종교로 끌어들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이 번영하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목회자와 지도자들은 정직한 마음과 하나님의 말씀대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그저 높은 자리에 앉기를 좋아하고 존귀한 호칭을 누리기를 좋아할 뿐인데 정말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되었습니까? 우리 가운데 지도자는 깨어 있어야 하고, 섬기는 사람이어야 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양 떼를 쳐야 합니다.
위선자, 앞을 못 보는 맹인,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 자, 허물을 찾는 자
눈먼 인도자들에게 화 있을진저! 위선자는 자신이 눈이 먼데 다른 사람을 걷게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반밖에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여 아는 것 같으며 진리가 없어도 진리가 있는 것 같으며 소경이 되어도 여전히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소경으로 난 사람을 보게 하셨는데, 바리새인들은 보지 못하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이 교회 안에 있다면 어떻게 교회의 동역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옳지 못해서 안타까운 일을 많이 겪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반성조차 하지 않고 있습니다. 제가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모르면 무조건 모른다고 하고 아는 척은 안 해요. 예를 들어, 마태복음 23장을 찾아보고 내가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면 나는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모두에게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진정으로 구하는 자들 가운데 계시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화 있을찐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우맹이요 소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금이냐 금을 거룩하게 하는 성전이냐.너희가 또 이르되 누구든지 제단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그 위에 있는 예물로 맹세하면 지킬찌라 하는 도다.송경들이여 어느 것이 크뇨 그 에물이냐 예물을 거룩하게 하는 재단이냐.그러므로 제단으로 맹세하는 자는 제단과 그 위에 있는 모든 것으로 맹세함이요.또 성전으로 맹세하는 자는 선저과 그 안에 계신 이로 맹세함이요.또 하늘로 맹세하는 자는 하나님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로 맹세함이니라.(마태복음 23:16-22)
오늘날 교회에 그런 이상한 상황이 있습니까? 한번은 어떤 사람의 설교를 들었는데 어떤 사람이 4개의 거룩한 아야를 불렀는데 어떤 사람은 그것이 틀렸다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거룩한 것이 세 가지밖에 없는데 왜 네 가지를 노래했습니까? 이런 말을 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왜 이런 것들을 귀찮게! 천국에서 성성성성 셋을 다 부르지 않고 반복해서 부르면 중단점만 다른데 어디부터 세어야 할까요?
사실,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 있고, 그것들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왜 이렇게 했을까요? 문제에 부딪혔을 때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을 때 말도 안 되는 말을 하여 사람들을 반쯤 이해하게 만들고 이 목사님이 매우 강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화 있을찐저 소경된 인도자여 너희가 말하되 누구든지 성전으로 맹세하면 아무 일 없거니와 성전의 금으로 맹세하면 지킬지라 하는도다.(마태복음 23:16)
얼마전 싱가폴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의 손에 금가루가 나오는 풍조가 있었는데 저도 본적이 있는데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데 다이아몬드 몇 개 주워도 이게 무슨 말입니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까? 이런 일이 능히 맹인을 보게 하며 앉은뱅이를 걷게 하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죽은 자가 죽은 자를 살리느니라
한 아이가 손과 발을 비롯한 온 몸에 궤양이 있었는데 데리고 기도하자 피부가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며칠 전 귀신이 이 아이의 주위를 배회했다. 계속해서 귀신을 쫓아내니 마침내 아이가 풀려났습니다. 이제 아이 몸의 곪은 피부가 치유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펴시어 많은 금가루가 나오는 것을 언제 보셨습니까? 이것들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 모든 것이 무엇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제단 위의 선물을 가리키며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눈먼 사람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진지하게 하고, 예수님이 하지 않는 일은 하지 맙시다!
오늘날 우리는 지옥의 권세를 짓밟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우리는 원수를 약탈하고 음부의 권세를 짓밟고 마귀에게 잡힌 자들을 구하는 하나님 나라의 용사가 될 것입니다! 마귀에게 타락한 자들을 해방하라! 그것이 예수님이 하신 일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럴듯하게 읽히는 이상한 이론을 만들어내지만 핵심은 사업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남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은 매우 흔한 현상이다. 그래서 모세의 자리에 앉자마자 페이크 게임을 하기 시작했고, 하면 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처음에는 장난이 좀 심해서 랍비, 스승, 선생,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좋아했지만 진심으로 섬기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이 하는 일이 하늘 문을 닫고 지옥 문을 여는데, 참 하나님에 대한 진리가 불분명할 뿐입니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마태복음 23:23-24)
오늘 우리가 이야기한 많은 문제들은 교회 안에서 매우 심각합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에게서 결점을 찾는 것을 좋아합니다. 성경의 구약성경이나 신약성경에서 감히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흠을 잡는 사람을 본 적이 없는데 이것이 오늘날 교회에서 유행하는 신학 체계가 되었습니다. 뭐야?? 단지 우리가 공의와 인자와 신실함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보지 못하고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운명을 보지 못한 것일 뿐입니다. 아버지, 그런데 왜 우리는 제이콥을 볼 수 없습니까 운명은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는 영적인 눈을 떠서 더 이상 하루살이를 걸러내고 낙타를 삼키는 그런 사람이 되지 말고, 소경이 되지도 맙시다. 그러려면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하고, 영적인 비전이 있어야 하고, 이 세대를 섬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운명이 있고, 하나님의 공의와 긍휼과 신실하심을 나타내야 합니다!
물론 우리도 10분의 1, 20분의 3, 10분의 3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돈이 전혀 부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돈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마음을 바꾸십시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람들을 마귀의 속박에서 풀어주고, 눈먼 자를 보게 하고, 포로된 자를 자유롭게 하고,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입니다!
외식하는 자는 겉은 깨끗하되 속은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마태복음 23:25-26)
사람들은 이런 외적인 것은 중시하면서도 내적인 것은 바꾸려 하지 않는데, 오늘날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세상의 논리 체계를 완전히 없애버리려고 합니까? 왜 눈이 멀까요? 왜 컵과 접시의 겉만 씻고 속은 씻지 않습니까? 컵과 접시는 안팎으로 세척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세상의 제도가 있고 피상적인 일을 좋아하면 소경 인도자요 바리새인이 되어 지옥에서 형벌을 받습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하나님을 섬기는데 누리지 못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나는 한때 교회 목사를 섬겼습니다. 그는 뇌종양과 수두증으로 고통 받았습니다. 그는 정말 비참했습니다. 그가 입을 열었을 때 그는 말했습니다: 보십시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고 일주일에 하루만 쉴 수 있습니다. 아픈?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야?
당신이 일주일에 하루를 쉬면 나는 하루도 쉬지 않는데 왜 나는 이 병에 걸리지 않습니까? 저는 20대에 주님을 믿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쉬는 날이 없습니다. 내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을 알기에 내가 사는 이유를 알기에 하나님은 우리의 보물이요 나도 하나님의 보물이기에 오늘까지 달려왔습니다.
한 자매는 20년 넘게 당뇨병을 앓다가 나중에 약과 인슐린을 끊었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3년이 흘렀고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녀는 건강하고 건강합니다. 점점 강해지고 있다! 처음에는 아들과 남편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는데, 이것은 죽음의 행위가 아닙니까? 우리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산다. 물론 나는 당신이 약을 먹지 말라고 권하지 않습니다 우리 언니는 약을 먹지 않는 것이 자신의 선택입니다.
저희 자매님은 매일 간절히 하나님을 섬기며 하루에 몇 시간밖에 자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때때로 저는 그녀가 극도로 피곤하여 한 번에 10시간 이상 자고 회복되어 계속 봉사하는 것을 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게 이런 하나님을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표면적인 속임수를 쓰지 않고 가끔 표면적인 속임수를 쓰더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를 징계하십니다. 우리의 소유물에 넣을 수 있도록 하나님의 시스템.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라믜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태복음 23:27-28)
교회 제도에만 부패가 만연한 것이 아니라 세상의 논리 체계를 사용하는 세상에서 부패가 없는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He Shen이 말했듯이 정직한 관리는 드물고 부패한 관리는 많습니다! 군용 항공기 장관 인 저에게 쉬운 일입니까? 일을 그들에게 맡겨야 해요. 저 혼자 다 할 수는 없겠죠? 이 사람들을 일하게 놔두세요. 먼저 먹여야 합니까? 모든 것이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화 있을찐저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쌓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가로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면 우리는 저희가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예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그러면 너희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자손 됨을 스스로 증거함이로다. 너희가 너희 조상의 양을 채우라.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마태복음 23:29-33)
너 이해할 수 있니 우리가 조상 때에 살았더라면 그 선지자들을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 하여 예수를 죽이고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그들이 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지 우리는 정말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자기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서 말하지도 않고 비판하지도 않았으나 자기들을 죽인 선지자들의 자손임을 마음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조상들처럼 계속 달려갔고, 외식함으로 하나님을 섬겼으며, 예언자들이 진리를 말했기 때문에 결국 예언자들을 죽인 자들이 되었습니다. 진실을 말하는 자와 거짓을 말하는 자와 영과 진리로 섬기는 자와 외식함으로 섬기는 자를 화목케 할 길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싸ㅣ 땅 위이ㅔ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 가리라.낵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것이 다 이 세대에게 돌아가리라.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 같이 내가 네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번이야 그러나 너희가 원치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23:34-39)
당신이 진정으로 하나님을 섬기기 전까지는 하나님이 당신에게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없습니다.이 문장을 읽은 후에 우리는 이 문장의 의미가 실제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결론: 위선적이지 말고 진짜 사람이 되어라
우리가 독사와 서기관과 위선자 바리새인의 자식이 되겠느냐? 당신과 나, 당신이 남자든 설교자든 항상 외식하기를 좋아하고 마음과 진실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고 정상적인 눈으로 자신을 보지 못한다면, 끊임없이 더 실제적인 일을 하고, 거짓을 가지고 놀지 않고, 그래야만 이 세대를 섬길 수 있습니다.
그것이 인간이든 설교자이든 우리는 현실적으로 해야 합니다. 예라면 예, 아니오라면 아니오, 모르면 모른다고, 모르면 계속 탐색하고 찾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푸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내부를 모르고 여전히 표면적으로 속임수를 쓴다면 얼마나 불편할 것입니까! 사실 우리가 잘하면 잘되고 잘 못하면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반성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자가 되어 지옥의 형벌을 면해야 하겠습니다.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