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마태복음20장-섬김을 받으려 함이아니라,도리어 섬기려 하고 함이니라

서론

여러분, <마태복음>20장을 찾아봅시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경전 장이며, 나는 오랫동안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최근에 나는 계속해서 인터넷을 다시 검색했고, 성서 연구에 관한 책들을 확인했습니다. 저는 이 사람들의 성경 해석이 기본적으로 만족스럽지 못하다고 봅니다. 오늘 드디어 이해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인간인지의 논리적 시스템은 우리에게 많은 문제를 안겨줍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일하는 사람과 퇴근하고 출근하는 사람이 같은 급여를 받는 것이 공정한가? 많은 사람들은 일을 더 하고 일을 적게 하고 같은 임금을 받는 것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포도원 주인이라면 이렇게 하시겠습니까?

다윗이 군대를 이끌고 싸우자 수백 명의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나는 피곤하다. 더 이상 싸우고 싶지 않다. 다윗이 옳다고 대답하고 너희는 머물러 쉬고 나머지는 함께 싸우러 가거라. 어떤 사람은 전쟁에 나가지 않은 사람은 승리의 전리품을 얻지 못하지만 전쟁에 나간 사람은 그것을 얻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전리품을 전쟁에 나간 자와 전쟁에 나가지 아니한 자를 나누어 가졌습니다. 이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사람들의 논리적인지 시스템은 실제로 많은 문제를 가져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할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합리적이지 않다고 말할 것입니다. 仁者는 仁을 보고 賢者는 智를 본다 우리 안에 하나님의 논리적 체계가 있는가 하는 것이 문제이다. 사람은 자신의 견해와 인식이 옳다고 생각하도록 태어나고, 누구도 자신의 견해가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주 일찍 주님을 믿고 죽은 후에 천국에 간 사람이 있고, 죽기 전에 주님을 믿고 죽은 후에 천국에 간 사람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주님을 믿은 사람들이 말하길, 보라, 나는 주님을 이렇게 오래 믿었고, 너희는 주님을 얼마 동안 믿었는데, 이것이 하나님 앞에 오면 어떻게 되겠느냐? 그런 논쟁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두 도둑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그 중 한 사람은 예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갔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이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나는 이 강도가 매우 부럽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낙원에 갔다. 나는 또한 내가 살아있는 동안 죄의 쾌락을 즐길 수 있기를 바란다. 도박을 해야 하는 창녀들 누가 돈을 투자하고 누가 은행을 털고 누가 은행을 털고 죽기 직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면 예수님의 보혈이 내 모든 죄를 지워 주실 것입니다.

당신은 죽기 전에 예수를 믿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까? 어느 것이 더 비용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은 죽기 전에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가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은 "마태복음" 20장을 여러분께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인자가 온것은 섬기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태복음 20:28)

하나님을 위해 값을 치르는 것은 백배를 얻는 것이지만 백배에 대해서는 사람마다 판단하는 관점과 기준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나는 아주 불행하게 살았는데, 지금은 모든 것이 매우 풍요롭습니다. 그러면 백 배가 되지 않을까요? 예전에는 1위안이었는데 지금은 100위안이 되어 돈으로 따지면 100배로 늘었고 예전에는 1명만 섬기다가 지금은 100명을 섬기고 나중에는 섬기게 될 것이다. 10,000명 어느 것이 더 비용 효율적입니까? 우리는 편협한 판단 기준을 없애고 싶습니다.

천국은 마 ㅣ 품군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 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저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군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또 제 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저희가 가고.제 육시와 제 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제 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섰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군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마태복음 20:1-7)

아직 퇴근 시간이 한 시간이나 남아 있는 것을 보고 먼저 들어간 사람들은 동산 깊은 곳으로 일하러 갔고, 마지막으로 들어간 사람들은 멀리 가지 않고 일을 시작했습니다. 퇴근 시간에 맨 나중에 들어간 사람이 먼저 나와서 한 데나리온을 받고 맨 나중에 들어간 사람도 한 데나리온을 가져갔습니다. 이런 식으로 회사를 운영하면 회사는 반드시 무너질 것입니다. 모두가 덜 일하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하고 고급 정원의 사람들은 불평하기 때문입니다.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가로되.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태복음:11-16)

가장이 자기 뜻대로 착한 사람인데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먼저 온 사람과 같은 삯을 준다고 해서 불공평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일하기 싫은데 돼지처럼 키우고 싶은 아주 게으른 사람이라면 입을 벌리고 옷을 펴고 손을 뻗을 수 있는 게 낫다면 그런 일이 부당하다고 느낄 것이다. .

내 생각은 어때? 먼저 출근하는 사람들이 수고하고 덥다고 생각하지 않고 제 안에 일하기를 좋아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혹자는 나를 워크홀릭(즉, 워커홀릭)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나는 워커홀릭은 아니지만 내 안에 인식이 있다. 며칠 전 섬김을 받고 있는 어떤 사람이 목사에게 말했다: 이 세상에 게으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의 목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을 모르십니까? 그는 게으르지 않습니다. 나는 게으르지 않고 일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일하지 말라고 하면 괴로워요 그냥 일하는 게 좋아요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할까요?

당신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지만 그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일할 수없고 하루 종일 집에 있고 음식과 옷에 대해 걱정하고 며칠 후에 지루해지면 이것이 계속되면 어떻게됩니까? 내가 싱가포르에 처음 왔을 때, 상사가 아침에 정시에 출근하고 저녁에 정시에 퇴근하라고 지시했지만 그는 아무 일도 할 필요가 없었다. 일하다 가끔 감정이 격해져서 사장님이 할 일도 없고 사무실에 앉아만 있다가 하루, 이틀, 사흘을 앉아 있다가. 사실 사람을 일하게 하지 않는 것이 일종의 괴로움이다 나는 사람에게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섬기러 왔다.

사역는 은혜다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하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태복음 20:28)

하나님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시며, 백 배로 얻는 자를 좋아하시나니, 이는 물고기에게는 물고기와 같으니라. 그래서 오늘날 우리 교회의 특징이 있는데 섬김은 은혜입니다. 당신은 내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XX 형제님, 당신은 지금 이 단계에 이르렀고 봉사하지 않으면 성장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해력을 향상시켜야 하며, 동산에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은혜입니다. 일하는 것이 수고와 더위라고 생각하면 살아 있는 맛을 느낄 수 없습니다. 나는 매우 감정적입니다. 왜 어떤 사람들은 일하기를 원하지 않고 서비스를 받기를 좋아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사장이 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사실 사장이 되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아무도 사장에게 월급을 주지 않지만 그가 돈을 벌든 못 벌든 다른 사람에게 월급을 주어야 합니다.

이 세상은 매우 흥미롭지 만 모든 종류의 견해가 있습니다. 사람이 일을 하자마자 슬픈 얼굴을 하고 자기가 하는 일이 고된 일처럼 느껴진다면 하나님이 어떻게 그를 그 앞에 세우실 수 있겠습니까?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게으름뱅이고 게으름은 악덕이다. 최근에 게으름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데, 게으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언젠가 내가 게으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는 아침에 정원에 출근하는 것이 즐겁지 않다고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학창시절에는 공부가 일종의 유희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움은 그만큼 괴로웠고, 일도 그만큼 괴로웠고 돈을 벌고 싶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인상을 요구한 적이 없고 열심히 일했으며 월급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돈이 있으면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일하고 싶고 문제를 해결하고 혁신하고 업데이트하고 싶은데 돈이 없겠습니까? 바보들은 일하기 싫을 뿐이고 즐기기를 원할 뿐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오는 특성이 있는데 사람에게 섬김을 받고 싶습니까, 사람을 섬기고 싶습니까? 남에게 섬김을 받는 것도 그런 사람이고, 섬기러 오는 것도 또 다른 사람이니, 예수님처럼 섬기는 사람이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처럼 되기를 원하지만 예수님과 같은 사람들을 섬기기는 원하지 않고 섬김을 받기만 원합니다. 맨 뒷줄에 서 있는 사람들은 허리와 다리를 두드리고 발바닥을 주물러주고 물담배를 피우고 누워서 주무르고 주무르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 얼마나 좋은지! 많은 사람들이 사장이 되는 것은 거기에 큰 테이블을 차리고 뚱뚱한 의자에 앉아 사장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이것은 피상적인 현상일 뿐입니다.

위에 있으려면 남을 섬기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법입니다! 세상사에 왕들이 다스리고 신하들이 다스리나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처럼 생각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당신이 예수 같든, 사람 같든, 귀신 같든 그것은 모두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세상에 살다 보면 세상에 속한다는 생각을 피하기가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아침에 출근하는 사람과 오후에 출근하는 사람이 저녁에 퇴근하면 같은 급여를 받고, 사람들은 일찍 출근하는 사람이 불리하다고 느낀다.

사실, 일하는 것은 일종의 은혜이며, 어떤 사람들이 일하기 싫어하는 것은 악덕입니다. 회사에서 일할 때 실력이 있는 게 아니라 연구 정신이 강하고 문제를 풀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이었어요! 문제를 극복할 때까지는 출발점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끝까지 버티면 내가 이길 것이다. 그 때 상사는 그 누구도 풀지 못하는 문제를 모두 나에게 떠맡기는 일이 잦았고, 동료들과 밥을 먹으러 식당에 갔을 때 동료들은 뜨거운 감자를 또 내 손에 집어넣었다며 비웃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일이 은혜라는 것을 모릅니다. 나는 직장 경험이 내가 얼마나 많은 문제를 해결했는지와 직결된다는 것을 어린 나이에 아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난해한 문제를 푸는 것을 좋아하는데, 문제를 풀 때마다 천국에 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만찬을 먹는 것보다 훨씬 좋아요! 기술, 기발한 방법을 알아 내고 문제를 해결했을 때 나는 마치 날아갈 것처럼 팔과 다리를 과장하면서 다르게 걸었습니다. 그런 흥분은 결코 경험하지 못했습니다. 문제를 해결한 후의 느낌이 매우 좋고, 여러분이 이런 짜릿함을 경험했으면 합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좋은 점이 있다고 하시고, 너무 피곤해서 허리가 아플 거에요. 많은 사람들의 에너지 부족은 신장 경락과 관련이 있습니다. 신경(腎經)이 약하면 정신이 맑지 못하므로 쪼그려 앉는 등의 활동을 해야 전신에 땀을 흘리면 상쾌해진다.

사람이 매일 일을 즐기면 매우 번성할 것인데 왜 그럴까요? 그의 신장 자오선이 매우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을 좋아해요 일을 좋아하는 또 다른 장점은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잠을 자기 싫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나에게 부족한건 잠이다 가끔은 너무 피곤해서 한 번에 열시간 이상 자다가 자고 일어나면 왜 그렇게 오래 잤는지 알게 된다? 수면 부족 때문입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저는 매일 2~3시간 자지 않고 10시간 이상 잘 때도 있습니다. 나는 왜 불면증에 시달리지 않는가? 나는 매일 열심히 일하기 때문에 불면증 환자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면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특히 은퇴한 사람들은 할 일이 없어요 일하는 것이 은총이고 우리에게 아주 좋다면 포도원에서 일하는 것은 신장 경락을 잘 단련하고 몸을 잘 펴고 얻을 자격이 있습니까?

받을 만큼 받는데 한 데나리온을 가져가는 데 문제가 있습니까? 사실 그 푼돈도 괜찮아요 가장 중요한건 아침부터 밤까지 이런일을 해야하고 몸도 운동해야한다는거 너무 좋은거아닙니까? 그래서 섬기는 것 자체가 은혜요 섬기지 않고서는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형제자매들이 알아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는 은혜를 얼마나 많이 받는가로 세지 아니하고 은혜가 아무 것도 아닙니다.

너희가 우리 가운데 받은 은혜는 남의 섬김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남을 섬기라 하면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요, 이해력이 높아지면 불리함을 느끼지 않을 것이다. 하루 종일 수고하고 덥게 하고 한 시간만 일하는데 그들도 우리와 같은 봉급을 받게 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는 남을 백 배로 섬겨야 하고, 남보다 많이 베풀어야 하고, 가진 것을 다 드려야 하고, 목숨까지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드려야 합니다.

후에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대신하여 이 세상에 왔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섬김을 말하는 것으로 포도원에서 일하는 논리체계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인자가 이 세상에 오신 것과 같이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 아니요 섬기려 함이니라

섬김을 받으려 함이아니라,도리어 섬기려 하고 함이니라

우리 모두는 비전신학이 은혜를 얻는 것이 아니며, 내가 이 문제가 해결되기를, 저 문제가 해결되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님을 이해해야 합니다. 비전신학은 우리가 기도하면 은혜를 받고, 기도하면 치유되고, 기도하고 섬기면 그의 삶이 변화된다는 것이 아니다. 사람에게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가운데 오시면 그냥 우리에게 섬김을 받고 싶은 마음뿐이니 원하는 결과를 얻은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마태복음 20:23)

어떤 사람들은 우리에게 섬김을 받으러 오지만 그들은 섬기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와 함께 지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를 거부할 뿐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 누군가가 도와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기분이 너무 좋습니다. 나는 당신이 실수를 한 것 같아요, 당신은 오늘 세상의 모든 사람들 위에 있기를 원하십니까? 세상 사람 위에 있으려면 남에게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남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몸이 아프고 열이 나면 머리도 아프고 열심히 일했는데 거기서 필사적으로 복무했는데 복무하고 나서 병이 거의 다 나았습니다. 사실 그렇게 오랜 세월 교회를 지었는데, 주일 설교를 하다가 내가 아프거나 휴가를 내는 것을 언제 보았습니까? 나는 휴가를 요청하지 않았다.그것은 내가 아프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사실 그 동안 교회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교회가 이기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어느 날 아침 고열로 일어 났을 때 일어날 수 없어서 잠시 소파에 누워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하나, 둘, 셋, 일어나! 일어서서 움직여! 사실 관절이 아프고 주차장까지 걸어가고, 교회까지 차를 몰고, 닥치는 대로 한다. 그 결과 어느 날 참다 참다 못해 저녁 8시까지 섬기다가 그 자리에서 온 몸이 곤두박질 쳤습니다.

저녁 9시 즈음, 약간의 안도감이 있은 후, 하루종일 많이 먹지 않아서 형제자매들과 함께 식당에 가서 무언가를 먹으니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우리가 백 배의 섬김을 받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남의 백배의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남의 백배의 축복이 된다면 예수님을 닮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백 배로 섬김을 받으려 하나 결국 섬김도 이기적인 제도인데 어떻게 예수님과 같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에게 유익한 일을 하고 우리에게 유익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습니다 섬김이 여러분에게 유익하다고 거듭 말하지만 가장 큰 유익은 무엇입니까? 가장 좋은 것은 지상에서의 시간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이기적인 제도로 섬기면 계속할 수 없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이 됩니다. 사람의 순위는 첫째와 꼴찌가 아니라 섬기는 동기와 예수님을 닮는 정도에 따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무엇을 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가끔 어떤 목회자들을 만나면 매우 감정이 북받쳐 오르며 이렇게 말합니다. 최근에 무엇을 하셨습니까? 그는 말했다: 나는 사업에 갔고 마침내 그 고된 일을 없앴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들으셨을 때 어떻게 느끼셨을 것 같습니까?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어떻게 고된 일이 될 수 있습니까?

포도원에 들어가 하루종일 수고하고 더워지는데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느냐? 포도밭에서 하루 일하며 근육과 뼈가 완전히 풀린 상태에서 노동과 더위를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나중에 온 사람들은 별로 가치를 창출하지는 못했지만 내가 만든 가치로 인해 모두 나와 공유합니다. 어찌 예수님을 닮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중요한 것은 섬기려는 우리의 동기입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기우매 저희가 죽이 기로 결안하고.이방인들에 넘겨주어 글르 능욕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하리니 제 삼일에 살아나리라.(마태복음 20:18-19)

예수님은 무엇을 위해 오셨습니까? 예수님은 우리의 고통을 지고 우리의 슬픔을 짊어지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분의 피로 우리는 구속되었고 그분의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얻었으며 그분의 가난함으로 우리는 부요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이기적입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이 세상의 축복, 그의 치즈, 직업, 가족... 그는 봉사가 그의 삶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일을 포기하지 않는데 어떻게 목숨을 바치는 정신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한 명 이상을 위해 몸값을 지불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어떻게 예수님과 같을 수 있습니까?

오보라늘 다시 한 번 여러분을 격려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길을 걷기를 원하십니까? 남에게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남을 섬기는 것입니다. 사실 몇몇 형제자매들을 생각하면 여전히 너무 힘들어요 그들은 항상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셨습니다... 제가 왜 문제가 있다고 말했습니까? 쓰러지겠다며 사장님께 또 혼났습니다. 나는 말했다 : 당신은 왜 또 상사에게 꾸짖습니까? 그는 말했다: 직장에서 나에게 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다. 서둘러서 일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실패하면 석방되어야 합니다.

그가 나를 풀어주고 싶으면 나는 그를 데려가 기도하고 나를 풀어 주었고 잠시 후 그가 할 수 없을 때 그의 상사가 그를 다시 꾸짖었기 때문에 그가 다시 왔고 그는 단지 자신의 일을 위해 나에게 왔습니다. 나는 매우 감동하여 말했다: 이때가 언제니 일어나서 남을 섬기는 사람이 될 수 있느냐? 당신이 추구하는 것은 세상의 이 작은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인도를 받은 제자들은 이 때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히니.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시리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어ㅏ.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마태복음 20:20-26)

좋은 집에 살며 좋은 차를 몰고 많은 하인을 거느리며 많은 사람들이 이런 귀족적 삶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한 사람은 예수님의 왼쪽에, 한 사람은 오른쪽에 앉으라고 예수님께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봉사합니까?

그 결과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은 말했다 :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자기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뜨거운 음식과 매운 음식이라고 생각하고, 적포도주를 마시고 소부르주아지 같은 삶을 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이 잔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보배로운 피를 흘리심은 이 세대의 구원이 되고 많은 사람의 축복이 되고 많은 사람의 대속물이 되려고 하였는데 여러분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할 수 있습니까? 그들은 말했다 :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마태복음 20:23-24)

제자들이 화를 낸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너희 둘이 좌우 총리가 되어야 하지? 이에 그들이 시합을 시작하니 이 사람들이 예수와 함께 가는 줄을 알지 못하여 예루살렘에 이르면 십자가에 못 박히게 되었더라 이 시대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누가 최고인지 논쟁하고 있으며, 이 세속적 관념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깊이 뿌리박혀 있습니다. 사실 중국의 과거 왕조에서 왕조가 바뀌는 과정에서 세계에 속한다는 개념도 사람들에게 깊이 뿌리 내리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Zhu Yuanzhang, Zhao Kuangyin, Liu Bang을 따라 세계를 정복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파트 타임 관리가 될 것입니다. 이러면 평생 먹을 것, 입을 것 걱정 없겠다! 알고 보니 그들이 구한 것은 이것뿐이요 세상적인 것들뿐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천국 시민권자이고, 하나님의 제사장이며, 예수님을 닮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세상 사람들과 같이 되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 내 좌우편에 앉고자 하는 자는 많은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

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미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히니.예수께서 가라사대 무엇을 원하느뇨 가로되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시리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어ㅏ.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하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태복음20:28)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이치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오늘 이 길을 걷고 있습니다 섬김의 길을 가고 있지 않다면 비행기나 차를 잘못 탔어야 합니다. 지하철을 타도 잘못 타면 내릴 수 있고, 비행기를 잘못 타면 스카이다이빙을 해야 하는 비극이 아닐까요? 너는 바벨탑으로 날아가기로 했는데 왜 나와 함께 여기까지 날아왔느냐?

교회에 올 때 남에게 섬김 받기를 원하지 않고 남을 섬기기를 원하며 자기를 온전히 드려 이생에서 백배 섬김을 받으라 그리하면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이 당신은 하나님이 우리가 원하는 그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라

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인 능력을 잃어버렸는가, 아무도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되기를 원하지 않고 사람들은 섬김을 받기를 원하지만 다른 사람들을 기꺼이 섬기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큰 교회의 목사가 되는 것이 매우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부르면 경호원이 있는데 이것을 추구하는 것은 쓸모가 없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잃는 것은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과 열 제자처럼 세상 것을 추구하는 사람들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매우 감정적이셨지만 서두르지 않으셨습니다. 서두를 것은 여러분과 나입니다. 우리는 가슴을 두드리며 우리가 손실을 감수할 것인지, 우리 자신을 희생할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기꺼이 나올 것인지 여부.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대에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을 회복할 영광스러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가 우리에게 나타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항상 짊어지고 가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도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왜 사도 바울의 손수건이 사람을 만졌는데 그 사람이 고침을 받았습니까? 사도 바울이 추구한 것은 남에게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남을 섬기는 것, 즉 예수님을 닮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예수님과 같다면 예수님이 여리고를 떠나실 때 많은 사람들이 그분을 따랐습니다.

소경 둘이 길 가에 앉았다가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함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니. 무리가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지라.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희를 불러.가라사대 너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주여 우리 눈 뜨기를 원하나이다.예수께서 민망히 여기사 저희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저희가 예수를 좇으니라.(마태복음20:30-34)

예수가 백신을 발명할 필요가 있었습니까? 불필요한! 예수님은 그들의 시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무언가를 발명해야 했습니까? 불필요한! 예수님이 만지실 뿐이고, 하이테크보다 훨씬 더 하이테크입니다. 당신과 내가 오늘날 예수님의 높이를 가지고 있다면 당신의 봉사는 하늘로부터 오는 권능으로 충만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한 무리와 사도 바울과 같은 한 무리와 하나님의 큰 용사들을 이 땅에 와서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그들의 삶을 내려놓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삶을 포기하면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오직 네 목숨을 버려야 살느니라 예수의 말씀이 이러하니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영생을 얻으리라 사람이 자기 목숨을 구원하면 자기 목숨을 잃을 것이요 알겠느냐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당신은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정말로 이해할 수 있습니까?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너희에게 나타나기를 원하느냐? 원한다면 하인이 되어야 합니다.

오랫동안 저를 따라 주님을 믿었지만 이 점을 넘지 못하는 우리 중 늙은이들이 안타깝습니다. 당신의 일은 가장 중요하고, 당신의 집은 가장 중요하며, 봉사는 가장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직장을 잃고 갑자기 내가 예수님과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당신은 곤경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혼란스러워해서는 안되며 왜 당신이 살아있는지 이해해야 합니다.

세상에서 이 작은 것을 위해서만 살면 세상에서 왕처럼 세상에서 명성과 부를 추구한다면 당신은 나를 잘못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조광윤, 유방, 조조, 유비, 주원장이 아니라 형제자매를 모아 하나님께 제 삶을 온전히 바치기를 바랄 뿐입니다.

우리가 섬기고 나서 사라진 남자가 있었다. 반년 후에 그는 우리에게 돌아와서 당신이 나를 위해 기도한 후에 왜 내가 뇌졸중에 걸렸고 병원에 입원했습니까? 이것은 좋은 질문입니다 사람의 삶의 결과는 극도로 이기적인 내면의 반응입니다! 그는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요? 그는 자신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우리의 기도에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에게 우리의 도덕성이 충분하지 않고 당신 같은 사람들을 고칠 수 없으며 신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결론

기독교인이 유익을 얻기만 원하고 자신을 포기하지 않으려면 교회에 오는 것이 소용이 없습니다! 가장 큰 유익은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고, 봉사에서 성장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고, 점점 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비길 데 없고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에게 나타나리니 우리가 나중에 오더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모두 앞장서서 영원한 나라에서 예수님처럼 사람을 섬기며 우리의 운명을 다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섬김으로 말미암아 이 세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니 곧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죽은 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소서 큰 은혜요 비할 데 없고 영원한 영광이 우리에게 임하리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와 그에게 칭찬을 받고 충성되고 선한 종이 되어 이 영광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니라.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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