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마태복음10장-예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며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는 권능을 주라
우리는 계속해서 <마태복음>을 검색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10장을 찾았습니다. 사실 우리 인생 전체가 마태복음을 찾아보는 것과 같아서 나도 모르게 10장을 발견하고 28장을 찾으면 끝! 늘 그렇듯이 이 장의 주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주제를 확인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테마를 확인하면 기억하기 쉽고, 테마가 없으면 기억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빠른 성경 공부를 장려하고, 3일 또는 일주일에 한 번 성경을 읽습니다.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르는 것 같다. 저를 따라 성경을 찾아보시는 분들은 주제가 한 문장으로 되어 있다가 첫 번째 소제목, 두 번째 소제목, 세 번째 소제목으로 내려가기 때문에 무슨 일이 있어도 주제를 파악하시기를 권합니다. 그것은 당신의 머리에. 그러나 주제와 제목이 없으면 기억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전 장의 주제를 복습해 봅시다. 하나님은 주시는 사명을 가진 자에게 권세를 주십니다.
마태복음 9장 끝에서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통받고 방황하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주 예수께서 마음에 감동하사 이 세대가 이렇게 지나갔고 모든 세대가 이러하니 이 세대가 예수의 세대에 있느니라. 예수님은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하며 각종 질병으로 고생하며 수고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마태복음 9:37-38)
예수님은 어떤 감정을 느끼셨습니까? 사람은 하나님이 보내심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점차 성경을 이해해야 합니다.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예수님이 다른 사람들을 언급하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이 단어는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10장에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불러 귀신을 쫓아내며 각종 질병을 고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런 다음 열두 사도의 이름이 언급되었습니다. 이 장은 과연 무엇에 관한 것입니까? 주제를 파악하지 못하면 연결하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왜 사람들이 성경을 이해하지 못하느냐, 또는 성경을 오랫동안 읽고 목사로 여러 해를 지냈는데 그에게 물어보면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한다. 챕터, 나무만 보고 숲이 안 보여 이런 사람은 정말 밉다!
사실, 결과와 보상을 중요시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고, 특히 오늘날 우리 세대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과 같지 않고, 예수님의 제자와 같지 않은 사람들이 아주 흔합니다.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바이올린을 주시고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시는 것을 보셨습니까? 아니요!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소불고기, 닭구이, 오리구이를 사오라고 하셨습니까? 아니요! 예수님은 그들에게 무엇을 하러 나가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들에게 귀신을 쫓아내고 모든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소서!
오늘날 우리가 보는 기독교인들은 모두 권위가 없는 기독교인이지만 이것 저것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매우 뛰어납니다. 그게 문제야 우리는 예수님이 하지 않은 일을 많이 한다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하지 않는다 이런 감정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문제는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세우셨는데, 많은 훈련 없이 그들에게 귀신을 쫓아내고 각종 질병을 고치는 권세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위의 8장과 9장은 예수께서 그들에게 보여주신 시범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제자가 되는 것이 예수님을 닮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냥 믿겠다면 예수님처럼 될 필요가 없고, 은혜만 받고 싶다면 어느 교회에 있든지 상관없습니다. 예수님처럼!
마지막 장은 주 예수께서 일꾼들을 보내신 것에 대해 말했는데, 이 장의 주제는 주님이 그들에게 권세를 주시고 그들을 보내셨지만 그들을 보내기 전에 그들에게 간단한 훈련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들에게 어떤 훈련을 주셨습니까? 앞에서 내가 말한 것은 그들에게 무엇을 할지를 일러 주는 것인데, 먼저 그들에게 나가서 귀신을 쫓아내고 각종 질병을 고치는 권세를 주게 하라.
그래서 여기서 우리는 외출할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데 왜 이것을 합니까? 잃어버린 이리가 아니라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되찾기 위해서입니다. 일부 교회는 잃어버린 늑대를 찾았고 나중에 양 우리의 양이 매일 감소하고 있음을 발견하고 모두 늑대의 뱃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든 종류의 사람들을 모집하지 않고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잘못하고 있습니다! 내 말이 옳다고 생각하지 말고 성경을 잘 읽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 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가명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왔다 하고.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뜻하게 하며 귀신으 ㄹ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복음 10:5-8)
헛되이 오는 것이 무엇입니까? 권위다! 안타까운 세대인데 많은 사람들이 이 감동 저 감동을 추구하고 찬송을 부르고 프로그램을 편곡하는데 이런 기독교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아는 기독교인은 정말 극소수일 뿐 주님이 하라고 하신 일을 하기 싫어하고 많은 교회에서 일꾼들을 위해 식사를 준비합니다. 예수님은 언제 우리가 이렇게 하도록 허락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이런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너희가 음식으로 마음이 끌리는 것은 어리석은 무리이고, 예수의 권병으로 마음이 끌리는 사람은 제자들이다.
권위를 얻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 그때는 소불고기, 로스트 치킨, 로스트 오리구이를 많이 준비해서 얼간이 떼를 끌었다. 여기에 양이 한두 마리 있습니까? 있기는 하지만 정말 드뭅니다. 우롱이라고 생각하면 우스꽝스럽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교회들이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런 야망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무엇을 할 것입니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하라고 명하신 것을 행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와서 많은 은혜를 받으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합니다. 우리 중 지도자 중 한 사람이 자매에게 말했습니다. 상대방은 "종일은 아니죠? 말 그대로 바로 거기. 다행히 내가 만난 건 아니었고, 만나야 했다면 진작에 쫓겨났을 텐데!
나는 이리를 원하지 않고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원합니다. 하나님의 양이면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이리가 양의 탈을 쓰고 있으면 쫓겨나지 아니하겠느냐? 늑대가 될 것인가, 양이 될 것인가? 아직 풀려나지 않았다고 하면 귀신이 헛소리해도 상관없다 용서하고 풀어줄게. 만약 당신이 뼈 속으로 극도로 이기적이라면 당신은 알아야 합니다. 이기적인 사람이 어떻게 제자가 될 수 있습니까?
사실 내가 나쁜 말을 하면 다른 사람의 헌신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 무엇에 바쳐야 할까요? 나는 사람의 제물을 원하지 않고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원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주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을 그분의 교회로 데려와 함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저 얻은 권세는 거저 내어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것은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그러니 헛된 포기, 어디를 포기해야 할까요? 새로운 제자들에게 맡기십시오.
형제 자매는 우리 사이에서 은혜를 얻었습니다. 그냥 은밀히 웃으십시오! 그러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고 싶지 않다면 왜 머물고 있습니까? 우리 모두 여기에서 대가를 치르고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학 꼬리가되어 인기를 얻고 싶다고하면 네이 은혜를 베풀겠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양의 탈을 쓴 늑대라면 오늘 당신의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미래의 모든 문제는 당신에게 두 배가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 저를 치료해 주셨지만 사실 근본적인 치료 같은 것은 없습니다!
주로 무엇을 합니까? 그것은 주 예수께 속한 양들을 다시 데려오는 것입니다. 그것을 되찾는 방법?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정결케 하며 귀신을 쫓아내라는 예수님의 명은 매우 분명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병 고침과 해방을 은사로 여기고 있는데 사실 이것은 주느냐 안 주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권위의 문제요, 주 예수께서 하신 일을 할 의지가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12명의 제자를 시작으로 70명의 제자를 훈련시키셨고, 주후 100년에는 백 명, 주후 1000년에는 천 명, 주후 2000년에는 수만 명을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2020년까지 얼마나 많은 제자를 모집했는데, 아직도 이 사역을 하라고 보내진 것이 아닌가?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이 은사가 없습니다! 문제는 이것이 선물의 문제입니까? 이것은 선물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는 주 예수께서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 일을 하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가 예수님께서 명하신 일을 하지 않는 동시에 예수님께서 명하신 일을 행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지목하여 이단, 은사 등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치명적이지 않겠습니까?
기꺼이 값을 치르는 양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여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덜어 버리라.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마태복음 10:9-15)
열두 제자는 신도 목발도 없이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나갔습니다. 늑대가 오면? 정말 늑대가 올까요? 사실, 주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 손에는 주님께서 주신 목발이 있고 이 목발은 권위입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덜어 버리라.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마태복음 10:14-15)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전도를 천박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의 전도는 무료이지만 값을 매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값이 싸다! 매우 싸다! 사람들이 당신을 믿게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믿지 않습니다.기독교인들은 사람들이 가난한 것을 보고 매달 약간의 돈을 줍니다. 이것은 무엇을 위한 것입니까? 형제 자매 여러분, 자선 활동을 하러 오셨습니까, 아니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려고 오셨습니까? 자선 활동을 하고 있다면 자선 활동을 잘 하라고 조언합니다.
우리 중에는 아직 평범한 놈이 아닌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에게 최고의 축복인 그의 저주를 풀고 싶어서 주기를 꺼리는 사람들을 밀어붙입니다. 우리에게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그의 헌신이 필요한 것도 아니지만 그 자신도 헌신이 필요하고 그가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중 일부는 자신이 더 부자인 것처럼 느끼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돈을 줍니다. 전에도 해봤지만 그건 축복이 아니라 저주야! 어떤 사람들은 가난의 저주를 풀기 위해 제물을 바치지만 결국에는 제물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줍니다. 제자들은 대가를 치르는 본보기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는 일은 기꺼이 대가를 치르는 하나님의 양들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권세를 주셨으니 무엇을 하라고 보내셨습니까? 우리는 나가서 집집으로 돈을 던지는 것이 아닙니다. 근데 가운도 가져오지말고 니꺼 먹고 니네 집에 가면 니꺼 쓸게 멍청한거아님? 사람이 이렇게 하여 보면 누가 주님의 양이고 어떤 것이 주님의 양이 아닌지 분별할 수 있고, 누가 이기적이고 누가 교만하며, 누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을 사모하는지를 바로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오는 사람들, 한 푼도 나누기를 꺼리는 사람들은 물을 잡을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딘타이펑 찐빵 먹으러 갔다가 돌아오면 입도 안 닦고 내 방으로 오는데 뭐하냐고 물어보니 딘타이펑 찐빵 먹으러 갔다고 한다. 나는 왜 전화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당신을 무엇 때문에 부르는 걸까요? 제 돈으로 빵을 사는데 가져다 드릴까요? 이런 사람은 상당히 밉지만 사실 나에게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그는 우울증을 앓고 있습니다. 제가 그를 기도하러 데려가겠습니다.
이기심의 본질은 늑대의 본성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내가 그 빵에 욕심이 나는 것 같니? 나는 그것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그것을 시도한다. 안 먹어본 사람도 있고 밖에서 사온 사람도 있는데 왜 한 끼만 사오냐고. 그는 내가 몇 장을 사야 합니까? 나는 어때? 그는이 상자가 당신에게 주어질 것이라고 말했고 나는 아니오라고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으니 하나는 주께 속한 사람이요 또 하나는 세상에 속한 사람이라 하나는 양요 또 하나는 이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리 가운데 있는 양같이 권세 있는 주 예수의 제자로 보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뱀같이 영리하고 비둘기같이 순결하자. 뱀처럼 손재주가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는 뱀의 길이 모두 굽은 길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리 가운데 양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왕국으로 인도하고 싶다면 이 문제는 여전히 조금 복잡합니다. 지혜가 없으면 뱀의 손재주가 없으면 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손재주가 없으면 하나님의 양 떼를 하나님의 나라에 인도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리에게 잡아먹힐 것입니다. 우리가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온순하여 사람을 해치려 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지혜가 충만하여 미련히 올라가서 남에게 죽임을 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위험이 가득합니다.
한 번에 다 고치지 않으면 체포되어 길드에 넘겨지고 또 때립니다. 그러나 우리가 체포되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위해 증거할 것입니다. 우리 손에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을 고치는 권능이 있으니 오늘날의 세대는 왕이나 왕자의 세대를 불문하고 질병에 대처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모두 손에 권위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실, 그들은 많은 필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을 간증으로 삼아 이것이 치유되고 저것이 치유된다고 말해야 합니다.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태복음10:19-20)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열쇠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양이 무엇이고 그렇지 않은지 분별해야 합니다.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아ㅠ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마태복음 10:32-33)
많은 사람들이 이 문장을 인용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설명된 것을 거의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문장이 우리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알아보는지 여부를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는 아닙니다! 제자들을 보내시며 그 사람이 너희나 예수를 너희보다 먼저 시인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도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너희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맹목적으로 글을 읽지 말고 글쓴이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10장은 제자 훈련에 관한 내용입니다. 나가서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합니다!"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요? 당신은 예수의 제자인데 그런 헛소리를 할 필요가 있습니까?
남자의 적은 그 자신의 가족이다
그러니 장난은 그만 치고, 주님 아닌 양에게 시간을 쓰지 말고, 전도를 도덕적 유괴로 바꾸자. 우리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믿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예수가 주님이심을 인정하면 그들은 주님의 양입니다. 상대방이 당신의 가족이라면 조금 곤란할 텐데, 당신은 그 사람도 이 은혜를 받기를 진심으로 바랐지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딸이 어미와,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태복음 10:34-36)
기꺼이 주님의 제자가 되려고 할 때 우리는 가족을 개종시키거나 그들에게 박해를 받습니다. 생각해 보라 너희는 주께 속하였고 너희 가정은 세상에 속하였으니 다툼이 없겠느냐 갈등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종류의 갈등에 직면할 때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부드러운 방법을 사용하기로 선택하고 그 결과는 타협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디에서 우리에게 타협하라고 가르치셨습니까? 당신이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고 주님의 보냄을 받고 주님의 추수를 거두기를 원하면 주님은 당신의 소원대로 당신을 보내실 것입니다. 첫 번째 어려움은 집에 있습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ㅈ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태복음 10:37)
이 문장에 따르면 자기 아내를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고 자기 일을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태복음 10:38-39)
가정에서 이런 상황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은 왜 감히 먼저 주님의 제자가 되기를 선택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기가 좀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길을 선택하면 어떻게 살 것인가? 주 예수께서 당신을 살게 하지 않으십니까? 아니요. 예수님께서 제자의 삶을 살라고 하셨으니 어떤 삶을 선택하느냐가 관건입니다. 그래도 자기 생각대로 평범한 사람의 삶을 산다면 분명 불행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잘 살 수 있다면 왜 주 예수님이 필요합니까? 그래도 안 되면 다른 길을 찾아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면 문제가 생깁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이 쉽지 않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대가를 치르는 것 같습니다!
우리 중국의 운명신학이 설교하는 교리는 모두 대가를 치르는 것에 관한 것입니다. 비용이 들지 않는 것이 있습니까? 주 예수의 은혜는 거저 아니냐? 거저 받는 것은 믿는 자들을 위한 것이고, 은혜를 받는 것은 믿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주 예수님이 원하시는 것은 믿는 자들이 아니라 제자들이다. 당신은 말합니다: 주님, 저는 당신을 믿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가족을 만나자마자 주님을 낮추는데, 주님께서 당신도 낮추시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런 어려움에 처한 우리는 위의 성구를주의 깊게 읽을 수 있습니다.이 성구는 매우 중요합니다. 저에게 물어 보면 살 수 있습니까? 내가 정말로 대답할 수 없기 때문에 당신은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다음과 같은 상황에 직면합니다.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태복음 10:21-22)
두려워하지 마세요. 이 세상에는 너무 많은 것이 있습니다. 저는 항상 모든 사람에게 세상의 것을 꿰뚫어 보라고 조언합니다. 왜? 이런 것들은 특별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태복음 10:28)
당신 안에 두려움이 있습니까? 당신에게 두려움이 없다면 그것은 당신이 평화롭게 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이 당신의 몸과 영혼을 지옥에 멸하신 것을 느끼지 않으며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면 지옥으로 데려가 달라고 주님께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구절은 열두 제자들이 하나님을 섬기려면 그러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사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원하시는 모든 것은 제자이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모든 것은 그분을 섬기는 사람들이며, 예수님이 원하시는 모든 것은 대가를 치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주 예수님을 위해 값을 치르지 않는다면 당신은 주님의 양입니까, 아니면 양의 탈을 쓴 이리입니까? 값을 지불함으로써 그는 주 예수님 앞에서 즉시 분별되었습니다.
신을 위해 대가를 치르고, 운명을 위해 대가를 치르라
오늘날 우리는 값을 치르지 않는 그리스도인이 많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성경은 값을 치르지 않고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기 일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고, 부모를 예수님보다 더 사랑하고, 자녀를 예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그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 자들은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하늘의 상급과 권세를 받을 수 없고, 권세가 없이는 죽은 자를 고칠 수도 없고, 나병환자를 깨끗게 할 수도, 내어쫓을 수도 없습니다. 악마들.. 기꺼이 값을 치르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것의 제자입니다. 기꺼이 대가를 치르는 사람은 그의 종입니다. 그래서 주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지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0:40-42)
많은 사람들이 이 구절을 거꾸로 읽습니다. 사실 이 구절은 우리 제자들을 위해 쓴 것입니다. 우리가 나가서 누구든지 이러한 은혜를 사람들에게 베풀면 그들이 우리 이름으로 우리를 영접하면 우리는 주 예수를 영접한 것입니다. 우리의 이름으로 우리를 영접하면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고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만일 우리 제자들이 나가서 주 예수의 권세와 운명을 전하고 값진 복음을 전하면 누가 그 제자의 이름을 인하여 냉수를 주려 할지라도 그 사람은 보상을 받다. 우리가 전하는 값비싼 복음을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값비싸고 능력 있는 복음이 진짜 복음입니다. 집에서 찬송을 부르고 감동을 받고 기분이 좋아지는 복음은 절대 아닙니다.
당신의 목표가 신자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당신은 신자의 수준에 머물러도 됩니다. 그러나 열매를 맺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끊어질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많은 어려움에 직면하더라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때려도 상관없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위해 살고, 이것을 위해 살고, 이것을 위해 죽기 때문입니다. 가족들이 우리를 반대해도 그게 무슨 상관이야? 많은 사람들이 가정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사실 가정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저는 어떤 목사님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것은 이 구절이 아닙니다. 그들이 가르치는 것은 가족이 먼저입니다. 가족이 먼저라면 주 예수님은 두 번째로 두십니까? 사람의 원수는 자기 가족이니 가정에서 하나님의 영적 원칙을 지키지 못한다면 어디에서 버틸 수 있겠습니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 누군가 나에게 물었습니다. 오늘 살 수 없나요? 누군가 우리의 운명을 가로막는다면 오늘 하루를 버티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여기에 있습니까? 당신은 누구를 위해 살고 있습니까? 누구를 위해 죽어? 우리의 눈은 어디에 있습니까? 스스로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