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마태복음09장-하나님은 사을 가진 자에게 권세를 주실 것입니다

구하는 자에게 하늘과 땅의 권세를 주시리라

최근에 마태복음을 확인하면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저는 성경을 공부할 때마다 새로운 빛을 받고 여러분과 다른 통찰을 나눌 수 있는데 정말 즐겁고 신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내가 오랫동안 연구해 온 주제인 마태복음 9장에 이르렀습니다.

좋은 무화과와 나쁜 무화과를 어떻게 정의합니까? 무화과는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인 기독교인입니다. 좋은 무화과와 나쁜 무화과는 얼마나 다른가! 누군가 나에게 그가 좋은 무화과입니까 아니면 나쁜 무화과입니까? 나는 이 질문이 매우 훌륭하고 모두가 숙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좋은 무화과입니까 아니면 나쁜 무화과입니까? 우리는 어떤 그리스도인입니까? 저희가 확인한 챕터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마태복음 9장의 주제는 정확히 무엇입니까? 마태가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얻지 못한다면 우리는 곤경에 처한 것입니다. 우리가 책을 읽을 때 우리가 읽는 주제가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것과 다르다면 문제는 매우 심각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본문에서 벗어나 세부적인 내용만 파악하고 저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읽지 못한다면 이는 수레를 말 앞에 두는 것과 같습니다.

오랫동안 말보다 수레를 앞세우고 항상 하나님의 뜻을 붙잡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쁠 것입니다. 성경을 읽었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읽지 않으면 결국 썩은 무화과가 됩니다. 사람들이 본질과 주제를 파악하는 습관을 기르지 않으면 항상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데, 그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먼저 이 장에 있는 성구를 읽은 다음 성경 공부를 하러 오기를 권합니다. 글을 읽으면서 저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십시오.

저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다면 책은 헛되이 읽힐 것이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편지를 받고도 하나님이 그에게 말씀하시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 편지는 쓸모가 없습니다. 사람이 계속 이렇게 하면 요점을 파악하지 못하고 곤경에 빠지게 됩니다. 상사가 직원들을 위해 일을 정리하듯이 일을 아주 섬세한 수준으로 정리할 수는 없고, 직원들은 상사의 마음을 파악하고 일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오늘 붙잡지 못하면 내일도 붙잡을 수 없고, 당신이 만드는 일도 좋을 수 없다.

마태복음 9장을 쓰려면 먼저 전체 기사를 관통하는 주제를 파악해야 합니다. 이전 장의 주제는 운명을 가진 자의 권세였고 이번 장의 주제는 하나님께서 운명을 가진 자에게 권세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마태복음 9:8)

오늘날의 시대에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있으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환자에게 오셔서 이 사람에게서 새로운 코로나 바이러스를 나가라고 명령하십니다. ! 내 말을 신의 말씀이 아니라 "랴오 자이"의 이야기처럼 신화로 받아들이면 곤경에 처할 것입니다. 사실 이 세대는 예수님과 같은 권세가 절실히 필요한데 예수님은 어떤 권세입니까? 한 중풍병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 있는 것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얘야 안심하라 당신의 죄가 용서되었습니다. 어떤 서기관들이 그것을 보고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모독하는도다. (마태복음 9:2-3 참조)

예수께서 그 생각을 아시고 가라사대 너릐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숩겠느냐?그러나 인자가 세상에서 죄를 사라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 무리가 보고 두려워하며 이런 권세를 사람이ㅔ게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니라.(마태복음 9:4-8)

하나님은 사람에게 권세를 주시기 원하시며, 예수님이 말씀하신 권세는 죄를 사하는 권세입니다. 인간의 질병은 죄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중풍병자는 자신의 죄로 중풍병에 걸렸는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시범을 보이셔서 죄 사함을 받고 고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중풍병자가 많은 유익을 얻었다고 생각했고, 그도 그랬지만, 가장 큰 유익을 얻은 사람은 권세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권세를 얻는 것이 보물이 아니냐?

어떤 사람이 그러한 권세를 얻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권세를 주십니까? 8장과 9장은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기적이고 자신만 사랑하고 운명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썩은 무화과일 뿐이며 그리스도인은 헛된 것입니다.

내려다보자 마태는 이런 권세를 보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마태는 어리석지 않고 예수님의 권세를 사모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좇았을 때에 장모가 병들었더니 예수께서 그의 장모의 손을 만지시매 고침을 받고 중풍병자는 예수를 보고 죄 사함을 받고 고침을 받더라 마태는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을 보고 그것이 보물임을 알았다.

그 어떤 MD보다 좋습니다! 중풍병자가 약으로 고칠 수 있었다면 오래 전에 나았을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께 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날 누가 중풍병자를 일으켜서 걷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이 보물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것은 정말 아기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신학이 영계의 권위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과학보다 더 과학적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중풍병자는 어떻게 일어나 걸었습니까? 과학으로 설명할 방법이 없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러한 권세를 사람들에게 주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중풍병자가 중풍병자가 된 이유는 그의 죄와 관련이 있습니다.예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받으면 일어나 걸을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죄 사함을 받은 후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가 그를 마비시킨 악한 영을 죽였습니다! 죄는 많은 질병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사함의 권세를 가지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는 운명이 있기 때문에 우리의 연약함을 담당하시고 우리의 병을 짊어지십니다! 나중에 예수님은 채찍으로 맞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왜 이러한 일을 하셨습니까? 그가 우리의 모든 허물을 담당하시므로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받고 그가 흘리신 피로 우리의 죄가 지워졌느니라!

우리는 이 권세가 놀라운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는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보고 그것을 보배로 여겼는데 우리 형제자매들도 그것을 보배로 여기느냐? 아기라고 생각한다면 세상에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정체성을 과소평가하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운명을 과소평가하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신 권세를 과소평가합니다. 사람은 일과 가정 등 많은 것을 중히 여기면서 하나님은 중시하지 않는데, 어리석은 것이 아닙니까? 인간이 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권세를 가진 사람을 보배로 여기지 않는 것이 어리석은 일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형제자매 여러분, 어리석지 말고 똑똑한 사람이 되십시오. 마태처럼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하셨을 때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주 예수님이 우리에게 그런 말씀을 하지 않으셨을지라도 우리는 기꺼이 그분을 따를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저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입니까? 저는 그저 제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았다고 믿으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더라도 저는 여전히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매일 문을 두드리고 당신이 나를 선택할 때까지 당신과 싸울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주신 권세를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에수께서 모든 성과 천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마태복음9:35-38)

추수가 많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의 백성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민하며 방황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하는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청해야 합니다.왜? 운명을 가진 자, 주님의 추수를 추수하는 일꾼들에게 하나님의 권세를 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일꾼들을 보내어 주의 추수할 것을 보내라 하였으니 이것이 곧 좋은 무화과니라.

일꾼을 파송하는 것은 우리가 비참한 삶을 살아가면서 수천명을 파송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갈망하게 만드는 것이며, 우리는 하나님께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여기 있습니다! 보내주세요! 이것은 운명입니다! 이게 단점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요! 이것은 권위를 얻는 문제입니다! 영계에서는 구하는 자에게 천지의 권세가 주어집니다! 남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 저를 보내주세요! 하나님, 저를 보내주세요! 그것이 바로 이 포스트의 내용입니다!

주 예수께서 자신의 권위를 나타내시다

후에 예수께서 이것을 사람들 앞에서 계속하여 보이시니 마태는 자기 눈으로 보았고 베드로는 자기 눈으로 보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무엇을 보여 주시는가? 그분의 권위를 나타내십시오. 예를 들어: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한 직원이 와서 절하고 가로되 내 딸이 방장 죽엇사 오나 오셔서 그 몸에 손을 얹으소서 그러면 살겠나이다 하니.(마태복음 9:18)

그 사람의 딸이 죽은지라 다 죽은 후에 예수께 나아온지라 이 정도면 충분한 믿음이로다 주 예수님이 그런 상황을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예수님이 그의 집에 오셨을 때, 그는 아이를 끌어당겼고 그녀는 일어났습니다! 그런 권한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믿지 않지만 나는 믿습니다! 주님이 나에게 와서 따라오라고 하신게 아니라 내가 직접 가입해서 내가 추천했다. 나는 하나님께 말씀드렸다, 주님! 나는 단지 당신을 섬기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이 세운 교회가 형편없다는 것을 보고 스스로 추천했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매일 문을 두드리고, 매일 문을 두드렸더니, 그 결과 이 권세를 주시자 교회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치유를 받았습니다! 아픈 동안에는 기도만 하면 괜찮을 것입니다! 나는 매우 흥분된다, 이것은 아기이다!

우리는 그 소녀가 죽었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그것을 당기실 때, 그 사람은 치유되었습니다! 이것은 과학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사실 영계의 권위는 과학보다 더 과학적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늘 아버지는 그의 권능의 손으로 우주 만물을 붙드시고 그 앞에 우주 만물은 보잘것없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고자 하는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사람이 막 죽었든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되었든 그것은 예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그에게 권세가 있고 생명이 그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너와 내가 오늘 운명의 사람이 된다면 얼마나 큰 은혜를 받은 것인가! 가족들도 이런 은혜를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의료비가 절약될까요! 물론 그들이 믿지 않는다면 괜찮습니다 의사를 찾기 위해 병원에 갈 의향이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믿고자 하는 분들을 기다립니다!

회당장은 큰 권세가 있어 예수께서 하신 일을 자기 눈으로 보고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 딸은 죽었으나 예수께서 그의 손에 권세를 쥐고 내 딸을 살리셨으니 내 딸이 확실히 살아. 회당장의 믿음은 다만 하나님의 능력의 본보기에 불과했습니다. 이 사람이 장래에 하나님의 추수를 거두는 일꾼이 되느냐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회당장은 그런 은혜를 받을 수 있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가 은혜를 받고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의 수확을 거둔 모든 사람들이 그러한 권세를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능력 없는 복음이라면 그 추수는 주님의 추수입니까? 아무도 모른다. 예수께서 그러한 실증을 하셨고, 마태는 그것을 본 후 자신이 현명한 선택을 했다고 느꼈습니다. 역대 선지자도, 유대인도, 이스라엘 백성도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중풍병자를 일으켜서 걸을 수 있게 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예수님은 놀라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회당을 관리하러 가던 길에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는 환자를 만났습니다. 그 환자는 자기 돈을 다 쓰고 의사에게 많은 고생을 하며 마음에 소망이 없었고 예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마음에 말하되

이는 제 마음에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함이라.예수께서 돌이ㅕ 그를 보시며 가라사대 딸아 안심하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시니 여자가 그 시로 구원을 받으니라.(마태복음 9:21-22)

믿음은 운명의 권위를 풀어줍니다. 나는 권위가 있지만 당신이 당신을 믿지 않는다면 권위는 당신에게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권세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만진 사람이 치유되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결과 그 소식이 그 지역 전체에 퍼졌고, 그 지역의 모든 사람들은 그런 신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 나올 때 치유받기 위해 돈을 쓸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병을 고치셨다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이 권세는 얼마나 좋은가! 문제는 그러한 권한을 원하십니까? 예수님의 모범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거기서 떠나 가실쌔 두 소경이 따라 오며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쌓히 여기소서 하더니.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소경들이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이에 예수께서 저희 눈을 만지시며 가라사대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신대.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계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게 하지 말라 하셨으나.저희가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전파하니라.(마태복음 9:27-31)

예수께서 이 모든 시위를 마치신 후에 또 다른 귀신 들린 자가 와서

저희가 나갈 때에 귀신 들려 벙어리 된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귀신이 쫓겨나고 벙어리가 말하거늘 무리가 기이히 여겨 가로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때가 없다 하되.(마태복음 9:32-33)

이 상황을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올바른 주인을 따르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모든 성과 천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마태복음 9:35)

주 예수님은 일꾼이 너무 적다고 한탄하셨습니다.

그러한 권세를 볼 수 있는 사람은 선견지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누구나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권세를 본 자들은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는 데 문제가 없으나 집에 세 자녀와 여든 살 된 어머니와 남편이 있는데 어찌 살겠나이까 오늘날 우리에게 그런 권위가 있으니, 여든 살 된 열 명의 어머니와 서른 명의 아이들보다 더 강하지 않습니까?

문제 해결의 관건은 영계의 권세를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인데, 이 권세가 없으면 자녀와 노모가 귀신에게 괴롭힘을 당하면 그 결과가 참 비참하지 않겠습니까? 우리에게 이 권한이 있다면 우리의 일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까요? 우리에게 이 권한이 있으면 우리 가족이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까? 오해하지 마세요. 그들의 문제는 이 권한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일꾼이 너무 적고, 운명을 가진 사람이 너무 적고, 좋은 무화과가 너무 적고, 썩은 무화과가 너무 많다고 한탄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회당장의 죽은 딸, 맹인, 혈루병, 귀신 들린 벙어리 등 3년 동안 수천 명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500명만이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시는 것을 눈으로 직접 목격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셨을 때 120명만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3년 넘게 수만 명을 섬기셨지만 결국 120명만 남으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읽고 큰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하나님, 저는 너무 많은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운명을 가진 이 120명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도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며 우리 가운데 많은 형제자매들이 운명과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이익만 추구하고 권세 있는 자의 영광만 누리고 권세 있는 자가 되기를 원치 아니하니 어리석은 것이 아니냐? 나는 마태복음 9장을 읽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도록 격려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대의 필요를 볼 수 있는 더 많은 일꾼들이 일어나기를 원하십니다. 목자 없는 양처럼 고통받고 방황하는 이들을 보며 우리는 섬김을 받는 자가 아니라 섬기는 자가 되기를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쓰실 수 있는 목자가 되기를 간절히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우리 가운데 나와 목회 지도자들이 행한 기적을 본다면 마태와 같은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겠습니까? 가능하다면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하나님, 저는 당신의 일꾼이 되고 싶습니다. 저를 보내주십시오. 나는 당신이 원하는 일꾼이고, 당신의 양 떼를 치고 싶고, 하늘의 권세를 얻고 싶습니다. 저는 은혜 받을 믿음이 있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제 마음도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는 당신을 본받고 당신이 취한 봉사의 길을 따르고 싶습니다. 나도 모든 도시와 마을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온갖 질병을 고치고 싶습니다.

정말 현명한 선택입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의 영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하고 하나님께 우리를 보내달라고 간구합니다!

왜 하나님은 일꾼이 적다고 한탄하십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이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서기관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금식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까?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뜻 안으로 가지 않고 하나님의 뜻 밖으로 나갔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계시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으나 그들이 말하길 어찌하여 너희 주인(예수)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느냐?

예수님은 매우 감동하셨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지만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분명한 말씀입니까! 하나님이 필요한 사람에게만 하나님이 필요한데,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다면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의 필요를 보았고 사람들의 마음의 갈망을 보았지만 눈감아 주었습니다. 후에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러 왔지만 세례 요한의 제자들도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마태복음 9:14)

하나님이 감동하셨는데 금식이 그렇게 중요한가요? 하나님은 제사가 아닌 자비를 사랑하시며 금식과 기도는 제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 기도하고 싶고 가까이 가고 싶지만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목자 없이 방황하며 고통당하는 많은 양들을 보시고 하나님은 매우 슬펐습니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한 무리의 사람들을 일으켜 하나님의 뜻이 제사를 사랑하지 않고 인자를 사랑하는 것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우리 중에 아픈 사람이 설교 직전에 나에게 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나는 아픈 사람의 기도를 인도한 다음 연설을 준비했습니다.

하나님은 희생이 아니라 자비를 사랑하십니다. 양은 모두 우물에 빠졌고 많은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나는 금식하고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바리새인과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다 그런 일에 관심이 있었는데 왜 하나님의 관심에는 관심이 없었을까요? 우리는 왜 금식하고 기도합니까? 금식과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의 운명을 이룰 수 있는 힘을 얻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금식기도를 위해 금식기도를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산다는 것은 살기 위한 것이고 먹는 것은 먹기 위한 것인데 이것이 금식하고 기도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다르지 않습니다. 금식과 기도는 하나님의 뜻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이 너무 적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배하고 찬송할 때에 귀신들린 자가 거기서 소란을 피우는 것을 보고 쫓아내니라. 왜? 그들은 그 사람을 풀어줄 수 없기 때문에 그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찬송을 부르는 것이 귀신 들린 사람을 풀어주는 것보다 더 중요합니까? 실제로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많은 교회들은 자기들이 부르는 몇 안 되는 찬송가를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고, 그들의 가르침 중 많은 부분이 우스꽝스럽기 때문에 자비를 사랑하고 희생을 사랑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귀신들린 자를 풀어주는 하늘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것이 그렇게 어렵습니까?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상황은 매우 치명적입니다!

형태와 본질, 외부와 내부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새 초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마태복음 9:16-17)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새 포도주와 새 가죽부대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오직 새 포도주와 새 가죽부대만이 둘 다 보관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본질, 즉 포도주를 가질 뿐만 아니라 외형도 가져야 한다. 우리는 외형을 위해 본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가죽부대만 있고 그 안에 포도주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금식과 기도는 형식일 뿐 본질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제사를 사랑하지 아니하시고 인자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시니 포로와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라

우리 교회의 가장 본질적이고 기본적인 일은 포로된 자를 해방하고 눌린 자를 해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사람을 가르치고 능력 있는 복음을 전하며 모든 병을 고치고 귀신에게 눌린 자를 놓아 주는 것입니다. 외형적인 형태가 있고, 찬송을 부를 수 있지만 목적은 이 세대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받은 것은 그러한 운명, 하늘에서 주신 하나님의 권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기를 원하노니 우리에게 새 포도주만 있는 것이 아니요 새 부대도 있느니라

당신은 나에게 묻습니다. 어떻게 나쁜 무화과가 될 수 없습니까? 그 나쁜 무화과는 원래는 좋은 신선한 무화과였는데 왜 썩게 되었을까요? 종종 낡은 가죽부대와 낡은 포도주를 위하여. 그러나 우리가 자주 갱신한다면 좋은 무화과가 될 것입니다. 당신의 금식과 기도는 당신이 나쁜 무화과가 아니라는 것을 보증합니까? 바리새인 같으면 반드시 좋은 무화과가 되겠습니까? 너희가 바리새인과 같이 예수의 행하신 일과 예수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그가 귀신의 왕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 하면 이것이 좋은 무화과가 되겠느냐?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피상적인 형태만 추구한다면 직원으로서도 나쁜 직원, 나쁜 상사, 관리자, 전문가가 될 것입니다. 본질이 아니라 형식만 중요시하기 때문입니다. 본질을 중요시하지 않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프로그램 작성, 프로젝트 관리, 성경 읽기 등 사람들을 교육하는 것은 모두 본질에 관한 것입니다. 나는 종종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알아냈습니까? 사물의 본질을 파악했습니까? 머리를 쓰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사물의 열쇠를 잡지 못한다면 좋은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외형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내적 본질, 즉 새 포도주와 새 가죽부대도 있어야 하며, 이것들은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하고, 안과 밖이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끊임없이 새로워지는 것만이 생물이 됩니다. 업데이트가 중단되면 죽은 것이며 업데이트가 시작되면 반드시 성장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날마다 추구하고 성장하려고 노력한다면 어떻게 썩은 무화과가 될 수 있습니까?

기독교인은 성장을 열망하지 않고 그저 있던 자리에 머물며 여전히 마음이 편하고 평소처럼 살면 썩은 무화과가 될 것입니다. 너희에게 재앙과 곰팡이와 질병과 가뭄과 모든 나쁜 일이 임하게 하시리니 이는 하나님이 이 썩은 무화과를 처리하기로 작정하셨음이니라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을 계속 알고 계속 새롭게 하며 내적으로도 새롭게 되어 새 부대가 되는 길밖에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의 추수입니까?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의 추수입니까? 예수께서는 병원에 있는 병자들을 방문하셔서 고쳐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예수님은 그런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병든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예수께 나아와 마침내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사실 예수님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꽤 있습니다. 왜?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님이 마귀의 왕에게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고 생각하고 낫는 것보다 구원받는 것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정말 구원받을 수 있을까요? 이것이 난독화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을 찾고 믿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인 줄을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합니다. 믿지 않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실 그 바리새인들은 아주 이상한 무리였습니다. 아프면 예수님께 나오지 않고 아프지 않으면 예수님께 나오지 않습니다. 그들은 괜찮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상류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먹을 것과 입을 것, 돈과 재물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너무 많은 필요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바리새인의 나쁜 습관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같은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기 시작해야 합니다. 궁핍한 사람을 많이 보면 그들을 불쌍히 여기십시오. 그들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괴로움을 당하며 방황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작물입니다.

너희는 내가 하나님의 수확이 아닌 자들을 거두기를 원하느냐? 병원에 오는 사람들이 기꺼이 나에게 오면 내가 그들을 섬기고 그들이 나에게 오기를 원하지 않으면 잊어 버리십시오! 하나님의 작물은 무엇입니까? 그 바리새인들은 분명히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세리들과 죄인들은 예수님께 가까이 가고 싶어했지만 바리새인들은 그들을 막았고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운명을 가진 사람은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고 내면의 필요와 욕구에 따라 판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굶주린 이 세대, 자신의 필요를 스스로 가져오지만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바리새인들에게 쫓겨나 궁핍하고 쫓겨난 이 세대의 필요를 채워줍시다. 우리는 그들을 목양하고, 건강을 되찾고, 운명에 들어가게 하고,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들은 어느 날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나님, 저를 보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당신의 추수를 거두겠습니다. 나는 당신의 하늘의 권위를 갖고 싶습니다! 주님, 저를 보내 주십시오.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고 당신의 뜻을 만족시키기 위해 당신의 봉사를 본받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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