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창세기22장-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바차라!
필기를 참고
하나님은 사람을 시험하시는 것 하나님이시다
1)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가장 귀한 것이며,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한 자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가장 귀한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며 하나님의 시련을 몇 번이고 이겨냈고, 이삭은 기쁨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며 하나님께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2)사람이 인생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 지극히 선해야 합니다. 모든 축복은 시험을 받았으니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이생에서도 영원토록 하나님의 복을 받을 것입니다.
2.아브라함은 무엇을 믿었습니까?
1)아브라함의 믿음은 우리가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면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큰 축복을 주시리라고 믿었던 믿음의 본보2)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신실하고 하나님의 시련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을 믿으십시오.
3.사실 우리에게 바치을 요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바치을 요구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고 계시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드리고 계십니다.
4.하나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영원한 축복을 선포하셨고, 아브라함은 몇 번이고 시련을 통과했고, 하나님은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본받아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려 만민을 축복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5.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 것이다
마귀를 발 아래 짓밟고,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는 사람이 되고, 모든 시험에서 이기는 것을 택하고,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바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온 힘을 다해 추구하고, 충성되고 착한 하나님의 종이 되어, 신의 은총이여, 원수의 성문을 얻으소서.
6.결론
우리는 적의 성문을 점령하고 싶고,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을 희생하고 싶습니다.
서론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은 창세기 22장을 읽겠습니다. 이 장은 매우 흥미롭고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헌금을 요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십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저의 봉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때마다 저는 하나님께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것에 감사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주시지 않았다면 오늘날 우리 모두는 구원이 전혀 없는 저주 아래 살고 있을 것이며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무엇을 드릴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자매들이 속박에서 풀려날 때 나는 하나님께 매우 감사합니다! 이 시대 사람들은 정말 공과를 배워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을 필요로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것들이 전혀 부족하지도 않고 희귀하지도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시험이 끝나면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주실 것입니다. 이 큰 축복이 무엇입니까? 사실 중국 운명신학의 몇 가지 중요한 개념은 창세기 22장에서 나온다. 모든 민족이 우리를 통해 복을 받을 것이며 우리는 여기서 적의 성문과 승리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 장의 주제는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바치라"입니다. 하나님께 바치기를 꺼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말로는 하나님께 헌신했다고 말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발바닥에 기름기가 돕니다. 내가 말한 것이 어떤 사람을 화나게 할 수 있지만 다른 것을 먼저 말하지 말고 성경을 연구하고 하나님을 위해 성경을 읽는 데 시간을 할애할지 여부를 말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정말 할 수 있다거나 할 수 없다는 뜻이 아니라 마음이 어디에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내가 이것을 말하는 것은 여러분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지 않고, 여러분이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는 이것이 부족하지 않으니까요. 주님을 처음 믿은 날부터 지금까지 보배를 받은 것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저주를 담당하시고 나의 슬픔과 고통을 짊어지신 것은 사실입니다. 내 질병이 예수 그리스도께 머물렀기 때문에 치유되었습니다. 내 생명이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면 하나님께 바치려 하지 않고 지킬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면 아마 건물에서 뛰어내렸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삶은 정말 힘들고 지루하기 때문입니다. 다행히도 하나님이 계시고, 내가 찾던 길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내 인생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나는 나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임을 하나님과 언약합니다. 그때부터 오늘까지 단 한 번도 일요일을 빼먹은 적이 없습니다. 집을 옮겨야 할 일이 있으면 주일에 안 정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간으로 미루는 것입니다. 다른 시간에 할 수 없으면 상사에게 휴가를 요청할 것입니다. 별거 아닙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기 때문에 내 생명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인데 하나님께 바치기 싫은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헌신하고 나면 하나님께서 큰 축복으로 저를 축복해 주실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임을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당신의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할지 스스로 선택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은 사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사람은 정말 시험을 거쳐야 자신의 몸무게가 얼마인지 알 수 있고, 그래야만 자신이 금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진짜 금은 연소 후에도 여전히 금이며 산화철이나 산화구리로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매우 가혹하게 시험하신다는 것을 모두 알아야 합니다.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가장 소중한 아들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별과 달을 고대했고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아들 이삭을 고대했습니다. 한번은 하나님께서 그가 이삭의 후손이 될 것이며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을 것이라고 친히 말씀하셨는데, 그가 20, 30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제사를 드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그의 아들 이삭? 내가 아브라함이라면 하나님과 싸울 수 있습니다. 나는 늙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원하십니다. 내 아들을 원하지 않는데 나를 대신 사용할 수 있습니까? 아니요! 하나님과 조건을 협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주실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항상 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는지 묻습니다. 나는 듣지 않는 것이 낫다고 말합니다. 듣고도 할 수 없기 때문에 비극이 아닙니까? 아브라함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으며 집에 가서 아내와 의논하기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말할 것도 없고 그의 아들 이삭을 지킬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의 온 가족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당신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 즉 당신이 생명과 맞바꾸고자 하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때 당신은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모르면 곤란합니다. "창세기" 12장부터 오늘 본문까지 모든 축복은 시험을 받은 후에 받는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가 되기 시작하십시오. 당신의 사업이나 자녀가 당신에게 가장 소중하다면 하나님이 당신의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되도록 길을 내십시오.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받고 싶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봉헌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은데, 그들이 헌납할 때 늘 축복이 어디 있는지, 왜 아직 축복을 받지 못했는지 생각합니다. 마음속으로 생각하는 것이 헌신이 아니라 축복이라면 헌신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지만 선택된 사람은 적습니다. 성경에는 아브라함이 기록되어 있지만 언급되지 않은 "아브라함"이 많이 있습니다. 일단 시도하면 느슨해지고 체인이 끊어지기 때문입니다. "Abrahim"도 "Abelara"도 외우지 않고 외우고 나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이 다른 사람 대신에 한 사람의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 계약을 맺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귀한 것, 덜 귀한 것을 바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많은 사람들이 이 시험을 견디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아직 "아브라함"의 단계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여기까지 도달한 사람들은 이미 선하다고 여겨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Abrasia"에 도달하지도 않았고 "Abrasia"에 도달하면 "Abel green"이되고 얼굴이 녹색이며 "Abrasia"의 단계에 도달하지 못합니다. 주님을 믿는 사람은 많지만 선택된 사람은 적습니다. 선택받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선택받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아브람" 외에도 "아벨황", "아벨적색", "아벨초록"이 많을텐데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이 한 사람일 때 많은 아브라함이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시험을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르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은혜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아내, 아들, 돈 또는 여자의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고 "아벨 그린"이 올라가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중요한 것은 당신과 내가 기꺼이 하나님의 시련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릴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은 부모와 아내와 자식과 밭과 집을 버리고 하나님께 버려야 합니다. 간절히 원하면 반드시 큰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끔찍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하루 종일 말씀하시는 것을 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말하기를 원하기 전에 머리 속에 논리를 준비하십시오. 당신의 삶이 희망으로 가득 차 있고 공허하지 않다고 느낀다면 하나님이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별로 필요하지 않다고 느끼신다면 잘 사십시오. 자신에 대한 이러한 것들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것들을 붙들고 하나님이 당신에게 말씀하실 것을 기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정말 입을 열어 당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하시면 그 일이 끝나면 얼굴이 파랗게 변할 것이고, “아벨 그린”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부용강이라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아프리카로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셨다고 했습니다. 나중에 비디오를 봤는데 파티에 수백만 명이 있었는데 꽤 무서웠어요. 하나님께서 저를 부르셨다면 저도 겁이 났을 것입니다. 수백만 명이 모이는 곳에서 화장실 관리만 해도 물류(물류는 물류를 뜻한다), 교통 관리 등에서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나님은 부용강에게 먼저 뽑힌 자가 아니요, 둘째도 아니요, 넷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부용강은 신에게 다섯째를 찾을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사실 다섯 번째가 있느냐 여섯 번째가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어 하는지 하나님은 전혀 상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진정으로 듣고 싶다면 당신 자신을 온전히 드릴 준비를 하십시오. 사실 저는 언젠가 주님과 함께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는 꿈을 항상 꾸었습니다.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나조차도 구속받기를 바라며 자주 신음하며 마음에 애를 씁니다. 우리 교회는 끝까지 왔고 많은 사람들이 사슬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 많아질 것입니다. 그냥 놔둬, 내가 말한 건 중요하지 않아. 그러나 당신과 나는 사슬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기로 기꺼이 선택합니까?
2. 아브라함이 믿었던 것
부용강이 다섯 번째를 고를 필요가 없다고 했을 때 이 문장도 마음에 와 닿았다. 하나님이 정말 내가 첫째가 아니라 넷째라고 말씀하셨다면 다섯째와 여섯째도 택함을 받았다고 하나님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아브라함이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거할 곳이 많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들을 제물로 바칠 수 있었는데 그때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창세기 22:2)
그 당시 노인이 얼마나 불편했는지 상상할 수 있습니까? 그는 정확히 무엇을 믿었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까지 사흘 동안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그는 3일 동안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회개하고, 분투하고, 심지어 돌아서서 집으로 갈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난미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창세기 22:3-4)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곳은 나중에 야곱이 돌을 가져다가 누워 하늘로 가는 사다리를 꿈꾸던 곳입니다. 솔로몬과 다윗의 통치 기간에 이곳에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졌으며 오늘날의 성전 산입니다. 사실 여기까지 오는 데 그렇게 많은 날을 걸을 필요는 없었지만, 그들은 천천히 걸었습니다. 이 길은 쉽지 않고 모든 단계가 매우 무겁습니다. 아브라함은 마음속으로 하나님이 이삭을 제물로 바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실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하나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아이를 죽이고 나서야 하나님께서 그에게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무렵 칼이 들려 있었고 아들은 묶인 채 나무 위에 놓여 있었다. 우리는 그 당시에 아브라함이 한 일을 정말 상상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진짜입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위에 놓고.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하매.사자가 갈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으 ㄹ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겨외하는 줄을 아노라.(창세기 22:9-12)
아브라함은 오랫동안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마음이 무너질 때까지 정말 미루실 수 있었고, 그의 마음이 정말 아팠습니다! 그러나 아프지 않다면 하나님이 원하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그리고 가는 길에 이삭에게 땔나무를 등에 지고 가게 했고, 이삭도 언제 아버지와 아들이 앞으로 걸어왔는지 묻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ㅓ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창세기 22:6-8)
이때 아브라함은 수천 발의 화살에 찔렸는데, 이런 시험은 보통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노인은 하나님이 예비하신다고 하였으나 마음속으로 다르게 생각하여 어린양이 이삭일까봐 두려워 소년은 이 말을 듣고 도망쳤습니다. 하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정말 놀랍습니다. 놀라운 아브라함과 놀라운 이삭. 이삭이 거기에 이르자 땔감이 놓여 있었고 아브라함은 이삭을 다시 묶었습니다. 성경은 말하지 않지만 이삭이 혼자 장작 위에 누웠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은 이후로 두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이야기해 왔습니다. 사람은 헌신하는 것은 고사하고 사는 것이 공허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사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모든 사람들이 "전도서"를 주의 깊게 읽을 것을 권합니다. 인생이 정말 무의미하다고 느끼면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의미는 오직 하나, 곧 하나님의 시험에 합격하는 것,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는 것, 택하심을 받는 것에만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이삭이 자신을 완전히 바쳤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장면을 상상할 때 아브라함과 이삭이 울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한 사람은 자기의 가장 소중한 것을 기쁘게 드렸고, 다른 한 사람은 자기 자신을 기쁘게 드렸습니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습니다.사람은 육신으로 살며 처음 성령의 열매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마음으로 신음하며 애쓰고 있습니다. 삶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면 자신을 하나님께 바칠 수 없습니다. 나는 모든 형제자매들이 인간의 삶이 헛되고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합니다. 당신은 의미 없는 삶을 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자녀들도 의미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오늘을 사는 문제를 꿰뚫어 보아야 한다면 정말 택함을 받은 것이고 택함을 받은 것입니다. 당신은 정말로 "Abel Green"이나 "Abrashi"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은 확실히 Abraham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것과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는 것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며 사는 것이 무한히 더 나은 선택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의 득과 실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에 얽매이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다시 해산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내면에 가져야 할 희망이자 논리, 즉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때는 더 이상 생방송을 해야 하는지, 장사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여전히 고객을 만나야 하고, 어떻게 하나님께 시간을 바칠 수 있을까.
내가 모든 사람에게 실제적인 일을 하라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실제적인 일을 하려고 하면서도 하나님을 뒤로 했습니다. 장사, 고객, 자식 따위는 다 우리가 고생하는 일인데 정말 이해가 안 갑니다. 나는 오늘날의 나처럼 "아브라함"은 아니지만 내 안에 있는 "아브라함"은 확실히 아니며 많은 것을 더 분명하게 봅니다. 이 일을 하면 할 수 있고 안 하면 안 하는 것이다 아무도 죽지 않는다. 내 은혜라면 너희가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손으로 만물을 붙들어 주실 것이다. 나는 시험을 치르기 위해 이 세상에 왔고, 선택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짓는 일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고, 무엇이든 하는 것, 실제적인 일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하나님이 오늘 나를 데리러 오시기를 원하신다면 나는 내일까지 이 땅에 머물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아직 마음에는 걱정이 많아요. 내가 목회하는 무리들을 보면 할 일이 없을 때 사소한 일로 마음이 불편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는 것이 아브라함이 믿었던 것과 같아야 하는데 왜 기쁨으로 하나님께 드리지 못합니까? 하나님께 봉헌하면 죽을 만큼 가슴이 벅차는데, 정말 그렇게 심각합니까? 오늘 나는 하나님이 사람을 시험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가 믿는 바를 알기 때문에 시험을 견딜 수 있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도록 격려합니다. 내부의 논리 체계가 틀렸다면 오늘 빨리 바로잡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절대 아브라함이 될 수 없습니다.
번제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화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서 난 자만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삼십 대의 자녀들을 이렇게 불살랐느냐?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재 가운데서 영광스러운 사람으로 일으키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삭은 또한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들을 부활시키실 수 있다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실 수 있고 사람에게 영생을 주실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삶은 무의미하며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비할 데 없이 좋습니다. 아브라함의 논리를 설명하겠습니다. 시간이 좀 걸릴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논리는 전도서의 논리와 같고 인생의 모든 목적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도서 12:13)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택하심을 두려워하고, 시험을 받자마자 ‘설사’를 두려워한다면, 육신의 소욕대로 제멋대로 행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시험하자마자 "설사"하면 문제가 될 것입니다. 내면의 논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사소한 일에 끊임없이 얽히고 설킨 사람은 어디를 더 하고 어디를 덜 하느냐 하면 시험을 견디지 못한다.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이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실천해야 합니다. 전도서를 읽으면 마지막에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합니다. 사람이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고 날마다 하나님을 경외할 수 있다면 사슬에서 떨어지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늘날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도 하나님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숨기고 싶지 않고 속이 불편할 때가 많으며 때로는 또 다른 형제자매들이 너무 힘들어서 또 출산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형제자매를 섬기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한 번은 질문을 받아 가슴이 벅찼지만 육신의 뜻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을 본받기를 배우기 시작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무 좋으셔서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고,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에 여기에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 없다면 영생을 주실 수 있다는 것도 믿을 수 없고 영생을 주실 수 있음을 믿지 아니하면 육신의 뜻을 따라 삶. 오늘날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시험과 여러분이 앞으로 행한 모든 일이 영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영생의 개념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이런 일들을 너무 심각하게 여길 것입니다. 나는 또한 단계적으로 왔고 이제 나는 그것을 점점 덜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많이 안 해줘도 하루나 이틀 뒤에, 한두 달 뒤에 해도 별거 아닌데 그런 것 없이도 살 수 있다. 내가 더 많이 하든 덜 하든 상관없고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안에 있는 논리가 우리가 가져야 할 논리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비극이 될 것입니다. 우리 중에 "호랑이 엄마"라는 자매가 있습니다. 그녀는 자녀 양육에 매우 공격적이지만 자녀는 매우 잘 행동합니다. 아이들이 어머니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조금 더 건강합니다. 그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주제넘은 아이들이었다면 이생에서 잊어버리십시오. 부모만이 그들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것을 재건하고 하나님을 접시로 여기거나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육체의 선호도를 따르십시오. 갑자기 하나님이 선택하셨습니다.
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드리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드리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는 것일 뿐 사실은 하나님께서 친히 주시는 것입니다. 후에 하나님께서 친히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주셨으니 우리의 저주를 담당하시고 슬픔과 고통을 담당하신 놀라운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처럼 되기를 원하시고 우리도 주는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축복을 간절히 원하지만 그 축복이 어디서 오는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기 아들을 주셨기에 하나님을 본받아야 복이 있고, 오늘 우리가 우리 자신을 포함한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면 큰 복을 받을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 당신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큰 축복으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니 어떤 사람은 네가 네 아들을 다 제물로 바쳤다고 하는데 큰 축복을 베풀어 달라고 하느냐? 아니오, 하나님은 그것을 영원 안에서 아브라함에게 선포하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텨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그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창세기 22:15-18)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고, 하나님은 수십 년 동안 준비하셨고 크고 작은 모든 시험을 통과하셨습니다. 그가 이삭을 낳는 데는 26년이 걸렸고, 이삭은 30세까지 자라 총 56세였습니다. 기근이든지 다른 것이든지 여러 번 시험한 후에 이때 이삭을 제물로 바친 것이 가장 큰 시험이었고 그 이후로 하나님은 다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때부터 하나님이 그에게 큰 복을 주시어 그의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번성하게 하시며 그의 후손이 대적의 성문을 정복하게 하실 것입니다. 사실 아브라함은 살아 있을 때 본 것이 아니라 후손을 믿음의 눈과 영원의 눈, 즉 우리의 눈에는 하늘의 별과 해변의 모래로 보았습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가 아브라함을 본받아 아낌없이 베푸는 사람이 된다면 영원토록 사람을 낚는 어부와 같을 것이요, 후손은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을 것입니다. 당신이 축복하고 싶은 사람이 많고 땅의 모든 민족이 당신으로 인해 복을 받을 것입니다.
적의 성문을 얻으려면 마귀와 적을 압박하여 땅에 문지르면 승리를 의미합니다! 우리에게는 성문이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성안도 우리 것입니다. 네 모든 후손이 아브라함과 같을 것이기 때문에 너는 유업을 받을 것이다. 아브라함의 후손은 육신의 후손이 아니라 영계에 있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다 아브라함을 본받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아브라함을 본받아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바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될 것입니다. 중국 운명 신학의 요구 사항은 참으로 조금 높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비전은 승리하는 교회를 세우고 지상의 모든 국가와 민족에게 축복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육신을 따라 말하지 않고 영의 세계를 따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이 오늘날 우리 가운데 이루어지고 있으니 대적의 문을 정복하고 영계의 오대벽을 넘어 마귀와 원수를 밟아야 만민이 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큰 축복.
간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면 내가 이것 저것을 얻었는지에 대해 말하지 말고 우리가 누구를 축복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십시오. 지난 오랜 세월의 지속적인 성장 속에서 저는 이 세대가 우리로 인해 축복받을 것이라는 것을 점점 더 자각하게 되었고, 우리는 그것을 내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무엇을 주어야합니까?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바치고 이 논리체계로 축복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이 하나님께 큰 축복을 받는 것은 큰 축복입니다. 샤오푸란? 아들이 좋은 학교에 가길, 좋은 직장을 갖길, 월급이 오르길... 물론 모든 사람이 경제적으로 축복받기를 바라지만 그것이 우리가 사는 이유는 아니다. 오랜 세월 주님을 믿은 우리가 하루종일 그런 생각만 하면 간증으로 말하기가 이상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승리가 중국 운명신학의 주축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많은 사람들이 간증을 말하지만 그들은 교회의 이름을 모릅니다.그들은 그것이 승리의 교회라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그들은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승리의 교회에 오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또한 승리의 교회에 오심을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5. 네 자손이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우리가 가장 귀한 것을 바치고 가장 귀한 모든 것을 뒤로 할 때 마귀는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할 수 없으며 우리는 반드시 적의 성문을 얻을 것이며 마귀와 원수를 땅에 붙들 수 있을 것이며 우리는 그들을 억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은 우리가 우리를 위해 일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노예여야 합니다. 중국의 운명신학은 승리하는 교회를 세우기 위한 신학체계인데, 여기에는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고 모든 것을 버리려는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들이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가운데 치유를 경험하셨다면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우리 가운데 은혜를 받은 것은 여기에 사도 바울과 주 예수님처럼 자신을 바친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곳은 승리의 장소이며 마귀와 원수가 완전히 짓밟힐 것입니다. 가장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사람이 되시겠습니까? 당신이 원한다면 축하합니다. 당신은 승리자가 되었으며 악마는 더 이상 당신을 지배할 수 없습니다!
왜 아직도 우리 중에는 자주 전화해서 그가 불편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다 아이가 잘 못해서, 남편이 잘 못해서, 혹은 장사가 잘 안되어서 입니다. 자기가 하나님 나라의 황폐함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고 세상의 그 어지러운 일로 말미암아 종일토록 고통을 당하였다고 부르지 아니하고 자기들이 참으로 이겼다고 생각한 것이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실 마귀에게 눌리고 땅에 문질러진 상태였으니 분명 불편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다시 해산의 고통을 참았다 하는 말을 좀처럼 듣지 아니하였나니 오늘 이후로 너희가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이니 이것이 하나님의 영광이니라.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갈라디아서 4:19)
사도 바울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그 형제자매들이 다시 마귀에게 유린당하고 압제당하고 통제당하는 것을 그냥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다시 해산의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왜? 어떤 사람은 항상 마음에 여유가 있고 하나님께 드리지 못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며, 신경 쓰지 말고 놓아주라고 간절히 권하지만 선택은 여전히 당신의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 너무 많은 빚을 졌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하나님께 빚진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너무 많이 빚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종 잘못된 것을 선택하는데, 그것이 그들이 스스로 빚진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의 취두부를 상관하지 않으시고 우리는 하나님 보시기에 그릇이 아니니 너희를 그릇이라 여기지 말라. 여러분, 내 가르침을 잘못 듣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곤경에 처할 것입니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내 마음속의 그 목소리는 종종 내가 충분히 하고 있지 않다고, 내가 제대로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 드린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늘 더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장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지 못한 것 같으니 귀한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다시 드리겠나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종종 내가 그것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여 오늘날의 위치에 왔고 오늘날까지 종종 몇 가지 문제, 즉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겠습니다. 미래, 그리고 돌파할 곳. 물론 이 단계에 머물 수는 없지만 어떤 신학은 300년 전에 남아 있었고 그 300년 신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소중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최선을 다해 그것을 추구해야 하기 때문에 형제자매를 섬길 때마다 늘 빚진 마음을 느낍니다. 나. 내가 장차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나는 부르심을 받았을 뿐 아니라 택함을 받은 신실하고 착한 종으로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나는 패배하고 싶지 않고 누군가가 잘하지 못해서 사슬을 잃고 싶지 않습니다.당신이 나를 쓰러뜨리는 것은 여전히 조금 어렵습니다. 모순되고 멸시를 받아도 그것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대적의 성문을 얻으려면 마귀와 대적을 압박하여 땅에 부딪히게 하려면 하나님의 은혜 안에 굳게 서기 시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 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오늘 우리가 달려가는 길은 다양한 시련으로 가득 차 있으며, 시련을 만나거나 불편함을 느낄 때마다 극복하기로 선택해야 합니다. 형제자매들이 하나님께 말하기를 나는 대적의 문을 얻고 싶고 가장 귀한 것을 바치고 싶다.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