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사무엘상 31장-사울의 비극적 결말
필기를 참고
1.사울의 삶에서 교훈을 배우다
1)사울에게는 최고의 제사장 사무엘과 최고의 사위 다윗이 있었지만 카드를 잘 쓰지 않았습니다.
2)사울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존귀함을 알지 못하므로 보좌가 그의 올무가 되었더라
2.절대 하나님의 함께를 잃지 말라
1)하나님의 신실한 종이 되려면 하나님의 임재를 귀하게 여기는 삶 하나님의 임재를 잃는 것이 인생 최대의 비극입니다.
2)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붙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는 우리의 피조물에 달려 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지 않으면 우리 앞에 대적할 자가 없다.
3.왕좌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마
1)사람은 자기 입장을 너무 중시하지 말라 사람이 자기 입장을 너무 중시하면 사울이 되고 그 결말은 비극이 된다.
2)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기지 말라 이것이 사람에게 올무와 속박이 되리라
4.우리는 죽음이 모든 사람의 끝임을 알아야 합니다.
1)오래 살 생각하지 말고 현재를 위해 살지 말고 죽음이 모든 사람의 끝임을 알아라.
2)사람이 사는 시간이 길지 않고 인생이 짧다는 것을 안다면 그 지루한 일에 얽매이지 않을 것입니다.
5.결론
1)다윗에게서 교훈을 얻는 것보다 사울의 삶에서 교훈을 얻는 것이 낫다! 더 상쾌하기 때문입니다.
2)죽음이 모든 사람의 끝임을 깨닫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추구하며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라!
여러분, 오늘은 사무엘상 마지막 장 31장을 보겠습니다. 이 챕터는 사울의 비극적인 결말을 기록하고 있는데 어떤 문장을 주제로 삼을 것인지 묻는다면 정말 이보다 더 좋은 말을 찾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1.사울의 삶에서 교훈을 배우십시오
오늘 잠깐 복습해봅시다 사울이 정말 그런 엔딩이 있을 줄 알았다면 어떻게 했을까요? 사실 리플레이 해봐도 소용없어 죽기 직전인데도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습니다.그들은 언젠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모릅니다. 어떤 사람들은 6시간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여전히 돈을 세고 있다. 내 인생은 며칠 남지 않았고 여전히 밀 다섯 포대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누나와 돈에 대해 다투고 있습니다. 암 환자들도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며, 죽음이 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도 죽음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 사람이 인생에서 죽음의 끝을 알지 못한다면 곤란할 것입니다. 은행에 예치된 돈을 누가 쓸지 모르겠고 집은 영구임대지만 언제 주인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사울에게서 교훈을 얻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울은 어떻게 인생을 살았습니까? 처음에는 어렸을 때 집에서 당나귀를 키웠는데, 당나귀가 길을 잃으면 여기저기 찾아다녔다. 결국 당나귀를 찾는 것이 그의 삶의 목표가 되었고, 당나귀가 그를 찾지 못하자 그는 사무엘을 찾았습니다. 그가 사무엘을 찾았을 때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그가 택할 왕이 사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의 떡이 어떻게 사울에게 떨어졌습니까? 왕이 되는 것도 좋지만 왕이 되는 법은 더 잘 알고 있다. 하늘에서 떡이 떨어진 줄로 생각지 말고 왕이 되는 것은 좋은 일인데 왕이 사울에게 올무가 되었나니 이것은 큰 떡이 아니요 큰 그물이니라 오늘 우리는 이 장에서 그런 내용을 기록한 "사무엘상"의 저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사울은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거의 죽을 뻔했는데, 칼로 자기 몸을 찔러 죽을 힘도 없었기 때문에 자기 몸의 무게에 의지해 칼에 몸을 던지고 찔려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 그의 아들과 그의 주위에 무기를 가진 사람들도 죽었으니, 이것으로 볼 때 사울은 여전히 훌륭한 지도자였고 그의 신하들도 기꺼이 그와 함께 죽으려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 산에서 엎드러져 죽으니라.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 아들들을 쫓아 미쳐서 아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사울이 패전하매 활 쏘는 자가 따라 미치니 사울이 그 활 쏘는 자를 인하여 중상한지라.그가 병기 든 자에게 이르되 네 칼을 빼어 나를 찌르라 할례없는 자들이 와서 나를 찌르고 모욕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병기든 자가 칼을 취하고 그 워에 엎드러지매.병기 든 자가 사울의 죽음을 보고 자기도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그와 함께 죽으니라.사울과 그 세 아들과 병기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사무엘상 31:1-6)
게다가 사울이 나귀를 찾던 사무엘을 찾은 후 하나님은 사울을 왕으로 택하셨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정말 도우셨고 사울에게 성령이 임하셨고 그는 예언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셔야 할 일은 모두 사울에게 행하셨지만 결국 보좌는 평생 동안 사울에게 올무가 되었습니다. 그는 보좌가 하늘에서 떨어진 줄로 생각하여 보좌가 하나님께로서 온 줄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제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알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이 그의 삶에 계시면 모든 것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보다 보좌가 더 중요할 뿐만 아니라 그가 본 모든 것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전쟁 중에 평범한 사람들 몇 명을 잃었을 때 걱정했지만 한 사람만 남아도 하나님이 이기기를 원하시면 여전히 이길 수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이 아말렉 사람을 죽여 공덕을 행할 기회를 주셨으나 그는 백성을 두려워하고 이것 저것을 두려워하여 스스로를 우매케 하였고 그의 정신 상태가 심히 나빴습니다. 그뿐 아니라 아말렉 왕 아각도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죽이라고 하셨지만 사울은 듣지 않고 하나님의 원수들에게 자비를 베풀겠다고 고집을 부렸는데 이것이 그의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오늘 저는 목사로서 매일 달걀 껍질 위를 걷는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종종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앞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잃을까 봐 걱정하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하나님의 원수를 긍휼히 여겼으나 나는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고, 백성을 두려워하였어도 나는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였으니, 교회는 이렇게 세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울 왕을 폐하시고 새 다윗을 세우셨으니 이때 사울이 회개하면 왕위를 다윗에게 넘길 것입니다. 그는 다윗의 장인이기도 한데, 다윗이 하나님의 뜻에 더 합당하기 때문에 그가 은퇴해도 그런 비극적인 결말은 없을 것입니다. 즉, 사울은 사람의 인생에 기회가 많듯이 그의 인생에도 기회가 많았고, 아무리 회개를 잘해도 현실을 인정할 때 책략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언젠가는 완전히 이 세상을 떠날 것을 알기에 왕위와 나라는 그대로 있어도 그는 가버린 것이다. 사울 왕과 같든지 말든지 다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의 일과 사업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 저에게 옵니다.
한 늙은 목사가 사울에게는 최고의 아들 요나단, 최고의 사위 다윗, 최고의 예언자 사무엘이 있었지만 그는 카드를 잘 쓰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한 가지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모르고 하나님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인데 어떻게 블레셋 사람들에게 패배할 수 있는지 종종 혼란스럽습니다. 사실 그들을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 넘겨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한편, 전투 직전에 다윗은 블레셋 왕 아기스의 손에 큰 도전을 받았고, 이스라엘 백성과 싸우기 위해 전쟁터로 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이 시글락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그를 구출하도록 도우셨습니다. 그가 시글락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그의 가족들이 아말렉 사람들에게 잡혀갔고 그의 주변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 죽이려고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여전히 하나님의 약속을 받고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윗에게서 배울 수 있는 것이 많고 사울에게서 배울 수 있는 부정적인 것들이 많습니다. 사울은 귀신이 들린 여인을 보러 갔습니다. 그 당시 하나님과 선지자가 그를 무시했기 때문에 그 감정은 매우 나빴고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었습니다. 다윗은 아말렉을 쫓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피곤하여 싸우지 않고 머물고 싶다고 말했지만 다윗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다윗은 아말렉 사람을 무찌르고 전리품을 가지고 돌아와 기물을 보는 자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다윗에게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승리는 당신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룬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리품은 하나님의 백성들 각자가 나누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모두가 게을러서 전쟁터에 가지 않을 것을 염려할 필요가 없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천사들과 천군들을 보내어 우리 앞에서 우리를 위해 싸우게 하실 수 있습니다. 다윗과 사울 또한 매우 극명한 대조를 이룹니다.
뿐만 아니라 사울은 다윗을 13년 동안 추격하여 죽였는데, 다윗의 소식을 듣자마자 군대를 이끌고 다윗을 추격하여 죽였습니다. 가장 무서운 것은 사울이 정신병을 앓았다는 것인데 그 당시에는 향정신성 약도 없었고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예전에 다윗이 수금을 연주하여 귀신을 쫓아내어 병을 낫게 하였으나 다윗도 그에게 쫓겨났느니라. 그는 자신의 왕위를 다윗에게 빼앗길까 두려워 다윗을 쫓고자 했습니다. 처음 다윗이 그를 죽이지 않았을 때 그는 고개를 돌리고 잊었습니다. 내가 사울이라면 급히 병거와 말을 보내어 다윗을 다시 데려오고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을 것입니다. 내가 의미하는 바는 항상 마음을 바꿀 시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울이 두 번째로 다윗을 쫓았지만 다윗은 여전히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으므로 사울이 이때 다윗이 자기 사위인 줄 알았다면 사울은 다윗을 하루빨리 데려올 시간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집에서 은퇴하고 전체 자문위원회의 의장입니다. 다윗은 수만 명을 죽였으니 전쟁터에 나가 싸우게 내버려 두었고 사울은 만 명을 죽일 수 밖에 없었으니 집에 머물면서 이 고된 일을 끝내는 것이 좋습니다.
중국에는 퇴위 이야기가 꽤 많고 항상 시간이 있지만 사울은 이를 고집했다. 그는 자신이 영원히 살며 자신의 왕좌를 아들에게 물려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보좌가 귀한 줄 알았는데 실은 보좌가 올무입니다. 나는 내가 모시고 떠나간 사람에게 종종 한 가지 일을 합니다.나는 여기서 그를 위해 기도하고 사망의 영이 퇴각하도록 명령합니다. 내가 뒤를 돌아보았을 때 그가 내 말을 듣지 못했을 때 나는 신이시여, 그를 데려가 달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못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정말 하고, 정말 살기 힘들다. 왜 이렇게 기도하는지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저도 이렇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저를 빨리 데려가 주십시오. 내가 나 자신을 대하는 방식은 당신을 대하는 방식입니다. 모두가 이해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하겠습니다.
2.절대 하나님의 임재를 잃지 말라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지 말라 하나님의 임재를 잃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비극이다. 하나님을 경험하다가 하나님을 잃으면 비극 중의 비극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기름 부음과 하나님의 영이 당신에게 임할 때 하나님은 당신에게 순종하게 하시고 하나님은 큰 능력이 있지만 당신은 그의 임재를 잃어야 함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한 아무도 하나님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사람들이 정말 안다면 다윗과 같은 사람이 블레셋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을 상대하는 사람으로 여겨진다면 그는 농담이 아닙니다. 다윗은 "반역자"가 되기 위해 블레셋 왕 아기스에게 갔습니다. 반역자와 꼭두각시 군대로서의 삶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은 상황을 몇 번이고 역전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정말 놀랍습니다! 형제자매들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이 지극히 좋고, 하나님의 임재가 지극히 좋은 것임을 알아야 하며, 하나님의 함께함을 잃어서는 안 된다. 나는 형제자매를 위해 땀을 흘릴 때가 많고, 선과 악을 분별하고, 까다롭고, 사소한 일에 조르는 능력이 뛰어나서,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하나님의 임재인지를 잊어버릴 뿐입니다.
만일 사울이 하나님이 자기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알았더라면 백성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전쟁 중에는 언약궤를 수리할 필요도 없고, 어떤 경우에도 음식을 먹을 수 없다고 규정되어 있어 엉망진창이다. 완전히 종교적이어도 소용없고 귀신을 금지하는 법이 있고 귀신을 행하는 자는 죽임을 당한다. 그들은 매우 열심인 것 같은데, 오늘 이단을 잡고 내일 또 다른 이단을 잡으면 자기가 하나님의 임재를 잃은 줄을 모를 뿐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인데 하나님이 정말 이런 사람들과 함께 계시다면 어떻게 그들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무엘상"은 하나님의 임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하나님의 신실한 종이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평생 하나님의 임재를 귀하게 여기는 신실한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이 헛되고, 종교적으로 쓸모가 없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것은 동일하며,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저에게 물을 주시는 것은 동일하지만 그 안에서의 선택이 동일한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내 선택이 사울과 같을지 누가 알며, 네 선택이 다윗과 같을지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나는 종종 자신에게 절대 사울이 되지 말라고 상기시키고, 사울보다는 노자가 되고 싶고, 노자가 약을 짜는 것보다 하나님의 임재를 잃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같은 방식으로 물을 주십니다. 모든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명령은 성경에 흑백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읽고 나는 그것을 읽습니다. 우리는 모두 같은 성경을 읽습니다. 중국인들이 안수신학을 읽자마자 하나님의 뜻을 읽고 싶어한다는 것을 눈치채셨나요? 그런데 인터넷으로 성경을 읽고 공부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흠을 찾으려고 하면 너무 많습니다. 현재 수준에서 읽더라도 많은 질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주시는 것은 당신이 읽는 유니온 성경이든 NIV든 내가 읽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악한 인간의 마음에 관해서는 다릅니다. 오늘날까지 기독교의 부패는 계속되고 있는데, 내가 언급한 작은 것에 비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물론 그들은 때때로 전투에서 승리하여 블레셋 사람들을 몰아냈지만 여전히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할 운명이었습니다. 사울 왕이 평생 군인으로 모든 것을 정복하고 모든 곳에서 싸워온 것처럼, 그는 극도로 노력했지만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을 비판하던 사람들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보다 자기들이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한다고 느꼈는데, 뜻밖에도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었습니다. 기도회에 참석하고 목사가 되는 것만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소용없고 사울이 하나님이 세우신 왕이 되어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결코 하나님의 임재를 잃지 말고 하나님의 원수에게 자비를 베풀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원수는 아말렉과 같은 이름이 아니요, 아말렉 족속은 에서의 후손입니다. 에서는 야곱의 형이고 원래는 친척이었는데 왜 아말렉이 하나님의 원수가 되었고 하나님은 왜 그들을 완전히 멸하려 하셨을까요? 육신을 돌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니 오늘날 육신의 교회가 많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여전히 독선적인 복음 전파가 세상을 구원한다고 생각합니까? 성경은 그렇게 세상을 구원한다고 말씀합니까? "성경"을 잘 읽어라, 초등교육 수준만 있어도 오늘은 이렇게 읽지 않을 것이다. 교회 안에 있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아말렉 사람과 에서의 원수입니다. 행복은 행복모임을 통해서 만들어질 수 없고, 행복은 하나님의 임재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아직도 어버이날, 어버이날, 어버이날이 많은데 사람들을 종교에 끌어들여 지옥의 아들이 되는 것뿐입니다.
오늘 나는 더 진지하게 말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비판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물론 사람들은 나를 비판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성경과 일치하는지 여부는 우리가 조사할 가치가 있습니다. 중국의 운명신학은 육체를 다루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며, 앞으로 우리는 육체를 다루는 일련의 프로그램과 훈련을 조직할 것입니다. 육적인 교회라면 모이는 시간을 다음날 새벽 3시로 바꿔서 유럽과 미국에 있는 형제자매들을 돌보고 싶은데 육신은 어떻게 처리합니까? 나팔이 울리면 모두 일어나, 내일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도 감당해야 한다. 군대에 있는 군인으로서 모닝콜을 듣자마자 깨어나야 하고, 일어나지 않으면 감금된다.물론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원수에게 긍휼을 베푸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잃는 것입니다.오늘날 교회 기도 열 번 중 아홉 번은 하나님의 임재를 잃기 때문에 잘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예수님 눈에는 모두 마귀의 자녀입니다. 당신의 아버지가 마귀라면 비극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원수의 손에 넘기지 않으셨다면 아무도 하나님의 백성을 이길 수 없었을 것이므로 하나님의 임재를 잃지 마십시오.
너무 자제하지는 못하지만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저 또한 모든 형제자매가 하나님의 임재를 잃지 않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오늘날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시지만, 당신이 하나님의 임재를 파악할 수 있는지 여부는 당신의 창조물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이생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잃지 않는 한 절대 우리 앞에 적이 설 수 없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교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육신적이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종교적이고 교인들을 두려워하는 교회가 너무 많은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는 교회와 목회자는 극소수입니다. 나 혼자만 할 수 있는 것처럼 자랑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사실 나는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잃고 싶지 않기 때문에 매일 달걀 껍데기 위를 걷고 있습니다.
3.왕좌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사울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잃지 말라 이것이 첫 번째 교훈이다. 두 번째 교훈은 왕좌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비극적 인 결말입니다. 어느 목사님이 목사직을 매우 중시하여 담임목사직을 아들에게 물려준 적이 있습니다. 나 같으면 절대 이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크기는 정말 어쩔 수 없고, 자기가 나라를 망하게 한 장본인이라고 생각해서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실은 하늘에서 떨어져 네 머리에 떨어진 파이였느니라 나라는 네가 정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라. 우리 중에 많은 형제자매들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그 교회들은 규모가 매우 크고, 10만 명 교회와 5만 명 교회의 연간 기부 수입이 억대에 달할 정도로 엄청납니다. 교회가 징수하는 기부금은 정부가 징수하는 세금보다 많아야 하며, 정부 세금은 저소득층에게 징수하지 않습니다. 싱가포르에서는 한 달에 SGD 3,000이면 정부에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므로 저소득층으로 간주됩니다. 제가 이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했을 때 많은 형제자매들이 그의 아들이 된 것이 너무 좋고 영광스럽다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매력적인 일이 아니었고 나중에 그는 암에 걸렸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 앉을 수 없었고 그의 아버지는 그의 아들에게 팀을 맡겼지만 아무도 확신하지 못했고 교회에 하나님의 임재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나중에 나는 습관이 생겼고, 내가 교회의 입장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천천히 깨달았습니다. 한 번은 내가 아파서 죽을 뻔했는데, 어느 형제가 나를 대신할 사람이 없기 때문에 목사님이 죽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죽었고 하나님은 거기 계시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종종 목사님이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말합니다. 이 입장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세요. 이 입장은 하늘에서 내 머리에 떨어진 파이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임재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하나님은 저를 대우하고 저를 선택합니다. 이 땅에서의 사명과 운명. 그러니 이것에 휘둘리지 마세요 어떤 사람들은 그 자리를 목회장 자리를 아주 중하게 여기기도 합니다. 목사의 다른 머리가 그에게 한 마디를 하자 그는 화를 냈습니다. 이런 사람은 여전히 목회를 할 때 목회를 매우 중시하는 사울입니다. . 오늘 나는 여러분이 교회 안에 서 있든 교회 밖에 있든 그 일을 너무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모든 사람에게 상기시키고 싶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운명도 아니고 우리의 운명도 아니지만 당신의 올무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교회의 담임목사가 목사의 직분을 중시하고, 목회자가 목회를 중시하고, 담임목사가 담임목사의 직분을 중시하면, 사울과 같은 비극이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사업을 생명처럼 중요하게 여긴다면 사업은 당신을 비극적인 최후로 몰고 갈 것이고, 일이 평생 추구하는 일이라면 일은 올무가 될 것입니다. 나는 실제로 매우 "부처"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독교인인 내가 왜 "부처"와 관련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합니다. 사실 그들은 내가 명확하고 철저하게 볼 수 있다고 말합니다. 내 통제.
사울의 일생을 보고나면 그저 깨달음을 주고 아주 상쾌한 결말이다. 우리는 언젠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 세상의 교회는 여전히 거기에 있고, 중국의 운명 신학도 거기에 있고 저는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나의 섬김의 결과를 볼 것이며 나의 섬김의 결과를 영원으로 가져갈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이 당신의 핵심 관심사인데, 당신이 이러한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그것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당신의 올무입니다. 당신이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가 아니며, 당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비극적인 결말입니다. 물론 저는 별로 신경쓰지 않습니다. 제가 죽을 때 하나님께서 저와 함께 계시기 때문에 모든 형제자매들의 행운을 빌 수 있을 뿐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든 사람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귀하게 여기는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나와 관련이 많은데, 나는 이런 것들을 내 올무로 만들고 싶지 않습니다.
4.죽음은 모든 사람의 끝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이튿날 블레셋 사람들이 죽은 자를 벗기러 왔다가 사울과 그 세 아들이 길보아산에서 죽은 것을 보고.사울의 머리를 베고 그 갑옷을 벗기고 자기들의 신당과 백성에게 전파하기위하여 그것을 블레셋 사람의 땅 사방에 보내고.그 갑옷은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그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박으매.(사무엘상 31:8-10)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울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지 40년이 되었다 해도 그는 결국 죽을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울을 죽이고 그의 갑옷을 아스다롯 신전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몸을 Beth Shan의 벽에 못 박고 그의 머리를 잘랐습니다. 이렇게 한 후에도 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좋지 않지만 그들의 우상인 아스다롯은 좋아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여전히 매우 혼란스러워합니다. 사람들이 우상을 숭배할 때 살아있는 것을 너무 중시하며, 귀신을 찾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 인생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것도 문제인데, 한 자매님이 죽으면 물려줄 자식이 없기 때문에 집을 사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듣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사실 사람들은 이러한 일에 대해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알몸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는 모든 사람의 끝은 죽음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이것을 깨달을 수 있다면 틀림없이 하나님의 임재를 귀히 여길 것이며, 자신의 사역과 보좌를 너무 중시하지 않을 것이며, 우리에게 아직 그 보좌가 없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사람들이 부패한 관료나 부당이득이 되는 이유는 항상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하지만 결국 가난하게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죽음이 모든 사람의 끝임을 아십시오. 당신이 오래 살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이 삶을 위해 이러저러한 준비를 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집을 정리하고 좋은 습관을 기르라고 가르치지만 결국 죽음은 모든 사람의 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이 이것을 똑똑히 본다면 하나님의 임재를 귀하게 여길 것임은 하나님의 임재만이 영원하기 때문이며, 네가 사는 이유를 알기에 반드시 운명지어질 것이며, 이 세상에서 수고하면서도 누리게 될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우리는 죽어도 영원히 산다. 네가 산다면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느 ㄴ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무읏 살아서 나르 ㄹ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한복음11:25-26)
사람들은 죽음이 모든 사람의 삶의 끝이라는 것을 모르고 어떤 사람은 일흔 살까지 살지만 남은 날을 셀 수 있습니다. 사실, 내가 접촉한 많은 노인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보다 삶과 죽음을 더 철저하게 봅니다. 여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겨우 스무 살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나이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섬기며 우리가 사는 이유와 죽는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입니다. 우리는 중국 운명 신학에서 우리의 운명인 하나님을 위해 살고 죽는다. 그러므로 섬기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사람이 자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면 그 따분한 일에 얽매이지 않고 하루종일 다툼과 얽힘과 해명에 갇혀 헤어나지 못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이것이 사울 왕에게서 배운 교훈입니다. 왕이라고 해서 영원히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이 당신을 "신 만세"라고 부르고 당신이 만세 신이라고 생각하지도 마십시오. 과거에 많은 황제들이 "신 만세"라는 말을 감당할 체력이 없어 단명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황제의 평균 수명은 보통 사람들보다 짧습니다. 알고 계십니까? 그래서 나는 여러분이 이 생명체들을 분명히 이해하고 나면 운명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불합리해 보일 것이라고 격려합니다.
우리는 오늘 성경공부에서 이것을 발견했고, 요약할 때 세상에서 더 많이 관찰하고 본다면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내가 일을 하다가 그 사람이 일을 잘못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남에게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나는 단지 그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모든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처럼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에게서 배우는 것보다 사울에게서 배우는 것이 낫습니다.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것에서 배우는 것이 더 신선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저는 많은 비극적인 이야기를 보았는데, 그들이 누구이든, 기독교인이든, 심지어 교회 지도자이든 간에 그들은 비극적인 결말을 피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하는 것을 보는 것은 저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이것 때문에 자주 한숨짓습니다. 하나님, 저를 긍휼히 여기사 이 땅에서의 날들이 당신을 위해 살게 하소서. 나는 평생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얼굴을 볼 때까지 평생 당신의 방식을 고수할 것입니다. 오늘 저는 하나님의 손길이 저를 인도해 주심에 감사하고 싶고, 하나님의 임재를 분명히 볼 수 있어 비교할 수 없이 좋습니다! 저 또한 형제자매들이 이러한 교훈을 배워 지금부터 깨어나기를 바랍니다. 사울이 어떻게 그렇게 좋은 패를 잘 못 냈는지 알면서 동시에 이 좋은 카드를 당신에게 건네준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