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사무엘상 제16장-하나님의 선택과 버림
필기를 참고
1. 버려지지 않게 조심해
- 선택이 있으면 버림이 있고, 택함을 받은 적이 없으면 하나님께 버림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께 택함을 받고 하나님께 버림을 받으면 비극이다.
- "한번 구원은 영원히"라는 말을 믿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 하나님이 사울에게 하실 수 있는 모든 일을 하시매 하나님의 영이 사울에게 크게 임하셨으나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지 아니하여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하나님의 영이 사울을 떠나니라
2.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신 이유
-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신 첫 번째 이유: 사울은 하나님의 원수들을 동정했습니다. 하나님의 원수를 동정하는 자는 하나님의 원수요, 자기 논리를 좇아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려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자입니다.
-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신 두 번째 이유: 사울은 백성을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이 통치하시고 전쟁은 하나님의 영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핵심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이 사울을 버리신 세 번째 이유: 사울은 왕위를 염려했습니다. 자신의 지위를 소중히 여기지 말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고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3. 버림받은 결과
- 사울이 버림받은 결과는 여호와의 영이 그를 떠나고 귀신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와서 그를 교란케 하고 정신병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 운명을 초월한 축복은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영이나 마귀의 영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 마귀가 악령을 보내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께서 악령을 보내어 여러분을 교란시키실 것입니다.
4.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 하나님이 다시 다윗을 택하신다 해도 사울에게는 회개할 기회가 남아있지만 사울에게는 나름의 사정이 있고 마귀와 완전히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버림받는 길을 갔습니다.
- 사람은 마음에 정해진 것이 있는데도 그것을 비극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자신의 논리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5. 하나님은 다윗을 선택하셨습니다.
- 하나님은 사람을 보는 것과 사람을 다르게 보십니다. 사람은 사람을 보고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보시고 사람은 마음을 보십니다.
- 하나님이 다윗을 택하심 다윗은 외모가 흠이 없고 사람의 뜻에 맞지 아니하였으나 마음이 강하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택하여 겉을 보지 않고 마음만 보도록 하셨습니다.
6. 다윗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영
- 기름부음은 하나님의 안수인데 우리 말로는 안수!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고 하나님의 영이 다윗에게 충만했습니다.
- 사람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으면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내며 일을 하면 하나님의 임재가 있고 사람이 크게 형통하게 된다.
7. 결론
-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하고, 운명을 얻기 위해 힘쓰는 것이 중국 운명신학이 주장하는 바입니다.
- 달리는 것도 지겹지만 뒤로 물러서면 더욱 지치리라 다윗을 좇아 하나님의 뜻대로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우리의 지위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줄을 알고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으라 신에게 버림받은!
1.서론
여러분, 오늘은 사무엘상 16장으로 갑니다. 라이브를 하든, 온라인으로 듣든, 유튜브에서 듣든, 읽지 않았다면 읽는 것이 좋습니다. 아직 읽지 않았다면 듣기 전에 빨리 읽기를 권장합니다. 성경을 검색하는 과정에서 이 장의 주제를 파악하고 이 구절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좋은 패턴을 발견했습니다. 사실 핵심과 주제를 파악하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숙제입니다. 비참한 삶이든 혼돈의 삶이든 내가 보는 비극은 기본적으로 초점을 잡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에서 비롯됩니다. 요점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비극입니다!
모두가 오늘 본문을 공부할 때 핵심 포인트에 집중하기 시작합니다. 요점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저자가 이 16장을 썼을 때 다른 사람들이 장을 어떻게 나누는지는 신경 쓰지 말자. 나중에 이야기하기 때문에 이 장을 쓸 때 마음속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당신이 에세이를 쓰지 않았거나 에세이를 쓸 수 없다면, 당신은 결코 임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쓴 사람들은 모두 언어의 행실이 매우 좋았고, 언어를 통달하더라도 하나의 의미를 표현하는 데는 능했고 무작위로 쓰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이 장의 요점은 무엇입니까? 내가 말하는데, 전체 장을 함께 묶으십시오. 함께 묶을 수 없다면 저자가 우리에게 말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저는 이 장의 주제를 하나님의 선택과 버림으로 정했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선택했다고 한다면, 주제는 하나님의 버리심과 택하심입니다. 전반부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신 것에 대해 말하고 후반부는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신 것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기록의 순서는 이러하나 기록된 순서와 같지 아니하여 다 먼저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택하였더라 하나님은 왜 사울을 버리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격려하기 위해 신학을 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당신이 주님을 믿는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당신도 성령을 받았고, 하나님께로부터 많은 은혜를 받아 사울이 된 것 같지 않습니까? 그건 비극이 아니야! ? 그것은 매우 슬픈 일입니다.
(1). 버리지 않도록 주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버림을 받는 것은 괴로움이니라 어떤 사람들은 내가 버려진 것을 보았고 할 일이없고 잘 산다고합니다. 나는 또한 설명할 것이 있습니다. 그는 결코 선택되지 않았습니다. 어떻게 그가 버림을 받을 수 있었습니까? 그러므로 운명이 있는 사람이 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영이 임하실 것이므로 이 일은 매우 치명적이다. 나 같은 사람이 귀신을 쫓아내고 귀신을 쫓아내고 귀신을 쫓아내고 다른 귀신에게 복종하는 자는 내가 버리거나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면 재앙이 되지 아니하리라고 생각하였느니라! 악마는 나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나는 단지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제 평생 동안 주님의 말씀을 지키게 해 주십시오.
중국의 예정신학은 기본적으로 하나님 말씀의 준수와 순종,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당신은 그것에 집착하거나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내가 순종하지 않을 이유가 있다고 말하는데 이유가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당신의 이유를 기름 토스트처럼 다루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논리 시스템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까? 기독교인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해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다 선택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그건 다른 문제이고 선택을 받는다면 비극이 될 것이다!
이 세상에는 불합리한 교리가 있습니다.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입니다. 나는 이 논리를 성경에서 찾을 수 없습니다. 사울이 구원받았다는 말씀이십니까? 어떤 사람들은 구원받았다고 합니다. 어떻게 알았어? 나는 이 사람들이 텍스트 읽기에 대한 좋은 훈련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초등학교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한 말이 조금 모욕적입니까? 하지만 정말 초등학교로 돌아가거나, 아니면 돌아가서 선별된 마오를 읽어야 합니다. 텍스트와 텍스트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분명히 넌센스.
사울은 구원을 받았지만 구원받지 못했다고 합시다.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사울이 인생의 큰 비극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왕이 아니어도 좋으나 일단 왕이 정신병에 걸리고, 목사가 아니어도 좋으나, 목사가 한 번 되면 우울증에 걸린다. 하나님께 택함을 받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것이 비극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한번 구원은 사울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광야에서 죽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죽임을 당한 자들인데 고라는 구원을 받았는가? 고라는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까? 고라, 다단, 아비람, 장로 250명 모두 하나님께 죽임을 당했는데 어떻게 구원받습니까? 영광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운명이 있는 사람이 되면 결국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자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해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사울과 같이 네게 거하시나니 그것이 무엇을 말하느냐 그것은 아무 것도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신의 선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택하신 후 다시 하나님께 버림을 받는 것은 참으로 비극입니다. 광야에서 죽는 자는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자들입니다. 그러니 오해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죽고 죽이고 짓밟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시다는 것을 차츰 알게 되었습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이 쳐서 죽임을 당하면 만 명이 넘는 사람이 쳐서 죽게 될 것입니다! 수만의. 그러므로 형제 자매들은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은 왜 사울을 버리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셨으나 하나님의 택함을 받지 아니하셨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알고 있습니까? 왜 또 싫어? 선택은 한 가지이며, 하나님은 사울 안에서 해야 할 모든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거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내리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기록될 정도로 그를 크게 감동시키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며, 하나님이 나에게 하셨다면 나는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아니, 그것이 하나님이 하신 전부입니다. 하지만 버려지는 걸 멈출 수 없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이 그에게 새 심장을 주고, 새 간을 주고, 새 신장, 새 폐를 주고, 심장, 간, 비장, 폐, 신장이 모두 바뀌더라도 마음의 가치는 여전히 거기에 있습니다.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드웨어는 변경될 수 있지만 소프트웨어는 어떻게 변경될 수 있습니까? 그렇다면 사울의 삶에서 하나님은 왜 그를 버리셨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일을 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하나님은 정말 평범한 일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예를 들어, 우리 인간은 하나님과 다른 각도에서 사물을 봅니다. 오늘 택함을 받은 다윗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그의 집안이 훈훈했습니다. 그는 몇 명의 아내와 결혼했습니까? 그는 처음에 아내와 결혼했고 나중에 나발의 아내인 아비가일과 결혼했습니다. 나발이 죽은 후 아비가일이 침상과 두루마리를 가지고 다윗에게 찾아왔습니다. 나는 당신과 결혼하고 싶고, 당신에게 의지할 것이고, 이 생에서 내 노년을 지탱하기 위해 당신에게 의지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것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은 그것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왜! 당신은 일부일처 여야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에 대해 관심이 없습니다.
신은 신경 쓰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많은 자매들이 마치 그녀가 다윗의 아내인 것처럼 그만두었습니다. 당신은 아직 다윗의 아내가 되지 않았습니다. 당신은 다윗의 아내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그러나 다윗에게는 사울에게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우리아를 죽이고 나중에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결혼했습니다. 밧세바가 낳은 첫째 아이가 죽고 둘째 아이의 이름은 솔로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이것은 놀랍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했을 때 선지자 나단은 다윗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찬찬히 읽어보면 하나님은 이런 것에는 관심이 없으시고 오직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네 주인의 집을 네게 주고 네 주인의 처들을 네 품에 두고 이스라엘과 유다 족속을 네게 맡겼느니라 만일 그것이 부족하였을것 같으면 내가 네게 이것 저것을 더 주었으리라.(사무엘하 12:8)
첫 번째 원인이: 하나님의 원수를 불쌍히 여기십시오
오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원수에게 자비를 베풀지 말라 그리하면 사울이 되리라 하나님은 사울이 아말렉을 다 멸할 정도로 아말렉을 미워하셨습니다. 노인이건 어린아이이건 가축이건 닭이건 생쥐이건 아끼지 않습니다. 그 결과 사울은 아말렉 왕 아각을 남겨두고 그를 죽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아각은 달란트임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으면 사울이 그에게 어떻게 하겠느냐? 그러나 재능 있는 사람도 머물지 못하는데 어떻게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릴 수 있겠습니까? 신의 원수를 불쌍히 여기지 마라! 농담이 아니라 정치범이다. 왕조나 세대를 막론하고 정치범인지 구별하는 것이 최선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 아각은 하나님 나라의 원수였습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는 줄로 여기지 말라 곧 사람을 긍휼히 여김이라 하지만 실상은 하나님의 원수를 긍휼히 여김이라
때로 우리는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불쌍하다고 생각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우리의 논리를 따르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아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습니다. 당신을 생각 나게하지 않은 나를 비난하지 마십시오. 나는 항상 조심하도록 스스로에게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을 나는 그들과 섞지 않습니다. 이 세대에 바리새인이 몇 명입니까? 바리새인들이 세례요한의 세례를 받으러 갔더니 세례요한이 뭐라고 했습니까? 2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세례 베푸는데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마태복음 3:7)
그리고 예수님은 전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물론 어떤 바리새인들은 생명의 길을 논하기 위해 밤에 몰래 예수님께 나아와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기셨고 예수님도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우리 형제자매들은 보살이 되고자 하면 살아 있는 보살이 되어야 하고, 기독교인이 되어 신의 선택을 받고자 하면 신의 원수와 신의 선택을 분별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모든 사람은 성경의 가르침을 잘 읽어야 합니다. 막내는 하나님께 속한 것 같습니까?
또 누구든지 제자의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낭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 10:42)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마태복음 25:45)
하나님의 집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막내로 종일 하나님을 훼방할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저주를 받아 하나님을 훼방하는 사람도 있지만 긍휼을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을 섬김이라고 합니까? 가난한 곳에 돈 던지기를 좋아하는 기독교인들도 있는데 언제 그런 짓을 하게 놔두셨나요? 이것을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과 순종이라고 합니다.
두 번째 원인이: 사람들에 대한 두려움이
모든 사람이 습관을 기르기 시작해야 목사든 크든 작든 조심해야 하고 위에 있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아래에 있는 것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이런 상황이 상당히 많은데, 제가 남을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라 이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교회의 담임목사는 아래 목사를 두려워하고, 아래 목사는 목사를 두려워하고, 목사는 셀 리더를 두려워하고, 셀 리더는 아래 교인을 두려워합니다. 이거 반대 아닌가요? 우리는 조정해야합니다.당신이 그룹 리더라면 목회자의 리더십에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하고 그 반대로하지 마십시오. 아래 사람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위 사람도 중요합니다. 우리가 섬길 때 아래 사람보다 위에 있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의 영으로 싸우며 이 평범한 사람들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나는 어제 기도하는 동안 신명기를 읽었고 매우 분명하게 말했습니다.
유사들을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새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치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낙성식을 행할까 하노라.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 과실을 먹을가 하노라. 여자와 약혼하고 그를 취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를 취할까 하노라 하고. 유사들은 오히려 또 백성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에 겁내는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떨어질까 하노라 하여.(신명기 20:5-8).
어떤 사람들은 누가 전쟁에 나갈 것인지 궁금해합니다. 사실 이 비겁한 사람들은 가면 안 되는데, 가면 문제가 생긴다. 그는 싸우자 마자 도망쳤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달렸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쓰레기이고 쓸모가 없습니다. 신은 그가 머물게 놔두라고 말했다. 전쟁은 사람의 수를 신경 쓰지 않는다. 사람이 많을수록 전쟁은 더 나빠질 것이다. 우리는 백성을 두려워해서는 안 됨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싸우는 것은 백성이 아니라 주 하나님의 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사울은 백성이 너무 두려워 사무엘을 죽이고 싶어했습니다. 그 위에 사무엘이 있으니 감히 사무엘을 대하되 감히 아래 백성을 대하지 못하였으니 그가 마음이 상하였으리라 어찌 하나님께 버림을 받지 아니하겠느냐 사무엘이 날마다 슬퍼하는 것은 사무엘을 죽이고 싶었기 때문이 아니라 머지않아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귀신이 들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사무엘은 선지자로서 사울이 부패하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바라보았고 마음이 불안했습니다.
왕 사울이 하늘에서 내려온 파이를 맞았는데 그가 왕위를 중히 여기고 있는 줄을 누가 알았겠느냐 사실 하나님보다 보좌가 더 중요하겠느냐 나는 단지 당신을 요점으로 인도하고 싶습니다. 인간의 삶의 주요 포인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보좌는 하늘에서 내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것인데 왜 스스로 해야 합니까? 가끔은 스스로를 위로해야 하고, 노자처럼 하고 싶다. 그렇지 않으면 고통을 지켜봐야 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자신의 지위를 어떤 식으로든 소중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지위는 하늘에서 내려 우리에게 떨어지는 파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 외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아래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사람이 있으면 교회는 계속 전진할 것이다 게다가 사람은 하나님이 더하신 것이 아니냐?
교회 문제에 대한 나의 연구 결과는 보통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습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아무도 그것을 할 수 없다고 걱정하지만 교회에 나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모르고, 더 나쁘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못하는데, 저를 따라 잘 하시면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함께 건설하겠습니다. 당신이 원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저는 교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 상관하지 않습니다. 이 문제를 조사한 후, 나는 성경에 나오는 베드로와 야고보가 교회에 있는 사람들의 수를 너무 염려하여 모든 바리새인들을 교회에 두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모두 교회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바리새인들을 따라가서 할례를 강요하기 시작했고, 그들은 남성의 성기를 수술하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 바울의 삶은 할례와 무할례와 할례를 반대하여 목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요점이 아니라 요점은 하나님의 원수를 결코 동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론 너희가 바울과 같이 교회를 건축하기 시작할 때에는 그 지위가 그리 견고하지 못하였느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베드로와 예루살렘에 있는 야고보가 만일 면직되면 권세가 있고 권세가 있기에 안도한다고 하였느니라 교회에 미치는 영향력. 그러나 바울은 지혜로웠고 다른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예루살렘에 갔고 그들은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는 유대인에게 가고 바울은 이방인에게 갔고 나중에는 이방인의 교회에서 바울이 나아졌습니다. 베드로와 야고보는 무릎에 굳은살이 몇 개 있는 것 외에는 아무 일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그들은 전체 바리새인들을 위해 헌신했고, 큰 할례를 하려고 사방에 다녔습니다. 오늘 우리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순종하지 않는 것은 비극입니다.
3. 버림받은 결과
하나님께 버림을 받은 후에 주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귀신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와서 그를 교란케 하였더라 앗~ 정신병자라 많이 불편해 보이네요. 나는 이생에서 감격으로 탄식하는데 하나님을 섬기려면 버림받아서는 안 되고, 하나님께 버림을 받으면 정신병을 앓게 될 것입니다.
제가 아는 목사님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 목사님은 나중에 우울증을 앓으셨고 항우울제를 먹었고 복용 후 괜찮아졌습니다. 어떻게 우울증에 걸렸습니까? 생각해보면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마귀가 와서 사이코패스가 된 것입니다. 사울 아닌가요? 오늘 목사님이 정신병에 걸리면 같은 원리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겠습니다. 기억하기 귀찮다.
초기에는 우리가 교회를 짓는 것이 쉽지 않았고 새끼 고양이가 두세 마리 밖에 없었습니다. 새끼 고양이는 두세 마리뿐이었고 사제가 한 마리를 노렸습니다. 그 새끼 고양이는 그 목사님과 뜨거운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교회에 맞았습니다. 목사는 말했다: Liu 목사의 세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세례에 대한 지식이 있습니까? 침례는 여전히 유효합니까? 성경에서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 결과 이 부부는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두 마리로 변해 두 마리가 목사 곁으로 갔다.
그들이 그 목사님을 찾아가는 것을 생각하니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나에게 매우 은혜롭다고 말합니다. 이 두 고양이는 그들의 교회에서 두 마리의 호랑이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교인 수가 줄어들었고, 몇 년 만에 교회가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그래도 사람 수를 신경쓰면 사람을 파야 하고, 결과적으로 쓰레기를 파게 되는데, 이 쓰레기가 교회를 더럽힐 것입니다. 그 부부는 전임 동역자들에게 빠져들었고, 그들은 교회에서 쫓겨났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결과이며 비극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 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를 썩게 하느냐? 모두가 이것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그들이 나중에 돌아왔을 때 그들은 우리 사이에 와서 다시 검사했습니다. 생각해보니 여기서 뭐해? 결국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기억하다! 하나님의 영이 떠날 때 귀신은 여호와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이거 이해해?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영이나 마귀의 영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마귀의 영이 없으면 하나님도 마귀의 영을 보내십니다.
당신은 이것이 치명적이라고 말합니다!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는 사무엘은 무력합니다. 그는 이 사울이 부패에 빠지는 것을 무력하게 지켜보았다. 이번 생에 살겠다고 하거나 집에서 당나귀를 찾아보고, 항상 당나귀를 찾고, 평생 당나귀를 찾아도 괜찮다! 당신은 평생 동안 당나귀를 찾고 있지만 그는 이렇지 않을 것입니다. 찾을 수 있거나 찾을 수 없으며 찾을 수 없는 경우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하나님에 의해 이스라엘의 왕으로 선택되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하나님의 영을 빼앗았습니다. 당신은 이것이 비극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경우에도 운명 외에는 축복이 없음을 압니다. 운명은 한번 정해놓고 지키지 않으면 비극이 된다. 좋은 손은 엉성하다!
나중에 과거 요약에서 한 가지를 발견했는데, 많은 은사교회 목회자들이 비극적으로 끝난다. 이게 뭐지? 반드시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나중에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분명히 알고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약간의 윤곽과 느낌을 관찰한 것 같습니다. 귀머거리가 듣게 하고 소경이 보는 것을 진정으로 보게 될 이 사람들, 그들 위에 있는 하나님의 영입니다. 많은 은사주의 목회자들이 이런 일을 했고, 많은 목회자들이 멍하니 그만두었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겠어? 나중에는 그 사람 전체의 상황이 매우 이상했고, 기이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생각하면 이 구절을 읽을 때 나는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영을 얻었고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임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우리를 선택하도록 우리에게 운명과 기름 부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하나님의 안수를 잃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이 떠나가는 비극적인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이 사울은 거의 10년 또는 20년 동안 여전히 이스라엘의 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울이 이런 일을 행하는 과정에서 하나님이 그를 버리시고 하나님의 영이 떠나실 때까지 하나님의 영이 여전히 그 위에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영의 내주라고도 합니다. 나는 당신이 안에 사는 것이 유용합니까? 안에 사는 것은 소용이 없습니다. 내주하는 것도 사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의 원수에게 동정을 표하고, 백성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지위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것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사람 안에 거하시고 사람이 아직도 이런 일을 행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사울 안에 거하신다는 말씀입니까? 별로 유용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날 우리는 중요한 것이 한 가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순종하는 것과 우리의 이해로 하나님을 온전히 아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운명을 잡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볼 때까지 운명을 지키십시오. 이미 얻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 중국 운명신학의 특징이다. 좋은 손을 망치지 마십시오. 당신이 나쁜 손을 그리고 그것을 부수면 아무도 당신의 나쁜 손에 대해 당신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당신이 좋은 핸드를 가지고 있고 당신이 나쁘게 플레이하게 된다면 그것은 농담입니다. 이것이 비극이 아니라는 말씀이십니까?
4.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때가 되면 회개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하나님은 그에게 여러 해 동안 회개할 기회를 주셨고, 사실 다윗을 선택하더라도 회개할 기회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쯤이면 사울이 통제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는 언젠가부터 마귀와 아주 하나가 되었습니다. 생각, 생각, 일을 하는 방식, 종교의 외양을 제외하고는 영적인 실체가 전혀 없는 모든 것입니다. 그것은 마귀의 마음, 생각하는 방법, 이성적인 방법과 매우 일치합니다. 하나님께서 몇 년 동안 회개하도록 내버려 두셨지만 마음에 마음이 꽉 차서 회개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알기를 바라는 강한 소망이 있습니다. 때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일과 과업이 불가능하고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은 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기만 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할 수 있다고 하시면 잘 하고, 할 수 없다고 하시면 하지 마십시오. 사람이 마음에 정해진 것이 있고 그것을 계속 주장한다면 그것은 참으로 비극입니다.
내가 오늘도 당신을 목양하는 한, 나는 분명히 여기에서 사람들을 끌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사무엘이 아직 살아 있는데 사울이 사무엘과 상의할 필요가 없습니까? 신이 나를 버렸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니요, 사울에게는 자신만의 것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늙고 혼란스러워서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생각하고 마지막 말을 합니다!
- 하나님께서 다윗을 선택하셨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택하신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때로는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이새의 집으로 보내시고 그에게 기름을 부을 사람을 택하셨습니다.
사무엘이 말했다: 내가 어떻게 갈 수 있습니까? 사울이 들으면 나를 죽일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송아지를 잡고 이르기를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 하라 (사무엘상 16:2)
우리 하나님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하나님은 사무엘을 가장하여 송아지를 이새의 집으로 인도하여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너무 좋으셔서 사무엘의 어려움을 이해하지 못하십니다. 사무엘아, 왜 믿음이 없느냐? 과감하게 가세요, 멋진 팡파르와 함께 가세요! 그것을 종교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은 이새에게 희생된 고기를 먹도록 초대할 것이고,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보여 줄 것입니다. 너는 내가 너를 가리키는 사람에게 기름을 부을지니라. (사무엘상 16:3)
이새의 집에 도착한 후 모든 사람들은 사무엘이 사울이 자기를 죽일 것을 알고 걱정했습니다.사실 그는 모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가로되 나는 평안히 오신 여호와께 드리는 예물입니다. 자신을 깨끗이 하고 나와 함께 제물을 먹으십시오. 사무엘은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거룩하게 구별하고 제물을 먹게 하였다. (사무엘상 16:5)
말도 안되는 소리 아닙니까?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하며, 이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라고도 합니다! 어리석지 마십시오.
그들이 올 때에 사무엘이 엘리압을 보고 심중에 이르되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그 앞에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그를 택하지 아니하리니 여호와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느니라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여호와는 보심이니라 마음." 이새가 아비나답에게 사무엘을 지나치게 하였더니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도 그를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이새도 사마에게 사무엘을 지나치게 하였더니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도 그를 택하지 아니하셨느니라 이새가 일곱 아들을 다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더니 사무엘이 이르되 이 중에서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가 없느니라. (사무엘상 16:6-10)
제사를 드린 후 사무엘은 왕이 될 사람을 뽑기 위해 이새의 집에 갔는데 이새의 장남은 잘생기고 키도 크고 재능이 있었습니다. 사무엘은 자신이 찾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아니라고 하셔서 이전에 사울을 잘생긴 남자로 선택했지만 이번에는 바꾸었습니다. 그 시대에는 가오슈아이푸가 선택되었고, 이 시대에는 샤오선러우가 선택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소녀들은 키가 크든 잘생겼든 상관없이 가장 중요한 것은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소녀들의 두뇌도 외모가 아니라 내면의 의미를 보는 똑똑해졌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보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시고 하나님은 마음을 보시고 하나님은 주로 금의 내용을 보십니다. 일곱 아들 이후에 하나님은 그를 택하지 않으시고 마침내 잘생긴 다윗을 택하셨습니다. 화장 좀 하면 여자보다 더 이쁠거야, 굿! 일반적으로 가족 중 누구도 그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그보다 더 잘 생기고 잘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다윗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그는 자기에게 양떼를 치는 것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나를 놓아주고, 나는 갈 것이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그는 대답했습니다. 작고 지금은 양치기 양이 있습니다. 사무엘이 이새에게 이르되 사람을 보내어 그를 부르라 그가 오지 아니하면 우리가 식탁에 앉지 아니하리라 (사무엘상 16:11)
사무엘은 "네 어린 아들이 돌아오지 않으면 우리도 먹지 말고 돌아오기만 기다리겠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그를 싫어했지만, 형도 그를 싫어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하나님은 이것을 원하십니다.
제시가 그를 보냈다. 그의 얼굴은 새빨갛고 눈은 잘생겼고 이목은 잘생겼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그니 일어나 그에게 기름을 부으라 (사무엘상 16:12)
큰 마음이 강하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는 그들을 보았지만 그들은 훨씬 더 크고 작습니다. 키는 1.9m이지만 심장은 참깨 녹두만큼 크다. 그래서 사람을 볼 때 외모를 보지 말고 금의 내용을 봐야 합니다. 다윗은 내면이 매우 강했고 그가 얼마나 강한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의 형들이 그를 통제하고 그가 양 떼에 가도록 내버려 둘 수 있지만 그는 말을 아주 잘합니다.
소년 중 한사람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베들레헴 사람 이새의 아들을 본즉 탈 줄을 알고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이다.(사무엘상 16:18) )
다윗은 소심할 뿐만 아니라 말을 하는 것이 부적절하고 부적절했던 어떤 사람들과 달리 적절한 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다윗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잘 생각해 보십시오 다윗의 성품은 대단합니다 어려서부터 말을 잘 하고 일을 처리하는 다윗의 성품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분인 것 같습니다 사람은 겉을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사울을 왕으로 세우실 때 다윗에게 직접 갈 수 밖에 없었습니까? 그때에 하나님이 다윗을 찾는 것은 정말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생각할 것입니다: 맙소사! 이거 뚝배기 버리는거 아님? 당신은 왕을 원한다는 이유로 우리를 싫어합니다! 그런 다음 우리의 왕이 될 털 많은 아이를 찾으십시오. 당신은 잘 생긴 외모를 가진 사람을 찾고 있지만 그것은 너무 크림,이 작은 신선한 고기는 너무 신선합니다! 아니! 사람들이 사울의 키가 큰 노인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당시 다윗은 아직 어렸고 다른 다윗들도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신은 인간의 입을 막으려 하고 있다, 그렇지? 사울의 상태는 매우 좋고 그의 아들 요나단은 매우 훌륭하고 그 자신도 매우 잘 생기고 여전히 키가 매우 큽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사울처럼 작은 눈은 키가 큰 사람에 반비례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다윗의 선택은 흥미롭고 그 전체 과정은 매우 극적입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택하신 후 성령이 다윗에게 임했습니다.
6. 다윗에게 임한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영이 다윗에게 임했을 때 그는 성령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두 가지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기름을 부어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연고를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도 향수나 참기름 같은 것이겠죠? 그리고 그것을 다윗의 머리에 부으니 온 사람이 향기로 가득 찼습니다. 이때 성령이 그에게 임했습니다. 놀랍다! 많은 사람들은 기름 부음이 마법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기름 부음은 약속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택하시고 기름을 부어 세우셨습니다. 중국에서는 교회가 안수를 받으면 운명이다. 그러자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여 감동하셨습니다.
이번에는 기름부음이 무엇인지 다들 아시죠? 앞으로 사람들은 기름부음에 대해 이야기 할 것입니다. 그것을 아주 기적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기름 부음은 운명 또는 임명입니다. 당신에게 기름을 바르고, 임명하고,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하라고 하시는 일을 하십시오. 나는 생각했다: 신은 중국 운명 신학을 창조하기 위해 나를 선택했고, 그리고 나서 "그"가 내가 하기를 원하는 일을 하게 놔두었다. 하나님의 영이 다윗에게 내리자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재미있습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글을 잘 읽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어떤 사람들은 다윗이 바이올린을 연주하자 마자 달려갔다고 생각하고 바이올린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전면에 기름 부음이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그들은 착각했습니다. 그가 치는 피아노가 더 중요하냐, 아니면 연주하는 사람이 더 중요하냐고 묻고 싶다. 물론 피아노 치는 사람도 중요합니다. 그 사람은 신의 영이 그에게 있어서 플레이할 때 신의 신이 그 위에 있고, 유령이 사울에게 있고, 정신 상태는 신의 영에 의해 억제될 것입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이것이 연결되어 하나님께 택함을 받으면 기름부음이 있고 운명이 있고 약속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영이 계시는데 이때 하나님의 영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당신은 빗자루를 가지고 당신의 가랑이 아래에, 심지어 해리 포터를 타고 있습니다. 신은 그것이 빗자루든 거문고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사람인 것 같아요.
그 사람에게는 이런 운명이 있고 그 뼈에 다윗의 성품이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다윗이 그 성품을 가졌을 때 능력이 심히 강하여 사울에게 수금을 치자 마귀가 쫓겨났습니다. 다들 천천히 이해하니 그런 것들에 속지 마세요. 일부 교회에는 전체 바이올린도 있습니다. 바이올린으로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사람이 나팔을 불면 나팔도 불고 불고 나서도 똑같지 않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깃발을 흔들며 소리칠 때, 그도 깃발을 흔들며 소리쳤고, 다른 사람들의 합창단 전체, 자신도 합창단 전체,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영이 그곳에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진정한 정의는 남의 말대로 팻말을 걸지 않는 것인데, 교회에 집사위원회가 있고 집사위원장이 있는가? 교회는 하나님의 영으로 운영되어야 합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영의 움직임이 있다면 그것을 교회라고 합니다. 두세 사람이 있어도 하나님의 영이 계시면 교회라고 합니다. 사울이 그러한 상황에 처했을 때 하나님의 영이 떠나가시고 마침내 다윗이 그를 위해 수금을 치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다윗은 하나님의 영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기본 개념이 명확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더 이상 형제자매들이 속지 않기를 바랍니다. 처음에 기름부음에 대해 들었을 때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라고 느꼈고, 고대 신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그것은 운명입니다.
형제 자매들은 이 세대에서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안수를 받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이해력으로 하나님을 어떻게 알든, 하나님의 말씀을 무엇으로 지키고 순종하기 시작하든, 무슨 일이 있어도 하나님이 세우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도록 하나님께 선택받았습니다. 나는 결국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지만 삶의 문제를 이해할 수 없었고,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지만 내 기독교인의 신분을 명확하게 볼 수 없었고, 하나님께 택함을 받았지만 내 위치를 알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니 와서 구름 속에서 이것을 보라
저는 생각했습니다. 우리 형제자매들이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얼마나 좋은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7. 결론
하나님이 너희를 택하셨은즉 그것을 굳게 잡고 이미 얻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오직 힘을 다하여 추구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세우신 기준을 향하여 달려가라. 물러서지 말고 가라앉아 가라앉아라 뛰는 것도 지칠 수 있지만 가라앉는 것은 더 피곤하다!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귀신이 함께 하는 요즘, 어떻게 살 것입니까? 나는 매우 감정적이다! 오늘날의 작은 신선한 고기, 크고 키가 큰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떤 종류의 잠재적 주식이나 금 함량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운명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는 것입니다. 다윗의 본을 따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일을 하십시오. 신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