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사람 시리즈(1):느헤미야!

1.서론

오늘은 여러분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러 왔습니다 누구의 이야기일까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성경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많고, 하나님을 화나게 하는 사람도 많은데, 오늘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알아야 할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미워하는지 모르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사람이 되는 것, 그것이 비극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고 싶은지 모두가 알아야 하고, 그 생활 방식이 옳지 않다면 생활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나중에 나는 기독교인이 어떻게 그렇게 이기적이 될 수 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일부 불신자들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오, 당신 그리스도인들은 이기적이며, 그러면 당신의 하나님은 선하지 않습니다. 내가 왜 그런 말을 했어? 사람들은 나에게 말했습니다: 죄를 지은 그리스도인들을 보십시오. 기도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즉시 당신은 용서를 받습니다. 그러면 그분은 다시 그렇게 하실 것이고, 그는 다시 죄를 지을 것이며, 그런 다음 그는 다시 나쁜 일을 하실 것입니다. 그는 끝났습니다, 신이시여,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 이 사람을 보라 그가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느니라 그의 삶이 더 쉬울 것 같으냐? 하나님도 모욕을 당하셨다고 느끼게 합니다. 사실 우리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를 때가 있는데, 이 사람과 잘 산다고 하고 나쁜 삶을 산다고 하면 차츰차츰 비교를 하다보면 생각: 아,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번 주부터 이번 주 남은 기간 동안 주제에 대해 이야기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이야기할 첫 번째 사람은 느헤미야입니다. 느헤미야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프레임워크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를 드리겠습니다. 혹시 잘 이해가 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오늘 저는 구약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우리에게 아주 좋은 거울이라는 생각을 드리고 싶습니다. 메모에 적어 주십시오. 구약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주 좋은 거울입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에서 우리는 이 하나님을 발견하게 될 것인데, 전쟁에서 지고 또 지고 또 지고 말았는데 정말 쉽지 않습니다.

역사적 개요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이스라엘 사람은 아마도 지구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 중 하나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이스라엘 사람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셨으니 이스라엘이 누구냐?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후손입니다. 다들 조상 아브라함을 존경하고, 아브라함이 '와~' 참 착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브라함의 길을 따르지 않았으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3,500년 전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나온 역사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결과 60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인도되어 나왔고 칼로 싸울 자는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왜요? 그들은 아브라함의 후손이지만 아브라함의 길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매우 흥미롭습니다. 저는 아브라함의 후손이지만 아브라함의 길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 결과 그 세대는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신이 실수했다고? 신이 틀렸고 옳았어, 그냥 내버려 두자. 이것을 거울로 생각합시다. 아! 그 세대의 모든 백성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되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아니하여 다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나는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살고 싶습니까? 그들과 같은 선택을 하고 싶습니까? 그들이 같은 선택을 한다면 광야에서 죽은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그 후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고 또 40년 후에 여호수아는 그들을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습니다.

이 이스라엘 사람들은 약속의 땅으로 인도된 후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보지 못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했습니다. 한동안 왕따를 당했다가 왕따가 끝난 뒤 "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우왕" 하고 외쳤다. 수십번의 노력 끝에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시작했는데 어떤 뇌를 말하는 겁니까? 하나님께로 돌이키면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구원받으면 선한 삶을 살다가 선한 삶을 하다가 하나님을 버리고 악한 삶을 살다가 다 계속 살았습니다. 이런 악순환에. 이 날들은 언제 지나갈까? 이스라엘에서 많은 선지자가 나왔습니다. 우리가 읽은 이사야서에 나오는 이사야와 예레미야는 그 당시의 선지자였으며, 열왕기에 나오는 엘리야와 엘리사를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경고하여 이들은 모두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요, 전에 본 적이 없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작은 삶을 살았고, 결국 하나님은 큰 일을 하셨습니다.

3,500년 전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났고, 2,600년 전 900년이 흘렀고, 900년이 지난 후에 이스라엘은 완전히 멸망했습니다. 나라의 토벌은 2,600년 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왜 죽었어요? 이래서 사람들은 항상 작은 삶을 살고 싶어하는구나 내가 방금 기도할 때 말했지? 사람들은 항상 더 나은 삶을 원하고 더 나은 삶을 원합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결과적으로 삶이 좋지 않습니다. 나는 항상 내 삶을 살고, 내 삶을 살고, 돈을 벌고, 내 삶을 살고, 더 많은 돈을 벌고, 그 강력한 사람들과 호의를 베풀고, 다른 사람들과 통혼하고, 장사를 하고, 돈을 벌고, 사람들은 이 구덩이에 빠진다. 갑자기. 사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구덩이에 한두 번 빠지지 않고 거의 항상 이 구덩이에 빠졌고, 매번 이 구덩이에 빠졌습니다. 그 결과 불과 2,600년 전 이스라엘이 멸망했습니다!

나라가 함락된 후 다윗이 세운 성전에 사용된 금은 수십, 수백 톤이었으며 금, 은, 동 기구는 모두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귀하고 영향력 있는 사람들도 바벨론으로 사로잡혔습니다. 그 중에 다니엘이라는 이름이 있었는데 다니엘은 정말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결과 이 ​​다니엘은 바벨론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이 아이는 매우 강력합니다! 이 다니엘서에 기록된 다니엘은 정말 놀랍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이 오래전에 계시를 받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어떤 계시입니까? 모두들 내 말을 들어야 한다 내가 이 역사에 대해 조금 말해줄게 나는 역사학자는 아니지만 이 문제의 내용을 알아야 혼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칠십 세가 되었을 때 다니엘이 바벨론에서 삼조 4대 총리를 지냈을 때 이 다니엘은 정말 강력했습니다! 4천왕의 총리를 연달아 하는 것은 1만 명 이하의 1인이다! 다니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기를 자주 기도했는데, 그 결과 2,600년 전에 멸망한 이스라엘 민족이 2,530년 만에 이루어졌습니다. 누가 의지를 가지고 있습니까? 황제의 칙령입니다. 황제는 칙령을 내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하라. 훌륭하다고요?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통제 아래 있습니다!

학개서에 기록된 스룹바벨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성경을 한 번 읽어보시면 낯설지 않으나 상관없으니 읽지 않으셨다면 제 말을 들으십시오. 이 스룹바벨은 큰 무리의 사람과 말, 심지어 바빌론 황제에게 사로잡혀 바빌론 제국으로 돌아온 사람들까지 데려왔습니다. 뭐하세요? 황제의 명으로 성전을 재건하고 신 중심의 삶을 회복하자 이 로바가 돌아왔다. 학개서를 읽다 보면 되돌아가는 것이 큰 팡파르임을 알게 되겠지만, 돌아간 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그들만의 삶을 살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사악한 길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동시대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를 일으키셨고 학개는 그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성전을 재건하라고 끊임없이 촉구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황폐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축복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곡식을 거둘 때 밭에 있을 때 열 통, 거둘 때 다섯 통, 추수할 때 세 통을 남길 수 있는데 이 이스라엘 사람들도 참 이상합니다.

하나님이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시기를 정하셨으니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자마자 땅과 재산을 사서 돈을 벌고 자기 생활을 하기 시작하니 이런 사람은 돈의 눈에 쉽게 빠지고, 사람이 영생을 잃기 쉬우니 스룹바벨과 당시 대제사장 여호수아를 비롯한 아브라함의 길을 따르는 것이 소망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데려오셨지만 결과적으로 사람들은 다시 돈의 눈에 빠지고 또 다시 소인의 삶에 빠졌습니다. 남편과 아내는 매우 사랑스럽게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성전을 청소할 시간이 있습니까? 집에서의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에요? 모든 일을 마친 후 스룹바벨 시대에 성전은 거의 회복되었다가 70년 후에는 완공되어 성전 전체가 다시 황폐해졌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아니면 너무 힘들고 작은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그 결과, 또 70년이 지난 후 스룹바벨은 헛된 일을 당했습니다! 그 결과 그 지방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유다가 멸망한 상태로 돌아갔다. 왜! 신은 힘든 일이고 신이 되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나는 우리 하나님을 동정한다! 내가 말했다, 하나님, 그것은 당신에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들을 한 번에 부숴 버려야한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들을 죽일 때까지 부수지 않았다면 마침내 그들이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정말 흥미 롭습니다. 이 사람을 보기 위해. 그 결과 하나님이 에스라라는 사람을 일으키셨으니 이 기간 동안에 하나님께서 모르드개라 하는 사람도 일으키셨으니 이는 에스더서에 기록된 바와 같으니 그 때에 이스라엘 지파가 곧 근절. 돌아온 자 중에 모르드개라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 모르드개와 저 모르드개가 같은 사람인지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조사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의 피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고, 그가 돌아왔을 때 그는 낭비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으로부터 다니엘의 세대까지, 칠십 년 후에 스룹바벨에 이르러 이스라엘 백성을 그들과 함께 데리고 돌아왔더라. 스룹바벨은 그곳에 성전을 지은 황제와 같이 그 곳의 총독이요 당의 신하요 변방의 신하였습니다.

그러나 칠십 년 후에 다시 황폐하여 에스라가 돌아갔으니 이는 이천 오백삼 년 전이었더라. 스룹바벨은 이천사백육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성경을 읽으셨다면 에스라와 말라기를 아실 것입니다. 칠십 년 후에 에스라와 말라기가 돌아갔더니 말라기가 학개와 같더라 각자의 소소한 나날만 바쁘고 그곳에 하나님의 성전을 두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돌아갔을 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황제의 칙령과 황제의 명령을 받고 돌아갔다. 당시 느헤미야는 황제의 편에 서 있는 중요한 신하였는데, 황제를 위해 술을 붓는 것이 단순히 황제를 위해 술을 붓는 것이 아니라 농담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포도주 청지기라고 하면 나가서 당의 책임자요 총독이 되십시오. 느헤미야는 하나니라는 사람을 보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상황을 보여 주십시오. 이 하나니가 돌아와서 느헤미야에게 말했습니다.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에루살렘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느 1:3).

느헤미야는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며 며칠 동안 슬퍼하며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이해하셨나요? 이 역사적 배경을 말씀드립니다. 결과적으로 그 이후에 일어난 일을 이야기 해 봅시다. 느헤미야는 성전과 하나님의 일과 하나님의 백성이 너무 지겨워 앉아서 울었습니다. 실은 궁에서 잘 지내다가 맛있는거 먹고, 맛있는거 마시고 싶었고, 황제 옆에는 바람과 바람, 비와 비였다. 농담이 아니라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2. 성경

아닥사스다와 이십년 니산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렀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이 없었더니.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러워하여. 왕게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업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부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 왕이 내게이르시되 그러면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시기로 내가 곧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왕에게 고하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고 종이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를 유다 땅 나의 열조의 묘실 있는 성읍에 보내어 그 성을 중건하게 하옵소서 하였는데. 그 때에 왕후도 왕의 곁에 앉았더라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몊날에 행할 길이며 어느 때에 돌아오겠느냐 하고 왕이 나를 보내기를 즐겨하시기로 내가 기한을 정하고. 내가 또 왕에게 아뢰되 왕이 만일 즐겨하시거들ㄴ 강 서편 총독들에게 내리시는 조서를 내게 주사 저희로 나를 용납하여 유다까지 통과하게 하시고. 또 왕의 삼림 감독 아삽에게 조서를 내리사 저로 전에 속한 영문의 문과 성곽과 나의 거할 집을 위하여 들보 재목을 주게 하옵소서 하매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워심으로 왕이 허락하고. 군대 장관과 마병을 보내어 나와 함께하게 하시기로 내가 강 서편에 있는 총독들에게 이르러 왕이 조서를 전하였더니. (느헤미야 2:1-9)

3. 기도

하나님! 오늘날 우리 형제 자매들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 하나님의 성전이 황폐해지는 것을 볼 때 우리 각자가 앉아서 울도록 합시다. 하나님! 저희에게 느헤미야의 마음을 주시어 하나님의 백성이 마귀에게 훼방을 받는 것과 이 시대 교회의 황폐함을 보게 하소서. 하나님! 우리를 일으키소서 느헤미야가 행한 것 같이 우리가 주의 앞에서 은혜를 입게 하소서 오늘 우리를 일으켜 세우고, 성전을 재건하고, 교회를 재건하고, 교회의 기초를 회복하십시오. 하나님! 오늘 우리의 모든 형제자매들이 그런 마음을 갖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4. 성경말씀의 배경

이 구절의 문맥은 느헤미야의 예루살렘 귀환입니다. 이것은 농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집은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황폐하고 성의 성문들은 무너졌으니 누가 그것을 멸하였느냐? 누군가가 그것을 파괴했음에 틀림없다! 이러면 그 동네 뱀들 사이가 좋지 않구나! 이 지역의 뱀이 어느 정도 섞여 있는지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산발랏이라는 사람과 도비야라는 사람이 있는데, 둘 다 지방의 강력한 세력입니다.

대제사장, 사원, 사원 관리인도 있습니다. 그 지방의 대제사장은 엘리아식이라 하였으며 엘리아십과 도비야는 둘 다 통혼하여 친족이요 둘 다 사위니라 가족관계란? 즉, 내 손자는 당신의 손녀와 결혼했고 그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느헤미야가 이 곳으로 다시 가는데, 농담이 아니라 약간의 지혜가 없이는 정말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결과 산발랏과 도비야는 느헤미야가 돌아간다는 것을 알았고 이 사람들이 느헤미야가 돌아온 것을 보고는 곤란할 것이었습니다. 느헤미야가 돌아오기 전에 에스라가 이곳에 십 년 넘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스라가 돌아와서 성경에 나오는 통혼을 반대하였으나 능히 감당치 못하였으니 이 지방 뱀과 대제사장을 대적할 수 없었으니 이는 대제사장에게 지역에서 훌륭한 위치. 그들은 왜 결혼합니까? 그저 살기 위해서, 돈을 위해서, 그는 한 파티의 지배자가 되었다.

느헤미야가 돌아오자 마자 이 사람들이 어느 날은 위협하고 다음 날은 위협할 것이며 나중에 잔치를 베풀고 그 지역 유대인들이 그들과 합류할 것입니다. 이 작품을 어떻게 말합니까? 느헤미야의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무엇이든지 폐허가 되는 데는 이유가 있는데 오늘날 교회가 폐허가 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까? 이유는 동일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먼저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 인간과 신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들이 보기에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괴로운 일인가! 그 결과 느헤미야는 매우 유능했는데 어느 정도 할 수 있었습니까? 그는 오십이 일 만에 성벽을 회복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조직하고 성벽을 나누어 오십이 일 만에 완성했습니다.

이 오십이 일 동안 느헤미야가 얼마나 많은 일을 겪었는지 아십니까? 그 사람들이 성벽을 쌓으려는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이 그들의 재산을 막지 않았습니까? 산발랏과 도비야와 이 백성들이 이 부를 보면 멸망하리라! 어떤 돈인지 아세요? 도시에서 사업을 하면 그 사업이 독점입니다. 느헤미야가 성을 쌓기 위해 왔으나 그들이 성을 헐었습니다. 당신이 그것을 지을 수 있습니까? 그들은 단지 사람들을 괴롭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합니다. 이 괴롭힘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일반 사람들은 좋은 삶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무도 가족을 화나게 할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산발랏과 도비야를 노엽게 하는 자는 여기서 죽고 대제사장 도비아를 노엽게 하는 자는 너희가 마시게 하리라

하나님이 어떻게 느끼실지 생각해 보십시오. 물론 아프다. 예수님 당시의 대제사장들은 별로 좋지 않은 사람들이었으며 모두 정치인이었습니다. 정치인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당신과 섹스하고 싶어하는지,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들은 케이크를 옮겼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이스라엘 땅, 가나안 땅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런! 그들은 단지 편지를 썼고, 많은 사람들이 편지를 썼고, 산발랏과 도비야가 편지를 썼고, 많은 유대인들도 도비야에 대해 좋은 말을 했습니다. 모두 엉망이었습니다. 이 유대인을 포함하여 그들은 모두 느헤미야가 반역할 것이라고 느헤미야를 위협하는 편지를 쓰기 위해 그들과 합류했습니다. 성벽을 쌓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한 파티의 왕이 되고 싶을 뿐입니다! 소문이 무서웠지만 느헤미야는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5. 성전이 황폐해진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성전이 황폐해지기 시작했는지 모두가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방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장사를 하고, 서민들은 살기 위해 장사를 하고 각자의 방식이 있다. 절? 성전은 무엇입니까? 스룹바벨이 돌아왔는데 성전도 새처럼 보이지 않았습니까? 결국 원하는 만큼 살 수 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번거로운 일입니까! 초막절과 오순절과 유월절과 제사를 드리며 제사를 드리는 것은 다윗과 같이 하며 날마다 어린양을 드리며 성전에서 노래하며 일하지 아니하는데 어찌 너희가 어찌 먹느냐 사람들의 생각을 보면 오늘날과 비슷합니다. 오늘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음식으로 먹을 수 있습니까?

나중에 모두에게 말했어요.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하면 어떤 사람들은 당신을 Da Xian'er라고 부를 것입니다! 가족들이 당신을 대단한 요정이라고 생각해도 그냥 이대로 살면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님의 논리 체계가 사람의 논리 체계와 조화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 논리 시스템은 정치적, 경제적 목적을 위한 것입니다. 정치적인 것은 장소를 다스리고 통제하는 방법이고, 경제적인 것은 돈을 버는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예로부터 사람들이 돈을 보고 있었다면 그것은 비극이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의 이기적인 마음은 예로부터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시스템을 시도한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 세대는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를 보지 않았습니까? 어떻게 분해되었습니까? 누구에게나 이기적인 마음이 있습니다. 아이디어는 좋고 공산주의의 희망은 매우 좋지만 사람들은 협력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논리 체계는 참 좋은데 하나님을 잘 섬기고 성전이 잘되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되고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농사를 지으면 땅이 복되고 장사를 하면 복이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축복해야 할지. 그러나 문제는 사람들이 이것을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나는 단지 생각했다: 식사로 그것을 먹을 수 있는가?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은 살아 있는 동안 집을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사원, 그 직업, 누가 하고 싶은지! 어쨌든 저에게는 상관없어요, 저는 아직 집에 많이 있고, 아내와 아이들이 먹어야 해요. 그러므로 예로부터 사람들의 이기심이 해결되지 않았으며,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그는 총독이었고 명령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뜻을 만족시키기 위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놀라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면 기본적으로 아무도 당신을 저항할 수 없습니다. 과감하게 해! 결국 느헤미야가 해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끝났고, 그가 황폐하고 완성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왜요? 즉, 고대부터 아무도 사람들의 이기심을 다룰 수 없었습니다. 오늘 다시 도전해 보았는데, 모든 사람의 이기심의 뿌리를 없애고 작은 삶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추진하는 다양한 활동을 보면 하나님의 성전이 황폐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추진하고 있습니까? 생활밀집, 가족밀집, 행복그룹, 그런 것들을 많이 밀고 나가세요. 나는 이것에 반대할 자격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방법입니다! 사람의 뜻을 생각하면 어찌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하겠느냐?

황폐한 하나님의 성전은 구약에서는 그러하지만 신약에서는 그렇지 않습니까? 신약시대 후반에 이르러 교회는 정치에 관여하게 되었고, 교회와 정치는 이미 연결되어 있었다. 그럼 안좋아! 결국 모든 일이 끝난 후 교회는 하나님을 소독하고, 하나님을 추방하고, 귀신을 불러들였습니다. 고대부터 신약 시대에도, 구약 시대에도 성전은 이렇게 황폐했습니다.

그럼 오늘부터 우리 마음에 조금이라도 열심을 품고 하나님을 열심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전의 황폐함을 듣고 앉아서 울었습니다.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교회가 황폐하다는 말을 듣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그러나 황폐한지 아닌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를 가려내는 환경을 조성했을 뿐이며, 느헤미야는 그 시대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보다 백 년 가까이 앞서 있던 다니엘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가 묻노니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들이 선한가? 당연하지! 다니엘이 바벨론 제국, 바사 제국, 삼조 4대 황제가 된 총리가 된 것은 평생 하나님의 기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형제자매 여러분,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자신에게 잘 물어보세요! 중국의 운명신학은 하나님의 성전과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열심으로 헌신하는 사람은 누구나 복을 받는다는 한 가지 요점을 요약합니다. 운명 외의 축복은 없다, 그렇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느헤미야는 이 세대에 하나님의 양육을 받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6. 하나님은 운명을 기뻐하신다

운명이 있는 사람에게는 목표가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목표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벽을 쌓고, 하나님의 성전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예배를 회복하고,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축복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사실 느헤미야는 왕궁에서 잘 살았습니다. 그는 문제를 찾고 있지 않습니까? 할 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그의 삶의 목적이다. 당신은 그것을 상상할 수 있습니까? 느헤미야는 바벨론의 수도인 수산이라는 도시에 있었고, 황제의 편에 서서 황제의 뒤를 이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섞일 수 있습니까?

느헤미야가 어렸을 때에는 그가 어떻게 자랐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가 갑자기 하나님께 열심을 낸 것은 이 날이 아니요, 이 날에 그가 갑자기 하나님의 성전을 염려한 것도 아니요 , 아니요. "구약"으로 돌아가서 보면 하루아침에 안바꾸는 사람도 많은데 어려서부터 이런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솔로몬은 다윗이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의 성전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그의 아버지 다윗을 이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지요? 하나님도 솔로몬과 함께 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위를 이어받았을 때 그가 가장 먼저 구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지혜롭게 다스리는 방법,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모두 운명입니다!

가끔은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왜 어려운가요? 사람들이 운명을 선택하는 이유는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도 가끔은 정말 불분명할 때가 있는데 왜 사람들은 이런 선택을 하는 걸까. 느헤미야는 자랄 때 스룹바벨이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 다시 돌아올 것임을 알았습니다. 에스라 시대에 그는 다시 건축하기 위해 돌아갔습니다. 그는 느헤미야에게 다가갔을 때 그것에 대해 매우 걱정했습니다. 그가 왜 이것을 신경 쓰는지 아무도 말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선택입니다. 사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영원한 축복을 추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동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시지만 사람은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 중에는 하나님의 진노를 표현하는 그릇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하는 그릇을 선택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때때로 이 물건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우리 자매 중 한 명이 지난 몇 년 동안 할머니, 조부모님 덕분에 축복을 받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앓던 병은 영계에서 많은 것을 볼 수 있었고, 봉사를 하자마자 온 가족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가족인 이모와 이모들은 많은 경험을 자신의 눈으로 보았지만 이것이 위대한 요정이라고 느낍니다. 너무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데 왜 그런 생각이 들까요? 인생에는 아마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영원한 것에만 관심이 있고 어떤 사람은 삶의 것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그녀의 친척인 암으로 충분합니다. 다른 친척의 남편이 암에 걸렸습니다. 맙소사, 다 이런거야!

그래서 저주 아래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모두가 압니다! 저는 오늘 제 형제 자매들이 한 가지를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운명 외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운명이 정해지지 않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시고 자기가 왜 사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 안수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느헤미야는 어렸을 때부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것 같아요.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성전을 재건할 기회는 없었지만 걱정이 많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그를 한 단계 더 높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운명이 있는 자를 기뻐하신다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그 결과 그는 특히 황제 앞에서 은총을 받았습니다! 황제는 자기가 왜 자기를 좋아하는지 몰라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황제를 기쁘게 할 수 있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황제가 느헤미야를 생각하는 것처럼 그는 느헤미야를 좋은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를 "두꺼비와 녹두가 만나 눈이다"라고 한다. 무엇을 보든 기분이 좋고, 무엇을 보든 좋아하고, 무엇을 보든 눈을 즐겁게 하고, 어쩔 수 없습니다.

황제는 느헤미야를 잘 보았을 뿐만 아니라 왕비도 느헤미야를 잘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그 황제를 다스리지 못하셨습니까? 하나님은 황제가 당신을 좋아하기를 원하시고 당신이 무엇을 하든지 당신을 좋아하십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형제자매들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운명의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성전이 황폐하다는 말을 듣고 왕 앞에서 울었습니다. 왕 앞에서 나쁜 얼굴? 이 느헤미야가 포도주를 가져다가 왕에게로 가져다가 가로되 내가 왕 앞에서 근심한 적이 없나이다. 마침내 왕이 그에게 이르되 너는 병이 없는데 어찌하여 슬퍼하느냐 Wang이 이 주제를 제기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 왕게 대답하되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열조의 묘실 잇는 성읍이 이제까지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사오니 내가 어찌 얼굴에 수색이 없사오리이까.(느헤미야 2:2-3)

왕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의 걱정은 내 것이며, 나는 당신이 그 문제를 해결하도록 확실히 도울 수 있습니다. 이 마지막 문장은 내가 말한 것입니다. 느헤미야의 조상들이 있던 곳이 황제의 소관이었음을 모든 사람이 알아야 합니다. 황제가 다스리던 도시의 문이 어떻게 불타버릴 수 있었습니까? 이것은 어떻게 관리됩니까? 10년도 더 전에 내가 에즈라를 돌려보냈지 않습니까? 에스라는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었습니까? 황제도 이 점을 염두에 두었다. 이 황제가 아주 영적인 사람이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이 황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그는 얼마나 영적인가? 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매우 강력하다고 느꼈다.바벨론 제국이 페르시아 제국에 들어왔을 때 다니엘의 좋은 친구 세 명을 포함하여 모두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전했다. 너무 멋져! 다니엘이 사자굴에 던져진 것과 하나님이 그를 구원하신 것, 후에 고레스 왕이 스룹바벨을 보내어 성전을 건축하게 하였으므로 바사 제국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공경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에즈라를 돌려보냈고, 이것이 내 관심사이기도 합니다! 그 결과 왕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원하십니까? 돌아가려 했으나 왕의 명령을 받고 돌아갔다. 그래서 운명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7. 하나님은 담대한 자를 기뻐하신다

겁쟁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변해야 한다. 아무리 소심해도 변해야 하고 삶과 죽음도 변해야 한다. 비겁한 사람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하나님도 사용하실 수 없습니다. 항상 두려워, 항상 두려워. 모든 것을 두려워하는 신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습니까? 이 얼마나 대담한 일입니까?
이 산발랏, 도비야, 게셈은 항상 느헤미야에게 모자를 썼습니다. 왕을 배신할 것인가? 이것은 말하기 끔찍하게 들립니다! 이 소문은 놀랍습니다. 한두 번이 아니라, 그가 지역 폭군과 사악한 젠트리와 싸우고 싶어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냥 할 수 있습니다.

그냥 하나님의 뜻대로 걷고 싶고, 성벽을 쌓고 싶고, 여기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분위기를 회복하고 싶고, 이곳을 회복하고 싶고, 성전과 같아야 합니다!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사람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고 어떻게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까? 사람들을 불쾌하게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이 산발랏, 도비야는 그 지방 유다와 결탁했고, 그것은 무서웠습니다.

이는 저희가 다 우리를 두럽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저희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정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저가 이르기를 저희가 너를 죽이러 올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있고 그 문을 닫자 저희가 필연 밤에 외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 내가 이르기르 ㄹ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봊존 하겠느내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때달은즉 저는 하나님의 보내신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에언을 함이라. 저희가 뇌물을 준 까달은 나를 두럽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무릇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의 소위를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느헤미야 6:9-14)

봤어? 이 환경에서. 곳곳에 지뢰가 있다. 지역 예언자들, 죽은 깡패들, 이 지역 사람들, 다른 소위 예언자들은 그들의 삶을 사는 사람들, 어떤 예언자들입니까? 그들은 모두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배짱이 없으면 예언자다! 예언자들은 당신이 이것을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이것을 하고 싶습니까? 두렵지 않으세요?

어제는 이 동역자들에게, 오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동료가 말했습니다. "선생님,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십시오." 듣고 나서 흥미롭게 봤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이 배짱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담대하냐 못하냐고 물어봐야 하나님의 말씀을 안 믿으면 참으로 용감하지 않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는 죽을 수 없습니다. 이 시대에 사람들에게 하루 종일 이것 저것을 말해야 해도 상관 없습니다. 이 세대의 형제자매들은 이런 식으로 이 많은 사람들이 마귀에게 사신 바 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왜요? 그들은 하나님의 집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뜻 곧 사는 것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형제자매들은 너무 과감하지 않지만 하나님을 잘 믿으면 큰 용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사람을 기쁘게 해 드려야 했는데 지금은 하나님만 기쁘게 하면 됩니다. 예전에는 이것으로도 부족했고, 저것도 만족하지 못했는데, 결국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라고 말씀드립니다! 죽을 운명의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죽자! 그래서 알아? 귀신이 왜 내 앞에 누워있지? 단지 대담하기 때문입니다.

이 늙은 말은 굉장합니다! 즉, 인생 뒤에는 오래된 말이 있습니다. 돈 버는 것, 사는 것, 육신을 돌보는 것, 세상을 사랑하는 것은 모두 늙은 말의 몫이다. 어느 날, 늙은 말이 나에게 말했습니다. 사실, 제가 말씀드리자면 저는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전투에서 패배한 적이 없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그는 당신이 그것을 가져 갔기 때문에 내가 졌다고 말했다.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살기 위해 그토록 애쓰면 어떻게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내 비밀은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살고 싶지 않아, 나는 일찍 죽을 것이다. 그러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영원 속에 사는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더욱이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었으니 무엇을 두려워하리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오늘날 우리 가운데 있는 형제 자매 여러분, 저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당신이 이 병을 고치고 저 병을 고친다면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야 합니다. 나는 당신이 이 호의를 지불할 필요가 없습니다. 선택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을 선택하십시오! 운명의 사람을 선택하십시오! 하나님을 위해 사는 용감한 사람을 선택하십시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소심했습니다. 그럼 대담하지 않겠어? 그러므로 성경에는 마음이 약한 자들의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두려워하면 불못에 던지우리라 당신은 하나님과 헤어질 자격이 없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대담한 사람 만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삶과 죽음을 꿰뚫어보고 나처럼 살다 지치면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한다! 오래된, 아주 좋은!

8. 하나님은 실제적인 일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신다

하나님이 실제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신다는 것은 흥미롭습니다. 이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밤에 성벽을 점검하러 갔습니다. 느헤미야의 프로젝트 관리는 최고 수준입니다. 그는 프로젝트 관리가 작업을 할당하는 방법, 구축 방법 및 수행 방법에 대해 매우 명확합니다. 그가 왕 앞에서 술 맡은 관원이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왕 앞에서 청지기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곤경에 빠진 왕은 “느헤미야야 와서 포도주를 따르라”고 말했습니다. Wang은 종종 문제가 있고, 세계 곳곳에 문제가 있으며 많은 일들이 그를 걱정하기에 충분합니다. 이 느헤미야는 참 재주와 학식이 있어야 하며 왕에게 술을 자주 마시며 주의를 기울이며 술 맡은 관원이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를 주셨고, 왕이 될 때마다 느헤미야를 통해 왕이 되는 많은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성벽에 가서 보고 측정하고 얼마나 많은 재료가 사용되었는지 확인했을 때 모든 것이 명확했습니다. 언제부터 배우기 시작하셨나요? 어릴 때부터 배우기 시작하십시오. 느헤미야서에는 그런 말장난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성벽과 성전만 보고 얼마만큼의 재료가 필요한지 명확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는 어디에서 배웠습니까? 왕 앞에서 건설을 하지 않고 기반시설을 건설하는 왕은? 다 해.

이 포도주 청지기는 헛된 것이 아니라 정말로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건축에 있어서는 느헤미야가 일류이고, 싸움에 있어서도 느헤미야는 위대합니다. 한 쪽을 다스릴 계획을 세우는 것이 장난이 아니고, 한 쪽의 고위 관리가 한 지방을 관리하는 것입니다. 결과도 매우 잘 관리되었습니다. 실천적인 사람이 되야지 느헤미야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나도 그를 무척 좋아한다 앞으로 천국에 가면 느헤미야와 함께 앉아서 술이나 한잔 해야겠다. .

니헤미야의 지식은 여전히 매우 심오하고 강력합니다. 그래서 저는 모두가 말을 멈추고, 말하는 습관을 들이지 말고, 실제 행동하는 습관을 가지라고 권합니다. 당신이 실제로 한 일은 느헤미야의 손에 있었고 52일 만에 이루어졌는데 에스라는 열흘 넘게 하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것이 아니었지만 에스라는 서기관이었습니다. 결국 느헤미야는 성벽을 쌓고 성전을 재건했고, 그 결과 에스라는 성경을 말하라는 초청을 받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성경을 잘 알고 있었습니까? 친숙한. 니시미는 엔지니어였고 엔지니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수 있었지만 서기관은 인프라나 엔지니어링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몇 가지 부족한 점이 있었습니다. "창세기"의 요셉, "출애굽기"의 모세, 나중에는 공학적 배경을 가진 다윗과 솔로몬이 모두 뛰어난 기술자였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실천적인 사람이었고, 그가 없이는 왕이 일을 바로잡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가 할 때 왕에 의해 다시 옮겨졌습니다.

그 때에 내가 예루살렘에 있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바벨론 왕 아닥사스다 삼십이 년에 내가 왕에게로 돌아왔음이라 여러 날 후에 나는 왕에게 휴가를 청했습니다.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렀을 때 나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성전 뜰에 도비야를 위하여 집을 예비한 줄을 알았다. 내가 너무 노하여 도비야의 모든 기구를 집에서 던지고 그 집을 정결케 하라 명하고 성전의 기구와 소제와 유향을 가져왔더니 (느헤미야 13:6-9)

이거 다 읽을 수 있어? 봐봐, 그냥 그런 일이잖아, 정말 리얼하지 않아? 그것은 매우 현실적인 일입니다. 그가 예루살렘을 떠나 12년 동안 거기 있는 대제사장은 흙탕물이 되었으니 예수 말세의 대제사장들도 흙탕물이 되었고 대제사장들도 그보다 못하더라. 대제사장이 도비야에게 성전의 집을 준 이유는 무엇입니까? 시댁 관계였고 사업에 이용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흥미롭습니다. 이스라엘 경제는 어떻습니까? 경제가 좋아지고 있습니까, 나빠지고 있습니까? 물론 부자들이 독점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기 때문에 그 곳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더 좋고 그 곳의 부자들은 더 나쁩니다.

안식일 전 예루살렘 성문이 어두워 갈 때에 내가 명하여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에는 열지 말라 하고 내 종자 두어 사람을 성문마다 세워서 안식일에 아무 짐도 들어 오지 못하게 하매. 장사들과 각양 물건 파는 자들이 한두번 예루살렘성 밖아서 자므로. 내가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성밑에서 자느냐 다시 이같이 하면 내가 잡으리라 하였더니 그 후부터는 안식일에 저희가 다시 오지 아니하였느니라.(느헤미야 13:19-21)

아니오, 장사하는 것은 돈을 버는 것입니다. 돈을 벌면 돈을 잘 벌고 안식일에 시간을 내십시오. 하나님을 화나게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안식일에 물건을 사고팔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성경을 들을 시간이 없고, 그곳에서 에즈라가 헛소리를 하는 것을 들을 시간이 없습니다. 그렇죠? 말도 안되는 소리가 아니라 좋은 지적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마음에 머리카락이 자라서 밖에서 팔고 있기 때문입니다. Tanghulu, 그는 Tanghulu인 척하고 Baozi, 그는 Baozi인 척 그는 왜 그곳에서 에스라의 말을 들으며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실제적인 일을 하는 자를 기뻐하십니다.

이러한 경제적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러한 공급업체를 제자리에 두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해당 장소에 어떤 일이 발생할 것입니다. 성벽을 쌓고 그 곳의 경제를 다스리고 그 곳의 백성을 다스리는 것 외에도 아직 심판할 사건이 많기 때문에 느헤미야는 매우 유력한 사람입니다. 급여 없이 그렇게 오랜 세월을 보낸 후 그는 얼마만큼의 금을 기부했습니까? 생각보다. 모든 사람은 느헤미야가 제사에 앞장섰고 그가 바친 금은 킬로그램으로 계산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는 자신의 돈을 벌고 있습니까? 아니요, 성경에는 느헤미야가 스스로 돈을 벌었다는 기록이 없는데 왜 느헤미야에게 돈이 있었습니까? 형제자매 여러분 고개를 돌이켜야 하나님께서 부자가 되시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교회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의 지원을 받고 있고, 교회가 돈이 부족한 것은 우리 형제자매가 기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공급해 주셨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Nisimi의 돈은 어디에서 왔습니까?조금 설명하겠습니다.예를 들어 황제가 말했습니다. Nisimi에게 이것을 주면 끝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면 돈이 여전히 문제입니까? 돈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형제자매는 실천적인 사람이 되고 관리자가 되어야 합니다. 도를 경영하든 도시를 경영하든 소상공인을 하든 가게를 경영하든 마음에 운명이 있는 사람이 되어 마음에 하나님의 성전인 척, 하나님의 안수, 하나님의 목적을 위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죽어도 하나님을 위해 죽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하는 것, 이것을 나는 운명이라고 부른다! 운명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살고, 하나님을 위해 죽는 것이 내가 이 세상에 온 목적이다. 당신은 헛되이 여기에 올 수 없고, 아래층의 들고양이처럼 될 수 없으며, 산 채로 죽은 채로 거리를 달리는 들개처럼 될 수 없습니다. 아니요, 우리는 저 동물들과 같을 수 없고 돼지 우리 안의 돼지나 양 우리 안의 양 같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아름다운 계획 안에서 살고 하나님이 더 기뻐하시는 사람이 됩니다. 이것은. 일입니다.

오늘의 헌금을 받는 찬송을 부르자 헌금의 의미를 모르면 주지마라. 교회는 돈 받는 곳이 아니고, 교회는 축복을 베푸는 곳이요, 교회는 안수 받는 곳이요, 우리는 이것을 위해 태어났고, 이것을 위해 이 세상에 왔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소망도 소망도 없이 방황하다가 오늘날에는 하나님과 소망이 있고 하나님이 하늘 보좌에 앉아 자기를 기쁘게 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줄을 압니다.

오늘 선택을 하시겠습니까: 하나님, 저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온 몸을 사셨으니 병이 이제 후로는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의 성전이 더 이상 황폐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알면 우리의 심령이 다시 황폐하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이여 주께서 느헤미야와 같은 무리를 우리 중에 일으키시기를 원하노라 , 당신 집의 황폐함을 위하여 울으소서 하나님이여 이 시대의 황폐함을 향하여 우리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소서. 우리를 일으키사 이 세대의 교회의 황폐함을 보시고 오 하나님이여 우리가 어린 시절에서 나와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이여 주의 집에 영광이 충만하고 주의 백성이 다시는 마귀에게 눌리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이여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며 우리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이사 오늘 내가 나를 산 제물로 드리리이다 하나님이여 주를 택하신 것은 큰 축복이시니 다시는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리이다 두려워하되 기꺼이 주옵소서. 주는 우리에게 공급하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 형제자매들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이기적인 생각과 가난을 없애드립니다! 하나님, 당신은 부요하신 하나님이시니 당신을 신뢰하는 것이 우리의 가장 큰 축복이시니 가난한 자가 우리를 떠나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질병도 우리를 떠날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우리가 이곳에 들어갈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는 것,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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