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누가복음제6장(상)-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처럼 되어야 한다
【성경공부】-누가복음제6장(상)-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처럼 되어야 한다
서론:안녕하세요! <누가볻음>제6장을 우리 보겠습니다. 제6장에서는 무엇을 말씀하고 있는가? 너는 한 구절 한 단락싹 읽어 내려가면, 아주 단편적인 것처럼, 그것이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제가 말씀들리자면, 저자가 썩어서 표현한 내용을 잘 읽지 못한다, 사실 저자가 표현해야 할 것이 명명백백한 내용을 쓰 것이다. 독자들도 그가 무엇을 쓰려고 일해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 독자들에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잡는 것이 바로 핵심입니다. 누군가가 당신에게 편지를 쓴다면, 당신이 읽은 것은 모두 단신이 추측하는 것이고, 당신은 그 사람의 뜻을 불잡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특별 조심해야 하는 것은, 국어가 그다지 좋지 않은 것은 사실 손해를 본다는 점을 있다. 국어가 서툴럿 다른 사람의 뜻을 읽을 수 없다. 남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분명히 그에게 친절을 배풀었는데도, 그는 남이 그를 해하려 한다고 생각하였고, 남이 그를 해치려 하고, 그를 속이려 하였노라. 그는 다슨 사람이 좋은 사람인 줄 알고 있는데, 이것은 엉터리가 아닌가? 제6장 전체 편은 좀 길어요, 저는 모두 이미 다 읽었다고 생각한다. 다 읽은 후에, 우리는 무엇을 읽어낼 수 있을까요? 저는 이 장에 대한 주제를 찾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찾는 것도 꼭 맞는 게 아니며 틀리는 게 해 봅니다.
이 많은 부분의 내용을 저자 누가는 무엇을 설명 하고자 하는가? 누가는 사실 예수께서 말씀하신것 행하는 일의 표현하신 것입니다. 누가의 견해는: 우리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 주제는 <성경> 전체를 관통한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의 형상이 갖이고 있다. 본래 우리는 하나님처럼 부유한다. 하지만 그들이 스스로 선악을 알게 열매를 먹은 이후로 마귀의 처럼 되고. 가인이 바로 한 정신병자였 되었다. 라맥은 더욱 심각한 정신병자였다. 내 주변 사람들을 유심히 사펴보면, 기본적으로 크고 작은 정신질환이 있고. 심각한 것도 있고. 심각하지 않은 것도 있다. 우리는 종종 어떤 사람들의 메시지를 받지만, 상대방이 무엇을 펴현하고자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참으로 예수님처럼 하나님처럼 되것을까? 그것은 매우 중요한다. 누군가는 어떻게 그럴 수 있겠어? 예수님은 몇 명이나 될 수 있습니까? 어떻게 내가 예수님처럼 될 수 있지? 사실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제가 사람들에게 말하길, 부자가 되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 사람 분명히 나는 부자가 되고 싶다! 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꿈에도 부자가 되고 싶어! 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처럼 부자가 되고 싶으십니까? 그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하나님 아버지처럼 부자가 되고 싶다!
사실 사람은 모두 하나님 아버지처럼 되고 싶지만, 하는 일은 귀신과도 같습니다. 남의 돈을 탐네거나 남이 아파트 탐내것이다. 그러나 많은 세상이야기가 있다. 오늘날 <성경>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처럼 우리가 선택할가 말가 아니라, 우리가 꼭 선택하려고 요구한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당신도 예수님을 믿으며, 나도 예수님을 믿는데, 어떻게 어떤 사람이 예수님처럼 되게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읽게 되었는가?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믿지 않는다면 누구의 것을 믿습니까?
여러분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처럼 되라고 요구하시는 것이 구원이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절대로 육신의 노력으로 금식기도하고 성경을 읽으면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많이 해도 사실 아무도 소용없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처럼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구원의 분질라고 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리시며, 희생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부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의 죄를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우리는 하나님처럼 될 가능성이 있는가? 천국이 가까왔느니라 이 구원은 우리에게 임하시고. 여호와의 빛이 우리는 비추고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의 죄가 사하 되었도, 사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회개하면 우리는 여전히 어둠 속에 있게 되며. 우리가 회개하면 여러분과 나는 모두 하나님 아버지처럼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할 것인지 안 할 것인지 선택할 것인가? 할 것인가 안 할 것인가?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가 안 하는지, 당신은 하나님의 밀씀을 듣고 믿지 않는데, 당신은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대며”. 그건 손해 보는 거 아니냐. 우리 중 많은 사람들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은 손해를 보는 일이 아니며, 하나님 아버지처럼 구원의 본뜻이다. 오늘 하나님이 너와 나를 만드셨을 때, 그 영광을 형상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영 있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 회복시키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자로 회복시키고. 어떤 사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도록 회복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권능을 가지고 회복하고 계십니다!
안식일의 인자는 위한 확립 된 것이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뇨. 에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그가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다만 제사장 외에는 먹지 못하는 진설병을 집어 먹고, 함께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또 가라사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사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느지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송사할 빙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가 엿보니. 예수께서 저희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저가 일어나 서거늘.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예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무리를 둘려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저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 저희는 분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처치할 것을 서로 의논하니라.”(<누가복음>6:1-11).
첫 번째 이야기는 안식일에 예수님와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좀 잘라 손으로 비비어 입에 넣는다는 것이다. 그거 맛있어, 그러자 바리새인들이 이를 보고 이르되, 너희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어떻게 할 것이가? 어떤가요?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이 일을 예수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성전에 들어가 진설병을 취하여 먹으면, 어떤가요? 바리새인들은 다윗을 준경하는 때문에. 다윗이 한 일을 김히 다윗에게 도전하지 못한다. 다윗은 한 일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야기는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시니, 손이 마른 사람이 있었다, 많는 사람들은 그기서 예수님의 안식일을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그 결과 예수님께서 그 사람들을 보시고, 그 사람에게 니르시되 일어나 우리 중에 서라. 또 예수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멸하는 것느 것이 몷으냐? 이 말씀은 정말 도전적이다. 그가 무리를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 사람을 손이 회복된지라. 결과 그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분기가 가득하여 예수님을 어떻게 처치할 것을 서로 의논한다고.
첫째로 안식일은 사람의 생명을 위한 것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안식일을 세운 것은 하나님이 안식일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에게 안식일이 특별히 필요합니다, 필요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안식일 때문에 하나님에게 함께할 수 있기 대문이다. 하지만 바리새인들을 주님을 믿은 후에 바보를 되었다. <성경>을 읽고 바보가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냐하면 안식일에는 아무것도 일 할 수 없고, 선한 일을 해도 안 된다고 생각하며, 심지어 예수님을 해치려고 하는 것도 놀라운 일입니다. 이것이 이상한 일이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바리새인처럼 경직되어 계시지 않고,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매우 은혜롭고 긍휼을 계신다.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믿으면 바보를 믿고, 기본 상시도 없정도로 믿는다. 이것들이 다 하나님의 형상않닙니다.
옛날이 한 전도인을 만났는데, 주변 친구들이 사회적 장애인 전도사라고 묘사한다. 그를 휴대전화로 항공권을 구매할 주 모르고, 휴대폰로 결제도 하지 모르다 금융 송금도 아무것도 못한다. 기도하고 방언번역 일만 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기본 상식이 있어야 정상인 일 해야한다. 그리스도인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인간 음식을 먹지 않는 산중도인 아니다. 만약 이렇게 하며, 그 문제가 될 수 있다. 안식일에 밀 이삭 몇개를 먹은 것은 아무 것도 아니고, 이것들은 중요하지 않다.
어떤 사람이 안식일을 지키다라는 책을 썼는데, 이 책에는 주일에 돈을 쓸 수없고 일 출근할 수 없다고. 결과 어떤 사람들은 요기를 읽고 나서 주일에 숙제를 할 수 없고, 밤 12시까지 기다릴다가 12시지나고 서둘러 숙제한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손 마른 사람이 치유되는 것은 좋은 일입니까 아니며 나쁜 일입니까? 분명 좋은 일이야! 만약 밀 이삭을 잘라서 비비어 먹고 일은 그다지 좋지 않만, 그 밀 잘라는 것은 종요한지 않다. 바리새인들의 문제는 바로 손이 마른 사람이 치유한다는 것은 좋은 일거가 나뿐 일거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이것이 골칫거리였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주님을 믿는 수 경직된 상태를 고쳐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 아버지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처럼 은혜와 긍휼이 가득해야 합니다. 우리는 안식일이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지 아무것도 지키는 것이 큰 유일성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날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긍휼을 회복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우리는 진지한 일을 해야 하는데, 주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직장에 가서 돈을 벌지만, 나는 그렇게 하는 것이 이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회사를 공유일 휴시하는데, 회사에 이번 주일만 일하려고 요구하지만, 다음 주에 주일에 정상 휴무한다, 이것은 정상이다.
우리는 기본적인 상식을 끊임없이 회복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주님을 믿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병에 걸렸을 때, 그러면 하나님 아버지께서 행하신 일을 행할 수도 없고,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행할 수도 없는 많일 뿐이다. 왜 일부 기독교인들의 병은 치유하지 못합니까? 바리새인과 서기과들의 경직성과 교조로 가득찬 이 기독교인들의 마음에는 삼가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르는 데는 재주가 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은혜와 긍휼과 능력이 붕부하신다
“예수께서 저희와 함께 내려 오사, 평지에 서시니, 그 제자의 허다한 무리와 또 예수의 말씀도 듣고, 병 고침을 얻으려고 유대 사방과 예루살렘과 및 두로와 시돈의 해안으로부터 온 많은 백성도 있더라. 더러운 귀신에게 고난 받는 자들도 고침을 얻은지라. 온 무리가 예수를 만지려고 힘쓰니, 이는 능력이 예수께로 나서, 모든 사람을 낫게 함이러라.”(<누가복음>6:17-19).
만약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처럼 된다면,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처럼 권능을 갖게 되고. 우리에게서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며. 병든 사람을 치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종종 하나님 아버지처럼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데, 예수님이 하나님의 마음이신 것처럼 하는 것은 좋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 손을 통해 고침을 받은 사람은 많았지만,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치유를 받고는 저를 ‘영은파’로 생각합니다.
이전 장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야기했는데, 이 장은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 해석하는데, 복음 자체가 하나님 아버지처럼 은혜와 긍휼과 권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 능력이 있지만, 당신을 능력이 있지만 사랑을 없을거나. 또한 한 사람이 능력없지만 너를 사랑을 있다는가. 이 두까지 사람이 다 소용없다. 만약 이 사람이 너를 사랑이고 능력도 있다면,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처럼 될 수 있다. 그것이 유용할 것입니다.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사랑하시고, 또 능력이 있으시며 얼마나 좋으십니까!
내가 왜 하나님을 곽 불잡았을까? 왜냐하면 저는 하나님이 누구인지 잘 모르실 때, 저를 도와주시고, 우리의 나쁜 모습을 뒤집어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와 큰 인자를 긍휼로 배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기 때문에, 내가 나쁜 삶을 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귀신을 나를 찢어지만 그들은 나를 하나님의 나라로 밀어 넣었다. 이것이 아주 재미있구나!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 아버지처럼, 긍휼와 은혜가 있을 뿐만 아니라, 능력도 있어야 합니다. 병든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그들의 마음 생각이 상태과는 상관없이,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치유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나중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질 것임을 알고 계셨고. 그들이 제자가 되지 않을 것임을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매우 정확하게 보셨지만, 우리 하나님께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바라하지 않고. 그냥 배푸사 하고 계신다.
우리도 이렇게 그냥 베푸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 우리는 우리를 찾아오는 그런 환자를 만나게 되는데, 우리를 다 치유해 주고,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가려고 한다. 기꺼이 우리와 함께 하나님의 영광의 교회를 세우고자 하면, 우리는 함께 달리고, 원하지 않으면, 도덕적으로 납치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므로 형제 자매들에게는 모두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와 긍휼과 권능이 있어냐 합니다.
주님을 믿는 첫 날부터 저는 크고 능력 있는 복음에 관심을 가졌고, 능력 없는 복음은 쓸모가 없었습니다. 내가 제일 처음에 갔던 그 교회처럼 형제 자매가 다 좋아서, 내 부인에게 병이 있는 것을 보고 비싼 의사를 소개해 주었지만, 돈이 들었고 병도 낫지 않다, 아주 비참한다.
예수님와 능력이 나타나겠 보았을 때, 나는 이것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주님을 믿으때부터 지금까지 권능이 없는 복음은 아니고, 능력 없은 신앙이 소용이 없다고 느끼며, 능력 없는 교회에 가서 무엇을 합니까? 그러므로 <누가복음>제 6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계속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처럼 되고, 긍휼과 인자는 물론, 더 큰 권능을 있어야 것을 될 것이다.
한 사람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매우 좋은 일이기 때문에, 모두들 연습을 시작해야한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치유의 하고 해방되어 하리라>는 책은 썼는데, 그 안의 첫 번째 편은 바로 예수님처럼 본받겠다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되지 않는면 안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렇게 걸어온 거야. 여러분은 능력 있는 복음은 은사가 아니며, 참 복음은 반드시 이런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제5장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보여 주신 것이며, 제6장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와 같이 되려면, 긍휼로고 마음뿐 아니라, 능력도 가져야 한다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하지만 능력만 있어도 안 된다, 무당인들처럼, 무당인은 사실 대단했다. 옛날이 제가 첫 주님을 믿었을 때, 내가 동남아의 도박왕을 알고 있었다, 그를 우리 교회에 초대로 하여 간증을 했다, 그의 아버지는 도박꾼이었고, 그도 학교에 공부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고, 지식도 배운 것도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한 소리를 들었다: ‘내가 당신을 도박왕으로 만들 것입니다’! 말한다. 그 음성이 그 안에 들어갔는데, 그는 아무 것도 도박재능도 없다는데, 그는 다른 사람과 도박을 하고, 도박을 하면 반드시 이긴다. 원래는 한 수 썩을 패를 잡았는데, 그가 패를 펼 때쯤이면 좋은 패가 되고, 그 스스로는 깜짝 놀란다는 것은 아예 그가 잡은 패가 아니다. 영세계 속한의 물건이 대단해서, 카드 교환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내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 무당인 춤 추는 것을 봐는데, 그 할머니 향 한 묶음을 불을 붙이다. 원래는 술을 입도 않해는 사람는데, 술을 마시면 취하게 되는 사람이었는데, 악귀들이 그 여자에게 달라붙었을 때, 그녀는 생수를 마시처럼 술을 두병에 고량주를 마시고. 생고기를 한두 근이나 먹었는데, 그 향불은 마치 홀홀 왕성하게 타올랐다, 이것은 거짓이 아니고, 영 세계의 일을 믿지 않는 수 없다. 그 점쟁이들이 그렇게 정확히 사주 봐주는 것이도 상상할 수 없는 것들이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무소인들도 많은 병을 치로할 수 있다는 것이다만, 문제는 우리가 진리를 가져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모두 매우 진리의적이다. 나는 지식인인데, 만약 어떤 것이 논리적으로 들다면 체계를 없으면, 나는 그것이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성경>의 논리 체계를 매우 좋았하고 간단한다. 왜 그럴까요? 내가 범죄함 저주를 받은다. 귀신이 나를 망가지는 합법적으로 운행하고. 지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피를 흘리고 희생하여 죽으시고, 내가 죄의 대가를 치르고, 죽은 사람들 간운데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귀신이 나를 합법적으로 망가뜨리지 못한다면, 내가 귀신을 쫓아낼 수 있다는 것은 합리적으로 들릴 수 있다.
죄라고 하는게 뭐죠? 죄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것들이 다 좋으니, 우리는 <성경>을 잘 읽어야 합니다.
사람은 가난하고 주린 자는 애통할 때, 하나님을 갈망하고 찾으 것이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것임이요.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 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저희 조상듷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그러나 화 있을찐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찐저, 너희 이제 배 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누가복음>6:20-26).
이 <성경>구절은 <마태복음>에 나오는 등산보훈과 매우 같다. 다소 이해하기 어렵게 들릴 수 있다. 가난한 사람들 주린 사람들 애통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복이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배부른 사람에게 어찌 화가 있었는가? 예수님께서는 매우 중요한 영적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만약 내가 고통을 당하지 않고, 매일 맛이게 먹고 마시는 것의,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면, 나는 주님을 믿겠는가? 나는 주님을 믿기가 어렵다. 바로 내 안에서 귀신에 의해 괴로웠고, 매우 가난했고, 매일 힘들게 살았기 때문에, 진리를 찾기 시작했다. 사람이 힘들 때는 하루살이가 괴로워서 살아간다는 의미를 구한다. 하지만 세상에 하나님이 있는지 보려고 죽는게 달갑지 않아 결국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듣기 좋지 않은 말을 하면, 나는 가난 주린 애통에 의해 귀신에게 이끌려 교회에 왔다.
교회에 들어오면, 가난은 부귀로 주린은 배부르게 애통하는 기쁨은 웃는 되었다. 사람은 만약 가난하고 힘들게 살면 더 많은 진리를 찾고 싶어 한다. 결국 찾은 후 하나님의 나라를 갈망하기 시작했다. 주식시장처럼, 지금이 몇 포인트이건, 상승만 해도 돈을 벌고 있다. 그러나 가난은 바닥이 무너지는 바닥 상태이기 때문에, 아무리 해도 오를 수 있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는게 이것이 내가 해석이다.
사람은 배고플 때, 아무거나 먹어도 맛이다. 어떤 사람은 낙난할 때, 매일 못 먹는데, 한 할아버지가 뭇이 국을 한 그릇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는 아주 맛있다고 생각햇다. 결국 그는 황제가 된고 있었 후에 어늘 날에 그 무국을 생각이 낫고, 먹고 싶어다, 전국에 그 할아버지가 찾는다. 찾았더니 할아버지가 그 시절의 무국 한 그릇을 끓여서, 황제가 먹여 주었는데, 왜 이렇게 맛이 없냐고 물었다, 무국 끓여는 법 한 번도 바꿔적인 없다고 하는데. 왜 지금 맛없다고 생가합니까? 너는 지금 배부른 사람이기 때문에, 아무 것도 맛이 없다는 것이 먹었다.
너는 위에 있을 때는 아래로 덜어지고, 아래에 있을 때는 위로 올라갑니다. 어떤 사람은 부유하면 복이 있고, 배불리 먹으면 복이 있고, 희락가 웃으면 복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슬피 우는 동안 기쁨이 생기면, 그러한 느낌이 강해질 수 있으며, 매일 기뻐하면 기쁨에 대한 감각이 무감각해질 수 있다.
부유한 자는 거만해지기 쉬우니,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게 된다.
솔로몬은 매우 재미 있는 한 구절을 썼다. 나는 지혜와 망령됨과 어리석음을 것은, 계속 반복하는 그분의 모습에 저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고 있다. 나도 내 동료를 시험해 보았는데, 대답한 것도 가지각색이었다, 제가 여러분에게 제 답을 말하는데, 사실 솔로몬은 자신을 기록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그가 판결할 때, 하는 말은 매우 지혜로웠다.
스바 여왕이 솔로몬은 지혜로웠다고 생각하였는데, 스바 여왕은 많은 금을 가지고 그를 찾아왔는데, 스바는 지금의 에티오피아로 알려져 있다.
사람은 이런 상황 속에서 살면, 매우 거만해질 수 있다, 어느 정도까지 거만합니까? 어떤 사람은 아내 하나와 결혼하여, 이 마루라가 그는도 마음대로 못했다. 그토록 많은 아내를 얻어서 무엇을 할 것입니까? 거만하기 때문에, 결국 우매함이 된다, 솔로몬은 궁전을 짓고, 왕궁의 후궁들과 우상 숭배를 하기 시작했는데, 우상 숭배는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거만하면 어리석기 시작하지만, 우매한 후에 오히려 겸손해져서 잔도자가 된다.
솔로몬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과 미련한 것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사람이 부자가 되면 거만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들 우심히 살펴보니, 어떤 사람들은 상황에 관계없이 마음대로 말하고,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한다, 결국 사고를 났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항상 낮은 프로필을 유지하고, 꼬리를 물고 살아가야 한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왜 꼬리를 물고 사람이 되어야 하느냐고 묻기도 한다. 나는 확실히 꼬리를 물고 사람이 되고 싶고, 높은 톤을 부르고, 유명해지고 싶지 않고, 발 디딜 틈 없이 살고 싶다. 자신이 이전에 거만했던 적이 있기 때문에, 지금은 그 당시의 자신을 돌아보는 것은 매우 우매하는 자이다, 당신은 내가 지혜가 있다고 말했나요? 네, 이지요. 그러나 지혜가 있으면, 거만한 지혜가 없어지면 어리석어지고, 마치 맛있는 고기처럼 되고, 썩으면 냄새가 난다.
결론: 우리가 계속 이야기하면 길어질 수도 있고. 몇 가지 핵심이 더 있을 것이다. 먼저 여러분께 예고를 하나 하겠다. 27절부터 36절까지의 것은 부유한 마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부자의 마음을 가지고 계시며, 37절부터 42절까지 부정한 죄에 대해 말씀하시고, 43절부터 49절까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다음 번에는 네 가지 핵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게 축원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