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 누가복음 제5장-이 복음은 새로운 일 것이다

【성경공부】 누가복음 제5장-이 복음은 새로운 일 것이다

서론:오늘 우리는 <누가복음>제5장을 보는데,  이 장의 주제는 이 복음이 새로운 일이라고 한다. 왜 이 ㅂ고음이 새로운 일이라고 하는가? 왜냐하면 여기서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라고 하는 중요한 영적 원칙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태양 어래에는 새로운 일이 없다고 생각한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개념은 없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대와 이전의 세대는 모두 끊임없는 갱신 속에 있다. 예를 들어, 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예상치 못한 일이며, 사람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이해하는 방법 없다.

“또 비유하여, 이르시되 새 옷에서 한 조각을 찢어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옷을 찢을 뿐이요, 또 새 옷에서 찢은 조각이 낡은 것에 합하지 아니하리라.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가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되리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묵은 포도주를 마시고, 새 것을 원하는 자가 없나니, 이는 묵은 것이 좋다 함이니라.”(<누가복음>5:36-39).

우리의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시고, 새로운 일을 하는 하나님이지만,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바보가 되었는가? 그들이 생각하기에 모든 것이 낡은 것이 좋다고한다. 아마 그는 10년 전의 낡은 휴대폰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새 술을 마시면서 원하시고, 오래된 술을 마시기를 원한지 않는다. 술을 오래된 것이 좋아하는 것은 다 알고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주 예수님께서 오셨다는 것을 아는 것은 새로운 일이며, 이 새로운 일은 낡은 논리 체계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만약 낡은 논리 체계로 이 새로운 일을 본다면, 마치 새 옷을 한 조각 때에서 헌 옷에 붙이는 것과 같다. 이렇게 하면 난리가 나지 않겠는가? 이 복음은 새로운 일이기 때문에, 만약 사람이 구약의 일과 예수님을 일을 같이 본다면 매우 어려운 일이다.

<누가복음>서의 배경

누가는 사실 바울을 따라 함께 사역하는데, 로마에 도착하면 시간이 나면 데오빌로여 편지를 썼다. <누가복음>의 아마도 집필 시간은 바울이 로마로 압송되 시간이다. 바울이 예루살렘의 도착한 후에 모든 헌금을 예루살렘의 교회에 전달한 결과. 예루살렘의 바리새인들이 바울을 잡아기 때문이다, 바울을 쓴은 <갈라디아서>는 많은 바리새인들을 불쾌하게 때문이다.

바리새인과 바울이 전파한 복음은 완전히 같지 않았으며,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고집했고. 그러나 바울은 강조하는 것이 사람을 믿음이 있어야한다. <갈라디아서>는 쓰는 것은 매우 명백한다. 바리새인의 밑바탕에 도전한 기록이었는데. 바울은 많은 돈을 예루살렘으로 가다주지만. 그들은 고맙주 모르다. 결과 바울에 잡아들였다 감옥에서 몇 년이 지내고 있다. 그리고 다시 로마로 보내졌고, 누가는 이 기간에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썼습니다.

<누가복음>의 앞에 4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며, 5장은 이 복음이 새로운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은 완전한 신학 체계였으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모든 말씀에 따라 정리되었기 때문에. 이 새로운 일은 오래된 유대교, 특히 바리새인들과 조정되지 않은 것이다. 오늘 보시면 기독교의 신앙이 일정 기간마다 갱신되거나, 갱신대 마다 혹 회복하거나, 하지만 그때마다 갱신이나 회복은 강한 구세력의 막가지면하게 한다.

바리세인의 낡은 관념은, 새로운 일과 조정한 이룰 수 없다.

바리세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새로운 것과 새로운 가르침에 대해 낡은 관념을 가지고 있을 때,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굳이 설명해야 한다. 마치 새 옷을 한 조각 떼어서 헌 옷에 수선하는 것과 같다.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새 옷도 찢기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이렇게 하다니 얼마나 어리석은가!

비전 신학에 많은 제시한 개념이과, 오늘 가장 인기 있는 그리스도의 신앙 체계는 많은 갈등 된 수 있습니다. 만약 네가 나에게 새 포도주이냐, 남의 새 포도주이냐고 물으면, 다른 관점은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비전 신학 체께으로 한 조각 찢어져 낡은 신학 체계에 붙이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전통을 매우 좋게 생각합니다. 수년간의 침전와 축적으로 인해. 그런 다음 소위 전통에 묶인, <성경>과 일치하지 않는다 해도. <성경>가 말씀하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은 이상하지 않습니까? 비록한 방언 기도와 같이, 아찍 가지 많은 사람이 막고 있다. 그들이 영은파 이 세 글자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하고이다. 만약 치유 되면 않 좋아냐 물어 보면. 상대방이 좋다고 대답할 거야! 하지만 이건 영은파야, 내 원래 관념과 서로 맞지 않기 때문에 나는 원하지 않는다.

베드로는 새로운 일을 보고,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의 해에 똑같은 일이 일어났고, 큰 혼란을 갖고 했을 때. 사람들을 반응을 아주 재미이는 것은 보였다. 5장의 1절에서 “무리가 옹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새, 예수는 게네사렛 호숫가에 서서. 예수님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 후에 배가 있는 것을 보시니, 베드로에게 이르기를 배를 수깊은 곳으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배드로는 당황했어다, 밤중에 아무것도 얻은 것이 없지마는. 너 이 문외한이 아직도 내가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니? 한번 해보겠습니다. 물고기가 잡히지 않았으니, 나는 너에게 말할 필요가 있다.

베드로가 그물을 놓자, 겁에 질려 많은 물고기를 들어쌌고, 그물이 찢러지는지라. 바로 많은 동료를 불러들였다, 도와주세요. 그 결과 물고기가 두배에 가득 찼습니다. 베드로는 이것이 새로운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입니다.

베드로 요한 야보고는 모두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었으며, 그들 마음속에는 메시아를 보고자 하는 추구가 있었고,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메시야이고, 메시야가 구세주라는 뜻을 알고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 대해 이 일을 그 전에 말듣고 있는데. 마음속으로는 계속 중얼거리는데, 네 말만 옳다고?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한 그믈이 쯪어지는 하였다, 이 진리를 맞다 발견되어다. 이것은 그들이 바라던 주님이시라고 한다.

베드로에게 복이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베드로라면 이 일을 한 번도 당해 본 적이 없다면 무슨 반응 있겠는가. 그럼요? 주여 저를 따나소서. 제가 죄인이시나이까? 당신의 태도는 괂찬다 수도 있지만, 단지 우연이 뿐이다. 됐다. 별거않이다. 베드로가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생각해 봅시다. 이제부터는 네가 물고기를 얻는 것 같이 얻어야 한다고 했으니, 어부지리를 하는 것은 무엇이냐? 우리는 사람을 얻어야 한다.

베드로 안에 열린 마음이 있다, 나는 이전에 받은 것이 별로 없고, 나는 그저 어부지리일 뿐이다. 이 그런 바리세인들과는 다른다. 바리새인들 음음을 심는 것은 예수님을 대항하는데 많이 사용되었다. 베드로 아보고 요한 바로 모든 것이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려고, 그들이 두려워하지 않다. 잘 따르가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을 위해 기도할 수 있는 한 사람을 만나다, 치유하는 사람은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우리 중 한 자매는 홍콩에서 다리가 허리가 아픈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도했는데, 그들은 치유를 받고 나서. 그리스도인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자매를 보라보는데, 이것은 영은파입니까? 난 너무 놀랐어요. 이거 머릿통에 물 붓는거지?

낡은 체계를 파괴하고, 새로운 체계를 세우한다.

만약 우리가 이전에 받았단 것과 일치 하지 않는 것을 본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습니까? 세 물건을 떼어서 낡은 물건에 붙이는 안 된다는 것을 꼭 알아야 한다. 낡은 물건은 전부 찢은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인테리어가 있는 중고 주택을 사는데, 사실 이 인테리어는 몇 년을 사영한 후에 매우 낡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표준에도 맞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집을 사는데, 어떤 인테리어를 하든 상광없이 집이 완전히 새로운 인테리어를 한다. 가구부터 주방까지 모든 것이 싸! 새로것이 한다.

그래서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새로운 것을 받으려면, 윈래의 오래된 것을 뜯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새 부대라야 새 포도주을 담을 수 있다. 만약 비저니신학에서 한 조각 빼면 구유에 불일 수 없다. 받으니 붙여도 마땅치 않다. 저는 그저 비전 신학이 새로운 일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을 뿐인데, 여러분이 가서 <성경>을 잘 고찰했보세요. 오늘 당신이 받은 모든 것을 대조하기 위해 <성경>을 검색해보고. 나는 당신이 바보같이 받아들이는 것을 원하지 않다. 나는 당신이 하길 바랍니다. 자세한 고찰 검색 발견를 통해 알아낸 것이 정말 그렇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오늘 우리가 믿는 복음은 정말로 사도 바울의 가르침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으며, <히브리서> <로마서> <에베소서> <갈라디아서>로 돌아갈 필요가 있다. 그 안에서 다 들어 있다. 새로운 일에 직면했을 때, 베드로의 반응은 그냥 내버려 두는 것있었다. 우리는 이것이 갖고 저것이 버리 수 없다는 마음이 갖고 있으면 않되것이다. 베드로가 집에 가서 의론 해야한다. 아내가 상의하면 이 상의는 시거로워진다. 그의 아내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하면 이혼하자, 아직은 못 살아요. 그러하면 베드로가 버려지 못 한다. 베드로는 모든 것을 버리고, 배도 원하지 않았고, 배위의 물고기도 원하지 않았다. 나는 예수님만을 원했습니다.

포기는 것은 태도있다. 누가는 모든 것은 버러두는 가장 중요한 태도를 묘사합니다. 오래된 모든 것은 다 버려고, 찢어야 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러 올 수 있다. 모세의 율법서를 새 계악으로 가져와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물 같은 것을 반드시 소에 안수하고, 제단에서 피에 솓은, 간과 간에 기름을 장막 곁에서 태워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을의 성전을 허물었다는 것은 구약에 나오는 제문을 바치는 일을 더 이상 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만약 낡은 눈리체계를 버리고 살림살이까지 생각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다. 우리는 새로운 것을 보았다. 일 새 것을 뜯어서 낡은 위에 을려 놀을 것이가? 집을 짓는 것은 모두 먼저 낡은 것을 뜯은 다음 새 것을 지으면, 아무도 새 것을 낡은 위에 갖다 붙이지 않는다.

이것은 새 일을, 보배것이다.

예수께서는 돈이 부족하지 않으시고, 베드로에게 내려가서 물고기를 치게 하셨고, 그 많은 물고기를 잡아 내신 것이 모드 돈이 되지 않았습니까? 누군가 주님을 믿으면, 돈이 부족해서 알아내지 못한 것 같다. 저는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보배로 삼았는가를 생각해 보라고 하는가? 이 보배를 빌 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하나님께 있고.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되는 능력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원하십니까? 여러분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앋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는 보배로운 존재가 우리가 상상을 초월하여, 한 문동 병의 사람이 예수께 손을 내밀어 그에 대시며 그 병자 깨끗함을 받으라! 문동병자 이렇게 깨끗해졌다고? 전에 여러 해 동안 의사에게 치료를 받고 많은 돈이 쓰고 후에 예수께서는 한 마디로 깨끗해지셨다 맙소사, 믿거나 말거나? 믿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나는 예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것을 나는 버린다!

새로운 일을 만났을 때, 우리의 반응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리새인은 주님을 믿고 것이 어리석었다. 안식 날이 양을 우물에 빠지고 그들을 양을 구하지 않으다, 안식날이 지나면 양을 구하로 가는데, 양은 이미죽었다. 또한 죽었 양을 만지기를 두려워 하였고, 시체가 부결정하게 때문이다. 이 사람들을 주님은 믿은것이 어러석이다. 기분 상식도 모르다. 안식일을 지키 줄만 알고. 이렇게 하는 것이 사실 바로 안시 닐이 않이다는 것이 모랐다!

예수님께서 한 등네에 계실 떼에 온 몸에 문동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가로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케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깨끗하게 된고.

또 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 각 촌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나온 바리새인과 교법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님와 함께하시다. 한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침상에 메고 와서, 예수님 앞에 들여놓고자 하였으나. 무리 때문에 메고 들어갈 길을 얻지 못한지라, 지풍에 올라가 기와를 벗기고 병자를 침상채 무리 가운데로 예수 앞에 달아 내리고. 예수님께서 그 들의 믿음을 보시고, 당신의 죄는 사하여졌소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서 주제넘은 말 한다. 그들은 믿지 않았습니다. 그들 안에 잘못되 논리 체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선택적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다. 사실 예수님께서: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 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들은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보고 그것이 새로운 일임을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리스도인들은 기적과 기이한 일들을 자주 겪어야 하였습니다. 나는 매우 놀라다. 나는 교회를 세워는 과정에서 병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에 반대하여, 병자를 의사에게 치료받아는 사람이 많았다. 그들은 내가 괴물인데, 내가 하는 게 새로운 일이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정상인이라고 생각하는데. 서기관과 바리새인와 닳았지 않나? 그들은 정통있고 생각하고.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지 않는다.

일단 사람 안에 낡은 논리 체계가 있고, 아직 버려두는 것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새로운 것을 받을 방법이 없다. 너는 새로운 것을 받아야 한다. 반드시 낡은 것은 허물어야 한다. 오늘 우리 기독교인들을 믿음가 굳어지는 것을 믿는다. 아주 만약 우리가 중풍병자를 보고 일어나 걸어 가라다면, 우리는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체계를 허물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한 캐나다 부부가 있는데, 아이가 밤에 야뇨증 있는데, 여러 해 동안 목사는 물론 교회의 목회자들도 상관하지 않았는데도 의사의 치료 해 주었는데. 얼마 전에 우리는 찾아왔다. 몇개월 지나서 아이가 야뇨증 문제가 거의 해결되었다. 어떻게 되는데 어떻게 병이 나았어? 주님 믿는 일이 재대로 믿은하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바로 최대의 의사있습니다. 하지만 이른 사람에게 이 일들을 이야기가 어려워다. 그들을 안에 깊이 각인에 잘못되는 신앙 체계이기 때문에. 완전히 조정시킬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가 밤에 야뇨증 치유되는 것은 이해하게 어려지만, 방언 기도까지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어부 전문가에게 그물을 치게 하시고 물고기를 많이 잡으셨으니, 다 봤어요. 주 예수님을 따라갈래요? 예수님을 따른다고요? 예수님께서 문동병자는 깨끗하게 치유하신 것도 새로운 일인데, 다 보고 예수님을 따를까요?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새로운 일 후에,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려두기로 결정했습니까?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면 모든 것을 버려둔다

한 세리가 레위라고 있다. 세리가 돈 잘 버러하는데, 세리가 세관에 앉은 것을 보시고 끊임없이 소리쳐서 사람들이 돈 가다다라고. 사람들은 다 그는 싫어한다. 날마다 세금을 걷으면 보험을 파는 설계사처럼 이들을 얻을 수 있고. 많이 받을수록 수당이 올라가.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를 따라 오라 하였으므로, 두 말이하지 아니하고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에게 따라습니다.

왜 레위는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것을 버려 두는 쪽을 선택했는가? 내 생각에 그는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였다. 와! 이것은 보물이다. 만약에 우리는 예수님은 믿으면서도 예수님을 보배로 여기지 않는다면,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 하게 되어, 모든 범죄들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되 보응을 받았거든.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들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히브리서>2:2-3).

그러므로 레위가 하나님을 을 따르 모든 것을 버리고, 레위는 비교적 돈이 많으며, 그 곳에서 부유한 부자이다. 남은 많은 세리를 요청하여 예수님은 따랐던 것을 축하하여나라. 이것은 못 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있느냐? 예수님은 그에 월급 주지 않이하지만, 세리 레위의 안에는 메시야를 따르고 싶어 하는 깊은 열망이 있는데, 그의 마음속에 이것이 대단한 일이라는 것을 확실히 하는 것은 세금 수입이 보다 휠씬 낫다 알고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함께 있었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세리를 죄인으로 여기고, 서기관과 바리세인들도 그들을 좋은 사람으로 여기지 않았다. 너희는 왜 세리들이 그 제자들을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과 함께 먹고 마시느냐?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자에게라야 쓸데 있나니.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리 왔다. 만약에 너는 자신을 죄인라고 생각한다면, 회개할 필요가 있으면, 이 구원을 받을 수 있고. 자신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면, 너 믿은대로 인식하라!

날마다 먹고 쓰고 자기 생활만 위하여 살고 보내는 사람은 하나님을 버려고 세상을 쫓아간다.

내가 롯과 아브리함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아브라함에 그의 가족과 롯이 데리고 고향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할 가나안 땅으로 걸어나간.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자, 아브라함은 롯은 데리고 애굽로 내려갔고. 애굽에 도착하자 아브라함은 많은 돈을 벌었다. 사람은 마음속으로 돈을 사랑하기 때문에, 되돌아가는 길에 롯의 마음이 서운한다. 롯은 이렇게 생각이: 아브라함와 이렇게 따라가니, 이 생활을 어떻게 지내느냐?얼마 지나지 않아도 텐트를 옮기고, 화장실도 없고, 아무 것도 없다...하루 종일 이사하고 끝이 없다는 생활을 언쩨 끊까지 된게나? 더 이상 이 늙은이를 따라갈 수 없다! 하지만 롯은 생각하지 않아 것이 있다. 자기가 그토록 많은 소유물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삼촌과 관계가 있는 것이므로, 재물에 유혹된 롯은 마음이 결심되었다. 아브라함와 해였다고 자기 떠나로고 생각이다.

마침 기회가 있었는데, 롯의 목자가 아브라함의 목자와 다투자, 롯은 아브라함에게 떠나라고 말했다. 아브라함이 대단한 사람이라, 그가 이르되,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 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강을 바라본즉, 소알까지 온 땅에 물이 넉넉하니, 롯이 생각하니: 나는 바라것은 이런 삶이야! 물른 롯도 주님 믿음이 있는 것이다.

당신들이 딸에게 연애를 하면, 이런 선택한 사람이 안 된다고 경고해야 한다. 그는 자기는 의인이 줄 알고. 천천히 이동 하였스니, 애돔과 고모라를 도착했고. 한 꿈꾸는 자기 삶을 살는 사람이, 한 비전 없는 사람. 주님을 믿고 살는 것이 할 수 없다.

우리 구약<성경>을 너무 많이 공부를 했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큰 나라들을 파괴하셨는가? 바로 그 때문에; 그곳에 있는 백성들은 살며,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게 하실 것은 바랍니다. 하지만 그들을 말하는 우리는 어떻게 살라야 합니까? 그들은 결과는 도망칠 때, 소변을 마시고, 뚱을 먹고, 딸과 아들을 잡아서 고기로 먹고. 그것은 끔찍한 일이다!

왜 이렇게 비참한 걸까요? 저주가 깊어서 잘 지내고 싶은데 결과는 못 살아요! 오늘 우리는 롯과 같은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까? 아니면 아브라함과 같은 될 것입니까? 만액 우리가 아브라함처럼 되려면, 우리는 생활의 모든 경히 하게 보여다고. 첨막을 옮기고, 제단을 쌓고, 희생 제를 바치고, 이 땅을 종횡무진 돌아다니다. 하지만, 나는 삶에서 절대로 롯처럼 되는 그리스도인을 살지말라!

만약 롯과 같은 기독교인이 된다면, 나도 주님을 믿으며, 나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만, 나는 아브라함처럼 믿음이 될 수 없다. 나는 소둠 성으로 들어가야 한다. 나는 아직 비전이 있다, 나의 딸이 연애를 할 때 간섭하지 못하게 한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굥외하고, 하나님의 천사를 영접할 것이다. 여전히 좋으데, 나는 여전히 목습이 같다. 그 결과 롯이 사로잡힌 것은 아브라함이 그를 다시 구출한 다음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큰 불, 모든의 재산이 없자자, 마침내 그의 두 딸과 부인이 데리고 산으로 도망하여, 부인이 뛰로보고 소금기동이 되고. 롯이 술이 마시고 취하고, 자기 딸들이 저주의 후손이 났고, 저주 되는 두 나라를 만들었다. 우리는 조심하여 한 생명을 잃어버린의 사람들이, 쉬게 롯처럼 가는 길을 길 수 있다.

모든 낡은 논리 체계를 버리고, 새 포도주 새 가죽부대가 되라!

우리는 이런 마음의 뜻을 가지고, 하나님을 따르는 모든 것을 버려야 한다1 몇몇 형제 자매들이 말하길, 나이가 되면 전도인이 되었다, 사실 우리가 모든 것을 버려둘 수 있느냐가 가장 중요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 안에는 아직도 잘못된, 세상 속에서 논리 체계가 많은데,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를 따를 수 있는가? 만약 여러분이 세계속을 논리 체계가 가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면, 많은 혼란이 생길 수 있다. 사람은 낡은 가죽 부대에 새 포도주를 담을 수 없다. 담아 담으면 찢어지다 망가지다.

만약에 예수님에 대한 믿음과 예수님께서 행로를 보는 것이 우리 안에서 원래의 논리 체계와 함께의 이룬다면, 즉 세상과 세상을 사랑하고, 예수님을도 사랑하고 싶은 마음에서 우리나오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믿는 북음을 새로운 일이며.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며, 우리 안에 있는 낡은 논리 체계를 버려야 하며, 그래야 우리가 새로운 일을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를 이룰 수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일을 보지 못하고, 예수님와 같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한 조각 찢어서, 룻이처럼 그들의 낡은 옷에 붙여 놓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룻이 기독교인의 모습을 조금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했나도? 그도 그럴 것이 조금은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그의 논리 체계를 고집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조금 찢어 붙여 놓았기 뿐이다. 사람이 세 옷을 한 조각 찢어 붙여 붙이면, 네 낡은 옷에 잘 어울릴 수 있나요? 부적당할 뿐만 아니라, 매우 괴로운 것이고, 보기 힘들 것이다. 바보 알맹이만이 그렇게 할 것이다.

오늘 우리는 완전히 우리 자신을 새 포도주 새 가족 부대 만들기 위해 우리 자신을 변화시키기 시작한다. 우리는 정말 다시 깨우치 해야 한다. 나를 행하는 것이 다 보고 있죠. 하지만 아직 이해지 못한다. 그들이도 살는 것이 돈이 의지하고, 사람은 살는 것이 돈이 의지한다. 사실살 저주 속에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내 집을 살아도, 어떤 돈은 다 그에게 주었는데도, 그는 여전히 저주 속에 살고 있으며, 여전히 부유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자신의 모든 것을 예수님을 따르도록 세상 것이 모든 버려둔 사람이며, 내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허물어뜨리고 하나님을 따르겠다! 나 같은 사람은 아브라함이 되지 않을까? 그럴 거야! 마지막에 롯이 가난하고 땡땡이치는 소리만 남았다. 다음 술이와 두 딸이만 남았다. 아브라함은 그 황패한 땅에서, 점점 부유한다. 아브라함의 살아 있는 목표로 여기고, 그의 살아 있는 목표는 하나님을 붙잡는 것이며, 하나님은 나의 모든 것이고! 나 하나님이 나의 외동아들 이삭을 원하시더라도, 나는 나의 하나님을 위하여 모든 대가를 치것이 하고자 하노니, 니는 그것이 최고의 선택입니다!

우리 형제 자매는 우리 안의 낡은 논리 체계를 완전히 허물어뜨리기 위해 다시 마음을 굳히기 시작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새로운 것이며, 우리 안에 있는 관념과 충격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을 원하겠는가? 절대 두 개를 하나로 셖어서는 안 된다. 두 개의 섞여하는 것이 잡화라고 한다. 바로<성경>에 말씀의 음부 음란 기생이 한다. 이스라엘 또 먹고 쓰고 놀고 싶고, 주님을도 믿고 싶고, 하늘나라의 이득도 얻고 싶고, 세상의 이득도 얻고 싶어 양다리를 발로 밟는다면 음행이 아니라 그게 뭐죠?

오늘 나 이야기 하는 것이, 여러분은 깊이 다기 성찰하실고 있으신가요? 만약 원하면, 우리는 그 새 것을 보존하기 시작할 것이다. 찢어지지 말고, 그 헌 옷을 버리고, 새 옷을 입어라. 그 늙은 가족 부대를 버리고, 새 가족 부대로 갈아고, 새 포도주를 담으며, 새로 만든 사람이 되고. 마음에 맞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따르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레위, 야고보 베드로 요한차럼 예수님 따르기에 충분하니. 내가 네게 말하노니, 예수 그리스도의 같은 보배로운 준재가 되는 것은 우리 일평생의 복이라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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