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누가복음제 00-누가복음의 기본 신학관점

【성경공부】누가복음제 00-누가복음의 기본 신학관점

서론: 우라가 배운 방법이 모두 확실하다는 것을 알게하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우리는 <누가복음>한장씩 한장씩 사펴보도로 하겠습니다. 과거에 우리는 <마가복음>,마태복음>, <요한복음>을 공부해고 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복음서에 마지막<누가복음>을 공부하도로 한다. 우리가 이 네 권 복음서을 대조해 보면, 모두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때부터 십자가에 못 박힌 채 죽음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기까지의 이야기를 하는 매우 뚜렷한 특징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네 권의 책의 핵심은 완전히 다르다. 누가의 측면 해심은 이 일을 자세히 한번 고찰하여 다음에 쓰는 것이다. 예를들어 처음에 말하기를: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과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다.”(<누가복음>1:!-4).

나는 먼저 이 책을 전체적인 개괄을 해서 모두가 <누가복음>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할 것이다. <마태복음>은 많은 세부 사황을 간단하여썼는데, 때때로 우리가 읽으면 약간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예를들어 내가 주님을 처음 믿음할 때, 예수님 시몬 베도로에게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 오너라! 그리고 베도로 쉽게 자신의 물건을 버리고 에수님을 따라왔다. 듣자니 약간 신화 같았다. 그러나 <누가복음>은 주 예수님을 어떻게 따르는지 상세하게 묘사했다.

사복음서는 자신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마가복음>의 특징은 가르치는 것이 많지 않고, 기족과 가이한 일이 많이 들어 있으면,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 <마태복음>은: 두 나라, 두 가지추구, 두 가지 결과입니다”. <누가복음>을 처음부터 자세히 사펴보는 것은 배운길이 모두 확실한 것임을 알 수 이게해 줍니다. <요한복음>네는 분명한 유대인의 사고방식이 있는데, 대부분은 영원한 생명의 길을 논술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 세례 요한의 출생을 매우 자세하게 묘사한 역사를 기록한 사실과 비슷합니다. 오늘 저는 <누가복음>에 대해 개괄적인 요약을 해 주는데, 그 목적은 우리가 배우는 길이 모두 확실한 것임을 알리기 위한 것입니다. 누가는 사도 바울의 제자였던, 예수님을 보 적이 없으며, 자세한 고찰을 통해 그러한 일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누가가 의사이기는 하지만, 그가 기록한 스타일은 역사학자와 비슷하며, 기본적으로 일의 발생과 발전과 결과를 기록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누가는 <누가복음>뿐만 아니라, <사도행전>도 썼습니다. <사도행전>은 주로 사도 바울의 역사, 맨 앞에 다른 사도들이 기록되어 있지만, 사실 그 사람들에 대해서도 잘 알지는 못하지만, 그가 직접 본 것, 곧 교회 초기부터 사도 바울이 로마로 잡혀간 것까지의 일들이 기록되었다. 누가는 배운 길이 모두 확실한 것임을 어떻게 알 수 있었습니까? 그가 사도 바울이 행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누가도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하는 사람이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시는 권능을 직접 본 분이라고 믿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은 신앙의 권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누가는 과거의 역사를 하나하나 기록했는데, 그는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하면서, 글자 속에 뚜렷한 측중점을 흘리고 있었다. <사도행전>과 미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첫 번째 장에서는 세례 요한의 출생을 다룬<누가복음>제1장에서는 성령이 충만한 것에 대해 여러 차례 이야기했으며, 누가의 신학 체계에 미치는 성령의 충만함은 매우 영향을 깊다. 누가의 두 번째 책인 <사도행전>은 성령이 어떻게 제자를 삼았는지, 사도 바울이 어디에서나 끊임없이 전파하고 전파하는 방식에 분명한 특징이 있는 이융를 헤아려 볼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가 사람들에게 물었더니 당신은 회개했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는가? 여러분은 세례를 받은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은 있습니까?

우리는 성령에 의해 씻겨지고 성경으로 충만해지는 것이 사실상 바울의 신학 체계에 관통한다는 분명한 특징을 보았습니다. 누가가 기록한 성령이 충만하게 된 일은 <사도행전> 가운데서 일어났으며, 그 제자들에게 성령이 내려왔을 때, 누가는 아예 현장에 없었다, 누가는 사도 바울이 한 일을 본 것이다. 그는 세례 요한, 예수님, 심지어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해 말씀할 때, 성령 충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1장에서 요한은 어머니 배 안에서 영으로 충만해졌고,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자, 예언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령이 충만하다는 말씀은 구약에서 별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누가는 이 일을 고찰하면서, 성령이 충만하다는 분명한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성령이 충만해지는 것은 사실상 그기스도 신앙의 능력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누가가 성령이 충만하다고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사도행전>에 나오는 방언 기도를 여러 번 하는 것을 의미하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되어 승천하시기 전에,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 마리아의 몸 속에 태어가 형성되기 전부터 영이 충만하다는 개념에 대해 새롭게 인식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과 누가의 신학 체계에서 성령이 충만하게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므로, 성령이 충많하다는 점에 유의하십시요.

예수님께서 세우신 것은, 많은 사람을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누가복음>2:34).

두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워졌다는 점에서, 매우 흥함로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고 나서 부모에 의해 성전에 안겼을 때, 한 선지자가 아이를 향해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누가복음>2:34).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은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일으키게 하는, 매우 특이한 신앙이며, 회방하는 말씀을 하여,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생각을 드러내게 한다. 비전신학은 이 일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으며, 많은 사람이 넘어지는 것은 매우 정상이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흥함을 하든 것도 정상이었습니다.

누가는 많은 사람이 넘어지는 일을 기록하면서, 사도 바울을 따라 교회를 세웠으며, 그는 수십 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실 때 있었던 일을 되새겼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면서 발견한 바에 따르면, 많은 사람이 넘어지고, 많은 사람이 일어납니다. 오늘날까지 우리가 발견한 특징과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은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 넘어지고 떠나는 것이 정산이며, 우리 교회 안에서는 사람의 넘어짐과 떠나가는 일이 매년1-2 바튀 생격다. 심지어 더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며칠 전에 자매의 말에 따르면, 우리 교회는 마귀의 적들을 대적하여, 끊임없이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영적인 길을 오라올 때에. 많은 사람들이 떠나거나, 많은 사람들이 플려났고. 치유를 받고. 말씀했습니다, 저는 또한 우리가 교회를 세우하는 과정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를 알게 될 때마다, 치유의 석방이 추진될 때마다, 많은 사람이 넘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 알겠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는 마귀의 대적과 싸워야 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넘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한 가지 확실한 점은 그러한 사람들 사이에 거짓이 많이 셍ㄱ;고. 그들 안에 거짓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사역의 할 때마다. 여전히 정성을 합니다. 내가 어떤 사람들을 사역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분명하지만, 그 사람의 마귀의 속아야 한다. 그 사람이 이유 없이 나를 미워하게 돨 거야, 나는 당신은 나를 미워하는 것이 정성이다. 영적의 전쟁이기 때문에, 마귀에게 거짓을 당하는 것이다.

사실 마귀는 매우 심합니다. 우리는 오늘 우리 자신이 넘어질 사람이 아닌가 하고 자문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마귀에게 속아 넘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 자신은 전혀 알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시면 많은 사람이 넘어지고, 많은 사람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한 가지 좋은 소식을 전합니다. 그 길을 달리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떠날 때마다 교회는 다시 한 번 한 걸음 더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교회에 성장한 것이 보겠됩니다.

이것이 바로 많은 사람들이 넘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일어납니다. 그런 해석이 맞는지 물어 보셨어요? 난 몰라. 하지만 누가, 사도 바울이 사역하던 그 시절, 그들은 분명 그런 상황을 보았을 것이다. 우리는 오늘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더 깊이 알게 되면. 많은 사람이 넘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일어설 수 있는 법칙입니다.

교회가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속셈이 드러나는 것을 알 구 있습니다. 네 생각은 한동안 감출 수도 있지만, 오래 숨길 수는 없다. 같이 따라갈 수는 있지만, 얼마나 따라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예수님께서 일으킴을 받으셨을 때,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담긴 생각이 드러났습니다.

얼마 전에 저는 넘어지는 것에 대한 설교를 했는데, 넘어지는 것은 정상인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을 선별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선별하는 과정 중에 성령과 성령의 불로 우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 누가는 어떻게 묘사했나요?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것이요.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다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누가복음>3:16-17).

우리는 교회가 선행 단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니다. 예수 그릿도께서 권세는 주관 교회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권세을 행하는 것이 당신의 마음과 일치하거나 내 마음과 꼭 맞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ㅅ릇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는 잘려 불에 던져지는 가혹한 마나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는 점차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당신은 알곡은 입니까, 쭉정입니까?

누가의 신학 체계는 <누가복음>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제가 이 복음서를 해심했을 때, 그 안에 그러한 개관가 선명하게 기록되어 있고, 틀이 세워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복음서를 읽을 때, 특히 마태, 누가와 같은 읽기 어려운 복음서을 읽어야 하는데. 틀이 없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나무만 보면 숲을 볼 수 없고. 보이는 것은 모두 하나의 체계가 되도록 조직하는 법을 모르는 것이다.

누가는 당신  예수 그리스도의 신앙이 큰 능력의 신앙임을 잘 알고 있었으며, 예수님께서 성령의 권능으로 가득 찬 것은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권능으로 충만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부활하실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이 영으로 충만해 있을에 틀임없습니다. 이 권능은 <이사야서> 제60장11잘ㅇ,ㄹ 텅헤 오늘닐 우리가 믿는 복음을 분명하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의 운해하는 것은 바로 복음의 핵심 관건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ㅔ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9,누가복음>4:18-19).

다시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으로 돌아간다면, 누가와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가 모두 하나님의 영을 내게 임하신한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것은 복음의 핵심 요소이며, 이 능력으로 귀신을 쫓아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꼐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들여, 무엇을 하라고 하셨는가?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 복음을 전하시고. 누가도 <마태복음>에 나오는 산상 수훈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누가복음>이 주로 관통하는 전체 개념은 크고 능력 있는 복음이며, 그런 다음 두 가지 기초를 이야기한다.

누가는 <누가복음>에서 마태와 마가, 그리고 사도 바울이 섬김 관정에서 한 말씀을 주로 수집 정리한다. 그분은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직접 보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태어나셨는지, 십자가에 못 박히는 사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어떻게 부활할 것인지, 영이 어떻게 내려올 것인지로 기록하셨습니다. 그는 이러한 일들을 모두 기록하여 누가가 사도 바울에게서 받은 신학 체계를 온전히 재현하면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한 표징과 기이한 일들을 많이 기록하였다.

오늘날 형제 자매들은 사도 바울의 신학 체계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하는데. 그 가운데 예수님께 그분의 어머니와 그의  형제들이 왔다고,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하시니라”(<누가복음>8:21).

여기서 예수님께서 완곡한 표현을 사용하셨지만, 다른 복음서에서는 더 강한 표현을 사용하셨습니다.

“말하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라사대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하시고, 손을 내밀어 제자들을 가리켜 가라사대,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도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시더라.”(<마태복음>12:48-50).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좀 더 완곡하게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한 사람은 바로 나의 어머니와 형제였다. 실제로 이 말씀은 누가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큰 논리체계로 나타내며,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행해야 헤어릴 수 있다.

믿음, 외식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의 관한 개요.

누가는 다른 복음서들보다 믿음에 대해 더 자세히 알려 줍니다. 예를 들어, 혈루증에 걸린 여자가 예수님의 옷을 만지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더라 한 일을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더라.”(<누가복음>8:48).

믿음은 <누가복음> 전체를 관통하며, 누가가 <누가복음>을 쓰는 틀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누가복음>9:1).

제자들은 자신을 믿음으로써, 권세를 얻고, 각 성과 촌에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의 나라를 반포하시며, 병을 고쳐 귀신을 쫓았내고. 그 복음과 병 고쳐을 알리는 것은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열 두 제자가 함께 하였고. 주님께서는 또 70명의 제자를 택하셔서, 뱀과 전갈을 짓밟고, 귀신을 쫓아내고, 병을 고치시며 사람들을 자유로워지게 하셨습니다.

오늘날 누가가 사도 바울을 따라, 한 일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훈련시키신 일, 누가의 신학 체계을 따라 했다고 믿을 만한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한 이러한 개념들은 모두 기록해야 하며, 앞으로 한 장씩 한 장씩 더 공부해 보면 더 명확질 것입니다.

누가는 또 외식하는 자을 말씀했는데, 누가는 어떻게 외식으로 답사했을까? 사실 누가 그 시절에는 많은 외식하여 자들이 많이 있었다, 외식하여 자들은 모세 이전부터 있었고, 오늘날까지 계속된다. 형제 자매들은 오늘날의 교회에서 외식하여 것이 매우 만연하고 누가와 사도 바울의 시대에도 매우 만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과거부터 지금까지도 헛되이 달려갈까 봐 두려워했는데. 그 말은 모든 일이 헛되이 행해지고 외식하여 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는 의미였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도 ㄴ 가의 논리 체계이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자기 나라에 들어오기르ㄹ발지만, 당신이 들어갈 수 있을지는 참으로 당신의 조화에 달려 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누가복음>13:24).

교화에서 사역하는 가운데, 우리는 보배들을 고르고 있으며, 우리는 모든 잡동사니가 아닙니다, 사람은 인원수자로 채우한다면, 그런 교회는 망가질 것이다. <사도행전>도 누가가 썼는데, 만약 너는 자세히 읽지 않으며, 사도 바울이 기도를 하고 설교를하면 심천 명이 주님을 믿고 오천 명이 주님을 믿은다고 생각하여, 오늘날까지도 이것이 좋은밀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만약 너는 자세히 읽을 보면, 누가가 사도 바울이 세운 교회를 따라가서, 거룩함과 함께을 추구하고 있는 것이지. 추구하는 것은 수가 아님을 알게 될 것입니다. 누가 이런 걸 쓸 때는 굉장히 기독교가 있어서 다 읽을 수 없을 수도 있지만, 사실 그는 이런 것에 공감하지 않고, 그것이 좋은 일이라는 데 공감했다면, 진작에 말했을 것이다. 누가는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인상은 별 좋지 않고. 후에 예루살렘 교회는 매우 가난해졌지만, 여전히 예루살렘 교회를 후원하고 싶어 했습니다. 누가와 사도 바울 모두는 사실을 행하는 분명한 특징을 나타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당신이 진지한 일을 하지 않으며, 식사를 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이것은 모두 매우 엄격합니다.

그러니 구원받은 사람이 적구나! 모두 내가 주님을 믿는다고 구원을 받을 것이다, 생각하지 마라. 당신은 정말로 구원을 받았나요? 많은 사람이 모세를 따라 홍해를 건넌 결과 모두 광야에서 죽지 않았습니까? 그 사람들이 구원을 받았는지, 구원을 받지 못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가의 해에는 이미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는 개념이 있었는데, 좁은 문이라는 개념은 다른 복음서들에 개념은 당른 복음서에 거의 기록되지 않았으며, <마태복음>에 말씀하는 것이 있다.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은 거의 기록되지 많이 없습니다.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번 닫은 후에,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 하면, 저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리니. 그 때에 너희가 말하되,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주는 또한 우리 길거리에서 가르치셨나이다 하나. 저가 너희에게 일러 가로되 나는 너희가 어디로서 왔느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 하리라.”(<누가복음>13:25-27).

이게 누구에 대한 말씀인가요? 기독교인들에게 하는 말씀이다. 그들은 모두 기독교인이었고, 그들 스스로 주 예수님을 안다고 생각하였고, 그 결과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하며, 너희가 어디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지난 주일에 내가 한 설교는 <누가복음>14장에 있었는데, 그때 누가는 이 말씀을 조심스럽게 기록했습니다. 당신이 삶을 살고 싶다면 예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이것은 좁은 문이다. 왜 좁은 문으로 밀지 않았나요? 내가 이제 밭이 사고, 다섯 쌍의 소를 샀고, 아내를 얻었기 때문에....그러면 예수님을 따를 방법이 없습니다.

사실 이 개념은 사도 바울 시대에 있었는데, 결혼에 관한 바울의 견해가 그 점을 더 잘 반응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혼은 죄를 짓는 것이 아니지만, 결혼하자마자 육신은 고통을 더 많이 받게 될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부탁이 있고. 아내가 남편에게 부탁을 하고 서로가 서로의 기쁨을 얻어야 하는데, 사실 살림살이를 하기 위해서 그런 일이기 때문이다.

살림살이는 우리의 신앙생활을 가로막는 매우 큰 장애물이다. 부모, 아내, 자녀, 형제, 자매, 자신의 목숨을 예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수 없으며, 다시 말해 예수님와는 전혀 과계가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믿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데. 사실 예수님은 믿지 않는다, 예수님은 재자를 삼은다, 그래서 우리는 누가가 말한 것을 자세히 헤어려야 한다. 누가는 작은 일에도 충실해야 큰 일에 충실할 수 있다는 개념도 이야기했습니다.

“지극히 적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물의하니라,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나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누가복음>16:10-13).

우리는 우리가 살림을 하기 위해 이런 것들에 신경을 쓴다면 하나님을 섬길 방법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누가가 롯이 살림하는 사람인 롯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생각해 보면. 롯의 아내는 더욱 그러합니다. 결과는 어땠나요?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기록했습니다.

“롯의 처를 생각하라. 무릇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누가복음>17:32-33).

우리는 오늘 롯에 대해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결국 누가는 다른 복음서에서도 알려 주듯이, 한 사람이 육신으로 하나님을 섬길 방법은 없으면, 사도 베드로조차도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한 적이 있다고 알려 줍니다. 그러므로 육신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으면, 반드시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결론:

저는 여러분께 <누가복음> 전체를 개요를 하나의 틀을 만들기 시작하게 했습니다. 이것이 누가가 제시한 개념과 그의 신학 체계이다. 제가 여러분에게 작은 숙제를 하나 남길 테니. 제1장에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자세히 생각해 보세요? 만약 <주님의 그릇이 되고자 하는 열망>을 제1장의 주제로 쓴다면, 적합합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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