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계시록제13장-승리하지 못한 사람의 그 마지막이

【성경공부】<계시록 >제13장-승리하지 못한 사람의 그 마지막이

서론:
<계시록>의 이 장은 이기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기"라는 단어가 <계시록>에 매우 자주 등장하는 것을 봅니다. 이기는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요한 <계시록>12장 말씀을 보겠습니다: "목숨을 아끼지 않는 형제가 하늘에 있는 마귀 곧 사단과 옛 뱀을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이것이 이기의 관건입니다.

만약 한 사람이 이기고 싶다면, 생사를 꿔뚫어 봐야한다, 두려워서 자신의 생명을 아끼면 이길 수 없다! 사람의 마음 속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인간의 특징이 있다. 죽음을 두려워한다면, 이 사람은 관제 될 것이다. 우리는 오늘 세상을 자세히 살펴 보면,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반드시 많은 결점과 많은 문제를 발견할 것이다. 종양과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면, 종양과의 일부 환자를 발견할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결과는 결국 죽는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아직 죽지 않는 것 같다.

한 사람이 이길 수 있을지 없을지는 마음이 상태에 달려있다

한때 미국의 기업가가 있었는데, 그는 매우 충명하고, 또한 매우 유명하다. 오늘 우리가 사용하는 컴퓨터 칩은 대부분 그의 회사에서 생산한 것이다. 이 사람은 암에 걸렸다, 그는 사람이 살아 다가 죽는다는 것은 알기 때문에, 그는 죽음을 두려하지 않은 것이다. 사실은 그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에, 그 안에 영생의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회사의 고위 경영진에서 은퇴하고, 도서관에 가서 암 치료 계획을 공부하고, 암 지료 방법에 대한 책을 썼고, 2년 후 암이 완전히 사라지고, 건강이 회복되었습니다. 나중에 어떤 중국인들이 이 책을 읽고, 기업가가 쓴 대로, 무엇을 먹고 마실지 그대로 했고, 결국가 악회되면서 상황은 매우 나빠졌다. 사실 핵심 문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핵심은 죽음을 두려워하느냐에 있다.

사실 한 사람이 암을 이기는 관건은 그의 정신상태에 있고. 한 사람의 심리 상태가 그의 미래 방향을 결정 한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결국 더 잘 산다. 이거 이상하 잖아! 사실 이 세상에는 많은 일 들이 이렇습니다. 동을 탐내고 돈을 사랑하는 사람은 돈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돈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아요, 돈이 많을 거예요.

우리는 오늘 이 일을 자세히 생각할 때, 어떤 규칙을 총결해 낼 수 있습니까? 이 규칙은 우리가 <성경>에서 일은 규칙과 매우 비슷하기 때문에, 모두가 <성경>을 잘 읽어야 한다. 지난 장을 돌이켜 보면 이기한 기독교인들은 모두 공중에서 주님를 만나고, 이기하지 못한 기독교인들은 땅에 남았다.

이기지 못한 기독교인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놀랍게 여겨 짐승을 떠르고.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이르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냐, 누가 능히 이와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계시록>13:2-4).

이 사상자는 어디에서 났습니까? 바로 지난 장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는 기독교인과 영적의 싸움을 하다가, 짐승이 다쳤는데, 이번 에는 짐승이 정말 대단하다, 땅에 있는 기독교인들이 일어나 싸웠지만, 이번 에는 이길 수 없었다.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에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시록>13:7-8).

결국 이 짐승은 각 민족, 각 민족, 각 나라, 각 국을 제압 했다. 이때 전 세계는 통일 된 나라가 되었다. 이 짐승은 도대체 누구 일까? 사실은 이 글을 통해 누군지 분석할 방법이 없지만,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계시록>13:2). 처럼 생겼다. 이어서 우리는 또 다른 짐승을 보았다: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양 같이 두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다라.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께시록>13:11-15).

땅에 남은 승리하지 못한 기독교인들의 결말은 세가지가 있다: 첫번째, 경말은 짐승과 싸우는 것이다; 두 번째는 짐승을 섬기는 우상이다, 절을 하지 않으면 살해당한다; 세 번째는 그들이 이마에 짐승의 흔적을 남기지 않으면 장사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기하는 것이 관건이다

이기 하지 못 한 기독교인들이 이기로 역전하려면, 죽음에 연연하지 않고, 죽음에 연연하지 않으면, 그 짐승의 우사에게 섬길 수 없는 기독교인들은 그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다면, 결국 죽임을 당하고, 그 짐승을 이길 수 없으며, 짐승의 우상을 섬길 수도 없고, 장사를 할 수도 없다. 관건은 이기는 것이다. 이기는 것은 이미 올라 되었고. 이길 수 없는 것은 지금과 같은 결말이다.

첫 번째의 그리스도인, 그가 영생을 선택한다면, 이때도 기회가 있다. 두 번째의, 유형은 기독교인 이지만, 그는 짐승과 짐승의 우상을 선택 했다. 살아 있어도 생명책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런 기독교인들은 얼마나 살수 있습니까? 살해된 기독교인을 선택하지 않으면, 결과는 3년반에 불과하다. 사실이 짐승은 이 세상에서 이 세상을 다스리고, 마음대로 가도 3년반 밖에 안된다. 3년반의 시간 후에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권세를 장합니다.

전체 <계시록>의 시간 표를 돌이켜 보면, 첫 번째 시간표는 이기의 교회를 말씀하는 것이다. 두 번째 시간표는, 일곱인을 떼시고, 일곱인을 일곱 나팔을 포함하며, 일곱인을 금대접을 포함합니다.

<계시록>13장 에서는 일곱 금대접 전까지의 날을 이야기 했다. 짐승을 섬기고, 그럭저럭 살아 간다면, 3년반은 살수 있을 것이다. 3년반 동안 극심한 재난을 겪었으니, 정말 감당할 수 없다. 오늘 형제자매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이긴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 비록 죽어도 목숨을 아끼지 않는 기독교인이 되더라도, 우리는 어린양의 피와 형제의 증거 된도를 지킬 것이다.

사람의 가장 큰 곤혹은 바로 "살기 위해" 삶 것이다.

인간의 가장 큰 곤혹은 살기 위한 삶은 것이다. 사람의 논리는 매우 간단하다. 나는 살아야 한다. 돈이 있게 살아야 하지만, 진리는 아니다. "나는 돈이 있으면 일을 잘해야 하고, 일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만약 나의 일을 그르치면 안된다." 일에 차질이 생길까봐 두려워 하다가 실수 할까봐 상황이 나빠졌다. 사실이 세상에서 당신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무엇을 신경쓰는지, 무엇을 통제하는지, 그래서 인류의 가장 큰 곤혹스로움은 바로 "살아 있는"것입니다.

제가들은 이야기를 들어 보겠습니다, 그 때는 일제시대 항일의 전쟁에서, 한 사람은 가문의 몇 세대 부잣집 도련님이었습니다. 그는 결혼하고, 그의 아내와 함께 주님를 믿었습니다. 주님를 믿은 후에 가업을 관심하지 않았습니다, 그 전에 읍에서 반절정도 모두 그들의 재산이었다. 결국 기업에 신경쓰지 않은 이후에, 소작인에게 재산을 나누어주었다. 그 중에 아주 큰 소작인이 있었다, 그 사람은 매우 총명해서, 재산의 절번을 차지 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 정부는 사람을 잡기 시작했고, 원래의 부자집 도련님과 그의 할아버지를 잡혔다. 주변 사람들은 "그들을 잡아서 뭘하느냐? 그는 지금 가난 해서 자기가 사는 허름한 집만 남았다"고 말 했다. 정부는 그를 보자 아! 사람을 잘 못 잡았다. 소작인은 주인의 재산 대부분을 차지한 소작인을 붙 잡아 총살하였 살행을 받았다. 이 소작인은 재수가 없어서, 반평생을 소작인으로 살았는데. 갑자기 똑똑해져서 남의 재산을 점유했다. 소작인의 마음은 주인의 재산의 절반을 차지 하지만, 아껴 먹고 아껴 쓰는 것이었다. 결국는 총살 되어 살행을 받고 죽었다. 반평생을 소작인으로 살았다고, 그 후에 몇년 동안 남의 재산을 강점한 후에 사람이 없어졌다고.

사람이 왜 알아 보지 못할까? 평생 살려면 얼마가 필요합니까? 사실 사라믄 평생 그렇게 많은 돈이 필여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형제자매는 이런 일들을 잘보는 것을 배워야 한다. 잘 보면 쉽게 곤혹 되지 않는다. 만약 당신이 곤혹 된다면, 당신은 그 짐승을 섬기기 시작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그 짐승을 섬기지 않는다면, 당신은 죽일 것입니까? 아니면 살 것입니까? 그 짐승은 땅에서 3년반, 3년반 후에 어떻게 합니까? 3년반 후에 그 소작인 보다 못할 지도 모른다. 우리 형제자매는 이 곤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만약 내가 공혹에서 벗어나면, 이 곤혹에서 죽지 않고. 곤혹 속에서 죽는 것은, 그것은 얼마나 슬픈가!

사람들은 등불을 불고 밀랍을 뽑듯이 죽습니다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삶과 죽음에 크게 신경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오늘 영생 속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영생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삶이든 죽든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만약 삶과 죽음이 그다지 개의치 않는다면, 당신은 또 무엇을 개의치 않습니까. 무엇이 당신의 통제가 될수 있습니까? 어떤 것도 너의 관할이 될수 없다.

만약에 아무것도 당신을 통제할 수 없다면, 우리는 <계시록>13장까지 것어갔고, 이곱반째 나팔을 아직 불어지 않았습니다. 11장 15절에 그날 소리가 나지 않았다고 기록 되었습니다. 모두가 이긴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할까요? 사람과 죽음을 꿔뚫어 보고, 삶과 죽음을 개의치 않는 부터, 사람이 사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그날 땅 사이에 일곱 천사가 나팔을 불면, 우리는 공중에서 주님와 만나는 것으로, 올라 가게 된다. <계시록>12장에서 15장의 재난은 우리와 관계가 없다.

생사에 곤혹 되지 말고, 영생을 믿어야한다.

만약 당신이 오늘 곤혹 되고 있다면, <계시록>에 13장에 이르렀다면, 당신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이때 당신은 한번의 기회가 있습니다. 바로 위주님로 죽는 것입니다. 짐승에게 져도, 짐승과 짐승의 우상을 섬기지 않고, 심지어 장사를 할 수 없습니다. 빵을 사지 않고, 아무것도 사지 않고, 죽으면 죽을 자신이 있습니다. 이때 당신의 이름은 생명책에 있습니다. 두려워 하지마세요. 당신은 "정말 영생이 있습니까? 아니면 가짜 영생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어쨌든 나는 영생이 있다고 믿습니다. 영생이 있다고 믿지 않는 것 보다 좋고, 희망이 있습니다, 사실은 정말 영생이 있다고 믿습니다.

며칠 전에 저는 강한 감동을 받았습니다. <영계는 진실있다>라는 책을 제일부변을 썼습니다. 만약에 영계가 진실이라면, 귀신은 진실이고, 영생도 진실입니다. 사람을 살게하는 것은 영이고, 육은 무의합니다. 그러면 육신이 죽으면 죽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형제자매는 이 단락을 들었습니다. 승리를 거둔 기독교인이되는 것이 없더라도, 지난장에서 이기지 못하면, 이장은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육체를 배려 하지 말고, 생사를 염두에 두지마라.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말고, 자신의 목숨을 아끼는 것은 정말 비참하다. 당신은 종양 병원에 가서, 암 환자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보세요. 그러면 당신이 본 후에 당신은 어떤 결론을 내릴 것입니까? 암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의 목숨을 아끼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면 당신은 암에 걸린지 않았는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마라---. 자신의 육체를 배려하지 마라. 육체를 배려하는 것은 무익하다. 이 일은 내가 여러번 말했기 때문에, 형제자매, 다시는 이런 육체를 배려하는 일을 하지 마라. 어떤 사람들은 육체를 배려하는 방법으로 양생하는것을 좋아한다. 내가 오늘 너에게 가장 좋은 건의를 하는 것은 바로 시중을 통해 양생하는 것이다. 이것이 참은 진정한 양생이다.

그래서 땅 위의 사람들의 가장 큰 곤혹스러움은, 바로 사는 것이다. 만약 네가 사는 것을 신경 쓰지 않는다면, 너는 곤혹 되지 않는다. 며칠 전에 한 자매가 우울증에 걸렸습니다. 우리는 우울증의 귀신을 쫓아내고 치유를 받은 후에, 돌아 가서 자신의 노력을 통해,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다고 생각하는데, 결국 우울증이 또 다시 재발한다. 그러면 이것은 곤혹이 아니라 무엇입니까? 희망을 세상에 세우는 것은 이 세상에서 오직 한 가지 일 만 있기 때문이다. 바로 하나님을 의지 하면,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는다. 자신의 노력에 의지 하는 것이 아니다. 우울증이 다시 재발해서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정신 질환에 걸리는 것은 매우 고통 스러운 일이라고 말 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자신의 삶과 죽음을 신경 쓰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신의 가족도 신경 쓰지 마세요. 당신이 일단 신경 쓰다면, 바로 무너질 것이다.

어느날, 우리 엄마가 침대에 누워서, 나에게 말 했다. "어들아, 빨리 너 동생을 불러와라", 나는 "왜? 엄마"라고 말 했다. 우리 엄마는 "나는 죽어 것 같아". 만약에 너라하면, 어떻 할까? 절반은 무너 지고 절반은 나 처럼 무너지지 않아야 한다. 나는 누가 죽든 상관 하지 않는다, 날마다 죽고 가는 사람들은 있는데, 어떻게 죽든 다 있다. 며칠 전에 우리는 동영상을 보았다. 고의적으로 허위증거를 조작하는 사람이, 경찰이 그를 잡으려고한다, 그는 도망가기 시작 했다. 도망 가는 중에 이쪽 저쪽 비겨하는 차에게 치여 죽었다. 그리고 경찰들은 현장에서 조사 결국, 이 사람이 차 부딪혀 죽은 모든 사망자 분인 책임을 판정했다. 우리 시대에, 당신은 삶과 죽음을 꿔뚫어 봅니다. 예를들어: 나는 우리 엄마가 곧 죽을 것 같은 모습을 보았다. 나는 엄마을 침대에서 끌어 올렸다, 나는 엄마을 함께 기도로 했다. 결과는 정신을 많이 좋아졌다. 산책을 할 수 있고, 내가 몇년 더 살수 있을 것이라고 느꼈다, 엄마가 말 했다.

오늘 내가 너에게 말 하는데, 육체를 배려하는 것은 죽음이고, 선악을 식별하는 것도 죽음이다. 세상과 세상의 일을 사랑하지 마라. 바로 네가 세계를 사랑하는 칭기즈칸 하거나, 아리산 처럼, 로마 황제 처럼 세상사랑하는 것이 사람들을. 마지막 에는 그렇지 않겠니? 오늘 그들도 모두 지나 갔다. 알렉산더는 매우 재미있었다. 그는 동쟁서전 용감한 싸움을 잘 한다. 죽을때 알았다: "아이고, 인생에 대해 내가 잘못 사라 했다네. 살아 있을때, 동쟁서전 싸우지만, 벌을 보지 못 했어, 죽을때 내 관 양쪽에 구멍을 하나씩 파서, 손을 밖에 두었어." 가람들이 이렇게 유언라고 했다고. 왜? 남에게 내 두 손이 텅빈 것을 보여 주며, 살아 있을때 이것저것 잡고, 마지막에 잡아 것은 죽였다 뿐이다.

오늘 우리는 더 이상 곤혹 속에서 살지 말고, 똑똑히 살고 삶과 죽음을 꿔뚫어 보며, 이기의 생명을 살아야 한다. 우리를 관할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에서 영생의 복을 빼앗을 수 있는 것도 없다. 너는 알아야 한다. 너는 영생이 없으면, 어떻게 알겠느냐, 그렇지? 그러면 너는 정말 영생이 있느냐? 지짜 있습니다! 우리가 영계에 진실이라는 것을 알었을때, 너는 영생을 믿게 되는 것이다.

이기는 것은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을 입니다.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계시록>13:10).

만약 당신이 이길 수 없는 기독교인의 결말이 이렇게 비참한 것을 본다면. 당신은 기독교인이라면, 여기까지 읽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입니까? 성도의 인내와 믿음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성도의 인내와 믿음을 가지고 이기는 기독교인이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이 세상을 꿔뚫어 보았다. 이런 끝은, 네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하나님은 이미 이 세상의 결말을 우리에게 계시 했다. 지금 어떻게 미래가 어떻든간에, 너는 성도의 인내와 자신감을 얻을 수 있을까? 오늘은 힘든었지만, 이기지 못하는 것 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이기지 못하는 것이 더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형제자매, <계시록>12장에서 이긴 기독교인, 13장에서 이길수 없는 기독교인은 누구에게 쓰는 것입니까? 오늘 이긴 사람에게 쓰는 것이다. 이 이긴 사람은, 이 이기지 못한 사람들의 결말을 보았다. "아이고, 안돼, 이긴 기독교인이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리고 14장에 이르러 짐승과 짐승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은, 그의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밤낮으로 잠을 이루지 못 했다, 성도들의 인내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진리를 따르는 것입니다. 이 성도들의 인내는 이때의 인내를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승리를 거둔 기독교인의 인내를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자매는 읽은 후에 바로 정신을 차리고, 정신을 차리면, 당신은 여전히 무엇이 걱정합니까.

그 삶과 죽음, 사장이나, 일 이나, 인간관계이나, 돈 이나, 모두 다 중요하지 않는다. 더 이상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단지 한 가지 일에만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무엇이든 악마를 이길수 있습니다. 이 영적의 세계에서 이기는 싸움을 하는데, 이길수 없는 대가가 너무 크다. 이 이길수 없는 고통은 여기에도 쓰여 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밤낮으로 안녕하지 못하고, 어떤 사람이 죽었다면, 그 날을 어떻게 보냈을까? 목숨을 아끼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목숨을 아끼고, 죽음을 두려워 하기 때무이ㅔ 살아 갈수 없다. 형제자매는 자신의 삶과 죽음에 신경 쓰지 말고, 이기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나는 예전에, <계시록>13장 읽으때, 성도의 인내와 믿음은, 또한 13장와 14장의 성도의 인내와 믿음이, 바로 이런 이기하지 못한 것을 알고해는데. 오늘 나는 마침내 진정으로 깨달았다. 원래 13장에서 이겼고 이긴 기독교인들의 인내와 믿음 것은, 성령의 우리에게 이길수 없는 결과를 계시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은 무엇이든 이겨야 한다. 너는 이기의 결과가 가져온 아름다움을 확실히 알아야한다. 오늘 우리가 전하는 밍딩(命定)신학을, 무슨 뜻입니까? 바로 이기하는 신학이다. 죽어 후에 천국에 가는 현묘한 구원받은 것이 아니다. <성경>에서 말씀한 것 처럼, 만약에 네가 구원을 받으면, 온전히 들어가 이기한 기독교인이 될 것이다.

<성경>의 뚜렷한 기록에 이기를 거둔 기독교인들이, 어떻다고 기록 되어 있는데, 이것 보다 무엇이 좋을까? 우리는 영원속에서 주 예수님와 함께 영원한 영광을 누리고, 면류관을 받으며, 마귀 보다 낫다. 죽어서 죽더라도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 <성경>에 있는 모든 하나님과 관련 된 언약은 우리의 것이고, 싸움에서 이기고, 언약을 받고. 이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사람은 이기지 못하면, 죽을 지경이고, 얻는 것은 모두 고통이다, 오늘 이겨야 할 뿐만 아니라, 영원히 하나님의 언약을 받아야 한다면. 오늘은 잘 살지 못 할것이다면. 게다가 <계시록>12장에서 14장 속에의 상황에 이르었다면, 더욱 괴로울 것이다. 그래서 오늘 형제자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시는, 우리의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오직 그 분을 사랑하셨고, 죽을때까지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모든 아름다운 언약은 우리의 것입니다!아멘!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축복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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