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계시록제12장-영적 전쟁에서 이기하는 열쇠
【성경공부】계시록제12장-영적 전쟁에서 이기하는 열쇠
오늘 우리는 계시록 12장을 봅니다. 이 장은 영적 전쟁에서 이기하는 열쇠가 되는 중요한 계시를 줍니다. 당신이 좋든 싫든 이기의 아이디어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기는필수입니다. 당신이 정복할 수 없다면, 하나님은 당신이 정복할 수 있도록 훈련하시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형제자매들이 이기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너무 많은 것들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육신에 사로잡혀 선악을 분별하거나, 삶과 죽음을 꿰뚫어 보지 못 합니다.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복 수 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알고 계십니까? 이 세상 사람의 벡퍼센트가 살다가 다 죽었습니다. 이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살아 온 사람은 없다. 죽음 에서 살아 난 나사로가, 그도 후에 죽였느니라, 너희가 나사로가 오늘날 까지 사는 것을 보지 못하였고, 이천 여세까지 사는 사람도 없었다. 만약 우리 모두가 삶은 것은 철저하게 본다면, 사는 것은 매우 간단한 것이고, 이기도 매우 간단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왜 충분히 이길 수 없습니까?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한 형제의 전화를 받았는데, 이 형제는 매우 고민스럽고 괴로웠다, 왜 일까? 20만 위안의 대출이 곧 만기되기 때문에, 만기가 되어도 갚지 않으면 신용을 잃게 될것이다, 그의 말을 듣고, 나는 한 마디 물었다, "신용을 잃으면 어찌겠어요?" 그는 사실 별로라고 말했다. 죽어도 상관 없어, 신용을 잃으면 뭐가 무서워, 어떤 사람들은 내 말이 틀렸다고 느낄것이다, 난ㄴ 죽기보다 많은 일이 작은 일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만약 한 사람이 이천만 위안을 빌렸다면, 너는 무슨 일이 일어 날지 아니? 은행은 그가 죽는 것을 두려워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죽어면 빚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죽는 것도 아니다, 그럼 "목사님,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럼 내 장사는 어떡하지?" 장사도 삶과 죽음 보다 못하다. 그럼 삶을 꿰뚫어보면 많은 일은 일이 아니야!
어떤 사람들은 알아 보지 못하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열심히 살고 싶고 많은 것에 신경을 쓰지만 비참하게 산다. 오늘 우리가 영들이 싸우고 이기는 관건을 말하는데,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계시록>12:11). 이 말씀 잘하네! 근데 누가 할 수 있을까요? 네가 똑똑히 보기만 한다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린도전서>2:15-16).
왜 영적에 속하는 사람은 만사를 꿰뚫어 볼수 있습니까? 영적에 속하는 사람이 서 있는 높이가 다르기 때문에, 한 사람이 높이가 높지않으면, 이생의 높이에서라, 네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70,80년만 살면, 90살까지 살수 있을 것이다. 만약 네가 올해 50대라면, 몇년 지나면, 60세가 되고, 몇년 지나면 70. 80세가 된다면, 어쨌든 언젠가는 네가 세상을 떠날 것이다, 만약 네가 알아 보지 못한다면, 나는 미안하다고 말 할 수 밖에 없다. 이 장의 첫마리는 이렇게 말씀한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가 있는데, 그 발 아래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두 별의 면루관을 썼더라. 이 여자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하늘에 또 다른 이적이 보이니, 보라 한 큰 붉은 용이 있어 머리가 일곱이요, 뿔이 열이라, 그 여러 머리에 일곱 면류관이 있는데. 그 꼬리다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 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계시록>12:1-4).
여기까지 읽으니, 안개가 자욱하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야? 당분간은 모르겠지만 괜찮아, 사실은 네가 이 주제를 잡는데 영향을 주지 않ㅇ, 네가 다시 아래에서 읽으면 "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원래 이장은 이기를 말씀한다, 그럼 이기는 어떻게 된거예요?
"그 꼬리가 하늘 별 삼분의 일을 끌어다가, 땅에 던지더라, 용이 해산 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그 여자가 광야로 도망하매, 그기서 일천 이백 육십 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계시록>12:4-6).
그러니까 이곳은 사실 이기의 문제를 이야기 하고 있다는 거야. 왜 그러세요? 아이가 하나님의 보좌에 언급 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이기의 승전표입니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쌔,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계시록>12:7-9).
계속 읽으면, <계시록>1 장에서 여기까지 이기를 말씀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것이다. 우리 형제는 이 장의 주제가 무엇인지 꼭 알아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읽는데, 사실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있다. 마치 학만을 하고 지식을 배우는 것처럼, 아무도 "나는 다 알았다고" 말할 수 없. 설령 네가 컴퓨터 전문가라 하더라도, 너는 다아는 것이 아니라. 항상 모르는 점이 있다.
오늘 우리는 <성경>을 읽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아는 것도 있고 모르는 것도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데 조금 모르고 내가 다 모르다고 말한다. 사실은 조금 모르는 사람이 많아서, 나는 오늘도 모두에게 <성경>을 공부하는 것을 다 잘 아는다고 말할 자격이 없다. 만약 너의 그 기준에 따른다면, 나는 모르는 것이 많아 질 것이다. "그 여지기 누구 입니까?" 나는 <성경>에서 말씀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도 모른다, 그 "아이가 누구 인지?" 나도 잘 모르게지만, 말 해도 멋대로 추측하는 것이다.
그럼 "그럼<성경>은 어떻게 가져가세요?" "읽을 수 있는 것들만 공부해보자." 말 잘 했습니다. 이것이 나의 장점이다. 나의 장점은 내가 항상 모르는 것이 있지만 괜찮아! 어차피 하나님을 아는 것은 끝이 없으니, 나는 나 자신을 잘 위로 할 것이다. 예를들어 <창세기> 우리 몇년동안 <성경>공부 하고 왔는데, 몇년 후에도 <창세기>를 공부했지만 앞뒤의 소감은 다릅니까 못읽었으니까 괜찮아. 그럼 읽은 걸 나워, 우리는 공부하는 방법이든 일하는 바법이든, <성경>을 읽고 주님를 믿는 바법이든 항상 아는 것이 있고 모르는 것이 있다.
한 사람의 가장 좋은 장점은 바로 알고 있는것이다. "나는 모른다는 것은." 알아요. "제가 모르는게 많아요. 계속 공부하고 계속 발전 해요."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자신을 속이고, 그가 모르는 것은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번거롭다. 예를들어 운전을 하고 주차장에서 밖으로 나가면 차가 있는 줄 모르고, 액셀러레이터를 밟고나오면 '광!' 차에 부딪혔어! 누구를 탓하느냐? 네가 알고 있다고 생각 했기 때문에. 사실 너는 몰랐다. 너는 차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 했는데, 사실은 마침 차가 왔다.
곡모길에서 큰 길이 나오니, 주의해서 보아라, 나는 도로 안전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러나 도로 안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원칙을 말하는 것이다. 바로 네가 모르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장점이다. 몰라, 괜찮아, 더 천천히 공부 하고 알면 되잖아. 알수 있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당신이 이 일을 말 하려고 한다면, 이 일을 나는 알고 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을로 부터 나느니라"(<마태복음>5:37). 그런 줄 알면서도 "아니야"라고 멀하고, 아닌 줄 알면서도 '네'라고 인정하면, 큰 일나요.
많은 사람들이 이 문장 한편을 읽고는 어리둥절하게 읽었다. 오늘 나는 한 기업 사장의 문자 메세지는 받았다. 그도 나의 좋은 친구이다. 이 문자는 나에게 나의 느낌을 보여 주었다. 많은 사람들이 다 읽고 자신은 읽지 못했지만, 그기 메세지 잘 쓴 줄알았다. 나는 읽은 후에 읽지 못 했다고느꼈다, 그러나 나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나는 읽지 못 했다. 결코 전혀 모르는 갓이 아니라, 그가 쓴 것이 좀 혼란스러웠다고 느꼈다, 나는 이 친구에게 문자 메세지를 답장을 보냈다. 나는 이 메세지를 읽었다고 말했는데, 좀 복잡하다고 느꼈지만, 나는 아마 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도덕 관념을 이야기 하고 있다, 나는 <성경>이 사실 도덕경이 아니라고 논리 했다. 나의 언외의 뜻은 매우 뚜렷하다, 왜냐하면 그가 말하는 것은 도덕윤리이고, 내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권세있다. 나는 이 말을 다시 끌고왔다. 네가 읽을 수 없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지마라. 그러면 네가 읽을 수 있는 것을 이해한 후에 네가 읽을 수 있는 것을 판단 해라. 오늘 <계시록>12장을 읽어보니 "그가 땅으로 내 쫓기니라" 것은 무슨 뜻인지 모르겠더라고요? "남자를 낳은 여자를 박해하는지라"은 모두 무엇입니까? 나는 대담하게 이 남자 아이를 바로 예수님와 교회라고 추측 했다. 여기서 왜 예수님과 교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일까?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을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합니다.
왜 그랬을까? <계시록>의 11장에서는 종말 나팔이 울리고 교회가 하늘로 올라가게 되면 이 두가지 일이 연결 될수 있다고 말 했다. 교회가 올라가게 된 것은 교회가 이겼기 때문이다. 교회와 예수님은 앞으로 지상 만국을 관할 할것이고, 나머지 자녀는 올라가지 않았다, 즉, 이긴 것이 올라가게 되었고, 이긴 것이 못하면 올라가지 못해다. 어떤 형제는 올라가게 되었고; 어떤 형제는 올라가지 못해다. 그 승리한 사람은 올라가게 되었고; 승리 하지 못한 사람은 남았다. 그래서 여기서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다"고 말씀하면, 남으면 화가 생긴다. 용이 하늘에서 떨어졌기 때문에,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이것은 대담하게 추측한 것이니, 너는 받아들일 수도 있고,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이것은 내가 아는 이긴 것이다.
이겼은 관건은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있다.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계시록>12:11).
이 <성경>에서 말씀을 잘하는데, 너는 "알아들을 수 있니?"라고 말씀했다. 알아들을 수 있다"고 말 했다,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이 말씀을 우리들을 알아들어 수 있고 읽을 수 있다. 형제가 이기는 관건은 어린양의 피와 우리가 증언 되는 말에 있다. 우리가 증언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있은 복음. 만약 이 능력있는 복음을 능력없는 복음으로 만들면, 무엇을 증명하겠는가?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는 말씀을 좋습니다. 저는 이런 말씀이 좋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에게 도전하는 것을 좋아한다. "정말이야?" "그럼 죽여 버릴테니까 해봐!" 죽여버리면 고마워 해야지! 나는 진작부터 지겨워 죽고 싶었지만, 자살할 수 없었다. 나의 죽음과 삶은 모두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에, 만약에 어느날 죽으면, 나는 하나님에게 감사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침내 이 세상의 노고와 근심을 끝냈다.
사람이 사는게 정말 재미 있어요? 네가 간판하면 그렇게 재미 있지 않다고느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 세상에서 사고 팔고 먹고 마시며, 시집도 가고 장가도 가고 좋다고 생각한다면, 만약에 나쁜 날이 왔을때는 매일이, 하늘을 불러도 대답이 없고, 땅을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며칠 전에 한 자매의 엄마가 곧 죽을 것같았다, 그자매는 싸움을 기도하며 어머니를 깨웠었다, 이 자매의 어머니는 매우 지식적이고 예이도 있고 사리에 밝은 사람이지만, 사람이 살는 것이 정말 알고 있습니까? 80살이 넘었는데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생사를 알아 보지 못한다면, 정말 슬프다,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제 가르침을 통해 알아 보기 시작했을 거라고 생각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기고 싶으면 ㅈ못숨을 아끼지 말자. 네가 아끼든 안 아끼든 네 차례야, 네가 말 한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한동안 우리엄마는 나에게 자기 죽은 후에 어떻게 계획 하느냐고 물었다. 내가: "엄마는 죽은 후에 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내가 어떻게 해야돼? 너도 안 된다고 했잖아, 그렇지? 그러니까 지금은 안배 하지마라요. 안배 해도 소용 없어. 어떤 사람든은 알아 보지 못하잖아! 이것도 생각 하고 저것도 생각하다. 그 노인들은 늙을 때가 되면 매일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다. 왜? 생사를 간파 하지 못 했기 때문에 이길 수 없다.
이것은 이 장의 주제를 말씀하는 것이다. 첫번째, 한 참을 이야기 하고서야 이 장의 주제를 이야기하였는데, 왜 그러지? 어떤 것들은 나도 읽지 못 했기 때문에, 읽으면 읽었고, 내용이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약간의 정리 했보자고.
나는 이기가 어떻게 된 일 인지 읽었지만, 아직 무엇을 읽지 못 했다, 여자 아들을, 용이 이런 환상들을, 정말로 이해하기 어렵다. 너는 나를 이해 해야 한다. 나는 비교적 진실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내가 읽었기 알았 들었 때문에, 내가 읽었 들었다고 말 해 줄 것이다. 못 알아다면 못 읽었다고 말 해줄게, 나는 너를 속지 않는다, 나는 읽지 못 했다, 굳이 너에게 내가 읽어다고 이해 해다고 말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너를 속이는 것이다.
한때 나는 싱가프로의 한교회에 자주 가서 무대 밑에 앉아, 사람들이 설교하는 것을 듣는다. 그러던 어느날 강단에서 한 마디가 올라왔는데 "왜 그렇게 귀에 거슬리지?" 전도자는 무대에 서서 말 했다. "강단에서 내가 말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에서 온 것이다." 아이고! 그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에서 온 것인데, 나는 그때 듣자마자 그다지 이상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모두가 속지 말라고 생각한다. 나는 너를 속이지 않을 것이다. 너도 속이지 말고 기도 하지 말고, 나신의 영적 생명을 만들라고 생각한다.
<성경>에서 "용이 천하에서 떨어졌다"고 말씀하는데, 이것은 사도 요한이 본이 환상이다. 나는 오늘 모두를 데리고 <성경>공부한데, 솔직히 말 해서, 이 용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정말 보지 못 했다, <성경>에서는 "천사와 용, 하늘에서 싸우자"고 말씀한다, 나는 이렇게 이해한다, 이 "하늘"은 영적의 세계라고 하고, 하늘은 영적의 것이다. 하늘에 싸움이 생기면, 영계에 싸움이 생긴다, 그 영계의 싸움은 무엇과 관련이 있습니까? 교회의 성도들의 기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왜 이렇게 말 합니까? 요한이 말씀 했기 때문이다: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리가는지라, 천사가 향로를 거자고 제단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아매 우레와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계시록>8:4-5).
여기 무슨 얘기했지? 바로 모든 성도들의 기도가 하나님의 앞에 이르렀다, 만약 당신이 "성교를 듣기만이라면, 매일 인터넷에서 많은 목사의 설교를 듣는다, 이것도 나의 설교와 <성경>공부하는 것을 포함합니다. 설교를 듣는 행위는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이르지 못하고,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이르는 것은 모든 성도들의 기도이다. 우리가 세운 교회는 반드시 기도하는 교회이고, 기독교인이 되어도 기도하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
며칠 전에 한 자매가 나에게 말했다, "지금 방언기도는 한두시간동안 기도하는데, 시간이 매우 짧다고 느낀다," 기도가 습관이 되기 때문에, 기도가 관건입니다! 이것은 영적인 싸움이기 때문에 교회의 기도는 인류 역사의 발전을 추진할 수 있다. 기독교인이 되려면, 설교를 듣는 기독교인이되지 말고, 기도하는 기독교인이 되어야 한다는 매우 중요한 관념을 가져야 한다.
그럼 어떻게 기도 해요? <성경>은 우리에게 영으로 기도하고, 지성으로 기도하라고 하르쳤다, 영으로 기도하는 것은 영적인 능력이다. 예수님는 <사도행전>에서 이렇게 말씀 하셨습니다:
"데오빌로여 네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께서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갈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후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세례를 배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샸느니라."(<사도행전>1:1-5).
기독교인이 영에서 기도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는 능력이 없을 것이다. 이 제자들은 말을 잘듣고, 마가 다라방으로 올라가서 120명이 함께 영적이 방언으로 기도를 했다. 나중에 바울의 서신도 이 일을 말씀하셨다. 다만 어떤 사람들은 바울의 서신을 읽고 이 일을 부정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함께 기도하고 기다리더니, 성령이 내려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드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매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하니.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것으라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곧 힘을 얻고. 걸으다니다. 어디를 가든 성령충만과 방언기도에 신경을 썼다, 그러니까 왜 우리는 죽을떼까지 목숨을 아끼지 않는 걸까? 죽을지언정 생명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영적의 이기로 이 끌수 있기 때문에. 지상의 기도는 영계의 일을 결정한다. 사실 하나님은 용을 하늘에서 떨어뜨려야 한다. 수천년 전에 아담을 창조하기 전에 그것을 할 수 있었는데, 왜 그것을 하지 않았을까? 하나님은 모든 성도들의 기도를 기다리고, 영적들이 싸우는 이기를 때문에, 이 승리는 바로 하나님의 자녀로 하여금 하나님의 승리와 영광을 나누게 합니다! 물론 이것은 나의 관접이다.
하나님은 그 분의 자녀가 이기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관계에 들어가 승리도 함께 이기기를 바라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성경>에서 계시 하시는 진리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성경>을 읽고 용이 땅에 던지 것은 교회의 기도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베드로 앞에서 세번이나 주님를 불인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았다. 성령으로 충만있을때, 그는 주님로 순도하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를 원했다, 승리를 얻는 원 했다. 승리를 얻는 것은 생명을 아끼지 않는 것과 영적의 능력과 관계가 있다.
형제자매는 정말 많은 시간을 영에서 기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영에서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에게 말하는 것이고, 영에서 여러가지 비밀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영에서 기도는 자신을 만들고 능력을 가지게한다. 베드로 가 가장 좋은 검증이고, 사도 바울도 마찬가지, 사도바울의 방언 기도는 모든 사람보다 많기 때문에, 그래서 사도 바울의 시중은 매우 능력있는 사역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나를 만들고 싶지 않다, 나는 교회를 세우고 싶다"고 말할 것이다. 나는 그들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이 궁금하다. 자신도 만들 수 없는데, 어떻게 교회를 세우수 있겠는가?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실천한 결과 때문에, 내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용이 땅에 던지는 것은 무엇과 관계가 있습니까?
"큰 용이 내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 하던자가 쫓겨났고." (<계시록>12:9-10).
이기한 사람이 올라가게 되어고, 사탄 그 사람들이 고소할 방법이 없었고, 하늘에는 더 이상 그들의 곳이 없었다, 왜 쫓겨내어졌지?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있을찐저 이는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 내어 너희에게내려갔음이라 하더라.(<계시록>12:11-12).
형제 싸움에서 이기는 관건: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다
용의 일은 바로 그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시키는 자라것이다. 사람의 가장 큰 꾀는 생사를 꿰뚫어 보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에 한 사람이 생사를 알아 보지 못한다면: "아이고, 나 살아야 돼, 나 살아야 돼, 나 돈 벌어야 돼, 내가 돈을 벌면이 일을 잘지 켜야지, 내가 이 일을 지켜려면, 사장님을 무서워 해야지." 이것은 관할 된다. 사실 간파하지 못 했기 때문에, 그것은 비참하다, 사장은 그를 어떻게 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무서워 죽을 지경이었다. 네가 이렇게 일을 잘 할리가 없다. 너의 사장도 네가 그를 무서워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는 그의로 너를 괴롭혔힘을 당한다면, 나는 단지한 마디만이 싸다고, 말 할 것이다. 누가 무서워하니까1ㅣ 겁 먹으면 이런 거불러.
만약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면, 살아가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다. 이렇게 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을 것이고, 어떤 것도 너를 통제 할 수 없다, 하늘과 영계에서 모두 이길 수 있는 것은 큰 용이 사단 옛 뱀을 영계에서 땅에 던지뜨릴 수도 있다. 이긴 사람은 무슨 일이 일어 날까요? 마지막 나팔이 울릴때, 당신은 하늘로 올라갑니다. 땅과 바다에 회가 있을때는 너와 큰 관계가 없다. 그래서 "제천 즐거움"은 바로 영계에서 모두 즐거운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형제가 모두 이겼기 때문입니다! 그게 관것이야.
어린 양의 피는 이미 우리를 위해 흐르고, 하나님의 영생의 도는 이미 내려왓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육신이 되어, 이세상에 오셨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었고 죽음 매장 셋째날 죽음에서 부활하여, 우리를 위해 영생의 길을 열어주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이상 죽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데, 너는 아직도 죽음을 두려워 하니? 우리는 영원히 살수 있고, 하나님의 사람과 단절 될 수 있는 것이 없다, 이것이 바로 승리의 관건이다.
승리를 얻으면 악마는 너를 꾀는 시키기 어렵다, 그것은 왜 너를 꾀는 시킬 수 이니? 죽을 까봐,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으면 쉽게 너를 꾀는 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더 이상 말을 듣지 않으면 일을 하지 못하게 하겠다고, 너를 위협 했다, 겁먹었잖아, 이건 들림없이 이길 수 없을 거야. 사람을 살리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일이 아니다, 사람을 살게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이 많아져서, 부모도 아이의 생사를 걸정할 수 없다, 사람을 살게하는 것은 영이다, 음식에 의지 하고 말에 의지하면, 사람에게 의지 하는 것이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에 의지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영생의 길이다, 사람이 간파하지 않으면, 비참하게 죽는다, 꿔뚫어 보면 잘 살 수 있다는 것이 승리의 관건이다, 사람이 만약 간ㅍㅍ파 하지 못 하고, 남으면 어떻게 합니까? 마지막 나팔이 울리고 용이 땅에 던지졌을때: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시록>12:17).
꼭 이겨야돼! 그럼 이기지 못 하면 어떡하지? <계시록>12:14절을 잘 읽어라고, 어느날 당신이 자고 일어났어, 많은 사람들이 사라지고 전화도 안되는 것을 발견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경찰서에 가서 가족이 실종 되었다고 신고하고, 전세계에서 사람을 찾습니다. 너는 비로소 <계시록>12:14절을 읽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몇년 전에 내가 <성경>공부을 들었을 때. 사람들이 나에게 알려 준 것이다. 너를 읽으면 오직 한가지 선택이 있을 뿐이다.
이 여자는 바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예수님를 위해 증거하는 자 이다. 그때 용은 바닷가 모래 위에서 있었다, (참고<계시록>12:17).
지금 마지막 나팔이 아직 울리지 않았는데, 만약 네가 오늘 이기를 선택하지 않는다면, 이 관할 저 관할의 의해 비참하게 살 것이다. 땅에 남으면 당신은 선택이 하나 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용은 반드시 당신을 죽일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 인지 알고 있으며, 이기지 못 하더라도, 그것을 안다, 이때 악마가 당신을 공격하려고 한다면, 그것도 좋은 표지 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면 순도를 선택하세요, 네가 오늘 이겼으니 장래에 올라가고 될수 있다.
목숨을 아끼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우리가 살아 있을때 온다면, 우리는 주님에게 올라가고 될 것이다. 만약 예수님께서 우리가 살아 있을때 오지 않으셨다면, 하나님께도 감사하셨을 것이다. 우리가 살아 있을때 예수님께서 오셨다면, 우리는 올라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오직 한가지 선택만이 목숨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생명을 아끼는 사람은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립니까? 3년반, 3년반만 더 살면 마귀가 유황불 못에에 버려진 것처럼 영원히 죽는다. 3년반만 덜 살든지, 영원히 살든지.
그러니 목숨을 아기지 마라, 작은 것 때문에, 큰 것을 잃지 마라. 영생을 위해 몇년, 몇 십년을 덜 살았더라면, 아무것도 일어나지 못 했을 것이다, 내 말은 너에게 큰 이익을 줄 것이다. 바로 태연하게 사는 것이다, 또 그것이 성도와 싸우고, 승리하더라도, 이때 너는 필승의 기회가 없다, 교회는 이미 올라가고 되었다. 악마에게 패배할 수 밖에 없다.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에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계시록>13:10).
그녀로 하여금 천 이백 육십 일을 먹여, 살리게 하다, 그녀는 그곳에서 1년 2년반을 먹여 살렸다, (<계시록>12: 6, 14참조), 우리는 오늘 꿔뚫어 보는 것을 배워야 한다, 꿔뚫어 보는 것은 정말 좋고 즐겁기 때문에 고민 할 필요가 없다.
결론:
승리의 관건은 어린 양의 피에 의해 보이는 길이다. 죽을때 까지 생명을 아끼지 않는다, 어린 양의 피는 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박으신 것이다, 증거하는 도는 하나님의 능력을 증거하는 복음이다. 능력이 없는 복음을 믿지 마라, 능력이 없는 것은 복음이 아니다.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 볼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 보겠느니,"(<고린도전서>4:9).
우리가 하는 말과 하는 말은 지혜로운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를 사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큰 능력을 믿고 사도 바울시대의 큰 능력의 진리는 우리를 이길수 있고, 우리는 하늘에서 영계의 악마와 가장 치열한 영적 싸움을 할 수 있다, 죽어도 상관없어, 우리를 영생 속에 살게 하라, 살아 있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살게하라, 세상에 살지 않는 것은 영계에 사는 것이다.
승리의 관건은 영적의 보는 눈을 가지고, 우리가 인생에 믿는 길이 영생의 길이라는 것을 알수 있는 것이다. 생사는 더 이상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승리를 생각하여, 마귀가 하늘에서 쫓겨질때 까지 싸우는 것이다. 우리가 주님께 하늘로 올라갈때 까지, 주님와 함께하라, 이제부터 이기는 삶을 살면서, 세상에 속하는 악습에 철저히 대처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