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공부】히브리서-오해를 해설
<히브리서> -오해를 해설
Q1: 어떻게 구체 적으로 지성과 영적으로 더 좋은 훈련을 할 수 있을까?
지성은 하나니은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명확하게 이해 해야 합니다. 예를들어 <성경>의 한 말씀: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면,"(<마가복음>16:17).
지성적으로 우리는 내가 이해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정말 알겠어요? 막상 진정으로 해봐야 알 것 같아. 하나님이 알겠 원하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을 살려야 합니다. 그는 아는 줄 알았으나, 많은 말씀을 하지 못했다, 실천을 통해 알수 있듯이. 알고 보니 우리와는 표면적인 이해 차이가 크다. 이런 예가 많다, 예를들어 우리는 하나님을 읽으면, 자신의 이해에 따라 자신의 논리에 부합 되는지 판단한다. 만약 부합 되지 않는다면, 아직 실천 하지 않는다면, 기적과 기이한 일이 없어졌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왜 먼저 판단하지 않고 믿는 사람은 어떤 믿음일까? 사실 믿음은 이성적으로 자주 적인 선택이고, 하나니을 인식하는 연습을 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실천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더 깊이 깨닫게 된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단락 마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있다. 만약 깨닫는 데 전체 단락을 받아가며 뭔가를 얘기한다면, 그 사람한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전체적인 뜻을 알아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나무만 보일 뿐 숲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많다, 어떤 사람은 모르면 아주 제한적으로 한 가지 이야기를 하지만, 그는 하는 말이 정말 하나님을 아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이는 방언으로 기도하는 바와 같이 단편을 꺼내어 말하라이 일은, 전체 관점을 사용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어렵다, 오직 <성경>을 체계적으로 고찰하려면,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영적으로 어떻게 훈련 할 것인가? 우리 방언기도는 성령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기도하는 것이고. 성령이 우리를 가득 채우면 영적으로 큰 발전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영적으로 향상 되었는지 알겠는가? 자신은 영적인 눈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보면, 영적으로 영적인 능력을 가지기 때문이다.
Q2: 믿음을 어떻게 더 잘 연습 하는가?
모든 일은 작은 일을부터 큰 일을까지 연습한다. 치유석방의 연습에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감기에 걸리는 것이 장말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약을 먹으면 나을 것이라고 말한다. 기도한 필요가 없다. 내가 심각한 질병에 걸렸을때. 암처럼 치유할 수 없는병에 걸렸을때 기도하자. 감기도 안 걸리면, 암에 걸렸을때 괜찮겠어요? 그것은 불가능하다. 믿음을 연습하고 작은 일에서 연습하며, 지성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면, 아주 간단한 일인....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본받는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종이 일은 우리가 하겠습니다,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주 예수님 하지 않는 일, 우리는 한다, 그건 문제야 되었 것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 나온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말씀하는 대로 실천하는 것이 대단하다. 믿음을 훈련하는 것은 작은 일에 끊임없이 훈련하고, 하나님이 하는 대로 우리가 하는 것이다. 작은 일을부터 감기에 걸렸을때 부터 감기에 걸려을 때 기도를 잘하고, 믿음을 향상시키며 작은 일을 때부터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조정을 시작하여, 작은 일에서 믿음을 연습 해야합니다. 이것은 중요한 기본 원칙이다. 주 예수님께서 땅에서 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시는 것이고, 반은 기적을 행하여 환자를 치유하시는 것이라. 그러면 우리도 치유를 받고 믿음을 키우는 것이 좋은 시작이다.
Q3: 하나님이 우리에게 진정한 장막을 주신다는 것이, 무엇일까?
장막은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이며, 사람과 하나님이 만나는 곳이다. 진정한 장막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며, 오늘날 교회는 진정한 장막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장막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장막 일것이냐고 물을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경재함에 있어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임을 알아야 하고,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그 지혜를 알게야 한다, 장막은 <히브리서>에서 교회의 개념을 이야기 하고 있다.
Q4: 집사가 왕권을 잡는 건가?
집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맡는다.
Q5: 어떻게 분별 하나님에게 오는 시련과 저주하는 방법은?
이 말씀은 <히브리서>에서 명백히 논술하지 않았다. 나쁜 일이 우리에게 임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시련인지 하나님의 저주인지 볼것이다, 예를들어 암 문제,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는 것입니까? 시련 자체는 잘못된 개념이고,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가져온 저주는 매우 뚜렷하다, 저주는 사람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수반하여 멸망할 때까지 하는 것이다.<신명기>의 28장 15절 이후에 모두 저주하다, 너는 발견할 수 있다. 윗번에 있는 것은 모두 저주라는 것을 알게 될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암에 걸린 것은 하나님의 시련이라고 말 하지만, <성경>에서 하나님이 이런 일로 사람을 시험하는 것을 발견하지 못하는 것을 했다. 나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하나님이 그들에게 준 것을 발견하지 못했다. 비록 암이라는 개념이 없었다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이 그들에게 준 이런 시련을 볼수 없었다. 하나님을 저주하는 것은 분명하다, <성경>에서 명명백백 알고 있으면. 여호와께서 네 재앙과 네 자손의 재안을 극렬하게 하시리니 그 재앙이 크고 오래고 그 질병이 중하고 오랠 것이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질병 자체를 저주하는 상태라는 것을 알기 시작해야 한다. 어디서 저주하느냐? 저주하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을 어긴 것은 있습니다.
한 사람이 만약에 생활속에서 가난을 만나고, 번성하지 않으며, 다른 한편 신체의 질병은 모두 저주하는 징조이고, 축복과 저주하는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할 두가지 일이다.
Q6: 어떤 방면에서 사람을 평가하는데 충성이 있는가?
네가 한 사람에게 누명을 씬웠는데도 그가 하나님에 대한 마음을 바꾸지 않는 것은 바로 충성한 사람이다. 요셉처럼 그는 애굽에 팔려 노예가 되었으나, 그는 여전히 선악을 식별하지 않하고, 하나님이 그에게서 아름다운 언약을 이루리라 믿었다. 너는 요셉이 팔리는 것을 저주하는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 사실은 노예가 되었으나.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고, 그가 무엇을 하든 그는 번창하셨다, 반대로 한 사람이 저주를 받으면, 그는 번창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항상하는 일은 사람에게 충성이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하는 것이다. 그에게 누명을 씬우면, 바로 알게 된다, 나는 이런 방법을 자주 사용한다. 나는 항상 누군가에게 심한 혼내줬어다. 나는 그의 반응을 보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면, 이것이 충직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것이다. 사실 사람의 일생에 충송은 매우 중요한 자질이다.
우리는 사역할 때, 아주 좋은 특성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들은 항상 양치기 들을 따라 다닌다, 그러나 우리는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사나운 이리가. 그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그들을 먹을 때가 있으면 따라 다니먹지. 먹을 없는 때가 떠나기 때문에 생각합니다. 충성심이나 불충실의 개념 가져있는가. 한 사람에게 고찰 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있다.
<성경>의 다윗이는 우리에게 아주 좋은 모범을 보여 주었다. 다윗가 그의 주인 사울왕에게 쫓기도 도망갈 때, 사울을 죽일 기회가 있었으나, 다윗이 손을 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할 일이 아니므로 주인을 죽일 수 없다고 말했다. 주인이 다윗을 죽이려하였으나, 다위이 여전히 주인에게 충성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는 사람이라. 그러나 어떤 사람은 아주 좋고, 한 사람이 나쁜면 모두 책임지지 않는다. 그러면 이것은 충성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천개만개라고 좋은 것이 하나 있으면, 남의 은혜를 기념하는 사람이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자질이고, 복을 입은 사람들은 모두 이와 같다.
Q7: 최선을 다해 끝까지 가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최선을 다하는 것일 까요? 어느 정도가 완전할 까요? 많은 경우에 최선을 다하고 싶지만 하기 어려울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할 까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주의 하나님을 정성을 다 하여 사랑하라. 하지만 어떻게 최선을 다해야할 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최선을 다하는 것을 최선이라고 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런 상태이다. 방학을 했거나, 직장을 잃었거나 아무 일없이 집에만 있고. 어떤 모임도 참석 했다. 직장이 생기면, 같이 바빠지면, 어떤 모임도 참석할 시간이 없다. 이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까? 아니면 최선을 다 하지 않는 것입니까? 시간이 있으면 참가하고, 시간이 없으면 그만두라는 것은 온힘을 다해 일하러가는 사람이다. 일을 최선을 다하는 것은 시간만 있으면 하는 것과 같다.
사람마다 최선을 다하는 기준은 다르다, 저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최선을 다해정도 어머니께 요구할 수 없습니다, 우리 두사람이 최선 다해의 정도 다릅니다. 80대 노인 이었는데. 그녀의 힘을 다해 나와 도같이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일부러 최선을 다 하거나 최선을 다해 우리를 요구하셨다, 즉, 사람마다 한 대의 자를 가지고 있고, 서로의 노력이 다르며, 절대적인 기준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왜 절대 것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하나님이 할머니에게 동전 두게를 주었는데, 사람들이 두개를 모두 바친다고 하는데. 이것이 최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물론 입니다. 많은 것을 가진 사람도 있고, 재산도 많지만, 헌금을 할 때는 한 없이 힘들고, 돈을 지키는데는 최선을 다 하지만, 헌금을 할 때는 망설이는 사람도 있다. 비록 그가 많은 것을 바쳤지만. 그가 가진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하나님도 반드시 그가 최선을 다 한것은 아니다, 이로 인하여 우리 하나님은 절대 기준을 정하지 아니하시고, 은혜와 긍휼과 가득하셨도다.
그럼 뭐가 완전할 까요? 예수님을 닮았다. 네가 예수님 답지 않은 점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너는 계속 힘을 다해 추구해야 한다. 너는 아마 이것이 너무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다.이렇게 어려우면 어떻게 해야하니? 사실 매우 간단 하다. 사람으 머릿속에는 모두 저울이 하나 있다. 예를들어 만약에 공짜로 만원을 받을 수 있다면, 같은 시간에 만원을 받으면 10만원을 받을 수 없다, 하나는 동쪽으로 가고 하나는 서쪽으로 10만원을 받을 수 있고, 동쪽으로는 만원밖에 받을 수 없다. 그 만원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을까? 만명을 뽑는 사람은 머리에 문제가 있을거야. 어차피 10만원이 더 크니까!
왜 일을 어렵게 생각할 까. 우리는 이 일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의 중요성이 중요한지 아닌지느 모두 우리의 주관적인 판단에서 나온다. 만약 당신이 일생을 위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일생 동안 하나님이 없어서는 안 되고. 자신을 완전히 하나님에게 바쳐야한다고 생각한다면, 또 어떤 것이 당신이 온 힘을 다해 완벽하게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까? 없다, 그러나 이 일이 중요 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다면, 이것은 인생의 여러가지 일중 하나 일뿐입니다. 그리고 다른 일도 해야합니다, 조금 남은 시간을 하나님에게 주는 것 만으로 하면, 너는 큰 문제가 될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을 이렇게 멀리에서 뒤에 두면, 하나님은 또 너를 어디에 두겠느냐?
어떤 사람은 사역할 때, 이렇게 말 하는데, 내일 나는 출근해야하! 오늘 나는 일ㄸ찍 자야하기 때문에, 시중을 들 수 없다. 그러면 네가 문제가 있을때, 하나님이시여, 귀신이 나를 방해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나님은: 오늘은 시간이 없어, 진짜 이러면 어떡해? 너 정말 큰일 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내가 너에게 네가 하나님을 대하는 대로 하나님이 너를 대하는 것을 알려 줄 것이다. <성경>에 이런 기록이 많이 있다: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들을 섬기면 너희에게 복을 내리신 후에라도 돌이켜 너희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너희를 멸하시리라 하니."(<여호수아>24:20).
"예수께서 한 어린아이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복음>18:2-3).
"내 영광과 애굽과 광야에서 행한 내 이적을 보고서도 이같이 열 번이나 나를 시험하고 내 목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한 그 사람들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맹세한 땅을 결단코 보지 못할 것이요 또 나를 멸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그것을 보지 못하리라,"(<민수기>14:22-23).
만일 네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면 하나님도 너에게로 돌아간다, 만일 네가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도 너를 버리고, 만일 네가 하나님을 멸시하면 하나님은 너를 멸시하게 될것이다. 내 머릿속에 이 빚을 똑똑히 계산 하고 있으니, 하나님이 얼마나 중요 한가! 하나님이 없으면 어떡하지? 아들 딸도 기대할 수 없는데, 내 하나님을 바라는 것외에 또 누구를 바라겠는가? 누가 나의 눈물을 닦아 줄수 있습니까? 누가 나에게 위로를 해 줄수 있습니까? 누가 나를 도와 줄수 있습니까? 내가 어려움을 만났을때, 나와 함께할 수 있습니까? 오직 나의 하나님. 만약 이 점을 잘 모른다면, 너는 최선을 다할 수 없다, 왜냐하면 너는 이 일이 전혀 중요 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하지 못하고, ㅎㅇ상 더 중요한 일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루 종일 더 중요한 일이 있으면, 네가 해라, 하나님은 중요 하지 않은 일이지, 당신이 하나님을 찾을때는 당신을 아주 중요하지 않은 사람으로만 여길 것입니다. 우리는 지성적으로 하나님을 잘 알아야 한다, 사람이란 그런 것이다. 모르면 할 수 없다.
Q8: <히브리서> 제7장 제 11-12장 이라는 말씀을 이해 하지 못하는데, 율법도 반드시 바꿔야 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이 먼저 사람엑 모형을 만들어 준 셈이다, 예를들어 집을 살때, 개발 될지역 에는 아무것도 없고, 구멍과 굴착기만 있지만, 예쁜 빌딩 모형을 볼수 있어서, 집을 고를 수 있습니다. 근데 계약한게 모형사는 거예요? 아니야, 네가 원하는 건 모형과 똑같이 지어진 집이야.
구약에서 백성들은 레위인 제사장 직임 아래에서 율법을 받았는데, 이것은 그림자 이고, 하늘의 모습을 따라 만든 모형이었다, 지금은 하늘에 있는 것이 와서 정말 이루으로 바꾸면 크게 달라 진다. 필요한 것은 변경이 아니라, 완성이다, 율법은 그림자 일뿐이며, 그것은 결국 새 것이 되어진실이 되리라. 바꾼 것이 아니라, 이루지 것이다.
Q9: <히브리서> 제2장 7-9절에서는: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씬우시며.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은즉... 이것은 악마에게 말씀하셨는 것까?
마귀가 하나님에게 복종하지 않는 문제가 아니라, 악마는 하나님의 섬기로서, 악마를 매우 존종하지 마라. 여기서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며, 이렇게 완벽하게 하나가 되는 창조이며, 하나님과 사람이 하나가 되는 상태를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습니다.
지금은 성취 했습니가? 아니요, 저자는 <히브리서>를 쓸때 아직 이루지 못했는데, 언제 이루어 질 것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올때 교회는 새 예루살렘으로 바뀌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으 성전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였다. 그것은 완벽하게 하나가 된 상태이다, 그 때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 모든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마귀가 뭐라고? 천사와 악마는 모두 천사라고 부릅니다. 악마도 천사이고, 천사도 좋고 나쁨의 구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를 천사 보다 조금 작습니다, 즉, 교회는 아직 완전한 승리를 얻지 못했고, 완전히 일치하는 상태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영광의 교회를 세우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Q10: 진정한 안식이란? 어떻게 해야만 진정한 안식을 이룰수 있습니까?
죽음 자가 관속에 누워산 자가 거기서 안식을 노래하였으나, 이것은 우리가 말한 안식이 아니었다. <히브리서> 제3장에서는 안식은 하나님과 완전히 하나가 된다고 말씀을 했다. 인간과 하나님의 완벽한 합일은 누가 망가뜨렸을까? 아담과 이브는 선악나무를 열매를 다 먹어, 인간이 하나님과 완전히 일치하는 상태를 파괴 했다. 이런 합일의 상태를 회복하는 것을 진정한 안식이라고 한다. 진정한 안식은 하나님이 이기는 영광의 교회를 통해 하나님과 교회가 함께한다, 영광의 교회를 세우신 것은 무엇일까? 하나님의 말씀에 대로 세우다는 교회입니다.
Q11: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관계? 개인을 말씀하는 건가요? 교회흫 말씀하는건가요?
교회하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며,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다 개인라고 말씀하지 않는다. 우리는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완벽하게 결합해야 관계를 맺을 수 있다. 신약 <성경>에서 교회는 하나님이 중시하는 것이고, 교회를 통해 사람차례가 올수 있다.
왜 그럴까요? 저는 개인 적으로 초보적으로 이해 했습니다, 사람의 단점, 사람과 하나님이 잘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사람과 사람은 어떻게 잘 지냅니까? 하나님이 창조한 교회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갈등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것이다, 선과 악을 서로 식별하기 때문에, 일치할 수 없다. 하나가 되지 못하고, 거룩하지 못한 것은 예수님와 같지 않으며, 우리에게는 하나가 되는 품격이 없다, 만약에 이런 품격이 있으면 하나가 되는 사람과 쉽게 하나가 된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와 아주 밀집한 관계를 가진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의 관게는 교회를 통해서 이다.
Q12: 악마와 천사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악마는 타락한 천사이다, 타락이 있는지 없는지는 중요 한 차이이다, (우리는 오늘도 왜 악마와 천사에게 흥미를 가지고 있습니가?). <히브리서>의 저자는 인간의 지위를 중시하라고 격려한다,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랍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서 언약을 위대한 계획을 이루어야 한다.
Q13: 사람은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살수 있을까?
자신을 완전히 제물로 바치다, 예수님는 자신을 완전히 바쳤다, 인생에서 가장 우매하는 것은 이기적이고 인생한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악마의 이미지 이기때문이다. 만약 당신은 귀신이미지가 있으면 귀신 안 부를 수가 있겠는가?
머릿속에 생각하는 것은 모두 자신의 이기 적인 일입니다, 사람은 평생을 그렇게 살면서도 살고 싶습니다. 자신을 매우 사랑하고 결국은 악마의 이미지로 살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어떻게 해야만 예수 그릿도의 형상을 살수 있습니까? 완전히 바쳐서 자신을 완전히 바치다.
누군가는 자신이 헌금한 적이 있다고 말하지만, 보기 에는 조금도 좋지 않다, 그는 바쳤으니 하나님은 그에게 축복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의 헌금을 정말 ㅍ;ㄹ요로 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우리를 필요로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하나님을 필요로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헌금를 마치고나서, 자신이 매우 대단 하다고 느꼈다, 예전에는 십일조를 매우 대단하다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십이조를 바치는 사람도 있었다.
십일조하는 하나님이 당신의 헌금를 필요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헌금를 해야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복을 입었을때, 당신이 정신을 차릴수 있는 이미지를 살수 있습니다. 만약 돈 조차도 감히 바치지 못한다면, 무슨 기독교인입니까? 헌금는 단지 입문 일뿐이고, 하나님은 세상의 돈을 불의의 재물이라고 부런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으시고 하나님이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하시며, 재물이 소용없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살아있을 때는 돈이 쓸모 없다는 것을 알고, 절대로 이기적이고 인색해서는 안된다.
우리 하나님께서 우주만유를 다스리시며, 그분의 부를 축복하시며, 그 분의 부를 축복하셨고, 그 분의 부를 부유하게 하시며, 그 분의 가난을 가난하게 하시는 분늬 모든 것을 하난미께서 다스히셨습니다. 네가 하나님께 말씀드렸다. 나는 부자가 되고 싶어서, 이것을 하고 저것을 하다가. 결국 목적이 불순하고, 끝가지 완전히 망 했다.
만약 너는 헌금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면, 헌금하는 것이 정말 복을 받을 것입니다. 헌금하는 것이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신다면, 당신의 헌금하는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마음에 알아들어 분들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거룩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모솨였다 함과 같으니라,"(<고린도전서>2:9).
당신의 목적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당신의 목적이 돈을 구하는 것이라면, 우상에게 절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살려면, 우리 하나님의 모습을 완전히 다 바쳐야 한다, 혼자 사는 것은 의미가 없다, 왜 우리는 밍딩(命定)신학이라고 하는데. 밍딩(命定)이 정해지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문제를 다 물었으니 잘 실천해야 합니다.
며칠 전에 어떤 목자와 만나서, 그가 사역하는 한 사람 있는데, 왜 기도를 했는지 물었습니다. 그의 일과 재물, 업적, 얻을 수 있는 것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얻을 수 있을 것같기도 하고, 얻을 수 있을것 같지도 않다. 사실 사람의 마음이 살아 있는 못습을 생각하는 대로 너는 하나님을 속이지 못해도, 귀신을 속이지 못한다. 업적이 그렇게 중요한가?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기쁨을 얻었다면, 하나님의 뜻대로 자신을 완전히 제물로 바쳤다면, 하나님은 반드시 당신을 축복할 것입니다. 요셉을 본받아 충리가 되어 기업에서 충리가 되었다, 하나님의 형상을 살수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